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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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인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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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여우주연상

제17회
(1978년)

제18회
(1979년)

제19회
(1980년)

고은아
(과부)

유지인
(심봤다)

정윤희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김자옥
(1979)

유지인
(1980)

정윤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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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유지인(兪知仁)

본명

이윤희(李允熙)

출생

1956년 1월 27일 (62세), 경상남도 사천시

신체

160cm

학력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연극학과[1]
중앙대학교 대학원 예술학 석사

데뷔

1974년 영화 '그대의 찬손'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

윤정희

문희

남정임

2세대 여배우 신트로이카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3세대 여배우 트로이카

원미경

이미숙

정애리[2]

1. 소개
2. 생애
3. 평가
4. 영화
5. 드라마
6. 광고

1. 소개

대한민국배우.

정윤희, 장미희와 더불어 19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중 한명.

2. 생애

1956년생.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출생한 유지인은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데뷔할 당시 그의 아버지는 육군 대령이었다. 1973년 TBC탤런트 14기로 입사하였지만 정식 데뷔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1학년에 재학 시절 대학생 대상 잡지에 표지모델로 실린 사진이 눈에 띄어 연방영화사와 주간한국이 공동으로 모집한 신인배우 모집에서 2,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974년 영화 ′그대의 찬손'으로 하게된다. 인기 작가였던 강신재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는데, 유지인이라는 예명도 유치원 보모였던 주인공 ‘지인’의 이름에서 비롯됐고 흥행에도 비교적 성공한다.[3]

1975년 TBC 드라마 님이 성공하고 <쥬단학화장품>(현<한국화장품>)의 전속 모델이 되면서 스타덤에 오른다.[4] 이후 1977년까지 매년 1~3편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였고 77년 TBC 드라마 <서울야곡>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77년 같은 해 TBC 드라마 <청실홍실>의 주연인 장미희·정윤희와 함께 신트로이카를 구축하며 브라운관과 영화계를 이끄는 대스타로 성장하여 최고의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된다. 1978년 영화 <마지막 겨울>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흥행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1979년 흥행 1위를 기록한 <내가 버린 남자>를 비롯해 <26 x 365 = 0>,<청춘의 덫>[5] , <불행한 여자의 행복>, <가시를 삼킨 장미> 등의 영화들을 히트시켰으며 그 해 <심봤다>로 트로이카 여배우들 중 처음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79년을 완전히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정윤희가 나는 77번 아가씨로 대표되는 백치미를 보여주고 장미희가 겨울여자로 대표되는 청순미를 보여 줬다면 유지인은 당시 대학 재학생이라는 신분에서 풍겨나오는 도시적신 이미지의 세련미를 보여줬다.

1980년에 제작된 이두용 감독의<피막>으로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3대 국제 영화제 중 베니스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하며 한국영화 세계화의 초석이 된다.

그 당시 닮고 싶은 여성상 1위이기도 했고 몇 년 동안 연예인 소득 1위를 고수했다. 또 그 당시 여배우들 중에서 스캔들은 한 번도 없었고(정윤희장미희만 해도 스캔들이 큰 것들이 제법 있었다. 그나마 장미희의 경우 그야말로 카더라만 무성하지만 정윤희는 문제의 그 남성과 결혼까지 했고 나중엔 자식까지 두었다.) 사생활이 깨끗한 배우였다. 근데 결국엔(...)[6] 또한 지성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답게 윤정희에 이어 두 번째로 여배우 중에서는 석사 학위를 취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TBC 전속 탤런트인 장미희, 정윤희와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를 이루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86년 결혼과 함께 연예계에서 은퇴, 16년만인 2002년 이혼과 동시에 전격 복귀하여 지금도 활동 중이다.

유지인이 한창 활동할 당시에는 동시녹음이 아니라 촬영 이후에 녹음을 하는 후시녹음이 대세였다. 그래서 녹음 때 배우 대신 성우를 기용할 수가 있었는데 유지인은 상대적으로 성우 대신 자신의 목소리를 그대로 녹음에 활용한 경우가 많았다. 정윤희의 경우에는 대부분 성우를 대용했으며, 장미희는 1980년대에도 성우를 대용한 경우가 많았지만, 유지인의 경우에는 79년 영화인 가시를 삼킨 장미에서도 자기의 목소리를 그대로 썼다.

3. 평가

정윤희의 최대 라이벌.

정윤희와 동시대에 활동한 배우들 중에서 정윤희급의 인기를 누린 배우는 유지인, 장미희 뿐이었다.[7] 1980년대에는 3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도 가세하지만 아무래도 신인이다 보니 2세대만큼의 인기는 누리지는 못했다.[8] 그러나 장미희는 신성일이 혹평한 대로 외모에서는 이 2명에 밀리는 편이었고, 대통령과의 스캔들에 휘말려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에 따라 인기에서도 이들 2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유지인은 장미희와 달리 유일하게 정윤희와 외모에서 비견될만 했고, 인기 순위나 수입 순위에서 절정기의 정윤희와 여러 차례 엎치락 뒤치락 했다. 2000년대 이후 김태희가 70년대 정윤희급의 타 배우를 압도하는 외모패권을 누릴 때 한가인만이 오똑한 콧날로 외모에서 김태희의 유일한 라이벌로 평가된거랑 비슷하다. 물론 2000년대 이후 여배우 외모의 승자가 한가인이 아니라 김태희인 것처럼 정윤희가 유지인보다는 예쁘다는 평이 많았다.

유지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릴때부터 워낙 털털한 성격이라 정윤희와 장미희가 트로이카로 한참 치열할때 본인은 발만 담그고 거기서 좀 물러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대에 인기에 비해 현대에는 대중의 말밥에 오르는 정도가 적은데 이는 당연히 정윤희 때문. 정윤희가 시간이 흐르며 70년대 최고 미녀 배우가 되며 상대적으로 타 배우는 묻혀버렸고, 거기에는 유지인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장미희의 경우 80년대 이후에도 2010년대까지 꾸준히 중박 이상의 작품을 내며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얼굴을 알린 거에 비해 유지인은 그런 것도 없었다 보니 지금은 2세대 여배우 신트로이카중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정윤희를 쓰러뜨릴 수 없어

4. 영화

제목

상영일자

관람인원

배역

마지막 겨울

1978.09.17

122,459명

소희 역

26 x 365 = 0

1979.02.17

178,239명

최수희 역

사랑의 조건

1979.03.16

48,563명

수연 역

내가 버린 남자

1979.05.03

239,715명

복실 역 명숙 역

청춘의 덫

1979.08.18

176,744명

윤희 역

가시를 삼킨 장미

1979.09.28

75,757명

장미 역

불행한 여자의 행복

1979.11.01

92,549명

명자 역

심봤다

1979.11.30

56,503명

나온보 처 역

바람불어 좋은 날

1980.11.27

명희 역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1984.09.29

128,450명

수지 역

5. 드라마

6. 광고

  • 1985년 라미화장품 라피네 이사벨
  • 1985년 논노패션
  • 1991년 ~ 1992년 럭키금성 (금성 싱싱 냉장고 "그린그린", 금성 여유만만 세탁기, 금성 바이오 팬히터, 금성 동글이 청소기, 금성 인공지능 전자레인지, 금성 뚝배기 전자레인지, 금성 가마솥 보온 밥솥)
  • 1992년 럭키금성 럭키 수퍼타이
  • 1993년 삼원식품 태양초 고추장
  • 1993년 ~ 1994년 삼양식품 (대관령 김치라면, 삼양 콩간장, 삼양 육개장 큰냄비)
  • 2012년 ~ 현재 유한킴벌리 디펜드
  • 2013년 경북영양군청 영양 고추


  1. [1] 예술대학 연극영화과가 안성으로 이전된 시기는 1982년이다.
  2. [2] 최근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가 3세대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대체되었지만 당대 인기도를 봤을 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애리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이보희는 영화를 중심으로 활약했는데, 80년대에는 드라마의 지명도가 영화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당연히 정애리의 인기는 이보희를 까마득히 앞섰으며, 남녀노소가 다 아는 여배우였지만 이보희는 영화관을 찾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지명도가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80년대에도 이보희를 원미경, 이미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트로이카의 일원으로 보던 전례가 있었으므로 이보희 항목에는 정애리 대신 이보희를 트로이카 표에다 넣었으니 이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보희를 참고바람.
  3. [3]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
  4. [4] 전속 모델이 된 계기가 좀 슬프다. 문경희라는 신인 여배우가 교통사고로 사망 후 유지인이 이 자리를 얻은 것. 당시 문경희는 정소영 감독이 발탁한 TBC 출신의 유망 신인이었으나 영화 촬영이 마치고 자신과 연애 중었던 유부남의 차에서 교통사고를 겪은 것.
  5. [5] 80년대 트로이카였던 원미경이 대형 신인으로 주목받던 영화이기도 했다.
  6. [6] 유지인의 인생에서 스캔들이라 할 만한 건 이 모 배우와의 스캔들인데 2008년에 터진 스캔들이니 전성기가 한참 지나고 나서 생긴 스캔들이고, 인정한 것도 증거도 그 후로 엮인 것도 별로 없으니 루머일 확률이 높다.
  7. [7] 이외에 김자옥, 이영옥도 많은 인기를 누리기는 했다.
  8. [8] 이들이 본격적으로 3세대 트로이카라고 불릴 만큼의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정윤희의 은퇴 이후이다. 물론 이들의 인기는 2세대가 활동하던 시절에도 2세대 트로이카 다음일 정도로 나름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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