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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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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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주연상

제16회
(1995년)

제17회
(1996년)

제18회
(1997년)

심혜진
(박봉곤 가출사건)

신은경
()


역대

여우주연상

제30회
(1992년)

제31회
(1993년)

제32회
(1994년)

장미희
(사의 찬미)

심혜진
(결혼 이야기)

윤정희
(만무방)

제33회
(1995년)

제34회
(1996년)

제35회
(1997년)

최진실
(마누라 죽이기)

심혜진
(은행나무 침대)

심혜진
(초록물고기)

제34회
(1996년)

제35회
(1997년)

제36회
(1999년)
[1]

심혜진
(은행나무 침대)

심혜진
(초록물고기)

심은하
(미술관 옆 동물원)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최명길
(1995)

심혜진
(1996)

심혜진
(1997)

심혜진
(1996)

심혜진
(1997)

심은하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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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심혜진(본명: 심상군)

출생

1967년 1월 16일(52세), 서울특별시 마포구

본관

청송 심씨

신체

169cm, 51kg, B형

가족

남편 한상구(2007~)[2], 언니 심명군[3]

학력

서울공덕초등학교 졸업
서울여자중학교 졸업
보성여자고등학교 졸업[4]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방송정보학과 (03학번)

데뷔

1986년 코카콜라CF

종교

가톨릭(세례명: 데레사)

소속사

원츠메이커 엔터테인먼트[5]

SNS

인스타그램

1. 개요
2. 연예계 데뷔와 CF스타 심혜진
3. 영화배우 심혜진
4. 출연작
4.1. 영화
4.2. 드라마
4.3. 광고
5. 수상내역
6. 트리비아

1. 개요

대한민국배우.

아무로 나미에 이전에 심혜진이 있었다. 지금의 코카콜라 CF는 땀과 열정을 이야기하지만, 1980년대 중반 그녀가 출연한 CF는 세련된 도시문화의 상징으로 콜라를 내세웠다. 점심시간을 맞은 현대 직장여성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CF 속 심혜진은 투피스 정장과 지적인 안경을 쓰고 콜라를 마셨다. 말하자면 차도녀의 원조라고 할까. ‘콜라 같은 여자’로 수식되던 그녀는 이어 영화 <결혼 이야기>로 신세대 주부의 시대를 알렸고, 이후 <박봉곤 가출사건> <은행나무 침대> <초록물고기> 등을 통해 배우로 입지를 다졌다.

그녀가 진짜 아내와 엄마를 연기한 건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와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부터다. 20대부터 40대까지 언제나 대한민국 아가씨, 아줌마들의 자아발견을 선도했던 심혜진은 이제 <페스티발>의 SM마스터 순심을 통해 “지옥에 갈지라도” 자기 안의 성적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영화와 드라마에서 언제나 앞서갔던 ‘언니’가 심혜진이다. 씨네21

"콜라의 톡 쏘는 맛처럼 떠오르는 여자"

유하 「콜라 속의 연꽃, 심혜진論」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2. 연예계 데뷔와 CF스타 심혜진

보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CF모델로 활동하던 중 코카콜라 CF를 통해 광고모델로 일약 스타가 된다.[6]

TV 광고 속의 한 여성이 젊은 남성들뿐 아니라 젊은 여성들의 눈길까지 사로잡았다. 하늘색 블라우스에 몸에 착 달라붙는 짙은 청색 투피스를 입은 회사원 여성이었다. 그녀는 키가 또래의 남자들보다 조금 더 크거나 대등했고(170cm), 팔꿈치로 옆자리의 남자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걸었다. 그녀는 남자의 한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손가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아, 알았어!’라는 뜻을 전하곤 다시 일에 몰두한다. 미모와 지성, 섹시함을 두루 갖췄을 뿐 아니라 자기 힘으로 돈을 번다. 바로 커리어 우먼의 등장이었다. 어느 시대에서도 볼 수 없던 여성이 코카콜라 광고에 등장한 것이다.

1980년대 말 이 광고를 본 수많은 여성은 광고 속의 여성과 닮으려고 노력했고, 당시 나이 어린 여자들은 커서 이 여자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지적이고 세련됐으며 섹시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성들 앞에서 당당하고 존재적으로 우위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녀 옆의 남성들도 모두 한가락 하는 멋쟁이이지만, 이 여자 앞에서는 뭔가 모자라 보였다. 매혹적인 신세대 여왕벌, 그녀는 심혜진이었다.[한국 여배우 열전 ⑧] 80년대 신여성 아이콘 심혜진

1988년 코카콜라 광고

1989년 삼성 카메라 광고

2000년 SK-2 광고[7]

3. 영화배우 심혜진

한창 CF모델로 활동하던 중 영화사 '지미필름'을 설립한 영화배우 김지미의 제안으로 '지미필름'과 전속 계약을 맺고 영화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1989년 김지미, 이덕화와 함께 주연을 맡은 <추억의 이름으로>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하였고 같은 해 지미필름의 영화 <물의 나라>[8]에도 출연하였다.[9] 그러나 당시 촬영장에서 노출신 강요 등[10] 체계적이지 못한 영화 제작 시스템과 아무런 준비 없이 소속 영화사에 의해 촬영장에 투입된 심혜진은 영화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고, 스스로 연기력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다시는 연기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고 한다.

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심혜진을 찾아가 설득하며 찍은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이 1990년 개봉하였다.[11] 심혜진은 <그들도 우리처럼>을 통해 영화를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하였고, 당시 문성근, 박중훈 두 배우사이에서 ‘그들에게 밀리면 끝장’이라는 심정으로 완전히 악에 받혀서 촬영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확실한 존재감을 보인 심혜진은 영화배우 데뷔 1년만에 국제 영화제인 낭트 영화제와 춘사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는다.

1992년 영화배우 심혜진, 한국영화사,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 작품인 <결혼 이야기>가 개봉하였다. 최민수와 함께 주연을 맡았으며 서울 관객만 53만명을 동원하며 그 해 압도적인 관객수로 1위를 기록한 대흥행작이다.[12] <결혼 이야기>로 대종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충무로 심혜진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심혜진은 당시 여성들의 워너비로 등극하였다.

그때까지 만 해도 여배우는 절대로 시나리오나 짜인 콘티 밖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어떤 공식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니까 작가나 감독이 만들어 놓은 박스 안에서 그걸 최대한 팽창시켜 주기만을 원한 거다. 그 이상에 대한 기대도 없었고 그 박스 바깥으로 나가면 다 편집 되어서 잘려나갔다. 난 그런게 납득이 안됐다. 다행히 힘들었지만 김의석감독과는 그런 문제를 많이 이야기하면서 찍어나갈 수 있었다. 그게 <결혼 이야기>다.

<결혼 이야기>는 여성을 수동적인 자리에서 벗어나 남성과 대화하고 상의 할 만한 수준의 동등한 ‘주류세력’으로 키워준 거다. 그게 90년대의 한국사회의 트렌드가 되었던 거지. 그러다가 2000년대에 <엽기적인 그녀>가 나오면서 ‘여성상위’의 시대로 역전이 된 거고. 심혜진, 여성의 온도를 쿨하게 바꾼 배우

코카콜라 광고를 통해 스타가 된 심혜진은 당찬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로 관객에게 어필했다. 이전의 여성 연기가 남성에 대한 순종, 복종, 희생적이거나 섹슈얼 무드로 일관했다면 심혜진은 남성 우월주의자인 최민수에게 당당히 맞서 자기 주장을 펴고 과감하게 애정표현을 할 줄 아는 현대적인 캐릭터를 살려냈다. 이는 당시 부상하고 있던 신세대론과 여성 권리 신장론을 관객의 기대치에 맞게 계산된 것으로 1990년대 한국 대중영화의 지형도를 바꾼 계기가 된 작품이 됐다.

이효인 『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 문화사』

심혜진의 영화배우 인생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96년 심혜진은 대한민국 영화계 3대 메이저 시상식인 대종상[13],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에서 각각 다른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는데 이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며 당시 영화계에서 심혜진이 어떤 존재였는지 짐작할수있다. <은행나무 침대>와 <박봉곤 가출사건> 두 편 모두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청룡영화상에서는 인기스타상을 수상하였다.[14]

1997년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초록물고기>에 문성근, 한석규와 함께 출연 하였다. 이 작품으로 심혜진은 대종상[15],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2년 연속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1993년, 1996년, 1997년 이렇게 3회에 걸쳐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영광은 단순히 여배우의 기근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영화에 맞춰 자신의 모습을 탈바꿈하는 심혜진의 연기력과 배우정신에 기인한다. 연기력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대표적인 영화배우였다.

1999년 심혜진은 TV 드라마로 활동영역을 넓혀 MBC 미니시리즈 <마지막 전쟁>에 출연하였다. 5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1999년 말 심혜진은 아비정전, 중경삼림 등으로 한국 영화계에도 큰 영향을 줬던 홍콩 왕가위 감독의 영화 <2046>에 캐스팅되었다. 한국[16], 홍콩, 일본 합작 영화로 각국의 톱스타들이 캐스팅 된 대형프로젝트였다.[17] 왕가위 감독이 대표인 매니지먼트사 하우스원(HOUSE1)과 10년의 계약을 맺으며 아시아를 넘어 국제스타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왕가위 감독은 <2046> 캐스팅 후 심혜진에게 영어공부와 피부관리를 요구 하였고 심혜진은 1998년을 마지막으로 한국 영화 출연을 중단하고 <2046> 준비에 매진하였으며 왕가위 감독은 심혜진이 모델로 발탁된 화장품 SK-2 광고를 홍콩에서 직접 촬영하는 애정을 보였다. 1995년 12월에 왕가위 감독이 연출한 중경삼림, 타락천사가 한국에서 개봉해 흥행성공을 거두어 큰 인기를 끌어 내한했었는데, 그 기간동안 그녀가 출연한 은행나무 침대 촬영장을 방문하면서 그녀와 만남이 성사되어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가위 감독 특유의 비정상적으로 느린 영화 제작 속도 때문에 2003년 심혜진은 왕가위의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정리하며 <2046>에서 하차하게 되었다.[18] 영화가 예정대로 제작되고 개봉 되었으면 국제적인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결과적으로 심혜진에게 국내 영화계 공백기를 가져다주었고 심혜진의 빈자리는 90년대 말 충무로에 등장한 여배우들이 채워가고 있었다.[19]

2003년 심혜진은 1998년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이후 5년만에 <아카시아>로 충무로에 컴백하였다.

2005년 10대와 20대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심혜진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게된 작품,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 출연한다.[20] 주인공 프란체스카깜장드레스를 연기하였으며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시즌3까지 제작되었다. 그러나 90년대 함께 활동했던 강수연처럼 그녀도 이후 영화 출연이 아예 끊겨버렸다. 현재 주중 드라마의 조연이나 일일극 조연으로만 간간히 등장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게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심혜진이 <안녕, 프란체스카>를 택했을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인의 등용문’으로만 인식됐던 시트콤에 당대의 여배우가 출연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심혜진은 그 시기를 자신이 성(城) 문을 열고 나선 때로 규정했다.

“자기만의 성에 갇혀 있을 때, 그게 힘들다고 느끼지면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 같아요. 물론 그 변신이 쉬운 일은 아니죠. 성 안에만 살아온 공주는 성 밖을 부러워하면서 갇혀 있죠. 어느 순간에 바깥으로 나갈까 고민하죠. 그런 시기가 올 때 자연스럽게 자기를 던질 수 있어야 돼요. 던질까, 말까 고민하는 동안은, 사실 너무 힘들죠.”

4. 출연작

4.1. 영화

연도

작품

감독

배역

2014

왓니껴

이동삼

혜숙

2013

다우더

구혜선

엄마

2012

파파

한지승

미영

2010

페스티발

이해영

순심

2008

흑심모녀

조남호

박남희

2006

국경의 남쪽

안판석

경주

2003

아카시아

박기영

미숙

1998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강우석

이기자

실락원

장길수

정은교

1997

초록물고기[21]

이창동

미애

꽃을 든 남자

황인뢰

정민

마리아와 여인숙

선우완

명자

1996

박봉곤 가출사건

김태균

박봉곤

은행나무 침대

강제규

선영

1995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오병철

경혜

손톱

김성홍

소영

1994

결혼 이야기 2

김강노

장선주

세상 밖으로

여균동

혜진

1993

그 섬에 가고싶다

박광수

옥님

비상구가 없다

김영빈

영숙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

김호선

진희

1992

결혼 이야기[22]

김의석

최지혜

비처럼 음악처럼

안재석

인경

하얀전쟁[23]

정지영

사라

1991

제5의 사나이

남상진, 박문수

혜주

내일은 비

이영실

1990

그들도 우리처럼[24]

박광수

송영숙

1989

추억의 이름으로

유영진

오유경

물의 나라

유영진

송미란

4.2. 드라마

4.3. 광고

5. 수상내역

연도

수상

작품

2007

대종상영화제 여우조연상

국경의 남쪽

2006

SBS 연기대상 10대 스타상

돌아와요 순애씨

S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우수연기상

2005

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

안녕, 프란체스카

1999

MBC 연기대상 인기상

마지막 전쟁

1997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

초록물고기

대종상영화제 인기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황금촬영상 시상식 인기여우상

은행나무 침대

1996

여성관객영화상 최고의 여자배우상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박봉곤 가출사건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1994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세상 밖으로

춘사영화상 여우주연상

1993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

결혼 이야기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1992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1991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

그들도 우리처럼

1990

낭뜨영화제 여우주연상

춘사영화상 여우주연상

6. 트리비아

  • 2007년에 결혼한것이 초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1992년에 이미 결혼을 했었으나 성격차이로 6개월도 안돼 이혼했다. 결혼 이야기도 그 당시에 출연한 작품.
  • 백주부소유진을 연결시켜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두 사람과 친분이 있고, 백주부와 동갑이기도 한 심혜진이 두 사람이 성격적으로 닮은 부분이 있어 잘 어울릴 것 같아 어느 날 소유진에게 고깃집하는 총각이 있는데 어떻냐며 주선하여 두 사람이 결혼까지 골인했다.

  • 무려 3000평짜리 집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1. [1] 1998년에는 IMF 경제 위기로 인해 열리지 못했다.
  2. [2] 재혼이다.
  3. [3] 1남 3녀 중 둘째언니. CF모델로 활동했으며, 2011년 3월 사망했다.
  4. [4] 개그우먼 박미선과 동창이다.
  5. [5] 2019년 3월 새로 계약.
  6. [6] 코카콜라의 'I feel Coke' 캠페인의 사실상 메인 모델이었다.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에 나오는 광고와 똑같은데, 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동일한 포맷으로 만든 광고라서 그렇다. 'I feel Coke'가 '난 느껴요 코카콜라'로 바뀐것은 당시 외래어를 광고에서 사용할수 없었기 때문. 여담으로 이 광고에는 배우 이종원도 나온다.
  7. [7] 한국 첫번째 모델이다.
  8. [8] 박범신 소설 원작
  9. [9] 이미 스타였던 심혜진은 데뷔작을 포함해 단 한번의 오디션도 본적이 없다고 한다.
  10. [10] 물의 나라 영화를 보면 스트립쇼, 베드신 등 연기 경험이 전무한 신인 여배우에게 감당하기 힘든 장면이 꽤 나온다.
  11. [11] 당시 심혜진을 찾아간 박광수 감독의 조감독은 후에 그대안의 블루, 시월애, 푸른소금을 연출한 이현승 감독이다. 심혜진은 이현승 감독과의 인연으로 '그대안의 블루'에 출연할 뻔 하였으나 스케줄이 맞지 않아 출연하지 못하였다.
  12. [12] 2위는 서울 관객 23만을 동원한 최민수의 <미스터 맘마>, 3위는 서울 관객 17만을 동원한 심혜진의 <하얀 전쟁>
  13. [13]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은행나무 침대>로 중복 노미네이트
  14. [14] '은행나무 침대'는 강제규 감독이 그녀의 집앞에서 진을 치면서까지 캐스팅 하려고 애를 썼었다 한다.
  15. [15] <초록물고기>, <마리아와 여인숙>으로 중복 노미네이트
  16. [16] 한국에서는 LG전자가 투자에 참여하였다.
  17. [17] 심혜진, 양조위, 장만옥, 기무라타쿠야...후에 장쯔이 캐스팅
  18. [18] 심혜진, 양조위, 장만옥 당시 캐스팅 된 배우들은 처음에 시놉시스만 받고 시나리오는 받지 못했다고 한다. 즉흥적인 제작스타일이 한국의 홍상수 감독과 비슷하나 홍상수는 저예산으로 단기간에 제작을 끝내는 감독 계속되는 촬영 중단으로 제일 먼저 촬영에 들어간 일본 배우 기무라 타쿠야는 '이 영화 2046년에나 개봉하는거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2004년 칸영화제에서 처음 공개 된 뒤 재편집을 거쳐 개봉되었다. 이후 작품에서도 왕가위 감독의 느린 제작속도는 여전하다
  19. [19] 대표적으로 당시 TV에서 인기를 얻은 심은하가 떠오르고 있었다.
  20. [20] 심혜진의 전성기에 태어난 90년대생들은 심혜진을 프란체스카로 인식한다.
  21. [21]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수상
  22. [22] 청룡영화상 한국영화 최다 관객상 수상
  23. [23] 도쿄국제영화제 대상 수상
  24. [24] 청룡영화상, 춘사영화상 최우수작품상 수상
  25. [25]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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