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관련 문서: 마힌드라 & 마힌드라

국내용 로고. 1992년부터 사용되었으며, 통칭 쓰리 서클 로고 라고 부른다.[1]

해외용으로 쓰이는 로고.[2] [3] 통칭 윙 로고 라고 부른다.

1. 개요
2. 역사
2.1. 창업과 전성기
2.2. 상해기차 매각과 최악의 암흑기
2.3. 마힌드라에 인수, 재기에 성공하다
3. 지배구조
4. 역대 임원
5. 디자인
6. 모터스포츠
7. 엔진 목록
7.1. 생산 중인 엔진 목록
7.2. 단종된 엔진 목록
8. 생산 중인 차량
8.1. SUV
8.2. 픽업트럭
9. 단종된 차량
9.1. 세단
9.2. SUV
9.3. RV
9.4. 승합차
9.5. 픽업트럭
9.6. 스포츠카
9.7. 버스/트럭
10. 베이퍼웨어
11. 기타
12. 둘러보기

공식 홈페이지 : 쌍용그룹 시절부터 'symc.ssy.co.kr'이었으나 2000년부터 현재의 도메인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과거 대우자동차 홈페이지 쇼룸에서도 쌍용 차종 라인업도 실려 있었다.

노조 홈페이지

1. 개요

인도 기업이 보유한 대한민국의 자동차 기업. 주력 상품군은 SUV가 있으며, 과거에는 대형 세단인 체어맨과 버스, 트럭도 판매했다.

본사는 경기도 평택시 동삭로 455-12(칠괴동 580) 평택공장 내에 있으며,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공단로474번길 10(성산동 79)에 창원공장이 있다. 완제품을 평택에서 생산하고, 창원공장은 엔진을 조립한다. 그 외에 정비/부품 서비스를 담당하는 서비스센터가 서울과 대전에 있다.

제1노조는 한동안 한국노총 금속노련 소속이었다가 1994년 탈퇴 이후 1995년부터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거쳐 2009년 파업 이후 탈퇴하여 현재 미가맹 상태이다. 반면 제2노조격인 비정규직지회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장기적인 산업 전략을 세우지 못한 대한민국 정치인과 관료들의 무능과 무책임이 국가기간 산업인 은행 자동차 IT 해운 등을 어떻게 파멸 시키고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증발 시키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며, 하이닉스의 LCD사업 부문이었던 하이디스와 함께 중국 기업에 매각되면 어떤 비참한 결말을 보게 되는지 한국인들에게 각인시켜 준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이다.

모든 차량들은 연료 주입구가 다 왼쪽에 있으며[4] 한국 본사에서 생산된 차대 번호는 앞에 KP(Korea Pyeongtaek)로 시작한다.

2. 역사

2.1. 창업과 전성기

1954년, 당시 25세 청년 한원 하동환[5]서울특별시 마포구에서 하동환제작소를 설립하였으며, 1962년 동방자동차공업에 역합병되어 하동환자동차공업(주)로 출범함과 동시에 구로동[6]으로 공장을 옮긴다. 1966년 대한민국 최초로 베트남보르네오에 버스를 수출하였다. 하지만 1967년에 상공부의 자동차 산업 계열화 정책으로 신진자동차 계열사로 편입되면서 신진자동차에서 생산하던 토요타 버스(FB100LK, DB102LC[7])를 위탁생산하다가 1975년에 다시 신진자동차에서 독립하고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1977년에 동아자동차공업(주)로 상호를 변경하고 자회사 동아정기를 세웠고, 1979년에 지금의 평택공장을 준공하였다. 1984년에는 (주)거화[8][9][10]를 인수하여 본격적으로 4WD 차량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하동환 회장은 창업 이래 '무차입 경영'을 선호해왔으나, 외부자금을 끌어들여 신차 개발에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부담을 느꼈고, 그는 동아차를 투자 여력이 있는 쌍용그룹에 넘겼다.[11] 이후 동아차는 1988년 3월 상호를 쌍용자동차(주)로 변경하고 11월 21일에 코란도 훼미리를 출시했다. 1993년에 '이노베이션 원년'을 선포하며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의 기술제휴로 SUV 무쏘를 출시하고, 1996년에는 뉴코란도를 출시하여 쌍용자동차는 4WD 차량을 대표하는 메이커로 자리잡았다.

그러다가 1992년부터 이어진 막대한 적자로 인해 결국 1998년에는 대우그룹에서 인수했다. 이 쌍용자동차의 적자는 모기업인 쌍용그룹 전체를 공중분해시킨 요인 중 하나였다. 사실 쌍용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은 시멘트[12], 제지[13], 정유[14] 등 경기 부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업종이어서 쌍용자동차를 제외하면 대부분 흑자 상태였고 일부 적자 상태의 계열사도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쌍용자동차의 적자와 김석원 그룹 회장의 무리한 정계 활동으로 인한 경영 소홀로 그룹의 상황이 악화되었고, 결국 1997년 외환 위기 때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대우로 인수된 이후 얼마간 무쏘, 체어맨, 이스타나, 뉴 코란도가 대우 배지를 달고 출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골 때리는 삼분할 그릴이 붙다 보니 졸지에 봐줄 만하던 디자인이 싸구려가 되고 만다. 특히 체어맨은 살찐 레간자(...)가 되어버렸고, 무쏘는 바퀴 큰 누비라 스패건(...)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이스타나, 뉴 코란도는 이런 마수에서 피해 갔다. 그러나 1년 만인 1999년 대우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맞아 공중 분해 된다.[15]

2.2. 상해기차 매각과 최악의 암흑기

이후 쌍용자동차는 독자적으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다. 그럭저럭 잘 회생하고 어느 정도 흑자로 꾸려가나 싶더니 2004년 충격적으로 중국상해기차에 매각되었다. 그러나 상하이 자동차 매각 후 신차 개발은 전혀 없었고, 어느새 쌍용자동차의 주력인 SUV 차량마저 현대자동차에게 추월당한다. 결국 상하이 자동차 경영진은 전형적인 먹튀 행각을 본격적으로 보이면서 쌍용자동차는 자력 회생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에 팔린 이후 짱룡자동차 또는 쌍놈자동차 라고 불리며 조롱을 받았으며, 고기만 뜯긴 채 팔리는 게 아니냐고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전부 사실로 밝혀졌다.

2009년 11월 11일, 상하이차의 기술유출 여부가 사실로 확인되었다.

쌍용자동차의 사태는 크게 두 가지 시기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기술만 빼먹고 먹튀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던 차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2004년 헐값으로 매각된 것이며(평가액의 절반가량에 인수) 두 번째는 2008년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법정관리 신청한 후 노동자들 고용 문제를 방치하는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응 미숙이다.

쌍용차의 주채권은행인 조흥은행신한금융지주로 매각된 후 조흥은행이 채권을 헐값에 매각했다.

중국 상해기차에 매각된 후 우려했던 대로 기술 유출이 발생하며 인수 시 약속했던 재투자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기술 유출 관련, 국가에서 지원한 연구 개발 자금을 사용해 쌍용차가 개발하게 한 디젤 하이브리드 기술이 상하이자동차로 유출되었음이 2006년 11월 국정원에 의해 적발되어 문제시되었다. 이후 당시 진보신당심상정 의원이 2009년 1월에 공개한 외교부 대외비 문서에 따르면 상하이 자동차가 쌍용차를 털고 가기로 결정한 이유로 기술 유출에 예민한 노동자의 비협조, 검찰의 미흡한 조사, 정부의 비협조, 금융기관의 무관심이었음이 밝혀졌다.

상하이자동차는 위에 언급된 4가지 이유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세계금융위기가 오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아 쌍용자동차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상하이 자동차가 4년 동안 쌍용차의 기술력을 모두 흡수한 다음 먹튀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가 쌍용자동차의 고의부도를 야기했다는 의혹(이 과정에서 안진회계법인 등이 개입된 회계 조작 의혹 등이 잇달았다.)을 명확히 밝히기보다는 강경한 노조를 정리해 [16] 다른 기업에 매각하는 방향으로 처리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이후, 노동자들의 옥쇄파업 등이 잇달았으며 2010년까지 23명의 노동자가 자살한 상태였다.

2009년 5월부터 약 두 달 반 동안 노동자들의 옥쇄파업으로 차량 생산이 중단되었었다.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경영진들의 무책임한 구조조정으로 인해 해고 통지를 받은 생산직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한 노조의 옥쇄파업으로 인해 생산이 완전이 멈춘 상태. 당시 그나마 팔리고 있는 차량은 각 영업소에서 보유 중이던 물건뿐이었고, 생산이 완전히 멈춘 상태이기 때문에 쌍용차 위기에 기름을 끼얹고 있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옥쇄 파업으로 인해 공장진입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최근에는 잔류가 확정된 직원들을 모아서 사측이 노조와 충돌시키고 있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내다볼 수 없는 상황. 섣불리 진압을 시도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공장 내의 도장공장 때문. 여기에서 사고가 터진다면 쌍용차는 그냥 망하는 길 이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완성차 생산공장이 평택공장 한 곳뿐이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뿐만 아니라 도장 공장이 폭발한다면 평택이란 도시의 상당부분이 지도에서 지워지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결국 노사간의 합의가 이뤄져서 파업은 중단되었지만 장기간의 파업으로 인하여 차량만 3천억 원 이상의 손실이 났고, 여기에 서비스, 판매망, 품질 관리, 이미지의 붕괴가 심각하여 채권단과 쌍용차가 노력을 해도 이전의 쌍용그룹 시절로의 회생은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석박사급 연구원의 연봉 및 처우가 생산직보다 떨어지는 사례가 많은 데다가[17][18] 회사의 비전에 대한 확신이 없어졌는지 연구진들의 대규모 이직까지 발생하고 있다(#). 거기다가 메르세데스-벤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파워트레인과 체어맨의 플랫폼은 수출과 원가에 장벽[19]이 되어 기술은 사오면 된다 식의 기술관(물론 벤츠기술을 받을 당시고 이전이고 기술개발할 자본이 없었고 소규모 회사 특성상 단가를 세게 쳐서 팔 수 있는 상품도 없었다...)과 공돌이 홀대의 결과를 보여주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렉스턴이 너무 우려먹는다고 탑기어 매거진의 기자 한 명이 이를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콘셉트카가 나오고 2017년 풀 체인지된 렉스턴이 출시됐다. 사골 렉스턴이 그 자리를 모하비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2010년 5월 뜬금없이 르노삼성자동차가 인수한다는 떡밥이 돌았으나 취소. 만약 실제로 인수되었으면 르노-닛산-미쓰비시-쌍용 얼라이언스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때 기술 유출의 주범인 상해기차는 국내에서 처벌도 받지 않고, 현재는 한국GM의 3대 주주가 되어 있는 상황인지라 한국GM 역시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는 중이다.상해기차를 죽입시다.상해기차는 쌍용차와 한국GM의 원수[20][21]

2.3. 마힌드라에 인수, 재기에 성공하다

결국 쌍용자동차 인수를 위한 입찰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인도 마힌드라 그룹에 매각되었다.

이런 난관을 겪고 있어서인지, 부품 수급 상태가 매우 나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 쌍용차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주력 모델인 액티언스포츠의 뒷쪽 테일램프가 깨졌는데, 단순히 교체만 하면 될 문제를 부품이 없어서 수리를 못 할 정도였다.

2010년 들어 생산이 거의 안정화되어 부품수급문제는 거의 해결된 상태라고 한다.

다만 2009년 파업 이후에도 대다수 노조원은 복귀하지 못했고, 다수의 희망퇴직과 강제해고로 인해 많은 이들이 실직했다. 그 이후 이듬해까지 해고노동자들의 자살이 계속 발생한 바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회사와 보험사 등지의 손배가압류 압력에 시달리고 블랙리스트로 인해 타 기업에 재취업마저 못했다. 다만 주류 언론에는 그다지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상 해고된 노동자들이 아직 복직되지 못한 상황에서 쌍용차에서 신규채용을 하겠다고 나선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 볼지 판단은 각자 알아서... 2018년 7월 기준으로 자살한 해고노동자는 33명이다.

2013년 1월 10일 쌍용자동차 노사가 무급휴직자 455명의 복직에 합의했다. 3월 1일 455명이 일괄 복직하며 회사의 경영이 좋아진다면 희망퇴직자 1900여 명과 해고자 200여 명 등 나머지 퇴직자들도 단계적 복직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모기업인 마힌드라 그룹에서 4~5년 이내로 9억 달러의 기술 개발 투자를 한다고 한다.

2013년 14만5649대를 판매해서 매출 3조4849억 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올렸다. 다만 영업손실은 89억 적자이지만 2011년 1412억 원 적자, 2012년 990억 적자를 보던 상황에서 매년 적자를 축소하여 2014년은 흑자 전환도 기대되며 경영이 정상화 되고 있다. 그리고 북미시장 진출을 고려해 회사명과 로고를 바꿀 예정이다.

2014년 2심 재판에서 법원은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11월에 대법원은 5년 전 정리해고에 대해 적법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4년여 후 양승태 사법농단 사건으로 KTX 여승무원 해직사건 판결 등과 함께 해당 판례가 재조명되었다.

노사 협상이 타결되어 2017년부터 해고자들을 단계적으로 복직한다고 하지만, 2018년 3월에 와서 사측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복직을 정상적으로 해주지 않고 있다. 평택공장 해고자를 포함한 노동자들은 매주 문화제 등을 열거나 회사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등 회사에 계속해서 항의를 했었다.

2015년 1월 티볼리 가솔린 모델을, 7월에는 디젤 및 4WD 모델을 출시했다. 이후 티볼리는 쌍용의 효자모델로 불리우며 재정을 어느정도 살리는데 한몫 했다. 디자인, 실내공간, 편의사항 등이 동급 대비 괜찮은 수준이기 때문인 듯 하다. 특히 실내는 탈 쌍용급. 가솔린과 디젤 모델간의 출시기간에 텀을 두어서 그런지 신차효과를 꽤 오래 본것으로 보인다.

2015년 전체로 보면 여전히 영업 적자지만, 2015년 4분기에 무려 8분기 만에 218억 흑자 전환했다. 15년 전체로는 내수 9만9664대, 수출 4만5100대(CKD 포함) 등 총 14만4764대를 판매해 매출 3조3901억 원, 영업손실 358억 원, 당기순손실 619억 원의 경영실적을 기록했다. 분기별 실적은 꾸준한 상승세를 나타냈다. 지난해 1분기 342억 원, 2분기 199억 원, 3분기 36억 원 등으로 점차 영업손실이 줄어들다 4분기에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영업손실 358억 원은 전년(769억 원)에 비해 53.45% 감소한 것이다.# 부채비율도 15년 3분기 177%로 낮은 등 전망이 나쁘지 않다.

십억

매출액

영업이익

순이익

부채비율

2012

2013

2014

2012

2013

2014

2012

2013

2014

2014

쌍용자동차

2,863

3,475

3,314

-99

-10

-77

-106

-3.8

-50

152%

12~14년 쌍용자동차의 경영실적.

2016년에는 티볼리의 대활약으로[22] 흑자전환을 맞이했다.

2017년 9월 판매량에서는 쉐보레와 르노삼성을 제치고 내수시장 3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

2018년에는 한국GM이 철수 논란으로 시끄러운 데다가 르노삼성자동차도 주춤하면서 다시 내수시장 3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2019년 8월까지는 내수시장 3위를 굳히고 있다가, 9월과 10월에 르노삼성에게 3위 자리를 내주었고, 벤츠가 쌍용차보다 잘 팔렸다!

9월 14일에 사측과 노조 양측이 해고노동자 119명 전원 원상복직에 합의하였다.

중국이 점점 몰락하고 인도가 새로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고 있기때문에 한동안은 걱정 안해도 된다. 효자차량이 사실상 없는 한국GM에 비해 렉스턴 스포츠와 티볼리로 선방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철수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떠는 GM과는 다르게 희망을 걸 만 하다.

그러나 2011년 이후 최대매출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최대적자폭 또한 같이 기록하면서 2017년 1분기부터 2019년 2분기 현재까지 10분기 연속 누적적자에 빠졌으며 위기가 닥쳤다. 이에 대해 처음 쌍용자동차는 R&D투자로 인한 경영정상화 과정에서의 적자라고 설명을 했으나 결국 2019년 8월, 임원 감축에 들어가면서 심각한 실적부족에 시달리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2019년 11월 현재, 전월인 10월의 자동차 판매량을 보면 기아의 셀토스가 7위, 현대의 코나가 12위 그리고 베뉴가 20위이며 쌍용의 효녀차역할을 해준 티볼리는 24위로 코란도(사실상 티볼리 확장판인 준중형)는 27위로 내려갔다. 이는 현대기아가 소형 suv시장을 밥집으로 공략하고 있는 셈. 더군다나 2020년에는 준중형suv에서 르노삼성이 XM3를, 한국지엠에서 트레일 블레이저를 생산하기로 함에 최초로 국내 완성차 5대 메이커가 같은 라인업에서 겨루는 판이 왔다. 쌍용입장에서 변혁을 꾀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3. 지배구조

2019년 6월 기준

주주명

지분율

마힌드라

74.65%

우리사주조합

0.57%

4. 역대 임원

  • 이사회 의장
    • 파완 고엔카 (2011~ )
  • 대표이사 회장
    • 하동환 (1979~1986)
    • 김석원 (1986~1993)
    • 김석준 (1993~1995)
    • 이주범 (1995~1996)
  • 부회장
    • 정기영 (1982~1984)
    • 김동호 (1984~1986)
    • 이유일 (2015~2017)
  • 대표이사 사장
    • 하동환 (1962~1979)
    • 정기영 (1979~1982)
    • 김동호 (1982~1984)
    • 장두섭 (1984~1985)
    • 최병항 (1986~1987)
    • 손명원[23] (1987~1993/1995~1997)
    • 차형동 (1993~1995)
    • 이종규 (1997~1998)
    • 박동규 (1998)
    • 최계용 (1998~1999)
    • 소진관 (1999~2005)
    • 최형탁 (2005~2009)
    • 이유일 (2011~2015)
    • 최종식 (2015~2019)
    • 예병태 (2019~ )
  • 대표이사 수석부사장
    • 장하이타오 (2006~2009)
  • 대표이사 전무
    • 이종규 (1985~1986)
  • 대표이사
    • 장쯔웨이 (2005~2006)
    • 필립 머터프 (2006~2007)
    • 란칭송 (2007~2009)
    • 이유일, 박영태 (2010~2011)
  • 법정관리인
    • 이유일, 박영태 (2009~2010)

5. 디자인

6. 모터스포츠

다카르 랠리와 연관이 깊다.

1994년 코란도 훼미리를 개조하여 처음으로 파리-다카르 랠리에 출전해서 8위를 하였다. 이에 고무되어 1995년 무쏘 가솔린3.2를 2대 개조하여 다시 파리-다카르 랠리에 출전하여 각가 8위/34위를 하였고, 1996년에는 한국인 드라이버로 김한봉, 김태옥 선수가 참여하였다.

2009년에는 카이런으로 다카르랠리에 재도전하였다. 이때는 코스가 아르헨티나-칠레였는데, 드라이버는 스페인 출신의 이시드레 에스테베라는 사람이었다.그는 척추부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투혼을 발휘해 완주에 성공했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참조

2017년 11월 21일에 공식으로 2018년 다카르 랠리 출전을 발표했다. 완전개조 부문으로 티볼리의 외형을 갖춘 티볼리DKR 경주차를 선보였으며 오스카 푸에르테스 선수가 운전대를 잡는다.

사실 오프로드 레이스에서 무쏘의 활약 때문에 온로드 레이스에서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1996년에는 르망24시에 LMP2 클래스로 출전하였다. 그거 소문 아니었어!!? 쌍용이 소유한 팬더의 미드십 스포츠카인 솔로의 브랜드를 활용해 솔로 르망 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사양은 엔진은 M111 4기통 2.0(무쏘 2.0 DOHC에 사용된 가솔린 엔진)을 기반으로 가레트 터보를 장착했고, 샤시는 프랑스 업체 Welter Racing[24]에서 알루미늄 모노코크로 제작하였다. 초록색과 백색의 리버리에 쌍용과 세아제강 스폰서가 붙었었다. 르망에서의 레이스 성적은 아쉽게도 예선 주행이 전부. 주행 중 자갈이 흡기로 유입되어 터보차져가 손상되는 바람에 완주에는 실패했다. 예선에서 31등을 하였으며 랩타임은 3분 59초 491. 최고속도는 329.004km/h를 기록하였다. 이후 Coupes d'Automne Automobile Club de l'Ouest에 출전하였으나 3등으로 본선진출을 하고도 완주하지는 못하였다. 이듬해 1997년에 서울모터쇼에 전시되었다. 현재는 용인의 튜닝샵이자 레이싱팀 사장님이 소유중에 있다. 오버부스트 창고안 2층에 그냥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는것 같지만, 나름 가장 아끼는 컬렉션 이라고...

7. 엔진 목록

7.1. 생산 중인 엔진 목록

7.2. 단종된 엔진 목록

8. 생산 중인 차량

쌍용차는 SUV만 생산하고 있고 세단의 경우 쌍용 체어맨만 유일하게 생산했었으나, 2017년 체어맨의 생산 중단 이후로는 더 이상 세단 형태의 차종을 생산하고 있지 않다.[25] 한국의 랜드로버 모회사가 인도계인거랑 품질이 그저 그런 것도 둘이 독같다

8.1. SUV

8.2. 픽업트럭

9. 단종된 차량

9.1. 세단

9.2. SUV

9.3. RV

9.4. 승합차

9.5. 픽업트럭

9.6. 스포츠카

9.7. 버스/트럭

10. 베이퍼웨어

90년대의 쌍용자동차는 경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RV준대형/대형세단 시장을 공략하였으며 개발하고 있었던 프로젝트들은 양산시기를 늦추고 있었지만, 1997년 쌍용그룹의 경영난과 대우자동차의 인수로 라인업에 중복되는 프로젝트들의 개발은 중단된다. 이후 상하이자동차로 인수되었을때도 기술 먹튀 사건 및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의 여파로 여러 프로젝트들이 취소되었다.

11. 기타

메르세데스-벤츠와 관계가 각별(?)하다. 1990년대 초반에도 르노볼보한테도 못 받은 기술제휴를[49] 메르세데스-벤츠에게 받은 것부터 시작해서, 전 라인업에 벤츠엔진 도배도 모자라 상용차까지 벤츠 계열 차종으로 도배를 하기도 했었고... 체어맨W 출시 당시에는 심지어 구형도 아니고 당시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쓰고 있던 7단 자동변속기와 W220 S클래스에 장착되었던 306마력 V8 5,000cc SOHC 엔진을 장착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벤츠의 개도국 수출차량(대표적으로 쌍용 이스타나) 생산을 쌍용이 대행해 주는 등의 이해관계는 있지만, 쌍용에게 엄청나게 잘 해 주고 있음은 틀림없다.(...) 이런 관계 때문인지 쌍용 위기 당시에는 벤츠에서 인수한다는 소문이 잠시 돌기도 했었다. Mercedes-SsangYong 만약에 진짜로 인수됐으면 벤츠는 자기네 기술력이 듬뿍 들어갔는데 국산차로 표기되는 차를 생산하는 상황 현대&기아, BMW, 아우디:!!?

뉴 렉스턴 개발 시기에도, 쌍용에서 당시 M클래스(ML270)에 올라가던 5기통 2.7리터 커먼레일 디젤 엔진을 요구했으나 차마 거기까지는 대주고 싶지 않았는지(...) 제공을 거부했으나, 이후 쌍용에서 벤츠 은퇴 엔지니어들을 모아 엔진개발을 시작하자 막으려면 막을 수는 있었으나 그냥 눈감아 주었다는 카더라도 존재한다. 이 결과로 나온 엔진이 XDI270.[50]

체어맨W는 W220과 W124에 사용하던 구식 엔진과 변속기를 아직도 사용한다. 자체 파워트레인 개발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메이커의 한계라고 보아야할 듯. 2016년 현재는 자체 개발한 4기통 가솔린엔진과 XDi 엔진에 주력한다.

G4렉스턴의 코드네임 Y400을 벤츠 연구소에서 테스트한 것을 보면, 아직도 벤츠와 상당부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심지어는 한때 구형 벤츠 오너들이 고장나면 벤츠 서비스센터로 안가고 쌍용 서비스센터에서 수리받았다고 할 정도면...말 다했다.

현재 쌍용차의 주주인 마힌드라도 쌍용차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상하이자동차처럼 개발비를 80%만 주는 게 현실 개발비를 팍팍 주는 정도는 아니지만, 마힌드라 측에서는 쌍용자동차 주주 배당금을 가져가지 않고 개발비로 쓰라고 다시 돌려주는 식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보디온 프레임 타입의 장점, 혹은 벤츠 플랫폼의 안전도를 내세우면서, 정작 안전장비에는 매우 인색하다. 구형 W124의 차대를 그대로 가져다 조금 개량하여 쓰는 체어맨 H나 코란도 투리스모는, 바디의 필러 구조체를 쌍용이 개발해낸 것이 아닌 관계로, 변형이 어려워서 커튼 에어백을 장착할 수 없으니 그렇다 치지만, 어퍼바디를 쌍용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렉스턴[51]이나 코란도 스포츠는 개선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커튼 에어백이 없다.

더 큰 문제는 2012년식 이후에는 전차종에 모든 에어백을 다 장착해 줬었으나, 2년도 안 되어 상품기획부에서 대체 무슨 생각인지, 체어맨W와 렉스턴W, 그리고 코란도 스포츠를 제외하고는 2014년부터 슬그머니 사이드 에어백이나 혹은 사이드&커튼 에어백, 무릎 에어백을 선택사양으로 변경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경차 깡통조차도 풀 에어백이 장착되는 지금 이 시대에도 말이다. 심지어 고급차라는 체어맨 H조차 커튼 에어백도 없는 주제에 2014년도에 갑자기 기본형 트림의 사이드 에어백을 선택 사양으로(...) 바꾸어 놓았다. 또 하나, 2010년 이전인 2006년부터도 경쟁사들은 비록 일부 차종에 일부 트림에 한해서지만, 유아용 안전시트 고정걸쇠인 ISOFIX를 선보였으나, 쌍용은 2010년에 의무화가 되고 나서야 체어맨W에 ISOFIX를 처음 달아줬다.

영국의 소비자 만족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구형 커먼레일 디젤 엔진 모델들의 3, 4번 인젝터가 심하게 고착되는 문제가 있다. 특히 가장 안쪽에 있는 4번은... 인젝터 고착 1고착 2고착 3 엔진 안쪽까지 냉각이 제대로 되지 못하여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즉, 설계 미스로 인한 문제. 같은 엔진을 사용한 구형 벤츠 모델들도 문제가 있는지, 최근의 차량들은 문제가 없는지 추가 바람

차량의 방청 처리가 전반적으로 부실한 것이 흠이다. 4, 5년 지난 쌍용차 중 녹이 옆면 전체로 번진 경우도 심심찮게 보이는 듯. 이 부분은 티볼리에 와서 개선되었는지는 몇 년 후에 알 수 있을 일이다.

오토뷰에서는 쌍용 티볼리의 스티어링 감각이 현대기아차 MDPS 수준 이하로 열악함을 지적하였다.[52] 아무래도 디자인만으로도 국내 시장에서는 잘 팔릴 수 있기 때문에 쌍용차나 현대자동차그룹 모두 이 부분에 대해 크게 신경 안 쓰는 듯.[53] 코란도 스포츠가 유압식 파워스티어링을 사용함에도 핸들링에서 욕을 먹는 걸 보면 현대보다도 답이 없는 것 같지만...

쉐보레같이 자동변속기 문제로 한동안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SUV에 호주의 BTRA에서 만든 유닛을 썼는데, 이게 참 말이 많았다. BTRA의 경영난 이후 현재는 주로 벤츠나 아이신의 유닛으로 대체 중. 수동변속기현대위아에서 만든 유닛을 이용 중이다. 쌍용은 BTRA 미션을 제외하면 엔진, 미션 등의 파워트레인 문제로 논란이 된 적은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SUV 전문 메이커인만큼, 프레임 보디 차량의 장점이라고 오프로드 성능을 내세운다. 그러나 정작 차량 옵션 중에 오프로드에 걸맞는 기능에 대해서는 현대기아차보다 인색하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렉스턴2의 AWD옵션의 경우 도심형 준중형 SUV에도 달려있는 전후륜 구동력 고정조차 없었으며 그외 연식에 따라 1세대 기아 쏘렌토와 모하비에 기본 적용되던 LSD나 LD 같이 험로 탈출에 도움을 주는 장비를 제공하지 않는 시기도 있었다. 이러한 비판점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오프로드에 최적화 됐다면서 프레임바디에 리지드 액슬 서스펜션을 단 G4렉스턴은 옵션으로조차 험로 주파 보조장비가 옵션으로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현재는 연식변경으로 리지드 액슬을 전부 멀티링크로 바꿔버린 상황이다. 다행히 렉스턴 스포츠에는 후륜 LD옵션이 추가되기는 했으나 쌍용차의 SUV 중 오프로드 옵션이 존재하는 모델은 렉스턴 스포츠 단 한종 뿐이다. LD는 스타렉스 4WD에도 2017년형부터 기본장착되는 옵션이다. 코란도와 티볼리의 경우 판매량의 대부분이 전륜구동이며 사륜구동 모델에도 구동력 제어 프로그램은 전무하다.

비록 외국계 자본의 영향을 받는 기업이지만 르노삼성자동차한국GM과 달리 대한민국에 판매하는 모든 모델은 철저히 국내생산을 고수하고 있으며[54] 부품들도 파워트레인의 일부 부품을 제외하면 대부분을 대한민국의 회사에서 납품받는다. 생산 차량 라인업 또한 마힌드라와 쌍용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으며[55], 수출 시에도 쌍용차들은 마힌드라 브랜드가 아닌 쌍용 브랜드로 수출된다. 마힌드라 측에서는 지배는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경영 원칙으로 쌍용자동차의 경영 독자성을 보장하고 있으며 르노삼성자동차한국GM과 달리 쌍용자동차는 경영에 있어서는 모기업과 따로 구분되어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경영 원칙으로 한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뻔 했었던 쌍용자동차가 기적같이 부활할 수 있었다.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2018년 현재 기준으로 외국계 자본에 넘어간 국내 자동차 제조사 중에서는 그나마 상황이 나아 보인다.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쌍용자동차가 상하이자동차에 인수되었던 시절과 비교했을시, 마힌드라는 쌍용자동차에게 꽤나 잘 해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마힌드라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해서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으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정도로 마힌드라 인수 당시 쌍용자동차 상황은 풍전등화 수준이었는데, 마힌드라에 인수된 이후에 기적적으로 기업의 정상화가 이루어지고 티볼리와 렉스턴 스포츠의 대성공으로 내수 3위에도 오르는등 가시적인 실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

모기업이 주주 배당금을 그다지 챙기지 않고 투자 명목으로 다시 돌려주는것도 그렇고, 지배는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경영원칙도 그렇고 어찌보면 회사가 사립학교 법인과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듯 하다.

쌍용자동차는 차량의 트림명에 차량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티볼리는 TX(티), VX(볼), LX(리) 이렇게 앞글자를 떼어서 붙였으며 코란도 C도 마찬가지로 KX, RX, DX 이런 식으로 코란도 각각의 앞글자를 떼어서 붙였다. 코란도 투리스모는 투리스모에서 따와서 TX와 RX로 구분되어 있으며 체어맨은 CM을 붙인다.

책 <유쾌한 심리학>에 쌍용자동차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이러하다.

레미콘 사업을 하려던 고객이 부지 등은 문제가 없었으나, 레미콘 트럭의 비용이 문제였다. 고객은 쌍용자동차에 전화를 걸으니 별안간 영업사원이 전화번호를 묻고는 전화를 끊어달라 하였다고 한다. 끊기가 무섭게 사원에게서 전화가 오는데 전화를 받고나서 의아한 고객이 사원에게 이런 행동을 한 이유를 물으니 회사에 용무가 있어 전화를 했을텐데 비싼 시외전화 비용을 고객에게 부담 시킬수가 없어서 자신의 전화기로 전화를 했다고 한다. 트럭 비용을 걱정하던 고객은 그 말을 듣자마자 트럭 16대를 즉석 구매했다고 한다.

로고의 경우 앞에도 설명돼있지만 해외용이 따로 있다. 오펠과 혼동하는 걸 막기 위해서인데 왠지는 알 수 없지만 국내에서 판매되는 차량에도 심심찮게 다는 걸 볼 수 있다. 실제로 렉스턴 W나 코란도 스포츠의 경우 2014년에 창사 60주년 이벤트모델로 윙 로고를 적용시켜주기도 했으며 티볼리 아머는 아예 쓰리 서클 로고와 윙 로고 중 선택할 수 있다. 또한 G4 렉스턴과 렉스턴 스포츠는 과거 체어맨에 쓰던 로고를 사용중이다.

2018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픽업트럭을 만드는 회사지만 의외로 회사 연혁을 따라가보면 픽업트럭에 잔뼈가 굵은 회사다. 2002년 9월에 무쏘 스포츠가 나오기 까지 17년간의 공백이 있었으나 1971년 9월 부터 1985년 2월 까지 생산된 지프/코란도 픽업 까지 거슬러 올라가고(쌍용자동차 측에서는 공식적으로는 1974년 10월 이후 연혁만 포함이지만), 1971년 9월에 나온 지프 픽업이 1968년 2월 부터 1971년 2월 까지 신진자동차 시절에 생산된 랜드크루저 픽업[56]의 후속 개념으로 나왔다는걸 감안하면 비공식적으로는 50년전인 1968년 2월 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신진자동차와 별개로 하동환자동차 시절인 1963년에 새나라자동차의 뒷부분을 잘라내서 생산한(아마도 닛산 블루버드 픽업을 라이센스 생산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역사상 두번째의 국산 픽업인 HDH 픽업 까지도 거슬러가면 픽업트럭에서만 근 55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국내에서 현존하는 자동차 제조사중에서는 가장 오래전부터 픽업트럭을 생산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전에도 1957년에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픽업트럭인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의 시발 픽업트럭이 있으나 이쪽은 단 2대만 만들어졌고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는 아주 오래전에 사라져서 지금은 현존하지 않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1985년 2월 코란도 픽업 단종 이후~2002년 9월 무쏘 스포츠 등장 까지의 사이에도 싱글캡 형태의 무쏘 픽업을 1997년에 개발하여 공개 하기도 했으나 프로토타입만 만들고 1997년 외환 위기로 쌍용자동차 뿐만 아니라 쌍용그룹 전체가 무너지면서 양산이 물거품이 된 적도 있었다.

참고로 2018년 현재 뉴질랜드 시장에서는 자기들을 법정관리 상태로 내몰았던 상해기차의 자회사인 맥서스[57]의 차량의 광고가 유튜브에서 쌍용차를 통해 진행되기도 했다.

차갤러들의 애칭은 짱용 내지 썩차. 더럽게 구식이면서 더럽게 튼튼해서 더럽게 잘 굴러간다나 뭐라나... 심지어 차갤 내에서 60만 달성한 무쏘나 액티언 소유자도 있는 마당이다.

작명 수준이 국산차 브랜드 중에서 가장 촌스럽다는 특징이 있다(...). 차명 작명은 괜찮은 편이지만 그놈의 신차 마케팅용으로 붙이는 부수적인 명칭이 문제. 특히 뷰티풀 코란도라던가, 베리 뉴 티볼리, G4 렉스턴이 주 놀림거리.[58] 이 특징이 과거 체어맨 카이저부터 이어져 왔기에 역사도 긴 편. 수입, 국산 가리지 않고 흔히 쓰는 '올 뉴', '더 뉴'를 조금 더 독특하게 변형한 것이지만 다른 브랜드가 굳이 저 명칭을 쓰는 이유가 다 있는법(...) 촌스러움의 감이 안온다면 베리 뉴 레인지로버라던가 뷰티풀 벤테이가라던가 G4 에스컬레이드라고 이름을 상상해보자.

차량 등급 트림명 선정도 영 이상하기로 유명한데 타 브랜드는 차종에 관계없이 옵션 등급별 명칭은 동일하게 해서 혼동의 여지를 최소화 했지만[59] 쌍용은 차종별로 트림명이 전부 다른데, 쌍용 티볼리의 경우 V1~V7까지 알파벳 + 숫자 조합이라는 등급파악이 쉬운 트림 명을 사용하지만, 쌍용 코란도는 샤이니, 딜라이트, 판타스틱이라는 영 촌티나는(...) 영어 트림명을 사용하다가 2020년형을 출시하면서 자사의 하위 차종인 쌍용 티볼리와 같이 C3~C7까지 알파벳 + 숫자 조합이라는 등급파악이 쉬운 트림 명으로 변경하여 사용하고, 기함인 G4 렉스턴의 경우 럭셔리, 마제스티, 헤리티지를, 픽업트럭인 렉스턴 스포츠의 경우 와일드, 프레스티지, 노블레스를 사용하는 등 차종마다 연관성없이 트림명이 다른 유일한 국산 브랜드다.

12. 둘러보기

쌍용자동차의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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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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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액티언, 카이런, 렉스턴, 로디우스

2010년대

티볼리, 코란도C, 코란도 투리스모, 코란도 스포츠,
렉스턴 스포츠

갈색 글씨 - 단종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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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의 국내시판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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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로고의 뜻은 무한한 우주공간 속에 쌍용자동차의 경영 철학인 선도경영, 열린경영, 정동경영을 3개의 원으로 나타냈다. 전체적으로는 무한 도전과 개척 정신으로 인간과 자연, 기술이 조화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류 사회가 추구하는 미래가치를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2. [2] 외국용 로고는 체어맨 초기형의 후드탑 마크 로고를 그대로 채용한 것이다. 국내용 로고가 오펠의 마크와 비슷하게 생겨서 혼동될 소지를 막기 위해 외국용 로고를 따로 만들었다. 실제로 오펠에게 소송 걸려서 패소하여 사용금지 판결을 받은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도 60주년 기념 모델에 이 엠블럼을 달고 잠시 판매했었다. 현재도 티볼리 아머에서도 옵션으로 선택 가능하다.
  3. [3] 윙 로고를 수출용 전체로 사용하게 되면서 체어맨은 별도의 전용 로고를 만들었으며, 체어맨 단종 이후에는 G4 렉스턴렉스턴 스포츠에서 사용중이다.
  4. [4] 1990년대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 기술제휴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제휴선의 관습을 따르지 않은 특이한 케이스. 무쏘 개발 당시 국산 자동차 제조사들 중 대우자동차를 제외한 대다수가 주유구를 왼쪽에 두고 있어 이를 따르면서 그 관습이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거에 생산된 코란도 1세대와 코란도 훼미리는 연료 주입구가 오른쪽에 있었다.
  5. [5] 한원그룹 창업주 및 한원미술관 설립자. 그가 출범시킨 그룹 명칭도 자신의 호에서 나왔다. 2018년 5월 27일 숙환으로 타계.
  6. [6] 당시 행정구역상 영등포구 관할로 지금의 구로공구상가 자리이다. 평택 공장 준공 이후에도 구로 공장은 바로 폐쇄되지 않고 단계적으로 생산 시설을 이전해 1985년에 이르러서야 평택공장 이전이 완료되었다.
  7. [7] 이 두 차종은 본래는 본네트형 프런트엔진 버스 새시로 개발되었으나 이후 캡 오버 형태로도 나왔다. # 토요타 이름을 달고 나온 마지막 중형급 이상의 버스 새시 중에 하나로 1967년 토요타가 히노를 인수하면서 그 이후로 중형급 이상 버스는 히노자동차로 일원화 하였다.
  8. [8] 옛 신진지프자동차, 지금 한국GM의 전신인 신진자동차미국 AMC가 합작해서 설립한 신진지프자동차가 실적 부진으로 인해 AMC가 지분을 철수하고, 지분 철수를 계기로 리비아에 디젤 지프 차량을 수출하는 바람에 남겨 놓은 지프 브랜드까지도 철수를 시작하면서 상호를 신진자동차로 했다가, 거화로 변경했다. 참고로 그동안 쌍용그룹의 거화 인수 시기가 1980년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1986년이다. 거화는 1984년 연말에 흑자 도산했는데, 그 뒷배경에는 부자 간의 경영권 다툼이 있어서 당시 상당히 씁쓸해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1980년은 신진지프가 신진자동차를 거쳐 거화로 상호를 변경했다.
  9. [9] 거화는 신진그룹의 마지막 후신인데, 하동환자동차가 1967년부터 1975년까지 신진자동차 자회사로 편입되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10년만에 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10. [10] 현재 거화의 부산 공장부지에는 럭키 주례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11. [11] 이때 자회사 동성개발(현 심팩)도 세트로 인수됨. 반면 전 사주 하동환은 동아정기만 지켜 '한원그룹'을 출범시켰다.
  12. [12] 현 쌍용양회. 유동성 위기로 최대 주주가 김석원에서 일본 태평양시멘트로 변경되었다가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매각되었다. 시멘트 분야에서 아직도 국내 1위
  13. [13] 현 쌍용제지. 한국P&G에 인수되고 화장지 부문을 2005년에 주식회사 모나리자로 매각, 나머지는 후에 DK 코리아(50%)와 소프크뱅크벤처스(49.9%)가 인수한다. 현재는 원래의 본업이었던 지류 제조 및 판매를 중단하고 원목 수출입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14. [14] S-OIL 문서 참조.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자회사이다.
  15. [15] 사실 대우가 쌍용차를 인수했던 이유가 쌍용차를 담보로 대출을 할 수 있어서였다. 대우는 쌍용차를 인수한 후 쌍용차의 모든 설비를 담보로 대출을 했고, 그 돈들은 대우그룹 회장이 필리핀으로 도주 할 때 전부 들고 가 버렸다. 대우가 망하고 쌍용차가 다시 경매로 나왔지만 설비에 모두 담보가 걸린 탓에 어느 기업도 인수하려 하지 않았고. 그나마 상해기차가 인수를 했지만....이후는 아래에 서술.
  16. [16] 모든 기업은 당연히 노조가 강경한 기업을 인수하기를 꺼린다. 따라서 기업을 매각하기 전에 정리해고를 시행하고 노조를 와해시키면 매각이 수월해지는 면이 있다.
  17. [17] 8시간 기본 작업에 잔업까지 하면서 얻은 폭풍임금이라는 항변이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이공계 연구직에게 월화수목금금금과 철야 따위는 기본인 경우가 대다수인 데다 업무에 필요한 지식이나 능력의 희소성을 고려한다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처사라 할 수 있다. 사실 출퇴근시간을 기록해 수당계산하는 건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몸쓰는 생산직에나 해당되는 일이고 연구개발직은 그냥 갈려나가는 게 디폴트값이었다.
  18. [18]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 당시 쌍용자동차 현금 동원력이 2008년에는 680억 원으로 2006년 2600억의 1/5가량으로 시작하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다. 당시 상하이 자동차는 3300억 원의 자금을 이미 확보한지 오래인 상황. 게다가 저 680억 원은 쌍용자동차의 구매 월 재료비 40%에 불과하다. 노동자가 놀고먹었다기에는 상하이차의 투자 계획이 애시당초 없었다는 점이 더 크다. 게다가 조립 품질은 국내 완성차 중 최하 수준이었다.
  19. [19] 벤츠제 파워트레인 덕분에 벤츠와 경쟁할 수 있는 지역에는 수출하기 힘들며 엔진과 변속기를 구입할 때 벤츠에 이득을 붙여줘야 하니 당연히 자체 개발 엔진보다 원가가 비싸진다. 거기다 벤츠가 최신형 엔진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이미 타사와의 기술격차가 줄어들어 벤츠 구형 엔진(요즘은 그나마 신형 엔진과 플랫폼을 가져와서 쓴다. 기술개발 제한이 끝난 체어맨H용 엔진은 쌍용 자체에서 개량해 쓰고 있다.)이 타사 엔진에 비해 주는 이점은 크지 않다.
  20. [20] 물론,한국GM제너럴 모터스 본사의 메리 바라와 같은 경영진의 적반하장식 마인드가 더 심한 편이다...
  21. [21] 그리고 상해기차도 GM과 합작하여 상하이GM(중국명 上海通用)을 세우고 쉐보레, 뷰익 브랜드로 중국에 진출하였으며, 바오준은 상해기차가 아닌 상하이GM 소속이라 GM이나 한국GM이 개발한 플랫폼으로 차를 생산하여 개도국 시장에 쉐보레 브랜드로 바오준 브랜드의 차를 팔고 있다.
  22. [22] 티볼리는 트랙스가 없는 4륜구동도 있어 4륜구동을 원하던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켰다. 실질적인 경쟁차 코나는 2017년에서야 나왔다. 그나마도 코나 디젤은 2020년형 이전까지는 4륜 선택 불가.
  23. [23] 손원일 제독의 장남.
  24. [24] WR LM 샤시를 제작하는 회사. 쌍용의 경우 WR LM96 샤시를 사용
  25. [25] 아예 세단을 안 만들겠다고 선언함과 동시에 쌍용자동차가 대한민국의 SUV 전문 회사임을 밝혔다.
  26. [26] 코란도 C에서 다시 코란도로 회귀하였다. 하지만 기존의 준중형 라인업은 유지한다.
  27. [27] 국내에서는 G4 렉스턴만 판매하고 있으며 그 이전의 차량들은 수출용으로만 소량 판매하고 있다.
  28. [28] 쌍용차 사태로 인해 개발이 취소되었다. 그래서 당시 거의 다 만든 프레임과 직렬 6기통 XDI 320엔진이 통으로 날라갔다!
  29. [29] AMC Jeep CJ-5/7 베이스.
  30. [30] 이스즈 빅혼/트루퍼 베이스. 참고로 거화 최후의 프로젝트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차의 프레임을 2018년코란도 스포츠가 단종 될 때 까지 사용하다가, G4 렉스턴렉스턴 스포츠 &amp; 렉스턴 스포츠 칸의 프레임을 개발하면서 대체되었다.
  31. [31] 수출용만 생산
  32. [32] 수출용만 생산
  33. [33] 코란도 스포츠의 앞부분을 이어붙여서 판매중이다.
  34. [34] 2018년 1월 페이스리프트 모델
  35. [35] 벤츠 W124 플랫폼 즉 체어맨 1세대 플랫폼 기반의 미니밴으로 페이스리프트 되어 코란도 투리스모로 판매되고 있다가, 2019년 7월에 단종되었다.
  36. [36] 2018년 1월 렉스턴 스포츠 출시 이후 해외수출용으로만 생산된다.
  37. [37] 2011년 12월 페이스리프트 되어 2017년 12월까지 코란도 스포츠로 판매하였다.
  38. [38] AMC Jeep CJ-5/7 베이스의 픽업트럭.
  39. [39] 쌍용 에어로버스의 전신이 되는 모델이다.
  40. [40] 닛산 디젤의 RA51과 후지중공업의 3B 버스 차체를 베이스로 어레인지 해서 만든 모델로, 현대 에어로버스와는 별개이다. HA60, DA시리즈, SB시리즈까지를 통칭한다.
  41. [41] SB33/66 버스의 후속모델. 벤츠의 O404버스를 개량/현지화하여 출시.
  42. [42] 모델별로 베이스 차종이 다르다. DA10, DA20은 닛산디젤 C-시리즈(1971~1979) 베이스, DA30/DA50은 C-시리즈의 후속인 닛산디젤 레조나(Resona, 1979~1990) 베이스이다. 참고로 레조나의 후속으로는 빅 썸(Big Thumb)이라는 트럭이 출시되었는데, 1994년 삼성상용차가 SM510/SM530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하여 국내에 판매하였다. 이중에서 DA10 트랙터는 1978년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산된 트랙터였다.
  43. [43] 대한민국 소방청(당시 내무부 소방국)에 펌프차, 물탱크차, 구조공작차로 공급되었다.
  44. [44] DA트럭의 후속 모델. 벤츠의 SK트럭을 개량/현지화하여 출시.
  45. [45] 1996년 개발에 착수하여 1997년 서울 모터쇼에 소개되었던 차종. 무쏘 스포츠가 더블캡인것과 달리 이 차종은 싱글캡이었고 1997년에 출시 예정이었으나 회사의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양산에 이르지는 못하고 프로토타입만 소수 제작되었다. 이 차량에서 얻은 데이터를 기초로 2002년에 무쏘 스포츠가 나오게 된다.
  46. [46] Military Jeep, 군수형 코란도. 하지만 군용차 후보에서 탈락되어 대신 당시 경쟁 모델이 군수용으로 활약중이다.
  47. [47] 아반떼급 전륜구동 준중형차 프로젝트로 실제로도 개발은 완료되었으나, 로위 350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만 생산, 출시되었고, 이 차의 국내 사양(B100)의 출시도 상하이자동차가 약속했었으나 상하이자동차의 먹튀로 국내 생산 및 출시는 무산되었다. 쌍용자동차가 개발한 차 인데도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생산은 커녕 쌍용자동차 명의로도 내지 못했었다. 이 차를 개발하느라 쌍용자동차의 다른 프로젝트들이 취소되었고 이는 쌍용자동차 사태의 원인중 하나가 되었다.
  48. [48] 2000년대 후반에 개발이 진행중이었고 이 차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XDI 320엔진은 개발 완료되었으나 쌍용자동차 사태의 여파로 프레임이 개발중이던 단계에서 무산 되었다.
  49. [49] 그 이전인 1980년대 동아자동차 시절에는 하동환 회장에 의해 이스즈와 기술제휴를 맺기도 했고, 후지중공업과 계약을 해서 스바루 레오네 승용차 모델을 도입하기 직전까지도 갔지만, 쌍용그룹이 동아자동차를 인수하면서 김석원 회장이 일본 자동차업체와는 기술 제휴를 안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이스즈, 후지중공업과의 기술제휴 계약을 취소했다고 한다. 르노와 볼보의 경우는 기술제휴 계약 협상을 하였으나 쌍용자동차가 예상했던 것 보다 로열티를 더 많이 부르는 바람에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한다. 특히 르노의 경우는 쌍용자동차의 경쟁사였던 현대, 기아, 대우 자동차의 로비로 정부로 하여금 기술도입 계약 허가를 반려하게 만들었기도 하였고, 볼보의 경우는 기술제휴를 하는 조건으로 쌍용자동차에다가 경영참여를 요구하기도 하였는데 쌍용자동차의 전신 중에 하나였던 신진지프자동차 시절에 합작선이자 기술제휴선인 AMC의 노골적인 경영간섭 및 경영권 분쟁이라는 크나큰 트라우마가 있었던 만큼 쌍용자동차 입장에서는 이러한 조건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50. [50] 사실... 따지고 보면 5기통이라는 것에서부터 보이는 사실이지만 OM602, 662계열 엔진에 개량을 가하고 커먼레일 시스템을 올린 정도의 엔진이다. 하지만 구닥다리라도 베이스가 괜찮은 엔진이라선지 배기량은 살짝 줄었음에도 초기형이 170마력으로 출력은 80마력 가까이 차이가 난다. 나중엔 176마력을 거쳐 191마력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DPF 때문에 185마력이 되었다. 원본 엔진과 물경 100마력 가까이, 출력은 2배 이상 차이가 나는(원본인 OM662 논터보 엔진은 스펙상 95마력. 터보엔진은 120마력이다.) 마개조를 하기도 했다.
  51. [51] 신형인 G4렉스턴엔 장착되었다.
  52. [52] 오죽했으면 "현대기아가 차를 잘만들고 있었다는 걸 알게 해줬다"고 평할 정도.
  53. [53] 어차피 쌍용도 현대차의 친척 회사인 만도에서 C-EPS 유닛을 사다 쓴다. 즉 티볼리, 코란도C의 EPS와 현대기아 MDPS는 근본적으로 같은 물건이다.
  54. [54] 삼성이나 쉐보레는 일부 수입하는 모델이 있다. 특히 쉐보레는 점점 국내생산 비중을 줄이고 수입의 비중을 높이는 중이다.
  55. [55] 단 마힌드라 홈페이지에 쌍용 모델들이 소개되어 있기는 하다. 물론 쌍용 이름으로.
  56. [56]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그나마 대량양산에 가까웠던 픽업트럭이었다. 그 이전에는 소량 생산에 그치는 수준에 불과했다.
  57. [57] 영국이나 호주 등의 시장에서는 LDV라는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다.
  58. [58] 특히 G4 렉스턴의 경우 뜬금없이 붙는 G4라는 네이밍이 딱히 와닿지 않는 건 둘째치고, 한국에서의 발음이 영락없이 이것인지라 놀림 받는 중.
  59. [59] 쉐보레는 차종에 관계없이 LS, LT라는 큰 틀로 분리되며 현대자동차는 스마트, 모던, 프리미엄을 기초로 차급에 따라 하위트림 혹은 상위트림 한두가지를 추가한 수준이며, 기아자동차도 현대와 비슷하게 럭셔리, 프레스티지, 노블레스를 기초로 몇가지 트림을 추가하는 수준이다. 르노삼성자동차 또한 PE, SE, LE, RE로 클래식 등급만 존재하는 SM5를 제외하면 전 차종이 동일하게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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