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쇼크

1. 개요
2. 참사까지의 과정
3. 운명의 12월 16일, 그리고 대참사
4. 경기 이후
5. 대한축구협회의 병크
6. 여담
7. 관련 문서

1. 개요

한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패배로 손꼽히는 경기이자 흑역사[1]

1996년 AFC 아시안컵에서 일어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흑역사로 지금까지 한국이 치른 수많은 경기들 중에서도 역대 최악의 패배 중 하나로 손꼽히는 대참사다.

사실,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한국이 이란을 5-0으로 이긴 적도 있었다. 참고로 이 기록은 이란의 역대 A매치 최다 점수차 패배 기록이다. (1950년 터키와 친선전에서 당한 1-6 패배도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축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란 쇼크는 월드컵 3회 연속 진출에 빛나던 한국 축구에게는 커다란 충공깽을 시전하였고 동시에 다가올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 예고편(?)으로 말들이 많은 경기지만... 훗날 이와 비슷한 참사들을 겪은 것을 감안한다면 이 패배도 20년이나 지난 현재는 어느 정도 잊혀지게 되었다. 물론, 이란인들은 잊지 않는다

2. 참사까지의 과정

1996년, 대한민국 대표팀은 박종환 감독 체제로 AFC 아시안컵이 열리는 아랍 에미리트로 향했다. 당시 선수 명단에는 K리그 3연패를 달성하며 국내 최강팀으로 군림했던 성남 일화의 선수들이 다수 포진했는데 "그라운드의 여우" 신태용과 "적토마" 고정운, 이영진, 박광현, 박남열 등 모두 박종환 감독의 애제자라 할 수있는 선수들이었다. 특히 명단에 든 선수들 상당수는 2년전 열린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스페인, 독일을 상대로 명승부를 벌였던 경험이 있기에 1960년 대회 이후 36년 동안 끊어진 아시안컵 무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컸다. 여기에 노상래, 김도훈 등도 새로 합류하면서 공격진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조 편성도 무난한 편이었다. 중동팀이라는 껄끄러운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아랍 에미리트쿠웨이트는 훨씬 편한 상대였고 최약체로 평가받는 인도네시아까지 포함되면서 한국으로서는 조 1위도 쉬울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당초 예상과는 달리 대표팀은 오히려 부진한 경기력으로 일관하며 8강 진출조차 장담할 수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12월 4일 대회 첫 경기이자 개막전이었던 아랍 에미리트전에서 전반 9분만에 황선홍이 선제골을 터트렸지만 얼마 못가 전반 40분 동점골을 내주면서 1-1 무승부에 그쳤다. 그나마 12월 7일 최약체 인도네시아와의 경기에서는 김도훈황선홍(2골), 고정운의 릴레이 골에 힘입어서 4-2로 대승해 자존심을 세웠지만[2] 이미 2승을 챙긴 아랍 에미리트에 뒤지며 조 2위로 쳐졌고, 결국 운명의 3차전에서 모든걸 걸어야 했던 대표팀은 쿠웨이트와 최종전에 나섰지만...

오히려 한국은 시종일관 무기력한 경기 끝에 0-2 완패를 당한다.[3] 그리고 이 패배의 영향으로 한국과 쿠웨이트는 1승 1무 1패 동률이 됐고, 골득실에서 쿠웨이트가 1점 앞서며 한국은 3위로 내려앉게 된다. 그나마 2000년 대회까지 아시안컵은 12개팀으로 치뤄줬기 때문에 조 3위까지 8강에 진출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 제도가 있었고, 대표팀은 극적으로 말로는 극적이지만 현실은 운빨 8강행 티켓을 따내는데 성공했는데 앞에서 나온 극적이라는 말이 왜 나왔냐에 대해 다소 어리둥절 하겠지만 그 과정을 본다면 어느정도는 이해가 될 것이다.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이라크

3

2

0

1

6

3

+3

6

2

대한민국

3

1

1

1

5

5

0

4

3

시리아[4]

3

1

0

2

3

6

-3

3

당초 대표팀의 8강행은 거의 기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자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조 1,2위 자리를 탈환하지 못한 것은 둘째치고 조 3위 팀들중 상위 2팀까지만 주어지는 와일드카드조차 골득실이 0에 불과했기 때문에 8강 진출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순위표에 나온대로 와일드카드를 놓고 경쟁하던 이라크가 2승 1패, 승점 6, 6득점 3실점 골득실 +3[5]을 기록해 당연히 1순위로 8강 티켓을 가져갔다. 이 때문에 한국은 남은 1장의 티켓을 놓고 시리아, 우즈베키스탄과 경쟁해야 했고, C조 최종전에서 일본과 시리아가 각각 중국, 우즈베키스탄을 잡는 행운에 힘입어 간신히 8강행 막차를 타게 된다.[6][7]

하지만 바로 앞서 열린 월드컵에서 스페인, 독일을 상대로 보여준 경기력과 새로운 선수들로 구성된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무난한 8강행을 이루지 못한 것도 모자라서 와일드카드 경쟁까지 가서야 간신히 진출 한 것을 본다면 차라리 탈락해서 다시 재정비 하는 것이 낫다고 할 정도로 한국의 분위기는 처참했다. 이쯤되면 박종환의 지도력이 얼마나 한계인지를 보여준 듯하다.[8]

그리고 이 모습은 곧 펼쳐지는 충격적인 대참사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는데... 차라리 이때 탈락했으면 좋았을거다.

3. 운명의 12월 16일, 그리고 대참사

경기 하이라이트

아 씨바 할말을 잃었습니다 망했어요

그렇습니다, 우리 대표팀은 망했습니다

차라리 8강에 오르지 못한 게 나았다 싶을 만큼 처참한 결과였습니다.

KBS 성세정 아나운서. (참사 당일 KBS 1TV 스포츠뉴스 오프닝 멘트)

12월 16일, 어렵게 8강에 오른 대표팀은 중동의 강호 이란과 8강전에서 맞붙는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경기 초반부터 이란에게 털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별리그에서 당한 수모를 만회하겠다는듯이 초반부터 의욕적으로 이란을 몰아붙였고, 그 결과 11분만에 김도훈이 선제골을 터트리며 앞서나갔다. 그러자 이란도 31분에 카림 바게리가 동점골을 터트려 반격했고 4분뒤에 신태용이 다시 앞서가는 터트리면서 전반전을 2-1로 앞선채 마쳤다.

그리고 여기까지만 보면 경기력도 좋았고 내용면에서도 이란을 압도하는 보였다.

그러나 후반전이 시작되자 갑자기 경기양상은 이란쪽으로 급격히 기울게 된다. 이란의 맹공 앞에 한국 수비진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51분 알리 다에이의 어시스트를 받은 코다다드 아지지가 동점골을 터뜨리며 참사의 서막을 알린다. 그리고 66분에 알리 다에이가 골키퍼에게서 단번에 연결된 공을 잡아 역전골을 기록, 경기를 뒤집는다.[9] 계속해서 71분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골문 상단으로 강력한 발리슛을 꽂아넣으며 2-4, 83분엔 골키퍼 김병지와의 단독 찬스에서 가볍게 추가골을 득점해 2-5, 그리고 89분 자신이 얻어낸 PK를 직접 차넣으며 기어코 2-6까지 점수차를 벌린다.만루홈런

이렇듯 후반전에 체력방전으로 급속하게 무너진 대표팀은 이란에게 거의 개처럼 끌려다닌채 경기를 해야했고 지켜보던 코칭 스테프들도 박종환 감독도 할말을 잃은채 경기를 지켜봤다. 그리고 경기 결과는 예상대로(?) 2-6이라는 처참한 스코어와 함께 끝났고, 한국 축구는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이 환호하는 이란의 모습과 대비된채 두바이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4. 경기 이후

월드컵도 아니고 고작 아시아 무대에서 졸전 끝에 전례없는 참패를 당하자 국내 언론과 팬들은 일제히 대표팀을 향해 비난의 십자포화를 쏟아냈다. 특히 감독이었던 박종환을 향한 비난은 더욱 거셌으며, 1983년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FIFA U-20 월드컵 전신) 4강 신화와 성남 일화 감독 시절 이룩한 K리그 3연패로 쌓아올린 명성은 이 한 경기로 모두 무너져 내렸고,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자진 사퇴하게 된다.(사실상 경질)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후반전에 미쳐 날뛰었던 이란 선수들을 걸어다니면서 막은 것이 논란이 되어 집중포화 식으로 강도높은 비난을 이어졌고, 특히 전반전까지만 해도 2-1로 앞서다가 후반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다른 팀이라도 된 것 마냥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기 때문에 일각에선 태업 논란까지 일어났고 그만큼 충격이 컸다. 이 당시 범인으로 지목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홍명보였으며 대표팀에서 음주파동까지 일으켰던 사조직 "열하나회"에 가입되어있었던 점은 의혹을 증폭시켰다.

물론, 태업에 대한 진실 여부는 지금으로서도 알 수 없는 상태다. 당시 경기를 뛰었던 선수들과 박종환 감독 모두 여전히 이 논란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어서 사실상 의혹만 있을뿐 물증이 전혀 없는 관계로 아시안컵에서 있었던 태업 논란은 단순한 루머에 불과한 것으로 현재까지는 보여지고 있다. 하지만, 선수들과 잦은 충돌을 부르게 만든 박종환 감독의 지도 방식을 놓고 본다면 논란이 크게 번질 소지를 나타내준 예시가 된 만큼 이 경기가 낳은 태업 논란은 경기가 끝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사실 오래전부터 박종환 감독의 지도방식과 논란은 대회 전부터 말들이 많았었다. 선수들에게 강압적으로 나온 것은 기본이고 못하면 욕설과 폭행까지 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돌며 선수들에게는 그야말대로 최악의 감독으로 부르던 인물이었다. 실제로 1984 LA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을 당시, 대표팀의 핵심 선수들(최순호, 최인영, 이태호, 변병주. 박경훈)이 무단으로 이탈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다른 선수들도 아닌 핵심 선수들이 무단이탈을 감행했다는 사건은 조금씩 83년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4강으로 탄력받은 대한축구협회에게는 커다란 충격을 안겨다주었고 대중들에게도 많은 생각을 가지게 만들면서 박종환 감독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최악으로 만들었다.

물론, 대한축구협회에서는 후속조치로 무단이탈한 선수들에게 국가대표 3년 출전 정지의 중징계를 내렸지만 이미 대중들 사이에서는 박종환은 무식하고 폭력적이고 소통조차 안되는 감독"이라는 인식이 자리잡히게 되었고, 이 이미지는 박종환의 커리어 내내 붙어다니며 그의 감독 생명을 점차 갉아먹게 된다.

또한 이 경기에서 한국의 두 번째 골을 넣었던 신태용은 이후에도 소속팀 성남 일화에서 레전드급 맹활약을 펼치며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팀의 리그 3연패까지 이끌었지만, 1997년 상반기에 몇 차례 평가전에 출전한 것을 끝으로 더 이상은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하게 된다.

한편, 한국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안기고 4강에 오른 이란은 이라크 못지않은 숙적 사우디아라비아에 승부차기 혈투 끝에 패해 3/4위전으로 밀려났고, 여기서 다시 한 번 쿠웨이트를 승부차기 끝에 잡아내서 3위로 대회를 마감하게 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개최국 아랍에미리트를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아시안컵에서 처참한 실패를 겪은 대한축구협회는 1997년 1월 7일, 박종환 감독의 후임으로 차범근을 새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그리고 새로 선임된 차범근 감독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 참가해 보란듯이 대표팀을 8전 6승 1무 1패 승점 19점 19득점 7실점 골득실 +12라는 엄청난 호성적을 내면서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을 조기에 확정지었다. 그리고 이러한 호성적은 그 어느 때보다도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고 이란전 대패는 완전히 묻혀지는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인가 했지만...

이어진 본선에서 멕시코네덜란드한테 각각 1-3, 0-5로 처참하게 깨지면서 도로아미타불이 되었고, 감독 차범근아직 대회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명예 퇴진시키는 병크까지 저질러 전세계의 비웃음을 사게 된다.[10] 결국 프랑스 월드컵의 실패는 아시아 최종예선에서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잠시 묻히나 했던 이란전 대패를 다시 끄집어내는 영향을 주었고 부활해서 승천할 기세 지금까지도 축구팬들의 기억속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로 자리잡게 된다.[11]

물론 18년 뒤에 또 하나의 흑역사가 탄생되면서 잠시 잊혀지게 되긴 했다.

한편, 논란의 중심이 된 박종환 감독은 훗날 다시 한번 성남 FC의 감독직에 올랐다. 성적은 부진의 끝을 달리다가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선수들을 또 폭행했다가 개망신을 당하면서 다시 자진사퇴를 빙자한 불명예 퇴진을 당하게 된다.

5. 대한축구협회의 병크

하지만 태업 논란 외에도 또다른 요인이 있다. 바로 대한축구협회의 어마무시한 병크이다.

그 시발점으로 자리잡은것이 바로 전임 감독에 대한 축구협회의 안일한 자세, 지금이야 전임 감독이 떠나면 후임 감독을 빨리 뽑아 대표팀을 이루게 만들지만 당시에는 대회가 끝나면 감독 임기도 끝난다는 인식이 너무나 강해서 감독직은 오랫동안 공석인 채로 갔었다.[12] 어느정도 였냐면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대표팀을 지휘하였던 김호 감독이 물러난 이후 최초의 외국인 감독인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을 선임하며 새로운 준비에 나서는듯 보였다. 하지만 비쇼베츠 감독이 물러난 1995년 2월 26일 이후 대표팀은 무려 2달동안 대표팀 감독을 임명하지 못했고 2달뒤에 박종환 감독을 다시 불렀지만 역시나 1~2경기 식에 불과한 초단기직이어서 장기적인 자세를 갖추는 것에 문제점을 드러내었다.[13]

실제로 95년 한해동안 대표팀은 박종환을 시작으로 허정무[14], 정병탁, 고재욱을 임명해 초단기 감독직 수행에 나섰고 다시 말하지만 몇년동안 릴레이로 맡은게 아니라 95년 한해에 맡은 감독 들이다 그덕분에 선수들은 완전히 자리잡혀야 하는 전술운영과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한 지경에 이르면서 대표팀은 겉만 대표팀이지 속은 엉성함 그자체인 팀으로 전락한채로 아시안컵에 나서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축구협회는 박종환 감독을 대회가 치뤄지기 10개월전인 2월달에 다시 불러들여 늦게 임명하는 촌극도 모자라 대표팀 소집을 리그가 완전히 다 끝난 후에 소집하여서 대회 준비 기간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물론 유럽처럼 시즌 다 끝나고 소집해서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였지만.. 완전히 초 단기적인 감독들을 뽑아다가 활용하는 모습과 장기적인 플랜은 커녕 대회가 임박하면 바로바로 뽑는 자세를 선보인 상황에서 소집한 것이야 말로 기본적인 자세를 다듬는데에 완전한 실패를 거두었고 동시에 시즌이 끝나자마자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체력 문제에도 소홀함을 드러내면서 진정한 병크의 향연을 보여주었다.[15][16]

이로 인해, 축구협회는 참패 이후 펼쳐진 언론들의 비판 기사에 욕이란 욕은 다 먹었고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17]까지 받았지만 정작 감독을 교체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여론도 이내 조용해지면서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채 유야무야 넘어가게 된다. 만약 여기서 시스템 전체를 뜯어고치는 노력을 했더라면 이 패배는 약이 되었겠지만... 그런것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어진 월드컵에서의 참패는 당연했다고 볼 수 있다.

6. 여담

이란은 이 대승을 자랑스러워하며 한국전에서 이란 관중들이 6-2라고 당당하게 약올리는 걸개를 자주 건다. 이란 기자들도 이런 말을 하다가 한국 기자에게 늬들은 한국에게 0-5로 진 적도 있는데 뭘? 라고 하자 언제 그랬냐고 하다가 1958년 일이라는 대답에 대체 언제적 일이기에 그걸 아직도 들이대느냐? 라고 하다가 그럼 1988년 아시안컵 예선이나 1994 미국 월드컵 예선에서 한국에게 0-3으로 진건? 라는 한국 기자 말에는 잠깐 멍때리다가 그래도 우리가 나중에 1골더 넣었다는 듯 정신승리를 이야기했다. 더불어 이 이야기를 주고받던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에서는 한국이 1-0으로 승리하였다.

이후 한국과 이란은 서로 1~2골차 승패를 주고 받으면서 2011년까지 상대전적 9승 7무 9패로 팽팽한 접전을 이어갔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선 이란이 4승 1무로 압도적인 우위를 가져가면서 상대전적도 9승 8무 13패로 한국이 열세를 보이고 있다. 6경기 모두 1-0으로 끝났지만 한국은 2011년 이후로 이란 전은 1무 4패로 도통 이겨보질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과는 관련이 없으나, 13년 후인 2009년에는 이란 쇼크가 있었던 두바이의 그 경기장인 알 막툼 경기장에서 홈 팀 아랍에미리트에게 2-0으로 승리하여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짓기도 하였다. #

23년 후에 열릴 예정인 2019년 AFC 아시안컵도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다. 개최 경기장 중에는 이란 쇼크가 있던 경기장 역시 포함되어 있다. 만약 이란과 그곳에서 다시 만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18]

7. 관련 문서


  1. [1] 대패를 당한 경기 기준에서는 마르세유의 치욕, 포르투알레그리의 비극과 함께 1순위로 거론되는 경기다.
  2. [2] 사실 대승이라 하기도 뭐한게 먼저 4골을 넣은 상태에서 4-0으로 무난하게 앞서다가 2골을 추격당하며 거둔 진땀승리였다.
  3. [3] 이 때까지만 해도 쿠웨이트는 아시아 무대에서 번번이 한국의 발목을 잡는 팀이었고, 특히 간판 스트라이커 알 후와이디는 한국만 만나면 득점하면서 '한국 킬러'의 명성을 얻는다.
  4. [4] 2위까지 진출권 획득, 3위인 시리아는 탈락.
  5. [5] 이때 이라크는 2년전 일본의 첫 월드컵 진출을 가로 막을 정도로 의외로 무서운 팀이었다. 자세한건 도하의 기적 참고
  6. [6] 여기서 이라크가 2승 1패인데도 어찌서 3위로 밀렸느냐는 의문이 드는데 이라크는 이 대회에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태국과 함께 이른바 죽음의 조에 속한 팀이었고, 3전전패로 승점자판기가 된 태국을 제외한 나머지 3팀이 나란히 2승 1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골득실이 +4였던 것에 비해 이라크는 1골이 모자랐고, 결국 조 3위로 내려앉게 되버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와일드카드를 놓고 막판까지 경쟁하게 되었던 것이다.
  7. [7] 또한, C조에서 3차전을 치르기 전까지 중국과 우즈베키스탄이 각각 1승 1패를 거두고 있었기 때문에 만에 하나 중국과 우즈베키탄이 3차전을 잡을 경우, C조에서는 먼저 2승을 기록했던 일본과 함께 3팀이 모두 2승 1패를 기록하게 되면서 한 팀은 3위로 밀려났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승점이 4점에 불과했던 한국은 자연스럽게 광탈하는 상황이었다.
  8. [8] 그도 그럴것이 지금이야 선수들의 기량을 필두로 다양한 전술 운영과 시스템 확충 등이 나타나는 모습이지만 90년대 당시 한국 축구의 지도자들은 선수들이 체력과 정신력이 뛰어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체력 훈련에 소홀히 하였다. 이 때문에 지역 예선에서 한 수 아래의 팀들을 꺾고 올라온 한국으로서는 상대적으로 개인기량과 체격면에서 월등한 유럽, 남미팀들에게 속절없이 무너지곤 했고 이러한 양상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줄곧 이어진 추세였다. 물론 박종환 감독이야 말로 국내에서도 녹록치 않은 지도력을 뽐내준 것은 인정되지만 세계 축구 흐름과 비교한다면 어렴풋이 비교가 되는 지도력을 보였으니 뭐라 할말이 없다는 점은 어쩔수 없는 사실인 듯 하다.
  9. [9] 이 때 다에이의 슛이 클리어링을 시도하던 홍명보의 다리 사이로 통과된다.
  10. [10] 벨기에전에서는 김평석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았고, 경기 결과는 1-1 무승부로 간신히 전패만 면했다.
  11. [11] 일부 썰에서는 이란인과 축구 얘기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이야기라 할 정도라는데.. 맞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그 기분은 마치 이탈리아인이 2002년 한일월드컵 우리나라와의 16강전 이야기를 듣는 꼴과 비슷한 것이니 어느정도인지는 대충은 파악 될 것이다. 물론 이것도 경험해봐야 아는 법이니깐
  12. [12] 물론 전임감독제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그런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실은 대표팀은 대회가 열리기 5년전 쯤에 선임된 최초의 전임 감독을 맞이 한 바 있어서 경험을 해본 사례가 있었다. 참고로 전임 감독제로 선임된 감독은 고재욱 전 울산 감독 이었다
  13. [13] 비쇼베츠 감독 후임으로 거명된 인물 중에는 1994 미국 월드컵에서 미국을 16강으로 이끈 보라 밀루티노비치, 불가리아를 4강으로 이끈 디미타르 페네프도 있었으며 페네프 감독의 경우 영입 성사 단계까지 갔으나 대한축구협회에서 돌연 영입 협상을 중단했다.
  14. [14] 이때 허정무는 포항 제철 감독직을 하다가 대표팀 감독직을 하게 되었다라고 쓰고 납치라고 읽는다
  15. [15] 자세한 기록 확인은 '대표팀의 역대 감독과 수석코치' 자료 참고
  16. [16] 진짜 정신차리고 전임감독제 했더라면 2002년 월드컵때 경험한 첫승은 물론 2010년 월드컵에서 느낀 원정 첫 16강도 앞당겨 졌을지도 모를 것이다. 물론 이것도 정신 차렸다는 기준에서 말한거니 그저 씁쓸할 따름...
  17. [17] 또다른 문제점으로는 선수들의 승리 수당과 출전수당이 지나치게 적다는 의견이었는데 당시 보도에 따르면 선수들은 고작 3만 3천원의 수당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당시 기사
  18. [18] 참고로 2015년 AFC 아시안컵때는 이란이 이라크에게 패하여 다섯 번을 끝으로 아시안컵에서 만나지 못하였다.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sta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