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원

1. 민주화운동가
1.1. 유년시절과 청년시절
1.2. 들불야학
1.3. 5.18과 투사회보
1.4. 시민군 대변인과 최후
1.5. 여담
1.6. 만인보에서
2. 야구선수
2.1. 개요
2.2. 한화 이글스와의 악연
2.3. 스트라이크존 논란

1. 민주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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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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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08.19 ~ 1980.05.27(총 10874일)

우리는 오늘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 - 1980년 5월 26일 저녁, 계엄군의 진압을 앞두고[1]

들불의 초상[2]

윤상원은 탁월하게 용감했고 끝까지 투쟁할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말하기를 그의 지지자들에게 말한 것처럼 ‘광주를 탈환하기 위해 군대와 최후의 투쟁 속에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윤상원은 죽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 그가 계획한 것처럼, 그와 그의 동료들은 마지막까지 굴하지 않았던 순교자였습니다. 그들의 삶과 죽음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군부독재를 7년 후 패망시킬때까지 싸우도록 고무시켰습니다. - 브래들리 마틴(5.18을 취재했던 당시 볼티모어 선 도쿄지국장)#

1.1. 유년시절과 청년시절

1950년 전라남도 광산군에서 3남 4녀 중 장남으로 출생.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 주택은행에 취업하여 은행원 생활을 했다. 그러나 곧 퇴사하고 광주로 돌아와 1979년 들불야학 강사로 일반사회를 가르쳤다. 10.26 사건 직후 전국민주노동자연맹 준비위원회에 참여한 바 있다.

1.2. 들불야학

70년대에 윤상원은 들불야학을 만들어 노동자와 학생들을 위한 교육활동에 힘썼다.

1.3. 5.18과 투사회보

계엄군이 광주 시내 대학에 주둔하자 피신한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을 만나 그를 광주 외곽으로 도피하도록 했다.

이후 계엄군에 의해 광주가 고립되고 언론이 통제당하자 5.18의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시민들을 규합하기 위해, 윤상원은 들불야학 강학들과 함께 투사회보를 만들어 배포했다.

1.4. 시민군 대변인과 최후

광주항쟁 후반부(5월 25일)에 그는 학생수습위원회에서 새로 편성된 항쟁지도부(민주투쟁위원회)의 대변인을 맡았다. 5월 26일에 그는 외신기자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끝까지 투쟁할 것을 밝혔다. 얼마 지나지 않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공격하자 이에 맞서 싸우다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

1.5. 여담

  • 광주MBC에서 방영한 애니메이션 드라마 시리즈 '호남의병전'에서 윤상원의 일대기를 소개한 바 있다.보기
  • 5.18유족회가 1991년부터 제정해 시민사회단체에 수여한 '윤상원상'도 있었으나, 2000년부터 5.18시민상과 통합되어 '광주인권상'이 되었다.

1.6. 만인보에서

고은 시인은 <만인보>에서 그를 다룬 시들을 썼다.

<윤상원>

저 70년대 10년 동안 광주의 순정이 시작되었다

헌책 몇 십 권 가지런히 꽂혀 있는

야학의 방

거기 들불야학

공순이 공돌이의 방

학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의 방

형광등 불빛 이따금 꺼졌다가 껌벅거렸다 다시 켜졌다

열다섯 혹은 옹기종기 서른한 명

밤마다

그들을 가르치던 사람

술 끊었다

담배 끊었다

늘 웃었다

늘 사람들에게 고개 먼저 숙였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그가 마지막까지 남아

전남도청 시민군 이끌다가

계엄군의 총 맞아

죽었다

그의 주검 옆에

18세 자개공 김종철

16세 광주상고 1학년 안종필이 겹쳐 있었다

순정이 완료되었다 세상은 피바다였다

<다시 윤상원>

그렇지 않으냐

아름다움이란 반드시 비극일 것

그렇지 않으냐

아름다움이란

그냥 아름다움이 아닐 것

아름다움이란

어떤 행운이나 행복의 文身(문신)이 아닐 것

여기 아름다운 사람

5월을 위하여 있었던 사람

5월 광주를 위하여

있다가 없어진 사람

곱슬머리

아침부터 진지한 얼굴

아니

저녁부터 관대한 얼굴

미풍에 눈 떴다 감았던 얼굴

그 5월 거기까지만

서른 살

거기까지만 있던 사람

그 5월 도청 안

시민군 3백여 명 이끌고

그 5월 27일 새벽 네 시까지

10일간 불지른 사람

고아들

부랑자들

고교생들

막일꾼들

젊은이들

천둥벌거숭이들

다 떠나고

몇 사람밖에 남지 않은 인텔리와 마구잡이들

그들을 이끌었던 밤

그것이 생의 전부인 사람

계엄군 3공수의 총에 맞았다

쓰러졌다

그리고 실려가는 줄 모르고 실려가 파묻혔다

하나의 들불은 꺼졌다

그 뒤

그 막강한 군사의 시대

수많은 들불이 이어져야 할 때까지

그의 죽음

아무도 울어주지 못한 채

어디론가 실려갔다 쓰레기로 실려갔다 파묻혔다

누구의 감탄사도 필요없이

이상은 27권에 실려 있는 시이고, 아래 시는 29권에 실려 있다.

<바다 파도>

그날밤은 아름다움이었다 길고 긴 무슨 아름다움이었다

친구에게 말했다

나 유치하단다

해파(海波)

바다 파도라는 호를 가지고 있단다

5월 26일 그날밤 무지무지하게 길었다

5월 그날을 위하여

광주 그날

민주 그날을 위하여

그가 왔다

5월 그날을 위하여

그가 갔다

그날밤 윤상원은 빈속이었다

가거라

가거라 했건만

가다가 끝내

돌아와버린 소년에게

남은 라면을 먹이고 빈속이었다

그날밤 자정

그날밤 자정 넘어

그 어둠속에서

전남도청

민원봉사실 2층

도청 회의실 거기

그날밤은 아름다움이었다

이양현

김영철과 함께 있었다

윤상원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패배할 수밖에 없지만

역사 속에서

우리가 영원히 승리하기 위해서

끝까지 이곳을 사수해야 한다

우리 저세상에 가서도

이렇게 동지로 믿음과 사랑을 나누자

낮게 깊게 말했다

영철이 끄덕였다

양현이 어둠속 눈물 그렁 고개 끄덕였다 아름다움이었다

그날밤이 갔다

신새벽 네시

도청 뒷담 넘어

명사수

특공대의 집중사격 개시

윤상원 복부 관통

양현이

영철이

커튼을 찢어 감쌌으나

다시 수류탄 작렬

그날밤은 아름다움이었다

놀라운 것은

윤상원의 총은

단 한발도 쏜 적 없이

총탄 장전 그대로

방아쇠 당긴 적 없이

오는 죽음을 그대로 맞아들였다

윤상원의 총은 총이 아니라

5월의 상징

5월 광주의 의미 그것

그것은 끝까지 쏴버리지 않은 아름다움이었다 바다 파도였다

2. 야구선수

KBO 심판 No.40

윤상원 (尹商源 / Sang-won Yoon)

생년월일

1976년 1월 10일

출신지

경상남도 창원시

학력

마산고-연세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9년 2차 12라운드 (현대 유니콘스)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1999)

2.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이자 KBO 리그의 심판이다. 1999년 현대 유니콘스 2차 12라운드로 지명되어 입단하였으나, 별다른 활약 없이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방출되었다. 이후 2001년KBO의 심판위원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2.2. 한화 이글스와의 악연

유독 한화 이글스와 악연이 깊은 심판이다. 오죽하면 구심이 윤상원일 때 한화의 성적이 1승 11패 방어율 7.9였다. 뿐만 아니라 석연치않은 판정때문에 의도적으로 한화를 물먹이는 것이 아니냐 논란도 있었다.

2017년 롯데와도 악연 추가

2017년 5월 21일 엘롯전 박진형에게 보크 선언으로 1점을 엘지에게 하사함. 마네킹 투구의 시작점을 알림

2017년 NC와도 악연 추가

2017년 8월 15일 광복절 NC:KIA 경기 중 양현종의 오른쪽 낮은 볼을 스트라이크로 치며 삼진으로 만듬.

2.3. 스트라이크존 논란

2015년 6월 20일 마산 한화 - NC 전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NC에게 유리하게 적용한다는 의혹에 이어 9회초 무사 1,2루 상황에서 정범모의 파울 타구에 대해 페어를 선언했다. 정범모의 타석에서 초구 공이 배트에 맞고 땅에 맞고, 미트에 맞은 다음 페어 지역으로 들어갔다. 이는 파울이나, 구심 윤상원은 페어를 선언. 결국 3루에서 고동진이 아웃되었고, 이에 김성근 감독이 어필했으나, 합의판정 대상이 되지 않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5년 9월 26일 잠실 삼성-두산 경기에서 누가 봐도 스트라이크인 공을 볼이라고 선언해서 물의를 빚었다. 이때 바로 그 항의 안한다고 관중일이라는 별명이 붙는 류중일 감독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덕아웃에서 뛰어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이 경기가 다시 주목받는 계기가 있었으니...

이듬해 5월 18일 포항 한화-삼성 경기에서 또 스트라이크 존 관련해서 문제가 되었다. 게다가 또 윤성환이다. 해당 영상의 투구는 볼로 판단하는게 맞지만 점수차가 커서 항의를 안했던 것일뿐 이전까지 판정에서도 불만이 있었다가 6회에 터졌다고 한다. 이번에도 류중일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올라갈 정도. 이쯤 되면 심판 계속하는게 용하다.


  1. [1] 이 말은 5.18 사이버참배 사이트에 글귀로 걸려있다.
  2. [2] 박호재와 임낙평이 쓴 <윤상원 평전>의 초판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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