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 성당

주소

강원도 원주시 원일로 27 (원동)

전화번호

(033)765-3350

팩스번호

(033)765-4996

지위

천주교 원주교구 주교좌

축성일

1954년 10월

주보

천주 은총의 모친

홈페이지

http://www.wjwd.or.kr

문화 유산 정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39호
(2004년 12월 31일 지정)

1. 개요
1.1. 태동기
1.2. 성장기

1. 개요

강원도 원주시 지역 선교의 요람이자 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

천주교 원주교구 주교좌 원동 본당은 1896년 8월 17일 풍수원 성당에서 분리·신설된 원주(原州) 본당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1957년 6월 1일 원주시 학성동에 본당을 분할하면서 이름을 바꾸어 원동 본당이 되었다.

1.1. 태동기

지금의 경기도 여주시 인근 부엉골에서 사목하던 파리외방전교회 부이용(Bouillon, 任加彌) 신부[1]가 1895년에 본당을 장호원(지금의 감곡)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면서 풍수원과의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는 문제점이 나타난다. 이에 당시 풍수원 성당 르 메르(Le Merre, 李類斯) 루도비코 신부와 의논하여 장호원과 풍수원 사이인 원주에 본당을 세우기로 합의하였다.

르 메르 신부는 1896년에 원주읍 상동리(현 가톨릭 센터 자리)에 소재한 대지 350평과 기와집 16칸을 매입한 뒤 그 해 8월 17일 풍수원 성당을 정규하(鄭圭夏, 아우구스티노) 신부에게 맡기고 원주(현 원동 주교좌)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다.

3대 주임 드브레(E. Devred, 兪世竣) 에밀리오 신부 시절 신자 수 증가에 따라 1902년 사제관 부근의 가옥 12채와 그 부지 2,000평을 매입하여 오늘의 성당 터전을 마련하였다. 4대 주임 시잘레(Chizallet, 池士元) 베드로 신부는 성당 신축에 필요한 목재를 비축 등에 노력하였다.

조제(Jaugey, 楊秀春) 요셉 신부는 5대 주임 신부로 문맹 퇴치를 위해 성당 부속 건물에 야학을 설치하고 교육 활동을 적극 추진하였으나, 1910년 한일합병과 함께 일제에 의해 폐쇄되고 학교 설립의 꿈이 무산되었다. 이어 1913년 조제 신부는 건평 70평의 고딕식 성당을 완공하여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2]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2. 성장기

한국전쟁 발발 이후 디어리 신부는 1951년 10월부터 교우들과 함께 폐허가 된 성당 복구에 나서 50평의 아담한 성당 봉헌식을 가졌다. 디어리 신부를 중심으로 한 신자들의 성전 재건을 노력의 결과 1954년 9월 120평의 시멘트 벽돌 성당을 완공하였으며, 그 해 10월 교구장 퀸란(T. Quinlan, 具仁蘭)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양대석(梁大錫) 알로이시오 신부가 1955년 2월 18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학성동 성당 부지를 매입하였으며, 1956년 6월 학성동 본당을 분리·설정하면서 본당 명칭을 원주에서 원동으로 변경하였다.

1965년 3월에 춘천교구로부터 원주교구가 분리·설정되면서 원동 본당은 원주교구 소속으로 변경되었고, 그 해 6월 주교좌 성당이 되었다.

원동 성당과 대안리 공소(등록 문화재 제140호)의 근대문화유산 등록 문화재 지정은 원동 성당 돔형 종탑의 독특성과 양호한 보존상태, 그리고 교구장 지학순 다니엘 주교의 ‘원주선언’ 등 1970년대 민주화 운동과의 관련성 등 그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문화재청 - 문화유산 정보

가톨릭 정보 - 성지


  1. [1] 훗날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의 그 임 가밀로 신부
  2. [2]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8대 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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