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언어별 명칭

한국어

넋 / 靈魂, 魂靈, 魂魄

그리스어

ψυχή

독일어

Geist

라틴어

anima, spiritus[1]

영어

Soul, Spirit[2]

일본어

霊魂, 魂, 魂魄

이탈리아어

anima

중국어

靈魂(정체자) / 灵魂(간체자)

프랑스어

esprit

히브리어

נֶ֫פֶשׁ (네페쉬)

1. 개요
2. 상세
2.1. 동아시아의 관점
2.2. 유럽의 관점
2.3. 기타
2.4. 영혼의 무게?
2.5. 현대 학문적 관점
3. 대중매체
4. 속어
5. 관련 문서

아기로 묘사된 기독교 종교관의 영혼

1. 개요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가톨릭 성경)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 드려야 한다. (공동번역)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킹제임스버전)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개역개정)

요한 복음서 4장 24절

"훌륭한 신체에 고결한 정신이 깃든다."

- 아리스토텔레스[3]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것 중 감각적으로 포착되지 않는 별도의 무언가를 가정하고 이를 가리키는 말.

2. 상세

믿는 사람마다 문화권마다 영혼의 개념이 다르다.

2.1. 동아시아의 관점

동아시아에서는 혼(魂)도 기(氣)로 이루어져 있으며,[4] 사람이 죽으면 육체가 썩어 없어지듯이 영혼도 하늘에서 흩어진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혼백이 영혼이랑 같은 뜻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원래 혼백 중에서 혼(魂)만 영혼과 비슷한 뜻이고, 백(魄)은 육체에 가까운 개념이다. 《예기》 교특생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魂氣歸于天, 形魄歸于地: 혼기(魂氣)는 하늘로 돌아가고 형백(形魄)은 땅으로 돌아간다.

동아시아의 옛날 세계관에서는 사람이 뭔가 자연적이지 않고 억울하게 죽었을 경우, 백(魄)만 죽고 혼(魂)은 남아서 난동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액(厄), 살(煞) 등으로 부른다. 물론 혼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흩어지지만, 흩어지기 전까지 난동을 부리기 때문에 무당이 살풀이를 해준다고 본다. 동아시아의 귀신 이야기에서, 귀신이 툭하면 한이 쌓여있고 그게 풀려야 이승에서 물러나는[5] 이야기가 많은 건 이런 개념들 때문이다. 또 불교윤회사상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흩어진 영혼은 소멸하는게 아니라 다시 환생한다고 한다.

2.2. 유럽의 관점

그리스 철학에서는 영혼을 인간 생활의 원칙으로 보았는데 플라톤은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영혼 자체가 삼부(三部)구조로 되어 있어서 감각적인 욕정의 원리인 탐욕혼이 복부에 자리 잡고 있고, 용기와 정기의 원리인 기혼(氣魂)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며, 생각의 원리인 지혼(知魂)이 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지혼은 불멸의 신적(神的)인 성격을 띠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자연철학적인 원리인 질료형상론(質料形相論, Hylemorphism)으로 설명한다. 모든 사물의 구조원리가 그렇듯이 모든 생물의 구성원리는 원질(原質) 혹은 질료와 체형(體形) 혹은 형상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모든 생명체의 체형 또는 형상이 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은 중세기를 거치는 동안 토마스 아퀴나스를 위시로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을 정립하는 데 초석이 되었다. 플라톤이 육체를 영혼의 감옥이라 본 관점과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육체의 극단적 이분법을 배제했고, 그 둘 사이의 관계가 매우 긴밀함을 강조했다이기론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현대인에게 쉽게 설명을 하자면, 인간의 이성과 감정은 '신경계의 전기 작용'과 '호르몬의 화학 작용' 등에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즉 영혼의 작용이면서, 동시에 신체의 작용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다음과 같이 세 부류로 나누었다.

  • 생혼(生魂): 이는 식물 안에 있는 생명력의 근원이다.
  • 각혼(覺魂): 이는 동물 안에 있는 생명력의 근원이다. 첫째혼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 지혼(知魂): 이는 인간 존재 안에 있는 생명력의 근원이다. 둘째혼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해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영원히 살도록 되어 있는 영혼, 곧 지혼은 오직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적인 본질과 활기를 불어넣는 원리 그리고 생명을 활동케 하는 원인이며, 육체와 결합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존재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관점은 가톨릭 교회에서 그대로 수용하였고, 서구의 전통적인 영혼관으로 굳어진다. 현행 가톨릭 교리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트리엔트 공의회 《로마 가톨릭 교리서》(우리나라에서는 《천주교 요리문답》)에 따르며, “사람은 영혼과 육신이 결합한 자니라”라고 되어 있고, 현행 《가톨릭 교리서》에도 “하느님은 육체와 영혼으로 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되어 있으며 그리고 “영혼은 죽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되어 있다.[6]

한편 그리스도교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 복음서에서 특히 영과 육을 구분해서 말하며, 기본적으로 이러한 이부적인 관점으로 시작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마태오 복음서 10장 28절 중 (공동번역 성서)

다만 예외적으로 데살로니카인에게 보낸 서간에서는(1데살 5:23) 사도 파울로스가 삼부적인 관점(영과 혼과 육)을[7]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파울로스의 분류법 중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로 파울로스는 통상 이런 분류법을 쓰지는 않는다.

여러분의 심령과 영혼과 육체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완전하고 흠없게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5장 23절 중 (공동번역 성서)

때문에 학자에 따라서는 제일 앞의 '여러분의 영' 부분을 '여러분 자신'의 동의어로 이해하여, '여러분 자신 곧 영혼과 육체'로 옮기기도 한다. 한편 가톨릭의 New Jerusalem Bible에서는 이를 각각 spirit, life, body로 옮겼다.

아무튼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인간관은 학문화하는 과정에서 초대 교부(敎父)들은 이교도들의 유물론적 범신론적 또는 이원론적 인간관을 가미하여 구구한 학설이 나왔다. 테르툴리아노(Tertullianus)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들어 영혼의 육체성을 주장하였고, 성 이레네오(St. Irenaeus)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오리제네스(Origenes)는 플라톤 학파의 영향을 받아 영혼의 전생설을 지지하고 전생의 죄 때문에 영혼이 육체 속에 갇히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잡다한 교부들의 설은 니체아 공의회 뒤 거의 없어지고, 니사의 그레고리오와 성 아우구스티노, 네메시오(Nemesius, 4세기)와 증거자 성 막시모(St. Maximus Confessor, 6세기)에 이르러 이미 중세 스콜라 철학의 영육이 이부구조적인 인간관이 형성되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의 자연철학을 따르면서 인간혼은 개성을 가진 영체로서 육신의 체형 또는 형상이 된다고 정의하였다. 영혼은 죽은 뒤에라도 육신과 떨어져 단독으로 존재하나 살아있는 동안은 육신과 합하여 완전 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영혼은 그 자체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육체와 합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이 점에서 영혼 자체는 순수 영체로서 불사불멸하지만 천사와는 다르다. 영혼이 어떻게 생겨서 육체와 결합하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었으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창조설로 낙착되었다.

가톨릭은 인간의 영혼은 죽음 이후에도 의식 있는 개별적 존재로서 계속 존속한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재림 시, 영화롭게 변화된 육체가 영혼과 재결합되어 부활할 것을 믿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수용했기에, 영혼이 이승에 남아서 빙의되거나 난동을 부리거나 하는 현상은 말하지 않는다.[8] 동양의 오컬트에서 귀신들이 할 법한 이런 짓들은,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는 악마들 담당이다. 당연히 선한 귀신이 도움을 줬네 마네 하는 동양적인 이야기는 전통적인 유럽식 영혼관에서는 어색해진다.[9]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도,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도 인간의 영육은 완전한 독립의 관계는 이루지 못한다.[10]

이러한 관점들로 볼때, 유럽의 spirit이라는 '정신' 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가톨릭 신학자인 카를 라너는 인간을 "Spirit in the World'으로 설명했는데, 이는 "세계 내 영혼"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세계 내 정신"으로도 옮겨진다.[11]

개신교 신학에선 다르게 보는 경우도 있다. 애초에 개신교 신학은 스콜라 철학이 그리스 철학에 지나치게 종속되어 있는것을 비판하며 나왔기에 인간이 물질인 육체와 비물질인 영혼으로 이뤄져 있다는 이원론은 애초에 플라톤적 해석이라 본다.

김기현 박사(침례신학대학교 종교철학·현대영미신학)는 "인간에게 영혼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성경에는 '영', '영혼'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김 박사는 이 단어 의미를 살펴보며 설명하길. 성경에 나오는 영, 영혼을 원문으로 번역하면 '네페쉬(히브리어)'다. 네페쉬는 구약에 755회 등장한다. 영어로 soul, 한국어로는 영혼이라고 번역된다. 한스 발터 볼프(Hans Walter Wolff)의 해석을 인용하면서 네페쉬를 해석했다.

"네페쉬가 의미하는 것은 '영혼'이 아니다. 네페쉬는 인간 모습 전체와 특히 인간의 호흡을 총망라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서 인간은 네페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인간)가 곧 네페쉬이다."

-《구약성서의 인간학》(분도출판사) 29쪽.

네페쉬 자체가 신체이자 영혼이고, 감정이자 의지라는 의미다.

김 박사는 영국 IVP가 출간한 《새성경사전》에 실린 '영혼'의 뜻도 소개했다. "대개 네페쉬는 죽으면서 떠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 단어는 결코 죽은 자의 영혼으로 사용된 적은 없다." 김 박사는 인간이 영혼과 육체로 구성됐다는 이원론에 사로잡혀 육체가 죽으면 영혼은 곧바로 천국으로 간다는 전통적 이해는 성경의 해석과 상당히 어긋난다고 말한다.

2.3. 기타

인도부터 유럽까지의 서양 세계관에서는 고대로부터 영혼을 육체와 구별되는 비물질적이고 초자연적인 불멸의 정신적 실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이야기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는 거래를 인간이 허용할 수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다만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에서는 귀신처럼 영혼이 지상에 머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죽으면 그대로 사심판을 거쳐 천국지옥연옥 중 한 곳으로 간 후,[12] 최후의 심판 때(공심판)가 되면 새로운 몸을 갖고 부활해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고 믿기 때문에, 일상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는 말은 어떤 선행을 하건 상관없이 지옥행을 예약하는 패악적 행위를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될 때가 많다.(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계약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경우에 영혼이라는 개념은 곧 자아와 동일한 것이며, 육체를 살아있게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식으로든 영혼이 육체에서 빠지면 육체가 죽고, 영혼을 육체에 넣으면 되살아 나거나 하는 서브컬쳐의 묘사가 이런 의식을 뒷받침한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것은 어디까지나 서양 세계관. 동양인들도 20세기를 거치면서 서양화되어버린 것이다.

대개의 문화권에서는 육체가 죽음을 맞아도 영혼은 존재한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동북아시아영혼결혼식이라는 것도 있다. 또한 이 논리를 이용하여 환생에 대한 설정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불교에서는 영혼의 윤회를 말하며 선행을 강조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종교는 영혼의 불멸을 지지한다.

바이킹을 위시한 북유럽 민족들 사이에서는 과거 용맹히 싸우던 도중 죽은 자의 영혼은 발키리가 회수하여 천국 발할라에 모셔진다고 했다. 다만 이 발할라라는 동네가 다른 동네에서는 굉장히 지독한 지옥취급받는 동네와 묘사가 거의 같다보니[13] 차라리 그냥 성불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지만.

살아있는 자의 영혼은 생령(生靈), 죽은 자의 영혼은 사령(死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생령은 사실 그냥 살아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령은 보통 자연에 깃든 신령한 기운에서부터 요정이나 애니미즘의 대상을 가리키는 등 대상범위가 넓다. 한편 성령은 보통 기독교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인데, 이는 일반적인 영혼과는 개념이 많이 다르다. 자세한 건 삼위일체 참고.

어떤 억울한 사유로 인해 죽어서도 계속 돌아다니는 영혼은 유령이라고 한다. 망령은 죽은 자(亡)의 영혼이라는 뜻이고, 원령은 원통해하는 영혼이라는 뜻. 악령은 악한 영인데,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악마의 영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여튼 싸잡아서 귀신이나 유령이라고 부른다.

인문학자 호르크하이머의 경우 영혼을 태초의 뒤엉킨 자연에서 분리된 주체와 객체와의 간극이라고 본다. 자신의 신체를 포함하여 자연을 객관적인 관조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영혼의 존재를 주장하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혼이란 자연과 분리될 수 있는 주체의 자유의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영혼은 주체의 자유의지의 형성점이자 주체를 자연과 분리시키는 분절의 경계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결과적으로 인간에 의한 자연의 지배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언가에 혼을 바친 듯 열심히 하는 뜻으로 '영혼의~'라는 수식어가 속어처럼 종종 붙는다. 대표적으로 영혼의 맞다이, 영혼의 백도어 등등.

현재 94% 정도의 사람들이 영혼의 존재에 대해 긍정하고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서양이나 동양이나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옛날 부터 보편적이었다 보니 당연한 수치일 지도.

2.4. 영혼의 무게?

사람이 죽을 때 무게를 재 보면 죽는 순간 무게가 약간 줄어드는데 이것이 영혼의 무게라는 말도 있고 21g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상 신빙성은 없다. 영혼이 21g이란 소리는 과학동아에서도 명백히 허구임을 알리는 기사도 존재한다. 맥두걸이 실험한 환자의 수는 고작 6명이며 측정치도 전부 다 다르다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이라도 경련하거나 몸을 움직일 것이므로 정교한 무게 측정은 어렵다고 한다. 또한 이 영혼 21g 연구는 과학계에서 전혀 받아들여진 적이 없다고 한다.(2014년 7월 과학동아 기사 링크) 혹자는 35g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사쿠라이 가몬의 만화 아인검은 유령은 이 주장에서 영감을 얻은 듯 보인다.

게다가 21g 정도 변하는 건 사람이 죽을 때와 시체일 때 벌어지는 생리현상 등을 고려하면 사실 "영혼"이라는 개념을 개입시킬 이유가 전혀 없다. 애초에 인간이 죽음에 이르는 것은 심장사 자체보다는 심장사로 인해 세포들이 급격하게 죽어나가기 시작하는 과정이 그 원인인데다 애초에 시체라는 존재 안에서도 부패과정에서 굉장히 다양한 생리현상들이 벌어진다.[14] 또한 애시당초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으로서의 영혼은 물질을 초월하는 존재인데, 물질적 실체로서의 신체 질량이 몇 그램이 줄어드는 것을 통해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자가당착에 가깝다.

사실 ‘죽는 순간’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심장이 멈추면? 호흡이 멈추면? 뇌 내 전기화학적 작용이 없어지면? 몸이 완전히 썩어 문드러지면? 애초에 ‘죽음’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2.5. 현대 학문적 관점

서양 지성계에선 후에 기독교라는 종교적 문제와 상관없이 고대 그리스 철학의 영향으로 물질적인 세계와 이상적인 세계는 구분되며 소통할 수 없고 다다를 수 없는 세계로 여겼기에 동양처럼 정신적 활동과 물리적 세계가 연결된다는 기(氣) 내지 천인감응 같은 사상은 없었다.

따라서 영혼의 유무는 과학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었고, 관심이 있는 분야도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철학을 받아들인 기독교 신학 관점에 따라 영혼을 '정신'으로 해석하든, 동아시아의 관점에 따라 '기(氣)'로 해석하든, 이야기책에서 나올법한 오컬트적인 영혼이든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과학은 물질적인 것을 다루는 학문이고, 영혼은 어느쪽의 정의를 따르든간에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영혼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반(Anti)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비(Non)과학적인 것이라고 정의되어져 왔다. 이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영혼의 경우, 과학과 모순을 일으키지는 않으므로 반과학적이지는 않지만, 과학에서 다루는 영역 밖에 있었기에 비과학적이었다.

하지만 심리학이 발달하고 인지과학이 출현하면서 (신체와 완전히 독립되어있다고 주장되는 의미에 한정하여)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과학의 역할이 커지게 되었다. 특히 뇌가 인간의 의식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근거가 곳곳에서 나타나자 '물리적 실체와 떨어진 영혼이 있다는 심신 이원론'은 위협받기 시작했다. 60년대에는 많은 심리철학자들이 심신 이원론을 방어하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훌륭한 논증들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점점 인지과학적 증거가 쌓여가자 심신이원론자들의 입지가 줄었다. 그리하여 현재 다수의 심리철학자들을 비롯한 학계의 전문가들은 신체와 분리된 실체로서의 영혼의 존재를 배제하고 있다.[15]

한편 심리학/생물학계에선 뇌과학적으로 접근한다. 대표적인 예로 허균 교수(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신경학과)는 뇌를 하나의 컴퓨터로 비유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진화를 거치며 생존해 온 선대의 특징들을 담은 우리의 는 이미 컴퓨터처럼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고 했다. 욕망, 가치 판단, 선택, 행동, 수행 평가, 학습 등 뇌 안에서 작용하는 모든 현상은 이러한 프로그래밍의 결과다.

한 예로 '욕망'을 살펴보자.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에 공급되지 않으면, 인간은 어떤 것도 욕망할 수 없다. 단순히 멍한 상태가 된다. 허균 교수는 연세대에서 열린 자신의 강연에 청중들이 늦은 저녁 비가 내리는 신촌 거리를 뚫고 연세대학교 의대 강당에 찾아와 강의를 듣는 것도, 도파민이 뇌에 공급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경생리학적인 발견이 영혼의 유무를 밝히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보긴 어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영혼도 육체와 조화를 이루며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지, 뇌 내에서 신경전달물질이 고갈되든 말든 상관 없이 뭐든 해낼 수 있는 전능한 어떤 것이 아니다.

또한, 조현병의 예를 살펴보자. 조현병 환자들의 뇌는 물리적인 손상이나 후천적인 요인으로 인한 기형적 성장, 혹은 발달저해에 따른 도파민의 과다분비로 인해 항상 메스암페타민을 복용하는 상태가 되어 환각과 환시로 인해 들어오는 정보가 왜곡되거나 과장되고 폭력적이며 앞뒤가 맞지않는 기괴한 인지도식을 형성하여 살인같은 극단적인 행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스로 사고할 수 있으며 사람의 몸에 깃들어 있는 인간의 그 자체이며 정수인 영혼이 존재한다면 심신이 분리된 것으로서 다만 뇌의 구조적 오류로 인해 그 사람의 사고체계가 완전 마비에 이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에 대해 실제로 영혼이 존재한다고 해도 영혼이란 것이 행동을 옮길 때에 필요한 출력기구 즉 신체 등이 고장난다면 실제로 행동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해명하려는 경우가 있는데, 뇌가 출력기구에 불과하다면 사고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는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단지 행동 만이 왜곡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 사례들은 이미 사고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현재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있다는 심신이원론을 주장하는 부류에서도 육체와 완전히 분리된 정신(영혼)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크게 줄어들고, 육체와 영혼이 매우 밀접히 연관되어있다는 주장이 강해졌다. 영혼은 육체를 주관하며, 육체는 영혼에 영향을 준다는 것.

사실상 이들의 주장은 이와 같다: 뇌는 폰 노이만 방식을 초월해 스스로 경험에 따라 그 논리 회로를 송두리째 변경하는 성장하는 생체 컴퓨터에 가까운 존재이며, 심리학적으로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는 모종의 이유로 뇌가 만들어 낸 것이다. 허균 교수는 이를 착시 효과로 예를 들었다. 아래 그림을 보자.

이 그림에서 빨간 선은 직선이다. 그런데 육안으로 볼 때에는 두 선이 굽어보인다. 이는 주변에 있는 다른 선의 영향을 받아 뇌가 작용한 결과다. 이처럼 뇌는 사물을 인지할 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눈, 코, 입, 귀 등의 감각기관으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뇌는 머릿속에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16] 이것을 심신 일원론이라 하고, 뇌과학자들은 이처럼 인간의 영혼, 자아, 자유의지, 윤리와 가치 등의 개념이 모두 다 실체가 아닌 환상적 부산물이며, 인간의 진정한 실체는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뇌에 의해 작동되는 불확실성의 정보 처리 기계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선 반론이 만만치 않은데, 인지과학자들과 심리철학자들은 이런 주장이 정신과 신체(뇌)의 결과를 너무 단순화한다고 비판하고 정신이 단순한 신체의 반영이 아니라 좀더 복잡한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입장을 속성 이원론이라 부른다. 하지만 어느쪽이건, '물리적 신체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영혼의 개념(해당 조건이 붙여진)은 부정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편 인간의 정신과 의식을 물질적으로 설명해보려는 시도 중에 최근 양자역학으로 설명해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펜로즈(스티븐 호킹과 함께 블랙홀 연구로 유명한 이론물리학자)와 해머로프가 주장한 Orch-or이론이 가장 유명하고 그 외에 헨리 스탭 같은 과학자가 주장하는 중이다. Orch-or이론은 둘 이상의 양자의 상태가 서로 연결되는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 현상에 기초하는데, 뇌세포간의 연결에서 이러한 현상이 연속적으로 일어남으로써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의식이 존재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는 기계적인 뇌의 생화학적 작용이 어떻게 우리가 가진 통일된 의식, 관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와 같은 의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양자 자체가 의식의 근본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모든 우주 현상의 근원이라고 보는 것이다. 관련된 책으로 펜로즈는 이와 같은 주장을 자신의 저서인 《마음의 그림자》로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양자적으로 설명하기에 뇌는 너무 크고, 이 정도 크기에서 양자적 효과는 거의 상쇄되기 때문에 과학계에선 이 주장에 회의적이다.

그런데 어느 학자는 자유의지에 대해 논할때 거론되는 벤자민 리벳의 실험이 영혼을 반박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리벳의 실험은 대략 피험자에게 손을 들게 시켰는데, 피험자가 어느 손을 들지 결정하기 이전에 관련된 뇌 부위에 전기가 일어났다는 결과가 나와서 이걸 가지고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하지만 리벳의 실험은 예전에 시행됐고 실제로 디지털 시계를 사용하니 결과가 달라졌다고 한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어서 리벳 실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설령 리벳 실험이 맞다고 하더라도 어느 학자[17]에 따르면, 위에서 말한 심신일원론을 따르면 자유의지와 관계없이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곧이어 이 실험은 심신일원론을 지지하는 증거이며, 경우에 따라 영혼을 부정하는 증거일 수 있다고 한다.

리벳실험의 실험은 인정하나 그 실험결과의 해석 혹은 실험설계는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철학자들(과학철학, 심리철학)도 있다. 해당 실험이 자유의지를 증명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혹은 설계까지도 맞지만 그 결과를 자유의지가 없다고 해석하긴 어렵다. 등의 입장이다.

심신일원론자들이 아직 설명을 잘 못하는 부분 중 하나는 '의식'(consciousness)이다.[18] 이런 의식의 영역 중 일부는 심신일원론에서도 아직까지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심신일원론 뿐만 아니라 심신이원론 역시 마찬가지다. 심신이원론의 주장은, "아직 모르는 것에 대해 모른다고 그냥 놔두기보다는 대충이라도 혹은 상상으로라도 무언가 설명을 해두는게 낫지 않을까?" 정도이다. 과학적 증명과는 거리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 예일대 철학과 교수 셸리 케이건(Shelly Kagan)의 동영상 강의[19]를 들어보자. ~물론 영어 듣기나 읽기가 된다면...~

링크에서 세션 탭으로 들어가면 강의목록이 나온다.[20]

생사학, 죽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철학자, 의학자 등)은 근사체험 논문들을 발표하여 영혼이 있다고 주장한다.

'의식이 뇌활동이라면 뇌사상태에서의 근사체험이 어떻게 가능한가?', '약물이나 질환으로 유발된 환각 내용과 근사체험의 내용이 다르다.' 등의 주장이 있는데 이 연구들이 심신이원론의 증명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현 심심일원론(2019년 기준)이 완벽히 설명 못 하는 부분이 있다는 유의미한 지적은 되어 보인다.

서울의대 정현채 교수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웨이 프로젝트(근사체험의 체외이탈 경험을 통해 숨겨진 물체를 볼 수 있는지에 관한 연구)에서 2%의 성공률을 보인다고 한다. 중간 보고 연구 논문을 근거해 답한거 같다.

3. 대중매체

"하지만 영혼의 존재는 믿고 싶어요. 우리에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쓸쓸하지 않을까요?"

-《영화 '기담' 중에서》

일본 창작물(특히 오컬트 계열)에서는 '영혼의 힘'이라는 의미로 영력이라는 요소가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건 서브컬쳐만의 용어는 아니고 본래 오컬트적 용어로 쓰인 것이 차용된 것이다. 여하튼 이게 높으면 유령 같이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부가적인 능력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런 능력으로 인해 귀신에게 시달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고생하는 캐릭터도 상당히 흔한 클리셰. 흡수, 빙의 등으로 자신의 능력이나 다른 영혼이 갖고 있던 능력을 구사하던지 하는 용도로 쓰기도 한다. 영혼이 파괴되는 것은 곧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므로 이로 인해 끝장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대개 영혼들은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기에 역시 그에 상응하는 초자연적인 힘으로 물리치는 상황이 흔하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는 문구가 종종 나오는데, 보통 이런 문구는 목표를 위해 그동안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무언가, 긍지나 신념 같은 것을 내팽겨쳤다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판타지에서 많이 쓰이는 언데드의 경우, 자세히 보면 육체 있거나, 영혼 있는 경우 모두가 포함된다.

  • TYPE-MOON/세계관에선 기본적으로 윤회전생이다. 그러면서 기원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단, 영웅 혹은 그와 동급의 악당이 죽으면 윤회에서 벗어나 영령이 된다.
  • 인디게임 Undertale에서는 중심소재로 등장한다.
  • 타짜 3부에서 도일출은 나라에게 자기 영혼을 팔아버린다. 그리고 나중에 영혼을 도로 사면서, 영혼을 팔아버리고 나서야 자신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고마웠다고 말한다.
  • F.E.A.R. 시리즈는 현대 배경 FPS이긴 하지만, 초능력이란 설정까지 공존하고 있어서 유령이 자주 나온다. 주역 인물들이 영혼화된 경우엔 그나마 불쑥 튀어나와서 놀래키는 정도의 행패만 부리고 끝나지만, 이름없는 영혼 들은 죄다 적군.
  • 공각기동대를 비롯한 여러 SF 물에서는 기계도 영혼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고찰이 펼쳐진다. 특히 대놓고 고찰하는 작품은 공각기동대. 고스트라는 걸 두고 과연 인간이 아니었던 존재가 고스트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 이 작품의 스토리 근간을 차지한다. 일단 작중에 인간이 아니면서 고스트를 획득했다고 결론 내려진 캐릭터는 인형사타치코마 일동. 다만, 공각기동대에서는 고스트를 순전히 물질적인 유물론적 정신개념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전통적인 영혼 관념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 퓨처라마에서는 로봇도 영혼을 가질 수 있는데다가 영혼 상태에서 잠도 잔다.
  • 창세기전 시리즈에서는 템페스트에서부터 영혼의 개념에 대한 자세한 설정이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는 불교의 환생관과 유사하게 영혼의 존재를 설명하는데, 카오스 큐브라는 광석을 통해 영혼을 보존하거나 유도하여 환생시기나 장소를 어느정도 예측할 수 있게 한다는 설정이다. 이후 창세기전 3: 파트 2에서 멸망하기 전 미래의 아르케 과학은 영혼의 존재를 어느정도 감지할 수 있는 수준까지 진보하였는데, 여기서는 '영혼의 분자' 즉 '영자(靈子)'라는 개념을 설정하여 영혼의 존재를 설명한다. 이 '영자 연구'의 선봉에 있던 엠블라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사망하면 몸에서 영자라는 개체가 흩어지기 시작하며, 이 영자는 우주의 어느 곳으로 흩어진 후에 다시 모여 새로운 영혼과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설명이다. 이 때 인간이 인위적으로 영자의 흩어짐을 막거나 영자만을 끌어당기는 특정 매체를 이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가설은 있지만, 태초부터 존재했던 마검인 아수라살라딘의 희생으로 기적적으로 태어난 베라모드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공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없다.
  • 개그물에서는 무언가를 보고 놀랐거나 멘붕했을 때, 또는 보케츳코미에게 구타를 당할 때(...) 머리나 입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식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 심슨 가족바트 심슨은 한국 기준 시즌 7 4화인 《Bart Sells His Soul》에서 그의 영혼을 팔았다. 그리고 온갖 기이한 일들을 겪는다.
  • 죽은 자의 제국에서도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이라고 나오며, 시체에 의사영소(유사영체)를 인스톨 시켜 '죽은 자'를 만들어낸다. 주인공 존 H. 왓슨해석기관에 의해 천공카드에 입력된 의사영소가 아니라 진짜 영혼을 부활시키기 위해 세계 각지를 여행한다.
  • Warhammer 40K네크론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신을 가졌을 때에는 영혼이 있었지만 기계 육신으로 옮기는 과정에 크탄들이 자신들의 영혼을 먹어치워서 영혼이 없다고 한다. 영혼이 없는데 반란을 일으킨 자렉은 뭐지? 그 말은 원래는 영혼을 기계에도 담을 수준의 기술력이 된다는 말이다. 흠좀무.
  • Don't Starve의 캐릭터 워톡스는 영혼을 먹고 영혼을 이용해 을 한다.

4. 속어

인터넷에서는 "마지막까지 죽을 힘을 다해 쥐어짜낼 수 있는 자원" 혹은 "최후의 보루로 꼭 남겨야만 하는 가장 내밀한 자존심"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 용례로는 "영혼까지 끌어모았다",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 등을 들 수 있다.

영화를 예매만 하고 보지는 않아 그 영화의 예매율만 올려주는 행위를 영혼 보내기라고 한다.

5. 관련 문서


  1. [1] 성령을 라틴어로 spiritus sanctus라 한다.
  2. [2] 유럽의 spirit 개념은 동양의 영혼 개념과는 일대일 대응되지 않는다. 자세한 것은 후술.
  3. [3] 아식스가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 흔히 유베날리스가 최초로 쓴 표현으로 알려져있으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먼저이다. 출처는 신학자 세르티앙주의 저서 《공부하는 삶》
  4. [4] 동양의 세계관에서 기(氣) 개념 자체는 오컬트 개념이 아니며 경험론적인 성격을 가지기에, 동양의 혼 개념 자체는 초자연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것이다. 다만 실질적으로는 온갖 민간신앙이 짬뽕되어 결합되는 경우가 다반사라, 초자연적 개념이다. 이를테면 유교의 조상제사는 원칙적으로는 초자연적 개념이 일체 배제되어 있으나, 실제로 제사를 지낼때는 영혼이 들어오라고 대문을 열어놓는 식으로 진행된다. 주자 피꺼솟
  5. [5] 재패니메이션의 영향으로 귀신이 이승에서 물러나는 것을 성불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성불은 본래 '부처가 된다'라는 뜻이며 사람이 이승에서 물러날때 성불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보편적 표현은 아니다. 정토종의 믿음이 강한 일본에서, 사람이 죽었을때 "서방정토로 갔으니 성불하였다"라는 식으로 표현한 것에서 나온 말이다.
  6. [6] 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관은, 후술하겠지만 그리스도교에 수용되어서 유럽의 전통적 영혼관을 이루게 된다. 물론 오늘날에는 동서양의 문화교류로 인해서 많은 영향을 주고 받는 중이므로, 서구의 오컬트에서도 선한 사람의 영혼이 한이 쌓여 이승에 남아있다는 식의 이야기도 나올 수 있다.
  7. [7] 공동번역에서는 심령과 영혼과 육체로 말하는데, 현 가톨릭 성경과 개역성경 및 개신교 표준새번역에서는 영과 혼과 육으로 옮긴다.
  8. [8] 다만 구약에서 점쟁이가 저승에 있는 사무엘의 혼을 불러내는 이야기는 있다. <하지만 이는 점쟁이 즉 사탄마귀가 사울을 속게 하기위한 환상이다. 왜냐 구약시대의 사후세계에 관한 미신에 기반하여서 사울을 속였기 때문에 이는 기독교 세계관에 맞지 않은 것이다. 신약에서 사후에 관한 계시가 나타나지면서 스올이란건 없다는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즉 영혼이 땅에서 올라왔다는건 사탄의 뻥>
  9. [9] 다만 악마를 골탕 먹이는 이야기는 있다. 이를테면 악마가 인간과 계약할 때 소원수리의 대가로 대개 가져가지만, 솔로몬은 머리가 좋아서 영혼을 뺏기지도 않고 계속 악마의 재산을 갈취했다는 옛 이야기가 있으며, 톨스토이의 소설 <바보이반>에서도 악마를 골탕먹이는 묘사가 있다.
  10. [10] 완전한 독립을 주장한다면 영지주의적 관점이기 때문에 이단이다.
  11. [11] 참고로 말하자면, 라너의 이런 관점은 자신에게 철학을 가르친 스승인 하이데거의 이론으로부터의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12. [12] 개신교에서는 연옥을 부정하고, 가톨릭은 인정하며, 동방교회는 연옥이라는 용어는 안쓰되 천국과 지옥의 중간 상태를 고백한다.
  13. [13] 매일 매일 싸움을 벌여 다 죽을 때 까지 싸우고 또 싸운다. 그 후 저녁이 되면 다시 살아나 돼지를 잡아 거하게 잔치를 벌이며 다음날이 되면 다시 또 싸워야 한다. 이 것을 최후의 날까지 무한 반복. 이런 것을 불교에서는 수라도라고 불렀다(...). 하지만 발할라의 주인인 오딘이 가지는 성격과 당시 북유럽신화를 믿던 이들의 입장에서는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하다. 발할라는 용맹한 전사가 인도되는 곳이니 말이다.
  14. [14] 심지어 어떤 학자는 시체조차도 완전히 백골화되기 전까지는 "죽은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생물체가 됐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15. [15] 백도형(2011), '심리철학과 심신문제', In 박영태(Ed.), '과학철학: 흐름과 쟁점 그리고 확장', 창비, 2011
  16. [16] 관념론과 유사하다.
  17. [17] 모기룡. (2013). 결정론의 환상과 기능류어로서의 자유의지. 인지과학, 24(3), 237-270.
  18. [18] 여기서 의식이란 전통적으로 인간의 고유영역이라 여겨져온 감정이나 느낌이라고 여겨지는 부분들을 말한다.
  19. [19] 강의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교수가 아마도 물리주의자인 듯 하니 참고하자.
  20. [20] 특히 본문에 해당하는 내용은 4강 'Introduction to Plato's Phaedo; Arguments for the Existence of the Soul, Part II'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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