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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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메리카의 국가

온두라스 공화국
República de Honduras

국기

국장

면적

112,492㎢

인구

9,112,867명 (2016년)

종족구성

메스티소(90%), 아메리카 원주민(7%)

수도

테구시갈파

정치체제

대통령제

대통령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임기

2014년 1월 27일 ~ 2018년 1월 27일 (예정)

GDP(명목)

GDP

213억 6,700만 달러 (2016)

1인당 GDP

2,609 달러 (2016)

GDP(PPP)

GDP

431억 6,600만 달러 (2016)

1인당 GDP

5,271 달러

지니계수

0.553 (1992 ~ 2007)

공용어

스페인어

종교 분포

기독교 87%(가톨릭 46%, 개신교 41%), 기타 종교 2% 등(2014)

화폐단위

렘피라(Lempira)

국가(國歌)

온두라스 국가(스페인어: Hinmo nacional de Honduras)

모토

자유, 자주, 독립(Libre, Soberana e Independiente)

위치

1. 개요
2. 역사
3. 사회
4. 경제
5. 스포츠
6. 정치
7. 외교관계
8. 행정구역
9. 이야기거리

Libre, Soberana E Independiente

자유, 자주, 독립

1. 개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 수도는 테구시갈파(Tegucigalpa).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스페인어에서 H는 묵음이므로 국명을 '혼두라스'가 아닌 '온두라스(Honduras)'라고 읽는다.

2017년 12월 기준 현재 국가비상사태다. 현직 대통령의 부정선거 논란으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라는 정부의 지시를 어기고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혼란은 더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세한 내용은 추가바람

2. 역사

온두라스는 마야 문명 영향권의 동쪽 끝으로 코판 등에서 1500년이 넘은 마야 유적지가 발견된다. 그리고 동부의 황량한 평원 지대엔 여러 부족이 살았다. 16세기 콜럼버스가 온두라스에 도착한 이래 스페인의 침략을 받았다. 렝카 족의 렘피라 등이 강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식민지가 되었다.

온두라스의 수도는 처음엔 온두라스 북부 해안의 트루히요였으나 코마야과를 거쳐 남부 고원의 테구시갈파로 옮겨 갔다. 스페인 식민 시기 동안 온두라스는 자원도 부족하고 인구도 적어 낙후되어 있었으며, 그나마 은을 캐서 경제가 유지되었다. 한편 영국은 동부의 모스키토모기 족의 지원으로 동부 해안을 점거하고 목재를 가져갔다.

19세기부터 중남미 곳곳에서 엘리트층이 주도한 독립 운동이 일어났고, 1821년 온두라스는 중미 연방의 일원으로 독립을 선언해 1823년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로스알토스[1]와 함께 중미 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했다. 중미 연방은 20년도 못 버텼지만 그 동안 무려 18명의 국가원수가 재임하는 등 혼란상을 보이다 1838년 온두라스가 독립을 선언하고 비슷한 시기 와해되었다.

독립 이후에도 온두라스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1876년까지 82명이 권력을 잡았고 수백 건의 내란이 발생했다. 1876년 이후에도 혼란상은 별로 변하지 않았으나 온두라스는 근대화를 추진하고 바나나 농장과 광산을 외국에 개방했다. 외국 바나나 회사는 나중엔 철도 부설권까지 따냈고, 정권에 붙어 타 산업을 통제했다. 이런 상황에서 온두라스는 바나나 공화국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바나나 회사 외에 미국도 온두라스에 개입했으며 내부적으로 혼란이 심해 20세기 초반만 해도 159번의 반란과 18회의 정권 교체가 이어졌다. 1930년대엔 안디노의 군사 독재가 이어지다 물러났고 민간 정부가 세워졌지만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다. 한편 온두라스의 이웃나라 엘살바도르는 온두라스 면적의 5분의 1에 불과한 소국이었으나 인구는 서로 비슷했는데, 땅이 부족한 엘살바도르인들은 일을 찾아 온두라스로 건너왔다. 온두라스에선 1963년 기업이 외국인을 10% 이상 고용하지 못하게 했고 1968년 엘살바도르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했으며, 결국 1969년 갈등 속에 그 유명한 축구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축구전쟁에서 어떻게든 승리한 이후로 토지배분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일어나며 엘살바도르인이 경작하고 있던 농경지들이 속속 대기업과 부농들에게 들어가는 바람에[2] 정국이 혼란에 빠졌고 급기야 1972년에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1981년까지 군부독재는 계속되었으며, 온두라스의 상태는 군부독재 때나 민주화 이후나 이웃나라들과 비슷하게 영 좋지 않았고, 1990년대 이후로 빈부격차도 날이 심화되는 추세이다.[3] 온두라스에 있는 미군기지는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을 반대하는 콘트라 반군 기지로 이용되었는데 당시 오요 대통령은 이들의 온두라스 주둔 금지를 공약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로 온두라스의 정치체제는 우파 국민당과 중도우파 자유당간[4]의 양당제가 지속되었다.[5] 어쨌든 이후로 양당체제가 지속되었고 2005년 대선에서 당선된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은 자유당 소속으로 출신성향에 맞지않게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고, 무상교육 제도를 시행하고 형편이 어려운 빈민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는 등 좌파성향을 보였기에[6] 보수적인 언론과 충돌이 잦아지고 당내에서도 잡음이 지속적으로 벌어지면서 지지율이 점차적으로 떨어졌고 그 와중에 석유수급을 위해서 미주 볼리바르 연합에 가입하기로 하고[7] 우고 차베스와도 꽤나 절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이며 親 우고차베스 성향으로 낙인 찍혔다. 여하간 그렇게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자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2009년에 헌법을 고치는 국민투표를 예정했는데 국민투표를 앞두고 군사 쿠데타로 쫓겨나고 미국은 처음엔 이를 비난하다 나중에 이를 승인했다. 군부와 야권 세력은 이것을 헌법 유린으로 트집잡아 쿠데타가 아니라 헌정 질서 회복이라고 주장했다.

여하간 여러 의혹이 있었지만 2009년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서 우파인 국민당이 집권했고 총선에서도 국민당이 압승했다.마누알 셀리아는 쫓겨난 상태였지만 2010년에 귀국했고 귀국후에 자유당의 일부당원들과 지지자들을 모아서 자유당을 탈당하고 새로운 좌파정당인 자유재건당을 창당했고 국민당도 별다를것 없는 모습을 보이며 2013년 대선에서 국민당이 재집권했지만 득표율이 36%에 불과한데다가, 총선에서는 국민당과 자유당의 의석수가 크게 감소했고[8] 자유재건당이 제1야당인으로 등극했기에 일단 정계에서 나름대로 힘을 쓰는 상태이기는 하다. 이후로는 새로 당선된 대통령에 대해서는 대통령 재선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데다가, 빈곤문제 해결에도 실패해서 악평이 많기는 하나, 국정운영 능력이 아주 나쁜건 아닌데다가[9]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야권이 분열된 상태이기 때문에[10]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은 유지하고 있고 그런탓에 법원사유화 논란에도 압도적으로 재선이 예측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여론조사 결과와는 개표결과에서는 살바도르 나스라야[11]야당연합 후보가 5%차이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것으로 나타나면서 선거 전의 예측과는 정반대로 정권교체가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개표가 완료된다해도 여론조사 기관들 입장에서는 한국으로 친다면 20대 총선 여론조사급의대 참사가 벌어진 셈이다. 선거전에는 살바도르 나스라야가 참패할것으로 에측되었는데 이게 확 뒤짚힌 셈이니... 여하튼 최종집계에서는 역전에 성공하여 에르난데스 대통령이 재선하는것으로 나왔지만 50% 가까운 표를 얻어 낙승할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대통령 선거에서 간신히 승리한데다가 개표가 1주 가까이 지연되면서 선거부정까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상처뿐인 승리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그 동안 에르난데스가 압승할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온 온두라스 여론조사 기관들과 언론들도 신뢰도가 폭락하는 등 후폭풍을 겪고 있으며 개표가 57%진행될 때 선거개표시스템이 멈추다가 수십시간이 지나서야 개표가 재개된데다가 그 이후로 역전까지 일어나게 되는 일까지 벌어졌고, 미주기구 참관단이 선거 과정에서 개표시스템에 문제가 있는데다가 외국인 투표참관인들이 선거 과정이나 개표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는 증언까지 내놓았고 대규모 시위사태까지 일어나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기까지 할정도로 정국이 혼미해지고 있다. 정국이 혼란에 빠지고 난 뒤에, 미주기구가 선거과정에서 여러모로 문제점이 많아 결과가 어떤지 확신할 수 없다는 보고서까지 나오자 궁지에 몰린 에르난데스 대통령측이 재검표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참관인들이 개표과정에 여러모로 문제점이 많았다고 증언하고 있는 판인지라 재검표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불투명하다. 미국입장에서는 친미성향의 우파 에르난데스 재선이 호재이며(미군기지의 존속을 선거기간 강력히 주창하였다), 존 켈리는 대놓고 에르난데스를 지지하기 까지 했다. 그렇지만 선거 개표후에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마자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인데 자국민들에게 밖에 나가는걸을 자제하거나 시위가 평화롭게 끝나기를 바란다 정도로 논평을 자제하고 있다. 여타 라틴아메라카 국가들 사이에서도 언론들 사이에서나 언급이 되었지 정부차원에서는 그리 잘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고, 오히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나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가 언급을 할정도.

재검표 결과는 에르난데스가 여전히 근소한표차로 앞서는것으로 나와서 일단 에르난데스의 재선이 확정되었지만 여러모로 말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나아갈지 불분명하며, 재검표 과정자체도 불분명한것이 많아서 항의시위가 해를 넘겨서 진행되고 있으며 거기에 온두라스 의회에서 부패수사를 막는 법안까지 통과시키며 시위에 불을 끼얹은 모양시다. 하지만 미국이 온두라스 당국을 비호하고 있어서 상황진척은 잘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3. 사회

주민 대다수는 유럽인과 아메리카 토착민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차지한다.

살인적인 살인률의 나라.

살인(고의 살인. 실수로 죽인 과실치사 제외) 사건 비율이 세계 최고를 달리는 나라. UN 마약 범죄 사무소(UNODC)의 통계에 의하면 2015년에 10만명당 63.75 건의 살인이 발생해서, 1위인 엘살바도르에 이어 2위를 했다. # 그런데 이 정도의 막장스러운 치안이면 보고되지 않은 사건도 상당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10만 명당 0.7건 정도. 사실 이 두 나라는 1 , 2위를 서로 돌아가며 차지하는 관계라 언제 순위가 바뀔지 모른다.

2012년 2월 14일 경 온두라스의 옛 수도인 코마야과 시의 교도소에서 화재가 나 35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250명 정원의 교도소에 무려 800 명 이상의 죄수들이 수용되어 피해를 키웠다고 한다. 무려 6, 7단 침대까지 있었다고 하니 이건 뭐… 밑에 있는 링크에 나오는 감옥도 800명 정원의 교도소에 2137명이 수용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나라 교도소들의 대부분이 간수에 의해 관리되는게 아니라 수감자들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이다! 이 링크(영어)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그냥 점거수준을 넘어서 마을을 차려놨다.아캄 시티 가족들과 만날 수도 시장에 갈 수도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볼 수도 있는 좋은 감옥 간수들도 딱히 별 수가 없는지 세금을 받으면서 선을 넘으면 쏘는거 말고는 하는게 없다. 이걸 취재한 기자들도 교도소장이 아니라 "선거"로 뽑힌 죄수들의 두목과 거래를 해서 찍을정도.[12] 보너스로, 방마다 빠루랑 열쇠가 구비돼있 다고 한다. 불이 나도 경찰들이 구하러 들어올 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소화기는 안 놔두나?

그리고 살인율이 세계 최고인 나라답게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도시도 있다.

그 악명높은 시우다드후아레스가 2위?[13]

이 비디오를 보면 산 페드로 술라(San Pedro Sula)라는 도시의 살인율이 10만 명당 158.87건이다.[14]

살인율에 비해 자살률은 그다지 높지 않아서, 10만명당 4.2명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자살하기 전에 죽여주니까?

4. 경제

중남미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주요 수출품 중 하나가 커피이다. 2007년도에는 이 나라의 한 커피 농장에서 생산된 원두가 Cup of Excellence 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온두라스 커피는 매우 깔끔한 맛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며, 부드러운 느낌이 특징이다. 바나나 역시 매우 유명하다. 기타에 사용되는 목재중에 온두라스산 마호가니를 최상품으로 취급한다. 허나 무분별한 벌목으로 벌목금지 대상이 됐다. 의외로 최저임금 수준은 중미에서 그리 낮지 않은 편이고 엘살바도르보다 높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유명무실하다. 최저임금 제도가 잘 지켜졌으면 1인당 GDP가 과테말라하고 비슷했겠지

5. 스포츠

축구전쟁을 벌였던 만큼 지금도 축구인기넘사벽. 북중미에선 제법 축구를 잘하는 나라이다. 물론 메이저 대회 같은 데서는 동네북이라서 그렇지. 국대에 대해 자세한 것은 온두라스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고.

6. 정치

  •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어 권력이 대통령에 집중되어 있다.
  • 대통령의 임기는 4년 단임제로 단 1회에 한하며 중임할 수 없다.온두라스 대법원 헌법재판부(대법원 판사 5명으로 구성)는 마누엘 셀라야전 대통령이 제기한 바 있는 대통령 재선 금지 헌법 및 형법 조항(처벌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해 2015.4.23(목) 만장일치로 위헌 결정하여 현직 대통령인 에르난데스의 재선 도전을 허용하였다.
  • 현재 대통령은 2014년 1월 27일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이다. 2018년 1월 27일까지가 현직 임기이다.
  • 다음 대통령 선거는 2017년 11월 26일에 열렸다.
  • 삼권 분립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7. 외교관계

미국에 대단히 친미주의적인 국가다. 온두라스 군부가 미국하고 매우 긴밀한 밀착관계에 있다고 알려져있다. 한편, 브라질하고는 관계가 썩 좋은편이 아니라고 한다.

주변국인 엘살바도르와는 축구 전쟁을 계기로 사이가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1969년 축구 전쟁을 통해서 전투를 벌였던 적이 있었으나 참패하고 결국에는 단교까지 가기도 하였으나 평화협정을 통해서 해소되었다. 전쟁 이전에도 양국은 국경분쟁도 겪었던 사이이기도 하다.

한국과는 1962년에 단독으로 수교하였다. 그리고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와 함께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했다.# 한국에서 이 나라로 가려면 미국 등 제3국에서 비행기를 한 번 갈아타야 한다.

대만의 몇 안되는 수교국이다. 다만 중국의 경제적 공세로 최근 대만과 수교를 맺었던 다른 중미의 국가였던 파나마, 코스타리카가 대만과의 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하였듯이 이 나라도 언젠가는 대만과 국교를 단절하고 중국과 수교할지도 모를 일이다.

엘살바도르와 사이가 좋지 않은 온두라스는 과테말라, 멕시코, 코스타리카와는 관계가 아주 좋은 것으로 나온다. 다만 영연방 회원국인 벨리즈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8. 행정구역

도시

테구시갈파

산 페드로 술라

9. 이야기거리

우병우의 처제 이민경은 몇 년 전 남미 온두라스 위조 여권으로 자녀를 국내 외국인 학교에 넣었다가 징역 8개월 형에 집행유예 2년을 받은 바 있다. 이번엔 세인트 키츠 네비스 국적을 얻어 자식을 다시 다른 외국인 학교에 입학시켰다.

2008년 8월부터 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온두라스 현지에 체류하고 있던 한국인 한지수 씨가 살인 누명을 쓰고 2009년 8월부터 17개월간 교도소에 억류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나마 추적 60분을 통해 방송이 나가는 등 구명 운동이 벌어져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참고로 이 나라의 여당인 보수정당 온두라스 국민당(Partido Nacional de Honduras) 당 깃발은 소말리아의 국기와 똑같이 생겼다(...) 그리고 제2야당인 중도우파 성향의 온두라스 자유당(Partido Liberal de Honduras) 당 깃발은 오스트리아 깃발과 똑같이 생겼다. 그래서 현지에서도 종종 농담거리가 되곤한다.

주요 관광지로는 로아탄(Roatan)섬 과 우틸라(Utila)섬이 있다. 로아탄은 17세기 유명했던 해적 헨리 모건의 본거지로 유명하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크루즈 여행이나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우틸라도 로아탄 만큼은 덜 유명하지만, 역시 스쿠바다이빙으로 유명하고, 카리브해 근처에서 제일 저렴한 가격에 스쿠버 자격증을 딸수 있는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두 섬들은 육지와 떨어져 있고 외국인들이 찾는 관광지이므로 치안은 그런대로 괜찮은 듯.

그렇다고 너무 안심하지는 말고 되도록이면 단독여행은 금지하고 야간에 주의하는등 신변보호 조치를 철저히 하자!

이 나라도 10월 3일이 공휴일이다. 물론 나라가 건국했다거나 이런 건 아니고 프란시스코 모라산의 생일이 10월 3일이라서 쉰다. 만약 부활절4월 18일이라면 4월 14일부터 18일까지 황금연휴를 누릴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된다면 크리스마스토요일이 되며, 대체휴일 제도가 없어서 10월 21일 국군의 날 (목요일) 이후 다음 부활절까지 5~6개월 동안 평일인 법정공휴일이 없게 된다.[15]


  1. [1] 과테말라 서부 케찰테낭고 일대에 있었던 나라이다.
  2. [2] 원래는 엘살바도르인들이 경작하고 있던 농경지를 자국내 빈농이나 소작농들에게 나눠주어서 사회불안을 가라앉게 만들려했는데, 막상 전쟁이 끝난 후에 정치권이나 대기업이나 부농층들이 기존 엘살바도르인들이 경작하던 토지에 눈독을 들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부정부패가 횡행해졌고 그 덕택에 온두라스도 엘살바도르 못지않은 난장판이 되어버린 것이다.
  3. [3] 그나마 셀리야 대통령 때 빈부격차가 줄어드는듯 싶었지만 2009년 쿠데타 이후에 들어선 정부들이 빈민구제에 상대적으로 덜 관심을 보이게 되며서 도로아미타불이 되다시피했다.
  4. [4] 2009년 쿠데타 이후 수수방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좌파자유주의 성향의 당원들이 빠져나가서 완전히 우파정당화되었지만, 2000년대까지는 일종의 빅텐트 정당이었다.
  5. [5] 2000년대 이전의 콜롬비아와 우루과이도 이와 비슷한 식의 정치체계를 갖추웠다.
  6. [6] 사실 그렇다고 딱히 급진적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좌파였을 뿐이고, 실제로는 투자유치부 장관을 지냈던 경력이 있는지라 미국과의 FTA를 찬성했을 정도였다. 단지 우고 차베스와 친하게 지낼려고 했을뿐.(…)
  7. [7] 2016년 기준으로 유가폭락으로 베네수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면서 제기능을 못하고 있는상태지만 당시에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대를 넘나들었던 시기였기에 나름대로 유용도는 있었다.
  8. [8] 단순히 국민당과 자유당의 의석수가 크게 감소한 것뿐만 아니라 좌파 자유재건당과 중도파 반부패당이 선거에서 각각 2당과 4당을 차지하면서 전형적인 양당제였던 온두라스 정치체제를 바꿔놓은 선거로 기록된다.
  9. [9] 10만명당 86명이었던 살인율을 60명대로 줄이기는 줄였다. 물론 그렇다고 치안이 왕창 나아진건 아니긴하고 그냥 동네에서 총쏘고 장난질하는 깡패가 좀 줄어든 수준이다.
  10. [10] 실제로 2013년 대선이나 2017년 대선이나 마찬가지로 자유당과 자유재건당 후보 2명이 단일화해서 현직 대통령과 맞붙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나 자유당 주류계파가 2009년 쿠데타로 국민당에게 정권을 내주는 와중에 미적지근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셀리야 전 대통령도 귀국후에 이에 대한 앙금으로 아예 탈당을 해서 따로 당을 차려놓을 정도로 악감정이 깊은지라 단일화 논의는 겉돌기만 한다. 어차피 단일화안해서 대선에서 떨어진다해도 야권이 의회 과반 이상은 거뜬히 차지하기때문에 떡고물을 받아챙길수있는것도 있고.
  11. [11] 저널리스트 겸 방송진행자 출신으로 반부패당 창당에 관여했으며 2013년 대선에서 반부패당 후보로 출마해서 13%의 득표를 얻어 선전했다는 평을 들었지만 2017년 대선 출마과정에서 반부패당을 탈당하고 야권연합 후보로 출마했다.
  12. [12] 전 두목은 자리세를 올렸다가 끔살.
  13. [13] 2009년 이후 이곳의 치안이 많이 나아졌고, 2013년 자료에 따르면 2013년에는 살인 505건에 살인율 37.59로 37위. 그러나 WHO에 따르면 살인율이 10 이상인 곳이 'epidemic violence' (유행성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류하는데, 여기서 벗어나려면 이 도시의 살인을 2013년보다도 4배나 줄여야 한다. 즉, 아직 갈 길이 멀다.
  14. [14] 그런데 일부 출처에 따르면 카라카스의 살인율이 이보다 훨씬 더 높다. 이 비디오에는 98.71이라 나왔지만 여기를 보면 무려 10만 명당 233건.
  15. [15] 이런 경우 한국도 추석부터 다음 설날까지 평일인 법정공휴일이 없게 된다. 개천절은 일요일, 한글날성탄절새해 첫날은 모두 토요일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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