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조아

이름

롱주얼 容祖兒(용조아)

예명

Joey Yung

출생

1980년 6월 16일

학력

홍콩 전문직업 교육대학교

데뷔

1999년 <EP 1 Joey>

1. 개요
2. 디스코그래피
3. 필모그래피
4. 여담

1. 개요

홍콩 가요계의 절대천후[1]

홍콩에서 출생해서 나고 자란 용조아는 홍콩의 전설적인 가수 나문(羅文)의 제자들 중 한 명이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끝에 1999년 9월 30일, 첫 EP앨범의 수록곡인 <未知>가 히트를 쳐서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제니퍼 페이지의 <Crush>를 번안한 곡이었지만 본인 특유의 스타일로 잘 소화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후 두 번째 EP인 不容錯失 앨범도 전작과 비슷하게 히트해서 정규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확실히 높였다. 그리고 결국 2000년에 나온 첫 정규앨범 誰來愛我로 홍콩 금곡장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본인 커리어에 탄력을 더해갔다.

이후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 될 정도로 1년에 두 개 혹은 그 이상 앨범을 줄줄이 내며 활동했다. 그러다가 2003년에 발매한 앨범 我的驕傲가 어마어마한 히트를 쳐서 본인의 대표 커리어로 남는다. 당시 앨범을 10만장 이상 판 가수는 거의 없다시피 했으며, 용조아는 지난 앨범들까지 10만장을 팔아 치우는 등 홍콩 가요계에 제대로 도장을 찍었다.[2]

데뷔 이후 16년이 넘는 시간동안 정상의 위치에서 내려올 기미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중간에 진관희와 엮이거나 누드 사진이 유출되는 등의 해프닝이 있었으나, 본인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동안 쌓아온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에 사람들이 쉽게 등을 돌리지 않는 이유도 한몫 할 터.

2. 디스코그래피

  • 誰來愛我 (2000)
  • 全身暑假 (2001)
  • 隆重登場 (2001)
  • 說真的 (2001)
  • Something About You (2002)
  • 一個人的情歌 (2002)
  • 我的驕傲 (2003)
  • Show Up! (2003)
  • 獨照 (2003)
  • Nin9 2 5ive (2004)
  • Give Love a Break (2004)
  • Bi-Heart (2005)
  • Ten Most Wanted (2006)
  • Jump Up – 9492 (2006)
  • Close Up (2006)
  • 小小 (2006)
  • Glow (2007)
  • In Motion (2008)
  • A Time for Us (2009)
  • 很忙 (2009)
  • Joey & Joey (2011)
  • Moment (2012)
  • 小日子 (2013)
  • J-POP (2016)

굵은 글씨는 중국어 보통화 앨범이고 나머지는 광동어 앨범이다. 정규만 써 넣은 게 이 정도다. 정선집 베스트앨범, 콘서트 실황 등을 적어 넣으면 어마어마하게 많다.

3. 필모그래피

  • 心猿意馬 (1999)
  • 煙飛煙滅 (2000)
  • 大贏家 (2000)
  • 百分百感覺2 (2001)
  • 蘋果咬一口 (2001)
  • 我的野蠻同學 (2001)
  • 魂魄唔齊 (2002)
  • 身驕肉貴 (2004)
  • 神經俠侶 (2005)
  • 反斗奇兵3 (2010)
  • 翡翠明珠 (2010)
  • DIVA (2012)
  • 12金鴨 (2015)
  • 蹴鞠 (2015)
  • 優獸大都會 (2016)

4. 여담

  • 많은 홍콩의 가수들은 배우와 가수 활동을 병행하지만, 용조아는 배우보단 가수 활동에 치중하는 편으로 배우로서의 커리어는 라이벌인 양천화나 하운시, 정수문, 진혜림 등에 비하면 떨어지는 편이다.
  • 2016년에 방영한 我是歌手4의 보위가수로 출전했다. 가왕전까지 진출했으나 듀엣경연에서 7위를 먹고 솔로경연엔 진출하지 못했다.
  • 我是歌手4에 같이 출연했던 이극근과는 친한 사이로 자주 같이 앨범을 내고 같이 공연을 한다.
  • 데뷔 초엔 보통화를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배워서 앨범까지 낸 근성파.[3]
  • 라이벌인 하운시와의 스캔들(?)이 매우 유명한데, 용조아와 하운시 두 사람 다 어린 나이에 일찍 데뷔했기 때문에 친구가 없었고, 서로 자연스래 친해지게 되었는데, 하운시가 양성애자 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라는 스캔들이 파다했고, 살제로 여러차례 헤어졌다 다시 사귀기를 반복하다 결국, 용조아가 하운시의 같은 소속사 가수인 유호룡과 연애하게 되면서 완전히 헤어지고 말았다. 하운시로서는 용조아의 배신(?)이 상당히 충격일 수 밖에 없었는데, 특히 하운시와 유호룡이 남매지간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상당히 친했었기 때문에 용조아와 유호룡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고, 또 하운시와 용조아의 용기 있는(?) 사랑을 응원해 오던 두 가수의 팬덤은 결별 소식이 알려지자 멘붕했고, 팬덤끼리 서로 싸우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후에 하운시가 정식으로 양성애자로 커밍아웃을 하게 되면서 용조아도 본의 아니게 양성애자로 강제 커밍아웃하게 된거나 마찬가지인데, 실제로 당시 하운시의 커밍아웃을 보도하던 어떤 매체는 "그럼 용조아도 양성애자인가?" 라는 제목의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내기도 하였고, 심지어 어떤 기자는 하운시에게 직접 용조아도 양성애자냐고 물어보기 까지 했는데, 하운시의 대답은 "그건 본인이 더 잘 알것이다."[4], 카더라에 의하면 하운시의 커밍아웃 소식을 듣고 용조아는 연락을 두절한채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한다. 하운시의 노래 중에 운률영(韵律泳)이 바로 하운시가 용조아를 위해 만든 노래라고 한다


  1. [1] 단 용조아의 전성기 (물론 지금도 전성기지만) 였던 2000년대 중반의 경우 정수문의 활동이 주춤했었기에 용조아가 절대적인 탑이 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커리어에선 라이벌인 양천화나 하운시를 압도하였다. 또한 용조아의 경우엔 소속사인 영황의 전폭적인 지원의 덕도 많이 본 케이스다.
  2. [2] 당시 10만장 이상 판매를 하는 가수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가수인 장학우 외엔 없었다.
  3. [3] 실제로 홍콩에서만 활동하는 몇몇 연예인들은 보통화를 할 줄 모르는 경우가 있다. 현재 중화권 톱배우 천웨이팅이나 가수 이극근, 고거기 등의 인물들이 보통화를 어눌하게 구사하는 편.
  4. [4] 이 부분은 하운시가 용조아를 배려했었어야 한다는 비판의 의견도 있지만, 하운시로서도 커밍아웃 하기 까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었을 것이므로 전연인에게 그런 배려 까지 해줄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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