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공화국

  '아일랜드 공화국'이라고도 불리는 현대 독립국 아일랜드에 대한 내용은 아일랜드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
History of the United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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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공화국
Saorstát Éireann / Poblacht na hÉireann
Irish Republic

국기

1919년 ~ 1922년

위치

서유럽

수도

더블린

정치 체제

공화국, 의원내각제

언어

아일랜드어, 영어

종교

가톨릭

민족

아일랜드인

성립 이전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멸망 이후

아일랜드 자유국

1. 개요
2. 역사
2.1. 독립 선언
2.2. 독립 전쟁
2.3. 자유국 수립
3. 체제
4. 의의

1. 개요

1919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선포된 아일랜드 섬의 공화국. 명목상의 영토는 아일랜드 섬 전역이었지만 당시 아일랜드 대부분의 지역은 영국이 통제하고 있어 제대로 된 국가 체제로 기능하지는 못했고 국제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기에 미승인국이었다.

2. 역사

2.1. 독립 선언

1910년대에 내셔널리즘이 고조되자 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이 조직되어 영국에 대한 독립 운동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1916년의 부활절 봉기는 실패했지만 IRA는 영국의 요인 살해와 주요 거점에 대한 테러를 벌여 영국의 진을 빼놓았다. 물론 국력으로 따지면 영국이 압도적이기는 하나 제1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국력을 크게 소진한 영국은 아일랜드를 무력으로 누르는데도 한계를 느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18년에 영국에서 총선이 치러졌고 신페인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아일랜드 거의 전역의 의석을 석권했다. 그리고 아일랜드 지역구에서 당선된 신페인 국회 의원 73명은 당선되자마자 따로 아일랜드 의회(Dáil Éireann)를 차려 아일랜드 공화국(영어: Irish Republic, 아일랜드어: Poblacht na hÉireann 또는 Saorstát Éireann)의 독립을 선언하고 영국 의회 등원을 거부했고[1] 이들과 영국 정부 사이에 아일랜드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2.2. 독립 전쟁

규모로만 보면 아일랜드 독립 진영은 영국에 적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영국의 공공 기관을 공격하고 후퇴하는 식의 게릴라 전술을 사용했다. 영국은 독립 진영의 군사 조직 IRA가 공격에 나서지 않는 한 이들을 민간인과 구분할 수 없으므로 아일랜드에 계엄령을 발동해 아일랜드 민간인들을 수색하고 통제하는 정책을 취했다. 그 과정에서 영국군이 민간인의 집을 불태우고 그들을 죽이는 일도 있어 아일랜드 민중의 영국에 대한 반감을 높였다. 그리고 이렇게 아일랜드 민간인들이 피해를 보면 IRA는 더 강경한 공격을 하게 되고 다시 영국군이 강경한 대응을 하는 등 폭력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독립 진영은 영국의 규모 우위를 이길 수 없기에 이들은 투쟁 전선을 잉글랜드로 확대하여 잉글랜드에서도 요인 습격, 공공 기관 습격 등의 군사 행동을 하였다. 영국 정부는 영국 본토에도 계엄령을 발동하는 것을 고려했지만 영국 국민들이 전쟁에 지쳐 반대하는 바람에 달성되지 못했다.

한편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내각은 1920년에 친영 세력이 많은 북아일랜드와 남아일랜드 각각 따로 자치 의회를 만들기로 했다. 두 자치 의회 모두 양원제로 상원(Senate)과 하원(House of Commons)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남아일랜드의 자치 의회는 첫 회의 때 친영 성향의 당선자 몇 명만 참석했다. 128명의 의원 중 친영 진영에 속한 4명을 뺀 124명은 신페인 당원이었고[2] 이들 역시 자치 의회의 의정 활동을 거부했다.

2.3. 자유국 수립

결국 영국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내각은 아일랜드 독립 진영과 협상을 하였고 1921년에 아일랜드를 '아일랜드 자유국'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캐나다, 호주와 같은 British Commonwealth of Nations[3]의 자치령으로 지정할 것을 약속했다. 자유국(Free State)이라는 이름은 공화국을 가리키는 아일랜드어 표현 두 개 중 Saorstát을 분해해서 직역한 것이다. 영국은 왕을 거부하는 '공화국'을 인정할 수 없지만 아일랜드 독립 운동가들과 타협하기 위해 공화국같지만 공화국은 아닌 아일랜드 자유국이라는 이름을 쓰게 했다.

하지만 아일랜드 독립 세력에게 자치령 지정은 못미더운 것이었다. 자치령은 비록 폭넓은 자치를 누리지만 군사권과 외교권을 영국 본국이 갖고 영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섬겨 아일랜드에 그를 대리하는 총독을 두어야 하는데 그들은 완전한 독립국 아일랜드의 건설을 바랐기 때문이다. 또한 자치령 지정을 약조한 영국-아일랜드 조약에서 신교도가 다수인 얼스터 지역 6주를 영국의 직접 통치 지역으로 남길 것을 규정하자[4] 아일랜드 독립 세력은 조약 찬성파와 조약 반대파로 분열했다. 조약 찬성파는 조약이 못미더웠지만 이것을 발판으로 완전한 독립을 이룰 수 있으리라 보아 조약에 동의했고[5] 조약 반대파는 완전한 독립과 아일랜드 분단을 이유로 반대했다. 아일랜드 의회에서 조약 비준안이 근소한 차로 통과하였고 1921년에 임시 정부가 세워졌으며 1922년에는 아일랜드 자유국이 정식 출범하였다. 에이먼 데 벌레라 등의 조약 반대파는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의 모든 지위에서 사퇴하고 별도의 무장 세력을 꾸려 아일랜드 내전을 일으켰고 이들은 자유국이 아닌 1919년에 수립된 아일랜드 공화국의 상징을 내걸고 내전에 임했다. 그러나 내전은 조약 찬성파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고 아일랜드 공화국은 소멸하게 되었다.

3. 체제

독립이 선포된 아일랜드 공화국은 의원 내각제를 택했다. 그러나 공화주의자와 군주제 지지자[6] 사이에 의견이 갈려 국가 원수가 누군지는 명확히 정의되지 못했다. 일단 의원 내각제이므로 총리가 정부 수반의 역할을 하기는 했다. 이 논쟁은 1921년에 공화정을 채택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 마무리되었고 대통령직이 창설되어 카헐 브루(Cathal Brugha), 에이먼 데 발레라, 마이클 콜린스 등이 공화국 대통령을 역임했다.

이들은 국제적인 인정을 받기 위해 주변 열강의 정상들과 면담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열강들은 승전국 영국을 자극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결국 아일랜드 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4. 의의

현대 아일랜드 정부는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가 아닌 아일랜드 자유국 정부의 뒤를 잇는 정부다. 그러나 아일랜드 공화국이 있었기에 아일랜드 자유국이 탄생할 수 있었고 자유국을 발판으로 현대 아일랜드가 완전한 독립을 이룰 수 있었다.

이 당시 선포된 '아일랜드 공화국'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에게서 '이루지 못한 통일 국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남아 있다. 이 중에서 강경한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북아일랜드까지 포함한 아일랜드 통일을 주장하며 그 통일 국가의 국호로서 아일랜드 공화국(Irish Republic)이라는 표현을 즐겨쓴다. 이러한 표현은 '북아일랜드를 버리고 영국 압제자들과 야합해 만든 아일랜드 자유국'과 그 후신인 현 아일랜드를 부정하는 의미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현대 아일랜드도 종종 '아일랜드 공화국'이라 불릴 때가 있지만 Republic of Ireland를 쓰지 Irish Republic이라 하지 않는다.[7] 지금도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는 이런 이유로 현 아일랜드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군소 정당들이 좀 있으나 아일랜드 정부와 영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당 등록까지 하지 않아 법외 정당으로 남아 있다.


  1. [1] 이 전략은 abstentionism이라 하여 신페인 당원들이 자주 써먹는 것이다. 오늘날 북아일랜드에서도 신페인은 영국 의회 총선에 출마하는데 당선자들은 영국 의회 의원으로서의 의정 활동을 하지 않는다. 북아일랜드 자치의회에는 참석한다.
  2. [2] 친영 성향 4명은 더블린 대학교 선거구에서 당선된 의원들이었다. 당시 대학 진학률을 볼 때 일반 아일랜드 민중들은 절대 다수가 신페인을 밀어줬다는 뜻도 된다.
  3. [3] 당시에는 영연방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유사한 개념들은 오랫동안 제안돼 왔고 그래서 British Commonwealth of Nations 같은 용어가 사용될 수 있었다. 이 용어는 대영제국(British Empire)이라는 용어가 줄 수 있는 아일랜드인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대체어로서 조약문에 사용되었다.
  4. [4] 아일랜드의 각 주(county)에 아일랜드 자유국에서 탈퇴할 권한을 줬다. 이 때 아일랜드 자유국의 정식 성립과 함께 얼스터 지역 6주가 탈퇴해 영국의 직할 통치 지역이 되었다.
  5. [5] 당시 대영 저항 운동을 벌이던 IRA 조직은 인적, 물적 자원에서 거의 한계에 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이클 콜린스는 더 전쟁이 길어졌으면 IRA가 영국에 분쇄되었을 것이라 밝힌 바 있다.
  6. [6] 영국의 연합 왕국 지지자와는 다르다. 이들도 아일랜드 독립에는 찬성했다.
  7. [7] 아일랜드어로는 Irish Republic와 Republic of Ireland 모두 Poblacht na hÉireann이라고 하므로 이런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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