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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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사(李博士)
Epaksa

이름

이박사(李博士 / Epaksa)

본명

이용석

신체

160cm, 45kg

가족

3남 중 셋째

출생

1954년 10월 5일,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직업

테크노, 트로트 가수

데뷔

1989년 '신바람 이박사'[1]

1. 개요
2. 생애
2.1. 데뷔전
2.2. 전성기
2.3. 인생의 굴곡
3. 활동
3.1. 방송&음악 활동
4. 앨범 목록
4.1. 한국
4.2. 일본
4.2.1. DVD
4.3. 도서
5. 평가
5.1. 일본에서의 평가
5.2. 한국에서의 평가
6. 논란
6.1. 미투 운동 관련 발언 논란

1. 개요

李博士 / Epaksa

"예술을 알면 돈이 멀어지고, 돈을 알면 예술이 멀어져야 돼. 그래야 음악가야."

이박사의 몽키 매직 - 스페이스 몽키 (Feat. 윈디 시티) 도입부에서.

#

대한민국 뽕짝의 대표주자이자 전설적인 뮤지션으로서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한국 아티스트이다. 1954년 10월 5일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현 남양주시 화도읍) 출생. 본명은 이용석. 기존의 트로트 가수들과는 상반된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가수다.

젊은 나이와 세련된 편곡으로 어필하고 있는 요즘의 신세대 트로트 가수와는 다르게, 다른 장르와의 접합 등으로 '테크뽕'을 만들어낸 선구자이기도 하다.

2. 생애

2.1. 데뷔전

초등학교 때부터 가요를 시작하여 신동 소리를 들었으며, 15살 때부터 록 음악에 심취하더니 부모님으로부터 경기민요까지 접하였다가, 결국 19세에 들어서 뽕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관광버스 가이드로 일한 경력이 있으며, 관광객들에게 안내와 더불어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 시대의 관광버스에는 리듬 박스라는 일종의 드럼머신이 장치된 경우가 많았는데, 이걸 틀어놓고 그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나중에 전자 음악과 잘 어울리는 이유도 여기서 찾는 경우도 있다.

유년 시절 경기민요를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노래 중간 중간에 독특한 추임새를 넣어 관광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다. 이러한 추임새는 현재까지도 '이박사'하면 먼저 떠오르는 그 만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 잡고 있다.

당시, MBC 인간시대에 '신바람 이박사(1989년 11월 13일 방영)'라는 제목으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머리속에 넣고 있는 노래가 3,000개였다고. 또, 이박사의 노래를 틀어 놓고 즉석에서 도너츠를 반죽해서 만드는 분의 사연도 '춤추는 도너츠'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방송은 이쪽이 먼저다.

이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품바 산적 공연단'의 단장과 함께 다닌 모양이다. 이박사가 최근 품바 산적 공연단과 함께 다니는데 단장이 그 소개를 매일 한다.

참고로 관광버스 가이드를 하기 전에는 양복 집을 했는데, 재미가 없어서 그만 두고 노래 부르면서 일 할 수 있는 관광버스 가이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2001년 자서전을 냈다. 제목은 '이박사 - 한번 만나볼까요?'

2.2. 전성기

살충제 광고. 원조 저질 댄스 박사님 살충제 쓰신다

소니뮤직에서 제작한 포스터

1989년가수데뷔한 그는 신바람 이박사 Vol.1 을 출시한다. 기존 고속도로 뽕짝과는 사뭇 다른 노래들로 테이프 판매량 1백만 장 이상을 기록하는 놀라운 인기를 얻게 된다. 이 인기의 여파로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며, 그 이후 19개의 앨범을 내고, 앨범마다 큰 인기를 얻으며 고속도로에서 신바람나게 팔려나갔다.

하지만 제한된 영역에서의 히트였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이박사와 그를 돕던 매니저 측은 1995년 일본 진출을 기획하게 된다. 일본의 모 인디 레이블을 통해 일본 진출 가능성을 점쳐보려 했는데, 샘플을 들었던 사람 중에 운 좋게도 소니 뮤직 대표가 있어, 쉽게 앨범을 내고 일본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덕에 첫 일본진출 앨범인 1996년 Encyclopedia of Pon-Chak을 발매한 이후,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뽕짝으로 키가 5cm 컸다" 등의 다양한 음반을 내며 일본에서 "바다건너 온 스타"로써 자리매김을 굳건히 하게 된다.

이후 1997년, 일본의 전위예술 그룹인 메이와 덴키(명화전기)와의 공동작업으로 オレは宇宙のファンタジー(나는 우주의 판타지)라는 제목부터 우주적인 센스를 가진 곡을 발매했다. 이 곡은 국내에서 1집 발매 때 테크노 뮤지션인 가재발의 재편곡으로 스페이스 판타지로 리메이크되었다. 이 외에도 의외로 일렉트로니카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임으로써 일본 등지에서는 상당한 인지도를 얻고 있다. 참고로 한국에 인디음악이 창궐하던 90년대 후반(98년) 볼빨간이라는 뮤지션이[2] 1집 '지루박 리믹스 쑈' 앨범에서 이 곡의 오마주인 '나는 육체의 환타지'를 발표한 적이 있다.[3]

특히 1996년 전기 그루브와 함께 '이박사 덴키그루브 : 열려라 뽕짝'이라는 앨범을 작업, 크게 히트시킴으로써 본격적으로 테크노씬에 손을 댄 탓에 당시 국내에서는 흔치 않았던 일본식 테크노 음악을 만드는 것으로 우리나라 일렉씬에서도 많이 알아주는, 어쩐지 평가가 묘하게 엇갈리는 가수.

이 앨범의 인기를 몰아 덴키 그루브무도관 공연 오프닝 무대에도 섰다. 그리고 도쿄대학초청을 받아 한국 트로트의 역사와 전통을 주제로 한 강연도 했다. 무엇보다 이게 최근도 아니고, 과거 트로트엔카의 하위장르로 인식되던 시절의 일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것이다.

2.3. 인생의 굴곡

한국에서 한창 인기있을 때, 집앞의 나무를 다듬다가 다리를 다쳐 몇 년간 활동을 못했다. 2012년MBC 놀러와에도 출연해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게다가 그 공백기 동안 사기도 두 번이나 당해 100억에 달하는 가산까지[4] 모두 사라지고 이혼도 있었다.[5] 결국 이런 인생의 시련들로 인해 마지막 남은 큰아들과 함께 힘든 생활을 지내 왔었다고 한다.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천마산 인근에 거주하고 있으며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링크 날씨가 좋은 날 동네를 지나다니다 보면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간지쩌는 모습을 간혹 볼 수 있다.

3. 활동

3.1. 방송&음악 활동

과거 한국에서는 엽기나 인터넷 열풍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최근 들어서 재평가를 받고 있는 트로트&일렉트로닉 계 아티스트이다. 자세한 사항은 평가 참조.

1989년 인간시대 (MBC)

2000년 키움닷컴증권광고에 출연했다.

2001년 시트콤 세 친구에 특별출연 하였다. 다만 스토리에 영향을 끼치는 역할이 아니라 엑스트라로서 나온다.

시트콤 세 친구 제 57화 - 한판승부 세 친구/에피소드 목록

2008년 기분 좋은 날 (MBC)

2010년 8월 4일에는 MBN 뉴스M에 출연하여, 앵커들에게 굴욕을 주기도 했다. 야~ 야야야야! 신나게! 관련 내용

2012년 8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했다고 한다.

2012년 8월 23일, 미니앨범 "레알 뽕짝커"를 통해 컴백했다. 아수라발발타, 다른 오빠(feat. 미미시스터즈), 몽키매직 - 스페이스 몽키 (feat. 윈디시티) 세 곡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컴백과 함께 엠넷의 '비틀즈 코드'에 출연했다.

2012년 9월 10일 인터뷰

한국 품바 예술협회에 고문으로 가입되어 있다. 링크 (임원소개를 누르고 두번째 페이지를 보면 이박사님의 증명사진을 볼 수 있다!)

2012년, 싸이강남스타일의 열풍에 대해 내 전성기에 유튜브 있었으면 싸이처럼 월드 스타가 되었을 것이라고 인터뷰를 했다. #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6] 다른 가수가 이런 말을 했으면 아무리 인기가 많은 가수라도 '싸이 인기에 편승하려는 것이냐?'라는 소리를 들었겠지만 이박사가 한 이 말에 반문을 던지는 사람은 많이 없다. 충분히 그랬을 것 같다. 싸이보다 더 컸을수도?

2013년 11월 3일 자 도전 1000곡에 출연하였다. 관련 영상

2013년 11월 26일에는 MBC 컬투의 베란다쇼 '싼티의 매력 속으로'편에 출연하였다.

2014년 11월 21일에 홍대 롤링홀 공연 "이박사x이랑"에서 팬클럽 재창단을 선언했다.

2014년 11월 23일 발매된 임창정임박사와 함께 춤을[7] 에 피처링에 참여했다. 여전한 뽕짝끼는 일품. 노래도 좋다.

2016년 테크노 뽕짝 가수 이박사41번째 앨범 낸 '테크노 뽕짝' 가수 이박사 "듣는 사람 신나게 해준 게 장수 비결"

2017년 11월에 비스츠앤네이티브스소속 DJ 및 프로듀서인 250이 이박사 메들리 오프닝을 샘플링한 Spring이라는 곡을 내놓기도 하였고, 위 영상과 같이 이박사의 인터뷰 영상의 목소리 샘플을 가지고 기가막힌 비트를 창작해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각설이 품바 공연단이랑 매번 같이 다닌다는 점...그래서 고문을

인디레이블 비싼트로피의 오너인 박정근의 조광사진관에서 공연이 열린 적도 있었으며[8] 유튜브 등지에서는 이박사와 유사한 컨셉으로 애니송 등을 커버하는 영상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아들 이성민씨와 함께 금도희 등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주기도 한다. 작사, 작곡은 이박사가 하고 편곡은 이성민씨가 맡는 식. 참고로 이박사의 ‘야야야’ 역시 이성민의 편곡이 들어갔다.

2019년 7월에 근황이 공개되었고, 인천에 있는 한 나이트에 취직했다고 한다.

2019년 8월 7일 채널A 교양프로그램 행복한 아침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근황을 전했다.

10월 19일 나몰라 패밀리와 콜라보 음악 '때려너'를 발표했다. 이 곡에선 트랩까지 선보인다!

행사도 꾸준히 받는데, 이박사의 전 부인 양선식 씨가 유튜브 채널로 행사문의를 받고 있다. 댓글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1회 행사비가 5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 하는 듯 하다.

4. 앨범 목록

4.1. 한국

  • 1989년 신바람 이박사 1, 2, 3집(1989 TGR Reissue-HSR)
  • 1990년 유행가 뽕짝
  • 1990년 굿거리 장단
  • 1990년 아싸 좋아 1, 2, 3집
  • 1991년 그것도 모르냐
  • 1993년 서울깜빡이
  • 1996년 앗싸 유랑 서커스
  • 1996년 노래하는 이박사
  • 1996년 이박사 김박사 테크노 쌍쌍박사
  • 2000년 신바람 인터넷 이박사 1, 2
  • 2000년 신바람 인터넷 콘서트 이박사 3, 4
  • 2000년 멋대로 맘대로
  • 2000년 E-PAK-SA 스페이스 환타지
  • 2001년 PON-CHAK 레볼루션
  • 2003년 E-PAK-SA 003[9]
  • 2003년 스페이스 환타지
  • 2003년 Epaksa 캐롤 2003
  • 2004년 메들리 황제 이박사
  • 2005년 사랑은 일방통행
  • 2006년 이박사 하이웨이 랩 댄싱
  • 2009년 야야야
  • 2011년 야야야3
  • 2012년 레알 뽕짝커
  • 2014년 신바람 이박사 앗싸 대박났다
  • 2016년 테크노 뽕짝 가수 이박사

4.2. 일본

  • 1996년 YOUNGMAN 영맨 (싱글)
  • 1996년 I LOVE FIFA WORLD CUP (싱글)
  • 1996년 이박사의 뽕짝으로 키가 5cm 자랐다!
  • 1996년 이박사 VS 덴키 그루브의 "열러라! 뽕짝!"
  • 1996년 뽕짝 대백과
  • 1997년 나는 우주의 환타지
  • 2002년 이박사의 2002년 우주 여행

4.2.1. DVD

  • 2004년 이박사의 80일간 세계 일주

4.3. 도서

  • 2001년 신바람 이박사 한번 만나볼까요?

5. 평가

일본에서의 평과 한국에서의 평이 극명하게 갈린다.

5.1. 일본에서의 평가

가히 한류스타 1세대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국내에서는 보기도 힘든 80년대 테이프나 음원들도 죄다 일본의 코어 팬[10]들이 발굴해서 유튜브 등지에 올릴 정도이니.. 흠좀무. 국내에서 뽕짝 가수라고 은근히 무시당하는 풍조와 참 대조된다.

유튜브에 음악과 라이브 영상이 업로드되면서 서구권 사람들에게도 컬처쇼크와 재미를 동시에 주고 있다. 하여튼 간에 일본에서 워낙에 인기가 많다보니 처음 일본에 진출했던 90년대 당시에는 일본인들이 "한국하면 Pon-chak아닌가요."라고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여기서 저 Pon-chak이란 곧 뽕짝을 이른다. 이미 그 당시부터 뽕짝하면 낡은 음악 취급하던 한국의 상황과는 판이하다.

또한 후지테레비의 HEY!HEY!HEY!에 2번째로 출연한 외국인 가수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니코니코 동화에 올라오는 그의 영상에는 한국인에게 흔히 붙는 비하나 욕이 전혀 달리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영상에 붙는 태그가 '한국을 싫어하는 나도 인정하는 한류 슈퍼스타'. 일본에서 한국어로 노래하는 가수가 이 정도로 대우받을 수 있다는 건 역시 그의 범우주적 센스를 보여주는 듯.

반대로 팝송이나 일본 음악을 자신의 스타일로 체화시키기도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곡이 빌리지 피플YMCA고다이고Monkey Magic.[11]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에서의 높은 평가가 꼭 긍정적으로 볼 사항만은 아니다. 옛날이라면 모를까, 2010년대 이후로 이박사가 일본에서 K-POP 날조설 따위의 혐한 아젠다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금의 일본인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된 요인에는 사실 현대의 K-POP과 달리 일본인 사상의 기저에 깔린 '일본에 비해 뒤처지는 한국 문화'란 생각에 대치되지 않았다는 부분이 작용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일본에서 K-POP이 인기를 얻은 2010년 전후로 인터넷상, 그 중에서도 옛 엔조이코리아[12] 시절부터 시작하여 지금의 마토메 사이트까지 이어져 내려왔던 1세대 혐한 네티즌을 중심으로 이박사가 급격히 재조명되어 상당한 푸시를 받게 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일본 혐한 세력의 빠지지 않는 주제인 '장인 정신의 나라 일본과 달리 베끼기를 숭상하며 장인을 탄압하는 한국, 싸구려 한국 문화' 이미지에는 K-POP과 달리 (그들의 입장에서)오리지날리티가 있고, 그럼에도 한국에서 멸시받으며, 일본 문화에 비해 싸구려 느낌이 강했던 이박사만큼 딱 맞는 재료가 없었기 때문.

실제로 혐한 세력 위주의 사이트인 2ch는 80~90년대의 한국 대중음악을 떠받들며, 그 이후 음악들을 '특유의 감각을 가진 한국 팝을 수출용으로 쓰려고 마구 개조하다가 완전히 망쳐버렸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강남스타일에 대해 그딴 헛소리나 하다가 자폭한 꼴이 되었지만 말이다.

물론, 당시 일본이 뽕짝을 완전히 새로운 음악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일본은 그 때까지 관심이 없던 한국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당시, 일본의 관점은 독특한 문화를 가진, 한국은 복잡하고 키치적인 나라[13]였다.

그래서 한국 문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집중되면서 한국의 음악도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사실 당시 대중음악의 수준은 한국보다 일본이 몇 수 위였고(당장 핫피 엔도YMO가 후대 일본음악계에 끼친 영향만 봐도 된다.),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출판계와 대중의 입맛에 맞는 것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발굴한 인물이 이박사인 것이다.

서양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창법에 미니멀한 연주에 동양적인 멜로디를 지닌 이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인기를 끌게 되었고, 뭔가 싸구려 같지만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비유를 하자면, 미국에서 영국으로 건너간 개러지 록이 펑크 록으로 발전하여 미국으로 역수입된 격이랄까?

5.2. 한국에서의 평가

대부분 한국에서 이박사를 평가하는 시각은 "일본에서는 스타였겠지만 한국에서는 아니다"라며 천박하다고 평가한다.

천편일률적인 뽕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추임새와 곡들로 일본무대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주가를 올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이박사'라고 하면 고속도로 휴게소 판매용 음반이나 내는 가치없는 저급 노래꾼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트로트 가수 중 한 사람인 태진아가 과거에 이박사를 가리킬 때 "이박사는 정통 트롯트 가수가 아니며, 그저 광대에 불과하다" 라고 강도높게 폄하하면서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 했던 것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게다가 몽키매직이나 N.O.와도 같은 원곡이 있는 노래들도 이박사가 부르면 까인다. 그의 음악에서 90년대 중반까지 길에서 흔히 보던 리어카 사운드가 연상되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즉, 레코딩과 음악적 분위기에서 이박사가 어떤 노래를 하건 세간의 시각으로는 저질로 평가받았다. 더욱이 이러한 이유로 2000년대 초반 엽기 열풍이 불 때 까거나 비웃기 위한 용도 또는 개그상황에서의 BGM으로 활용되다 보니 더더욱 '싸구려' 이미지가 굳어진 점도 있다.

가우스를 평가하는 학습지 선생님들

-이 영상의 최다 좋아요 댓글

현재 시점에서 이박사의 평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트로트 엑스의 출연 장면이다. 오래 전에 이박사에게 광대라고 비난을 날렸던 태진아는 그 이후 본인과는 격이 다른 일본의 한류 1세대 대스타가 되어 돌아온데다 심사위원으로 나올법한 인물이 무대에 서서 공연일갈[14]을 하니 태진아 본인도 어이없다는 듯이 짜증이 가득한 웃음을 지었고, 저 잉간이 왜 여기서 나와? 이박사에 대해 비난조차 하지 않았던 설운도는 싸한 분위기를 아는지 연신 태진아 눈치를 슬슬 본다.

게다가 아무리 방송이라 한들, 다른 까마득한 후배 출연진들 또한 이박사를 가리키며 이박사 아니냐며 반말이나 삿대질 등 기본적으로 무례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모든 심사위원들이 네티즌들의 강도높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15] 모니터 뒤에 가려져 있다고 해도 신기한 물건을 본 것 마냥 너무 대놓고 삿대질을 한다. 이박사 님께서 가운데서 앉아있는 심사위원들이 얼마나 수준 높게 평론을 잘하는지를 평가하는 자리라 카더라 물론 심사위원들의 태도만 탓할 것이 아니라, 이박사의 음악이나 뽕짝 자체를 저질문화로 치부하던 한국의 풍조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뚝심있게 자신만의 장르 음악을 한다는 건 무시받기는 커녕 존경받아야 할 진정한 음악인의 자세다.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여 새로운 음악을 일구어낸 음악인에 대한 평가가 싸구려 같다는 이유로 절하되고 예우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현실을 볼 수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발전을 멈추고 그저 그런 양산형 음악만을 쏟아내어왔던 '정통' 트로트 업계가 이박사를 폄하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애초에 자신들과 스타일이 다르고 취향을 탄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깎아내리는 것은 굉장히 무례한 일이며 도리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현재 트로트계에서 가장 젊은 세대인 20~30대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도 자신들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개발하지 않고 기존 선배들이 해왔던 트로트에 그냥 박자만 빠르게 바꾸거나 기존 히트곡의 변주나 복제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는 더욱 더 반성해야 할 세태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이박사의 과거 음반이나 행적들이 발굴되면서 조금씩 재평가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에서의 위상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수준이다.

6. 논란

6.1. 미투 운동 관련 발언 논란

"이 노래 들으면서 마음대로 춤을 추되, 요즘에 여자들 잘 사귀어야 돼. 잘못하면 ‘미투’에 인생 조져 선견지명"

2018년 8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여자 잘못 사귀면 미투로 인생 망친다"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물론 발언의 취지는 사회적 명성을 가진 이들의 명예와 지위를 실추시키고 본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미투를 악용한 인물들에 대한 쓴소리인 동시에, 남자들도 정말로 여자를 함부로 성적으로 대한다면 미투로 응보를 받는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공인으로써, 그리고 주최 측에서 문제가 될만한 발언을 자중해달라고 했음에도 이렇게 오해를 사고 논란을 부르는 발언이 나온 것에 대해선 당연히 이박사 측의 잘못이자 과오라고 주장중이다.


  1. [1] 네이버 인물검색시 데뷔관련하여 2000년 1집 앨법 'Space Fantasy'로 나온다.
  2. [2] 볼빨간사춘기와는 다르다.
  3. [3] 사실 이 앨범 거의 전체가 이박사 오마주에 가깝다. 1번 트랙 제목이 '지루박 돌려요! (이박사에게 바침)'
  4. [4] 인터뷰에서 한 곡 부를때 마다 천만원을 받던 가수였고, CF도 심심하면 찍을 정도였으니 자세히는 100억이 넘었을 것이라고 본인이 이야기 하기도 했다.
  5. [5] 사이가 나빠서 이혼한 거 까지는 아니라고 한다. 생활고로 인한 합의 이혼에 가까웠다고. 지금도 간간히 만나는듯 하다.
  6. [6] 사실 펌프 잇 업 때문에 의외로 중남미권에서는 좀 알려진 편이다.
  7. [7] 사실 이 노래는 동년 3월에 발매된 임창정의 정규 12집 앨범인 '흔한 노래, 흔한 멜로디...' 에 이미 먼저 수록되어 있던 곡이고, 이박사도 이 때 피쳐링에 참여했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몇 개월 후 임창정이 낸 싱글앨범 '친한 사람' 에 다시 수록되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8. [8] 당시 밤섬해적단권용만이 드럼을 치기도 했다(…).
  9. [9] 2003년에도 epaksa 003 이라는 앨범을 냈었는데. 이게 헤비메탈, 레게, 테크노 등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본인이 디시뉴스에서 한 인터뷰에 따르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100이라고 하면 70 정도는 구현해낸 앨범" 이라고.
  10. [10] 심지어 혐한으로 유명한 2ch 사람들이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11. [11] 일본 드라마 버전의 서유기의 주제곡으로 1979년에 발표된 노래.
  12. [12] 한국에서는 네이버 인조이재팬.
  13. [13] 일본에서 혐한조차 80년대 전후의 한국 옛 TV CM을 발굴해서 즐겨보는 이유도 이러한 인식에 기반할 가능성이 높다.
  14. [14] 무대 중간에 디스코를 잘 추며 잘 노네 부분에서 급발진 버럭을 외치는데 이게 또 기묘함을 자아내는 장면으로 회자된다. 일각에선 예의없고 본인보다 레벨이 한참 낮은 심사위원들에게 정신차리라고 용언을 내뱉는 거라고 카더라
  15. [15] 8명의 스님들이 불경을 외우다 부처님이 강림 하셨는데 "오, 저거 부처 아니야?" 라고 말하거나, 8명의 신부님들 또는 목사님들이 기도를 하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오 저거 예수 아니야?" 라고 말하는 급이다. 이게 과한 비유라고 생각한다면, 저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이박사가 아니라 송대관이어도 심사위원들이 "오 송대관 아냐?"라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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