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역임한 직위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나라당 원내총무

제6대
정창화

제7대
이재오

제8대
이규택

한나라당 원내대표

제11대
강재섭

제12대
이재오

제13대
김형오


늘푸른한국당 대표

창당

초대
이재오
·최병국

제2대
이재오

초대
이재오·
최병국

제2대
이재오

해산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은평구 을)

제14대
이원형

제15~17대
이재오

제18대
문국현

제18대
문국현[1]

제18·19대
이재오

제20대
강병원

}}}

이름

이재오(李在五)

출생일

1945년 1월 11일 (73세)

출생지

강원도 강릉군 묵호읍 부곡리[2]

본관

재령 이씨

종교

개신교(장로교)

가족

배우자 추영례, 슬하 1남 2녀

학력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학 석사

소속 정당

자유한국당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15, 16, 17, 18, 19

현직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약력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
민중당 사무총장
제15대 국회의원(서울 은평구 을)
제16대 국회의원(서울 은평구 을)
한나라당 원내총무
제17대 국회의원(서울 은평구 을)
한나라당 원내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
제2대 국민권익위원장
제18대 국회의원(서울 은평구 을)
제2대 특임장관
제19대 국회의원(서울 은평구 을)
늘푸른한국당 대표

외부 링크

블로그, 트위터, 인스타그램[3]

1. 개요
2. 생애
3. 정치인 생활
4. 이야깃거리
5. 선거이력
6. 둘러보기

1. 개요

한때는 운동권의 전설, 지금은 보수진영의 거물 정치인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출신 5선 국회의원. 이명박 정부 초반이었던 2008년이명박을 가장 옆에서 보좌했던 인물로 지금도 4대강 정비 사업대운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때문에 친노, 진보(더불어민주당, 정의당)진영에서 지금도 상당한 비판[4]을 받는 인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비판, 적대적인 이유로 친박 진영에서도 비판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는 이명박이 비리 혐의로 피의자가 된 상태에서도 이명박을 전적으로 옹호하는 발언을 계속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2. 생애

1945년 1월 11일, 강원도 강릉군 묵호읍(현 동해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재령. 이후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성장해 영양고등학교, 중앙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학생 시절이던 1964년 6.3 항쟁에 참여하였다.[5]

이후 서울대성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를 역임하였는데 당시 가르친 제자들 중 한 명이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국회의원이다. 이후 재야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였다. 1979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 자격으로 경북 안동댐을 방문했다가, 현장에 박정희의 방생기념탑은 크게 선 반면 안동댐 건설 공사로 숨진 노동자들의 위령탑은 초라하게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이 10월 유신독재의 실체"라고 비판했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구속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재야 민주화운동에 몸담았는데, 본인은 이후 민주운동으로 인한 옥살이 5번 중 3번을 박정희 시절에 겪었다며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참고로 박정희 ~ 전두환 시절에는 자그마치 10년 6개월 간 옥살이를 했고 제6공화국노태우 정부 시절에도 사찰을 당했다! 이런데 군부독재의 후예로서 독선, 권위적인 박근혜에게 절대 호감을 가질 리 만무하며,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서는 여러모로 새누리당 내에서도 박근혜친박에게 계속 적대적인 스탠스를 취하며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제대로 주장했던 편. 단적으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때도 유족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박근혜를 비난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독립군 활동을 했다고 한다. 노무현 정권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친일파 청산을 위해 친일법을 통과시키려고 했는데, 당시 친일법 대상을 촘촘히 해야한다고 발언했던 김희선 의원의 부친이 만주국 공안국 특무경찰로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김일련이었고 당시 독립군이었던 이재오의 아버지를 김일련이 잡아넣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

3. 정치인 생활

김문수와 함께 정치성향이 크게 변화한 인물중 한명[6]

1990년 진보정당 민중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중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이원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4년 김문수, 이우재 등과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정치국민회의 이원형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같은 선거구에서 현재까지 한나라당, 새누리당 소속으로 5선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계파 갈등[7] 속에 치러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창조한국당문국현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가, 문국현이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자 이후 치러진 2010년 재보궐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원외 신분이던 2009년부터 2010년까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는데, 친이계 실세라서 당시 국민권익위원회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친이계 좌장으로 친박계와 다툼을 자주 벌였고, 실제 친이계가 당권을 잡은 18대 총선에선 친박계 공천학살을 주도했다는 의혹도 있다.[8] 당연히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판하는 등 박근혜와도 사이가 좋지 않아 2012년 박근혜가 당권을 장악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자신을 제외한 측근들이 모두 공천에서 대거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9] 그 이후로도 사실상 비박계랑 손잡고 19대 국회 내내 친박계와 박근혜를 비판하다 결국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여 결국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비박계 김무성 대표가 당직인 파동까지 벌이며 은평 을에 대해 무공천 선언하며 당선 가능성이 높아졌고, 실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진보 진영의 표가 분산되어이재오 의원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정의당김제남 의원이 더불어민주당강병원 후보와 단일화를 하면서 분위기가 전환되었고, 강병원 후보의 당선으로 이재오 의원의 6선 도전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재 오디로?

총선 이후 새누리당에 복당하지 않고 최병국 전 의원과 함께 중도 신당을 만들었다. 가치는 중도와 민생우선주의. 가칭은 '늘푸른한국당'으로 정했다고 한다.

2016년 말 박근혜 정부 최악의 오점으로 남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박근혜 까기에 한층 열을 올리고 있다. 아싸 신난다 특히 11월 20일 검찰이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하자, 21일 박근혜 대통령의 검찰수사 전면 거부와 관련 "국민들은 대통령을 뽑을 권리와 의무도 있지만, 범죄자인 대통령끌어내릴 권리와 의무도 있다"며 맹디스를 날렸다. 그러면서 "범죄자를 대통령으로 받들고 그 하수인이 된 새누리당도 공범이다. 더이상 당이 존립할 근거가 없다. 즉각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이 날, 이명박"참담한 심정이다. 박근혜는 민심에 따라 당장 퇴진해야 한다."라며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현재, 늘푸른한국당을 본격적으로 출범시킬 준비를 하면서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정치를 할지 자기 소신을 밝히는 강의를 하고 있다.

2017년 1월 11일, 드디어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하였다.[10]

2017년 2월 28일, 늘푸른한국당에서는 이재오를 대선 후보로 추대하기로 했다. 단, 이재오는 "이 자리에서 수락할 순 없고 깊은 고민은 해 보겠다."고 하여 아직까지는 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 아무래도 "공직에 나서지 않겠다."는 기존 약속을 번복해야 하는지라...[11] 결국 2017년 3월 20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다.

대선 후보 등록 후 2017년 4월 17일 사진처럼 복면을 하고 나와서 대선 후보간 복면 토론을 제안하였다. 이재오가 친이계 및 정치계의 중진급 인사이기는 하나 아직 늘푸른한국당이 원외 정당인데다가 역대급의 사태가 터져 보수계열 정당의 당선 확률 자체가 희박한 만큼 차차기 친이계 재건 및 대권을 노린 대선 출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동네 정치대장

4월 24일 토론회에서는 그래도 정치계에서 잔뼈가 굵었던 사람답게 장성민과 더불어 다른 군소후보들과 달리 정계 중진인사답게 토론을 잘 했고 9명 중 제일 정상적이라는 평가[12]를 받고 있다. 그러나 특유의 쉰 목소리 때문인지 어딘가 모르게 답답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은 아쉬운 점. 그래도 오영국 같이 정말 허황된 공약들을 내세우는 군소후보들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체계적으로 짜인 공약들+진보적 통일관은 그가 괜히 5선 의원에 특임장관까지 역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 실제로 이 토론에서의 승자는 이재오라는 게 중론이다.[13]

신6자회담, 남북자유왕래, 한반도평화조약 등 놀랍게도 참여정부 내지 정의당[14]급 정도 되는 진보계에서나 나올 법한 통일관이야말로 이재오 특유의 노련미가 돋보였고 이것 덕분에 마이너 토론회에서 이재오가 제일 정상적이었다는 반응이 나왔던 것. 오히려 일부 극우인사들은 이재오의 통일관은 종북수준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평을 내기도 하였다(...). 근디 안철수는 왜 지지혔냐종박 무리들이 문재인 이상으로 이재오를 종북, 빨갱이 등으로 취급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긴 새누리당스럽지 않은 진보적 통일관으로 인해 극우 인사에게 종북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게다가 후보 15인 중에서 전과에 유일하게 반공법 위반이 있다(!). 그 유명한 주사파 NL 김선동도 없는 항목이! 같이 민자당 입당했던 이우재열린우리당 입당해야 할 수준

그러나 정작 5월 9일 대선에서 그는 1만 표도 얻지 못하며 12위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낙선한다. 꼴찌는 허황된 공약을 내세우고 토론도 트롤링 수준으로 했던 오영국. 정치 경력을 감안하면 사실상 꼴찌나 다름없다. 심지어 광주와 제주에서 오영국에게 패했다. 5선 의원과 장관 출신이라는 그의 이력과 72세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를 생각하면 정치인생에 치명타란 평가 또한 있지만, 이번 대선은 어디까지나 일반 대중들에게 신생정당인 늘푸른한국당을 알리기 위해 출마한 것에 가깝기 때문에 정치생명에 큰 타격은 없을 거란 평가도 많다.[15][16]

여담으로 투표권이 없는 10대들이 '청소년이 직접 뽑는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운동본부'의 주최하에 대선 모의 투표를 했는데 60,075표중 13표를 획득하며 꼴찌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압력이 가해지는 와중, 2017년 12월 5일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에서 이명박에게 매우 적대적인 기자인 주진우와 만나서 약 1시간 반가량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방송 듣기 또한,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이후로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또한 채널A의 외부자들이란 시사 프로그램에서 이명박 공격수로 가장 유명한 정봉주[17]와도 두 차례에 걸쳐 살벌한 설전을 벌이면서 처음에는 정봉주가 '의리는 좋지만 이젠 떠나실 때 됐는데' 라고 말하자 이재오는 '없는 사람들끼리 의리라도 있어야 되지 않나'라며 거절했고(외부자들 47회), 두 번째로 마주치게 됐을때는 이재오가 정봉주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기에 이른다.(외부자들 56회)[18] 다만, 두 번째에는 김백준과 국정원 특수활동비유용건이 걸려들어가면서 이명박이 궁지에 몰리게 된 만큼 그전까지는 정봉주와 진중권에게 밀리지 않던 이재오가 두 번째에서는 이재오를 상대하던 정봉주와 진중권은 눈을 질끈 감거나 어이없다는 듯 혀를 끌끌 차는 상황이 나오게 된다.

이명박 前 대통령에 대해 수사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당권을 휘어 잡은 후 박근혜를 쳐내고 서청원을 필두로 한 친박 청산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이재오 대표에게 계속 교류를 시도하면서 예전에 비해 자유한국당과 가까이 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보수통합과 강한 야당역할에 힘을 실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친이계 내의 의중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후 철새 보수 통합을 명목으로 늘푸른한국당을 해체하고, 2018년 2월 12일, 자유한국당에 복당하였다.

4. 이야깃거리

  • 저서로 '한국학생운동사'가 있다. 1984년 초판이 나왔다. 이 책은 1945년부터 1979년까지 학생운동의 역사를 직접 활동하던 운동권 출신이 쓴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학생운동사 관련으로는 굉장히 가치가 높은 저서로 평가받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워낙 의미가 있다 보니 꾸준히 재판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보수당 국회의원이 쓴 최초의 책이 학생운동사
  • 행정구역 개편에 관심있는 정치인 중 하나라서 여러 번 자신만의 ( 폐지 뉘앙스를 지닌) 행정제도 개편안을 제안한 적이 있다. 전국을 50여 개 광역시로 개편하자는 것. 23부제?내각제에 관심이 있어서 이원집정부제를 골자로 한[19] 개헌 제안도 종종 하고 있다. 이는 그가 차린 정당인 늘푸른한국당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 우연의 일치인지 이명박 대통령과 이재오는 같은 경주 이씨이다. (정확히는 이재오는 경주 이씨에서 갈라져 나온 재령 이씨이다.) 다만 항렬상으로는 이재오가 이명박의 손자뻘이다. 좌장인데다가 이명박과 호형호제 할 정도로 매우 친밀한 사이라서 현재도 자주 만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하곤 사이가 안 좋지 않았나 참고로 2010년대 들어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과도 같은 항렬이다.
  • 국회 신상 발언에서 "나 같은 사람이 청춘을 바쳐 민주화 운동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가능했던 것", "노무현 대통령은 독재하에서 경찰서 유치장도 한 번 안 가본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로[20] 자신이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 민중당 사무총장시절 자금모금을 위해 민주당 지지자였던 유명가수 민해경을 섭외해서 디너갈라쇼 기획을 했다고 한다. 민해경은 무료로 출연했고 수입은 민중당에 기부했다고 한다.
  • 손학규 前 경기도지사도 이명박, 이재오와 6.3 항쟁에서 같이 했었던 만큼, 셋과의 친분도 상당히 있다. 또한 노무현 前 대통령과도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 #
  • 2013년 영화 변호인을 관람한 후 "잊고 살았던 고문 당한 전신이 스믈스믈거리고 온몸이 근질근질하고 전신이 옥죄이면서 아파온다. 비단 나뿐일까? 아, 그런데 지금 이 나라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눈물이 난다"라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 보수정당에 대해 '독재당이다, 수구보수꼴통당이다 이런 소릴 탈피하자'고 하는 걸 봐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적 가치를 신봉하는듯. 그가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친박계와 견원지간으로 지낸 것도 이런 그의 사상적 신념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 2014년 12월 29일 올라온 노유진의 정치까페에 보수 여당 의원 중 최초이자 마지막 게스트로 출연해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 교수와 정치 입문 계기부터 시작해서 MB 정권 시절 일들과 박근혜정부 평가 등 여러 뼈 있는 만담을 나눴다. 본인 왈 야당보다도 당시 여당인 보수를 개혁하는 게 급선무란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보수 정당으로 입문한 게 컸다고.
  • 2016년 4월 6일 저녁 8시경, 서울 은평 을에서 유세 중 한 취객에게 "(국회의원) 그만 해먹어라, 왜 자꾸 나오냐"(...)라며 가슴을 타격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만 사건 이후에도 이재오 후보는 별 문제없이 선거 유세운동을 진행했으며, 경찰은 경범죄 혐의로 취객을 체포했다. 이와 연관되어 19대 총선 때 은평구를 위해 마무리하지 못한 지역사업이 있다는 취지로 마지막 총선이라는 말을 했는데, 20대 총선 때도 비슷한 말을 하며 이번이 마지막 선거라고 해서 타격당한 거 아니냔 웃픈 소리가 떠돌기도 했다.
  • 엄청난 자덕이다. 친한 이명박도 상당한 자덕이라 이명박과도 같이 타고 다니기도 한다. 이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겪었는데, 2007년 10월 자동차 전용 도로인 올림픽대로에서 자전거를 탄 혐의로 즉결심판에 넘겨진 적이 있었다(...). 한반도 대운하 자전거 탐방을 마치고 서울로 오던 중이었는데, 같이 자전거를 타던 관계자 13명도 함께 즉결심판에 회부됐다고.# 차기 정권 실세도 안 봐주는 경찰관 오오
  • 분명 보수 정당 출신이고 새로 창당한 늘푸른한국당도 중도보수계 정당이긴 한데,[22] 언론에서는 보수 계열 후보로 분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조원진남재준도 보수 성향으로 분류하는 판에... 다만, 일반적으로는 이재오 역시 보수계열 후보로 인정하는 편이다.
  • 이재오의 이름 석자의 뜻을 해석하면 있을 재(在)에 다섯 오(五)인데, 흥미로운 점은 이재오는 민주화 운동으로 감옥을 5번을 갔었고, 국회의원을 5선을 했단 거다. 또 이재오의 선조가 그 유명한 갈암 이현일인데 골수야당인 남인의 대표격 인물이라는 것도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 한 때는 서청원과 친분이 있었지만 2007년부터는 견원지간이 되었다.[23]
  • 국민의당 창당 당시 국민의당에게 영입 제안을 받은 적도 있다. 그래도 다시 보수

5. 선거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은평구 을)

민중당

21,716 (17.4%)

낙선 (4위)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은평구 을)

신한국당

48,146 (43.6%)

당선 (1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은평구 을)

한나라당

53,121 (51.0%)

당선 (1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은평구 을)

한나라당

53,107 (45.3%)

당선 (1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은평구 을)

한나라당

38,164 (40.8%)

낙선 (2위)

2010

2010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18대 국회 서울 은평구 을)[24]

한나라당

48,311 (58.3%)

당선 (1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은평구 을)

새누리당

63,238 (49.5%)

당선 (1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은평구 을)

무소속

34,318 (29.5%)

낙선 (2위)

2017

제19대 대통령 선거[25]

늘푸른한국당

9,140 (0.02%)

낙선 (12위)

6. 둘러보기


  1. [1] 의원직 상실
  2. [2]강원도 동해시 부곡동
  3. [3] 세 페이지 모두 2016년 총선 낙선 이후로는 별도로 관리하고 있진 않다. 공식 홈페이지가 있었으나 2017년 현재는 접속할 수 없다고 뜬다.
  4. [4] 다만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강한 비판은 받지 않는데 운동권의 전설이였던 과거와 여전히 버리지 않은 개혁적인 성향, 그리고 친박세력과 적대적이라는 점 때문인 듯 하다.
  5. [5] 이때 이명박, 손학규와도 친분이 생겼다.
  6. [6] 물론 김문수처럼 극우적인 행보를 보인 것은 아니다. 19대 대선 공약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개혁적인 성향을 버리지 않았고 친박 진영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이 한다. 쉽게 말해 현재 안철수의 행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7. [7] 이거 때문에 친박계가 한나라당을 나와 친박연대를 결성했다. 게다가 친박계는 이명박의 오른팔 중 하나인 이방호를 밀어내기 위해 아예 대놓고 강기갑을 팍팍 밀어주는, 희대의 정치 코미디가 벌어지기도 했다.
  8. [8] 그래서인지 박사모가 18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이재오, 이방호 낙선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9. [9] 다만 이 때는 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 공천 때 친박 중진들이 대거 학살당한 것과는 달리 19대때는 친이계 중진들은 거의다 공천을받았고, 친이계 초재선이 대거 컷오프됐다는 차이점이 있다.
  10. [10] 이명박 대통령이 축하 인사차 나오지 않았는데, 이는 여론 동향을 의식한 것으로 여겨진다. 추후에 어떤 형태로든 언론에도 이명박이 소극적으로라도 지원하는 것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
  11. [11] 더군다나 이재오가 정운찬의 늘푸른한국당 영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도 한 몫 한다. 정운찬을 늘푸른한국당 대선주자로 세우는 것을 추진하기도 했다.
  12. [12] 조원진 vs 김선동병림픽, 오영국의 특이한 기행+제비족 내지 트로트 가수를 연상시키는 복장 등과 대비하여(...) 그렇다는 얘기.
  13. [13] 당시 19대 대선 후보자 토론-비초청 영상
  14. [14] 한반도평화조약은 심상정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다.
  15. [15]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 이재오와 늘푸른한국당의 행보는 대통령 당선에 중점을 두지 않고, 늘푸른한국당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대선 출마에 가까웠다(1년 내로 개혁하고 사임이란 공약 자체가 이를 의미한다). 애초에 속칭 제3지대가 축소되고 친박의 의석 빼고는 친이계 및 제3지대의 의석이 적어서 제3지대에서 대통령을 당선시킬 변수 자체도 적었고.
  16. [16] 사실, 의석이 적은 정당에서도 대통령 배출이 힘든 마당에, 의석이 없는 정당에서는 대통령 당선은 사실상 절대 불가능하다. 17대 대선의 이회창 득표율이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재오도 늘푸른한국당이라는 정당을 알리기 위한 출마를 계획한 듯.
  17. [17] 참고로 정봉주는 진중권이나 주진우를 능가할 정도로 이명박을 가장 맹렬하게 공격했던 인물이다.
  18. [18] 실제로 정봉주는 가장 맹렬하게 이명박을 공격해서 친이계 중진들한테도 찍히다시피 했다.
  19. [19] 이재오의 제안은 "대통령이 비상대권과 외치(국방, 외교, 통일)"를 맡고, 국회에서 이루어진 "총리 내각이 내치(경제, 사회 등)"를 맡는 방안이다. 일종의 이원집정부제와 비슷하다 보면 되겠다.
  20. [20]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권 & 노동 변호사 시절인 1987년 구속당한 적이 있다.
  21. [21] 다만 정운찬 역시 친박과 박근혜를 매우 싫어하기에, 자유한국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없다. 당장에 친이계 인사이자 이재오와 함께 차기 친이계의 대권주자로 손꼽혔던 정운찬이 박근혜와 친박에게 호감 자체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22. [22] 19대 대선 때 이재오 또한 김종필을 예방하기도 했었는데, 이는 늘푸른한국당도 보수색을 가진 정당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그리고 김종필은 이재오와 홍준표 앞에서 문재인을 그 베라먹을 자식이라고 비난했다
  23. [23] 실제로 서청원은 이명박, 이재오, 손학규와 마찬가지로 6.3 항쟁에 참여했던 인물이었고, 이 때문인지 이명박과도 인연이 있는 사이였으나, 2007년 이후로 사이가 크게 나빠졌다고 한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부터 이명박이 서청원을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친이계와 친이계의 중진인 이재오가 당권을 잡았을 때, 서청원은 2008년 한나라당 공천에서 바로 광탈했다.
  24. [24] 전임자 문국현 의원직 상실
  25. [25] 전임자 박근혜 탄핵 인용에 따른 파면으로 인한 궐위에 의한 선거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sta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