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제

5현제 목록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의 역사
Historia Romae
Ἡ Ἱστορία τῶν Ῥωμαίων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7px"

정치 체제

고대 (BCE 753 ~ CE 476)

동방


서방

,(그리스 · 헬레니즘 제국),


로마 왕국
(라틴 ·에트루리아 ·삼니움)


(켈트 · 카르타고)

로마 공화국

삼두정치

로마 제국
(프린키파투스)

(팔미라 제국)


로마 제국


(갈리아 제국)

,(사두정치),
로마 제국
(도미나투스)

동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

중세 (CE 476 ~ CE 1479)

비잔티움 제국
(동로마 제국)

트라페준타 제국

니케아 제국


(라틴 제국)

비잔티움 제국

모레아 친왕국

이피로스 친왕국

비잔티움 제국

이피로스 친왕국

왕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네 황제의 해플라비우스 왕조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 오현제다섯 황제의 해세베루스 왕조군인 황제 시대사두정치콘스탄티누스 왕조발렌티니아누스 왕조테오도시우스 왕조레오 왕조유스티니아누스 왕조이라클리오스 왕조20년 간의 혼란이사브리아 왕조니키포로스 왕조아모리아 왕조마케도니아 왕조두카스 왕조콤니노스 왕조앙겔로스 왕조 → (라스카리스 왕조) → 팔레올로고스 왕조

}}}}}}||

1. 개요
2. 평가
3. 반론

1. 개요

고대 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끈 5명의 명한 황를 지칭하는 표현. 영어로는 Five good emperors라고 한다. 여러 지표를 종합하여 보았을 때 단연 최전성기라 일컬어진다. 한마디로 서양판 요순 시대.

5현제 이후 로마는 황제 난립기와 세베루스 왕조, 외세의 침입 등 소위 '위기의 3세기'라고 불리는 혼란기를 거치며 서서히 기울어간다.

2. 평가

만약 누군가에게 역사상 인류가 가장 행복하고 번영했던 시기를 골라보라고 한다면, 그는 망설임없이 도미티아누스의 죽음부터 콤모두스의 등극 사이의 시기를 고를 것이다. - 에드워드 기번

로마의 역사를 연구해 보면 우리는 어떻게 좋은 정부가 탄생하는지를 알 수 있다. 티투스를 제외하면 혈연관계의 세습을 통해 제위에 오른 황제들이 모두 암군이었던 반면, 네르바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기까지 양자 관계로 제위에 오른 황제들은 모두 명군이었다. 그리고 양자 대신 혈연관계에 의한 세습이 다시 시작되자마자, 로마의 붕괴는 재개되었다. - 마키아벨리

티투스,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들을 보호해 줄 친위대군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그들의 올바른 삶, 백성들에 대한 사랑, 원로원의 지지를 바탕으로 보호받을 수 있었다. - 마키아벨리 하드리아누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조용하고 완벽해서, 도저히 쓸 게 없다. - 안토니누스 피우스 치세기에 대한 한 영국인 역사학자의 절규.

종합적으로 본다면 본인 스스로의 통치는 물론, 후임자에 대한 조치 및 배려도 충실한 모범적인 권력 승계 및 발전 시기라고 보면 된다. 이런 모범적인 국가 운영이 가능했던 이유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은 각 황제들의 공통사항을 들 수가 있다.

  • 전 황제의 양자로 들어와서 황제가 됐다.
  • 전원이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황제다.
  • 일반 대중들이 문제있는 황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1명 정도의 예외를 제외한 공통점도 많다.

  • 네르바를 제외하면 자신의 통치철학을 실현하기 충분한 시간을 얻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제외하면 아들이 없다. [1]
  • 네르바를 제외하면 후임 황제를 담당할 사람에 대한 교육을 충실하게 실행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후임자 콤모두스)를 제외하면 후임자도 유능하며 제국을 잘 통치했다.예외가 아니었다면 6현제였겠지

3. 반론

하지만 로마 제국 멸망의 원인이 아무도 모르게 잉태된 것도 5현제 시기이다. 고대 국가에서의 통치 범위의 한계 때문에,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이 불가능해진 상황으로 로마 제국의 경제를 하부에서 지탱하던 노예의 공급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 제국이나 모두 노예가 있어야 사회 구조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노예 공급의 감소는 제국 내의 경제 활동과 세수 확보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북방 게르만족 부족들 사이에서 세력구조가 재편되고 사회 조직력과 군사력이 성장하기 시작한 시기도 바로 이 5현제 시기. 로마 제국의 방식대로 표현하면 "먼 게르만족"이 "가까운 게르만족"과 싸우거나 융합하면서 그들의 조직이 커졌다. 트라야누스 황제가 다뉴브 강 이북의 다키아 왕국을 멸망시키며 일시적으로 게르만족들의 세력을 약화시켰으나, 게르만족의 성장은 로마 제국의 태평성대라는 수면 아래에서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강력해진 게르만족의 실체를 깨닫는 시점은 당장 5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통치 시기이다. 이 때부터는 게르만족의 전술 또한 발전하여 로마 제국 방어선의 허점들을 종종 뚫어내기 시작하였고, 군단기지를 중심으로 한 방어와 요격 체계로는 게르만족을 상대하는데 있어 한계를 보이게 된다. 제국 방어선을 재편하기 위해 국경 밖에서 게르만족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결국 다뉴브 강 전선에서 병사하고 만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 근처의 티볼리 별장에서,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는 로마에서 병사했던 것과 대조되는 부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이후로, 로마 제국 황제가 최전방에서 전사하거나 병사, 또는 암살당하는 횟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또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그 이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후대에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수백년 후 플라비우스 스틸리코 장군이, 그것도 병력 마련을 위해 한 노예해방을 실행한다. 즉 사회체제 자체를 불안하게 한 것.

다만 5현제 시기와 3세기의 위기 사이의 70여년 간, 노예 공급이 감소하던 사회 구조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군대 개편과 방어선 재구축 등을 바탕으로 3세기의 위기 당시 게르만족에게 급속도로 털리는 상황을 최소화시킬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 70여년도 일부 황제들의 통치 시기를 제외하고는 내전으로 점철된 시기라 군대 재편성의 기회를 놓쳤다.

즉, 5현제 시기는 로마 제국의 최전성기이기도 하면서 멸망의 원인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는 리버스 버전으로 명나라 F4가 있다.[2]


  1. [1] 각 5현제가 전 황제의 양자로 들어와서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아우렐리우스의 후임자로 문제의 콤모두스가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단순히 아버지로서의 정이 아니라, 아우렐리우스로선 정당한 친자 계승자인 콤모두스를 배제하고 다른 양자를 들여서 계승하는게 불가능했기 때문.
  2. [2] 내용면에서도 로마의 5현제가 '유능한 황제에 의존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국가체제가 취약해진 시기'인 반면, 명나라는 '국가체제가 잘 짜여 있어서 대놓고 막장인 황제를 끌어안고도 버텨낸' 케이스로 서로 반대다. 로마의 이 시대와 비슷한 케이스는 동아시아의 18세기 청나라다. 강희제-옹정제-건륭제가 청나라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지만 내부로는 서서히 썩어들어가기 시작한 시기.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46.98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