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테보리

스웨덴어: Göteborg

노르웨이어: Gøteborg

영어: Gothenburg

1. 개요
2. 역사
3. 기타

1. 개요

스웨덴 제2의 도시

스웨덴 서부에 위치한 항만 도시로 스웨덴의 해상을 통한 수출입을 대부분 담당하고 있다. 인구는 약 55만명, 광역권을 포함하면 약 98만명으로 스웨덴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며 베스트라예탈란드 주의 실질적인 주도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부산과 비슷한 도시.

스웨덴어의 ö 를 그냥 마구잡이로 로 번역하다보니 괴텐베르그 혹은 외테보리라는 이름으로 흔히 알려져있었다. 스웨덴어의 ö 의 발음은 그때그때 다르므로 무작정 바꿔서는 안된다 현지 방언을 잘 살려서 발음해보면 야따볼ㄹㄹㄹ리 정도가 된다 영어로는 '고텐버그(Gothenburg)'라고 부른다. 또 어느 곳은 고테보그 또는 고테버그(...)라 읽는다[1]

2. 역사

스웨덴의 베스트라예탈란드 주 (Västergötland)의 실질적인 주도이다. 베스트라예탈란드 주에서 예테보리 하나만 해안으로 향해있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워 보이는데 그 이유는 예전에는 북쪽의 보후슬렌(Bohuslän)과 남쪽의 할란드(Halland)가 각각 노르웨이덴마크 영토였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은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예테보리를 보여준다.

스칸디나비아 전체에서 예테보리는 역사 이래로 계속 중요한 도시로 간주되었다. 이 도시를 차지하기 위해 스웨덴과 덴마크(+ 노르웨이)가 박터지게 싸웠고, 대서양으로 직접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창구를 지키기 위해 스웨덴이 들인 노력은 결코 러시아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2].

예테보리의 전신은 14세기 경 건설된 마을인 뢰되세(Lödöse)이다. 예타 강 하구에 자리잡은 지금의 예테보리와 달리 뢰되세는 예테보리로부터 약 40km 떨어진 내륙에 자리잡고 있었다. 뢰되세는 대서양으로 통하는 스웨덴의 창구이자 무역 중심지로 기능했지만 얼마 떨어지지 않은 보후스 성에 주둔 중인 덴마크군과 노르웨이군이 뢰되세를 봉쇄할 수 있다는 위험성으로 1473년 지금의 예테보리가 위치한 앨프스보리 성 근처에 새로운 마을을 건설해 니야뢰되세(Nya Lödöse, 새로운 뢰되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럼에도 이 마을은 여전히 적의 공격에 취약했다.

스웨덴이 덴마크로부터 독립한 이후 구스타브 1세 바사가 앨프스보리(Älvsborg) 성 바로 옆에 마을을 새로이 세우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스웨덴와 독립 이후 스웨덴과 덴마크-노르웨이는 완전한 적수가 되었고 덴마크-노르웨이는 스웨덴의 유일한 대서양 창구인 니야뢰되세를 차지해 덴마크 본토와 노르웨이를 연결하려 했다.

이를 막기 위해 스웨덴이 치렸던 대가는 막대했다. 1570년의 슈체친 조약 (Treaty of Stettin) [3] 에서 스웨덴은 이미 죄다 불타버리고 허물어진 성을 돌려받기 위해서[4] 150,000 리크스다르 (riksdaler)를 덴마크에게 배상했는데 이는 스웨덴 전체 국력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스웨덴은 이를 지불했다.

1603년 구스타브 1세의 아들 칼 9세가 불타버린 니야뢰되세와 앨프스보리 성을 대신해 예타 강 기슭 북쪽과 건너편 섬에 마을을 하나 세웠다. 그는 새로 세운 마을이 예타 강 바로 옆에 지어졌다는 뜻에서 새로 세운 마을의 이름을 '예타 강의 도시'라는 뜻의 '예테보리'라고 명명했다. 예테보리에는 주로 네덜란드 출신의 상인들과 이민자들이 들어와 살았는데 당시 네덜란드는 해운 강국으로 전성기에 접어든 참이었고 네덜란드의 기술력을 탐낸 칼 9세가 여러가지 당근을 제시해 네덜란드인들을 끌어들인 것이었다. 종교의 자유는 기본이며 20년 간 세금 면제에 관세 인하, 심지어 의회에 대표를 파견할 수 있는 권리와 금은화 주조권까지 인정받았다. 이렇게 당근을 제시한 대가로 스웨덴은 네덜란드인들의 기술력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짧은 전성기를 누리는 예테보리였으나 여전히 예테보리는 적의 공격에 취약했다. 예테보리 건설과 동시에 앨프스보리 성도 재건했지만 물론 그런다고 덴마크가 다시 예테보리를 점령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기 때문에 1611년 칼마르 전쟁 당시 예테보리는 덴마크군에 의해 다시 전소되었고 1613년에 스웨덴은 크네레드 (Knäred) 조약을 통해 이 도시를 다시 돌려받기 위해 무려 국력의 30%를 덴마크에 지불해야 했다. Danskjävlar!!! [5] 예테보리는 그만큼 중요한 도시였고, 그 대가는 헛되지 않았다.

1621년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불타버린 예테보리를 재건할 것을 명해 오늘날의 예테보리가 세워지게 되었다. 재건된 예테보리는 스웨덴의 서방 창구이자 네덜란드, 독일, 스코틀랜드 등 유럽 각국 출신의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번영하였다. 이후 스웨덴이 유럽 열강 중 하나로 성장하면서 숙적 덴마크-노르웨이를 두들겨패고 예테보리를 위협하던 직접적 원인인 보후슬렌과 할란드 일대를 할양받으면서 도시를 향한 위협은 대폭 낮아지게 되었다. 도시의 안전이 보장되면서 예테보리는 스웨덴의 중요 항구로 성장하였고 그 중요성은 스웨덴의 도시 중 유이하게 외국 상인과 교역할 수 있는 도시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18세기에는 스웨덴 동인도 회사가 설립되어 아시아 국가와의 교역으로 번성하였으며 19세기에는 산업 혁명의 여파로 상업 도시에서 공업 도시로 전환하여 스웨덴 제2의 도시라는 지위를 굳혔다. SKF볼보 등 스웨덴 유수의 기업이 처음 생겨난 곳도 바로 이 예테보리였다.

3. 기타

  • 스웨덴 및 북유럽 영화계의 중심이다. 매년 1월 북유럽 최대 규모의 예테보리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예테보리 교외 트롤헤탄에 북유럽 최대의 영화 스튜디오 필름 바스트(Film i Väst)가 있다. 필름 바스트는 스웨덴의 할리우드[6]라고 불리며 스웨덴은 물론 북유럽 대부분의 영화 제작 및 후반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더 스퀘어로 유명한 영화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의 고향이며, 그가 만든 대부분의 영화가 이 곳을 배경으로 한다.
  •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예테보리 교향악단이 있으며, 매년 8월 음악 페스티벌 웨이 아웃 웨스트(Way Out West)가 열린다.
  • 2015년 여름부터 MTR 에서 스톡홀름 - 예테보리 고속철도를 운행하고 있다. 거리는 서울 - 부산의 두 배에 달하는 거리지만 논스톱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세 시간 정도에 갈 수 있다.
  • 스카니아와 함께 세계적인 스웨덴 상용차 기업인 볼보그룹의 본사가 바로 예테보리이다.[7]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볼보트럭은 여기서 생산된다.
  • 북유럽 최대이자 유럽전체에서도 손꼽히게 규모가 큰 놀이공원인 리쎄베리가 있는 곳으로 돈이 좀 깨지지만 그만한 값어치를 하는 놀이공원이며 드랍만 네종류에 코스터도 종류가 다양하고 그 이외의 다른 놀이기구들도 정말 많아서 놀이기구들만 계속 타도 하루종일 토나오게 놀 수 있다. 공원에서 지인이 일하고 있는 경우 지인의 역량에 따라 공짜 혹은 저렴하게 모든것을 이용 할 수 도 있긴 하다. (단 이경우엔 꿈과 희망의 놀이공원이 아닌 본격 사악한 지인과 네크로멘서 동료들의 언데드공원이 되어 모든 수동조작 가능한 놀이기구들이 한층 더 격렬하고 더 오래가는 저주에 걸려 아침에 맨정신으로 가서 밤에 좀비가 되어 나올것이다. 특히 귀신의 집은....모든 직원들이 지인과 당신을 위해 정말 친.절.히 맞아줄 것이다.)
  • 이 지역 게임 회사로는 고스트 게임, 조잉크, 네오게임즈가 있다.


  1. [1] 물론 ö의 점 두개를 무시하고 그대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스웨덴에서 '고테보그' 또는 '고테버그'라 말해도 스웨덴인들이 잘 알아듣는다.
  2. [2]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겪었던 것처럼 겨울 동안에는 발트해를 이용하기 힘들때가 있고, 결정적으로 예테보리가 없으면 스웨덴은 발트 해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선 덴마크 영해인 외레순 해협과 벨트 해협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3. [3] 북방 7년 전쟁에서의 일이다
  4. [4] 물론 성만 돌려받는 게 아니라 예테보리 일대에 대한 지배권을 다시 인정받았다
  5. [5] 이런 과정은 스웨덴어 위키피디아에 간략히 정리되어 있다.
  6. [6] 일명 트롤리우드(Trollywood)
  7. [7] 승용차 부문은 중국계 기업에 매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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