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민족회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당

아프리카 민족회의 (ANC)

민주동맹 (DA)

경제자유투사당 (EFF)

잉카타 자유당 (IFP)

African National Congress (영어)

1. 개요
2. 역대 선거결과

1. 개요

아프리카 민족희의'는 남아공의 집권 여당이며, 압도적인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공산당이나 남아공 노총과 삼각동맹을 이룩하고 있지만 경제정책은 보수적으로 편다는 평.

원래는 1923년에 정당이 아니라 일종의 시민단체와 유사한 형식의 단체로 창립되었으며,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는 당시 가장 큰 흑인 저항 운동 단체였다. 1940년대 남아공 연합당 정부에 대항하여 인도계 단체와 연합하여 인종차별 철폐를 요구하여 대대적인 파업을 벌이기도 했었고, 인도계 단체와 연합하는 과정에서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의 영향을 받은 측면도 있었기 때문에 1950년대까지는 평화투쟁을 지향했으나 1950년대 들어서 상황이 나빠져 대도시 지역의 흑인들이 오지로 내몰리고, 많은 부부들이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혼당했으며 기존에 투표권을 가지고 있던 컬러드(흑백혼혈)마저도 투표권을 박탈당하자 아프리카 민족회의는 희망을 버리고 내부 조적인 민족의 창을 창설하여 무장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화력이 안되었기 때문에 조직력도 그리 뛰어나지는 못하여서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어도 백인 국민당 정부를 제압하지는 못했다.[1] 더군다나 남아공 백인정부는 탄압정책을 완화하지는 않고 아프리카 민족회의라는 조직 자체를 테러 단체로 매도하여 더더욱 잔인하게 탄압하였다.[2] 그러나 흑인 국가들이 하나하나 독립해나가면서 아프리카 민족회의는 강력한 우군을 얻게 되었고, 1970년대 들어와서 백인정권에 대항하여 적극적인 투쟁을 펼쳐나갔다. 1980년대 들어 남아공 백인정부에서 인종차별 정책을 조금 완화하는 듯싶었지만 여전히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주지않는 등 핵심 차별정책을 지속하기로 하면서 아프리카 민족회의는 이에 적극적으로 반발하며 저항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다가 1989년에 남아공의 대통령이 바뀌고, 넬슨 만델라가 석방된 이후에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노선은 평화주의적으로 바뀌었고 당시 백인정권과 협상에 나서면서 인종차별 철폐 주장을 관철시켜나갔으며 1992년에 아파르트헤이트가 전면적으로 폐지된 이후 당시 홈랜드 지역내의 흑인정권들이나 잉카타 자유당[3], 백인 극우주의자들과 내전이 터질듯했지만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그 동안 탄압받았던 흑인들의 지지에 힘입어 압도적인 원내 1당이 되었고, 백인 극우주의자들이 백인들내에서도 별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아프리카 민족회의가 잉카타 자유당과 국민당과의 연정에 나서면서 유야무야되었고,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시절에 잔혹한 짓을 저질렀던 대체로 관용적으로 포용하는 등의 화합정책을 펼치며 백인들의 불안감을 누그려뜨렸다. 그렇지만 만델라 퇴임이후 타보 음베키 시절들어서면서 부정부패 사건이 터지고 경제는 상당부분 성장했기는 했지만 그 과실이 일부계층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흑인들 사이에서 아프리카 민족회의 소속 정치인에 대한 평판은 급속히 나빠졌다.

하지만 그래도 불과 30년까지만 해도 흑인들은 남아공 내의 토지를 자유롭게 구매하거나 백인거주구역에 자유롭게 출입할수도 없었고, 교육도 제대로 받기 힘들었기 때문에 여전히 아프리카 민족회의에게 애정을 가진 흑인들도 많아서 각종 선거에서 득표율 60%는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간다.[4]

그렇지만 2014년 총선이후로부터 주마 대통령이 부정부패로 말썽을 일으키는데다가 재무장관을 함부로 바꿨다가 주가가 추락하는 등의 난맥상을 보였고 경기침체로 거기에 청년실업률이 50%에 달하고 전체 실업률은 30%를 넘기때문에[5] 대학생과 청년실업자들, 중산층들 사이에서 민심이반이 심각해서 2016년 지방선거에서 웨스트 케이프[6] 지역은 물론, 주요 대도시 지역[7] 에서 중산층은 민주동맹(DA) 청년층은 경제자유투사당(EFF)으로 표가 쏠려서 패배할 것이라는 전망이 슬슬나오고 있다.[8] 정치적으로 사회민주주의와 아프리카 민족주의. 인종화합을 내걸고 있으며 남아공 공산당, 남아공 노총과 협렵관계다. 그러나 남아공 공산당이나 코사투측 내부에서 자신들이 내세운 경제정책이 반영되지 않는데다가 빈부격차또한 심하고 사회인프라 시설 구축같은것도 아파르트헤이트 시절보다는 다소 나아졌지만 여전히 좋은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코사투 회원이나 남아공 공산당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상당하다 전해지며 남아공 노총 내에서도 ANC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자는 세력들이 힘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이고 2014년에 남아공 노총에서 ANC 지지를 철회하자는 세력(금속노조)을 제명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2. 역대 선거결과

1994 총선

하원

252/400

62.7%

상원

60/90

1995 지방선거[9]

58.0%

1999 총선

하원

266/400

66.4%

상원

63/90

2000 지방선거

59.4%

2004 총선

하원

279/400

69.7%

상원

65/90

2006 지방선거

66.3%

2009 총선

하원

264/400

65.9%

상원

62/90

2011 지방선거

62.1%

2014 총선

하원

249/400

62.2%

상원

60/90


  1. [1] 실제로 평화주의자로 유명한 넬슨 만델라도 당시 무장 투쟁을 하였다. 사실 원래는 평화주의적 노선을 걸었지만 1960년대에 무장노선을 걸을려했다가 남아공 당국에게 붙잡혀서 27년간 옥살이하다가 무죄로 출옥한 이후, 평화주의 노선을 걷게 된 것이다.
  2. [2] 한술 더 떠서 당시 영국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진영논리로 아프리카 민족회의를 테러단체로 망언을 씨부렸다가 비난을 받았다. (...) 뭐,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였고, 만델라와 만나 화해하였다
  3. [3] 줄루족 정당으로 1970년대에는 아프리카 민족회의와 연대관계였으나 코사족과 줄루족간 사이가 안 좋은것도 있고, 1980년대에 남아공 백인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면서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4. [4] 예외적으로 웨스턴 케이프나 대도시 지역에서는 민주동맹에 밀리거나 타 지역에 비해 득표율을 적게 가져가는 경향이 있으며, 줄루나탈주에서는 주마가 대통령이 되기전까지 ANC가 다만 흑인이라도 젊은층은 아프리카 민족회의에 대한 지지는 비교적 약한편이며(남아공의 청년실업률이 위낙에 높다보니까 그렇다 빈부격차가 위낙 큰것도 있고 인프라 확장도 2000년대 중반이후로는 더뎌졌고), 아파르트헤이트가 실행되었을대 같이 차별받았던 인도계나 컬러드도 아프리카 민족회의에 대한 지지가 약하고 줄루족들도 같은 줄루족인 주마가 대통령이 되기전에는 아프리카 민족회의에 대한 지지가 약했다.
  5. [5] 경제난으로 아우성인 남유럽 국가들의 전체 실업률보다 높고 청년실업률은 비슷한 수준이다.
  6. [6] 이 지역은 원채 컬러드가 많이 살아서 1990년대 당시에는 국민당의 텃밭이었고 국민당이 와해되고나서는 ANC가 잠깐 집권했을때가 있었지만 2000년대 중후반부터 DA(민주동맹)의 텃밭화가 진행되었다.
  7. [7] 요하네스버그-프리토리아 도시권, 블룸폰테인 도시권, 더반 도시권, 넬슨만델라 베이(포트 엘리자베스) 도시권
  8. [8]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일당주도 체제가 끝난다는 얘기까지는 잘 안나오는게 사실 지방조직력은 강하고 중장년층에서의 ANC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강하기 때문에 지방에서의 우위는 유지될걸로 예측되기는 하며 그 때문에 득표율 50%대는 유지될걸로 보인다. 대도시 지역에서의 우위가 무너진다는것만으로도 파장은 크겠지만
  9. [9] 일부주에서 선거가 연기되어 1996년에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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