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버그

요하네스버그 (남아공)||

* 상위 문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 Johannesburg

1. 개요
2. 주민
3. 역사 및 특징
4. 스포츠
5. 기후
6. 치안
7. 교통

1. 개요

남아프리카 공화국 하우텡 주의 주도이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최대도시. 아프리칸스어 발음을 한글로 표기하면 '요하너스뵈르흐(jʊəˈɦanəsbœrχ)'. 현지인들은 흔히 조벅(Joburg) 또는 조지(Jozi)라 부른다. 도시명은 아프리칸스어로 '요하너스의 도시'라는 뜻이다.

2. 주민

주민 구성은 2011년 기준으로 요하네스버그 광역시 인구의 76.4%가 흑인, 12.3%가 백인이며, 언어로는 줄루어(23.4%)와 영어(20.1%) 화자가 가장 많았다. 대체로 북쪽 지역에 백인이, 남쪽 지역에 흑인이 많이 거주하는 편.

3. 역사 및 특징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양강 중 하나[1]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가장 부유한 도시로, 공업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금융업까지 다양한 산업이 발전해있다. 남아공의 최대도시로 2011년 기준으로 인구 443만명. 광역도시권은 약 900만 명 규모로 추정된다. 여기에 높은 경제력으로 인해 전 아프리카에서 요하네스버그를 종착지로 하는 이촌향도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서, 헤아릴 수 없는 규모의 불법체류자들 또한 요하네스버그에 모여 있다. 따라서 빈부격차가 극심한 도시다. 요하네스버그의 빈부격차가 어느 수준인가 하면 요하네스버그 시의 지니계수는 자료에 따라 0.75#에서, 더 높게는 0.78(17p)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1886년 금광석이 발견되며 골드러시로 도시가 세워져 곧 케이프타운을 따돌리고 남부 아프리카 전역에서의 최대도시로 성장했다. 당시 첫 광산은 시내 Ferreirasdorp에 위치한 스탠다드은행 내부에 그 모습이 전시되어 있다.

1976년 아프리칸스어의 교육 강제에 반발한 학생들이 무자비하게 진압당한 '소웨토 항쟁' 등 아파르트헤이트의 상흔이 여러 곳에 남아 있는 도시다. 이로 인해 아파르트헤이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디스트릭트 9와 소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등 많은 픽션과 논픽션의 무대가 되었다.

'요하너스'라는 이름의 보어인이 이 도시의 초기 역사에 연관되어있음이 분명하나 이 '요하너스'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다. 그래도 가장 유력한 주장은 트란스발 공화국이 요하네스버그 일대의 금광 탐사를 위해 파견한 두 탐험가인 요하너스 리시크(Johannes Rissik)와 요하너스 요우베르트(Johannes Joubert)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둘은 도시 내 시설에 이름이 붙어있기도 하고.[2]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엔 프리토리아 (P) - 비트바타스란드 (W)[3] - 베르이너컹 (V) 에서 W 를 맡았고 그때부터 이미 남아공의 메인 대도시였다. 만델라도 변호사가 된 이후 이곳에서 활동했고 한때 세계에서 알아주는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도시기도 했다.[4] 물론 이 당시 흑인들은 근처 타운쉽에서 따로 통제를 받으며 가난한채로 인간답지 못한채로 살았다.

그렇지만 현재는 전쟁지역을 제외한 곳 중 가장 악랄한 치안상태를 보이고 있으며 현지인들도 요하네스버그 다운타운에 거주나 일하는게 아닌 이상 오전이라도 몇시간 이상 머무는 것을 꺼려한다. 애초에 도시 자체가 백인을 위해 꾸며졌는데 1994년 만델라 당선 이후 흑인들이 타운쉽에서 몰려들었고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흑인 우민화 정책으로 인해 교육수준이 낮은데다가 아파트르헤이트가 폐지되고 흑인정권이 출범한 이후로도 인구증가율에 비해 저조한 경제성장률로 충분한 일자리가 제공되지 못했으며[5][6] 직업을 얻는다해도 대다수가 임금이 낮은 3D업종이기 때문에 흑인 대다수는 여전히 가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물론 흑인들이 출세할 기회가 많아지기는 해서 흑인 중산층들이 백인의 수를 앞질렀다고는 하지만 흑인 중산층이 많아졌다고 해봐야 이들은 남아공 전체 인구의 10% 내외 수준에 불과한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더군다나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이후 타 아프리카 국가에서 돈벌러 온 흑인들이 기하급수로 늘어나 아예 몇개 구역은 외국인들이 더 많이 살고 2000년대 이후 간간히 벌어지는 반 외국인 Xenophobia 폭동의 근원지가 되었다. 기존 요하네스버그 다운타운서 살던 백인들과 중산층 이상의 계층은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 샌턴 신도시를 건설했고 신흥 흑인중산층들도 북부로 이주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치안문제로 인한 북쪽으로 진출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2010년대 들어 샌턴에 위치했던 왠만한 대기업 및 외국계 기업들이 요하네스버그와 프리토리아 간 경계인 미드랜드 지역으로 많이 이사가고 있고 2019년 기준 아프리카 에서 제일 크다는 Mall of Africa 도 있어 경제활동의 중심지가 다운타운-샌턴-미드랜드 식 으로 북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O.R. Tambo 국제공항 (JNB) 을 비롯한 동부 Edenvale 지역은 Ekurhuleni 시 관할, 서부 Roodepoort 지역은 Cosmo City 구역이라 City of Johannesburg 는 그리 크지 않지만 Edenvale 과 Roodepoort 지역 전부 현지인들 사이선 다 같은 요하네스버그 권역으로 보고있어 사실 권역으로 따짐 상당히 거대한 도시이다.

아프리카서 제일 부유함을 자랑하는 도시권역 이며 같은 남아공 내 대도시인 케이프타운, 더반 등지에서도 젊은 인구들이 취업하러 요하네스버그로 많이 옮겨온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코카콜라를 비롯한 세계 유수 대기업은 물론 삼성과 LG 도 남아공 지사에 심지어 아프리카 총괄 오피스를 요하네스버그에 두고 있으며 항공물류의 경우 왠만한 물품은 요하네스버그를 통해 들어오고 해상물류도 더반을 통해 요하네스버그와의 운송이 잘 발달되어 있다.

다만 똥이 가는곳에 파리도 꼬인다고 돈이 모이니 그만큼 범죄도 많다. 심지어 같은 남아공 내 에서도 저동넨 살 곳이 안된다고 절레절레 할 수준인걸 보면.

이렇게 거대한 대도시인데도 정작 요하네스버그는 남아공의 수도가 아니다. 남아공은 독특하게도 민주국가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인 삼권분립을 단순히 다른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하는 정도라 아니라 아예 도시 자체를 따로 배정하는 식으로 분리시켜 놓았는데 행정권은 프리토리아, 사법권은 블룸폰테인, 입법권은 케이프타운에게 배분해준 탓에 수도가 3개나 된다. 이렇게 한 까닭은 남아공은 본디 4개의 국가들이 하나로 합쳐져서 만들어진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 중 가장 세력이 작은 국가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3개 국가들의 수도들에게 삼권을 하나씩 배분해주면서 수도가 3개가 되어버린 것이다.[7] 그러나 저 중에 요하네스버그는 없다. 때문에 호주의 수도를 시드니라고 아는 사람들이 있듯이 남아공의 수도를 요하네스버그로 아는 경우도 많다. 일례로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시즌1 평창편에서 장호원 복숭아 상품을 걸고 스포츠 상식 퀴즈로 2010 남아공 월드컵 중 남아공 수도에 대해 나왔는데, 이 때 전원이 요하네스버그라고 해서[8] 전원 탈락한 적이 있다.[9]

4. 스포츠

당연히 2010 남아공 월드컵 경기가 열린 도시로 결승전이 열린 주경기장 사커 시티 스타디움(현 FNB 스타디움, 94,736명 수용)을 보유하고 있다. 이 구장은 카이저 치프스의 홈 구장으로, 카이저 치프스올랜도 파이러츠더비 매치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 중 하나이다.

FNB 경기장을 제외하면 Ellis Park 라는 유서깊은 경기장이 있으며 원래는 럭비경기장 인데 월드컵 시기 축구경기장 으로도 쓰였다.[10]

5. 기후

케이프타운이 해안 지방에 있는데 반해 광산도시로 시작한 요하네스버그는 동부 내륙 산간지방에 있다. 해발 1,750m 정도의 높이. 높은 곳에 있지만 지형 자체는 평평한 편으로, 사계절이 존재하며 연중 내내 비교적 온난한 서안 해양성 기후를 띈다.

6. 치안

요하네스버그의 다운타운은 디트로이트 뺨칠 정도로 매우 치안 상태가 열악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남아공 월드컵 당시 유행한 남아공 괴담이 현실화 되는 곳이다. 남아공 자체는 악명에 비해 전반적으로 치안이 나쁜것은 아니지만 요하네스버그 다운타운은 중산층에 진입하지 못해서 별 수 없이 다운타운에 사는 빈민들과 이웃 아프리카에서 불법으로 넘어온 외국인들이 섞여서 무간지옥을 만드는 곳이다. 외교부에서도 이 지역을 절대 출입하지 말라고 권장하고 있다. 아프리카 유일의 마천루 칼튼 센터그리고 폰테 타워가 이곳에 있다. 그 와중에 구글 스트리트 뷰는 지원한다. 안습. 이러한 이유로 해외기업들은 요하네스버그 다운타운이 아닌 북쪽 교외지역인 샌턴을 거점으로 잡는 경우가 많은데 경제적으로 부유한 백인과 아시아계가 많이 살고 흑인이라도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주거민들이 거주하는데다가 경비원을 많이 쓰기 때문에 생계형 범죄 문제가 덜하기 때문이다.[11]

특히 이곳은 대낮에도 총기사고가 비일비재하다. 이를테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갑자기 총을 쏘는 일도 있으며 강도사건이 많은 것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특히 밤이 되면 술주정뱅이들이 상당히 많은데, 길가에서 술병 던지는 일이 상당히 많다. 길거리에 보면 술병조각이 널려있는것을 볼 수 있다.[12][13]

남아공 치안수준이 전반적으로 많이 떨어지긴 했어도 대서양을 낀 세계적 관광지 케이프타운과 인도양 옆 휴양도시인 더반, 하다못해 같은 하우텡 주에 30분 거리인 프리토리아 하고도 비교하면 요하네스버그는 도시가 굉장히 살벌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샌턴과 워터폴 시티를 비롯한 백인구역 및 신흥부촌은 꽤나 럭셔리 하지만 그 구역 바깥으론 길이나 신호등 조차 제대로 구비되지 않은 곳이 많으며 심지어 그 부촌 내 에서도 안전이 100퍼센트 보장되지 않는다.[14] 아파르트헤이트 종결 이후 흑인들이 요하네스버그 다운타운을 거의 점거하듯 들어와 백인 및 중산층 이상 시민들은 북쪽으로 이주해 갔고 샌턴과 미드랜드 등 과거 교외지역을 개발하는데 큰 영향이 되었다. 재밌는 것은 요하네스버그의 시민들이 치안문제로 인해 북쪽으로 계속 개발해 나가고 위 프리토리아 에선 역시 치안문제로 인해 남쪽으로 진출하고 있어 곧 두 도시가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는 예상이 있다.[15]

7. 교통

연간 2,800만 명의 탑승객이 오가는 아프리카 최대의 공항인 O.R. 탐보 국제공항(JNB)이 있어서 일대 아프리카 지역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요하네스버그 직항편이 없어 홍콩 등지에서 환승해서 와야 하며, 홍콩 국제공항에서 캐세이퍼시픽 항공남아프리카 항공홍콩 - 요하네스버그 노선을 운항 중이다. 아시아나항공인천 - 홍콩 노선 중에는 남아프리카 항공코드셰어가 걸려 있는 항공편이 있다. 이외에는 싱가포르에서 환승하는 싱가포르항공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으며, 싱가포르항공A350-900을 투입해 요하네스버그 경유로 케이프타운(CPT)까지 운항한다. 에미레이트 항공으로 두바이를 경유하는 방법도 있다. 중국국제항공베이징 - 선전 - 요하네스버그 노선을 운항 중.[16]

대중교통망으로 요하네스버그와 프리토리아 및 그 근교를 연결하는 전철이 운행되고 있다. 그러나 위에 나와있는 열악한 치안사정으로 인해 중산층 이상은 이용하기 꺼려하여 주로 흑인 노동자 층이나 빈민층이 이용하며 그렇기 때문에 분위기가 매우 우중충하다. 전철요금 자체는 값싸기는 하지만 이용자 입장에서 잦은 운행지행이나 서비스 불량, 간간히 벌어지는 대형사고로 인해 서비스가 안좋기로도 유명하다. 다만 O.R 탐보 국제공항과 요하네스버그, 프리토리아를 잇는 하우트레인은 1회 이용하는데 100랜드(약 9000원)씩이나 하는[17] 고급 교통수단이다보니 중산층 이상급으로 사는 주민들이나 사업가들, 고위급 관료들이 주로 이용하며 빈민층들이 이용하기가 좀체 버거운 데다 관리도 잘 되기 때문에 깨끗하다.

남아공의 다른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현지에서 '미니버스'라고 불리는 개인 소유 승합차이며 대부분 구형 토요타 하이에이스들이다. 도로에 정류장 표시도 없고 버스에 붙이는 노선 번호도 없지만 시내의 대부분 정류장에서는 특정 노선만 운행하게 되어 있어 익숙해지면 헛갈릴 일이 별로 없다. 시외 노선도 있는데 다운타운의 터미널 등에서 탈 수 있다.


  1. [1] 다른 한 곳은 나이지리아
  2. [2] 요우베르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공원이 있으며 리시크는 요하네스버그 시청이 위치한 거리에 이름이 붙어있다.
  3. [3] 아프리칸스 단어로 영어로 하면 White Waters Land, 거대금광 지역이었고 City of Gold 란 별칭이 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결승에서도 금색으로 도색한 공인구 조블라니 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고 비트바타스란드 란 이름은 현재 요하네스버그 소재 아프리카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인 비츠대학 (University of Witwatersrand) 에 남아있다.
  4. [4] 일단 금광으로 인한 수입이 컸고 영국과 다른 여러 서구권 백인들의 이민으로 발전이 몹시 빨랐다. 꽤나 온화한 기후도 컸고. 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로 대표되는 유색인종의 희생이 컸다.
  5. [5] 아파트르헤이트가 폐지된 이후로 남아공은 한 동안 연 4~5%대의 경제성장률을 보였지만 당시 노동인구 증가율을 보았을때 빈곤율을 개선하는데 불충분한 수치였고, 그나마도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돌아간것이 아니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로는 경제성장률이 3%에도 미달하고 있고 이 때문에 남아공은 아프리카 수위의 경제대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도 전체실업률은 20%대, 청년실업률은 40%대를 찍고 있다.
  6. [6] 이는 94년도 당시 남아공 국토의 90프로 이상이 인구의 10프로도 안되는 백인들의 거주지역 이었고 당연히 모든 인프라가 거기에 몰린대다 통계도 거기만 냈다. 그러다가 1994년에 갑자기 4천만명의 새 국민들 이 생겼고 기존 400만이 쓰던 인프라로 4천만을 먹여살리려니 잘 될리가 없었다. 남아공의 중산층 이상 백인종은 미국, 유럽의 생활수준 보다도 높지만 빈곤층 흑인들은 하루 3끼도 간당간당한 상태인게 94년 이후 3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고 특히 요하네스버그가 이런 경향이 심하다.
  7. [7] 프리토리아의 트란스발, 블룸폰테인의 오렌지 프리스테이트, 케이프타운의 케이프 콜로니 그리고 피터마리츠버그의 나탈 이 있지만 피터마리츠버그를 제외하고 다 수도 타이틀을 얻었다. 애초에 영국계 주도로 이뤄진 통합이며 아프리카너들을 달래기 위해 프리토리아와 블룸폰테인의 위상을 높혔고 나탈의 경우 원래 영국 식민지 였으니 그냥 둔대다 애초에 더반이 더 큰 도시였다. 케이프타운은 당시에 남부아프리카 에서 가장 대도시니까 당연히 수도로 남기고.
  8. [8] 심지어 강호동은 요하네스버'거'라고 했다. 이건 사실 강호동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톤 때문이지만...
  9. [9] 여담이지만 해당 방송에서는 정답을 케이프타운이라고 했는데 이는 케이프타운이 입법권의 도시이기 떄문에 법률우위의 원칙에 의거해서 그렇게 본 것으로 보인다. 헌데 이건 이거대로 문제가 있는게 정작 남아공의 대통령 관저 유니온 빌딩은 케이프타운이 아니라 행정권의 도시인 프리토리아에 위치하고 있다(...).
  10. [10]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1년 뒤 1995년 남아공에 럭비월드컵이 열렸고 이때 남아공 팀이 결승에서 뉴질랜드와 이 경기장 에서 경기해 이겨 우승했다. 첫 럭비 월드컵 진출에 첫 개최, 그리고 첫 우승에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첫번째 해 이니 여러모로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곳. 2010년 축구 월드컵의 경우 한국인들이 알만한 경기는 북한과 브라질이 이곳에서 붙었다.
  11. [11]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간간이 가정부와 운전기사에 의한 범죄가 일어나곤 한다.
  12. [12] 이는 교외도 마찬가지이다.
  13. [13] 이들은 주로 술마시며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많은데 동네를 다녀보면 대낮에도 혼자 술병들고 쓰러져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밤에는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돈만 생기면 온통 술에 돈을 쏟아붇고 하루를 술로 지세운다. 한국에서는 노숙자나 이런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은 노숙자도 아니고 멀쩡히 집에서 평범하게 사는 보통 사람들이다.
  14. [14] 보통 가정부나 일하러 온 잡역부들이 범죄를 많이 저지르는 편 이며 최근엔 우버 기사가 강도들과 짜서 떼강도짓을 벌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15. [15] 아파르트헤이트 시절부터 P (프리토리아) - W (비트바타스란드, 요하네스버그) - V (베르이너컹) 이라 해서 한 구역 취급을 하긴 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하우텡 주가 출범했어도 그 구역을 전부 커버하고 있고 남아공의 심장부와 같은 위치선정으로 현재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치안은 그대로지만.
  16. [16] 예전에는 남아프리카 항공이 베이징에도 취항했으나, 단항했다.
  17. [17] 항공요금을 생각하면 비교적 싼 편이지만 대중교통비를 기준으로 한다면 비싼 수준이며 정부보조금으로 겨우 먹고 살거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빈민들이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할 수 없는 수준이다. 남아공의 최저임금이 한국돈으로 만 몇천원 하는 수준에 불과해서 왕복으로 이용한다면 하루 일당이 다 날라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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