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가수)

OnePiece 멤버

윤상

다빈크

스페이스 카우보이

완구

이름

윤상 (尹相) / YOONSANG)

본명

이윤상 (李潤相)

출생

1968년 5월 11일 (50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불광동[1]

원숭이띠

본관

추가바람

신체

177cm, 60kg, O형

배우자

심혜진[2]

자녀

장남 이찬영, 차남 이준영

종교

개신교

학력

예일초등학교
연서중학교
충암고등학교 (졸업)[3]
경희대학교 요업공예과
버클리음악대학교 뮤직신서시스학과
뉴욕대학교 대학원 뮤직테크놀로지학과

데뷔

1990년 11월 30일, 1집 <이별의 그늘>

소속

오드아이앤씨
성신여자대학교 현대실용음악학과 (전임교수)
용인대학교 실용음악과 학과장

그룹

OnePiece

장르

팝, 발라드,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

악기

다양

별명

발라드의 조상[4], 윤마담, 발라드의 원조.
뮤지션들의 뮤지션, 러블리즈의 아버지[5]

홈페이지

공식사이트

1. 생애
1.1. 성장과정
1.2. 데뷔
1.3. 소속사와의 갈등
1.4. 병역 문제
1.5. 제대 후
1.6. 유학
1.7. 흑역사
1.8. 제작, 프로듀싱, 기타 작업
2. 방송
2.1. 라디오 DJ
2.2. TV 출연
2.3. 위대한 탄생 심사위원
3. 음악
3.1. 작법
3.2. 사운드
3.3. 멜로디
3.4. 보컬
4. 트리비아
5. 인물/인간관계
6.1. 참여 OST

1. 생애

대한민국완벽주의지향 싱어송라이터.

아이돌 덕후에겐 러블리즈아빠이며[6][7] 현재는 OnePiece라는 프로듀싱 팀을 결성해서 활동 중이다.[8][9] 남북회담 역사상 최초의 대중문화인 수석대표[10]이기도 했다.

1.1. 성장과정

1988년 무렵부터 활동을 시작하여[11] 1990년에 가수로 데뷔했다.

1968년 서울특별시에서 사업가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깔끔한 귀공자풍 외모 덕에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어린 시절이 좀 어둡다. 아주 어렵게 자라지 않았으나, 부모님이 어릴 때 이혼해서 할머니와 삼촌들이 키웠다. 주위의 편견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매우 많았던 듯하다. 외갓집에 가면 친가 욕하고, 친가에 가면 외갓집 욕하는 상황을 어릴 때부터 겪으며 마음 고생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대립이 너무 싫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성격도 예민해지고 눈칫밥 먹으며 살아야 했다고. 아버지 쪽에서 자신을 좀 부담스러워했다고 느꼈고, 자연스럽게 자라면서 아버지와의 접촉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본인도 아버지에 대해 별 감흥이 없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학창시절에는 친구들과도 잘 못 어울렸을 정도였다고.

초등학교 고학년-중학교 즈음해서 좀 적응을 못 했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음악 선생님이 내 준 “곡 완성하기 숙제” 를 해 가게 되었고, 이를 본 선생님이 “너 뭐 음악 따로 배운적 있어? 없어? 그런데 이런 걸 하다니 대단한데” 라고 칭찬을 들어 어렴풋하게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듀란 듀란을 들으면서 베이시스트 존 테일러를 동경해 삼촌을 통해 기타를 득템했다.

서울 충암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뮤지션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격렬한 반대로 미술학원에서 벼락치기 입시 공부를 해 경희대학교 요업공예과에 들어간다. 하지만 공부하려 들어간 대학이 아닌지라 학교에 적만 걸어 놓고 밴드 하고 신촌블루스에서 알바하며 지냈다는듯. 그 덕에 충암고등학교 시절부터 빠질을 했던 봄여름가을겨울과 친분이 생겼다. 나중에 봄여름가을겨울의 베이시스트 자리를 제의받았다.[12] 연주 실력도 어느 정도 되었겠지만, 곱상한 외모 때문에 돈맛 좀 보여줄 것 같아서 제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까마득한 형님들이 너무 잘 해주는 게 무섭고 부담스러워서 도망갔다고.

손무현과 함께 김완선 백밴드에서 베이스를 치기도 했다.[13] 옛 영상을 찾아보면 뒤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보인다.

1989년 자니 윤쇼. 김완선의 백밴드 '실루엣'에서 연주하는 모습.

1989년 토토즐. 손무현과 함께 이승철의 세션으로 연주하는 모습.

보다 자세한 그의 성장과정은 신문에 직접 연재한 에세이에서 볼 수 있다.

1.2. 데뷔

윤상의 1991년 말 모습. 1992년 무렵 MBC FM4U에서 '밤의 디스크쇼' DJ 하던 시절이다.

인기 아이돌 윤상.jpg

본래 충암고 시절 박창학, 김학인과 함께 뉴웨이브 밴드 Papermode를 하려했다. 박창학은 현재 작사가로 20년 넘은 친구다. 고교 수련회 때 윤상의 기타를 보고 엄청나게 칭찬해 준 옆반 반장이었다. 당시 윤상은 리드기타가 아니라 백킹/리듬기타를 쳤는데 그래서 '얘 좀 특이하네?!'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처음에는 박창학은 자기보다 음악도 더 듣고 같이 놀러 다니는데 공부도 잘 해서 짜증이 났었다고 한다. 박창학은 잠시 여고 국어교사로 재직하다 현재는 전업, 영화/월드뮤직/가사 작업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가사는 전부 박창학에게 맡기고 있으며, 작업 초기단계에서도 계속 같이 하고 있다. 윤상 본인도 “박창학은 나의 반이다.”라고 했다.[14]

이 뉴웨이브 밴드 Papermode를 위한 데모 테이프가 돌고 돌다가 김현식의 손에 들어갔고, 그 테이프에 수록된 “여름밤의 꿈” 이 김현식의 앨범에 수록되며 작곡가로 데뷔했다. 당시 윤상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열성팬이었던 데다가, 신촌블루스에서 알바도 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선은 닿아 있었던 셈이다.

이를 시작으로 김민우, 강수지, 변진섭 등에게 히트곡을 제공하면서 프로듀서·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본인은 딱히 가수로 데뷔할 생각은 없었는데, 우연찮게 김민우 앨범 녹음 중, 김민우의 보컬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가이드 보컬 식으로 불러줬다. 이걸 당시 EOS 사운드 프로덕션 김광수(코어 콘텐츠미디어사장)가 듣게 된다. 윤상에게 “너는 얼굴도 되고 분위기나 목소리도 좋으니 가수 한번 해봐라”라는 제의를 한다. 윤상은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당시 김광수 사장이 제시한 금액이 평소 가지고 싶었던 장비를 다 구입하고도 남는 금액[15]이라 수락해서 1990년 “이별의 그늘”로 데뷔했다. 요즘 어린 세대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만 해도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던 탑 클래스 아이돌이었다. 당시 이승환, 신승훈, 신해철도 아이돌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연예인보다 전문 스튜디오 뮤지션이 꿈이었고,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에 마음 고생이 많았던 듯하다.

모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얼떨결에 가수 데뷔를 했는데 거기에 딸려온 연예인이라는 짐을 벗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르는.”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당시 방송을 안 하면서도 자기 음악을 하는 김현철이나 015B와 비교해 자신이 너무 속박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판매량으로만 가치가 판단되는 것도 싫었던 듯하다. 그러다 세월도 흐르고 가족도 있으니 앞으로는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한다. 당시의 자신을 미쳤던거지...하고 배불렀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는 듯이 말하며. 하지만 여전히 음악에 관한 자세는 굉장히 엄격하다.

여담이지만, 원래 학창시절부터 인기가 있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던지라 가수로 데뷔하자마자 아이돌로 통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본인은 그것을 굉장히 의아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맨날 집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어린 팬들에게 자신을 왜 좋아하냐고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1.3. 소속사와의 갈등

1집의 엄청난 성공 후, 소속사 사이에 갈등이 꽤 심했다. 1집의 대중적인 성공 후, 소속사(와 광수 사장)는 계속해서 윤상을 아이돌+대중가요 노선으로 끌고 가려 했으나 윤상은 이제 번 돈으로 장비도 다 구비했으니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해 보고 싶다며 이견을 보였다. 신인 가수상을 받게 되었는데 "1등을 받는게 뮤지션으로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인이 출연을 거부해 괘씸죄로 방송 금지를 먹기도 했고, 예능 프로에 출연하는 와중에도 "난 스튜디오 뮤지션인데 왜 이런 걸[16] 하고 있나..."[17]하는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2011년 인터뷰에서도 소녀 팬들을 몰고 다니던 시기가 그립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 때로 돌아가라면 차라리 다른 일 할 거에요. 저는 연주자·작곡자·편곡자로서 가수 주변에 머무르는 게 좋은데, 얼떨결에 인기 가수가 됐죠. 낮엔 아이돌 스타처럼 살고 밤엔 곡 쓰는 뮤지션으로 돌아오고…. 제일 먼저 놓아 버리고 싶었던 건 가수였어요.” 라고 대답했다.

덕분에 2집은 1992년1993년에 걸쳐 1년 차이로 part 1, part 2라는 괴상한 형태로 나오기도 했다. 파트 1은 1집처럼 인기가 좋았지만, 파트 2는 부진했다.[18] 거기에 갑자기 가수 은퇴를 발표했다가 번복하는 등 고민이 많았다.

1.4. 병역 문제

그의 흑역사 중 하나. 1987년 신검을 받고 1급 판정을 받았는데, 대학생 신분으로 입대 연기를 해 오다가 1993년 5월에 입대 영장이 나왔다. 문제는 이 무렵 아르헨티나 국적을 취득해 병역 면제를 받았다는 것. 이에 따라 이민으로 처리되었는데도, 계속 국내 활동을 하는 바람에 추적을 받았다. 당시 주변 상황과 맞물려 DJ로 진행 중이었던 '디스크 쇼'에서 하차하고 잠적하기도 했지만, 결국 국적을 포기하고 1993년 12월에 현역으로 입대하였다.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 회복과 함께 김광수와의 인연도 끝. 진실은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소속사에서 압박을 넣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군 생활도 무리 없이 잘 하고, 소속사와의 갈등도 꽤 있었고… 최근 1박 2일 출연에서 동네 주민과 얘기하다 자연스럽게 군대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싫어서 기피한 건 아닌 듯 싶다. 되려 본인도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하던 시절에 입대해서 편했던 듯하다. 한가지 애로사항이 있었다면 원하는 악기를 맘대로 사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늘 절친인 작사가 박창학이 수고했어야 했다고... 그중 하나가 바로 윤상이 그렇게 아끼는 미니무그가 있다.[19]

복무 당시 차인표이휘재흑역사인, 관객 수가 적어서 예비군들에게 공짜 표를 뿌렸던 반공 영화인 알바트로스의 음악 감독을 맡아 OST를 작업했다. 사족으로 차인표, 이휘재, 윤상 모두 충암고등학교 동문이다.

1.5. 제대 후

제대한 후 1996년 복귀작으로 리메이크 앨범인 Renacimiento(레나시미엔토. 스페인어로 르네상스)를 발표했다. 9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윤상이 불렀던 신곡은 딸랑 2곡(벽, 배반)뿐이고, 2집 파트1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를 샘플링해 온 것으로 보이는 1분짜리 연주곡인 Eco 하나를 제외하면 나머지 6개 트랙이 자신이 불렀거나 작곡했던 예전 히트곡들을 이탈리아/프렌치 팝/남미 음악 풍으로 재편곡한 후 해당 국가 보컬들에게 그 나라의 국어로 번안한 가사로 부르게 한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그때까지 계속 윤상에게 따라다니던 일본 음악 표절설에 대한 항변격으로 낸 것이다. 위의 작업을 통해 자기는 일본 음악이 아니라 월드뮤직에 관심이 있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윤상은 월드뮤직, 특히 남아메리카 쪽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김형석, 성시경이 “윤상은 툭하면 ‘야 이거 이탈리아 무명 뮤지션 b-side의 곡이랑 진행이 비슷한데?”라고 한다며 투덜대기도 했다. 굳이 많은 사람이 아는 일본 음악을 표절할 필요도 없고, 월드뮤직에 대한 애정도 상당하다. 표절에 대한 무서움도 잘 안다. 자신의 음악이 외국인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그 나라 언어로 가사를 붙이면 어떨 지 궁금했던 것도 이 앨범의 기획 의도였다. 하지만 판매량은 10만 장 남짓해서 좀 망했어요.[20] 같은 해에는 신해철과 함께 프로젝트 팀 노땐스를 결성하고, <골든 힛트>라는 제목의 앨범을 낸다. 당시 대한민국 최초의 본격 테크노/전자음악 앨범인데, 이후 상당한 희귀 음반이 되었다. 훗날 S.E.S가 리메이크한 노래 <달리기>도 이 앨범에 실려있다.

1998년에는 지금까지 윤상의 최고 역작이라 불리는 싱글 앨범 "Insensible"을 발표했으며, 이승환이 프로듀싱했다.

데뷔부터 제대까지, 초반에는 외국 곡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곡들과 오빠부대로 시작했으나 이런 일련의 작업들로 오빠부대 아이돌 연예인에서 본좌 뮤지션으로 정체성이 확립된다. 그러면서 대중적 인기는멀어져 갔다.

1.6. 유학

2003년 즈음해서 Berklee College of Music(김동률이 유학했던 대학. 싸이도 다니다가 중퇴)으로 적지 않은 나이에 학부부터 다시 시작하는 유학을 갔다. 당시 그냥 프로듀싱/작곡하면서 편하게 먹고 살 수도 있었는데, 신디나 제작과정 전반적으로 더 알고 싶지만 국내에서 정보를 구하기에는 한계에 다다랐기도 하고, 더 이상 음악 작업의 재미를 느끼지 못해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후에 밝히기를 유학을 결정할 당시에 "어렸을 적 '나는 나중에 이런 뮤지션이 되고싶다'는 꿈을 꾸었는데, 내 생각보다 너무 일찍 그 꿈을 이루어 버려서 더 이상 뭘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학을 떠날 결심을 했다"고 한다.

어릴 때 데뷔해 성공, 남들이 받들어 주는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어린 사람들하고, 그것도 자기가 알아서 하는 분위기의 미국에서 여러 모로 생각도 많이 바뀌고 배운 것도 많은듯하다. 그냥 놀러 간 게 아니라 정말 제대로 공부하고 왔다. 때문에 유학을 마친 후 피부고 뭐고 더 이상 예전의 연예인스러움이 많이 사라졌다. 근데 당시 한 TV프로그램에 윤상을 만나러갔던 나경은을 포함한 여자 아나운서들은 여전히 멋있다고말하기도... 암튼 고생도 많이 했다. 처음에 버클리 음대에서 장학금을 준다고 했는데, 말을 바꾼건지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디션을 봐야 된다고 해서 부랴부랴 베이스 연습을 다시 했으나 탈락. 나중엔 그래도 밤새가면서 공부해서 성적 장학금을 좀 받았다 한다.

이 때 부인과의 일화가 있다. 부인 심혜진 씨가 필수 교양과목 등 본인 전문분야가 아닌 쪽은 윤상이 맨날 “여보 숙제 해줘” 라고 해서 니 숙제를 왜 내가 하냐며 성질을 내면서 해 줬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물론 윤상은 그때마다 “니가 우리 할 수 있을거라고, 유학 가자고 했잖아.” 설득해서 결국 해 주고... 유학 중 잠깐 나왔던 모 방송에서는 핼쓱해져서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21]

원래는 학부만 마치고 올 예정이었지만 공부에 불이 붙어 졸업한 후 다시 NYU 대학원 뮤직 테크놀로지 석사를 졸업했다. 작곡 편곡이 아닌 사운드 메이킹을 배워왔다고 할 수 있다. 멜로디가 아니라 소리 구성요소들의 디자인같은 것. 유학 계획도 중간에 바뀌고, 아이도 둘이나 태어나고해서 학비와 생활비 관계로 공부하랴 일하랴 엄청 빡세게 살았던 것 같다. 이 와중에는 누들로드의 OST와 DMB 방송을 잠시 진행하기도 했다. 누들로드는 본인이 영상음악 작업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승낙한 이유도 있다.[22]

유학 중에 잠깐 국내로 들어와서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 게스트로 나와서 말하기를 "유희열 씨도 가정에 충실하고 싶으면 빨리 이 쪽으로 오세요. 대한민국에서는 나가면 '와~ 가수다' '와~ 연예인이다' 하면서 이리오세요 저리가보세요 하지? 여긴 그런거 없어.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거야."라고 유학 생활의 소고를 밝힌 바가 있다.

유학 전 SM엔터테인먼트으로 이적했는데, 당시 SM의 이미지는 그냥 실력 없는 댄스가수들이나 양성하는 악의 축 이미지라 충격과 공포를 불러왔다. 윤상이 이제 자기 음악을 못 하는 거냐며 걱정도 많았다. 본인은 그런 건 모르고 그냥 계약 조건이 제일 좋아서 승낙했다고 언급했다. 저작권에 대한 권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만, 10억 정도의 계약금을 받았다고 한다. 계약은 매니지먼트 계약이 아니라 정규앨범 4-5집 발매, 프로젝트 앨범 1장 등 일 관련 계약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윤상은 SM의 자본력과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었고, SM은 이미지 쇄신+윤상의 프로듀싱과 곡을 이용할 수 있었으니 꽤 좋은 계약이었던 셈이다. 특히 윤상은 계약이 남은 상태에서 SM에게 유학 계획을 밝혔고, SM은 이를 승낙해 줬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윈윈한 계약이었던 것. 덕분에 윤상은 아직도 SM을 좋게 평가하고 있으며, 권보아동방신기 등의 소속 가수들과 꾸준히 작업 중이다. 우연하게도 오랜 후 그가 음악감독을 맡은 평양 공연에는 SM의 레드벨벳이 함께했다.

2010년이 되어서야 7년 간의 긴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귀국과 동시에 상명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로 임용되어 강단에 서게 되었고, 2017년에는 성신여자대학교의 교수를 맡았다.

2018년에는 용인대학교 실용음악과 학과장을 맡게 되었다.

1.7. 흑역사

장인 소리를 듣고 완벽주의자 소리를 들으며 월드뮤직을 지향하고 표절설에 대한 전면적 항변을 한 윤상이지만, 그도 빼도박도 못하는 표절 판정을 받은 곡이 있다는 것은 그의 가장 큰 흑역사 중에 하나이다.

“이별의 그늘”이 히사이시 조의 “천공의 성 라퓨타”와 비슷하다는 것은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고 오히려 전람회시절 김동률의 "유서"쪽이 더 비슷하다지만, 변진섭에게 준 "로라"는 명백하게 사이토 유키의 "정열"이라는 곡을 표절했다.

다만 로라는 윤상이 "작곡만 한" 곡이다. 로라 항목에 들어가 사이토 유키의 정열과 비교해 들어보면 알겠지만 두 곡의 보컬 멜로디는 초반부에 높은 유사도를 가지다가 후렴구로 가면서 진행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럼에도 곡이 전반적으로 매우 비슷하게 들리는 데는 편곡자 하광훈에게도 공통의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윤상이 홀로 다 뒤집어쓴 격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표절 건으로 종종 윤상만 까이는 걸 보면 윤상 입장에선 억울해할 수도 있는 부분.

1.8. 제작, 프로듀싱, 기타 작업

최근엔 눈에 띄지 않아 한 물 간 거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윤상은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정말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 1990년대 가요차트 1위 곡들을 싹쓸이했다. 본인 곡뿐만 아니라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황치훈의 '추억 속의 그대', 강수지급 아이돌이었던 하수빈 등등. 히트곡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가요톱10 1위 곡은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한 곡밖에 없다.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에서 강수지의 '시간 속의 향기', '흩어진 나날들'이 1위를 차지하긴 했다.

그런데 1997년에 공동 제작한 혼성 듀오 알로(Halo)는 대박 망했다. 지금까지도 윤상팬을 빼고는 아는 사람이 적지만, 당시 알로가 불렀던 ‘랄랄라,’ ‘잠자는 숲속의 왕자’ 등은 지금 들어도 윤상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촘촘한 편곡이 돋보이는 귀여운 댄스 팝이다. 유희열이나 주변 사람들은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 아깝다고 말한 바 있다. 이 가운데 '랄랄라'는 윤상 20주년 기념 앨범에서 소녀시대가 참여해 다시 불렀고, ‘잠자는 숲 속의 왕자’는 아이유 정규 2집 Last Fantasy에서 부활한다.

의 데뷔 앨범 프로듀싱과 데뷔곡 ‘사랑합니다’를 담당했다. 당시 충격과 공포를 일으켰던 SM 이적 이후에는 권보아, 소녀시대, 동방신기, 천상지희 등에게도 곡을 주었거나 지금도 주고 있다.

그 외

손가인 - 탱고, 일렉트로니카를 섞은 ‘돌이킬 수 없는’을 이민수와 공동 작곡하여 손가인이 오랜만에 공중파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아이유 - Real+ 앨범 타이틀곡인 '나만 몰랐던 이야기'를 주었고, Last Fantasy에서도 '잠자는 숲 속의 왕자'를 리메이크해서 주었으며 후술하겠지만, 그 외에도 음악적 교류를 계속 하고 있는 듯.

박효신 - 정규 2집 'Second Story'의 3번 트랙 '먼 곳에서'와 10번 트랙 '편지'를 작곡했다. 두 곡 모두 작사는 박창학.

윤종신 - 윤종신월간 윤종신 2012년 10월호 '나쁜'을 작곡 및 편곡했다. 둘 다 뮤비에 출연한 건 덤.

유희열(토이) - 토이 정규 앨범에 4집부터 6집까지 총 3번 보컬로써 참여한 바 있다. 7집에는 없는 듯하다.

성시경 - 2011년 성시경 7집에 수록된 '아니면서'는 박창학 작사, 윤상 작곡이다. 성시경 자신이 맘에 들어하는 곡 중에 하나로 꼽기도 하다.

이런 음악인의 작업에 참여 중이다. (유희열, 윤종신 빼고) 윤상 동년배의 뮤지션들이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아이돌과 접점이 별로 없는데 반해 특이한 점. 윤상 특유의 페이소스를 아이돌이 부르는 것도 그렇고. 윤상의 곡이 리메이크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3단 고음 소녀의 경우 음악 방송에서 피아노 반주를 해 주거나 뮤비 찬조출연 등 전폭 지원을 해 주고 있다. 3단 고음 소녀에게 “아빠”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23] 이유는 3단 고음 소녀의 아버지랑 동갑이기 때문이라고. 근데 처음 만났을 때 오빠로 부르라고 했다고 한다. ‘나만 몰랐던 이야기’ 뮤비엔 박보영의 연인으로 출연했다. 그런데 나이 차이가 22년이라서 덕분에 뮤비 내용이 '아빠랑 사귀네', '근친상간이네'하는 드립이 나왔다. 소속사에서는 “아빠만큼 나이 차이가 많은 커플 이야기다. 뮤비 제대로 본 거임?”이라며 해명했다.

아이유와의 인연은 계속되어 아이유 3집 Modern Times에서는 손가인와의 듀엣곡인 '누구나 비밀은 있다'를 제공했고, 2014년에 발매된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에서는 윤상이 故 김현식에게 주었던 '여름밤의 꿈'을 리메이크했다.

S.E.S.의 마지막 정규 앨범인 5집에 수록된 히트곡 달리기도 원래 노땐스 앨범에 수록되었던 곡. 리메이크 버전은 희망차고 발랄한 곡이지만, 원곡은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한 곡으로 좀 우울하다. 윤상도 라디오에서 SES가 많은 곡들 중 왜 이걸 리메이크했는지 모르겠다고. SES가 리메이크했을 때도 노래 자체의 지울 수 없는 우울함과 SES가 무대에서 선보였던 무대의상 등으로 인해 자살을 암시(달리기=인생 이라면 쉴 수 있다=인생이 끝난다)한다는 소문이 있기도 했다.

2013년 후반부터 2014년 초까지는 East4A와 함께 아이유의 '누구나 비밀은 있다', HISTORY의 '난 너한테 뭐야', 레인보우 블랙의 'Cha Cha'를 순서대로 내놓았다. 최근은 OnePiece 결성으로 합작이 좀 뜸해진 듯 하지만.

부인 심혜진씨와 같이 빅터 우튼이 쓴 책을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2014년 11월 데뷔한, 울림엔터테인먼트 소속 첫 걸그룹인 러블리즈의 자신의 작곡 팀인 OnePiece로 총괄 프로듀싱을 맡았다.

타이틀곡 'Candy Jelly Love'를 비롯한 총 5곡을 작곡, 편곡했다. 나머지 4곡은 데뷔 전 멤버들의 솔로곡. 더불어 2015년 10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함께 출연하였고 11월 마이 리틀 텔레비전 녹화에 출연했을때도 러블리즈 멤버들과 함께 하는 등 방송에 동반 출연하여 아빠처럼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준다.[24] 덕분에 러블리즈 팬들이 윤상을 좋아한다.

특히나 희대의 명곡이자 여전히 인기있는 러블리즈 대표곡 'Ah-Choo'는 스테디 셀러로서 많은 이들이 윤상이 작곡한 곡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윤상의 소녀감성에 대단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25]

2016년 러블리즈 미니 2집 <A New Trilogy> 기자 쇼케이스[26]에서 윤상이 러블리즈와의 특별한 인연[27]을 계속적으로 이어갈 것을 선언하였고 러블리즈를 통하여 본인의 음악적 이상[28]을 펼쳐나갈 것을 발표하였다.

이렇게 최근엔 윤상하면 러블리즈를 연상할 정도로 각종 방송에서도 러블리즈의 아버지로 언급되고 있다.

평론가들의 전반적인 의견은 러블리즈라는 팀은 윤상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고 있지만 마이너한 감성으로 인기를 얻기에는 쉽지 않아 보이나 곡의 완성도가 최고에 이른다고 전반적인 호평을 받고 있다.

다만 이번에 새로 러블리즈와 작업한 정규 2집[29] 타이틀곡 'WoW!'는 가사와 노래 구성 면에서 좋게 말하면 독특하고, 안 좋게 말하면 마이너해서 팬들과 대중들의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는 편이다. 일부 팬들은 다른 수록곡인 'Cameo'가 타이틀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2017년 4월 말, 일렉트로닉 전문 레이블 '디지털리언 스튜디오'을 론칭한다고 한다. 5월 초 원피스의 신곡 ‘얼론’의 스템 파일을 공개하고 리믹스 컴피티션을 시작으로 매달 한 곡씩 일렉트로닉 장르의 유망한 신인을 소개하는 ‘디지털리언 나우’(Digitalian NOW) 레이블 음원발매 프로젝트도 시작하는 등 전문적이고 특화된 장르 레이블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

2017년 5월 2일 발표된 러블리즈의 정규 2집 리패키지 지금, 우리의 동명 타이틀곡 역시 원피스팀의 작품이다. 같은 달 16일 SBS MTV THE SHOW에서 이 곡이 1위를 차지하면서 작곡가로는 오랜만에 음악 방송 1위 곡을 배출했다.[30]

2. 방송

2.1. 라디오 DJ

라디오 DJ 경력도 풍부하다. 1991년 MBC FM(현 MBC FM4U)의 "윤상의 밤의 디스크쇼" 진행을 맡았고, 이 당시 MBC FM은 배철수의 음악캠프-박소현의 FM데이트-윤상의 밤의 디스크쇼라는 괴물 라인업을 선보이면서 1990~1997년까지 청취율 깡패로 군림했다. 디스크쇼는 이후 김현철이 이어받아 한동안 진행했고, 이후 FM데이트와 디스크쇼가 오후 9시->8시, 11시->10시로 당겨지면 FM 음악도시가 신설된다. 후술하듯 윤상은 FM 음악도시와도 인연이 깊다.

이후에는 한동안 “윤상의 음악살롱” 을 진행하며 윤마담이란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 2010년 4월 19일부터 2013년 4월 30일까지 약 3년 동안 KBS 제2FM에서 오전 11시~12시에 '윤상의 팝스팝스' 진행을 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보다 록 중심이라면 윤상은 좀 더 소녀스러운 올드팝이나 월드 뮤직을 곧잘 틀어줬다.

이외에도 유희열이 진행하던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성시경FM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 등에 게스트로 꽤 많이 오곤 했다. 특히 성시경유희열과 함께 그를 자주 초대했었다. (1대 故 신해철, 2대 유희열, 3대 이소라, 4대 성시경 순이다.) 특히 음악도시의 고정게스트 중 한명이었던 이준오는 성시경과 더불어 윤상 빠심을 인증한 바 있다. 라디오천국의 고정게스트였던 옥상달빛의 김윤주 역시 윤상에 대한 오랜 존경심과 빠심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외에도 2013년 12월 10일에는 컬투쇼에도 출연했다. 이 때 윤상은 초창기 음악을 하고 싶어 故 김현식에게 찾아갔던 일화라던가, 부인 심혜진과의 일화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 때 "윤상 심혜진" 등이 인터넷 검색엔진에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뒤에, 음반 작업을 위해 버벌진트에게 자리를 넘겼다가 최다니엘의 진행을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은 폐지.

2.2. TV 출연

예전에 아이돌 시절 시달린 것도 있고, 본인이 무대 체질이 아니라며 TV방송은 많이 나오는 편이 아니다. 예능은 더더욱 나온 적이 없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 조금씩 방송과 예능에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다. 아이돌 시절에는 일밤의 꽁트에 출연한 적도 있는데 이 당시 같이 연기했던 파트너가 드라마 '질투'로 스타덤에 올랐던 최진실이다. 이 출연분에서는 최진실이 인기 가수이자 DJ인 윤상을 스토킹하는 팬으로 소름끼치는 열연을 펼쳤다.

2012년말 '1박 2일 시즌2'에 '가사도 음악회' 편에서 유희열, 윤종신과 함께 출연했다. 밴드명은 '유희열과 등대지기' 윤종신과 윤상의 '추대'에 의하여 유희열이 밴드 마스터를 맡았기 때문이다. 윤종신에 따르면 그의 리즈시절은 문민정부 전이었다고... 그리고 성시경은 깨알같이 "나 이사람 믿어주세요"라며 성대모사를 쳤다.

2012년 5월 EBS 스페이스 공감에 나와서 '방송에서 라이브로 이렇게 많은 노래를 부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후로 조금 뜸하다가 2014년 꽃보다 시리즈 후속 꽃보다 청춘에 출연하였다. 유희열, 이적과 함께 졸지에 페루로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떠났다. 윤상은 여타 출연자(유희열, 이적)들과 달리 잠자리, 화장실에 대해 불편해하며 예민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윤상의 불면증으로 인한 것이라한다. 20년전부터 술을 꾸준히 마신 후 잠에 들었다고 할 만큼 알코올 의존증이 있었으나 최근 몇달 전 부터 가족과 건강을 위해 끊었다며 심할 때는 약을 복용하며 견딘다고 한다.(꽃보다 청춘 2화 中) 약을 복용하면서 술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지만 부작용으로 소화기관에 이상이 생긴 듯. 이 사실을 들은 이적은 인터뷰 도중, 짜증을 낸 형에게 미안해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며 본인의 한계점에 부딪치며 넘어서려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다.

2014년 11월 157회 힐링캠프에 출연 했다.

2015년 5월 시작한 tvN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에게 요리를 배우는 네 명의 제자 중 한 명이 되었다.

2015년 7월부터 2015 무한도전 가요제에 참가한다. 짝이 된 멤버는 정준하. 역시 7월부터 10주간 CGV의 무비 스토커라는 영화 토크쇼에 영화잡지 기자라는 컨셉으로 출연중.

2016년 원피스 팀의 일원인 스페이스 카우보이와 함께 노래의 탄생의 참가 프로듀서로 출연하였다. 프로듀서로서 윤상이 면모를 드러내 방송 포맷에 어울리는 출연이었다면 호평을 받고 파일럿 프로에서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될 예정이라고 한다.

2016년 8월 11일 너의 목소리가 보여3에 출연하였다.

2016년 10월 엠넷의 '판스틸러'라는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했다.

2018년 3월 SBS 싱글와이프 시즌2 출연중이다.

2.3. 위대한 탄생 심사위원

2011년 9월~12년 4월 방영된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2기에서 심사위원으로 출연하였다. 평소의 조근조근한 말투로 감정적으로 화를 내진 않지만 무표정하고 냉정하게 짚을 것은 죄다 짚어 주는 편이라 독설 멘토로 위상을 날린다. 누군가가 말하길 다른 독설들은 그냥 기분 나쁘고 말거나 개인 취향으로 넘길 수 있지만, 윤상의 악평(?) 은 엑스레이로 스캔당하고 벌거벗겨져서 밑천이 탈탈 털려버리는 느낌이라고...

너무한 것 아니냐, 윤상이 저럴 줄 몰랐다, 반전이다 하는 말들도 있지만, 꽤 오랫동안 윤상을 알아온 사람들에게는 크게 놀랄 것 없다. 보통 때는 소심하고 부드럽다. 그러나 음악에 대해서는, 뒤에 나오는 완벽주의자 성향 때문에 본인 작품도 치열하고 진지하고 엄격하게 대하는 사람인데다가 작곡/제작 경력만 쳐도 20년이 넘어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함께 오래 활동했던 강수지는, 윤상은 화를 내거나 소리를 치는 일은 없지만 녹음시 정말 깐깐해서 같이 작업할 때는 항상 긴장했다고 한다.[31] 작업하던 여자 가수들 여럿 울렸다든가... 게다가 딱히 평 중에 억지춘향이거나 틀린 말을 한 것도 없다. 덕분에 방송 후 멘티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보니 멘티들이 다들 각잡고 초긴장 상태로 앉아있었다 카더라.

얼마 후 이승환, 윤하와 같이 놀러와에 출연했다. 여기에서 털어놓길, "악평을 한 참가자의 이유가 된 태도 등은 방송에 다 나오지 않고 자기가 악평하는 것만 나와서 자기만 나쁜 사람 되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집에서 간식 먹으면서 방송 보다가 목에 걸려서 쿨럭쿨럭...그리고 같이 출연하는 이승환에게 전화해서 2시간을 투덜거렸다고. 근데 녹화가 좀 길어지면 피곤해져서 배로 까칠해지는 경향이 있긴 한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같은 오디션 류 프로그램인 팬텀싱어에서는 그다지 독설가 포지션이 아니다. 독설은 뮤지컬 감독인 김문정과 오디션계의 베테랑(?)인 윤종신 쪽이 더 많이 날리는 편. 오히려 프로듀서들 중에서도 마이클 리와 더불어 심사기준이 독특하고 소수의견을 많이 낸다는 점이[32] 특징이기는 하지만, 장점과 단점을 굉장히 균형감 있게 조곤조곤 짚어주는 편이라 밑천이 털리는 경험을 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팬텀싱어라는 프로그램이 신예 뮤지컬 배우나 전문 성악가, 대학생들 중에서도 성악과나 실용음악과 등 음악 내공이 대중 오디션보다 높은 참가자들이 대거 참가하기에 윤상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일 가능성도 있지만, 정말로 위대한 탄생이 악마의 편집을 해댄 것일 가능성도 있다. 팬텀싱어는 악마의 편집을 잘 안하는 편.

3. 음악

이번 앨범만 해도 얼마나 팔릴 것인가를 생각했다면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 `가요는 후지다, 가요는 팝에 비해 별로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 앞에서 딴 소리가 안 나오게 하는 게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된다. 이건 돈을 벌려는 사람에겐 말도 안되는 소리다. 오히려 판을 소비하지 않는 층을 상대로 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가요의 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러지 말고 이런 가요도 있으니까 들어봐라` 하는 입장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제작자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을 거다.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똑똑한 게 아니니까. 나의 자존심의 문제이고, 욕심의 문제다. 나는 모든 에너지가 여기서 나온다고 믿고 있다. 상업적인 가수와 작업할 때는 충분히 상업적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히트할지 누구보다 잘 안다. - ’09 매경 인터뷰

제가 월드 뮤직으로 넘어간 한 가지 이유는 수많은 보사노바가 대한민국에 있었지만 사실 그것을 듣고 겉핥기식 편곡으로 보사노바라고 하는 점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해보자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최소한 보사노바 음악을 한다고 하면 원주민들이 쓴 악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오리지널에 가까운 장치들을 가지고 와 음악을 해야 한다는 의지였다. 그들을 이해하면서도 한 쪽에는 악기에서 오는 뉘앙스를 내 식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예술적인 이유였다. 동경이라고 할까. 그 음악들을 가져 올 때는 최소한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 했던 것보다 이해를 하고 가자는 생각이었다. - '09 이즘 인터뷰

당시에 나에게 장르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오직 완성도가 문제였다. - ’09 보다 인터뷰

Q : 조금 식상한 질문이겠지만, 윤상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A :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것 - '09 이즘 인터뷰[33]

본좌. 괴수. 완벽주의자.

영미권 팝 작곡가[34]를 시작으로, 신스팝[35]과 테크노[36], 라틴 계열 월드뮤직[37]을 거쳐 지금은 EDM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전무후무한 뮤지션

윤상은 주변의 동료 뮤지션들에게 "완벽주의자"로 각인되어 있다. 이는 윤상이 발표한 정규 앨범이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윤종신과 비교해 본다면(윤종신과 윤상 둘 다 가수로서는 1990년에 데뷔) 윤종신은 대략 15집+월간 윤종신 프로젝트까지 많지만, 윤상은 정규 앨범을 24년 간 단 6번 냈다. 물론 15장의 정규 앨범과 월간 윤종신까지 다양한 곡들을, 그것도 대중들의 반응을 꾸준히 이끌어낼 수 있는 퀄리티로 생각해 내고 만들어 내는 윤종신도 역시 본좌다. 사실 원미연 등 몇몇 가수들의 말에 의하면, 윤종신도 음악작업 때에는 윤상 뺨치게 굉장히 깐깐하다고 한다.[38]

그를 설명할 때 자주 나오는 말들이 뮤지션들의 뮤지션, 반음계의 왕자님, 살아있는 신디사이저(심지어 야마하 코리아 엔도서다)와 디지털 사운드 활용 매뉴얼. 변진섭의 "희망사항"을 작곡한 피아니스트 겸 가수 노영심도 윤상의 완벽주의에 혀를 내두를 정도. 노영심의 말에 의하면, 완성도에 정말 집착한다고 한다.

대중적 인기보다 뮤지션들 사이에서 인기가 더 높은 편이다. 들으면 “어 윤상 꺼지?” 하고 알 수 있는 본인의 작곡 특징과 감성을 고스란히 유지하며 웬만한 엔지니어 쌈싸먹을 정도로 음향이나 기술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기 때문.

대부분의 히트 음악가들은 정점을 찍고는 대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모습들을 보인다. 적당히 베스트 앨범 좀 내 주고, 적당히 예전 히트곡 모아서 라이브 뛰고 가끔 방송 좀 나오고 하는 일이 많은데, 윤상이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그 태도때문이기도 하다. 아직도 현역으로 본인 작품은 물론이고 수많은 아이돌 가수 작업들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음악에 관해서는 꼰대질이 없다. 자기보다 한참 어린 전자음악가들과 끊임없이 교류는 물론 작업도 같이 해 나가고 있다. 음악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장르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닥치는대로 듣고 받아들인다. 실제로 2pac, Jay-Z, 제드, 데이비드 게타 등 요즘 시류의 음악들도 빠삭하게 알고 있으며 듣도보도 못한 남미, 유럽, 히말라야 월드뮤직까지 챙겨듣는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냥 윤상 이름값으로 적당히 먹고 살아도 되는 타이밍에 다 때려치우고 유학을 가는 결단을 내렸다.

3.1. 작법

대부분의 경우, 음악가들은 멜로디나 주 진행 코드를 잡은 후 편곡 작업을 진행한다. 걔중에는 이 작업을 분업화해서 아예 리듬섹션 현악섹션 편곡 등은 세션이나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리는 경우도 흔한데, 윤상은 이 작업을 거의 반대로 진행한다. 일단 전체적인 사운드 (주 멜로디의 반주)를 잡고, 그 뒤에 어울릴만한 주 멜로디를 작곡해 올리는 식이다. 물론 통기타나 피아노로 기본 멜로디를 잡고 만드는 보통의 방식을 사용할 때도 있다. 참 쉽죠?

말은 쉽지만, 윤상이 이렇게 사운드를 만드는 수준은 그냥 여기에 현악을 넣고~ 여기에 베이스를 이렇게 치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기, 음향, 주파수 조절, 시간차, 서라운드, 각종 이펙트 등을 고려해 장인/엔지니어에 가까운 집요함을 보인다. 사운드 소스부터 자가제작해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냥 스테레오로 틀어 놓으면 편안하고 여백이 많은 발라드풍 가요로 들리지만, 헤드폰이나 좋은 음향장비로 들으면 '뭐 이런 미친 곡이 있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나온다. 신디/미디/이펙트로 할 수 있는 소리를 전부 뽑아내 곡 전체에 1000피스 퍼즐처럼 꽉꽉 채워 놓았다. 예를 들어 윤상의 “악몽” 같은 경우, 스테레오로 듣다가 헤드폰으로 들으면 가히 신세계를 느낄 수 있다!!!

유희열이 라디오 천국에서 앨범 insensible을 추천하며 붙인 설명. 2분 50초부터 곡과 함께 설명을 해 주는데 윤상의 장인정신을 알 수 있다. 이걸 알아내겠다고 1년동안 붙든 유희열도 대단하다. 별 생각 없이 들으면 윤상 맨날 똑같은거네...하는 생각이 들지만, 한번 제대로 들어보면 그런 걸로 까기 미안할 정도로 엄청나게 공이 많이 들어간 빈틈없는 사운드다.

빌딩 건축을 음악 작업이라고 할 때, 보통 빌딩 하나를 만드는 데 설계, 자재조달, 인테리어, 전기배선, 시공 등이 전부 분업화되어 각기 다른 사람들이 진행한다. 그런데 윤상은 설계 자재조달 시공 인테리어 전기배선 죄다 혼자서 처음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해서 빌딩을 짓는 셈. 사운드나 곡의 구조에 대해 전체적으로 처음부터 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작법이다.

이런 작법의 예로, 아래 두 곡을 들 수 있다.

윤상 - Tango por Uno

강수지 - 잊으라니

강수지의 “잊으라니”가, tango por uno에 주 멜로디를 만들어 올린 곡이다.

3.2. 사운드

윤상이 어떤 사람이냐면, 연습 때 친 드럼의 하이햇 소리를 녹음해가서 다시 편집해오는 사람이다. 그 만큼 변태다.

- 정재형

윤상 딜레이/윤상 리버브로 불리는 특유의 딜레이와 리버브 이펙트를 사용한 몽환적 사운드와 비트가 전매특허급이다. 딜레이와 리버브는 울림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이걸 다 계산해서 무난하게 들리도록 곡 안에 가공하고 배치하려면 백분의 1초까지 계산해가며…이하 생략. 덕분에 윤상은 다작을 하지 않는 편이며, 앨범 하나 작업하고 나면 건강이 바닥을 친다. 밤낮 바뀌고 신경쓰느라 잠 안 와서 술먹고 자고 간 나빠지고 담배 늘고 스트레스 받고…우울증 치료제와 알코올의존증 증세까지 달고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이후엔 금주 및 치료중이다.

사운드에 대한 집착과 예민함은 무시무시해서, 단순히 더 좋은 음질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에 유행하는 사운드에 맞추기 위해서 전집 기념앨범도 리마스터링 했다. 실제로 많은 뮤지션들이 엔지니어나 믹싱 관련 윤상의 조언을 많이 구하는 편이다. 이렇게 사운드에 예민해서 세션보다는 자신이 완벽하게 컨트롤이 가능한 프로그래밍에 많이 무게를 두는 편이다. 유희열은 '윤상 음악은 일단 드럼에서 끝난다. 대체 어떻게 이런 소리를 프로그래밍했는지 모르겠다' 라고 감탄할 정도. 세션들을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게 믿고 세션에 심지어 곡의 주요 편곡방향을 맡겨버리는 요즈음의 작곡가들과는 달리 완벽하게 곡의 모든 부분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집요하게 밀고 나가는 윤상의 곡들은 훨씬 더 섬세하고 철저한 구상을 느낄 수 있다. 노래가 아닌 연주부분을 들어보면 이런 부분이 더 잘 드러난다. 본인도 그래서 앨범에 인스트루멘털 버전을 같이 넣는 경우가 많고, 본인 작품이나 남의 음악을 추천할때도 주 멜로디보다 반주를 잘 들어줬으면 한다는 코멘트가 많다.

라디오천국에서 밝힌 윤상 본인과 유희열의 작곡차이는 일단 윤상은 일이 자신의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피가 마르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당시 성시경에게 곡을 주기로 되어있었는데 이게 또 흥행이 안되면 어쩌나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고백하기도... 반면 유희열은 타인의 스타일을 배우고 잘 흡수하는 능력이 강하다고 한다. 본인의 색이 없는 것도 색이 될수있다고 조언을 해줌.

NYU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프로젝트로 만들었던 Play with Me에서는 3분 남짓한 시간동안아기 옹알이 몇 개와 장난감 소리를 다양한 이펙트를 먹여 가공하고 배치했다. 여기 나오는 실로폰 소리는 당시 자택 근처 아이들 놀이터에 있던 실로폰 소리를 윤상이 이웃집에 민폐 끼칠까 소심해하며 새벽에 녹음기 들고 나가 직접 소스를 따 온 것이다. 곡은 3분이지만 옹알이를 이렇게 다양하게 가공하려면 엉덩이 부을 정도로 며칠 밤낮을 컴 앞에 앉아 있었을 거다.

3.3. 멜로디

이렇게 엔지니어스러운 접근을 하면 감성적인 부분이 모자라는게 일반적이지만 윤상은 상당한 멜로디 메이커이기도 하다. 게다가 주로 사용하는 멜로디가 죄다 남들은 까다로워서 기피하는 마이너 코드. 덕분에 사운드나 기술 같은거 몰라도 조금만 들으면 윤상 작곡임이 티가 팍팍난다. 그런데 멜로디가 최근 유행하는 곡들처럼 기승전결이 뚜렷하거나 드라마틱한 멜로디가 아닌 지라, 아이돌 가요로서는 크게 히트한 곡이 많지 않다. 덕분에 잘 모르는 사람들은 윤상은 맨날 똑같은거 한다는 오해도 한다.

3.4. 보컬

성량이 풍부하거나 감정적인 보컬은 아니지만, 본인의 목소리를 어떻게 잘 살리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특히 완급 조절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나지막하고 담백해서 쉬운 것같지만, 막상 부르면 원곡 같지가 않다. 단적으로 뮤지션 신해철 왈, "윤상은 노래 잘 하는데 자기가 그걸 모른다."

4. 트리비아

  • 1990년대 초반에는 오빠부대 아이돌이었지만 의외로 스캔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유인즉슨 학생 시절 좋아했던 여자애가 받았던 선물을 고스란히 돌려주면서 “난 공부 잘하는 애가 좋지 기타 잘 치는 애는 별로야” 라고 해서, 차였다는 것 보다 나름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음악가를 꿈꿨는데 그게 폄하된 것에 충격을 받아 여자에게 거의 맘 닫고 살았다 카더라…라는 건 본인 얘기고, 그 외모에 연애를 안 했을 리가 있나. 신해철은 윤상의 호스트스테이션이라는 드립을 쳤으며 윤종신은 “윤상이 초식남? 유희열과 더불어 초육식남이다” 라고 폭로.
  • 1998년 발매된 “언제나 그랬듯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7살 연하 탤런트 심혜진씨와 2002년 결혼,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이 심혜진씨는 프란체스카에 출연한 1966년생 배우 심혜진 씨가 아니라, 1975년생의 동명이인 탤런트. 결혼 이후 연예계 활동은 접었다. 뮤비 촬영하며 배우와 가수로 처음 만났는데 둘이 보자마자 얼마 안 돼서 필이 꽃혔다. 당시 소속사 사장이었던 이승환이 뮤비 촬영 기간 내내 회식을 주도했다고. 그 과정에서 "앨범 나오면 어디로 보내드림 돼요?" 로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부인도 싫지 않았는지 윤상 자동차가 고장 났을 때 태워다 주고 그랬다고 한다. 본인 직업이나 유학시 고생한 것 때문에 늘 부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한때 김현철, 윤종신, 이현우와 함께 노총각 4인방으로 유명했는데 제일 먼저 클럽을 탈퇴했다! 이어 김현철, 윤종신, 이현우 순.
부인인 심혜진씨는 미인이다.
  • 원피스를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본인이 짰던 작곡팀의 이름이 원피스기도 하다. 당시 이 말을 들었던 원피스라는 말을 들었던 감성변태는 이 원피스를 생각했다. tvN 집밥 백선생에서 숙제로 집에서 요리를 하게 되었는데 주방 수납장에는 밀짚모자 해적단 마크가 있고 거실에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깃발이 걸려 있다. 그리고 그의 베이스에 밀짚모자 해적단의 해골 마크가 붙어있다.↓
손으로 가려져서 잘 안 보인다. 보고 싶다면 이 링크로. 그 외에도 2015 영동고속도로 가요제를 준비하면서 공개된 작업실 일부에 몽키 D. 루피 피규어, 퍼스트 건담의 건담헤드 등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 무한도전에서 비판을 받으면 희열을 느낀다며 심지어는 더 거칠게 다뤄달라고도 했다.
  • 윤상의 작곡 팀 원피스가 2015년 11월 25일 정오에 첫 싱글을 발표한다! 장르는 EDM이며,제목은 Let's Get It.피쳐링 가수가 그 도끼다!
  • 입맛이 초딩 입맛이다. 떡볶이를 좋아한다. 수요미식회 떡볶이편에 나오기도 했다.
  • 2018년 대한민국 예술단의 평양 공연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실무접촉에서 수석 대표를 맡았다. 남북 접촉에서 대중음악인이 수석 대표를 맡은 것은 사상 최초의 일이다. 윤상이 중심이 되어서 대중음악 위주로 평양 공연을 준비하기 위한 걸로 보인다. 이 때 방자경 나라사랑바른학부모실천모임[39] 대표가 트위터 계정으로 윤상의 성을 윤씨로 알고 종북몰이[40]를 하려다가 오히려 작곡가인 김형석에게 망신을 당했다. # 참고로 윤상의 성은 제일 위의 표에 적혀 있듯, 이씨다.
  • 예명으로 '윤상'을 택한 이유는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마침 윤상은 피해자 이윤상과 나이도 비슷했기에 더욱 이름을 피할 이유가 있던 것.

5. 인물/인간관계

살짝 노안으로 분류되는 편인데 하필이면 동갑내기가 故 신해철, 김정민이 있고, 2세 위인 이현우에게 형이라 하는 걸 보면 어색하다. 옆에 강수지(1967년생), 이승환(1965년생), 이선희(1964년생)나 김장훈(1963년생)[41]이 있다면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신승훈은 프로필상 윤상과 동갑으로 나오지만 실제 나이는 2세 위인, 백선생과 동갑내기인 1966년생이다. 이렇게 동년배 가수들이 너무 동안이라 가려져서 그렇지, 사실 윤상도 50대의 얼굴로 보기 어려운 동안이다.

윤상과 이현우, 윤종신, 김현철은 한때 연예계 대표 노총각 4인방으로 유명했었다. 연예인 중에서 대표 노총각을 꼽으면 항상 저 네명이 세트로 따라다녔을 정도. 지금은 네명 모두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유부남이 되었다.

성격은 대체로 소심 만렙. 본인의 작업 스타일에 걸맞게 사소한 것에 신경질을 잘 부리는듯하다. 왕년엔 조수석이나 뒷좌석에서 앞차 옆차 운전을 열을 올리며 욕했다고 한다. 정작 운전자는 가만히 있는데. 심지어 부인과 연애 중 기사가 터지자 패기돋게 장인 장모 인사를 가기는 커녕 "어...어떡하지;;" 하다가 1년이 흘러 빡친 부인이 미국으로 가 버린 적도 있다 물론 이후엔 나이도 먹고 가정도 있어서 많이 줄어든 편이라고 한다. 이런 소심함 덕에 1박 2일에서 귀여움 터지는 아저씨를 보여주었다. 조근조근 단호박 돋게 할 말 다 하는 타입. "내가 다시는 너랑 '테레비' 안한다"

같이 있으면 아빠와 아들을 연상케 하는 성시경이 라디오에서 술 마시면 아무나 붙잡고 뽀뽀를 해댄다며 폭로. 심현보에 따르면 근래 윤상이 건강이 안 좋아 보인다고 하자 김현철은 "그 친구는 1991년 이래로 건강한 적이 없었어"라고 했다고 한다.

혼자 집에서 음주하는 일이 많아 정원영, 유희열 등이 독거노인 운운하며 놀렸다.

윤종신유희열, 정재형, 김동률 등 섬세한 예술가 타입 오빠부대 뮤지션의 프로토 타입이라고 평했다. 정재형은 윤상 짭퉁이라고…. 농담이지만 윤상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다. 1박 2일에선 발라드의 조상님, 권영길 의원이라며 놀렸다. "그러니까 노태우 대통령때. 문민정부 전이죠!"

옥상달빛의 김윤주는 소문난 윤상 빠. 메이비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윤상이 출연하자 결혼하고 싶었다며 빠 인증.

캐스커이준오는 소문난 윤상 빠. 아이돌 관련 사이트인 아이돌로지에 이준오가 추천하는 아이돌 음악 편이 게시되었는데, 레인보우 블랙의 Cha Cha를 추천한 이유에 "윤상이십니다"라고 적었다. 근데 또 이 곡에 대해서 윤상 본인은 자기가 생각했던 의도와 크게 다른 결과물이 나와서 놀랐다고 한다. 원래는 시크하고 도시적인 발랄한 곡을 만들려고 했고, 보컬 디렉팅도 그렇게 했는데 음원이 나오고 뮤비가 공개되자 영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음악도시에서는 성시경과 이준오가 윤상 무한 찬양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성시경은 윤상이 기침도 멋있게 한다고 찬양하기도 했다.

특히 유희열과 각별한 사이인데, 유희열은 ‘데뷔하고 유명해지면 윤상하고 친해지는 게 꿈이었다’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윤상 오덕’ '윤상은 예전 노래, 외모 다 안 촌스럽다' '내가 여자였으면 윤상하고 사귀었을 거다' '윤상은 진짜 멋있다' 등의 발언을 했고, 한때 자기 음악색이 모호한 것 같아 고민하던 때 윤상이 “색이 없는것도 네 색이야” 란 말에 용기백배했다고한다. 유희열은 윤상의 보컬을 매우 좋아해 토이 앨범에도 객원보컬로 자주 기용한다. 뿐만 아니라 그 역시 라디오 프로에도 자주 초대했다. 스케치북에서는 윤상과 함께 사랑하오를 부르며 꽃다발을 바치고 무릎베게를 하고…. 이하 생략.

한때 윤상 공홈에 이런 그림을 그려서 준 적이 있다.

하라는 방송은 안 하고 윤상 보컬 덕질하는 유희열, 김동률, 이상순.

015B정석원우리 시대의 음악인들 중 윤상에게 영향을 안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석원과 윤상은 같은 1968년생. 윤상 - 5월 11일생, 정석원 - 12월 23일생이다.

이승환은 윤상의 보컬에 대해서 느낌과 감정을 살리는 면에서는 윤상이 최고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윤상은 이승환의 대표곡들 중 하나인 당부의 편곡과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두 사람이 함께 이소은을 가요계에 데뷔시키는 것에 공을 세우기도 했다.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에 '날 위로하려거든'으로 올해의 노래,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 등 2개 부문에 수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를 수상하였다! 후일 무한도전에서도 정준하에게 이 상을 보여주며 '흔히 날 발라드 전문 작곡가로만 알고 있는데 이런 성과도 거뒀다'고 자랑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음을 강조한 것으로 봐서 굉장히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본인이 최초로 프로듀싱한 아이돌 걸그룹 프로듀싱 팀인 러블리즈에 대한 애정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반 TV 출연과 러블리즈의 모든 앨범에 프로듀싱을 맡고 있으며 멤버들의 개개인의 별명과 취향까지 잘 알정도로 친밀해졌고, 러블리즈 멤버들 또한 항상 윤상에 대한 고마움과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 하고 있다. 또한 2016년 5월 15일 SBS 인기가요 스승의 날 특집에서 MC들의 가장 러블리즈의 가장 기억에 남는 스승으로 윤상이란 대답으로 각별함을 보여줬다.[42]

6. 음반

6.1. 참여 OST


  1. [1] 현재의 은평구 지역. 출생 당시는 서대문구. 은평구서대문구에서 분구된 것은 1979년이다.
  2. [2] 1975년생 배우. 1994년 H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고, 2002년 윤상과 결혼했다. 1967년생 배우 심혜진과는 동명이인.
  3. [3] 가수 탁재훈과 동창이다. 하지만 학교 다닐 적에는 서로 몰랐다고 한다.
  4. [4] 1박2일에서 언급
  5. [5] 이례적으로 아이돌 걸그룹의 전 앨범을 프로듀싱한 경우로는 러블리즈가 유일하다.
  6. [6] 박경림이 라디오에 나온 러블리즈 멤버에게 윤상이 어떤 존재냐고 물으면서, 오빠냐 아저씨냐 라고 물었더니 '아빠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7. [7] 윤상이 굉장히 날카롭고 이지적인 인상인데다가 실제로 성격도 그렇지만 러블리즈와 함께 있으면 얼빠져서 헤헤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8. [8] 멤버로는 '날 위로하려거든'의 드럼 프로그래밍에 참여한 스페이스 카우보이와 드라마 신사의 품격 OST 'Smile'를 프로듀싱하고 윤상의 'The Duet' 앨범에 참여한 다빈크가 있다.
  9. [9] 이름의 유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인기 일본산 해적 만화다.
  10. [10] 2018년 3월 20일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을 위한 실무접촉 수석대표(판문점 북측 통일각) # 그리고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11. [11] 위키백과에서는 활동 시작 시점을 1983년으로 보고 있다.
  12. [12] 당시 봄여름가을겨울의 베이스 장기호와 키보드 박성식이 팀을 탈퇴하고 사랑과 평화에 영입이 되면서 베이시스트 자리가 공석이었다. 집안에서 장남인 장기호와 박성식은 당장의 생활비가 필요했던지라 사랑과 평화에서의 제의를 뿌리칠 수 없었다고. 참고로 이 두 분은 훗날 퓨전재즈 밴드 빛과 소금을 결성한다.
  13. [13] 당시 김완선이 집으로 초대해 식사로 크게 한상을 차려주어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14. [14] 참고로 그 이전에 윤상은 작사도 해왔지만 박창학의 가사를 읽어보곤 거의 무조건적으로 맡기게 되었다고한다. 그렇다고 전부를 하는건 아닌데 99%는 박창학의 가사라 생각해도 좋다 특히 자신의 정규앨범은 거의 모든곡이 그의 가사.
  15. [15] 사고 싶었던 신디사이저가 당시 800만 원이었는데, 앨범 당 3000만 원의 계약금을 제시했다고 한다.
  16. [16] 지금의 윤상이라면 상상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일밤에 출연해 이에 김을 끼운다던지 쌍코피 분장을 하고 헤헤 웃는 등 개콘에서나 볼 수 있는 몸개그를 보이기도 했다.
  17. [17] 하지만 이후 윤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예능에 발을 잠시 담그게되는데 그 이유는 의외로 본인의 의사가 강했었다. 잔잔한 이미지를 탈피해 나도 좀 웃긴다라는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당시 시트콤이라던지 한 토크쇼에도 고정적으로 출연하는등 지금이나 그때나 믿기지않는 모습. 본인은 흑역사로 생각하는듯하다. 이후 윤종신이 본격적으로 예능을 하는걸보고 좀 안쓰러웠다는데 현잰 음악이나 예능계에나 거물이 되어서... 참고로 윤종신은 윤상과 달리 원래부터 예능을 하고싶었던 사람이었다. 유희열에겐 내가 그러는걸 봐서 니가 손안대고 코푼거다 라고 말했었는데 유희열은 그이전에 뮤직비디오나 라디오에서 충분히 망가져왔었고 윤종신처럼은 아니지만 예능계에 나름 안착한셈이다.
  18. [18] 둘다 명반인데 파트1집은 대중적인 면이 강했고 파트2는 실험적인 면모가 강했기때문. 사실 실험적이라면 1집부터도 마찬가지지만 유달리 2집의 Part2는 그런면이 강했다. 그리고 그런 본격적인 행보는 줄곧 계속되었다.
  19. [19] 3집 Cliche 앨범이서 신스베이스는 전부 이 악기로 했을 정도. 본인의 책인 '나를 기억하고 있는 너에게'에서도 마지막 후기에 따로 자세히 언급했다.
  20. [20] 여담으로 윤상이 군대에서 전역한 뒤 야심차게 프로듀스한 알로라는 혼성 그룹이 있는데 이것 또한 망했다. 유희열은 이 앨범과 프로젝트에 관해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것이라 말하기도. 후에 알로의 타이틀곡인 잠자는 숲속의 왕자는 아이유가 리메이크했고 앨범수록곡 중 하나인 랄랄라는 소녀시대가 윤상의 송북 앨범에 참여했을 때 리메이크되었다.
  21. [21] 윤종신은 보통 결혼하면 찌는데 왜 이렇게 마른건지 모르겠다 말했었는데 당시 유희열의 말에 따르면 학업과함께 일도 병행했어야 했으니 몸이 남아나질않는게 당연했다고.
  22. [22] DMB라디오를 한다고했을때 봄여름가을겨울, 유희열을 비롯한 선후배동료모두 희한해했다고한다. 저런거 할 사람이 아닌데 해서 사람이 달라졌나 생각이들었다고.
  23. [23] Last Fantasy 앨범의 Thanks to에 보면 상아빠라고 부르는 게 나온다.
  24. [24] 러블리즈가 들어오자 "인사성이 참 바른 아이들"이라고 칭찬부터 하기도.
  25. [25] 음악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Ah-Choo'는 러블리즈에게는 역대급 음원 성적을 가져다 주었고, 윤상 본인에게 있어서도 근래들어 가장 뛰어난 음원 성적을 거둔 곡이다.
  26. [26] 직접 사회를 맡아 쇼케이스를 진행하였다.
  27. [27] 데뷔 앨범부터 함께 준비해서 연습생 시절부터 알고 지내왔으며 러블리즈 멤버들의 별명을 모두 알 정도로 애정이 많고 방송에서 언급을 자주할 정도로 친분이 깊어졌다.
  28. [28] 현재의 아이돌 음악과는 다르게 마이너한 감성이지만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러블리즈란 아티스트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이상을 표현할 것으로 쇼케이스 초청 기자들 앞에서 포부를 밝혔다. 뒤이어 러블리즈를 (파트너를 넘어) 자신의 신스팝을 구현해줄 최적의 오브젝트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29. [29] 여기서도 직접 쇼케이스의 사회를 맡음으로서 변함없는 관계 인증.
  30. [30] 아이유의 나만 몰랐던 이야기 이후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31. [31] 하드함 그 이상의 녹음 과정 안에서 힘들어하거나 귀찮아할때면 딱 한 마디로 정리했다고 한다. "지금 녹음하는 이 노래 평생 니 이름 적힐 니 노래야."
  32. [32] 대중음악 및 크로스오버 계열에서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윤상답게 가창력의 측면이든 무대 구성의 측면이든 원곡에 대한 이해와 그 해석의 참신성을 매우 중시한다고 볼 수 있겠다.
  33. [33] 시간이 흐른 2015년 허핑턴포스트 인터뷰에선 결혼 이전엔 거의 운명과 같은 것이었는데, 가정을 꾸린 후에는 자신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숙제같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34. [34] 강수지, 김민우, 그리고 윤상의 초기 음악들
  35. [35] 윤상의 시그니쳐 장르. 초기 음악에서도 신스팝 계열의 음악을 했다.
  36. [36] 대표적으로 노땐스
  37. [37] 3집, 그리고 최근 음악엔 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이 탱고 음악을 접목시켰다.
  38. [38] 요즘 세대에서는 윤종신이 예능인으로 많이 각인되어 있어서 웃기는 사람 정도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씩 음악예능에서의 모습만 보아도 눈빛이 완전히 변하는 윤종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쪽도 윤상 못지않은 독종이라서...
  39. [39] 극우 친박 성향의 단체다.
  40. [40] 이때 언급된 인물이 윤이상, 윤상원, 윤기권이다.
  41. [41] 이승환이 형으로 부름. 프로필엔 1967년이지만 1963년생으로 추정된다.
  42. [42] 기사제목발췌: '인기가요' 러블리즈 케이·미주 "윤상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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