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요리

영국식 아침식사

1. 개요

영국 요리, 즉 브리티쉬 퀴진이란 오랜 세월동안 켈트, 로마, 앵글로색슨, 노르만인도파키스탄, 남중국등 여러 민족과 문화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요리이며 영어 위키백과는 영국의 전통적인 브리티쉬 퀴진을 '강한 향의 소스로 맛을 가리기보다는 심플한 소스를 곁들이길 즐겨하며 질좋은 현지 재료로 꾸밈없이 만든 요리이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현대 영국은 세계 미식계를 주도하는 미식선진국으로 평가 받고 있다.

'독일인은 유머감각이 없다'와 함께 '영국인은 요리를 못한다'는 고든 램지제이미 올리버 의문의 1패 서양의 오래된 우스갯소리 혹은 고정관념이 영국인들 조차 이를 블랙 유머의 소재로 종종 사용할 정도로 존재하지만 사실 서양 쪽에서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주일영국대사관에서는 일본의 영국요리에 관한 인식이 '도시전설화' 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며「영국요리는 맛있다(Food is GREAT)」,「영국의 맛(A Taste of Britain)」캠페인까지 벌이고 있을 지경이다. (아래의 영국 요리/밈 문단 참조) 영국 요리 역시 오랜 세월 높은 경제력을 향유하며 궁중, 귀족, 서민 계층을 포함해 훌륭한 전통요리와 식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미식의 주관성을 감안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부분과, 장식적인 부분에서 프랑스[1] 이탈리아 요리에 비해서 영국 전통요리를 포함한 북유럽 신교 국가들의 소박한 요리가 서양 고급요리의 헤게모니에서 밀려나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고 있는 것 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영국을 포함한 북유럽 요리가 재평가를 받으며 세계 미식계를 휩쓸어 이 또한 달라져가고 있다.(영국 요리/역사 문단 참조) 또 영국산 식재료는 유럽 내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품질을 인정받는 편이다(특히, 소고기에 대해서는 알아준다.). 지리적 표시제/유럽연합에 등록된 유럽연합 역내 28개국과 역외 등록 제품 보유국 8개국을 합쳐서 36개국 중 등록 품목수 7위가 영국이니 말이다. 게다가 완성된 식료품도 등록 되어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 중부의 멜튼 모우브레이 마을의 파이 같은것도 말이다. 지리적 표시제/유럽연합/영국 문서도 참조 바람.

2. 역사

"영국 요리가 프랑스보다 뒤떨어졌느냐?" 라고 묻는다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16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영국 요리프랑스 요리의 차이는 레시피만 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2] 현재 남아있는 중세시대 영국의 요리책이나 음식에 대한 기록에 당시의 증거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기본적으로 육식, 그 중에서도 특히 쇠고기 요리가 중점적으로 발전했는데 영국보다 자연적으로 구이를 선호했던 투르크족, 몽골족, 만주족 같은 유목민족의 요리는 다른 문화권의 요리를 접하면서 터키 요리나 만한전석같은 독특한 요리들을 발전시켰고 영국요리도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다른 문화권의 접촉을 거쳐 발전했다. 19세기부터는 지속적으로 자국의 영향권에 넣기 시작한 인도 요리의 영향도 받았다.

이미 기원 전부터 영국은 인류가 생활하고 있었던 장소로서 숱한 이민족의 침입을 받으면서도 함락되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지켜 왔다. 특히, 지금의 영국을 구성하고 있는 4개 지역은 지금까지도 각각 민족적, 문화적 특질을 가지고 있어 독자적인 요리 문화가 발전했다. 숲이 울창한 스코틀랜드의 경우 사냥한 동물을, 웨일즈는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가축과 야채를, 잉글랜드을 중심으로 한 곡식을 주요 재료로 하여 요리해 왔다.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요리 참조.

재미있는 것은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생선은 인기있는 음식이 아니었는데, 이는 북유럽 지방에 일반적으로 분포하는 바다에 대한 공포가 당시에도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으로 같은 섬나라로서 불교의 전래에 따라 육식을 거절하고 주로 생선을 즐겨먹던 일본과는 다르게 영국인들은 바다를 식량 창고가 아닌 죽음이 펼쳐진 하나의 암흑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항해술이 발달하자 바다를 대륙으로의 진출을 위한 항로로만 간주하였기 때문에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정어리나 특별히 맛이 있는 대구와 같은 생선을 제외한 다른 물고기나 해초는 음식으로서 취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기원전부터 내려온 곡식과 육류 위주로 이루어진 식단을 지금까지도 지켜오고 있다.

당시 요리의 조리법은 신석기 시대부터 발견하였던 불을 기초로 하는데 특히 잉글랜드 중심으로는 직화(直火) 문화가 발달하였고 아일랜드 중심으로는 냄비(Pot) 조리가 발달하였는데 이 때문에 잉글랜드는 곡식을 불에 구워 빵을 만들고 고기를 바로 불에 던져 태운채로 먹었고 반대로 아일랜드는 감자를 쪄서 으깨거나 곡식을 갈아 끓여먹는 차이가 있었다. 이는 사실상 국력의 차이로서 꾸준한 정복활동으로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잉글랜드는 고기를 통째로 불에 던져 태워낸 겉 부분을 제거하고 고기에 배어진 향기와 흐르는 지방질을 양념으로 통째로 먹으며 서민은 곡식을 갈아 불에 구워 독특한 향이 밴 을 먹은 반면에 아일랜드에서는 곡식이든 고기든 일단 물을 넣고 끓여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요리를 판단했기 때문이다.

16세기와 17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심플하고 투박한' 특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국 요리만의 특성이 아니라, 독일 등을 포함한 북유럽과 북미 등 여타 개신교 문화권의 요리 문화 전체가 공유하는 특성이다.[3] 이러한 '심플하고 투박한' 영국과 북유럽의 요리는 가톨릭 문화권인 화려한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같은 남유럽 요리에 비해 오랜 기간 상대적으로 평가가 낮았다. 그러나 근세에 들어 이런 평가는 반전되어 가고 있는데, 1970년대 슬로우푸드의 유행과 함께 프랑스 요리도 무겁고 장식이 많은 오뜨퀴진에서 가볍고 담백한 누벨퀴진으로 이행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 영국이 스페인과 함께 분자요리의 양대 산맥이 되고, 2010년대에는 담백하고 현지 재료를 중시하는 북유럽 퀴진이 세계 미식계를 휩쓸며 남유럽을 누르고 대세로 자리잡아 예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달라진 평가를 받고 있다.

18세기, 19세기에는 세계적으로 질 좋기로 유명한 영국의 Hereford 품종의 소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영국의 식민지 지역으로 수출되어 현대 신세계 지역의 사육용 소 품종의 주류를 이룬다.

1970년대, 현대(modern) 영국요리가 성립되었으며, 성립 직후 굉장한 인기를 얻어 브리티쉬 퀴진의 대세가 되었다. 현대 영국 요리란 고품질의 현지 재료를 쓰며, 현대적 발명과 20세기 이전의 전통 영국 레시피를 섞어 사용하는 것으로써 슬로우 푸드 운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현재 영국 런던은 프랑스 파리를 뛰어넘는 미슐랭 레스토랑을 보유한 세계 최고의 미식 도시다. 피시 앤드 칩스는 잊어라… 영국의 '요리 혁명'에 미식가들 열광

고든 램지, 제이미 올리버,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 헤스턴 블루먼솔과 같이 뛰어난 요리사, 그리고 미슐랭과 함께 세계최고 권위를 가진 레스토랑지의 최고 레스토랑 역시 영국에서 지속적으로 배출해내고 있다. 수많은 한국 유명 셰프들 역시 영국유학파 출신이다.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DINNER의 메뉴중 1720년, 1670년경의 영국 전통요리를 재현한 것이다. DINNER의 나머지 메뉴도 영국의 전통요리를 재현해낸 것으로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2.1. 영국 요리와 육식

영국 요리의 역사에 있어서 육식은 빼놓을 수 없는 사실로 영국인들은 유럽에서 쇠고기를 가장 탐하는 민족이었다. 그들의 켈트족 선조들은, 기원전부터 이미 영국 섬들에 사육 문화를 구축했으며, 43년에 브리튼을 공격해서 남부와 동부의 저지대에 자리잡은 로마인들도 로마군 병사들이 선호하는 쇠고기를 위해 소를 사육했다, 소고기 수요가 증가하자,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소를 매매하는 시장이 형성되었고, 켈트족의 소 사육 문화는 아일랜드스코틀랜드 북부 및 서부에까지 뿌리를 내렸다. 이후 로마인들이 영국에서 물러났지만, 소는 자연스럽게 부의 상징으로 남았으며 육식은 영국인 식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유럽인은 육식을 즐기기로 유명했지만, 그 중 영국인들은 이웃한 육지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쇠고기를 소비했다. 쇠고기에 대한 그들의 탐식은 켈트족이 사냥, 동물학살, 화려한 고기 만찬을 즐긴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전통은 봉건왕조 시대의 귀족들을 거쳐서, 이후 젠트리 계급 사이에서 계속 이어졌다. [4] 영국인의 의식에서 동물 도살의 신성한 의미는 이미 오래 전에 퇴색 되었지만, 고기 특히 쇠고기가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믿음은 영국인, 그 중에서도 귀족들의 의식에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쇠고기를 대량으로 섭취하는 것은, 엄청난 힘과 남성다움을 획득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미국 독립전쟁 직전. 즉, 영국의 군사력이 사실상 전세계 모든 대륙에 손을 뻗치고 있었던 무렵 한 영국인은 이렇게 적었다. "고기를 맘껏 먹는 사람들이 좀 더 가벼운 음식을 먹는 사람들보다 더 용감하다는 사실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때문에 영국 귀족들은 서로 경쟁을 하듯이 호화로운 고기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서 개인의 재산과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부유층에서는 그 음식 준비가 지위와 특권을 내세우는 기본적인 수단이었다. 영국에서는 "빈자들은 살기 위해 먹었지만, 부자들은 먹기 위해 살았다." 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귀족들 간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자 1283년 에드워드 2세는, 왕국의 저명 인사들이 자신들의 성에서 엄청난 양의 고기와 음식을 흥청망청 낭비하고 그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분에 걸맞지 않게 그들을 흉내내는 것을 금하는 법령을 공포했다. 왕의 칙령은 만찬에서 고기 요리의 수를 제한하는 것이었는데, 만찬 주최자의 정치적 영향력이 준비한 요리에 따라 열렬한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는 능력을 크게 좌우한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그것은 상당히 중요한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고기는 각 군주의 만찬에 초대된 손님들의 적절한 지위와 신분을 명확히 구분해 주는 정치적, 사회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주빈석은 언제나 가장 윗사람에게 제공되었으며, 그 옆으로 지위에 따라 차례차례 자리가 정해졌다. 최고 부위의 고기는 가장 윗사람의 몫이었고, 질이 좀 떨어지는 부위는 아랫사람에게 제공되었다. 흔히 사용하는 "굴욕을 참다(eat humble pie)"라는 표현도 실은 "사슴 내장을 먹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비슷한 용례를 찾자면 와신상담 정도가 있겠다.

영국의 봉건군주들과 지주계급의 쇠고기 탐식은 가히 전설적이었다.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 시대 후기까지도 귀족과 상류층 계급은 화려하게 차려진 고기 만찬을 즐겼다. 소설가 프리스틀리(J. B. Priestly)는 "로마 제국 이래 탐식에 빠져든 사람들이 그토록 많았던 적은 없었다." 라고 말한다. 지주계급의 농총 주택에서는 매일같이 백정, 요리사, 주류 관리인, 부엌 하인들이 시중을 드는 성대한 사냥 파티, 만찬 준비, 화려한 음식들이 요란하게 펼쳐지곤 했었다.

근대 초기에는 영국 도시에서는 부유층과 빈곤층사이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했고. 이들은 육식을 갈망했다. 때문에 영국 도시에서는 엄청난 쇠고기 소비가 발생했고, 산업혁명 직전에 영국은 이미 세계적인 쇠고기 육식 생활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1726년 즈음 런던 시장에서만 해마다 무려 10만 마리의 소들이 도살되었다. 당시의 런던 주민들은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일부 지역 주민들이 한 해 동안 소비하는 전체 쇠고기보다 더 많은 양의 질 좋은 쇠고기를 겨우 1달 동안 먹어치웠다. 덤으로 영국군은 적색 육류가 군인들을 강하게 만든다고 믿어서, 해군 기준으로 수병 1인당 1년동안 무려 208파운드(1파운드=0.45kg)의 쇠고기를 제공했다. 소비량은 대략 하루에 250g정도였다. 그러니까 고깃집에 가면 나오는 쇠고기 1인분보다 좀 더 많은 양을 1년 365일 내내 먹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담으로 이 믿음 때문에 영국 해군은 채소를 기피했고 이로 인해 괴혈병이 유행했다는 설이 있다.

영국의 엄청난 쇠고기 수요는 영국의 식민지 정책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7세기 영국 귀족, 부르주아 계급, 군대에서 쇠고기 수요가 급증하자 영국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나서야 했다. 스코틀랜드아일랜드가 최초로 식민화된 목초지가 되었으며, 뒤이어 19세기에는 북아메리카 평원, 아르헨티나 팜파스, 오스트레일리아 오지, 뉴질랜드 초원이 똑같은 길(정복)을 걸었다.

이렇게 고기 덕후들이 넘쳐난 터라 이들은 고기를 2가지로 나눴는데, 이게 붉은 고기(살코기)와 하얀 고기(우유, 치즈, 버터 등)이다. 값비싼 것은 역시 살코기. 닭고기는 하얗지만, 레그혼 종은 2.7kg까지 기르는데다가 전근대식 사육은 효율을 되게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던지라 오늘날의 고기보다 더 늙고 풍미와 색이 짙었다. 어차피 영국에서 중요한건 소고기니까 이러나 저러나 관계없지 않을까

2.2. 영연방과 영국 요리

영국 요리의 발전을 얘기할 때 17세기 이후 전세계 곳곳에 있었던 영국 식민지들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20세기 이후 현재까지 영연방의 일원이 된 이들 국가 간 교류의 영향으로 다양한 나라의 음식 문화와 재료가 영국으로 유입됐으며, 일부 영연방 국가에는 영국 요리가 유입됐다.

가장 먼저 손에 꼽히는 것이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 지역의 요리이다. 남아시아 요리는 현재 영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였으며, 영국 요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처음에는 남아시아로 파견된 영국인들이 귀국하면서 데리고 들어온 인도인 하인 등 소수의 인도계 노동자들을 통해 영국 상류층 사회에 단편적으로 소개되었으며, 이 시기 커리, 고추 등 인도식 향신료가 영국 요리에 일부 첨가되게 된다.

19세기 후반 이후 남아시아인들의 영국행이 대폭 늘어났으며, 20세기 남아시아 각국이 독립한 이후에도 영연방 체제 내에서 영국 이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영국으로 이민온 이민자들은 런던 등 대도시에서 자국 요리를 파는 식당을 운영했으며, 이를 통해 영국 요리에 인도 등 남아시아 지역의 식문화가 유입되게 되었으며, 영국 외식업계의 흐름 또한 바뀌게 된다. 현재도 런던에서 가장 흔한 외식 식당 중 하나로 인도 요리 식당이 꼽힌다. 또한 현대 영국 요리에 카레 등 인도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가 많은 원인이기도 하다.

위는 홍콩 현지화된 영국식 밀크티와 간식들, 아래는 영국 케이크가 호주 현지화된 호주 전통(?) 레밍턴 케이크

중국, 특히 영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광둥 지방 요리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차문화도 원래 중국에서 기원했으며, 19세기까지 영국의 차문화는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5]

차를 제외한 영국 요리 자체에 중국 요리의 영향이 유입되기 시작한 사건은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19세기 싱가포르 등 영국령 식민지로 유입된 화교의 영향과, 광둥 지역 특히 영국령으로 편입된 홍콩의 영향이 있다. 싱가포르와 홍콩을 통해 영국 요리에 중국 요리, 특히 그 중에서도 광둥 요리[6]가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세기 이후 해당 지역들의 발전과 영국과의 교류 확대로 이 흐름은 더욱더 확대되었다. 대표적으로 케첩[7]과 간장, 그리고 중국식 국수와 만두 그리고 볶음 요리법 등이 영국으로 유입됐다.

역으로 홍콩과 싱가포르 요리에도 영국 요리가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으로 홍콩화된 영국식 밀크티나 디저트들,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과자와 빵 등이 있다. 더불어 티타임 세트 등 정통 영국 요리 메뉴 또한 홍콩과 싱가포르의 주요 메뉴 중 하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영국 본토에서는 나지 않는 열대과일, 향신료 등 다양한 식재료가 영국으로 유입됐으며 이로 인해 레시피가 수정, 보완됐으며 새로운 레시피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현재의 영연방 국가들로 건너간 영국인들과 그 후손들은 모국의 요리를 현지 사정에 맞게 개량, 발전시켰고, 덕분에 같은 메뉴여도 나라마다 레시피와 맛이 다른 일도 종종 벌어진다.[8]

3. 영국 요리/종류

English Breakfast라고 불리는 영국의 아침식사는 세계의 호텔에서 필수메뉴로 여겨질 만큼 유럽 최고의 아침으로 꼽히며 호텔에서는 프랑스나 미국의 아침식사보다 상급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또한 한국인도 즐겨먹는 샌드위치, 팬케이크, 푸딩, 파이, 케이크, 로스트 치킨 등도 역시 영국에서 출발한 요리이다. 카레라이스는 일본 해군성이 영국인들이 만든 카레스튜를 밥에 얹어놓은 것에서 기원했으며, 현대의 케첩돈까스 소스로 쓰이는 우스터 소스 역시 영국에서 나왔다.

4. 특징

4.1. 영국 요리/원인 분석

사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산업혁명기~2차대전 직후[9]까지는 정말로 일반인들이 즐기는 영국 요리가 헬이었던 시기도 존재했다. 오늘날 영국요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이 시기에 기인하며 마치 일제 강점기~한국 전쟁 직후의 한국 요리가 막장가도를 달렸던것과 유사하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요리를 향유하는 계층이 좋은 요리를 향유할수 있는 기반이 상실된 시기였던것, 역사적으로나 당시를 다룬 문학들이나 이 시기 영국 요리에 대한 증언은 하나같이 헬을 달리기 때문에 영국 요리가 막장이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다가 영국은 유럽에서도 금욕주의적이기로 유명한 칼뱅파 청교도들이 많았던 국가였기 때문에 음식에 대해서도 금욕적인 사상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여기에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저임금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식생활을 영유하지 못한 점이 분명 존재한다.

다만 이걸 단순히 영국만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산업혁명을 거친 전 유럽적인 현상이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사실 당장 비슷한 시기 이웃나라 프랑스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등장인물들도 막장으로 보면 영국의 올리버 트위스트 등장인물들 뺨치게 불쌍한 삶을 살았다는 점을 알 수 있을것이다. 사실 이 시기에 비교적 풍족한 식량사정으로 인해 전쟁중인 군인들이 매일같이 빵, 베이컨, 커피만 먹는다고 투덜거린 미국 정도가 아니면 서구권의 서민 식생활은 다들 한결같이 막장이었다. 다만 영국의 경우 세계 최초로 산업 혁명을 맞이 했기에 이 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것뿐이다. 하지만 영국의 노동계층들이 이용하는 일반적인 식당들은 수준이 많이 낮다고 알려져있고, 빈곤층의 식단은 타 국가의 빈곤층의 식단보다 비참하다고 한다. 빈곤층의 비참한 식사가 크게 일반화 되어 인식이 악화된듯 하다.

4.2. 영국 요리/급식의 문제점

하지만 현대에도 영국 요리에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학교급식의 문제였다, 영문위키에 따르면 1944년 법적인 영양 가이드라인이 갖춰진채 급식이 시작된 이래로 잘 진행되어 오던 급식이 1980년대 마가렛 대처 정부에 의해 무상급식과 같은 재정지원이 폐지 되고 학교 급식을 관리하는 주체가 학교에서 민영사업자로 넘어가면서 급식의 질이 급격히 하락했다. 민영사업자들이 감자튀김, 칠면조 너겟, 피자와 파이등 수준 낮은 '따뜻하지 않고 차가운' 패스트푸드 수준의 급식을 학교에서 제공하자 이에 경악한 제이미 올리버가 2004년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시작하고, TV 방송을 통해 이를 알리기 시작했다.

제이미 올리버영국 급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내용을 보면 정말 충격과 공포. 제이미 올리버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요리사인 그가 성인병 예방과 급사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학교 급식에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자."라는 상식선의 운동을 펼치고 이를 위해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심지어 영국 급식을 상대로는 방송 중에 울면서 노력해도 제대로 안 됐다. 그나마, 이 에피소드들이 나간 뒤에 뒤늦게 개선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영국 급식의 질적인 저하의 원인은, 마가렛 대처 수상이 집권하던 시절, 영국병을 해소하기 위해서 교육예산을 팍팍 깎고 지방 정부에게 교육예산의 권한을 넘긴 탓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제이미 올리버의 사례도 학교 조리사들이 "조리하기 힘들다."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대충 전자레인지에 해동한 패스트푸드를 먹일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마사 페인(Martha Payne)이라는 9살짜리 꼬마가 자신의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에 대해 신랄하게 평점을 매겨 비판하는 글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고, 그 포스팅이 반 년만에 30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이전 급식개혁운동을 주도했던 제이미 올리버의 격려 멘트까지 받았다.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이 불리해진 현지 협의회가 근면성실한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부당한 모함이라며 급식에 대한 사진 촬영과 업로드를 금하고 탄압하자, 영국 급식에 대해서 논란이 사회문제로 크게 불거져서 급식 개혁에 대한 불길이 각 지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참고.

결국, 제이미 올리버의 이러한 노력이 2005년 영국총선의 주요 화두로까지 진화하여, 영국 정부로 하여금 아이들의 급식영양권을 지키기 위하도록 아이들의 급식신탁(Children's Food Trust)이라는 비정부공공기관까지 만들게 되었고 2014년 9월부터 영국 모든 학교의 유치원생들은 무상으로 '따뜻한' 급식(free hot meal at lunchtime)을 제공받게 되었다. 부총리인 닉 클레그도 적극적으로 나서 모든 유아들에게 인당 2.30파운드를 급식비로 지원하기 시작했고, 스코틀랜드에서는 모든 어린이들이 무상급식을 제공받게 되었다. 영국의 교사노조는 여전히 영국에서 나머지 모든 학생들이 무상급식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영국 노동당에서는 이를 정책 과제로 삼아 진행 중이다.

제이미 올리버의 급식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은 미국 급식으로까지 확대되었다.

4.3. 티타임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티타임이 공식적인 식문화로 자리잡았고 케이크와 쿠키, 스콘, 샌드위치 등 다양한 간식을 곁들여 먹는다. 티 샌드위치의 경우에는 보통 마요네즈+ 1장 or 오이 1장의 단순한 구성으로, 차에 곁들여 먹기 위해 간단히 만든다. 과거 영국에서는 '아삭한 오이'를 먹을 수 있던 것은 상류층들의 특권이었으므로 식빵 사이에 얇게 저민 오이를 끼운 큐컴버 샌드위치가 티타임 전통 음식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애초에 홍차 자체가 찻물의 색이 나지 않을 때까지 여러번 우려먹던 고급 음식이었고, 찻잎을 보관하는 상자는 감히 하인들이 만지지 못하고 오직 여주인만이 만질 수 있었다. 이 외로 곁들여 먹는 스콘은 퀵브레드의 일종으로 견과류와 여러 재료를 섞어 넣기도 하며, 종류가 다양하다. 밀가루로 만든 단순한 것은 클로티드 크림 같은 것을 얹어 먹기도 한다.

5. 영국 요리/밈

2010년대 들어 한국 웹에서는 영국 요리에 대한 비난성 짙은 밈이 유행하며 비난의 정도가 심해져 영국 요리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빠졌다. 하위 문서인 여기를 참조.

이런 식의 농담이 나오게 된 것은 유럽에서 나돌던 '요리 못하는 영국인' 이라는 고정관념이 '세계 몇대~' 혹은 유머를 좋아하는 일본을 거쳐서 여러 에피소드와 함께 한국에 들어오자 꽤 폭발력을 가지고 2012년경부터 이글루스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한국 웹상에 퍼지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한 것처럼 보인다.

이 후, 방송에서 영국 여행을 간 연예인피시 앤드 칩스를 사 먹고는 맛이 없다며 갈매기에게 모이로 주는 캡처사진이나 역시 영국 여행을 간 할머니의 악평[10] 등의 캡처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서 여기에 기름을 부었고, 기껏해야 런던에서 며칠 머물며 동네 식당에서 밥 사먹고 돌아온 배낭여행자들의 주관적 증언까지 곁들여지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아니 다른 나라는 여행자들도 충분히 만족하는데??

뭐 사실 이 문서, 그러니깐 당시 국내 위키 중 가장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던 리그베다 위키 역시 이런 조롱성 농담이 진실인 양 퍼지게 하는것에 혁혁한 공신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혁혁한 공신 정도가 아니라 영국 요리에 대한 밈을 퍼뜨리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곳은 리그베다 위키, 즉 나무위키이다.[11] 당시 "영국요리가 그렇게까지 막장은 아닌데 왜 그렇게 비난하나?" 같은 의견을 보인다면 영국 요리/증언 문서를 들먹이며 반박하는 웃지못할 상황도 자주 일어났다. [12]

한국 요리에 김치나 나물같은 채소류가 많이 보이는 반면 영국 요리는 주류가 고기 요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기름이 많아 느끼하고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다는 편견에 확신을 심어줬을 가능성도 크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건강만 따지면 프랑스 요리중국 요리도 거기서 거기다..(한국 요리도 꼭 좋은 면만 있는게 아니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고.) 또한 한국에 소개된 영국 요리는 정말 상태가 안 좋은 영국 급식/전투식량과 같은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단체배식하는 음식들이었던 점도 편견을 조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학교 급식을 비롯한 영국의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단체배식은 자국에서도 언론보도나 여러 대중매체물에서 직간접적으로 비판하는 심각한 물건들이 다수라...

이전에는 영국 요리를 까는건 무조건 근거가 없는 인종차별이거나 헛소리라는 식의 기술도 있었지만, 명백히 틀린 주장이다. 왜냐하면 당장 영국 요리/밈 항목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영국요리의 악평은 근거를 갖추어 요리가 좋지 않다고 비판하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자나 음식 평론가 등 전문가들의 주장과 영국 관광청 등에서 나온 자료 등을 제시하면서 비판한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까지 전부 헛소리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애초에 영국 요리는 무조건 맛이 없다, 혹은 영국인은 선천적으로 요리를 못하는 족속이라는 이야기는 사실이라기 보다 인종유머, 국민성 유머, 금발머리 유머, 직업유머와 마찬가지로 때와 상황과 청자에 따라서는 큰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스테레오 타입 유머'의 범주로 이해하는게 옳다.


  1. [1] 프랑스 요리도 메디치가의 카레티나 공주가 이탈리아의 식문화를 프랑스에 전파하기 전까진 야만적이고 형편없는 요리로 정평이 나있었다
  2. [2] 영국식 돼지고기파이, 영국식 복숭아타르트, 프랑스식 계란사과를 참조.
  3. [3] 이 점 때문에 영국과 독일에서는 서로의 요리가 맛이 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4. [4] 일례로 제임스 1세는 사슴 사냥을 할 때 직접 그 목을 딴 다음 "관리들의 얼굴에 사슴 피를 바르고 나서 그 피를 닦는 것"을 금했다. 사슴 사냥을 마친 뒤 "상류층 숙녀와 여성들은 사슴 배를 가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을 하얗게 해 준다는 믿음에 양손을 피로 씻는 것"이 관례였고 지금도 영국에서 여우 사냥을 할 때는 첫 사냥감을 잡은 사람의 얼굴에 피를 살짝 묻히는 의식을 한다.
  5. [5] 아편전쟁의 원인 중 하나로 중국으로부터 찻잎, 도자기 등을 수입하며 생긴 막대한 무역 적자가 꼽히기도 한다.
  6. [6] 전통적으로 홍콩 요리는 광둥 요리의 일부였다.
  7. [7] 원래는 남중국 사람들이 먹던 굴소스에서 유래했다.
  8. [8] 대표적으로 피쉬 앤 칩스의 경우 영국 본토에서는 대구를 이용하지만, 캐나다는 연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호주는 상어를 이용한다고 한다.
  9. [9] 사실 직후라고 하기엔 좀 시간적으로 오랜기간 지속된 면이 있는데 당장 영국은 2차대전 종전 이후 1954년까지 배급제를 실시했어야 할 정도였다.
  10. [10] 사실 기성세대, 특히 노년층의 경우 정통 서구 요리에 대해 일반적으로 낯설어하고 거부감을 느낀다는 점을 생각하면 큰 문제는 아니다.
  11. [11] 결국 이용자나 편집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할 것이다.
  12. [12] 은근히 인터넷에서 비학술적인사실 때로는 학술적인 부분까지도 주제에 대한 영향력이 큰 곳이 엔하계 위키이기 때문이다. 구글 노출도 매우 높아서 레딧의 'korea' 게시판 같은 곳에서도 나무위키는 도대체 뭐길래 한국 구글에서 검색하면 맨날 위에 나오냐?라는 질문이 올라올 정도이다. 한국인들은 국수주의자라서 위키백과 참여 안하고 따로 노는 거 아니냐고 외국인들이 짐작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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