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통폐합

1. 소개
2. 신문사
2.1. 중앙 일간지
2.2. 지방지
3. 방송사
4. 통신사
5. 전두환 정권 내의 이견
6. 여담
7. MBC 주식 몰수에 대한 논란
8. 관련 항목

1. 소개

전두환의 망작 2

제4공화국 말기[1]인 1980년 11월 전두환(당시는 제11대 대통령) 정권에서 시행된 정책. 다른 말로는 언론대학살이다. 수많은 언론사가 통폐합되었고 언론인 933명이 직장을 잃었다. 한국신문협회와 한국방송협회의 자진은 구라고 협박에 의한 결의에 따라 11월 하순께 통폐합이 결정된 신문사들의 발행이 중단됐고, 11월 30일 방송을 끝으로 동양방송동아방송은 고별 방송을 내보내고 폐국했다.

언론사 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신문사, 방송사, 통신사의 난립을 정리하고 공영방송 체제를 도입한다는 명분이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프랑스에서 여러 국영-민영라디오 방송사와 TV방송사를 RDF(이후 RTF로 개칭)라는 독점 공영방송사로 통합한 바는 있다. 하지만 1980년 한국에서 벌어진 언론통폐합의 실상은 전두환 정권에 저항적인 언론인은 해직하고 언론을 체제에 순응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전두환 정권이 도입하려고 했던 공영방송 체제를 빙자한 국영방송은 이로부터 약 10년 뒤인 1991년 SBS가 개국하면서 다시 공영방송-민영방송 체제가 되었다. 그리로 그 당시의 라디오 채널 중 하나가 SBS에 넘어간 것도 아이러니.

2. 신문사

2.1. 중앙 일간지

1965년 5월 6일, 국내 신문 사상 처음으로 상업신문을 표방하고 창간한 신아일보가 지령 4,806호를 끝으로 11월 25일 폐간되어 경향신문에 통폐합당했다. 당시 신아일보 장기봉 사장은 국군보안사령부 지하실에서 수사관에게 "내가 전두환 대통령과 대구공고 동문인데도 이러냐"라고 저항했지만 소용없었고 포기 각서를 썼다. 재미있는 것은 비록 듣보잡 수준이긴 하지만 2003년 5월부터 신아일보 제호와 지령을 그대로 이어가는 형태로 신문이 발행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기사를 참조.
11월 25일 지령 6390호로 폐간. 이 경우는 창간 주체가 한국일보로 동일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후 8년이 지난 1988년 8월 1일 복간했고 창간 40주년을 맞아 2000년에 한국일보에서 공식적으로 분리, 독립하는 데 성공한다.
  • 일간내외경제 → 코리아 헤럴드로 흡수.
11월 24일 지령 2130호로 폐간. 희한하게도 경제신문이 영자신문으로 통폐합된 사례다. 1989년 내외경제로 복간했고, 2003년에 이름을 현재 사용되는 제호인 헤럴드경제로 변경했다. 현재 헤럴드미디어 산하이며, 연기자 남궁원의 아들이자 "7막 7장"으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교 출신의 홍정욱 전 국회의원이 헤럴드미디어의 회장으로 있다.

2.2. 지방지

  • 부산 : 국제신문 → 11월 25일 부산일보로 흡수, 폐간 당시 지령 10992호. 이후 1989년 2월 1일 국제신문 복간.
  • 경상남도 : 경남일보(현존 지방지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됨. 1909년 10월에 간행 시작) → 11월 25일 경남매일신문으로 흡수, 폐간 당시 지령 9342호. 마산에서 발행하던 경남매일이 진주가 본거지였던 경남일보를 흡수했다. 이후 폐간된 지 정확히 9년 만인 1989년 11월 25일에 경남일보 복간.
  • 전라남도 : 전남일보(지령 9643호) + 전남매일신문(5806호) → 11월 30일 광주일보로 통폐합, 전남일보의 지령을 계승한다.
1도 1신문사의 원칙에 따라 통폐합이 이루어졌다. 이 때 규모가 작은 신문사가 규모가 큰 신문사를 흡수하는 일도 벌어졌다.#.

3. 방송사

명목상으로는 방송 공영화라고 했지만 사실상 방송 국유화이며 신문사가 소유하던 방송국도 날아갔다.

TBC(동양방송)와 DBS가 각각 KBS 2TV, 제3방송, KBS 2FM(이하 동양방송), 제4방송(KBS 라디오서울)로 개편됨으로써 KBS에 흡수되었다. 1980년 4월 1일 건설된 TBC의 여의도 사옥은 TBC가 몇 달 써 보지도 못했으며 현재는 KBS 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TBC의 고별 방송에서는 이은하가 눈물을 보였다는 이유로 3개월 동안 방송 출연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이후 KBS 제3방송은 1981년 KBS 제2라디오에 흡수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가 이후 2000년에 KBS 제3라디오로 부활했다. 한편 KBS 라디오서울은 SBS가 개국한 후 1991년 AM 792KHz 주파수가 넘어가 SBS 라디오로 배정받은 뒤 SBS의 표준FM으로 개국했으며 이후 SBS 러브FM이 되었다. 지역의 경우 TBC 가맹국이었던 광주 전일방송과 군산 서해방송, 대구 한국FM방송이 각각 KBS 광주 제2라디오(현재 해당 주파수는 제3라디오용으로 사용중), KBS 군산 제2라디오(이후 군산방송국이 전주방송총국에 흡수, 현재 이 주파수는 제3라디오용으로 사용중), KBS 대구 FM방송의 형태로 KBS에 흡수되었다.

허나 국유화된 주제에 KBS의 일부 라디오 채널은 전국화되지 못했다. KBS 2FM은 한 술 더 떠서 국가기반 공영방송의 채널인 주제에 수도권에서만 방송한다. 1991년 SBS로 넘어간 라디오서울도 수도권에서 방송되었다.

당시 지방 MBC는 지금의 한국민영방송협회 회원사처럼 제휴 관계의 별개의 법인이었다. MBC도 지방 MBC국의 주식 절반 이상이 문화방송으로 강제 양도, 지방 MBC국은 가맹국에서 계열국(즉 MBC 본사의 자회사)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원래는 민영방송이지만 MBC 본사 주식의 65%가 KBS로 양도, 사실상 KBS의 자회사가 됨과 동시에 공영방송으로 전환되다. 또한 박정희 시절 경향신문과 통폐합되었으나 언론통폐합을 기점으로 경향신문과 분리되었다. 전두환의 집권이 끝난 후 공기업인 방송문화진흥회(약칭은 방문진)를 개설하고 방문진에서 KBS가 보유하고 있는 MBC의 주식을 모두 인수하면서 MBC는 반 공영방송 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이는 2015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때의 방송 시설들을 돌려받지 못했고 비록 공중파로 부활하지 못했지만 TBC 자체는 31년 만인 2011년 12월 종합편성채널로 부활에 성공한다. 하지만 TBC는 1995년 5월 14일에 개국한 대구광역시 지역의 민영방송인 대구방송이 점유한 지라 이름을 JTBC로 정했다. 개국일에 개국축하 방송과 자신들의 존재를 어필하는 방송을 전면에 내세운 다른 종합편성채널들과 달리 JTBC는 31년이란 세월의 원한이 개국과 동시에 터져나와 개국일부터 언론통폐합 관련자들을 전방위로 까는 다큐멘터리를 집중 편성했다. 특히 언론통폐합의 원흉인 전두환에 대해서는 정말 사정없이 계속 깐다. JTBC가 전두환을 까는건 개국 방송에 한하지 않고 기회가 될 때마다 계속 깐다.

CBS박정희 정권 때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을 많이 했다가 언론통폐합 때 보도기능을 잃고 극동방송같이 복음 방송만 했다.[2] 동시에 상업 광고도 폐지되었다. 그러다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오랜만에 보도기능과 상업광고가 부활했다.

결과적으로 언론통폐합 조치로 덕을 본 방송사는 KBS뿐이다. TBC와 DBS는 최대의 피해자가 되었고 CBS는 밟히지 않았지만 순수 복음방송으로 전환되면서 정부로부터 입막음을 당했다.

4. 통신사

동양통신, 합동통신 등 5개의 통신사가 있었는데 모두 연합통신(연합뉴스의 전신)으로 통합되었다. 이러한 단일 통신사 체제는 2000년대 뉴시스가 정식으로 통신 업무를 하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5. 전두환 정권 내의 이견

의외의 사실은 원래 전두환 본인을 비롯한 노태우 보안사령관, 정호용 특전사령관 등 신군부 주요 인사들이 언론의 저항을 우려해 '사이비 기자들만 정리하자'는 수준에서 언론을 정비하자는 입장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허문도 공보비서관은 허삼수(허문도와 부산고등학교 동창) 사정수석비서관과 허화평 대통령비서실 보좌관에게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계엄이 해제되면 언론에서 12.12 군사반란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거론할 것이니 정권의 안정성에 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언론인을 정리해야 한다"라고 끈질기게 설득해 결국 언론통폐합을 관철시켰다.

6. 여담

언론통폐합으로 해직된 언론인들은 소맥을 만들어서는 '통폐합주'라고 이름 짓고 마셨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이후에 만들어진 언론기본법에 따라 방송과 신문의 겸영이 금지되어 일본처럼 방송사와 신문사의 동시 경영은 꿈도 못 꾸게 되었지만, 미디어법 개정 논란을 전후해 이는 옛말이 되었다.

7. MBC 주식 몰수에 대한 논란

MBC는 원래 부산의 실업가 김지태가 설립한 민영방송사로, 김지태가 설립한 부일장학회가 전지분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5.16 이후 김지태가 국가에 헌납한 재산을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박정희 세력이 국고에 편입하지 않고 5.16 장학회로 전 지분을 이전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일부분이지만 과반수의 지분을 국고로 환수한 것은 옳다는 평가가 많이 있다. 물론 전두환이 환수하여 공영방송화한 MBC를 공영방송에 걸맞지 않고 정부를 찬양하는 국영방송처럼 운영한 것은 문제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국고로 환수를 하려고 했다면 정수장학회 전체를 국고로 환수했어야지 박근혜 일가가 정수장학회를 계속 차지하도록 한 것이 잘못이라는 견해도 있다.

정수장학회에 대해 민주당계와 진보계에서는 김지태 유족측에 돌려주거나, 국고로 환수하거나, 환수 후 부산지역 시민사회재단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정수장학회가 새누리당의 유력 정치인이자 현재는 대통령인 박근혜와 관계가 깊기 때문에 민주당계 정당 집권 시기에도 정수장학회 환수 또는 사회환원에 대한 별다른 실효적인 조치가 나오지 못하였다.

8. 관련 항목


  1. [1] 새로 개정된 헌법에 따라 출범한 어느 대머리 중심의 제5공화국은 1981년 3월 3일부터 시작돼 1988년 2월 24일로 종식됐다. 때문에 언론통폐합은 제4공화국 말기에 일어난 일로 볼 수 있다.
  2. [2] 정확히는 "교계 뉴스"라고 해서 교회와 관련된 뉴스는 방송했다. 여기에 약간의 시사 비판 뉘앙스를 섞어 방송하기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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