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화

이름

류철균(柳哲鈞)

필명

이인화(二人化)

생년월일

1966년 1월 5일(만 54살)

경력

소설가, 이화여자대학교 교수[1]

제24회 이상문학상 수상

박상우
내 마음의 옥탑방
(1999)

이인화
시인의 별
(2000)

신경숙
부석사
(2001)

1. 개요
2. 행적
2.1. 초기이력
2.2. 표절-셀프평론 논란
2.3. <영원한 제국>의 성공
2.4. <인간의 길> 논란
2.5. 극우, 박정희 우상화 평론가
2.6. 교수 임용 및 이후 행적
4. 평가
5. 성향
5.1. 이미지 메이킹
5.3. 게이머
6. 작품 목록
6.1. 소설
6.2. 기타 저서
6.3. 번역한 책
7. 틀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소설가 및 대학교수, 본명은 류철균. 필명 이인화(二人化)는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아내는 정신과 전문의이다. 두 딸을 두었다. 2017년 1월 이화여자대학교 정유라 특혜 논란으로 이화여대 직위 해제되었다. 직위해제가 되면 교수 신분은 유지되지만 교육, 연구, 강의 등의 활동은 할 수 없다.#

2. 행적

2.1. 초기이력

1966년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대구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석사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2.2. 표절-셀프평론 논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8년, 문학평론 <유황불의 경험과 리얼리즘의 깊이>를 《문학과사회》에 발표하였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 중에는, 1992년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발표하여 제1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당시 이상욱 평론가에 의해 여러 소설(무라카미 하루키, 공지영)을 짜깁기한 표절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이인화는 자신의 본명, 즉 류철균으로 이 소설이 표절이 아니라 "혼성모방"이라는 포스트 모더니즘 기법이라고 옹호하는 평론을 발표했다. 그러니까 필명으로 기고한 본인의 작품을 본명으로 자화자찬했을 뿐만 아니라 표절마저 옹호한 기행을 펼친 것이다.

류철균이 곧 이인화라는 것이 밝혀지자, 당시 문단과 국문학계에서는 큰 파장이 일었다. 이인화, 즉 류철균은 표절작가인 동시에 필명과 본명을 넘나들며 셀프 평론을 펼친 몰상식한 연구자로 묻혀야 했으나, 대부분의 문단 표절 논란이 그렇듯이 이 사건은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고 문단 내부에서 탁상공론으로만 그쳤으며,[2] 다음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야무야 넘어갔다.

2.3. <영원한 제국>의 성공

이후 1993년 정조독살설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영원한 제국》을 발표하였고, 100만권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됨으로써 위의 사건이 묻혀진다. <영원한 제국>은 영화화까지 되어 1995년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을 포함한 7관왕에 올랐고, 중고생 추천도서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이는 노론 음모론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에 대해 당시 진중권은 "이인화가 영남 남인의 후예이기 때문에, 집안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 실제로 류철균 교수는 안동의 명문가인 전주 류씨로, 남인의 거두였던 정재 류치명의 후손이다.

여기에 소설 구성 자체가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의 얼개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서 독창성도 떨어진다. 특히 이 작품은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에코의 외양에 역사 음모론을 버무린 "통속소설"로 평가했으나, 이인화의 언플 및 조선일보이문열의 극찬으로 당대 고전의 위치까지 격상된다.

<영원한 제국>은 사실 초반 판매가 신통치 않았으나, 이인화와 마찬가지로 영남 남인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이문열[3]이 극찬한 서평이 조선일보에 실리자 바로 다음날 7,000권이 팔렸다고 한다. 사실상 이인화의 출세가도에는 이문열이 큰 역할을 했다. 이문열은 이인화를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한듯, "장강의 앞물결은 뒷물결에 밀리는 법”이라며 칭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문열 본인이 인정한 것과는 별개로, 문학적 업적이나 성취로 보자면 이문열과 류철균은 결코 같은 반열에는 놓일 수 없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젊은 날의 초상>, <사람의 아들> 등 소설가로써 이문열의 필력이나 문재는 이미 평단과 대중 사이에서 두루 검증받은 인물이다. 이후의 작품들은 과거에 비하면 빛이 좀 바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쌓아둔 이름은 어디 안 가네' 정도의 평가는 받는 편이다. 이인화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야 이문열의 자유이지만, 그것만으로 이인화의 객관적인 능력을 증명하진 못한다.

2.4. <인간의 길> 논란

1997년에 발표한 대하소설 《인간의 길》은 박정희의 삶을 재조명한 작품으로 '박정희 미화'를 놓고 상당한 논란과 물의를 빚기도 했다.당시기사#

이 소설은 강준만 교수에게 커다란 비판을 받았지만, 류철균은 이를 지역드립이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강준만을 지역차별주의자라고 몰면서 비판을 교묘히 피해갔다. 사실 류철균의 출신지역과 박정희 미화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데도, 이를 지적하는 강준만 교수를 지역차별주의자로 몰아간 것. 뿐만 아니라 DJ정부나 참여정부 시절, 정부의 비리나 병크가 터지면, 조선일보 기고나 인터뷰를 통해 1970-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을 그저 정권탈취를 위한 위선적 운동으로 몰아갔다.

《영원한 제국》과 《인간의 길》은 사실 이인화의 파시스트적인 정치관을 드러낸 작품으로, 서로 관계가 없는 듯 보이지만,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영원한 제국》은 《인간의 길》의 배경세팅을 해주고 있는 사실상의 연작이며, 두 작품 모두 일관되게 독재를 옹호하고, 박정희의 1인독재를 미화하고 있다.

이인화의 표현에 따르면 박정희는 "선악을 초월한 초인"이라는 것. <영원한 제국>에서는 정조의 왕권강화책(홍재 유신)이 노론에 의해 무너진 것이 조선 망국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주장하여, 절대주의 국가[4]만이 국가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길》에서는 이런 논리를 박정희(작중 명칭 허정훈)에게 연장시켜 적용하며, 정조의 실패한 홍재유신이 박정희의 10월 유신으로 부활하여 절대주의 국가(1인 독재)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절망속에 살던 가난한 민족이 오늘날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5]

사실 《인간의 길》은 박정희(허정훈)가 "민족을 구원하게 되는" 자신의 운명을 자각하는 1951년(3권)으로 끝난다. 작중 마지막에서 공산군에 포위되어 생사의 기로에 선 허정훈은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음으로써 저 하늘에 대한 모반을 수행한다. 인정승천(人定勝天). 인간의 의지가 하늘을 이기리라. 이 무참한 하늘을 이겨 내기 위해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권리가 있다.

원래 류철균이 집필 초기에 "박정희의 생애를 모두 다룰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닌 것을 보면 의외다. 즉, 인간의 길에 뒤이어, '혁명의 길', '나의 조국'까지 합쳐서 박정희의 전 생애를 다룬 연작 10권짜리 연작 소설을 내놓을 계획이었으나, 결국 3권에 그치고 만다.

2.5. 극우, 박정희 우상화 평론가

이인화는 당시 문단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창작과 비평》의 리얼리즘적 사조를 비판하며 1994년 잡지 《상상》에 참여하였다.[6] 이때 기존의 편집장과 편집위원들이 전부 물갈이되는 사태가 벌어지며, 그로 인해 잡지의 성격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7] 같이 참여한 동인은 장정일김탁환. 그리고 이인화의 후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문열 뿐만 아니라 당시 영화감독이라기보다는 소설가였던 이창동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8] 하지만 장정일과 김탁환은 후에 이인화와 결별했고, 현재는 모두 정치적으로 이인화와 정 반대편에 서 있다.[9]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훗날 대립하게 되는 진중권을 본격적으로 정치논객, 정치평론가의 길로 데뷔시킨 장본인이다. [10] 본래 진중권은 정치학이 아니라 미학 등 인문학 관련 전문가였다. 90년대 중반 진중권에게 문학계간지 《상상》으로부터 원고 의뢰가 들어왔고, 진중권은 의뢰에 맞게 '근대 유럽의 낭만주의와 악마 숭배'를 주제로 글을 썼다. 글 자체는 유럽 미술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무난히 읽히는 수준이었으나, 나중에 책을 받아본 진중권은 경악하고 말았는데, 본인의 글이 박정희와 파시즘을 옹호하는 맥락에서 배치되고 만 것.

순간 화가 난 진중권[11] 《상상》 측에 이전 원고를 반박(보강)하는 원고를 다시 쓰겠다고 했고, 《상상》측은 승낙했으나 어찌된 셈인지 원고를 보내도 실리지 않았다. 진중권은 결국 다른 문학계간지 《문학동네》에 반박 원고를 게재했고, 그의 글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당시 진중권의 반박문을 극구 반대, 거부한 《상상》의 편집위원이 바로 이인화였다. 이 얘기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 잘 나와 있다.

잡지의 편집자로써 당시 류철균의 이러한 행태는 이 인물이 저지른 다른 비행[12]들에 비교해도 그 악성과 문제점이 덜하다고 하기 어려운 심각한 만행이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사실 원저자의 글을 함부로 변개하여 게제하는 행위, 특히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변개하는 행위는 편집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잘못 중 하나라고 불리며, 이에 대한 반론의 게제까지 거부했다는 것은 류철균이라는 인물이 타인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짓밟고 이용해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극도로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인 품성을 가졌다는 증거로 보기 충분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 사건이 표절등의 사건에 비해 덜 이슈화된 이유는 하필 피해자가 이후 독설로 명성은 날리게 되는 진중권이었던 점도 한몫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 사건에서 격분한 진중권의 반박문이 발전하여 한국 평론계에 실명비판의 지평을 연 계기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정치평론집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탄생했고, 이인화는 일단 여기서부터 엄청나고 처참하게 씹힌데다(...) 이를 계기로 인지도를 높인 진중권이 2000년대의 소위 '논객 전성시대'를 대표하는 논객 중 하나로써 자리잡으면서 국내 인문학자중에서는 손꼽히는 대중적 인지도와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반면 그러는 동안 이인화의 대중적 인지도와 영향력은 '예전에 이름 들어본 적 있었지?' 수준으로 급락하고, 그렇다고 특별한 이론적 성과를 거두지도 못하여 대중들 사이에서 잊혀지다시피 하게 되었기에, 말하자면 "에라, 딱히 따로 욕 안해도 진중권이가 알아서 쳐발랐네" 라는 인식이 형성되어 버린 것. [13]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조선일보의 왜곡 편파보도를 비판하는 안티조선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자[14] 이인화는 조선일보의 호위무사 역을 맡았으며, 심지어는 조선일보를 나치 독일 시대 탄압을 받은 문학가 토마스 만으로 치켜세워주기도 했다. # [15] 이런 몰상식한 비유 때문에 분노한 네티즌들이 이인화의 홈페이지에 몰려와 항의글 폭탄을 안겨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다.

이런 행보 때문인지 조선일보는 이인화를 팍팍 밀어줬다. 하지만 이인화는 대체로 막말을 쓰거나 오버를 일삼는 다른 극우문인들(이문열 등)과는 달리, 지적이고 우아한 이미지로 박정희를 미화하며 조선일보를 옹호했다. 결국 1990년대 후반쯤 부터 박정희 향수를 불러 일으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지도자로서 자질이 현격하게 부족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셈이다.

이인화 “난 이래서 좋다”

선악 뛰어넘은 진정한 지도자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 일변도의 평가 앞에서 그가 민족중흥의 기틀을 마련한 경세가라는 긍정적인 여론이 대두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부정과 긍정은 나란히 열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인간은 신이 아니며 인간의 일생에는 공(功)과 과(過)가 공존하기 마련이라는 식의 결론은 적어도 박정희라는 인물에게만은 적용되지 않는다. 그의 선과 악, 위업과 과오는 하나의 인간 운명이 갖는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의 힘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리라.”

이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생을 관류하는 불멸의 외침이었다. 그의 영혼에 암세포처럼 번져갔던 죽음의 힘은 운명이 만든 그의 과오였다. 그는 28살에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만주군 중위였고, 32살에 숙군 대상자로 재판 받고 사형을 구형 받은 남로당 군사부의 비밀당원이었으며, 45살엔 자유민주국가의 헌정 질서를 짓밟은 군사쿠데타의 주모자였다. 이 씻을 수 없는 죄과, 이 도덕적인 오점들이 국가에 대한 경건주의와 숭고한 자기 희생의 의지를 낳았던 것이다.

죽음의 힘은 그를 채찍질하여 국익에 이르는 좁고 험한 길로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달려가게 만들었다. 그에겐 오직 민족을 번영으로 이끌 절박한 시대적 과업만이 자기 구원에 이르는 길이었다.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던 북한의 전쟁 도발을 막으며 경제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는 국가 생존의 지상명령이 늙고 탈진해 쓰러질 때까지 그를 괴롭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람을 위해 어떠한 변명도 할 필요가 없다. 그는 1961년 5월 16일의 그 새벽, 헌병대의 총탄이 날아오는 한강 인도교를 건너던 그때 이미 자기 운명의 찻잔을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다 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전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부고속도로를 놓았고, 전세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포항제철을 세웠다.

유도탄을 개발하고 자주국방을 주창할 때는 미국이 격분했고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한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불황이 찾아왔을 때는 모두가 그의 죽음을 원했다. 그는 그런 처절한 고독 속에서도 단 한 푼 개인적인 치부를 하지 않았고 자식과 친인척들에게 악랄했으며 자나깨나 나라만을 생각하고 바보처럼 나라만을 사랑하다가 자기 고집대로 죽어갔다.

사람들은 다만 총체적 파탄에 직면한 오늘의 조국 때문에 그를 이야기한다. 역사는 국민 모두가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역사 창조의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들에게 의욕과 자신을 불어넣어주는 지도자, 투철한 국가관과 공인으로서의 사명감, 청렴성을 가진 지도자가 부재할 때 민생은 파탄되고 안보는 위협받으며 민주주의는 중우정치로 타락한다.

깜짝쇼와 세몰이로 점철된 이 부패타락한 정당정치가 민주주의라고 강변되는 오늘, 우리는 비로소 눈을 비비고 선악을 초극한 인간 운명의 한 전형을 진정 위대했던 한 사람의 국가 지도자로서 바로 보게 되는 것이다.

소설가ㆍ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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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5.13. 한겨레 11면

한겨레 신문에 실린 이인화의 박정희 찬양 기고.[16]

2.6. 교수 임용 및 이후 행적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명성에다 언론플레이에 능하고, 조선일보가 상당히 띄워줬기에, 박사 학위가 없고 학문적 성과가 미진함에도 1995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 1997년 조교수로 임용되었다(박사학위는 지도교수인 김윤식 교수가 은퇴하기 직전인 2000년에 받음).

이후 2006년부터는 디지털미디어학부(현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를 지냈다. 2000년에 《시인의 별》로 제24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시인의 별도 이인화에게 상을 주기 위해 무리수가 있었다. 원래 이 소설은 <문학사상> 2000년 1월호에 게재된 단편이었으나, 이상문학상의 심사대상은 1999년 12월 31일까지 발표된 소설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렇기 때문에 주최측(문학사상사)이 데드라인 마감을 지나고도 이인화에게 상을 주기 위해 무리수를 범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2006년에는 영화계에도 진출하여 친일 여류비행사 박경원을 미화한 영화 《청연》의 시나리오를 썼으나, 친일시비에 말려들어 쫄딱 말아먹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항상 강조하던 "융합 컨텐츠"에 일찌기 관심을 가지고 본업인 소설 이외에 게임이나 오페라, 영화 등 여러 장르에 손댔으나, 딱히 성공을 거둔 것은 없다. 이에 관련된 전공서적도 몇권 내기는 했지만, 높은 수준이라기보다는 그냥 트렌드를 쫓아가는 느낌이다. 이인화빠들이 항상 이인화와 비교하는 움베르토 에코와는 학문적 수준을 비교할 수조차 없다.

이인화를 "한국움베르토 에코"라고 처음 지칭한 사람은 이인화의 지도교수인 김윤식 서울대 명예 교수이다. 평생 파시즘을 비판해 왔을 뿐만 아니라, 미학 및 비평학 부분에서 세계적 대가였던 에코가 들으면 기겁할 일.[17]

어쨌든 《상상》의 동인들마저도 결국 이인화와 결별했을 정도로 동료작가들이 대부분 이인화에 비판적이었으나, 이인화는 문단 윗선의 아낌없는 보살핌 및 비호를 받았다. 이인화의 인맥 관리나 윗사람 챙기기는 유명하며, 이인화는 자신을 비판하는 동료나 후배 문인들의 비평은 철면피로 무시하면서도 자신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문단권력이나 원로(김윤식, 이어령, 이문열 등)에는 철저히 복종하고 빨았다. 어떤 방송에서는 자신이 문학가에 접어든 계기가 이어령이라고 밝히며 공개적으로 칭송하기도 했다.[18]

3. 몰락: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인화가 강의한 '영화스토리텔링의 이해' 과목은 인터넷 강의 무크(Mooc)에서 개설된 과목이다. 그 중 한 명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였고, 이인화는 정유라의 대리시험, 대리수강 등 학사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참고인으로 소환되어 특검조사를 받던 중, 2016년 12월 31일 새벽 특별검찰에 의해 긴급체포되고 구속되었다.

주된 혐의는 정유라가 수강하는 온라인 과목에서 대리 수강을 시키고, 조교에게 정유라의 대리 시험답안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혐의다. 시험 답안지가 공개됐는데, 수업에 참석하지 않고서는 맞출 수 없는 어려운 문제도 척척 답을 적어냈다.# 이것도 검찰 수사와 교육부 감사가 시작되자 뒤늦게 작성한 것이었다. 이 와중에 난색을 표하는 조교들에게는 "논문 심사에서 불이익을 주겠다", "학계에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며 협박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특검팀은 12월 30일 오후 7시 류철균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던 중, 조교들과의 대질심문에서도 혐의를 전면부인하는 진술 태도 등을 고려해 이튿날 오전 6시 긴급체포했다. 결국 이인화는 신년을 구치소에서 맞이했다. 또한 특검은 증거인멸 혐의가 높다며 업무방해, 위계공무집행방해, 증거위조교사, 사문서위조교사, 위조사문서행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1월 2일 정식 구속되었다. 교통방송에 출연한 최강욱 변호사가 말하길 단순한 성적 조작 지시 정도면 대체로 불구속이지만, 조교를 위협-협박했기 때문에 증거인멸 및 조작의 가능성이 있어서 구속되었다고 한다.#

류철균은 최순실의 측근으로 문화계를 농단한 차은택과 함께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또 박근혜 정부가 설립한 ‘청년희망재단’의 초대 이사를 지내 최순실의 오래된 숨은 측근이라는 의혹도 받고 있다.동아일보 참고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박근혜 등이 대기업들로 하여금 청년희망재단에 620억여원을 지원하도록 했다며 고발장을 특검팀에 제출했다.

구속실질심사에서 이인화는 "학점을 주는 건 교수의 고유권한"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성적을 입력한 조교도 공범"이라며, 자기가 위협한 조교에게 범죄를 전가하는 등,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말을 늘어 놓았다. 채널A채널A 당연히 개소리이다. 대리수강 및 대리시험은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체육특기자의 경우, 출석이 부실해도 최소한의 성적을 주는 것은 그동안 한국 교육계의 관례였던 것은 사실이라 해도 그러한 경우에도 중간고사, 기말고사 같은 공식 시험은 출석하며, 다른 사람의 대리 답안 작성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특검 수사 과정에서, 이화여대 농단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김경숙 교수의 주선으로 최순실과 정유라를 만났다고 자백했다. 김경숙은 정유라의 성적 조작을 부탁했고, 김경숙과 류철균은 교육부 감사에서 서로 말을 맞췄다는 의혹도 있다.

2017년 1월 4일, 진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채널A단독]“정유라의 특혜 배후는 최경희 총장” 이후 징역 2년을 구형받았다.

2017년 6월 23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형을 선고받고 6개월만에 풀려났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아무리 집행유예라고 해도 이화여대에서 파면당하게 된다.

2017년 11월 14일, 2심에서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3일 뒤인 11월 17일, 이인화를 비롯한 이화여자대학교 정유라 특혜 논란 관련자 대부분이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2018년 5월 30일, 대법원이 이인화의 상고를 기각하여 2심 판결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로써 이인화는 교수직에서 해임되었으며 집유기간이 끝난 후 4년간은 강단에 설 수 없게 되었다.

여담으로 5월 31일 귀국한 정유라가 기자회견에서 "나는 내 전공이 뭔지도 모르고, 교수들에게 학점 잘 달라고 한 적도 없다"고 한 말을 1심 선고 전의 보강수사 심문에서 거론하면서 검찰에게 "나한테 학점을 부탁한 게 정유라 아니면 누구겠냐. 무작정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 정말 충격 받았다. 나는 (이 사건으로) 30년을 쌓은 작가와 교수로서의 인생을 모두 잃었는데, 저 애(정유라)는 참 뻔뻔스럽게도 얘기하고 있다"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4. 평가

위의 약력으로 알 수 있듯이 1990년대 초반에 소설가로 반짝 했으나, 근본적으로 소설가로서의 문장력이나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평이 대세이다. 가장 성공한 소설은 움베르토 에코를 모방한 《영원한 제국》 하나뿐이지만, 이것은 좋게 말하면 패러디, 나쁘게 말하면 표절 혐의가 따라다닌다는 점에서 전혀 천재적이라고 볼 수 없다. 자신이 시바 료타로 류의 "고쿠민쇼세츠"(국민소설, 류철균 본인표현)로 만들어 보겠다던 《인간의 길》은 재미도 없고, 너무나 정치적인 의도가 노골적이라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본인의 입으로 박정희가 한 일이 모두 옳았다고 말했는데, 이 정도면 박사모 같은 극렬 박정희 숭배자가 아닌 다음에야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나 문단권력과 유착하여 그들이 입맛에 맞는 행보를 하면서, 우아한 이미지를 유지했기 때문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까지만 해도 대중에는 천재 소설가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천재 소설가' 라고 비춰진 것은 이인화의 학벌적 배경(서울대 국문과 학-석-박사) 및 자신이 만들어내고 조선일보가 띄워준 이미지 메이킹의 결과이며, 실제로 이인화의 작품들은 대부분 범작에 불과하다.[19] 즉, 작품 대부분의 문장이 자연스럽지도 않고, 플롯이 기발하지도 않으며, 묘사가 유려하지도 않다. 한마디로 소설의 주제, 플롯, 기교 모두 평범하다. 비슷한 보수적 이념을 가진 이문열과 비교하자면 소설가적 재능이 훨씬 미치지 못한다. 이인화가 2000년대 이후 사그라든 이유는 이러한 소설가적인 한계 때문이다.

미래가 불투명한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20]이 표절로 튀고, 독재권력을 옹호하면서 문단 권력이나 거대 언론과 야합하여 만 29세[21]에 엄청난 명예와 고액의 연봉,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받는 명문대 교수가 되었으니 더 이상 입지가 불안한 소설가 코스프레를 할 일도 없었고, 더 이상의 발전이 없는 셈. 대문호 소리를 듣는 소설가는 타고난 천재적 재능이 있거나(예: 미시마 유키오) 아니면 보통 작가를 뛰어넘는 월등한 부지런함이 있거나(예: 시바 료타로) 열정이 샘솟듯이 흐르거나(예: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혹은 남들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인생의 굴곡을 처절하게 겪는, 소위 영혼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예: 도스토예프스키)이 대부분인데,이런 방향이 모두 아닌 사람이 20대 후반부터 편한 자리에 앉았으니 소설가로서 발전할 수가 없었다.

5. 성향

  • 평소 강연이나 인터뷰 등에서 자신은 "X알 두 쪽만 차고 서울에 올라와 성공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흙수저임에도 박정희가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기회를 잡아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라 말하기도 했으나, 그의 아버지 류기룡(1935~2014)은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 퇴직한 국문학계 원로라서 이인화는 국문학계의 금수저였다. 국문학계로 좁히지 않더라도 4년제 명문 거점국립대학교 정식 교수의 아들 정도면 1966년생인 이인화의 성장기 기준으로는 충분히 금수저라 할 수 있다.
  • 이화여대의 한 수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고 이화여대 익명게시판에 학생의 제보가 올랐다. 인문학자로서는 심하게 부적절하고 교양은커녕 개념조차 없는 발언이며, 더군다나 본인이 이화여대라는 명문 학교의 교수라는 점에서 학생들에게는 인격모독적인 말이다. (출처: 2017년 1월 2일자 JTBC 정치부회의 )
> 세상은 돈과 권력과 섹스로 돌아가는 겁니다. 설마 아가페적인 사랑을 믿는 건 아니죠? 사랑 믿음 같은 건 아무 힘이 없어요.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라구요.
>내 이름은 손오공.>원숭이 종족의 왕. 선(善)을 행하는 무법자. 최후에 승리하는 범죄자다.>우주를 움직이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힘, 적나라한 힘이다. >법과 도덕이란 겁쟁이들의 방패이며 살아있는 시체들의 위장술이다.
바로 위에서 한 발언이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닌 본인의 소신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 한 공개 강의의 질의에서는 강간이 별 일이 아니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 여성이 강간을 당한다고 해도, 그런 일 좀 겪는다고 사는데 지장이 있습니까? 그것 역시 반성의 계기가 되고 인격적으로 성숙시킬 계기가 됩니다.
  • 문단 데뷔 초기부터 권력-출세지향적인 모습이 종종 목격되었고, 표절-셀프 평론 논란도 이런 출세지향성의 연장선에 있다. 사석에서는 "나는 힘 있는 사람이 좋다"고 거리낌없이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가장 힘 있는 최순실과 야합했다가 결국 국문학계-문단에서 퇴출될 위기에 서 있다. 그다지 큰 형량을 받은 건 아니라 몇 달만 감방살이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나왔지만, 마광수와 같이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필화 사건도 아니고, 젊은 시절 한정이지만 김지하 같이 독재정권을 비판했다가 탄압받은 사건도 아니고. 부정한 비선권력에 줄댔다가 다 함께 몰락한 사건이기 때문에 류철균의 복권이나 문단 복귀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5.1. 이미지 메이킹

소설이 아닌 글을 쓸 때도, 완화되고 주지주의적인 어휘[22]로 파시스트적인 주제를 포장했기 때문에, 그런 주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지식인들(진중권, 강준만 등)만이 비판에 나섰으며, 대중에게는 그저 "베스트셀러 작가", 또는 "천재 소설가" 정도의 우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일보에 극우적 논평을 쓰면서도 동시에 진보적인 한겨레에도 이인화의 글이 실리곤 했다.

'천재 소설가'는 이인화의 이화여대 임용 초기시절 조선일보가 붙여준 별명. 은제 담배케이스에 담배를 넣어 다니며, 항상 정장을 입는 식으로 본인의 우아한 이미지를 메이킹했다. 언론 인터뷰에서는 항상 우아한 모습으로 독서의 중요성 및 교양과 인문정신을 강조하는 등으로 자신을 포장했으나, 실제로는 어떻게든 출세하기 위해 표절이나 셀프 평론 같은 무리수까지 범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는 부정한 권력에까지 아부하는 출세주의자의 모습을 보였으며, JTBC에서 보도된, 수업시간에 했다던 "세상은 돈, 권력, 섹스로 돌아간다"는 발언에서는 그 자신이 말과 행동이 완전히 다른 사람임을 대놓고 드러냈다.

언론플레이나 이미지 메이킹에 상당히 능하다.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신작의 프로모션 때문에 불가피할 때를 제외하면, 언론 인터뷰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지만, 이인화는 여성이나 청소년 대상 잡지에 자주 등장하고 일종의 연예인과 같은 이미지를 가꾸어 나갔다. 심지어는 아이돌들이 자기 홍보에 사용하는 네이버 캐스트에까지 나와서 썰을 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네이버 캐스트[23]

이렇기 때문에 이인화의 실제를 잘 알고 있는 문단-국문학계의 평가와 이인화가 만든 이미지만 보는 대중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대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이인화가 만든 이미지만 보고 그를 "천재소설가" 또는 "영민한 교수"로 알던 대중들은 이런 언행에 충격을 받았지만, 오랫동안 이인화의 행적을 알던 문단이나 학계 관계자들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5.2. 일빠

대부분의 극우인사들이 그렇듯이 상당한 일빠다. 일본어에도 상당히 능하다. 일본 역사, 특히 메이지 유신에 매우 심취해있다. 1990년대 중반 한겨레에 문학과 역사를 다루는 시리즈를 연재한 바 있는데, 러일전쟁에 참전한 일본군 장성인 노기 마레스케미화한 글을 기고했다가 독자들의 항의로 연재가 중단된 바 있다.일본사 연구가의 반박글

박정희를 미화한 소설 <인간의 길>도 시바 료타로시오노 나나미[24]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나, 역사를 재미있게 각색할 만한 소설가적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고 졸작이 되어 버렸다.[25] [26]

5.3. 게이머

리니지를 즐기고 있으며, 여기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기사 사실, 상당한 하드 유저로서, 실제 게임 사전을 대표 집필했는데 리니지의 내용이 다른 게임 항목들보다 많아 논란이 있었다. 심지어 게임 중독법 사태 때 그렇게 사이가 안 좋았던 진중권과 함께 한 목소리로 반대의견을 냈다.

본인조차 <지옥설계도>(2012)를 펴내면서 하루에 3시간 이상, 8년간 게임폐인으로 살았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 실제로 게임에 빠졌던 200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창작활동은 두드러지게 부진해지며, <지옥설계도>조차 범작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 폐인 시절에는 방학이 되자마자 PC방에 가서 며칠씩 폐인 생황을 하다가 아내에게 끌려온 적도 많다고 한다.[27] 길드워에서 본인이 플레이한 영상 녹화본을 자기 랩실 앞에 모니터로 틀어놓고 자랑하다가 지나가던 학장님께 혼나고 치운 에피소드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정신과 전문의인 그의 아내의 전문분야는 게임중독 치료라는 것. 본격 병주고 약주는 커플 여가시간에 게임을 즐기는 것은 자유겠지만, 본업인 연구나 창작에 소홀하면서까지 게임을 즐겼다는 것은 교육자로서 실격일 수 있다.

게임을 포함한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대해 많은 관심과 활동을 보였으며, 관련 저작도 3권 정도 썼다. 엔씨소프트에서 개발한 스토리 창작툴 스토리헬퍼 링크의 개발에도 깊이 관여한 바 있다. 이인화의 저작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 : 「리니지 2」바츠 해방 전쟁 이야기>(YES24 링크)바츠 해방전쟁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쉔무 온라인에 스토리 작가로 참여했으나 세가가 2007년 중국에서 철수하면서 개발을 포기했다. 게임 길드워의 스토리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기사를 보면 실제 스토리 작가진은 따로 있고 개발 막바지에 아주 약간 감수를 해준 듯 보인다[28]

2010년, 넥슨에서 서비스하는 웹 전쟁게임 열혈삼국이 반사회적이고 패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며 비판하는 컬럼을 조선일보에 게재하였다. 링크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류철균 본인이 이 게임을 플레이하던 중, 거대 길드와 분쟁이 일어나 참패하자 국민신문고에 신고하고, 이마저 통하지 않자 본인의 지위를 이용해 신문 컬럼으로 게임 자체를 비난한 것이다(...) 졸렬의 극을 달리는 언론플레이라 할 수 있겠다. 동아일보 기사

6. 작품 목록

6.1. 소설

  •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 1992, 등단작[29]
  • 영원한 제국 - 1993, 영화화
  • 인간의 길 -1997[30]
  • 초원의 향기 - 1998[31]
  • 잊혀진 자의 고백 - 1998
  • 시인의 별 - 2000, 제24회 이상문학상 수상작[32]
  • 초원을 걷는 남자 - 2000, 제2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자선 수록작
  • 려인 - 2001, 제8회 21세기문학상 수상작
  • 하늘꽃 - 2002
  • 하비로 - 2004
  • 지옥설계도 - 2012

6.2. 기타 저서

  • 디지털 스토리텔링 - 2003, 전경란 등 공저
  •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 - 2005, 부제에서부터 바츠 해방 전쟁에 대한 내용임을 밝히고 있다.
  • 피닉스의 불 - 2007, 과학 학습만화 스토리 담당
  • 스토리텔링 진화론 - 2014
  •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이해 - 2015, 한혜원 등 공저[33]
  • 게임사전 - 2016

6.3. 번역한 책

7. 틀 둘러보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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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후술하듯이 2018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집유 2년 확정판결을 받은 후 교수직에서 해임되었다.
  2. [2] 이런 점에서 보듯 한국 독자들이나 문단은 가요계보다도 표절에 대해 더 관대하다. 이인화보다 더욱 심각한 표절을 저지른 신경숙만 보더라도 옹호자들이 있을 정도이니.
  3. [3] 범 안동권 양반 가문인 재령 이씨. 이문열의 소설 선택의 주인공인,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은 재령 이씨 가문에 시집 온 여성으로, 이문열의 조상이다.
  4. [4] 절대권력자가 다스리는 독재국가
  5. [5] 당연히 이러한 류철균의 독재 옹호 주장에 대해서는 훌륭한 반면교사가 존재한다.
  6. [6] 리얼리즘과 상극인 자신을 띄우기 위해, 속된 말로 자기가 짱 먹기 위해서라는 견해가 강하다.
  7. [7] 1993년 창간 당시엔 편집장은 소설가 주인석, 편집위원으로는 임재철, 서영채, 강헌, 김종엽이 있었고, 잡지의 지향점은 문학을 중심으로 한 문화 전반에 대한 신세대적 접근에 가까웠다. 이런 성격은 이후 《리뷰》, 《이매진》 등으로 이어진다.
  8. [8] 이 둘은 사실 이인화의 참여 이전, 잡지 창간 때부터 황지우, 박광수와 함께 자문위원으로 참여해왔었다.
  9. [9] 장정일은 문재인 지지자이며, 김탁환은 세월호 사건을 다룬 소설 <거짓말이다>를 펴낸 바 있다.
  10. [10] 유명해진 진중권은 정치논객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훗날 강준만 교수와 같은 이들과 안티조선 운동을 펼쳐 결국 조중동 전체의 영향력을 크게 감소시켰다.
  11. [11] 한겨레에서 당시 겪었던 기분을 회고하기를 "마치 강간당한 느낌이었다"고.#
  12. [12] 예를 들어 학점조작 지시에 난색을 표한 조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하고 이후 학점조작 사건이 드러나자 자신의 압박에 의해 할 수 없이 조작된 학점을 입력한 조교도 공범이라고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죄를 뒤집어 씌우려던 행태 등
  13. [13] 훗날 진중권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버리는 책이고, 1997년 막 박정희 신화가 일어나고 있었을 때 그걸 제압하려고 썼는데, 결국 실패해 박근혜가 대통령 된 사태가 벌어졌다"며, 그 때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집필 계기를 제공했던 류철균에 대해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박정희 소설(<인간의 길>)도 쓰고 난리도 아니더니 그 소동의 최종결과가 가히 예술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결국 감방에 갔으니까."라고 비웃었다. #
  14. [14] 당시 안티조선 운동은 현재의 진보진영의 논객들이나 인재들이 데뷔하는 통로였다. 진중권, 홍세화, 고종석, 유시민, 강준만 등등의 여러 쟁쟁한 논객들이 여기에 참가하고 있었다.
  15. [15] 이 사건은 2001년 DJ정부가 조선일보에 세무조사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DJ정부가 조선일보에 악감정을 가지고 세무조사를 실시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세무조사 자체는 정당한 법집행일 뿐더러(즉 조선일보가 탈세와 무관했다면 정부의 세무조사로 불이익을 받을일은 없었다) 이인화가 군사독재시절 친여적 입장에서 항상 김대중 및 민주화운동을 친북 또는 좌경으로 흑색선전을 일삼던 조선일보를 나치에 탄압받은 양심적 문학가로 비유한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16. [16] 한겨레 신문에 이런 컬럼이 실린 것이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박정희 신드롬에 대해 진단하는 기획기사를 내면서 박정희 찬양측의 입장으로 이인화의 글을 실어준 것이다. 반대측 입장으로는 홍세화의 글이 실렸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7. [17] 김윤식은 국문학계의 거장이긴 하지만, 말년에 표절 논란에 휘말려 들었다. # 다만 위에서 말한 표절에 관대한 문단 및, 국문학계를 지배하는 서울대 국문과 인맥 때문에 이런 사실은 대중에 크게 알려지지 못했다.
  18. [18] 이화여대 교수가 될 때에도 이화여대 국문과의 태두였던 이어령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다만 이어령 선생의 경우 조정래가 소설 아리랑을 쓰기 위해 중국으로 취재를 떠날 당시(그때는 아직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문교부 장관으로써 '장관 보증'을 대 주어 조정래가 무사히 중국으로 취재 여행을 떠날 수 있었고, 그의 소설 태백산맥국가보안법 시비에 휘말려 대검찰청에서 내사에 들어갔을 때에도 자문을 구하는 검찰에 대해 평론가 김상일을 통해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의해서 씌여진 '신판 홍길동전'이다"라는 의견을 제시해 대검찰청에서 해당 사건의 사건화를 유보하는 한 계기가 되었으며, 그 이전에도 이른바 분지 필화사건 때에도 법정에 출석해 "달을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남씨(남정현)가 가리키는 달은 주체적인 한국문화이며 ‘어머니’로 상징되는 조국이다. 장미의 뿌리는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서 쓰여졌다고 해서 장미뿌리는 파이프를 위해서 자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작품은 작가가 썼지만 일반에게 발표가 된 뒤에는 작가만의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독자가 멋대로 해석해서도 안 된다. 작품 속에 담긴 상징성은 그대로 존중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남정현을 보호하려 애쓰는 등, '극우'라고는 결코 볼 수 없는 인물이다.
  19. [19] 이인화의 가장 성공작인 《영원한 제국》은 《장미의 이름》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작품이며, 진정한 천재 소설가는 이인화가 아니라 움베르토 에코다.
  20. [20] 인문학 전공 학자들은 설령 명문대 박사 학위를 가졌다고 해도 대학에서 정규 교수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인문학 분야는 정규직의 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 웬만한 연구 업적을 가지고서는 명문대 교수되기란 하늘의 별따기며, 중간에 기업으로 갈 수 있는 공대나 상경계보다도 더 어려운 사정이다. 이인화와 비슷한 레벨의 인문학 전공의 국내박사 학위자라면, 30대 중반까지는 박사를 막 받고 시간강사로 돌다가, 30대 후반에 연구에 탁월한 업적이 있거나 혹은 운이 엄청나게 좋으면 지방대 전임강사부터 시작하고, 그 자리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부교수에서 정교수 승진할 때인 40대 중후반쯤 서울에 있는 학교로 전직하는게 그 바닥의 테크인데, 이인화는 20대 후반부터 남들이 40대 후반에야 올라가는 자리를 꿰찼으니, 이인화가 얼마나 출세지향적으로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21. [21] 대체로 10여년 가량 빨리 학계에 자리를 잡은 셈이다. 즉, 전임강사나 조교수 같은 정식 교수로 위촉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30대 후반 ~ 40대 초반인데, 이인화는 그걸 10여 년이나 빨리 달성한 셈.
  22. [22] 소위 먹물의 글. 대표적인 극우문인인 이문열이나 복거일과 같은 사람들의 글은 감정의 과잉이나 소설가적 과장으로 선동하듯이 좌파를 공격하지만, 이인화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문장으로 "좌파의 위선"을 지적하는 식이다.
  23. [23] 물론 이 네이버 캐스트의 서재 시리즈에는 많은 명사들이 나온다. 그중에는 진짜로 문단에서 인정받는 소설가 한강(소설가)도 있다. 하지만 이인화는 이런 시리즈를 자신의 겉과 속이 다른 이미지 메이킹에 이용하는데 적극적이었다.
  24. [24] <인간의 길>을 관통하는 주제는 마키아벨리즘과 영웅사관인데 체사레 보르자카이사르를 숭배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사관과 거의 일치한다.
  25. [25] 이건 여담이지만, 박정희는 자신이 비밀 광복군이었다는 소설을 받아들자, "내가 어디 광복군이냐, 누가 이따위 책을 쓰라고 했냐"면서 오히려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만약 박정희가 살아생전에 이인화가 쓴 인간의 길처럼 자기를 미화한 소설을 읽었다면, 그리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
  26. [26] 그도 그럴게 박정희가 살아있을 당시는 당연히 광복군들도 박정희와 비슷한 연배로 멀쩡하고 정정하게 살아있을 시절이었고 국민들도 박정희가 친일파 일본군관출신이라는건 다 알고 있었을 시절이었다.... 당연히 좀 잘보여서 한자리 해먹으려는 어거지 이미지 메이킹이 본인에게는 역효과라는걸 정치인으로서 잘 아는 박정희는 좋아할 수가 없다.
  27. [27] 교수 초기 시절 곱게 가르마를 탄 헤어스타일에 항상 외출시 넥타이에 바바리코트 차림의 우아한 모습을 보였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 게임 폐인으로 살면서부터 헤어스타일도 더벅머리에 넥타이는 생략하고, 심지어 옷차림마저 간소화되는 등의 스타일 변화를 눈치챌 수 있다.
  28. [28] 2005년 1월에 엔씨의 연락을 받고 스토리에 참여했다는데 게임 발매가 당해 4월이었다. 또 군사훈련소를 성인식으로 바꾸자고 했는데 게임상 훈련소는 그대로 있다...발매를 3개월 놔두고 주요 스토리를 수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29. [29] 군사 쿠데타가 다시 일어나기를 노골적으로 바라는 내용이다(...) 진중권이 이 소설을 가지고 자기 정체성을 왜 남한테 묻느냐고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서 비꼬았다.
  30. [30] 박정희를 주인공으로 한 대하 역사 소설이라고 각 언론과 문인들이 굉장히 크게 떠들었으나, 막상 3권에서 그치고 그 뒤로 감감무소식(...) 사실 그럴만도 한 게, 박정희 숭배자들은 박정희를 나폴레옹과 동일시하지만, 박정희의 인생은 나폴레옹에 비하면 세계사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것도 없고 무슨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거나 하는 극적인 요소도 별로 없어서 흥미나 볼거리 자체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인생을 소설로 각색을 한다고 해도... 그리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막말로 박정희가 군대를 이끌고 북한을 흡수통일했다거나, 아니면 중국 일본과 전쟁을 벌여서 수도를 점령하는 등의 대승리를 거둔 적도 없지 않은가?
  31. [31] 원래는 동아일보에서 연재되던 역사소설인데, 당나라에 고구려가 망한 이후 실존인물 고문간이 이끄는 고구려 유민들이 중국과 돌궐(몽골 초원) 지역을 떠돌면서 겪은 일들을 다루었다. 그런데 책으로 나왔을 때는 동아일보 연재 때와 줄거리가 상당히 달라졌다. 예를 들어 동아일보 연재 소설에서 주인공 고문간은 고구려 왕족이었는데 책에서는 그냥 고구려 백성으로 왕족을 사칭한 것으로 설정이 바뀌었고, 돌궐 카간 묵철의 아내이자 돌궐인이었던 여주인공 아란두는 책에서 고구려의 종교인 동방교의 여사제이자 고구려인으로 설정이 바뀌었다. 다만 동아일보 연재분이나 출판분에서나 모두 주인공인 고구려 유민 고문간이 아란두와 불륜을 저지른다는 점은 똑같다. 또한 동아일보 연재분에서는 주인공 고문간이 네스토리우스교 사제를 상대로 "우리(고구려인들)의 신들은 모두 왕들이었지, 당신네 종교에서처럼 가난뱅이 목수(예수)가 아니었다."는 식으로 날이 선 논쟁을 벌이는 내용이 나왔는데, 출판분에서는 그런 내용이 다 삭제되고 대신 고문간과 네스토리우스교 사제가 서로의 신앙을 인정하는 훈훈한 내용으로 바뀌었다(...)
  32. [32] 단편 역사소설인데, 시대는 고려 말엽으로 고려의 선비가 자기 마누라를 몽골 왕족한테 빼앗겨서 몽골 초원까지 찾아긴다는 내용이다(...) 저자 본인이 이 소설의 앞머리에다 알라신의 신성을 체험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자화자찬을 했다(...) 정작 소설 내용은 그리 신성하지도 않다.
  33. [33] 특이하게도 이 책만은 본명인 '류철균'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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