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앵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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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앵란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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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주연상

제2회
(1964년)

제3회
(1965년)

제4회
(1966년)

문정숙
(돌아보지 마라)

엄앵란
(아름다운 눈동자)

문정숙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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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앵란(嚴鶯蘭).[1] 본명은 엄인기.

대한민국연예인. 일명 엄보살.

1. 기본 정보
2. 데뷔 이전
3. 연예인 활동
4. 기타

1. 기본 정보

본명

엄인기

출생

1936년 3월 20일(82세), 서울특별시

가족

아버지 엄재근, 어머니 노재신의 장녀.

배우자

신성일, 슬하 1남 2녀

데뷔

1956년 '단종애사'

종교

불교

2. 데뷔 이전

예인 집안에서 태어났다.아버지 엄재근(嚴在槿)은 색소폰 연주자, 어머니 노재신(盧載信)은 배우이며 삼촌 엄토미는 재즈연주가로 유명하다.

부잣집 막내딸 같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의외로 어려운 성장기를 보냈다. 중학생이던 시절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이에 대구로 피난을 떠나 시장에서 떡장사를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대학에 진학하고자 했지만, 여유가 없었던 형편 때문에 어머니 노재신은 대학진학을 반대했고 차라리 딸이 대학에 낙방하기를 빌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대와는 다르게 숙명여자대학교 가정학과에 합격, 고대하던 여대생이 되었다.어렵사리 진학은 했으나 다음 학기 등록금이 걱정이던 엄앵란은 마침 아르바이트 생을 구하던 영화사 사무실에 방문하게 된다. 이 때 그녀를 눈여겨본 영화감독으로부터 카메라 테스트 제의를 받고 마침내 1956년, 영화 '단종애사'로 데뷔하게 되었다.

3. 연예인 활동

한 시대를 풍미한 영화 배우로 활동했으며, 요새는 각종 떼토크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나온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청춘 영화의 아이콘 그 자체였다. 최초의 학사[2] 출신 배우로 풋풋하고 청순발랄한 이미지를 내세워 신성일과 콤비를 이루어 많은 청춘 영화에 출연하였다. 지금의 연륜 있는 모습만 봐온 세대에겐 상상이 잘 안 가겠지만, 엄앵란의 젊은 시절 영화를 보면 날씬한 몸매에 단아한 외모가 눈에 띈다.

가족 영화에서는 주로 막내딸 같은 발랄한 역할이나, 액션영화에도 간간히 출연하였다. 활동 당시는 하루에도 영화를 몇 편씩 겹치기로 찍던 시절이라 그가 도대체 몇 편의 영화에 나왔는지 정확하게 모를 정도로 인기있는 배우였으나 1964년 신성일과의 세기의 결혼[3] 이후 영화 배우로의 삶을 정리하고 전업주부가 되어 내조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남편의 국회의원 낙선으로 가계가 곤궁해져 대구에서 비빔밥집을 운영하거나 영화사에서 일하는 등 배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러다 90년대부터 아침마당에서 부부문제 상담코너 패널로 활동을 시작,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현재는 각종 프로그램 패널로, 심지어 모 결혼정보회사의 컨설턴트로도 활동 중이다.

21세기 기준으로도 한국 배우 중 TOP에 들 정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다만 연기력으로 본다면 평론가들도 썩 좋은 점수를 주지 못한다. 신성일 항목에서도 같은 내용을 봤다면 기분 탓입니다. 사실 다른 연기력은 치명적일 게 없는데, 선천적으로 음색이 탁하고 성조가 높은 목소리가 큰 단점으로, 후시녹음 시대[4]의 덕으로 은막의 여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는 게 중론. 당시 후시녹음 시대에 성우를 많이 쓰긴 했지만, 자기 목소리로 후시녹음(더빙)을 하는 배우들도 꽤 있어서 작품마다 성우를 썼다가 자기 목소리를 썼다가 하며 목소리가 다른 배우가 많았음에도 엄앵란은 데뷔 이후 한 번도 자기 목소리로 후시녹음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1965년 영화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자신의 목소리로 후시녹음을 했다. 이 영화로 1965년 제3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이때 후시녹음을 한다고 혼이 났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도 점점 동시녹음 영화 시대와 방송드라마 시대가 시작하면서 다시 연기 생활하는 것을 더더욱 생각지 않았을 정도라고.[5] 당시 얼굴에 반흔이 있어 평생 맨얼굴을 남편에게도 보인 적이 없다고 했다.

배우자인 신성일이혼한 줄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실제로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절대 이혼을 못하겠다라는 이야기도 하는 등 마음 고생이 심했지만 이를 모두 참아낸 말 그대로 보살의 경지에 올랐다. 그러나 바람 핀 남편을 용서하라거나, 본인도 이혼을 하지 않고 살았으니 심각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이혼을 하지 말고 버텨야 한다는 내용의 충고로 많은 이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사실 신성일은 결혼 전 총각시절부터 숱한 여배우와 염문을 뿌리는 플레이보이였으며, 혼담이 오고간 경우도 많았으나 엄앵란은 그걸 알면서도 그와 결혼했으며 이런 생활은 결혼 후에도 이어졌다. 본인이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게 당연한 줄 아는 사례.

참고로 그녀의 목소리가 실제 나이보다 너무 들어서인지 젊은 시절에는 성우 고은정이 목소리 대역을 담당했다.[6]

채널A한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서 검진을 받다가 유방암을 발견했다고 한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돼 부분 절제로 치료를 받을수 있다고 한다. 허나 실제로는 유선 전이 문제가 발견된 관계로 한쪽 유방을 완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정작 본인은 80에 가까운 고령이라 암이 생길수 있단 발언으로 주위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 뱀발로 수술 및 치료 과정을 담은 단독 다큐멘터리도 제작되었는데, 남편 신성일의 정성어린 뒷바라지가 잠시나마 주목을 받았다.

4. 기타

과거에 아침마당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었던 임요환을 거진 백수, 게임중독자 취급을 하여 비판을 받았다. 그 나이 대 어르신들의 인식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겠지만 정도도 심했고, 하필이면 대상이 황제여서... 논란이 한창이던 때는 네티즌들로부터 세상 물정을 모르는 노인 취급을 받기도 했다. 결국 아침마당 게시판 항의문 2만건의 장본인 중 하나가 되었다.


  1. [1] 이름 한자의 압박. 엄할 엄 꾀꼬리 앵 난초 란 20+21+21획, 총 62획이나 된다.
  2. [2] 숙명여자대학교 가정학사.
  3. [3] 1996년 출간된 자서전 '뜨거운 가슴에 좌절이란 없다'에 따르면 결혼식 이후 한국에 신부가 부케를 던지는 유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로선 드물게 결혼식 장면을 녹화하기도 했다. 웨딩드레스는 절친한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제작, 결혼식장 역시 현재까지도 고급 예식장소로 손꼽히는 워커힐이다.
  4. [4] 현장 목소리 녹음 없이 영화 장면을 다 찍고 나서 장면 속 배우의 입모양을 따라 녹음을 하여 소리와 영상을 합쳐 영화를 만드는 방식.
  5. [5] 물론 실제로는 본인의 목소리 때문에 아침방송에서 저절로 생긴 목소리 높은 아줌마 혹은 할머니 캐릭터를 엄앵란 성대모사하면 나오는 '안녕하세요 엄앵란인데~요~~' 캐릭터 배우 캐릭터 설정으로 이어가서 소수의 드라마에 나오긴 했다. 그녀의 40년 전 위상을 생각하면 안습 시트콤에서 당시 드라마 해바라기로 얼굴과 이름을 알린지 얼마 안된 김정은의 언니 역할도 했었다.
  6. [6] 성우를 기용한 경우는 엄앵란만이 아니다. 엄앵란이 배우로 활동하던 60~70년대 당시는 동시 녹음을 할 수 있는 장비나 기술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대사를 포함한 모든 음성 음향은 후시 녹음이었고, 목소리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았고 비싼 몸값에 스케줄이 바쁜 배우보다 출연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더빙이 전문인 성우를 쓰는 쪽이 여러 모로 나았기 때문. 신성일 같은 경우는 연기력도 그랬지만 경상도 사투리가 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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