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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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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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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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적토인중여포(馬中赤兎人中呂布)
비장(飛將)
삼성가노(三姓家奴)
呂布
여포

시호

익후(壯侯)

작위

도정후(都亭侯) → 온후(溫侯) → 평도후(平陶侯)

최종직위

서주목(徐州牧)[1] 겸 좌장군(左將軍)

성씨

(呂)

(布)

만주어 이름

ᠯᡳᠣᡳ ᠪᡠ

봉선(奉先), ᡶᡠᠩ ᠰᡳᠶᠠᠨ

생몰 기간

(? ~ 198년)

고향

병주 오원군 구원현

1. 개요
2. 정사
2.1. 첫번째 배신
2.3. 두번째 배신
2.4. 방랑
2.5. 서주에서
2.6. 최후
3. 연의
4. 평가
4.1. 통솔
4.2. 무력
4.3. 지력
4.4. 정치
4.5. 인격
4.6. 색욕
4.7. 유비와의 관계
5. 여담
6. 미디어 믹스

1. 개요

후한 말의 군벌. 자는 봉선(奉先, ᡶᡠᠩ ᠰᡳᠶᠠᠨ). 병주 오원군[2] 구원현 사람.

정사에서는 전한시대 비장이라 불린 이광과 비견될 정도로 무명(武名)을 떨친 인물이자, 조만전에 따르면 인중여포 마중적토(人中呂布 馬中赤兔)으로 기록되어지는 등, 당대 손에 꼽히는 맹장이였다.

연의에서는 정사의 행적의 기반한 묘사로 인해 삼국시대 최강의 무장이자 패륜아로 인식되는 인물이었다. 현대 창작물에 들어서는 초선과의 사랑을 강조하며, 전장의 로맨티스트로 그려지기도 한다.[3] 물론 이는 실제 여포 행적이 아니라 현대 창작물의 경향일 뿐, 픽션의 영역이라 실제 여포의 행적과는 거리가 있다.

2. 정사

2.1. 첫번째 배신

사납고 용맹하여 병주에서 복무했다. 병주자사 정원이 기도위가 되어 하내에 주둔하니 여포를 주부(主簿)로 삼아 크게 친근하게 대우했다.[4] 영제가 붕어하자 정원은 군을 이끌고 낙양으로 가 하진과 함께 여러 황문들을 주살할 것을 도모하고 집금오에 임명되었다.

189년, 하진이 패망하고 동탁이 수도로 들어왔는데, 장차 난을 일으키기 위해 정원을 죽이고 그 군사들을 아우르려 했다. 동탁은 여포가 정원에게 신임 받는 것을 보고 여포를 꾀어 정원을 죽이게 했다.[5] 여포가 정원의 머리를 베어 동탁에게로 나아가니 동탁은 여포를 기도위로 삼고 매우 아끼고 신임하여 부자(父子) 사이가 되기로 맹세했다.

참고로 훗날 언급되는 여포의 딸의 혼사 건(198년)을 감안해볼 때에 이미 이 때 아내와 딸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2.2. 양인 전투

후한서 동탁열전에 따르면 낙양 사람 수백만을 장안으로 옮기는데 군대를 동원해서 몰아서 재촉하니 서로 짓밟히고 굶어죽고 시체가 길가에 가득했다. 동탁이 스스로 필규원 안에 주둔하고 궁궐이나 관청이나 민가를 모조리 태워서 2백 리 안에 남겨진 게 없었다. 다시 여포를 시켜서 황제들의 능과 공경 대신의 무덤도 파헤쳐서 진기한 보물을 거두었다.

손견전 주석 영웅기에 따르면 처음 손견동탁을 토벌할 때, 양현의 양인에 도착하였다. 동탁 또한 보병기병 5천을 보내 맞게 하였는데, 동군태수 호진을 대독호로 삼고, 여포를 기독으로 삼고, 그 나머지 보병과 기병의 장교와 도독인 자가 아주 많았다. 호진이 성격이 급해 미리 선언했다.

지금 이번 출행에서는 응당 한명의 청수(손견)를 참수해야 군대를 정돈해 돌아간다.

여러 장수들이 이를 듣고 그를 미워했다. 군대가 광성에 도착하니, 양인성과 수십 리 거리였다. 날이 저물자 군사와 말의 피로가 극심하여 응당 멈춰서 묵어야 했지만, 또한 본래 동탁에게 받은 명령서에는 광성에서 묵으며 말을 어루만져 먹이고, 밤에 진군하여 새벽을 틈타 성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여러 장수들이 호진을 미워하고 꺼려서, 적들이 일을 망쳐주길 바랬지만, 여포 등이 선언했다.

양인성 성중의 적들이 이미 도주하였으니, 응당 추격하여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놓칠 것이다.

바로 밤에 진군하였지만, 성중의 수비가 이미 갖추어져 있어 엄습할 수 없었다. 이에 관리와 병사들은 주리고 목말라, 사람과 말이 극도로 피곤하였는데, 또 밤이 되니 진영에는 참호와 보루도 없었다. 갑옷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데, 여포가 또 깜짝 놀라 외쳤다.

성중의 적들이 나왔다.

군사들은 요란하게 달아나 모두 갑옷을 버리고 안장과 말을 잃었다. 10여리를 행군하여 적이 없음을 알자, 날이 밝아올 쯤 다시 되돌아와 병기를 수습하고 진격하여 성을 공격하려 했다. 성의 수비는 이미 견고하고 파놓은 참호도 깊으니, 호진 등은 공격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후한서 동탁 열전에 따르면 동탁이 몸소 출전하여 손견과 제릉묘한에서 싸웠으나 동탁이 패주하고 민지에 다시 주둔한 뒤에 섬(陝) 지방에서 병사를 모았다. 손견이 낙양 선양성문에 진격하여서 다시 여포를 공격하니 여포가 또 격파되어 패주하였다. 손견이 곧 종묘를 깨끗이 하고서 여러 능묘를 정비한 뒤에 군사를 나누어서 함곡관을 나와서 신안, 민지간까지 가서 이(涞) 강을 경계로 동탁과 맞섰다.

2.3. 두번째 배신

여포는 활쏘기와 기마에 능하고 완력이 남보다 뛰어나 비장(飛將)으로 불리었다.[6] 점차 승진하여 중랑장에 이르고 도정후에 봉해졌다. 동탁은 스스로 남들을 무례하게 대했기에 그들이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하여 거동할 때 늘 여포로 하여금 자신을 호위하게 했다. 그러나 동탁의 성정은 굳세면서도 편협해 화가 나면 후환을 생각지 않았다.

일찍이 여포가 사소하게 뜻을 거스르자 수극을 뽑아 여포에게 던진 일이 있었다. 여포는 용력하고 민첩하여 이를 피하고 동탁에게 사죄하여 동탁의 화 또한 풀렸으나, 이로 말미암아 은밀히 동탁을 원망하게 되었다. 동탁은 늘 여포에게 중문을 지키게 했는데, 여포는 동탁의 시비와 사통하니 그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하며 내심 불안해했다.

그 이전에 사도 왕윤은 여포가 동향 사람으로 기골이 장대하고 튼튼하다하여 그를 두텁게 대우했다. 그 뒤 여포는 왕윤을 방문하여 동탁이 자신을 거의 죽일 뻔 한일을 말했다. 이때 왕윤은 복야 사손서와 함께 동탁 주살을 모의하고 있었는데 이로써 여포에게 내응하도록 청했다.

여포: 부자(父子) 사이인데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왕윤: 그대의 성은 여(呂)이니 본래 골육도 아니오. 지금 죽음을 걱정할 겨를도 없는데 무슨 부자지간이라 하시오?

여포는 아빠를 잘 갈아 치운다.

마침내 여포가 이를 허락하고 손수 칼로 동탁을 찔렀다.

후한서 동탁열전에 따르면 당시에 왕윤이 여포와 공모하고 복야 사손서를 포섭하여서 동탁을 처형하려 했다. 어떤 사람이 '여(呂)' 자를 베(布)에 쓰고서 등에 지고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포입니다."라고 노래하였다. 동탁에게 일러바치는 사람이 있었지만 동탁은 깨닫지 못하였다. 192년 4월에 황제가 병에 걸렸다가 새로 치유되자 백관이 미영전에 모였다. 동탁이 조복을 입고서 수레를 타고 가는데 말이 놀라 뛰더니 진흙탕에 빠져서 다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었다. 동탁의 첩이 가지 말라고 했지만 동탁이 듣지 않고 곧 떠났다.

병사들이 늘어서서 길가를 가득 채웠다. 자신이 사는 보루를 지나서 궁궐에 다다르는데 좌우로 보병과 기병이 호위하여 사방을 방비하고 여포 등에게 명령하여서 앞뒤를 경호하게 하였다. 왕윤이 사손서에게 몰래 그 일을 알려주고 스스로 조서를 쓰게 한 뒤에 여포에게 주었다. 기도위 이숙과 여포가 한 마음으로 용사 십여 인에게 호위 병사의 옷을 입혀서 북액문 안에서 동탁을 기다리게 하였다.

동탁이 들어가려는데 말이 놀라며 가지 않으려 하니까 괴이하고 놀라워서 돌아가려 하였다. 여포가 계속 갈 것을 권하니 마침내 문에 들어섰다. 이숙이 으로 찔렀지만, 동탁이 속에 갑옷을 받쳐 입어서 극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고 팔만 다치고서 수레에서 떨어지면서 고개를 돌려 크게 소리쳤다.

동탁: 여포야! 어디 있느냐?!

여포: 조서를 받들어서 역적을 죽이러 왔다!

동탁: (크게 욕하며)어리석은 개새끼가 감히 어찌 이럴 수 있느냐!

여포가 기합을 넣어서 창으로 동탁을 찌르고서 병사들을 다그쳐서 어서 베게 하였다. 주부 전의(田儀)와 동탁의 창고지기가 동탁의 시체 앞에서 애도하자 여포가 이들을 죽였다.

마침내 동탁을 죽이고 삼족을 멸했다. 주부 전경(田景)이 동탁의 시신 앞으로 달려가니 여포가 또 그를 죽였다. 모두 세 사람을 죽이니 나머지 사람들은 감히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2.4. 방랑

이각, 곽사전에 따르면 동탁이 죽자 여포는 이숙을 시켜 섬(陝)으로 가게 하여 황제의 명령으로 우보를 주살하려 했다. 우보 등이 역격해 이숙과 싸워 이숙이 홍농으로 패주하자 여포가 이숙을 주살했다.

왕윤은 여포를 분무장군, 가절로 삼고 의례는 삼공에 비견되도록 하고(의동삼사, 儀同三司) 온후(溫侯)로 올려 봉하여 함께 조정을 장악했다.[7]

후한서 왕윤 열전에 따르면 애초에 왕윤이 동탁의 부곡(部曲) 사면을 의논하고, 여포 역시 수차례 그러도록 권한다. 그 뒤 의심하여 말한다.

이 패거리는 죄가 없고 그 주인을 따랐을 뿐이지만, 지금 흉악한 역적으로 일컫고 특별히 사면해준다면 스스로 의혹을 일으키게 하기에 족하니 편안하게 하는 길이 아니오.

또한 여포도 동탁의 재물로써 공경, 대신, 장교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지만 왕윤이 역시 따르지 않는다. 왕윤이 평소 여포를 가볍게 보고 검객으로 대우한다. 여포 역시 그 공로에 기대어 스스로 자주 으스댔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점차 불평한다.

여포는 스스로 동탁을 죽인 후 양주인을 두려워하고 꺼리었고 양주인 들도 모두 여포에 원한을 품었다. 이 때문에 이각 등이 마침내 서로 결탁한 뒤 돌아와 장안성을 공격했다.

영웅기에 따르면 곽사는 성 북쪽에 있었다. 여포는 성문을 열고 군을 이끌고 곽사에게로 나아가 말했다.

군사들을 물리고 다만 우리끼리 몸소 싸워 승부를 가름하자.

곽사와 여포는 더불어 싸웠는데 여포가 로 곽사를 찌르자 뒤에 있던 곽사의 기병이 앞으로 와 곽사를 구했다. 이에 곽사와 여포는 각각 그만두었다.

여포가 이를 막지 못했고 마침내 이각 등은 장안으로 들어왔다. 동탁이 죽은 후 60일이 지나 여포 또한 패하니, 수백 기를 이끌고 무관을 나와 원술에게로 가려 했다.[8]

이각, 곽사전 주석 한기에 따르면 여포는 군이 패하자 청쇄문 바깥에 말을 세워놓고 왕윤과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여포: 공도 함께 가시지요.

왕윤: 국가를 평안케 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바람이니 만약 이를 이루지 못하면 몸을 바쳐 죽을 뿐이오.

여포는 스스로 동탁을 죽여 원술의 원수를 갚았으므로 그의 덕을 보고자 했으나 원술은 그의 언행을 이리저리 고침을 꺼리어 여포를 거절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9] 옛일이야 어쨌든 일단 동탁을 몰아내어 온후까지 되었으니 받아들였지만, 여포가 원술이 자신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여겨 그의 영역에서 백성들 상대로 노략질을 해대는 바람에 내보냈다고도 한다.

이에 북쪽으로 원소에게로 가니, 원소는 여포와 함께 기주 상산국에서 장연을 공격했다. 장연은 정병 1만 남짓에 기병이 수천에 이르렀다. 여포는 적토마라 불리는 좋은 말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친근하게 지내던 성렴, 위월 등과 함께 적의 예봉을 꺾고 적진에 돌진하여 마침내 장연군을 격파했다.

조만전에 따르면 그때 사람들이 말했다.

사람 중에 여포가 있고 말 중에 적토가 있다.[10]

그리고 군사들을 구해 더욱 늘리고 장졸들이 노략질을 일삼으니, 원소가 이를 근심하고 꺼렸다. 여포가 그 뜻을 알아채고 원소로부터 떠날 것을 청했다.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는 자신이 원씨에게 공(功)이 있다하여 원소 휘하의 제장들을 업신여기며 오만하게 굴고 그들의 관직이 함부로 서치(署置)한 것이라 하여 족히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11] 여포가 낙양으로 돌아간다고 청하자 원소는 여포를 영 사례교위로 삼았는데, 겉으로는 응당 보내줄 것이라 말했으나 내심으로는 여포를 죽이려 했다.[12]

원소는 그가 돌아와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하여 밤중에 장사를 보내 여포를 습격해 죽이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영웅기에 따르면 다음 날, 여포가 출발하려 할 때 원소는 갑옷을 입은 병사 30인을 보내며 여포를 전송하는 것이라 말했다. 여포는 그들을 장막 옆에 멈추게 하고 거짓으로 사람을 시켜 장막 안에서 을 연주하게 했다. 원소의 군사들이 누워있자 여포는 머지않아 장막을 나와 떠났는데 원소의 군사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밤중에 거사하여 여포의 이불을 베고는 여포를 죽인 것으로 여겼다. 다음 날, 원소가 알고 있는 사실을 캐어물어 여포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게 되자 이에 성문을 닫았다. 여포는 마침내 군을 이끌고 떠났다.

그 일이 드러나자 여포는 하내로 달아나 장양과 합쳤다. 원소는 군사들에게 이를 추격하게 했는데 모두 여포를 두려워하여 감히 가까이 다가가려는 자가 없었다.

여포가 원소를 버리고 장양을 좇으려 할 때 장막에게 들렀는데, 서로 헤어질 때 손을 잡고 맹세하니 원소가 이 일을 듣고 크게 원한을 품었다. 장막조조가 끝내 원소를 위해 자신을 해치리라 생각하고 내심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였다. 이전에 장막은 원소에게 축출당한 한복을 보호한 이력으로 원소와의 사이가 틀어진 상태였으며, 조조는 이 시절에 원소 연합의 일원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코 무시하지 못할 걱정이었다.]

영웅기에 따르면 장양과 그의 부곡(部曲), 제장들은 이각, 곽사의 현상 수배를 받자 함께 여포를 도모하려 했다. 여포가 이를 듣고 장양에게 말했다.

나는 경의 동향이니 경이 나를 죽이더라도 경에게는 미약할 것이오. 차라리 나를 산 채로 붙잡아 팔아넘기느니만 못하니, 그리 한다면 가히 이각, 곽사에게 지극한 관작과 총애를 얻을 것이오.

이에 장양은 겉으로는 이각, 곽사에 따르는 것처럼 했으나 실제로는 여포를 보호했다. 이각, 곽사는 이를 우려하여 다시 크게 봉하는 조서를 내리고 여포를 영천태수로 삼았다.

194년, 조조가 다시 도겸을 정벌하자 장막의 동생 장초는 조조의 장수 진궁, 종사중랑 허사, 왕해와 함께 조조에게 모반할 것을 공모했다. 진궁이 장막을 설득하며 말했다.

지금 연주는 군사들이 동쪽을 정벌하느라 비어있습니다. 여포는 장사로 싸움을 잘해 앞을 가로막을 자가 없으니 만약 잠시 그를 맞아들여 함께 연주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장막이 이를 따랐다.

당초 조조는 진궁에게 군을 이끌고 동군에 남아 주둔하도록 했는데, 마침내 그 군사들로 동쪽으로 여포를 맞아 연주목으로 삼았다. 군현이 모두 호응했고 다만 견성, 동아, 범현만이 조조 편에 남아 수비했다.

조조가 군을 이끌고 돌아와 복양에서 여포와 싸웠는데 조조 군이 불리하여 백 여 일을 서로 대치했다. 이 해는 날이 가물었고 황충이 일어 곡식이 부족해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을 지경이라 여포는 동쪽으로 가서 산양에 주둔했다.

무제기에 따르면 195년 여름, 여포의 장수 설란, 이봉이 연주 산양군 거야현에 주둔했다. 조조가 이를 공격하자 여포가 설란을 구원했는데, 설란은 패하고 여포는 달아났고 마침내 진란 등을 참수했다. 여포는 다시 산양군 동민현에서부터 진궁과 함께 만여 명을 이끌고 와서 싸웠다. 이때 조조의 군사들이 적었는데 복병을 설치하고 기습부대를 풀어 공격하여 이를 대파하니 여포는 밤중에 달아났다.

2년 사이에 조조는 여러 성들을 모두 되찾았고, 연주 산양군 거야현에서 여포를 격파하니 여포는 동쪽으로 유비에게로 달아났다.

장막은 여포를 뒤따르며 장초를 남겨 가속들을 거느리고 진류군 옹구현에 주둔하도록 했다. 조조가 이를 공격해 몇 달 동안 포위하여 함락하고 장초와 그 가속들을 참수했다. 장막은 원술에게 가서 구원을 청하려다 미처 도착하기 전에 자신의 군사에게 죽임을 당했다.

2.5. 서주에서

진군전에 따르면 유비는 예주자사로 임명된 후, 진군을 불러서 별가로 삼았다. 이때 도겸이 병사하였으므로, 서주에서는 유비를 환영하였다. 유비는 가려고 했는데, 진군이 충고의 말을 했다.

원술은 아직도 세력이 강대하므로 지금 동쪽으로 간다면 반드시 그와 싸우게 될 것입니다. 여포가 만일 장군의 뒤를 습격한다면, 장군은 설령 서주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일은 반드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결국 간언을 무시하고 서주로 갔고, 원술과 충돌했다.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는 유비를 만나보고 그를 매우 공경했다. 유비에게 말했다.

나는 경과 더불어 같은 변경 땅 사람이오. 나는 동탁을 주살하고자 한 것인데, 내가 동탁을 죽이고 동쪽으로 나오니 모두 나를 죽이려고 했소.

유비를 청해 장막 안의 부인의 상(床) 위에 오르게 하고는, 부인에게 절하도록 하고 술을 따르며 먹고 마시고 유비를 동생이라 불렀다. 유비는 여포의 말이 수시로 변함을 보고 겉으로는 태연한척 했으나 내심 언짢게 여겼다.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가 물과 뭍으로 동쪽으로 내려와 하비 서쪽 40리 되는 곳에 도착했다. 유비의 중랑장 단양 사람 허탐은 밤을 틈타 사마 장광(章誑)을 여포에게로 보냈다. 그가 말했다.

장익덕(장비)이 하비상 조표와 서로 다투어 익덕이 조표를 죽이니 성중에 대란이 일어 서로 믿지 못합니다. 단양병 천 명이 서쪽 백문성 안에 주둔하고 있는데 장군께서 동쪽으로 왔다는 말을 듣고 모두 기뻐하고 있습니다. 장군의 군사들이 성 서문으로 향하면 단양군이 즉시 성문을 열어 장군을 안으로 들여보낼 것입니다.

이에 여포는 밤중에 진격하여 새벽에 성 아래에 도착했다. 날이 밝자 단양병이 성문을 열어 여포의 군사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여포는 성문 위에 앉아 보병과 기병으로 불을 놓아 익덕의 군을 대파하고, 유비의 처자식과 군자금, 부곡(部曲), 제장들의 가족을 노획했다.

유비가 동쪽으로 가서 원술을 공격하자 여포는 하비를 습격해 차지하고, 유비가 되돌아가 여포에 귀의했다.

선주전 주석 위서에 따르면 제장들이 여포에게 말했다.

유비는 여러 차례 언행을 이리저리 바꾸었으니 믿고 기르기 어렵습니다. 의당 조기에 도모해야 합니다.

여포가 들어주지 않고 이 일을 유비에게 말했다. 유비는 내심 불안하여 스스로 의탁할 것을 청하고, 사람을 시켜 여포를 설득해 소패에 주둔하기를 원했다. 이에 여포가 유비를 소패로 보냈다.

여포는 유비를 소패에 주둔하게 하고, 서주자사를 자칭했다.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가 처음 서주에 들어왔을 때 원술에게 서신을 보냈다. 원술이 답서를 보내 말했다.

  • 지난 날, 동탁이 난을 일으켜 나의 문호(門戶)에까지 해를 입혔는데, 장군이 동탁을 주살하고 그 수급을 보내니 그 공이 첫째요.
  • 지난 날, 장수 김원휴(김상)가 연주에 이르렀을 때 조조에게 격파되어 거의 멸망할 지경에 이르렀소. 장군이 연주를 격파해 다시 내 면목을 세워주니 그 공이 두 번째요.
  • 유비가 거병해 나와 싸웠소. 내가 장군의 명령을 어김에 힘입어 유비를 격파했으니 그 공이 세 번째요.

장군은 내게 이 세 가지 큰 공을 세워주었으니 받들겠소. 장군은 여러 해 동안 싸우느라 군량이 부족하여 쌀 20만 곡을 보내니 맞이해 주시오.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응당 다시 끊이지 않게 보낼 것이오. 만약 병기와 싸움 도구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크건 작건 오직 명하기 바라오.

여포가 이 서신을 읽고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하비로 갔다.

장광전 주석 오서에 따르면 여포가 서주를 습격해서 서주목이 되고 장굉손책과 같이 일하지 못하도록 하고자했다. 그래서 여포는 장굉을 무재로 추천하며 편지를 써서 장굉을 보내도록 했다. 장굉은 여포를 싫어했고 또한 그에게 굴복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손책 역시 장굉을 중히 여기고 있었고 자신을 위해 일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여포에게 편지를 써 보내면서 장굉을 보내지 않았다.

원술이 장수 기령 등과 보병과 기병 3만을 보내 유비를 공격하니 광릉에서 대패한 유비는 여포에게 항복하며 구원을 청했다. 여포의 제장들이 여포에게 말했다.

장군은 늘 유비를 죽이고자 했으니 이제 가히 원술의 손을 빌릴 만합니다.

여포가 말했다.

그렇지 않소. 원술이 만약 유비를 격파하면 북쪽으로 태산같은 제장들과 연결될 것이니 나는 원술에게 포위당하게 되오. 구원하지 않을 수 없소.

곧 보병 1천, 기병 2백을 엄비해 급히 유비에게로 나아갔다. 기령 등은 여포가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모두 군을 거두고 감히 다시 공격하지 못했다. 여포는 패(沛) 남서쪽 1리 되는 곳에 둔치고 시종 군사를 보내 기령 등을 청하니 기령 등이 또한 여포를 청해 함께 먹고 마셨다. 여포가 기령 등에게 말했다.

현덕(유비)은 내 동생이오. 동생이 제군에게 곤란을 겪으니 이 때문에 구원하러 왔소이다. 내 성정이 어울려 싸우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나 다만 싸움을 화해시키는 것은 좋아하오.무시무시한 캐릭터 붕괴 발언이다 언행을 이리저리 고친다는 캐릭터 설정에는 충실할지도

여포는 문지기 관원에 명해 영문에 극 하나를 세우게 했다. 여포가 말했다.

제군은 내가 극의 가지창 부분을 쏘는 것을 보시오. 적중하면 제군은 응당 화해한 후 떠나고 적중하지 않으면 남아서 결투하시오.

여포가 활을 들어 극을 쏘았는데 극의 가지창 부분을 정확히 맞혔다. 제장들이 모두 놀라 말했다.

장군은 제왕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다음 날, 다시 연회를 베푼 뒤 각자 군을 물렸다.

영웅기에 따르면 고순은 사람됨이 청렴결백하고 위엄이 있었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선물을 받지 않았다. 칠백 여 군사를 거느렸으나 천 명이라 일컬었는데, 갑옷, 싸움 도구가 모두 잘 연습하고, 정돈하여 가지런히 하고 매번 공격할 때마다 격파하지 못함이 없으니 함진영(陷陳營)이라 불렀다. 고순이 매번 여포에게 간언했다.

장군께서 몸을 움직이실 때 치밀히 생각하지 않고 번번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길 좋아하시니 그런 잘못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여포는 그의 충성됨을 알았으나 능히 쓰지는 못했다.

196년 6월, 밤중에 하내 출신인 여포의 장수 학맹이 반란을 일으켜 군사들을 이끌고 여포의 치소인 하비부로 쳐들어왔다. 청사의 합문 밖에 이르러 함께 함성을 지르며 합문을 공격했는데, 문이 견고해 들어가지 못했다. 여포는 반란을 일으킨 자가 누군지 몰랐기에 곧바로 부인을 이끌고 관을 쓰지 않은 맨머리에 옷을 갖춰 입지 못하고 측간으로 들어가 벽을 밀어내고 빠져나갔고, 도독 고순의 군영으로 가 고순의 군영 문을 곧바로 밀어젖히고 들어갔다.

고순: 장군께서 말하지 않은 것이 있지 않으십니까?

여포: 하내 놈들의 말소리였소.

고순: 이는 학맹이로군요.

고순은 즉시 엄병(嚴兵)하여 하비부로 들어가 학맹의 군사들에게 일제히 궁노를 쏘았다. 학맹의 군사들은 어지러워져 패주했는데 날이 밝자 그들의 군영으로 되돌아갔다. 학맹의 장수 조성이 학맹에게 반기를 드니, 학맹은 조성을 찌르고 조성은 학맹의 한쪽 어깨를 찍었다. 고순이 학맹을 참수하고는 조성을 수레에 태워 여포에게로 보냈다. 여포가 묻자 조성이 대답했다.

학맹은 원술의 모책을 받들었습니다.

함께 모의한 자가 모두 누구인지 묻자 조성이 말했다.

진궁이 공모했습니다.

이때 진궁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얼굴이 붉어져 곁에 있던 사람들이 알아차릴 정도였다. 여포는 진궁이 대장이므로 이를 불문에 부쳤다.

조성: 학맹이 늘 이에 관해 물었으나 저 조성은 여장군은 대장으로 비범하니 공격할 수 없다고 했으나 뜻밖에 학맹이 미쳐서 혹되어 그치지 못했습니다.

여포: 경이 건아(健兒)요!

조성을 잘 치료하고 보살폈고 상처가 다 낫자 학맹의 옛 군영을 사정을 살펴서 어루만져 위로하고 그 군사들을 거느리게 했다.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는 학맹의 반란을 진압한 후 다시 고순을 소원하게 대하고 위속이 안팎의 친척이라 하여 고순이 거느리던 군사들을 모두 빼앗아 위속에게 주었다. 그러다 싸움이 있게 되자 영을 내려 위속이 거느리던 군사를 고순이 이끌게 했는데 고순은 또한 끝내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않았다.

원술은 여포와 결탁해 원군으로 삼고자 하여, 이에 자신의 아들(원요)을 위해 여포의 딸(여씨)을 청하니 여포가 이를 허락했다. 원술은 사자 한윤을 보내 제호를 참칭한 일에 관해 여포에게 고하고 아울러 며느리를 맞이하고자 했다.

패상 진규는 원술과 여포가 혼인으로 맺어지면 서주와 양주가 굳게 맹세하여 서로 응하는 것이니 장차 나라 전체의 어려움이 되리라 여겼다. 이에 여포에게로 가서 설득했다.

조조가 천자를 봉영해 국정을 보좌하니, 장군께서는 의당 그와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지금 원술과 혼인을 맺으면 천하에 불의의 이름을 덮어쓰게 되니 필시 누란지위가 있을 것입니다.

여포는 또한 원술이 당초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은 일에 원망을 품고 있었으므로, 딸이 이미 길을 떠났으나 이를 뒤쫓아 되돌아오게 하여 혼인을 끊고, 한윤을 형구에 묶어 보내니 허도의 저자거리에 참수되어 목이 내걸리게 되었다.

영웅기에 따르면 당초 천자(헌제)가 하동에 있을 때 손수 붓으로 판서를 써서 여포에게 와서 영접하도록 했다. 여포의 군에는 비축된 양식이 없어 능히 응하지 못하니 사자를 보내 글을 올렸다. 조정에서는 여포를 평동장군으로 삼고 평도후에 봉했는데, 사자가 산양의 경계에서 문서를 잃어버렸다. 또한 조조가 손수 서신을 보내 여포를 후하게 위로하고 몸을 일으켜 천자를 영접하여 응당 천하를 평정할 뜻을 품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조서를 내려 공손찬, 원술, 한섬, 양봉 등을 상을 걸고 체포했다.

진규는 아들인 진등을 조조에게 사자로 보내고자 했으나 여포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때마침 사자가 당도해 여포를 좌장군에 임명하자, 여포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진등이 가는 것을 들어주고, 아울러 장(章)을 받들고 가서 은혜에 감사하게 했다.

진등이 조조를 접견하며 진술했다.

여포는 용맹하나 꾀가 없고 행동거지가 가벼우니 의당 조기에 도모해야 한다.

조조가 말했다.

여포는 이리 새끼와 같은 야심을 가진 자로 실로 오래도록 기르기 어려우니, 경이 아니면 누가 능히 그 실체를 통찰할 수 있겠소.

이에 진규의 관질을 중(中) 2천석으로 올리고 진등을 광릉태수로 삼았다. 헤어질 때 조조는 진등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동쪽의 일은 경에게 부탁하오.

그리고 진등에게 명해 은밀히 부하의 무리를 모아 내응하도록 했다.

당초 여포는 진등이 서주목을 받아오기를 원했었는데, 진등이 돌아오자 분노하여 극을 뽑아 탁자를 찍으며 말했다.

경의 부친이 내게 조조과 협력하길 권하여 공로(원술)와의 혼사도 끊었소. 내가 구하던 것은 지금 하나라도 얻은 것이 없는데, 경의 부자는 나란히 지위가 오르고 권세가 중해졌으니 경이 나를 팔아먹은 것이오!

진등이 태연하게 천천히 여포를 깨우치듯 말했다.

제가 조조를 만나 장군을 대우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호랑이를 기르는 것과 같아 고기를 배불리 먹여야 하니, 배부르지 않으면 장차 사람을 해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조조가 비유하자면 매를 기르는 것과 같아서 배가 고프면 부릴 수 있으나 배가 부르면 날아가 버릴 것이라 했습니다.

이에 여포가 노기를 풀었다.

여포가 크게 기뻐하며 다시 사자를 보내 천자에게 글을 올렸다.

신이 예전에 조조와 더불어 싸웠기에, 이제 조조가 폐하를 보위하고 보좌하니 스스로 뒤따르려 했으나 의심과 원한이 남아있을까 두려워 서주에 있으며 스스로 안녕하지 못합니다.

조조에게 답서를 보냈다.

내가 남에게 죄를 지었으나 손수 노고를 위로받고 후하게 칭찬과 장려를 받았소. 거듭 원술 등을 상을 내걸고 범인을 잡으라는 조서를 받았으니 나는 목숨을 다해 힘쓰겠소.

조조는 다시 봉거도위 왕칙을 사자로 보내 조서와 평동장군의 인수를 가지고 가서 여포를 임명하게 했다. 또한 조조가 손수 써서 여포에게 보낸 서신에서 말했다.

원술이 천자를 칭하니 장군이 이를 제지하고 원술의 장(章)이 통하지 못하게 했소. 조정에서는 장군을 믿고 있고 거듭 중임했으니 서로 충성을 밝히도록 합시다.

이에 여포가 진등을 보내 장(章)을 받들고 가서 은혜에 감사하게 하고, 아울러 좋은 인끈 하나를 보내 조조에게 답례했다.

원술이 분노하여 한섬, 양봉 등과 세력을 연결하고 대장 장훈을 보내 여포를 공격했다.

여포: 지금 원술 군이 쳐들어온 것은 경 때문이오. 이 일을 어찌해야 되겠소?

진규: 한섬, 양봉과 원술은 졸지에 합해진 군사일 뿐입니다. 책략이 평소에 정해져 있던 것도 아니니 능히 서로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제 아들인 진등이 이미 이를 헤아렸으니, 가히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여포가 진규의 계책을 채용해 사람을 보내 한섬, 양봉을 설득하길, 자신과 힘을 합해 원술 군을 공격하고 빼앗은 군자금은 모두 한섬, 양봉에게 준다고 했다.

구주춘추에 따르면 여포가 한섬, 양봉에게 서신을 보냈다.

지금 원술이 반역하니 함께 토벌해야 하는데, 어찌 힘을 합해 도리어 이 여포를 공격하시오? 나는 동탁을 죽인 공이 있어 두 장군과 더불어 공신이오. 함께 원술을 공격해 공을 세울 만하니,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되오.

한섬, 양봉이 이 서신을 받고 계획을 바꿔 여포를 따랐다. 여포가 진군하여 장훈 등의 둔영과 백보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한섬과 양봉의 군사들이 동시에 공격해 열 명의 장수를 참수하고, 살상되고 물에 떨어져 죽은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원환전에 따르면 여포가 부릉(阜陵)에서 원술을 공격하자, 원환은 먼저 원술을 따라가려고 했으나, 여포에게 억류되었다.

영웅기에 따르면 그 뒤 여포는 또 한섬, 양봉의 2군과 함께 양주 구강군 수춘현으로 향하니, 물과 뭍으로 아울러 진격하며 지나는 곳마다 노략했다. 양주 구강군 종리현에 이르러 크게 노획하고 되돌아갔다. 회수를 건너 그 북쪽에 도달한 뒤 원술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귀하는 군이 강성한 것을 믿고 늘 호언하기를, 맹장, 무사들을 억제한다고 하셨소. 내가 회수 남쪽에서 한 때의 시간동안 거닐으나 귀하는 수춘에 쥐새끼처럼 숨어 있고 고개를 내미는 자 조차 없으니 맹장, 무사들은 모두 어디에 있단 말이오? 귀하는 큰소리 쳐서 천하를 속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찌 천하인들을 모두 속일 수 있겠소?

여포 군이 모두 건넌 뒤에 원술이 친히 보병과 기병 5천을 일으켜 이를 이끌고 회수 가에 이르자, 여포의 기병들이 모두 회수 북쪽에서 크게 비웃은 뒤 되돌아갔다.

선주전에 따르면 양봉, 한섬은 서주, 양주 사이에서 도적질했는데, 유비가 이를 격퇴하고 모두 참수했다. 유비는 여포에게 화친을 구하고 여포는 유비의 처자를 되돌려 보냈다.

이때 동해 사람 소건이 낭야상이 되어, 서주 낭야국 거현를 치소로 삼고 성을 보전해 스스로 지키며, 여포와 서로 통하지 않았다. 여포가 소건에게 서신을 보냈다.

거는 하비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의당 서로 통해야 하오. 그리하지 않는 그대는 마치 스스로 황제 노릇하고 왕 노릇하는 것과 같소이다. 내 서신을 받거든 지혜로운 자들과 잘 의논해보도록 하시오.

소건이 서신을 받자 주부(主簿)를 보내 서신을 지니고 가게하고 좋은 말 다섯 필을 바쳤다. 그 뒤 장패가 소건을 습격하여 격파하고 소건의 군수물자를 빼앗았다. 여포가 이 일을 듣고 친히 보병과 기병을 이끌고 거현으로 향했다. 고순이 간언했다.

장군께서 몸소 동탁을 주살하여 위세를 떨쳤으니 자연 두려워서 복종할 것입니다. 가벼이 친히 출군해서는 안 됩니다. 혹 이기지 못한다면 명성을 손실함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여포는 이에 따르지 않았다. 장패는 여포의 노략질을 두려워하여 과연 성 위로 올라가 맞서니 여포는 이를 함락하지 못하고 군을 이끌고 하비로 되돌아왔다. 그 뒤 장패는 여포와 다시 화해했다.

원환전에 따르면 여포는 처음에는 유비와 친하게 지냈으나, 나중에 틈이 벌어졌다. 여포가 원환에게 유비를 꾸짖고 모욕하는 편지를 쓰게 하고자 했으나, 원환은 응하지 않았다. 여포가 두세 차례 그에게 강요했으나, 원환이 허락하지 않자 매우 화가 나서 무기로 위협하며 말했다.

이 일을 하면 살려주고, 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원환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유비가 정말로 군자라면, 장군의 말에 치욕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유비가 소인이라고 해도 장차 장군의 생각에 대해 보복할 것이니, 치욕은 이쪽에 있는 것이지, 그 쪽에 있는 것이 아니오. 하물며 나 원환이 다른 날 유장군(유비)을 섬겼던 것은 마치 오늘 장군을 섬기는 것과 같은 이치요. 만일 내가 하루 아침에 이곳을 떠나 장군을 욕하면 괜찮겠소?

여포는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 그만두었다.

2.6. 최후

선주전 주석 영웅기에 따르면 198년 봄, 여포는 사람을 시켜 금을 지니고 사례 하내군으로 가서 말을 사오게 했는데, 유비의 군사들에게 약탈당했다. 이로 말미암아 여포는 중랑장 고순, 북지태수 장료 등을 보내 유비를 공격했다.

198년, 여포가 다시 모반하여 원술 편에 서고, 고순을 보내 패(沛)에서 유비를 공격해 격파했다. 조조하후돈을 보내 유비를 구원했으나 고순에게 패했다.

선현행장에 따르면 조조가 하비에 도착하자 진등은 광릉군의 군사들을 이끌고 군의 선두에 섰다. 이때 진등의 동생들이 하비성 안에 있었는데 여포는 진등의 세 동생을 볼모로 잡고 화친하기를 청했다. 진등은 뜻을 굳게 지키며 흔들리지 않으니, 진격하여 포위함이 날이 갈수록 급박해졌다. 여포의 자간(刺姦) 장홍(張弘)은 뒤에 처벌받을까 두려워하여 밤중에 진등의 세 동생을 이끌고 달아나 진등에게로 나아갔다.

조조가 친히 여포를 정벌해 그 성 아래에 도착하고 여포에게 서신을 보내 재앙과 복에 관해 진술했다. 여포는 항복하고자 했으나 진궁 등이 스스로 죄가 깊었으므로 그 계책을 저지했다.[13]

헌제춘추에 따르면 조조군이 팽성에 이르자

진궁: 역격하여 편안히 쉰 군으로 지쳐있는 군을 들이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여포: 저들이 와서 공격할 때를 기다려 사수 속으로 몰아넣는 게 더 낫소.

조조군의 공격이 급박해지자 여포는 백문루 위에서 군사들에게 말했다.

여포: 경들은 서로 공격하지 마시오. 나는 응당 명공에게 자수할 것이오.

진궁: 역적 조조가 어찌 명공과 같습니까![14] 오늘 항복하는 것은 계란을 바위에 던지는 것과 같으니 어찌 몸을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가 허사, 왕해를 보내 원술에게 위급함을 고했다.

원술: 여포가 내게 딸을 보내지 않았으니 이치상 패하게 되어 있소. 어찌 다시 와서 알리는 것이오?

허사와 왕해: 명상(明上)께서 지금 여포를 구원하지 않으면 실패를 자초하게 됩니다! 여포가 무너지면 명상 또한 무너질 것입니다.

이때 원술이 제호를 참칭했으니 이 때문에 그를 명상(明上)이라 부른 것이다. 이에 원술은 엄병(嚴兵)하여 여포를 성원했다. 여포는 자신이 딸을 보내지 않은 일로 원술이 구원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비단으로 딸의 몸을 얽어 말 위에 묶은 뒤 밤중에 친히 딸을 데리고 나가 원술에게 보내려 했는데, 조조의 군사들과 조우해 그들이 활을 쏘며 가로막아 통과할 수 없자 다시 성으로 돌아왔다.

여포가 사람을 보내 원술에게 구원을 청하고 스스로 천여 기를 이끌고 출전했다 패주하고 성으로 돌아가 보전하고 감히 출성하지 못하였고 원술 또한 능히 구원하지 못했다.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는 진궁, 고순에게 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기병을 이끌고 출격해 조조의 군량 수송로를 끊으려 했다. 여포의 처(엄씨)가 말했다.

진궁, 고순은 평소 서로 불화하니 장군께서 한번 나가시면 진궁, 고순은 필시 합심하여 함께 성을 지키지 못할 것입니다. 첩이 옛날 장안에 있을 때 이미 장군에게 버림받았으나 다행히 방서가 사사로이 첩의 몸을 숨겨주었으니, 지금 첩을 돌볼 필요는 없습니다.

여포는 처의 말을 듣고 고민하며 결단하지 못했다.

위씨춘추에 따르면 진궁이 여포에게 말했다.

조조가 멀리서 왔으니 사세상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장군께서 밖에서 세력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안에서 성문을 닫고 수비하다가, 적군이 장군께로 향한다면 제가 그 배후를 치고, 성을 공격한다면 장군께서 밖에서 구원하면 됩니다. 열흘을 지나지 않아 적군의 군량이 다할 것이니 이를 들이치면 격파할 수 있습니다.

여포가 이를 옳게 여겼다.

여포의 처: 지난 날 조씨(조조)는 공대(진궁)를 어린아이처럼 귀하게 대했는데도 오히려 그를 버리고 우리에게로 왔습니다. 지금 장군이 공대를 대우함이 조조보다 더 후하지 않은데, 성 전부를 그에게 맡긴 채 처자를 버리고 멀리 나가려 하십니다.

이에 여포가 그만두었다.

순유전에 따르면 조조의 군은 하비까지 이르렀는데 여포가 퇴각하여 굳게 지키니, 공격해도 함락시키지 못하고 연이어 싸우다 보니 병사들은 피로해져 조조는 돌아가려 했다. 순유곽가가 말했다.

여포는 용맹하나 지모가 없는데, 지금 세 번 싸워 모두 패배하였으니 그 예기(銳氣)가 쇠퇴하였습니다. 무릇 진궁에겐 지모가 있으나 더디니, 지금 여포의 기세가 다시 회복하지 못했고 진궁의 지략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때에 진군하여 급히 공격하면 여포군을 가히 함락시킬 수 있습니다.

이에 기수와 사수를 끌어 성쪽으로 물을 대니, 성에서 물이 넘쳐나 여포를 사로잡았다.

구주춘추에 따르면 당초 여포의 기병의 장수 후성은 객(客)을 시켜 말 15필을 방목하게 했는데, 객이 이 말들을 모두 몰고 떠나 패성으로 향하면서 유비에게 귀부하려고 했다. 후성은 스스로 기병을 이끌고 이를 뒤쫓아 말들을 모두 되찾아 돌아왔다. 제장들이 모여 하례하자 후성은 5~6곡의 술을 빚고 사냥해서 잡은 10여 두의 돼지를 내놓았는데 먹고 마시기 전에 먼저 돼지 반 마리와 다섯 두의 술을 가지고 여포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장군의 은덕으로 잃어버렸던 말을 뒤쫓아 되찾았습니다. 제장들이 와서 하례해서 직접 술을 조금 빚고 사냥으로 잡은 돼지를 내놓았습니다. 감히 먹고 마시기 전에 먼저 작으나마 장군께 바칩니다.

여포가 대노해 말했다.

내가 술을 금했는데 경은 술을 빚어 제장들과 형제처럼 함께 먹고 마시니, 나를 죽이기로 공모라도 하는 것이오?

후성이 크게 두려워하며 떠났다. 빚은 술을 버리고 제장들을 되돌려 보냈다. 이로 말미암아 스스로 의심을 품게 되었고, 조조가 하비를 포위하자 후성은 마침내 군사들을 이끌고 항복했다.

여포가 비록 사납고 용맹했으나 꾀가 없고 의심하고 꺼림이 많아 그 무리들을 능히 제어하지 못하고 다만 제장들을 믿고 의지했는데, 제장들은 각각 뜻이 달라 스스로 의심하니 이 때문에 매번 싸울 때마다 패전이 많았다. 조조가 참호를 파고 성을 포위한지 석 달이 지나자 위아래의 마음이 흐트러지니, 여포의 장수 후성, 송헌, 위속진궁을 포박하고 그 군사들을 이끌고 투항했다.

결국 여포는 그 휘하들과 함께 백문루에 올랐으나 군사들이 둘러싸 위급해지자 끝내 내려와서 항복하니, 마침내 여포를 사로잡았다. 이렇게 사로잡힌 여포는 흔히 알려진 대로 교수형을 당하는데, 처형을 당하기 직전까지도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비굴하게 간청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여포: 묶은 것이 너무 조이니 조금 느슨하게 해 주시오.

조조: 범을 묶는데 꽉 조이지 않을 수 없다.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 내가 제장들을 후대했으나 제장들은 위급해지자 모두 나를 배반했소.

조조: 경은 처를 저버리고 제장들의 부인을 사랑했으면서 어찌 후대했다 하시오? 조조가 할 말은 아닌듯

여포는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헌제춘추에 따르면

여포: 명공은 어찌 이렇게 수척해 지셨습니까?

조조: 그대가 어찌 나를 알아보시오?

여포: 예전 낙양에 있을 때 온씨원에서 만났습니다.

조조: 그렇소. 내가 그 일을 잊었었소. 내가 수척해 진 것은 좀 더 빨리 그대를 사로잡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했기 때문이오.

여포: 지금 나 여포로 하여금 힘을 다하게 한다면 공의 선봉이 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꽉 조이게 포박되어 있었으므로 유비에게) 현덕, 경은 빈객으로 앉아 있고 나는 사로잡힌 포로 신세가 되었구려. 느슨하게 묶어달라고 한 마디 해줄 수 없겠소?

조조: (웃으며) 어찌 내게 말하지 않고 밝은 사군(明使君, 유비)에게 호소하시오? (여포를 살려주려는 뜻을 품고 포박을 느슨하게 해주라 명한다.)

왕필: (달려와 진언) 여포는 사나운 포로이고 그 무리들이 가까이 밖에 있으니 느슨하게 해주면 안 됩니다.

조조: 본래 느슨하게 해주려 했으나 주부가 말을 듣지 않으니 어찌하겠소?

정사 삼국지 본전에 따르면 여포의 최후는 다음과 같았다.

여포: (청하며) 명공(明公)이 근심하던 것이 나 여포인데 이제 내가 이미 항복했으니 천하에 걱정할 게 없소이다. 명공이 보병을 이끌며 내게 기병을 이끌게 한다면 어찌 천하를 평정하지 못하겠소이까?

조조: (의심하는 기색을 띤다.)

유비: 명공은 여포가 정건양동 태사를 섬기던 일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이에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한서 여포열전에 따르면 여포가 유비를 노려보며 말했다.[15]

귀 큰 놈(大耳兒)이 가장 믿지 못할 놈이다!

이에 여포를 목을 매어 죽였다. 여포는 진궁·고순 등과 함께 모두 효수되어 허도로 보내졌고 그 뒤 매장되었다.

장료전에 따르면 조조가 하비에서 여포를 깨뜨리자 장료는 병사들을 정돈한 뒤 자신의 군을 이끌고 조조에게 투항했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미남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정사에선 외모에 대한 서술이 없다. 또 여포가 방천화극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지만 화극과 같은 형태의 무기는 송나라 시대 이후에야 비로소 등장하며 살상용으로는 실용성이 떨어져 제사 의식용으로 많이 쓰였다. 그러니까 연의의 창작. 정사에서 여포가 을 세워서 을 쏘아 맞춘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착안한 걸로 보인다.

처음에 정원이 여포의 양아버지로 나온다. 정사에서 여포가 양아버지로 섬긴건 동탁 뿐인데 여포의 의리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정원도 양아버지로 설정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숙도 여포와 고향 친구라는 설정이 붙었고 동탁의 적토마를 여포에게 주어 여포를 매수, 여포는 양아버지 정원을 죽이고 동탁에게 귀부한다.

삼영전여포는 창작된 장면이지만 여포를 최강 무력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장비가 여포와 50합정도 싸웠는데 밀리지 않았다. 관우가 중간에 끼어들고 유비도 끼어들어 여포는 유비 삼형제와 3:1로 붙으면서 수십합을 싸운다. 이후 관우, 장비가 불세출의 무장으로 묘사되니 그들과 싸운 여포도 엄청 강하게 인식되었다. 본래 연의에서는 이 장면에서 유비의 무용이 뒤떨어진다는 묘사는 없으나 유비는 이후 무력을 강조하는 묘사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몇몇 판본에서는 유비가 망쳤다는 묘사도 나온다.

하지만 이건 현대인의 관점으로 당시 군담소설의 경우 확실한 힘의 우위를 정하는 주제로 보지 않았다. 이는 분위기에 따라 대결의 결과가 나온다는건데 이후 장비가 홀로 여포와 100합을 겨루는것으로 알 수 있다. 즉, 여포의 힘이 유관장 3명을 합친것과 맞먹는 능력을 지녔다는걸 강조하기 위해 넣은 장면이 아니라, 유관장 3형제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게 하기 위한 장치로 보는것이 옳다. 물론 여포가 장비와 동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된걸로 보아 최강급의 힘을 지니고 있는것은 확실하나, 3명을 감당해내는것은 코에이식 삼국지의 영향을 많이받은 현대 사람들에겐 이해가 안되어도 당시의 방식으로는 오히려 세력도 없는 3인방이 고루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 이들에게 포커스를 맞추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 실제로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연의 최강의 장수를 여포로 생각하는것과 달리,[16] 중국인들에게 누가 최강의 무장이냐 물어보면 십중팔구 '관공'이라고 답하는 것을 볼 수 있다.[17]

장비가 여포를 욕한 유명한 표현이 있는데 바로 호뢰관에서 여포와 싸울 때 여포를 욕한 '세 성 가진 종놈(三姓家奴)'[18]. 원래 여씨인데 양부로 정원과 동탁을 모셨기에 성이 세 개라는 이유로 이렇게 욕한 것이다. 보통 이건 재혼을 여러 번한 모친에 대해 사용하는 욕이다.

왕윤이 여포에게 금관(金冠)을 선물하고 여포를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정사에서 여포는 금관을 썼다는 묘사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 장면 때문인지 여러 미디어 매체에서 여포가 더듬이(?)가 달린 금관(金冠)을 쓰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19]

연의에서는 여포가 동탁을 배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왕윤의 미인계라고 설명하나, 초선의 존재를 포함하여 그것은 허구에 가깝다. 초선은 정사에서 여포와 눈이 맞은 시녀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라 볼 수 있다. 연의에서 완전한 형태로 완성된 연환계는 여포의 캐릭터에 깊이를 더해준 장면. 당시에 이 에피소드의 서술 시 왕윤의 계략에 넘어간 것에서 여포를 띄워줄 의도는 없었겠지만, 초선을 되찾기 위해 동탁을 배신했다는 점이 사랑을 강조하는 현대적인 정서에는 오히려 여포에게 낭만주의자라는 이미지를 더하게 되었다.[20] 그런데 여포는 연의에서도 이미 장가를 가서 딸까지 둔 유부남이라는 설정은 은근히 묻혀지거나 얼렁뚱땅 넘어가진다.

서주를 공격하던 조조를 뒤치기하여 여포와 진궁은 연주를 차지하고 돌아온 조조군과 싸운다. 이 복양 전투에서 신캐 보정을 받은 허저가 여포와 20합을 싸워 밀리진 않았지만, 조조는 여포를 혼자서 꺾을 수 없다며 전위, 하후돈, 하후연, 이전, 악진을 보내면서 여포를 퇴각시킨다. 창작된 장면이지만 6명이랑 맞닥뜨리면서 달아난 자체가 엄청난 무력이긴 하다. 덕분에 여포에게 무력 최강 이미지가 한 번 더 부여됐다.

여포는 유비에게 의탁한다. 유비의 아랫사람인 관우손건 등이 "무엇이 아쉬워서 여포를 받아들이냐?"고 묻자 유비는 "나도 싫기는 하지만, 이러이러하여 어쩔 수 없다."라고 대답한다. 조표의 사위가 여포라는 설정이 붙었다.[21] 유비가 원술을 요격하러 나간 사이 평소 여포를 안 좋게보던 장비가 술에 취해 조표를 때리자 조표는 사위 여포에게 도망간다.(조표가 자기 사위 여포를 봐서라도 용서해달라고 비는데, 장비와 여포는 사이가 나쁘다는 걸 알면서 그랬다면 대놓고 장비를 협박하는 것이고, 몰랐다면 눈치없다는 것으로 작품에서 해석이 된다.) 여포가 서주를 점령하자 유비는 서주를 여포에게 맡기고 자신은 소패로 간다. 그 후 나오는 원문사극 장면은 실제 정사에서도 나오는 에피소드이되, 신용을 잃었다는 원술의 질책을 피하기 위해 하늘의 뜻 운운하는 걸로 약간 각색이 되었다. 뭐 그렇다고 그 말에 넘어갈 원술이 아니지만.

정사에서 여포의 본처는 성씨조차도 나오지 않았지만 연의에서는 엄씨라고 나온다. 연의에서는 기령이 '소불간친지계'라는 이름으로 원술의 아들과 여포의 딸을 혼인시키자는 계책을 내놓으며, 엄씨가 원술과 사돈이 되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유비가 위험해질 것 같다고 여긴 진등의 아버지 진규가 병든 몸으로 직접 여포를 찾아가 반대한다.

나중에 서주성에서 장비가 말도둑질을 했을 때 여포와 장비가 리벤지 매치를 갖는데 여기서는 1대 1로 100합을 넘게 싸웠어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22] 조조군+유비군에게 패퇴된 여포는 하비성에 고립된다. 진궁이 계책을 내지만 본처 엄씨와 첩 초선이 반대하여 무산된다. 원술에게 구원을 요청하지만 원술이 딸부터 보내라고 하자 여포는 딸 여씨를 직접 업고 출전했다 패주한다.

조조군이 하비성을 물에 잠기게 하자 여포는 매일 엄씨와 초선을 끼고 술만 마신다. 자신의 몰골이 추해진 것을 깨달은 여포는 술을 끊고 금주령을 내린다. 그런데 이때 후성이 말들을 도둑맞혔다가 되찾아온 사건이 일어났고, 축하할 목적으로 술은 마시고 싶은데 여포의 금주령이 두려워서 여포에게 특별 허가를 신청했다가 화난 여포에 의해 사형이 내려지며, 주변에서 사정을 빌어 곤장형으로 감형된다. 하여 그날 저녁에 후성은 송헌, 위속과 배신을 모의한 뒤, 여포의 적토마를 훔쳐 투항한다.

이튿날 점심때, 격렬한 싸움 끝에 여포는 지쳐서 잠들었고, 송헌과 위속은 이 틈을 타서 여포를 포박한 뒤에 투항한다. 진궁은 스스로 처형당하길 원했고 고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참수되었다. 여포는 유비에게 자신을 위해 조조에게 말해주라고 하지만 정사처럼 유비는 정원과 동탁의 일을 들먹인다. 이에 여포가 외친다. "귀 큰 놈아! 내가 원문에서 활을 쏴준 것을 잊었느냐!" 정사와 다르게 원문사극의 일화를 언급하는데 원래 마지막 말을 극적으로 강화시키기 위해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원문사극 당시에는 원술의 추궁을 피하기 위해 여포가 "이건 하늘의 뜻이다"라며 강제로 화해시킨 것이였기 때문에 어느쪽으로든 여포에게 불리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연의에서는 장료가 여포에게 죽는 것이 두렵냐면서 일갈하며 조조의 질문에 기백있게 답해서 노한 조조가 장료를 죽이려는 것을 백문루에서 관우유비가 말려 목숨을 건진 뒤 조조의 부하가 된다.

정사에서는 여포가 죽은 후 여포의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연의에서는 엄씨, 초선, 여씨 등 여포의 가족들은 허도로 이송되었다고 나온다. 그럼에도 여포의 가족들은 이후 등장하지 않는다. 딱히 나올 이유도 없긴 하지만.

4. 평가

4.1. 통솔

정사 기준으로 보았을 때 연주 공방전 초반에 당대 군재 최강자 조조를 상대로 야전과 수성전에서 연거푸 패퇴시키는 등 장막의 배신으로 근거지인 연주를 거의 다 잃다시피한 조조를 더 최악의 위기로 몰아붙였던 케이스처럼 전술적으로 제법 뛰어난 면모를 보인 전적도 있고 탁월한 일신의 무용을 앞세워 전황을 반전시키는 등 당대의 이름난 맹장으로 칭송받을 만한 일화도 적지 않게 있다. 또 진궁장막에게 조조한테 반기를 들 것을 설득하며 누구도 당해낼 수 없을 만큼 싸움을 잘하는 여포를 앞세우면 능히 조조를 몰아내고 연주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 것을 보면 실제로 당대의 평가도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볼 때, 여포는 적어도 우격다짐으로 자기 무력만 믿고 돌격만 하는 얼간이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지휘관이나 전술가로서의 역량은 썩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나름의 빛나는 커리어와 장점에도 불구하고 명장은커녕 명지휘관 칭호도 못 받는데, 제대로 된 군 지휘관이라고 보기엔 멘탈 상태(...)에 따라 군재가 극과 극을 오가는 심각한 하자가 있기 때문. 별 생각 없이 경솔하게 행동해 제 무덤을 파거나, 별 다른 이유도 없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겁을 집어 먹고 일을 그르친 기록이 많아서 애초에 용맹하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의아한 대목이 많다. 삼국시대 최강의 무장이라는 아이덴티티 부여한 연의의 설정에 의구심이 느껴질 정도.

  • 동탁 휘하에서 반동탁 연합군과의 싸움에선 그냥 대놓고 고문관이었다. 호진의 부장으로 참전한 양인 전투에서 갑자기 손견이 기습해온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혼자 지레 겁을 먹고 오인 보고를 해 자기 진영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패배를 자초했다.[23]
  • 원소의 객장 시절 장연과의 싸움에서 본인 직속 소수의 기병대만으로 잘 싸워 큰 성과를 올렸다. 정사에 주석으로 붙은 조만전의 구절로 여포를 상징하는 표현인 "인중여포 마중적토"는 장연과의 전투에서 보여준 여포의 무용을 칭송하기 위해 여포를 당대 최고의 명마라는 적토마에 비유한 것이다.
  • 조조가 도겸과 싸우러 나간 사이 장막, 진궁 등과 공모해 뒤치기로 조조의 근거지 연주의 대부분을 빼앗았다. 그리고 조조와의 복양 전투에서 야전과 수성전 모두 연거푸 승리를 거두며 조조를 최악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비록 최종적으로 조조에게 패배해 연주를 상실했다고 하나 흣날 조조가 자신의 군사적 업적 중 원소,여포와 겨뤄 싸워 이긴 일을 자랑으로 삼았을 만큼 여포의 전술적인 능력, 야전 능력은 ~맨붕에 빠져 정 줄만 놓지 않는다면~확실했던 것 같다.
  • 연주 공방전 당시 초반 조조를 두 번이나 패퇴시키는 등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도 승씨현에서 반기를 든 듣보잡(...) 호족 이진에게 격파당해 초반 승기를 전혀 살리지 못 했다.
  • 연주에서 조조와 싸울 때도 갑자기 복병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겁 먹고 물러난 기록이 있다.
  • 유비가 원술과 싸우는 사이 서주를 뒤치기로 빼앗았다.[24]
  • 학맹의 반란 때 겁을 먹고 도망쳤다가 고순이 뒤늦게 해결했다.
  • 원술의 대군이 몰려왔을 때도 진규가 양봉과 한섬을 회유해 군영이 혼란스러워지자 격파한 적도 있다. 제대로 세력을 가진 군사 집단과 싸워 이긴 것은 원술 정도이며 이 때도 진규가 한섬과 양봉을 회유해 내분을 일으킨 덕이다. 더구나 원술의 파멸은 순착적으로 여포의 파멸로 이어졌으니 전략적 고려가 없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 고순이 말리는 것도 무시하고 태산 일대의 소규모 군벌 장패에게 싸움을 걸었다 패한 적도 있다. 앞에서 보인 군사적 성과를 보면 의외로 약할 때는 너무 약했는데 후술할 여러 문제점들이 원인인 듯.
  • 조조가 서주로 공격해오자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하비성에 갇혔을 때도 항복하려고 하다 진궁이 말리는 등 초인적인 무인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겁을 먹고 상황을 그르치거나 전략적 고려 없이 행동한 적이 너무 많다.

대국을 살피는 판단력이 너무 떨어져서 그 때 그 때 즉흥적으로 강자에게 빌붙고 약자를 배신해서, 몇 번 전투에서 이긴들 그게 전략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 해서 전술적 역량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는데다가, 야전에서의 통솔력도 소부대를 이끌며 개인 전술 위주로 싸울 때는 탁월했지만, 침착한 통솔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형편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시의 용맹으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상황이나 승기를 잡고 몰아치는 상황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냈던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변수가 발생하거나 역공을 당하면 멘붕에 빠져 수습하지 못했으며, 무용에만 의존하다 보니 무엇보다 용인력과 전략성이 떨어지다 보니위치가 올라 지휘할 수 있는 군사 숫자가 많아질 수록 오히려 더 약해지는 면모를 보였다. 훌륭한 맹장이었을지는 몰라도 지휘관으로서는 거의 빵점. 결과적으로 보면 도적떼 두목 내지는 소부대 돌격대장 정도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겠다.

4.2. 무력

여포는 실제 역사상으로도 탁월한 무예 실력을 뽐낸 맹장이다. 심심하면 일기토가 난무하는 연의와는 달리 정사 삼국지에서 특정 장수를 평할 때 일반적으로 군지휘관으로서 종합적인 군사적 재능에 대해서 거론하지 일신의 무용을 디테일하게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25] 그러나 여포는 예외적인 케이스인데 그의 무예 실력을 묘사한 기록을 보고 있으면 과연 사람 중에는 여포, 말 중에는 적토(人中呂布 馬中赤兎)[26]라는 평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여포는 젊었을 때부터 힘이 세고 민첩하며 궁마술이 뛰어나 한무제 때의 명장인 이광에 비유되며 당대 사람들로부터 비장(飛將)[27]이라 불렸다. 홧김이었다지만 역시 뛰어난 무인인 동탁이 날린 단극을 쳐낼 정도로 민첩했으며, 곽사와 여포의 일기토는 정사에 몇 안 되는 진짜 일기토의 기록인데, 승리했다. 실제 역사상의 곽사가 연의에서의 찌질한 캐릭터성과는 달리 동탁 휘하에서 여포보다 더 유력한 장수였으며, 소수의 기병대만으로 만명의 장연군을 완전히 헤집어놓은 여포의 무용담과 필적하게 수백의 병사만으로 수만의 군대를 유린한 에피소드를 남길 정도로 무서운 맹장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매우 높이 평가할만한 전적이다.

관우정봉, 문앙처럼 직접 적진에 돌진해서 아예 전세를 뒤집을 정도로 일기당천의 포스를 보여준 기록도 있다. 원소의 객장 시절에 장연과의 싸움에 투입돼 휘하의 소수의 기병을 이끌고 정예 기병 수천이 포함된 장연군 1만의 군세에 수차례 돌격해 장연군을 격파했다. 또 후에 원소와 사이가 틀어지고 하내의 장양에게 의탁하러 갈 때 원소가 이를 괘씸히 여겨 추격병을 보냈는데 여포가 무서워 어느 누구도 여포를 공격할 엄두를 못 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여포의 무력은 당대 이미 최강급으로 정평이 난 듯싶다.

특히 유비에게 쳐들어 온 원술의 장수 기령을 돌려보내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이미 술을 먹은 상황임에도 활을 쏘아서 세워놓은 극(戟)의 끝을 명중시킨 기록은 여포의 뛰어난 무예 실력을 표징하는 에피소드이다. 이는 소설인 연의 뿐 아니라 정사에도 엄연히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여포의 무예 실력은 초일류며, 실제로 당대인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포는 이 일화 때문인지 천자문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천자문의 구절 중에서 "포사(布射)"가 바로 여포가 활을 잘 쐈다는 뜻이다.

조조에게 붙잡혀 끌려왔을 때 조조에게 "명공(조조)께서 보병을 이끌면, 제가 기병을 이끌고 힘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발언을 하여 일순간 조조를 솔깃하게 한 점과 소수 기병으로 장연의 본대를 괴멸시킨 점에서 여포가 우수한 기병이었음은 분명하다. 실제 중원의 중국인들의 유목 민족에 기병에 대한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했고 실제 중원의 기병대에 비해 유목 민족의 기병대가 월등하게 강했다. 여포는 흉노가 활동하던 변방 지역인 병주 출신이라 좀 더 우수한 기마술을 익혔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연의에서 거의 초인처럼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정사에서는 유관장 삼형제나 조조군의 상장 6명 등과 단신으로 맞짱을 뜰 정도의 초월적인 위용을 보여주진 않는다. 그래도 뛰어난 용맹과 기마술, 궁술을 보유한 맹장임은 분명하다.

4.3. 지력

개인의 무력도 괜찮은 편이고 전투에서의 지휘 능력도 제법 있었으나 전략을 짜거나 계략을 세우는 등의 총사령관으로서의 자질은 매우 심각하게 떨어진다. 희한하게도 본래 처음 관직은 무려 문관으로 시작했음에도[28] 그런 티가 거의 안나는 편이다. 사실 여포 개인의 지력이 좋았다면 원소-조조와 호각을 겨뤘을 가능성도 높겠지만 어차피 여포가 천하제패를 할 가능성은 적으므로 5호16국이 일찍 도래했을 수도 있다.

그 이전에 지력이 좀이라도 있었다면 동탁한테 안 갔겠지.

연주에서 조조는 서주에서 연주까지 오는 동안 험지를 통해 전혀 견제하지 않은 것을 보고 여포를 금방 이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초전에서 패배했고 여포의 전술 능력 및 여포군의 전력을 너무 얕본 생각이었음이 판명되었다. 그러나 전략적인 차원에서 여포의 자질을 높이 보기는 어려운 대목.

조조가 하비로 여포를 치러 왔을 때에도 부족한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진궁이 이제 막 도착해 조조군이 지쳤으니 여포가 본대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고, 자신과 남은 무리가 성에서 호응하는 식으로 지친 조조군을 치자고 권유하나 여포는 아내의 말을 들어 따르지 않았고, 쉴 시간을 번 조조군과 싸워 대패해 성안에 틀어박혀 농성을 하게 됐다. 학맹과 공모했었던 진궁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고 하나 먼길을 오느라 지쳤을 적군이 그냥 쉬면서 모든 준비를 할 수 있게 내버려둔 것은 그의 총사령관으로서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며, 확실히 지모 면에서 상당히 부족한 인물이라는게 드러나는 상황.

강대한 군세가 오는데 제대로 막거나 견제하지 않은 기록이 연달아 있는 걸 보면 최소한의 전략, 작전적 식견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의에서는 이런 점이 한층 더 부각되어 전형적인 힘은 쎄나 머리는 나쁜놈으로 아예 이미지가 굳어진다. 다만 연의에서는 진궁의 의견을 들어 조조를 궁지에 몰았던 적도 있으나, 정사에서는 그런 기록조차 없다.[29]

하지만 정원의 휘하에서 주부라는 문관직을 겸임했다는 점, 그리고 영웅기에서 기록한, 소건에게 보낸 편지 내용과 조조에게 목숨을 구걸할 때 말한 내용을 보면 춘추전국시대 고사의 내용도 인용할 줄 아는 등, 어느 정도의 학식은 갖췄다고도 볼 수 있다. 사실 문관으로서의 실무 능력이나 학식 수준이 높다고 해도 사람 자체가 지적인 것은 다른 이야기이니...

4.4. 정치

여포는 무엇보다 용인력이 떨어진다. 사람을 다루는 데는 영 빵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군주로서의 자리에 올라서려면 사람을 잘다뤄야 하기에 군주로서의 그릇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충성스럽고 훌륭한 장수인 고순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의 병사를 빼앗아 자신의 친척이기만 할 뿐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위속에게 주는 등 함부로 대한 것. 그러나 위속을 확실히 신뢰한 것도 아니어서 싸움이 있자 다시 위속의 군사를 고순이 이끌게 하는 등 이랬다 저랬다 하는 변덕스러운 면모만 보였을 뿐이다. 조조하후돈과 같은 과도한 친인척 편애가 존재하지만, 조조가 하후돈을 비롯한 친족들을 편애한 것은 확실하게 병권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확고한 목적이 있던 군부 장악책이었다. 반면 여포는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변덕스러웠고, 그렇다고 해서 유비처럼 뛰어난 장수를 기용해 충심을 얻고 능력을 이용하는 용인술도 아니었던 어중간한 태도을 보였을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순은 아무 불만도 나타내지 않았고 뒷날 여포가 조조와 싸울 때도 끝까지 함께 했으며 결국 항복하지도 않고 죽었지만, 위속은 상황이 불리해지자 송헌, 후성과 함께 진궁을 잡아 조조에게 항복했던 것을 보면 여포의 사람 보는 눈도 정말 한심한 수준.

외교 정책도 정말 한심한 수준이었는데 대국적인 판단 능력 자체가 없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좌충우돌하며 기반이 달랐던 진궁을 비롯한 연대 세력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고, 모반이 일어나고 부하들 사이에 내분이 생기기도. 고순과 진궁의 경우 패망 직전까지 둘이 사이가 좋지 못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여포의 군주로서의 자질 부족이 주요 요인이다.

그나마 장굉을 무재로 추천하여 자신의 수하로 삼으려고 한 노력은 있지만 장굉 본인이 여포를 싫어했고 그 장굉의 상관인 손책이 거절해서 실패했다.

4.5. 인격

성격이 좀 많이 이상한데, 전반적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자기가 잘해준 것만 기억하고 자기가 남한테 피해를 준 것은 전혀 기억하지 않는 굉장히 자기 중심적인 초딩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 문자 그대로 배신아이콘. 초기에 정원을 섬기다가 동탁의 후한 대우에 이끌려 정원을 죽인다. 배신과 뒤통수로 점철된 인생을 산 여포지만 다른 경우에는 그나마 일말의 변명의 가능성[30]이라도 있는데, 정원의 경우는 확실하게 배신이다. 다만 정원이 여포의 양아버지인 건 연의 한정이고, 정사에서는 그냥 상관이기 때문에 정사상으로는 패륜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천거해주고 잘해준 상관을 별 불화도 없는데 죽이는 것도 또라이 짓이긴 마찬가지.
  • 동탁과 사이가 틀어져 황명에 의해 역적을 친다면서 죽여버렸다. 그러나 이 부분은 실드의 여지가 꽤 있다. 물론 동탁과 사적인 의리가 있었다고는 하나 이미 동탁이 여포에게 홧김에 창질을 하며 목숨을 위협했던 시점에서 애매해졌다. 연의에서는 동탁이 여포를 양아들로서 대단히 신뢰하고 우대했다고 그려지지만 실제 역사상에선 정원을 배신하고 휘하로 귀순할 때 초반 정도에만 적당히 대우하고 그 후에는 여러 차례 트러블을 빚는 등 별로 돈독한 사이는 아니었다. 여포 역시 반동탁 연합군과의 대결에서 겁을 잔뜩 집어 먹고(...) 오인 보고를 하는 최악의 군재를 선보여 동탁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 했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 여포에 대한 동탁의 신뢰가 갈수록 떨어진 건 이런 이유였을지도... 결론적으로 동탁의 최측근은 어디까지나 같은 양주 출신으로 오랫동안 자신을 섬긴 이각곽사였지 여포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탁은 워낙 개막장을 쳐놓은 역적이자 후세에까지 길이 길이 남을 최악의 악당이기에 여포의 동탁 척살은 확고한 대의명분을 등에 업고 있었다. 하지만 여포가 동탁을 처단한 건 이런 대의명분에 감화돼 개과천선한 게 아니라 동탁의 시비와 사통한 게 들통날까봐 두려워서였기에 결국 자기중심적인 이유로 동탁을 죽인 것이다.
  • 원소나 원술을 대할 때 자신이 동탁을 죽여서 원씨의 원수를 갚아줬다고 거들먹거린다. 원씨가 몰살당할 때 여포가 동탁의 부하였음을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 자신에게 잘해준 유비의 뒤통수를 쳐서 서주를 빼앗았다. 사실 이 부분이야말로 여포가 진정 비판받아야 할 대목인데도 불구하고 연의에서 여포가 자신의 양아버지인 정원과 후대한 동탁을 차례로 배신한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묻히는 경향이 있다.이미 양아버지를 둘이나 죽였으니 친한(?) 동생[31] 통수 친 건 별로 놀랍지도 않아서인듯 실제 역사상에서 정원은 여포를 우대했다곤 하나 여포 입장에선 상관 정도였고, 동탁은 여포와 부자지간이라고는 해도 배신을 때린 시점에서 이미 여포에게 창을 날리는 등 부자관계가 결딴났으며,[32] 무엇보다 천하의 역적이며 악당이기에 여포가 그 나름대로의 대의명분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유비를 배신 때린 건 여포가 조조와의 연주공방전에서 패퇴하고 갈 곳이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베푼 후의를 저버린 케이스이기 때문에 실제론 더 패악성이 짙다고 볼 수도 있다. 여포는 연의와 다르게 조표를 비롯한 구도겸군 세력 일부(단양병)가 여포와 결탁해 유비가 없는 틈을 타 서주를 빼앗은 것이다. 더도 덜도 아닌 그냥 뒤치기다. 유비는 하루아침에 기반을 잃고 원술과 여포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 죽을 뻔 했다가 간신히 살아났다.
  • 진등, 미축과 같은 서주의 토호들은 일찍부터 유비를 지지해왔고 청주 북해의 공융도 유비면 인정이지 하고 넘어갔다. 유비가 서주 구원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하나로 서주 정국을 지배한 상황에서 허니문무드를 깨려 한 조표 등 구도겸 사병 일파야말로 서주 사람들의 의견과는 맞지 않는 세력이었으며 이 와중 장비와 조표의 싸움에 콩고물 떨어지는거 없나 주워먹으러 온 여포는 그런 서주 사람들의 의견을 쌩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 든 것이다. 괜히 여포가 죽고 유비가 서주에 돌아오자마자 수만의 군세가 모인게 아니다.
  • 여포가 유비를 도와준 원문사극의 일화도 따지고보면 여포가 유비를 배신하지만 않았으면 유비가 그 지경에 처하지도 않았을 것이니[33] 그렇게 고마운 것도 아니다. 병 주고 약 주는 걸 은혜라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한거다.
  • 유비가 소패에서 간신히 정착하는데, 정착하고 나서 다시 힘을 얻는 듯 하자 여포는 이걸 꺼려서 다시 공격한다. 결국 유비는 서주 대학살을 일으켰던 조조 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위 원문사극 및 소패에 정착한 유비를 여포가 꺼려서 친 일화 관련해 자치통감에 재미있는 구절이 존재한다. 출처는 권중달 역 자치통감 7권에서 발췌. 원술의 명령으로 유비를 치러 온 기령, 여포, 유비가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여포의 말.

"현덕은 나 여포의 동생인데, 여러분들에 의해서 곤란하게 되었기에 와서 그를 구원하는 것이오. 나 여포의 성격은 부딪쳐서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싸우는 것을 떼어놓기를 좋아할 뿐이오 "

위의 말을 한 후 원문사극의 일화로 기령은 물러나고 유비가 소패에 간신히 정착했는데

유비가 군사를 합하여 1만여 명을 얻었는데, 여포가 이를 싫어하여 스스로 군사를 내어 유비를 공격하였다. 유비가 패배하여 도망쳐서 조조에게 갔다.

참고로 위 두 일화는 같은 페이지에 서술되어 있다.

그렇게 자기 중심적인 태도에 눈앞의 이득에 눈이 멀어 남들을 쉽게 배신하고 남의 뒤통수만 쳐댔으며 약속을 하면 어기는게 일상이니 인망이 땅에 떨어진 것도 당연하다.

백문루의 상황에서도 여포는 유비에게 한 마디 해주라고 부탁하거나 조조에게 내가 조공을 위해 싸우면 천하가 평정된다는 식으로 자기가 두 사람에게 한 짓을 까먹은 듯 한 태도를 보인다. 유비가 정원과 동탁의 일을 기억하라고 조조에게 말한 것이 괜한 이유가 아니다.[34] 유비에게 이걸 물은 조조도 남의 의견 하나에 자기 결정을 덜컥 내릴 정도로 줏대 없는 인물도 아니고 그도 여포가 그동안 해온 행동들을 잘 알 테니 처형을 결정한 것이다.

부하들의 아내에게도 손 댄 것을 본다면 부하들과의 관계에서도 좌충우돌한 것은 마찬가지. 장료는 여포가 항복할 당시에 다른 곳에 파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굳이 섬기던 사람을 죽인 조조에게 가서 항복한 걸보면 이 사람도 여포와 좋은 관계는 아니었을 듯하다.

또한 전투 때 나약한 면모를 제법 보인 적이 있는 것을 보면 유리멘탈일 가능성도 높다. 전반적으로 영웅이라고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인격의 소유자...

4.6. 색욕

초선이라는 캐릭터로 인해 로맨티스트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실제의 여포는 성적으로 대단히 방종했던 인물로 보인다. 애초에 초선은 반 허구의 인물이고, 그 이전에 실제 인물인 동탁의 시비와 통정하던 시기의 여포는 이미 딸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일단 여포가 남의 여인들을 탐내다 척을 지게 된 사례가 꽤 많다. 초선의 모델이 된 동탁의 시녀와 통정했다[35]는 기록부터 시작해 자신이 군벌의 수장이 된 후에 부하의 아내들과 간통했다고 서술되는 기록도 있다.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가 조조에게 사로잡혀 자신을 살려두고 수하로 두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설득하는 시점에 조조가 언급하길 여포는 부하들의 아내를 사랑했으면서 어떻게 부하를 후대했다고 할 수 있냐고 했다. 한두명의 부인과 바람 피우고 끝난 일이면 저런 상황이 이루어질까? 강제로 겁탈했다는 표현은 없긴 한데[36], 간통 자체만으로도 당시 여포는 일개 장수의 신분도 아닌 한 세력의 지도자이기에 충분히 지탄받을 행동이다. 지도자가 조직의 불화를 어떻게든 줄이려고 사사로이 다른 부하의 아내와 간통을 벌인 부하에 대해 조직내 불화를 초래했다고 책임을 물어도 모자랄 판에 지도자가 앞장서서 조직내 불화를 일으키고 다닌 꼴. 게다가 부하들을 보호해야 할 위치에 있는 주군이 되려 부하 아내들의 정조를 유린했으니 파렴치할 뿐만 아니라 부하들의 충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여포의 미화 근원이 되는 초선을 등장시킨 연의에서도 여포는 호색한이라고 못을 박은 바 있다. 왕윤의 연환계도 여포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시도가 가능했던 것. 또한 여포는 초선와의 스캔들 시점에서 이미 아내와 딸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조표의 딸을 아내로 취했기에 초선에 대하여 일편단심인 것도 아니었다.[37] 여기에 유비 앞에서 아내를 불러낸 것도 성적으로 방종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어느 정도는 현대 시점에서 보면 당시 사람들이 지나치게 꽉 막힌 것도 있지만, 부하의 아내들을 탐했다는 기록에 이르면 현대 시점에서도 용납이 어려운 합법드립 수준. 난세이다 보니 별별 해괴한 일이 다 있었지만 적의 포로도 아닌 자기 부하의 아내들을 탐했다는 기록은 드물다. 당장은 좋았을지 몰라도 이런 무분별한 처신은 그의 형편없는 용인술과 더해져 부하들의 배반을 불러왔다. 여포를 직접 간통으로 디스한 조조도 유부녀를 좋아했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죽은 적장의 과부이거나 첩들이었지,자기 부하들 아내를 건드려서 공연히 후환을 만들지 않았다. 김품석원균이 좋은 대접 받기가 힘든 것도 권력으로 압박하여 부하의 아내들을 탐했다는 것임을 생각하면, 도무지 두둔할 수 없는 부분.

의외로 이 부분을 묘사하는 창작물은 많지 않다. 여포를 의리없는 후레자식으로 묘사하는 창작물에서도(가령 신삼국의 여포라든가) 여포의 불륜행위를 묘사하지 않거나, 아예 여포를 초선 하나만 좋아하는 순정남(?)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진삼국무쌍 시리즈의 여포가 그렇다. 심지어는 진삼8에서 여포의 딸인 여령기가 주역 플레이어 캐릭터로 등장하자 초선과의 로맨스를 마치 알고도 속아준 것이고 초선의 뜻을 존중해 혼인조차 하지 않는 플라토닉하면서도 대인배스러운 관계로 윤색해버렸다(...)이렇게 멀쩡한 놈이면 정사에서 그 꼴은 안 당했을 것이다

4.7. 유비와의 관계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살펴보면 두 사람에게서 살펴 볼 수 있는 다소 이중적인 면모나 여러 특이점 때문에 의구심이 들게 되는데, 이유는 정사에도 적혀 있다시피 인의의 대명사인 유비가 여포의 죽음을 거들었고, 또한 인간 통찰의 대명사인 유비가 인간 관계에 처음으로 실책을 했던 사례이기 때문이었다.

정사를 기준으로 여포는 이미 정원, 동탁을 배반한 전력이 있어서 배신의 명수인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진군이 여포의 뒷치기를 미리 경고했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능력이 있는지 사람보는 눈 하나만큼은 기가 막혔던 유비를 제대로 등쳐먹는데 성공했다는 것. 이는 조표와 허탐같은 서주 호족들이 거들어서 가능한 것이기는 했지만 이들이 굳이 여포를 선택한 것은 연주에서 조조를 버리고 독립하려던 진궁, 장막같은 연주 호족들이 여포를 바지사장으로 써먹으면 되겠다고 판단한 것과 같은 이유로 보인다.

'왜 유비가 배신으로 유명한 여포를 받아들였는가?'에 대해서는 일단 이 시기에 여포와 유비에게는 '조조'라는 '공공의 적'이 있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유비는 사람들의 추대로 서주를 차지했지만 서주 대학살로 서주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유비로서는 비록 신의는 없지만 무장으로서 검증된 여포를 그냥 뿌리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들의 추대를 받았음에도 조표를 비롯한 구 도겸파는 유비에게 적대적이었고 서주 대학살로 서주가 나가리가 된 상태에서 조조의 재침을 겪으면 막기 어렵다고 판단해 여포를 이용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라는 가설이 있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유비가 여포를 거부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전략적으로 이득이 될지도 알 수 없다. 여포가 비록 근거지가 없이 떠도는 장수로 전락했다고 해도 여전히 휘하에는 용맹하기로 이름높은 동료 무장들과 잔여 병력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비가 근거지를 내주는 것을 거부한다면 결국 갈 곳이 없는 여포는 정말 필사적으로 유비를 공격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근거지를 갖추고 있는 유비가 훨씬 유리하겠지만, 여포의 공격에 병력 손실이 누적이 된다면 유비의 앞날은 알 수 없다. 이미 원술, 원소, 조조와 사이가 틀어진 여포에게는 살아남으려면 딱히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필사적일 것이다. 그리고, 여포가 만일 서주의 군현을 일부나마 점령하여 기지를 만들고 원술 등의 후원을 받아 세력을 유지한다면 유비에게는 내장에 우환이 박히는 격이다.

유비 역시 조조, 원술과 같은 강적을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포를 적으로 돌리는 것도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당장 유비는 여포를 받아들이고 얼마 후 서주를 노리던 원술과 싸우느라 서주를 비워야 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대인의 풍모로 여포를 받아들여 여포에게 빚을 지워두는 것이 적절한 판단이었을 수 있는 것.

또 당시의 관례를 보는 시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후한말의 난세에는 이러한 류의 객장(客將)이 자주 등장했는데, 여포 이외에도 유표에게 의탁한 장수, 공손찬, 조조, 원소에게 의탁한 유비 본인, 장로유비에게 의탁했던 마초를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객장을 받아들이는 군웅 역시 객장들을 경계했고 이들간에 충돌이 있기는 했지만 이러한 객장이 존재했다는 것은 전반적으로 의(義)로서 따져볼 때 자신에게 의탁하는 객장을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의식이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원술의 경우에는 원씨 가주로서 여포가 동탁의 수하였을 때 원씨 일족을 죽였다는 구실이 있었고, 원소는 대놓고 거부하기는 어려워서 겉으로 받아들이고 암살자를 보내는 식으로 뒷치기했다.

즉, 여포가 의탁하러 왔을 당시에는 유비로서는 여포가 설사 의심스럽다고 해도 여포를 배척하지 못할 이유가 더 많았다. 나중에 배신했으니 '여포를 받아들이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은 다소 결과론적인 생각인 것. 여포 때문에 근거지를 잃고 죽을 뻔하고 진군도 유비의 밑을 떠나버렸으니 명백한 실수가 맞긴 하지만, 뒤집어서 보면 여포를 받아들여 빚을 지워둔 덕에 여포가 유비를 죽이지 않고 객장으로 거둬들여 소패에 두었으니 빚을 지워두길 잘 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아무튼 여포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번번히 뒤통수를 치면서 사방에서 어그로를 끌어모았으니...

물론 당시엔 손견같이 자기 상사 뚝배기를 깨먹고 자리를 차리하며 크게 성장한 세력들도 부지기수한 난세라지만, 상대는 1세대의 최종 승자들이자 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성공한 조조유비였다. 결국 여포에게 연주를 날려먹은 적이 있는 조조와 여포에게 서주를 날려먹은 유비의 협공에 사로잡혀 목이 매달린다.

5. 여담

삼국지연의에서 여포가 당대 최강의 무장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여한 덕분에 여포라는 호칭은 최강의 무장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래서 현대에는 싸움은 잘 하지만 머리가 딸리는 사람을 종종 여포에 비유하곤 하는데, 대표적인 예시를 들자면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구본택의 별명 중 하나가 여포다.

최근 배틀그라운드에서는 킬수가 많은 사람들을 여포라 부르면서, 여포 플레이라는 유행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이나 대외 활동에는 어려움을 겪는 루저이나 인터넷이나 집 안에서만 잘난척, 센척하는 사람을 방구석 여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말인 집구석 벤케이(우치벤케이: 内弁慶. 우치의 관용적 의미는 집, 벤케이는 헤이안시대에 용맹을 떨친 승병 무사시보 벤케이를 가리킴)라는 말을 쓴다. 집 안에서는 여포지만 집 밖에서는 유선이라고 첨언하기도 한다.[38] 긍정적인 의미로는 특정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사람들을 (해당 분야)여포 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정글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이는 챔피언을 '정글 여포'라고 부르는 식.

우스갯소리로, 여포가 죽은 이후 중국의 양궁이 몰락했다는 농담도 있다. 리우 올림픽에서 중국 양궁 선수들이 한국 양궁 선수에게 패배하니까 "옛날에 우리 선조들은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활 잘쏘던 여포같은 영웅들도 많았는데 그의 후예들은 다 어디갔느냐?"라는 리플이 나왔는데, "조조한테 죽었어."라는 신박한 드립이 나왔다(...).

소노다 삼국지의 영향으로 여포가 이민족이라고 주장하는 창작물 속의 설정이 한국 삼국지 팬덤에서만 마치 정설인 것처럼 퍼져있었지만 당연히 2차 창작물 속의 설정일 뿐이다. 여포가 이민족이라고 내세우는 근거들은 이민족이 많이 살았던 병주 출신이라는 것 뿐이라 설득력이 없으며, 여포 자신은 물론 그를 대한 인물들 누구도 이민족으로 여기지 않았는데 아직도 진짜라고 믿은 사람들이 가끔 언급하기도 한다.

여포의 진짜 아버지에 대해서는 어떤 기록도 없다. 단, 멀쩡히 아버지가 있는 사람이 의부관계를 맺고 다니는 것은 이상하므로, 최소한 정원에게 출사한 시점에서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서양권에서는 그리스 신화아레스와 비교하기도 한다. 절대적인 힘을 가졌으나 아군과 적군 가릴 것도 없이 싸움을 즐기는 이기적인 행적도 비슷하기 때문. 초선처럼 아프로디테라는 친한 여자가 있다는 점도 동일.

6. 미디어 믹스

여포/기타 창작물 문서 참조.


  1. [1] 단, 자칭이다.
  2. [2] 병주로 분류되어 있기는 하나 위치상 상당히 벽지(내몽골자치구 바오터우시 서쪽 부근)이다. 흉노가 활동하던 영역에 있다.
  3. [3] 21세기 들어 2010년 중국에서 방영된 삼국(드라마)나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를 통해서, 연의에서 표현된 여포의 야심과 패륜적인 모습보다는 초선을 향한 로맨티스트로 그려지는 경향이 강해졌다.
  4. [4] 자치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여포는 병사를 통솔하는 부곡사마였다고 한다. 주부와 부곡사마 두 직위를 겸임했을 가능성이 있다.
  5. [5]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때 동탁이 여포를 꼬드기기 위해 자신의 명마인 적토마를 보내주었다고 나오는데 정사에서는 적토마를 보내주었다는 기록이 없다.
  6. [6] 아주 날아다닌다는 뜻이다.
  7. [7] 분무장군의 뜻은 무력을 떨치는 장군이라는 거창한 칭호지만, 실상은 장군직 중 최하위 직급인 잡호장군급의 관직이다. 즉 의례를 비롯한 격식은 삼공이라는 조정의 최고 위치로 대우하며 체면을 세워 주고, 실질적인 권한은 제어하려고 한 것.
  8. [8] 이때 아내와 딸은 놓고 가야 했으나, 지인이 후일 그에게 보내주었다고 한다.
  9. [9] 반동탁 연합군이 봉기하자 동탁이 원외, 원기 등 원씨 일가를 살육했으니 그 원수를 갚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당시 여포는 동탁과 붙어먹고 있었으니 원술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다.
  10. [10] 이건 여포가 아니라 적토마를 띄우는 말이라는 해석도 있다.
  11. [11] 원소의 수하들은 원소가 내리는 관직을 받았는데 여포 자신은 황제가 직접 내린 관직을 받았다고 무시한 것이다.
  12. [12] 원소 문서에도 언급된 내용이지만, 원소가 직접 내린 관직을 멸시한 행위는 원소의 정통성을 직격으로 무너뜨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실제로 원소에게 관직을 내릴 권한은 없었으니, 정통성이 아니라 역모죄로 몰아가도 할말이 없을 일이다.
  13. [13] 헛소리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진궁이 딱히 죄를 지은 건 없다.
  14. [14] 서주대학살 직후인만킁 조조의 쓰레기 인성이 만천하에 드러난 후였다.
  15. [15] 정사 삼국지에서도 기록이 비슷하지만 귀 큰 놈(大耳兒)이라는 표현이 수정되어있다.
  16. [16] 일본 게임 제작사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와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도 여포의 무력이 최강이라는 설정도 이런 연유다. 한국쪽도 이런 영향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17. [17] 판본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관우와 장비의 첫 대면에서 둘이 합을 겨루는 장면이 나오는데, 해당 싸움을 본 유비는 "저 사내(관우)가 장비를 어린아이처럼 다룬다"고 평했다.
  18. [18] 호뢰관에서 여포가 무쌍을 찍고 공손찬을 끔살하기 직전, 난입한 장비가 가로막자 여포는 기백은 꽤나 있지만 차림새가 누추해서 일반병인줄 알고 "졸병은 저리 비켜라!"하고 그냥 무시하자 장비가 "애비성을 셋이나 가진 천하의 상놈아!”라고 외치며 반격을 하고 빡돈 여포가 목표를 장비로 바꿔서 싸우게 된다.
  19. [19] 흔히 여포의 관을 속발관(束髮冠)이라 부른다. 연의의 여포를 모티브로 한 진삼국무쌍 시리즈의 여포도 머리에 더듬이 장식을 하고 나오는데, 제작진의 설정에서는 산새 깃털로 만든 翎子(링즈)라고 언급된다.
  20. [20] 정사에 나오는 제장들의 아내와 사통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은 것도 크다.
  21. [21] 그럼에도 연의에서 여포의 처첩은 엄씨초선만 등장하는데, 삼국지연의 모종강본 기준 16회에서 여포의 가족에 대해 설명할 때 조표의 딸은 여포의 둘째 부인이었지만 일찍 죽었다고 한다.
  22. [22] 연의는 고정된 파워 밸런스를 상정하고 집필된 작품이 절대 아니다. 그때의 분위기에 따라서 무장들의 전투력이 오락가락 한다.
  23. [23] 본인 주장대로 일찌감치 배신할 생각이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24. [24] 이것만큼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25. [25] 조조의 1대 경호실장 전위, 2대 경호실장 허저가 개인의 무용에 초점을 맞춘 장수평을 받았다.
  26. [26] 이 유명한 표현은 실제로 《조만전》에 언급되는 구절이기도 하다.
  27. [27] 이 별명은 여포의 '자칭'이 아니었다. 《삼국지》 여포전에서도 "(여)포는 활쏘기와 말타기와 능하고, 힘은 남들보다 뛰어났으니, 비장이라 불렸다(布便弓馬,膂力過人,號為飛將)"고 확실히 명시되어 있다. 그간 정사 삼국지 오역 때문에 여포가 비장으로 자칭하고 다녔다고(...) 잘못 알려졌다. 그리고 여담으로 여포가 실제로 맞붙은 적이 있는 흑산적의 수장 상산의 장연 역시 비장으로 일컬어졌다. 장연 역시 여포만큼은 아니라도 상당한 수준의 맹장이었을듯...
  28. [28] 이 시대에는 문관과 무관의 구별이 희미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29. [29] 계락이 있다면 하후돈 인질극 정도인데, 주체가 여포인지는 확실치 않은데다가 이건 하후돈의 무능력과 인품, 한호의 합리적인 냉철한 판단력을 보여주는 일화...라는게 반전.
  30. [30] 동탁의 경우엔 분명 대의명분이 있었고, 원소, 원술, 유비를 배신한 건 미증유의 난세였기에...
  31. [31] 여포가 유비를 동생으로 호칭하는 게 기록으로 남은 걸 보아 여포는 유비보다 연상이다.
  32. [32] 예전 이 문서에 그다지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다고 적혀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다. 자치통감에는 '동탁은 어디를 가든 늘 여포를 대동하여 자신을 시위케 했다. 이로 인해 동탁의 여포에 대한 신임은 더욱 깊어져 부자간의 서약을 맺기에 이르렀다'고 적혀 있다.
  33. [33] 여포가 뒤통수치기 전까지 유비는 원술과 대등하게 맞서고 있었다.
  34. [34] 때문에 몇몇 창작물에선 여포가 '내가 원문에서 활 쏴서 니 목숨을 구했는데 이렇게 통수치냐!'고 여포가 발악하자 유비가 '님이 날 배신하지만 않았어도 이꼴은 안됐을텐데 왜 이제와서 징징댐?'식으로 반박해 여포가 아무 말도 못하는 장면도 나온다.
  35. [35] 윗사람이 거느린 병졸이나 시비를 아무리 친밀한 수하라 할지라도 함부러 건든다는 것은 권위에 대해 우습게 아는, 도전으로도 비춰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36. [36] 이것도 죽일 듯이 협박하고 폭력을 행사해서 강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 부인들 본인이 여포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본인 또는 남편에게 발생할 불이익에 대해 압박을 안 느낄 수 없었을 테니, 위계에 의한 강간이 성립할 것이다.
  37. [37] 심지어 초선의 지위는 첩이었는데, 후에 취한 조씨의 지위가 차처(둘째 정실)로 더 높았다는 점에서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38. [38] 재미있게도 연의 등지에서 라이벌 격으로 엮이는 장비도 인터넷에서 어그로를 끄는 사람을 장판파 장비 납셨다는 식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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