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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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화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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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대상 대상

하희라
(1993)

이덕화
(1994)

나문희
(1995)


연기대상 대상

김수미
(1986)

이덕화
(1987)

김혜자
(1988)


역대

남우주연상

제26회
(1987년)

제27회
(1989년)

제28회
(1990년)

이영하
(우리 지금 제네바로 간다)

이덕화
(추억의 이름으로)

신성일
(코리안 커넥션)

제29회
(1991년)

제30회
(1992년)

제31회
(1993년)

이영하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덕화
(개벽)

이덕화
(살어리랏다)

제30회
(1992년)

제31회
(1993년)

제32회
(1994년)

이덕화
(개벽)

이덕화
(살어리랏다)

안성기, 박중훈
(투캅스)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신성일
(1987)

이덕화
(1988)

안성기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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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덕화(李德華)

출생

1952년 5월 8일(66살)
서울특별시 성북구

본관

연안 이씨

신체

174cm, 65kg, B형

학력

서울동신초등학교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
경희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1]

데뷔

1973년 1972년[2] TBC 13기 공채 탤런트

가족

아버지: 이예춘, 배우자: 김보옥[3][4], 딸: 이지현

소속

디에이와이엔터테인먼트

취미

낚시, 골프 , 축구

종교

불교

SNS

인스타그램

1. 소개
2. 오토바이 교통사고
3. 탈모
4. 정치 활동
5. 예능 MC 이덕화
6. 여담
7. 출연작
7.3. 예능
7.4. 진행자
7.5. CF
8. 수상 경력
9. 선거 이력

1. 소개

부탁~해요![5]

대한민국에서 독보적인 원로배우이자 한국 드라마 최고의 신스틸러[6]

대한민국배우. 1952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으며 선대 영화배우 이예춘의 아들이기도 하다.[7] 자녀로 배우 이지현(1984년생, 팬텀엔터테인먼트 소속)이 있다.

현재는 주로 높으신 분들을 맡는데 군 장성, 재벌 총수, 기업 CEO, 대기업 오너, 국가정보원장, 국회의원, 대통령 등을 맡는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3학년 시절 비교적 어린 나이로 동양방송 13기 공채에 합격해 연기계에 입문했으며 야성적인 이미지로 큰 인기를 모은 하이틴 스타였다. <진짜 진짜 잊지마> 등 "진짜 진짜" 시리즈에서 임예진과 콤비로 찍은 작품은 장안의 화제였다. 물론 24살의 나이에 고등학생으로 나왔으며 당시 20대는 여느 개발도상국의 20대가 그렇듯이 지금 20대보다 노안이라 좀 괴리가 있다.

그 당시 임예진은 명실상부한 국민 여동생이었고, 상대역은 당연히 이덕화 아니면 전영록이었다. 영화 <진짜 진짜 미안해>, <진짜 진짜 잊지마>, <이런 마음 처음이야>, <이 다음에 우리는>, <첫 눈이 내릴 때>, <맨발의 청춘(1979)>, 드라마 <사랑과 진실>, <사랑과 야망> 등을 이덕화와 함께 찍었다. 전영록과는 <너무 너무 좋은 거야> 등을 함께 했는데 작품의 숫자로만 봐도 이덕화와 함께 한 작품이 많다. 참고로, 제목이 비슷한, <진짜 진짜 좋아해>는 이덕화, 전영록이 아닌 김현이란 이름의 남자배우와 함께 한 작품.

악역 연기가 독보적이다. 1980년대~1990년대 초반에는 악역을 전담하던 시절까지 있었다. 특히 사랑의 종말의 남현필 회장은 인간이 어디까지 막 나갈 수 있는지를 똑똑히 알려준 배역이다[8]. 이덕화는 여기서 전무후무한 최강의 악역을 시전했다. 악역 전문 배우 지망생들에게는 사랑의 종말이 최고의 추천작이다. 그리고 제5공화국흑화되는 육군 장성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했다. 외모는 박용식이 갑이지만 행동은 이덕화가 갑이라는 얘기까지 있다. 악역이라면 이 사람이 사람이 그나마 맥을 이어가지만, 카리스마는 아직도 이덕화가 엄청나다.

그러나 이덕화의 커리어 내내 기본은 반항적이고 거칠지만 여성에겐 목숨걸고 사랑할 줄 아는 남성이었다. 청춘스타로서 혹은 주연급 남자배우로서 주로 활약했다

나이가 들면서 부탁해요 나이 지긋한 아버지 역이나 사장님, 회장님, 혹은 조선시대 왕, 역사 유명인물 등으로 많이 출연해서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카리스마 연기를 보여주며 거물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현재는 과거와 달리 웃기면서 카리스마 있는 인물(대조영설인귀), (샐러리맨 초한지진시황)이라든가, 마냥 웃긴 인물(최근 드라마에서 그의 역할)을 맡기도 하면서 희극적인 방향으로 연기 변신을 꾀하고 있다. 물론 괴작 천추태후강감찬이나 근초고왕의 주몽 역처럼 고전적인 카리스마 역할도 여전하다. 근데 나이가 드니까 점점 아버지를 닮아간다.

준수한 외모로 패션 모델, 광고 모델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특히 쌍방울트라이 광고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음악은 요사이나 큰 차이가 없다. 해봐도(Try) 안 생겨요

MC계에서도 대활약했으며 MBC의 <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거의 10년 동안 MC를 본 경력이 있다. 지금으로 치면 장동건유재석을 합쳐놓은 수준의 인물이었다. 당시 킨사이다 광고 #로얄디 # 광고를 보라!(...) 금성 캐논 카메라# 광고에서는 손도 안대고 플래시를 터트린다 오오.

연기에 집중하느라 예능계에선 한동안 볼 기회가 없었지만 2008년부터 다시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 녹슬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덕화가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 출연하면 시청률이 5~7% 정도 오른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3개의 고비가 있었다. 그것은 젊은 나이에 찾아온 탈모와 오토바이로 인한 교통 사고, 총선 출마였다.

일요일이 좋다랑 잘어울리는 관상이다.

2. 오토바이 교통사고

젊은 시절(1977년) 겪은 오토바이 사고의 경우 정말 크게 다쳐서 당시 재기하지 못할 것이란 얘기가 많았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아버지 이예춘이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병세가 급악화되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이덕화로서는 자신의 몸이 불편한 문제 보다도 자신이 사고를 당한 충격 때문에 아버지가 사망한 것이 더 심각한 문제였다[9]. 죽기 직전까지 아들을 생각했다고.. 묵념. 그리고 지체 3급 장애인이 되었다. [10]

사고가 난 오토바이는 가수 겸 배우 전영록의 오토바이 였다고 한다. 전영록의 부친 황해는 아들이 오토바이를 절대로 못 타게 막았고, 이덕화가 빌려 타다가 사고가 난 것이라고.

후에 이덕화는 방송에서 이 당시에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가 3년간 힘들게 자신을 돌봤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기 만나지 말고 다른 사람 만나라고 하는 그를 정말 헌신적으로 돌본 모습에 감동받아 결혼했으며, 자기 재산 전부를 부인 명의로 해놨다고 한다. 가끔 주말에 미끼값만 받아서 낚시하러 가신다.

3. 탈모

탈모 때문에 현재 그의 머리는 가발이다.모발~모발 사고 후유증 때문에 머리가 타버려서 그랬다는 루머도 있으나, 그의 탈모는 사고 이전부터 있었다.[11] 탈모가 시작되고도 한참을 가발을 쓰지 않아서 다들 대머리라는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컴플렉스가 있어서 쉬쉬하지만 전부 다 알고있는(…) 그런 공공연한 비밀이였을 뿐. 그러나 본인이 가발회사 모델이 되어 크게 기사회생에 성공한 이후로는, 대놓고 대머리와 가발을 개그 소재로 쓰고 있다(…).[12] 아예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도 언급이 있는데 가발을 선택하는 메뉴얼에 운도형 가발, 덕화형 가발이 있다.

처음에는 탈모가 와도 가발을 쓰지 않았기에 고뇌하는 장면에서 남들은 고개를 앞으로 숙이는데, 이덕화만 하늘을 쳐다보는 등 탈모를 숨기려 노력했다. 가발을 처음 착용한 때가 1987년 드라마 사랑과 야망인데, 김수현 작가가 그 머리로 어떻게 주인공을 하느냐며 가발을 쓰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 촬영 중에 땅바닥에서 구르는 장면에서 가발이 180도로 돌아가서 다시 같은 장면을 서너번 찍었단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매니저의 가장 큰 업무가 가발을 가지고 다니면서 맞춰주는것이라는데 만에 하나 기자들 앞에서 대머리가 공개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실지로 90년대 교통사고를 당했을때 개인적인 일로 멀리 있던 매니저기자보다 빨리 다가와서 황급히 환자머리에 가발을 씌워주었다 고 한다. 당시 자료 화면에도 침대 위에서 아파하는 이덕화의 머리 부분은 카메라 화면이 잘려있다.

사진의 탈모 상태가 엄청나 보이지만 실제로 사진만큼 벗겨진 것은 아닐 것이고 가발 착용을 위해 뒷머리와 윗머리 상당 부분을 삭발한 걸로 보인다.

2002년 5월 1일 수원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한일 연예인 친선 축구대회에서 헤딩을 선보이다 카메라 앞에서 모자가 벗겨져 실제 머리가 공개 된 이후에는 대머리를 숨기는 컨셉에서 벗어났다. 왠지 모 게임어떤 할배가 떠오른다. 그 후 2005년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주인공 전투왕 일해거사역으로 출연하게 되는데, 이덕화가 가발을 벗고 TV에 나온다!. 물론 사실은 여기서도 부분가발을 썼지만. 연기는 대단했다. 이땐 오히려 대머리라는 점이 장점이 되어 악역으로서의 굉장한 시너지효과를 발휘해서, 전두환 연기는 그야말로 전설로 남았다.

하여간 설운도와 함께 연예계 대머리 투톱인듯. [13]

2012년 연말시상식에는 반백 가발(...)을 쓰고 나왔다. 전두환?

이덕화에게는 가발에 대한 슬픈 에피소드가 있다. 이덕화는 이주일이 살아생전에 이주일과는 나이를 초월해서 거의 절친에 가깝게 지냈는데 이주일이 폐암에 걸렸다. 이주일은 병세가 너무 심각한 수준이라서 그 달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사실을 이주일 본인에게는 알릴 수 없었으나 이덕화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덕화는 이주일이 원하는 대로 가발을 맞춰줬다. 이주일은 이덕화가 맞춰온 가발을 써 보더니 매우 흐뭇해 하면서 "내가 완치되면 이 가발을 쓰고 미국을 다녀온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때 이덕화는 눈물이 핑 돌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2주일 뒤, 이주일은 사망했다. 하지만 1999년 가발회사 '하이모'의 광고를 찍으면서 총선실패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다시 화면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당당한 탈모인으로써 1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하이모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모 방송 촬영 중 축구를 하다 모자가 벗겨졌는데, 이제 나이가 나이다 보니 완전히 대머리가 되었다.

4. 정치 활동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당시 홍보물.

1995년 김진명 원작을 영화로 만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대통령으로 나왔으나 흥행과 평에서 아주 쫄딱 망해서 타격을 받았던 이덕화는 오래가지않아 1996년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경기도 광명시 갑 선거구에 신한국당 후보로 나가 동교동계의 중진인 새정치국민회의 남궁진 후보와 붙어서 근소한 차로 졌다. 당시 남궁진 25,852표, 이덕화 24,405표로 불과 1,447표 차이였다. 그 이전 14대 총선에 구리시에서 출마했었던 이주일가오만 살리고 인기에만 연연하며 돌아다니는 이덕화에게 "너 그러다 진다"며 최대한 불쌍해 보이도록 도 마시지 말고 마른 입술에 다니라고 했는데 안 들었다고(...) 이때 안 그랬으면 정치인 이덕화로 나올 뻔 했을 듯.

가발 CF 이전에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고 워낙에 많은 돈을 부어서 거의 재기불능상태가 되었다.[14] 결국 이 때문에 연기활동 등을 할 수 없었고 결국에는... 무인도에서 3년 동안 혼자 짱박혀 살았다. 그보다 더 먼저 있었던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 따르면 낚시하면서 물고기랑 이야기(...)하고 지냈다고 한다.

아직도 총선 출마는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회고한다고. 은둔 생활 중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몇 주년 특집 프로가 나갔다. MBC에서는 원조 MC인 이덕화를 초정하려고 했는데 무위로 돌아가고 대신에 낚시터에서 걸으면서 시청자들에게 인사하는 동영상으로 대체했다. tvN에서는 실패한 연예인 중 한 명에 꼽혔으며 멘트가 "대선은 연기로만 하면 될 껄 그랬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이덕화가 국회의원으로까지 출마한 이유는 이덕화의 절친의 아버지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김영삼이였기 때문이였다. 김영삼의 장녀 김혜영은 이덕화와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였다. 이덕화 자신은 단지 친구의 아버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던 것이였다고 출마한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김영삼의 대선 후보 TV 광고의 단독 모델이 이덕화였다. 이덕화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덕화에게 친근한 말투로 "너 왜 연락을 안하냐? 연락 좀 하고 살자."라고 말한 바 있다.처음 만났는데?

하지만 연기자가 아닌 모발모발로 재기하고 다시 대선에서 이명박의 공식 지지에 뛰어들지만 공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15] 다만 가장 관적인 영화제라는 충무로국제영화제[16] 집행위원장을 맡은 적은 있으나 영화제가 막장이 되면서 이것도 그에게 별로 안 좋은 기억이 된 듯.

슬하의 1남 1녀 가운데 딸 이지현은 배우로 활동하고 있고 아들은 공무원#이라고 한다. 1995년 당시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맡았고, 현재 이사장이다.

5. 예능 MC 이덕화

취미는 낚시다. 사람말고 물고기 앞서 말했듯이 낙선 뒤에 무인도에 가서 낚시를 하며 지냈다는 이야기로도 알 수 있다. 또한, 낚시 이야기 하나로 1시간 짜리 예능 프로그램을 꽉 채울 수 있는 괴인이다. 게다가 전부 뒤로 자지러질 수준으로 재미있는데 지금까지 한 방송에서 똑같은 소재의 낚시 얘기를 겹쳐서 한 적이 거의 없다!

한 예시로 무릎팍도사(2008년 8월 27일)에 출연했을 때는 방송 분량의 상당량을 그냥 낚시 이야기로 채웠다. 진행자인 강호동과 유세윤, 올밴이 다른 이야기도 넣어서 진행해야 되는데, 낚시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차마 바꾸지도 못하고 당황하였다. 여기에 낚시 이야기에 맞는 장면을 합성하다가 포기했는지 제작진들이 '이젠 어떻게 합성해야 되는지도 모르겠다'라는 자막을 올릴 정도였다. 그리고, 이하늘도 낚시와 대머리를 소재로 하여 접근하자 금방 친해졌다고...

유행어는 그의 리즈시절에 "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MC시절 선보인

"부우~타악~해요~"

특히 이 멘트는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들을 소개하면서 곁들인 최고의 멘트였다. 당시 무대에서 최고의 카리스마로 인기를 얻었던 전영록이나 김완선을 소개하는 순서에서는 이 멘트가 절대로 빠지지 않았다. 아니, 이 멘트가 붙여지지 않으면 인기가수라고 불리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할 정도로 최고의 멘트였다.

그리고 하이모 광고에서 나온[17]

~야~

모발~ 모발~

[18]타악이 키 포인트. "해요~"는 말미에 살짝 붙이듯 하면 된다. 최대한 느끼하고 목소리를 최대한 깔면서 허스키하게 해야한다.[19] 이 느끼하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가 붙어서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쳤을 때도 자신을 돕던 행인이 "어? 이덕화 아니야?"라고 하자 "맞~아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오늘날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사극활동이 가장 적절한 인물이 됐다. 언제부터인가 장군 역할을 자주 맡게 되었다.

1991년에 MC를 은퇴한 이후 2009년 KBS 연기대상의 MC를 맡은데 이어서 2010년 추석, SBS 추석특집으로 '추석특집 스토리쇼 부탁해요'를 했다. 이덕화쇼에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선보였던 마이크 뜯어먹기 같은 것퍼포먼스을 다시 보여주기도 했다. 보조MC들로 신봉선, 아이유, 이홍기, 이수근, 주현미.

2011년 설날에는, 설날특집으로 MBC '아이돌 7080'을 호란과 진행한다고 한다. MBC 쇼프로 MC를 맡는 것은 거의 20년 만에..

2011년 6월 MBC 위대한 탄생 후속으로 정규 프로그램인 댄싱 위드 더 스타의 진행을 맡았다. 파트너는 이소라(모델). MC를 그만둔지 20년이 지났지만, 20년만에 녹화방송이 아닌 생방송 진행을 잘 소화했다.

반응은 극과 극인 듯. 어떤 이는 그의 진행을 반기는 이도 있고, 신선하다는 평이 있지만, 촌스럽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낚시 이야기로 진행을 해본다면 어떨까?

6. 여담

  • 낚시 마니아의 내공은 방송에서도 자주 발휘되는데, 최병서 등 주변인들의 말에 의하면 예능에 출연해서도 낚시 토크로 좌중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내공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경규와 낚시토크 배틀 붙이면 굉장하겠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병서야, 내가 낚시를 하는거냐? 세월을 낚는거다." "지렁아, 한 마리만 물려다오." 2017년 들어서는 이경규와 함께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라는 낚시 예능 프로그램을 하기에 이르렀다.[20]
이 점은 똑같이 대배우인 아버지를 두고 2세대 원로배우로 성공한 일본의 마츠카타 히로키와 매우 비슷하다. 둘 다 중증 낚시광[21]이라 낚시 이야기만으로 자기 분량을 확실히 뽑아내는 입담, 오랜 방송생활에서 체득한 특유의 내공과 카리스마 연기 & 이와 정 반대되는 미칠듯한 예능감과 순발력을 겸비한 점, 호방하면서도 자상하다는 후배들의 평가[22], 사극과 현대극을 막론하고 연기 스타일이나 맡은 역할이 대부분 악당[23] 높으신 분들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접점이 많은 편이다. 워낙 비슷하다보니 한일 양국의 드라마에 정통한 팬들 중에서는 이덕화를 한국의 마츠카타 히로키라 칭하는 이들도 일부 있다. 다만 차이점도 많다. 나이는 이덕화가 10살 더 어리고 2남 중 장남인 마츠카타와 달리 이덕화는 외동이며 마츠카타는 심각한 여성편력으로 평생 세간에서 악평이 자자했지만, 이덕화는 이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 거기다 마츠카타는 자녀 복조차도 최악이어서 매스컴에 수시로 오르내리는 사고뭉치들로 악명이 높은 반면에, 이덕화는 자녀 문제로도 구설수가 없어서 정말 깨끗하다.
  • 위 서술에서 보듯 과거의 예능MC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2000년대 이후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묵직한 예능 존재감을 구사한다. 유재석의 놀러와라든가 김승우의 승승장구 등에 게스트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분명 메인게스트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예 프로그램 후반부가 이덕화 위주로 흘러갈 정도. 신해철과 함께 양대 예능프로그램 해커라고 한다.[24] 방송분을 자세히 보면 토크의 호흡이나 깨알 재연 같은 부분에 연기력 내공이 섞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승우의 승승장구 출연분 1 출연분 2
  • 최수종과는 10살 터울이지만 함께 축구도 하며 자주 어울리고, 목욕탕도 함께 다니는 절친이라고 한다.(물론 최수종이 형님이라고 부르며 예를 갖춘다.) 최수종은 이덕화를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고 하였고, 이덕화 역시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후배하면 가장 떠오르는 게 최수종이라고 할 정도로 친하다. 그만큼 이덕화가 최수종을 챙겨주기도 했고...[25] 하지만 최수종 특유의 하희라를 향한 닭살행위 애정 표현을 가장 못 마땅해한다고 한다[26]. 근데 정작 50년 가까이 이쁜이소리 하시는 본인이 하실 이야기인지...
  • 엄청난 프로정신의 소유자로 짐작된다. 수 많은 그리고 색다른 연기자를 보고 자란 아역 출신 연기자 이민우가 평하길 이덕화, 고두심 선배님들 앞에서는 열심히 한다는 말을 도저히 못하겠다고, 또 물 위를 걷는 여자 크랭크인 전에 커다란 교통사고를 나서 도저히 정상적으로 연기하는게 불가능 상황에서 어떻케든 연기를 해냈고 또 그걸 예능 프로그램에서 희화화 시켜서 애기한다.
  • 부인 김보옥 씨와는 어린시절부터 한 마을에서 함께 자란 사이라서, 마을 어르신들이 "이쁜아" 라고 부른 이후로 자신도 따라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 그렇게 부를 정도로 버릇되어서 아직도 "이쁜아"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때는 이걸두고 당사자인 '이쁜이'의 증언이 없어서 사실인지 미심쩍어 한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2015년 9월 6일에 SBS 일요일이 좋다의 하위 프로그램인 아빠를 부탁해에 이덕화 부녀가 캐스팅되고, 이덕화의 집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된 결과 사실로 밝혀졌다!! 이덕화가 카메라가 돌아가는 중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이쁜이'를 연발..(...) 재미있는건 그렇게 부르니 아내뿐만 아니라 도 반응했다는 것이다. (사실 딸이 반응해야 정상 아닌가요...)[27]
  • 자신이 나온 작품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왕조 오백년 인현왕후에서 철저하게 망가지는 연기를 하든 천추태후같이 시청자들의 평가가 최악이든 간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소중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덕화가 스파이 명월은 쓰레기라는 말을 했다. 아무리 못한 작품이더라도 혼신의 힘을 다해 임하며 촬영만 무사히 끝나면 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신자세를 가졌다. 문제는 스파이 명월은 촬영이 무사히 끝난 작품이 아니다!
  • 호텔킹 제작발표회에서 자신의 연기 인생 40년 중에 한예슬 사건을 최악의 기억이라고 밝혔다. 오죽하면 그 말에 앞서 나는 실패한 작품이 없는데 딱 하나 실패한 작품이 있다면서 거론할 정도이니 말이다. 죽을 때까지 악연 확정.
  • 최진실의 자서전에 의하면 이덕화는 그녀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한다. 단막극 베스트셀러 "시진읍"이라는 작품에 출연할 때 자신이 불에 타서 죽는 장면을 찍을 때의 이야기이다. 불속에 있는 씬을 찍은 후 적당한 신호와 함께 밖으로 탈출했어야 하는데 그날따라 날씨가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조명이 터져서 탈출을 못하고 죽을 뻔했을 때, 그녀를 구해준 것이 상대역이었던 이덕화였다고 한다. 오오오 소화기를 뿌려대면서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와 최진실을 업고 탈출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이덕화가 입고 있던 고급 점퍼와 비싼 가발이 타버렸는데, 이덕화는 그 이후로도 최진실을 만나기만 하면 농담삼아 가발 값, 점퍼 값 물어내라고 했단다(...). 물론 최진실 입장에선 그 은혜를 어찌 점퍼값으로 갚을 수 있겠냐고 자서전에서 회고하였다.
  • 변신 자동차 또봇 15기 이후에 등장하는 '이사팔 이사'라는 캐릭터는 이덕화를 오마주한 캐릭터다. 목소리나 말투나 영락없이 똑닮은데다 떡볶이 외상을 초장기 할부로 끊을 때 '부탁~~해요' 드립을 친 것도 그렇고...(...)
  • 아이돌 마스터 드라마의 프로듀서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그것보다 일본인이 제5공화국을 안다는게 신기하다[28] 반대급부로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되려 한국인이 여자 노부나가를 안다는 걸 신기해한다.
  •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배역이 회자되지만 사회적으로 가장 많이 주목받은 건 대한민국 제5공화국주인공이었는데 사실 이 둘은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여태 두 번 정도 대면 한 적이 있는데 처음엔 실제 5공시절에 청와대로 불려가 생일파티의 MC를 본 적이 있고, 두번째는 2002년 원로 코미디언 이주일이 사망했을 때 빈소에서 봐 30분 가량 대화했다고 한다.
  • 상당한 경력과 인지도를 갖고있는 배우지만 홍콩의 탑스타와 이름이 비슷해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헷갈려 한다.[29]
  • 순풍 산부인과에서 박영규가 맡은 역할은 본래 이덕화에게 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밝히길 이덕화는 이 역할을 거절한 것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했다고...(...)
  •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을 때 밝혀진 것이 그 특유의 굵직한 보이스는 다름아닌 이순재의 보이스 톤을 따라하다가 생긴 거라고 한다. 이순재가 키는 작지만 웅장해보이는 이미지인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보다가 답이 나온 것이 그 특유의 보이스 때문이라는 결론 끝에 그 보이스 톤을 따라하다 보니 자신의 보이스로 자리잡혀 버렸다고...물론 그 때 이순재의 보이스 톤을 따라한다고 해서 이순재에게 혼도 많이 났었다고. 하지만 그 후 이순재가 제일 많이 찾고 사적으로도 자주 만나는 후배가 이덕화가 되었다고.

7. 출연작

굴곡이 좀 있다.

7.1. 영화

  • 1974년 《공포의 이중인간》
  • 1975년 《빨간 구두》
  • 1976년 《청춘을 이야기합시다》
  • 1976년성춘향전》 ... 이몽룡
  • 1976년 《푸른 교실》김응천 감독, 임예진, 이덕화, 전영록 출연
  • 1976년 《7인의 말괄량이》임하 감독, 이덕화, 임예진 출연
  • 1976년 《진짜 진짜 미안해》임예진, 이덕화 출연
  • 1976년 《진짜 진짜 잊지마》임예진, 이덕화 출연
  • 1976년 《너는 달 나는 해》
  • 1976년 《성난 능금》
  • 1976년 《파란 낙엽》
  • 1976년 《이런 마음 처음이야》이형표 감독, 임예진, 이덕화 출연
  • 1977년 《이 다음에 우리는》김응천 감독, 임예진, 이덕화, 진유영 출연
  • 1977년 《첫눈이 내릴 때》 ... 기철 역
사고 공백기
  • 1979년맨발의 청춘 77》
  • 1979년 《내일 또 내일》
  • 1979년 《밤이면 내리는 비》
  • 1979년 《우리는 밤차를 탔읍니다》
  • 1981년 《두 아들 2》
  • 1982년 《대학 얄개》김응천 감독, 이승현, 강주희, 이덕화, 전영록 출연
  • 1984년 《동반자》
  • 1987년 《거리의 악사》
  • 1988년접시꽃 당신》박철수 감독, 이덕화(종환 역), 이보희 출연
  • 1988년 《사랑의 낙서》
  • 1989년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강우석 감독, 이미연, 허석(의리 김보성의 본명), 이덕화 (박길호 역) 출연
  • 1989년 《불의 나라》장길수 감독, 이덕화, 장미희 출연
  • 1989년 《추억의 이름으로》
  • 1990년 《물 위를 걷는 여자》박철수 감독, 이덕화 (재민 역), 강문영, 황신혜 출연
  • 1990년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강우석 감독, 이덕화 (장백수 역), 배종옥 출연
  • 1991년개벽》 임권택 감독, 이덕화 (해월 최시형 역), 이혜영, 김명곤 출연
  • 1992년 《휴일을 찾는 사람들》
  • 1993년살어리랏다》 ...(2013년 까지 이덕화의 영화 주연 마지막 작품)
  • 1994년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 (우정출연)
  • 1994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특별출연)
  • 1995년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특별출연, 대통령 역) 주석, 핵폭탄 부타악해요~
  • 1996년 《큐》 ... 민욱 역
총선 출마에 따른 공백기

7.2. 드라마

7.2.1. MBC

이후 SBS, KBS로 갈아타기도 했고, 공백기간도 길어서 MBC에 돌아온건 10년을 훌쩍 넘기게 된다.

7.2.2. KBS

이후 총선에 따른 공백기

7.2.3. SBS

7.2.4. tvN

7.2.5. JTBC

잘 보면 01~02년 윤원형 이래 03~04년 이의민 - 05년 전두환 - 06~07년 설인귀 - 09년 강감찬 - 10년 전우 사단장자이언트 황태섭 회장 - 11년 마이더스 김태성 - 12년 샐러리맨 초한지 진시황메이퀸 장도현 - 13년 야왕 백창학과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 인조 테크를 밟으며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강감찬이 좀 흑역사라 쳐두자. 특히 2010년 이후부터는 두개 이상 동시에 하고 있다.

그리고, 강감찬민회빈 강씨 항목을 참조하면 기이한 역사 개그를 펼칠 수 있다. 진짜...[36]

7.2.6. 기타

OCN 38사기동대 - 왕회장역(특별출연)

7.3. 예능

7.4. 진행자

7.5. CF

  • 트라이
이덕화의 가장 대표 CF라면 트라이, 그 중에서도 엘레베이터 앞에서 손바닥으로 문을 치는 퍼포먼스는 가히 시대의 유행을 이끌어 냈다.

2017년 드라마 최고의 한방에서까지 본인 배역에 의해 패러디될 정도. 거의 30년 전 일이라 해당 드라마 주 시청자 연령대에서는 알아볼 사람이 없을 듯

  • 로얄디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란 광고카피로 이것도 상당히 유명하다.[37]
  • 킨사이다 - 상단 항목 참조
  • 제일약품 케펜텍
  • 부광 탁스 - 그의 유행어인 '부탁~해요~'를 스 해요~로 써먹었다.
  • 보루네오가구
  • 상아제약(現 GC녹십자) 젠
  • 오리온 오징어땅콩
  • LG전자 싱싱냉장고 육각수
  • OB맥주 OB라거
  • 교원 빨간펜
  • 동국제약 인사돌
  • LG상사 오토보이3
  • AIG 손해보험
  • 하이모

8. 수상 경력

  • 1985년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 1987년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 1987년 MBC 연기대상(사랑과 야망)
  • 1988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
  • 1989년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 1992년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 1992년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 1993년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 1994년 KBS 연기대상(한명회)
  • 2007년 KBS 연기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대조영)
  • 2015년 은관문화훈장 수상 관련기사
  • 2015년 SBS 연기대상 공로상

9. 선거 이력

연도

선거명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락여부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경기 광명 갑)

신한국당

24,405(33.3%)

낙선(2위)


  1. [1] 성우배우장광과는 대학 동기. 이 때 장광과 같이 다른 학교 무용과 여학생들과의 집단 미팅을 주선했다고 한다. 그리고 둘 다 그 놈을 연기해봤다.
  2. [2] 2015년 인터뷰에서 본인이 정정을 요청했다.
  3. [3] 무용가. 배우 김진규부인 김보애의 동생.
  4. [4]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알고 지낸 소꿉친구다. 결혼생활은 30년이지만, 알고 지낸 건 무려 50년이라고 한다.
  5. [5] 80년대 최대의 인기를 누렸던 '쇼 토요 2000'의 MC를 맡으면서 그야말로 최고의 진행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당시 인기가수로 이름을 날리던 '전영록', '김완선'과 같은 스타들을 소개할때 냈던 이 멘트는 그야말로 명MC의 표본을 보여주는 최고의 멘트였다.
  6. [6] 특히 악역이나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캐릭터 연기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악역마저도 얄미움이나 천하의 개쌍놈으로 불릴 성향이 아닌 '내가 저 인간을 어떻게 이길 수 있지?'라고 느끼게 할만한 카리스마있고 위엄이 엿보이는 연기가 특기다. 특히나 제5공화국에서 전두환 연기를 매우 카리스마 있게 소화해서 전두환이 매력적인 악역이 되었고, 중년 남성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7. [7] 참고로 대를 이어 배우로 활동한 사람들은 전영록, 독고영재, 박준규, 허준호, 하정우가 대표적 케이스.
  8. [8] 그리고 이때 이덕화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원미경 역시 최고의 악녀역으로 맹위를 떨쳤다.
  9. [9] 이 당시 최불암 등 MBC 소속 탤런트들이 이덕화가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 이덕화에게 성금을 보내기도 했다
  10. [10] 본인이 장애가 있음에도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식 석상에서 상대 후보였던 김대중과 정주영을 장애인에 빗대 비하했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이로 인해 비판받았지만 본인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11. [11] 80년대 초반에 찍었던 킨사이다 광고들을 보면 이미 탈모증세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12. [12] 힐링캠프에 나온 바에 의하면, 처음에는 가발 CF가 들어온 것은 그가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나서 일이 뚝 끊긴 뒤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꾹꾹 눌러참으면서 거절한 뒤 부인과 상담했으나 부인 왈. 그게 어째서 그래? 그래서 하게 된 CF 덕분에 이후 재기에 성공하였으며, 16년 째 같은 회사 모델을 하고 있다. 참고로 이쯤되니 가발회사에서 이덕화를 반쯤 명예 이사급(...)으로 챙겨준다는 농담이 있다. 실제로 자기가 어떤 배역을 하게 되면 아예 그 회사에서 TF팀을 짜서 그 배역에 어울릴 가발을 만들어 보낸다고. (..)
  13. [13] 이덕화와 호형호제하는 개그맨 최병서는 나중에 그의 조카딸과 결혼했는 데, 신혼여행을 갔다가 수영장에서 누가 아는 척을 했다. 최병서가 누구시냐고 묻자, "나야, 나! 설운도!"라고 대답했다. 그걸 본 새색시가 깔깔 웃으면서 "어머, 우리 아저씨보다 심해!"라고 말했다는...
  14. [14] 지금은 득표율 15% 이상이면 법정선거비용의 전액, 10% 이상이면 반액을 돌려주지만, 이때는 이 환급 제도가 도입되기 전이었다.
  15. [15] 하지만 이때문인지 아들이 이명박 대통령 임기 기간동안 청와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대졸 첫직장이 9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청와대라니...
  16. [16] 이 영화제는 묻혀졌다(...) 관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영화제치곤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만 준다면 된다고?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 바르셀로나 항목에 나오는 바르셀로나 국제영화제를 참조할 것. 그리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도 관이나 정치인이 주도하려다가 말아먹을뻔 한 바 있다.
  17. [17] 광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탈모의 신성(?) 배우 이진우가 가발이 얼마나 좋은지 만지자 (또는 잡아당기는) 그에 반응하면서 친 대사다. 주군의 머리를 만지는 가신
  18. [18] 최대한 짧게 발음한다.
  19. [19] 일부에서는 "부탁해여~"라고도 한다.
  20. [20] 가 만광이라고 한다
  21. [21] 차이점이라면 이덕화는 방파제 인근에서 의자 깔아놓고 하는 부두낚시 쪽이고, 마츠카타는 스스로 보트 타고 먼 바다까지 나가서 첨단장비까지 동원하여 낚는 쪽이다. 실제로 마츠카타는 매년 예능에 나와서 자신의 전년도 기록을 갱신하는 초대형 참치낚시를 즐겨왔고,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는 예능이라면 거의 필수 게스트로 합류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해산물과 낚시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선친 코노에 쥬시로의 영향으로 젊었을 때부터 붕어 낚시를 해 와서 바다 낚시만큼이나 민물 낚시도 좋아했다.
  22. [22] 실제로 마츠카타는 여성편력과 별개로 화끈한 큰형님 스타일에다 씀씀이가 크고 배포가 넓어서 많은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던 선배였다. 이건 이덕화에 대한 후배 연예인들의 평가도 거의 일치한다.
  23. [23] 현대극이라면 둘 다 일치한다. 단, 마츠카타는 시대극에서 주인공을 맡은 적이 워낙 많았다는 차이점이 있다.
  24. [24] 남궁연이 쓴 표현. 물론 신해철을 두고 한 말이지만...
  25. [25] 하희라가 임신했을 때, 지인들을 동원해 월척 붕어를 잡아다 약으로 달여 줬을 정도다.
  26. [26] 하희라가 여주인공으로 나온 MBC 드라마 <까치 며느리>의 연출자였던 정문수 전 MBC 드라마국 제작위원(2005년 별세)은 이덕화의 첫 MBC 드라마 출연작인 <포옹> 담당 연출자였다
  27. [27] 정작 딸은 이름 부르거나 야 이 지지배야라고 부른다고 한다.
  28. [28] 드라마가 일본에서 방영된적이 있다.
  29. [29] 잘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위에 언급된 최수종의 부인 하희라의 부친의 성함 역시 하덕화이다.
  30. [30] 황당하게도 이 장면의 목소리는 최병서의 성대모사가 쓰였다고 한다. 대부분 눈치채는 사람이 없이 자연스러웠다고(...) 그 사연은 최병서 항목에 나온다.
  31. [31] 당시 김수현 각본으로 방송. 가난한 집 두 형제가 처절한 노력끝에 모두 재벌 회장이 된다는 고도성장기를 배경으로 한 성공스토리. 형은 고 남성훈, 동생이 이덕화로 당시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2006년 SBS에서 역시 김수현 각본으로 리메이크. 이때는 이덕화 역할을 이훈이 했는데, 원작에 비해 카리스마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았다.
  32. [32] 40대 초반(당시 만 42세)의 역대 가장 젊은 한명회다. (참고로 계유정난 당시의 한명회는 서른 아홉이었다.)
  33. [33] 음? 할 수 있는데 소서노역의 정애리백제 건국을 다루는 프롤로그에서 함께 출현했다.
  34. [34] 이 작품 이후 한동안 SBS에서 떠나있기도 했다.
  35. [35] KBS 2TV 한명회 이후 총선에 따른 공백기 때문에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던 이덕화의 안방극장 복귀작
  36. [36] 참고로 현재 강감찬 묘는 실전되었는데 그 이유가 18대손 민회빈 강씨가 인조에 의해 죽음을 맞았고 그 형제들도 수난을 당했기 때문에 강빈의 일가들이 멸문지화를 모면하기 위해 성을 바꾸거나 조상의 묘에 성묘도 안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진 것이다.(...) 강감찬 장군이 환생해서 후손도 죽이고 자신의 묘도 잃게 만들었다.
  37. [37] 그리고 이대사는 2017년 7월 13일에 원스토어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벨로나스:전장의 여신의 서황 입수대사로도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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