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록

1. 개요
2. 특징
3. 역사
3.1. 배경
3.2. 태동기
3.3. 1970년대
3.4. 1980년대
3.5. 1990년대
3.6. 2000년대
3.7. 2010년대
4. 기타
5. 관련 문서

1. 개요

갈라파고스화된 일본 음악 시장의 유일한 희망이자 생명줄

일본에서 제작/연주되는 록 음악이다. 통칭 J-rock(제이락은 일반적으로 1980년대 이후의 일본 록을 가리킨다. 이 문서에서는 일본 전반적인 록 음악을 설명하였다.)

2. 특징

주로 영미록의 조류를 따르면서도 일본식으로 바뀌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특유의 멜로디는 일본식 '요나누키음계'때문. 4도 7도음을 빼는 것인데 영미록에서 쓰는 펜타토닉 스케일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일본 록이 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일본에서 인기가 좋았던 퀸, 본조비 등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경향도 있다. 또한 영미록에 비해 키보드가 많다. 영미권에서 키보드는 따로 포지션을 배당하지 않고 필요시 다른 포지션(주로 보컬)이 겸임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일본 록은 따로 키보디스트가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유독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던 록밴드 딥퍼플(존로드), 퀸(프레디머큐리)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싶다.

3. 역사

3.1. 배경

일본은 동아시아의 국가 중 외국의 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국가다. 제1차세계 대전 당시에는 연합군의 편에 서서 싸웠을 정도였고, 세계 각국의 나라와 수많은 교류가 있던 나라다. 그로 인해 일본은 1920년대부터 재즈 풍의 음악이 수입되었고,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의 자유분방한 풍조에 따라 일본 대도시의 곳곳에는 댄스홀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댄스홀을 중심으로 서구식 대중음악이 퍼지기 시작한다.[1]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의 국제연맹 탈퇴, 태평양 전쟁 발발을 거치면서 이러한 "귀축영미"의 음악은 금기시되었다. 하지만 적대국이 아니었던 아르헨티나, 브라질(일본에서 이민 온 사람들의 후손이 많은 편이다.), 멕시코, 쿠바 등의 중남미 음악이나 추축국이었던 이탈리아, 스페인의 음악은 계속 유입되었다. 이는 훗날 일본의 라틴 음악 붐에 큰 자양분으로 작용한다.[2]

한국에서는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록 음악이 쉽게 발달하기 어려웠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대조적이다.

여하튼 이렇게 외부의 문화를 무리없이 받아들이는 풍조는 이후 일본음악의 유연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3.2. 태동기

패전 후 일본은 미군정의 지배를 받으며 급격히 "아메리카나이징"이 되어간다. 사실상 전쟁 전의 문화와 전쟁 후의 문화는 완전히 단절된다. 이제 일본은 개인이 멸사봉공하여 국가의 부속품으로, 국가가 움직이는 대로의 국가가 아닌, 개개인이 향락을 추구하는데 있어 거리낌이 없는 국가로 변한다.[3]

1950년대부터 일본은 로큰롤 음악이 빠르게 유입된다. 엘비스 프레슬리, 진 빈센트, 척 베리등의 뮤지션들의 음악이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퍼지게 된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그렇게 큰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미소라 히바리후랑크 나가이같은 엔카 가수들이 엄연히 메인스트림을 장악하고 있었다.[4] 그렇기에 서양음악은 일종의 소스로 쓰였을 뿐, 그 자체로 새로운 음악이 되지는 못했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 시기에 로큰롤이 유행했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태양족이라는 일본식 테디보이 서브컬쳐가 생겨났지만, 사실상 외양은 비슷했지만 로큰롤 자체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이 당시 로큰롤을 잘 발음을 못해서(로-꾸운-로루 라로 발음해야 했다.) 로큰롤이든 리듬 앤 블루스건 죄다 "로카비리"(로커빌리)라는 이름으로 통칭해서 부르곤 했다고 한다.

일본의 록 음악은 1960년대부터 여명기를 맞이하게 된다.[5] 1950년대 후반부터 로커빌리 밴드들이 외국식 음악을 재즈클럽이나 댄스홀에서 연주하고는 있었지만, 비틀즈 붐이 불면서 비로소 일본식 록이 생겨난다. 이 시기에는 일본식 록 밴드를 GS(그룹 사운드의 약칭)라고 불렀다. 이러한 흐름은 196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사이키델릭 록이나 하드 록의 시대가 불기 전까지 일본식 머시 사운드 또는 비트 뮤직을 형성했다. 이 시기에 유명했던 밴드는 일본 GS의 패왕이라 불린 더 스파이더스, 더 타이거즈, 더 카나비츠, 더 드리프터즈[6]등이 있다.[7]

당시는 음악 장르의 세분화가 진행되지 않았던 시대이기도 해서 재키 요시카와와 블루 코메츠더 스파이더스처럼 비틀즈 일본 공연 전부터 직업적인 밴드로 활동하던 것부터, 더 사베지더 와일드 원즈 같은 포크 록 그룹, 아니면 더 타이거즈더 템터즈, 더 카나비츠처럼 비틀즈롤링 스톤즈에 영향을 받은 학생들이 친구를 모아서 결성 한 록 밴드까지 전부 "그룹 사운드"라고 불리고 있으며, 각 그룹의 음악성이나 표현성 등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GS 붐 초기에는 재키 요시카와와 블루 코메츠, 더 스파이더스, 더 사베지가 3대 인기 그룹이었고, 삼대장 GS 붐의 중후기에는 더 타이거즈, 더 템터즈, 옥스가 GS의 대표밴드라고 했다.

이러한 흐름은 사이키델릭 록을 거쳐 하드 록,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이어진다. 더 몹스(The Mops), 플라워 트래블린 밴드, 외도(外道. 게도우)등의 밴드들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밴드들이다. GS 붐의 소용돌이에 있던 일부 뮤지션들은 '자기 길을 찾아' 가게 되어서, 포크를 비롯한 다양한 음악으로 전이된다. 이때문에 당시 GS 밴드를 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레코드 회사에서 시켜서 한거지 내가 원하는 음악은 따로 있었다"라고 과거부정을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일본의 포크 록은 60년대 후반 사회적인 저항의 분위기를 타고 크게 성장한다. 미카미 칸이나 이노우에 요스이같은 뮤지션들이 이 시기에 음악적 커리어를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은 한국에는 별로 없던 글램 록 성향의 밴드들도 꽤 있었다는 것이다. 튤립은 아예 록시 뮤직 같이 옷을 입고 무대에 등장했고, 다운타운 부기우기 밴드는 글램록에 영향받은 소울풀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한편 60년대부터 오키나와에는 주일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록 음악이 발달해왔는데, 특히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몰라 괴로워하는(당시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다) 미군 병사들이 근심을 잊도록 하드록 계열을 많이 공연하며 본토와 다른 록 문화를 발전시켰다. 무라사키(紫), 컨디션 그린(コンディショングリーン), 마리 위드 메두사(MARIE WITH MEDUSA) 등이 당시의 대표적인 밴드들이다. 1970년대 중반, 베트남에서의 전쟁이 끝나면서 오키나와 밴드들은 일본 본토로 진출하며 일본의 록 신에 여러모로 영향을 끼쳤다.

3.3. 1970년대

1970년 등장 핫피 엔도를 분수령으로 일본 록은 그 틀을 갖추게 된다. 핫피 엔도는 60년대 말부터 불어닥치던 일본어 락 논쟁에 대해 불후의 명반 風街ろまん으로 응수하면서 일본어 락의 진정한 시작을 알렸다. 핫피 엔도의 뒤를 이어 1972년 야자와 에이키치의 밴드 캐롤(캬로루)은 일본어 락의 완전한 정착을 알렸고, 이마와노 키요시로(일본 록의 왕이라고도 불리며 2009년 후두암으로 사망했다.)가 이끄는 전설의 밴드 RC석세션 역시 이 시대에 등장하여 현재의 일본 록 콘서트, 라이브하우스 문화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후 The Alfee(해산 및 활동중지 없이 지금도 멤버들의 솔로활동과 병행해 활동 중이다.), LAZY와 같은 기라성과 같은 밴드들이 등장하면서 일본 락은 점차 주류 음악으로 자리잡게 된다.

1978년에는 쿠와타 케이스케가 이끄는 일본 국민 밴드 사잔 올 스타즈[8] 가 勝手にシンドバッド를 발표하면서 충격적인 데뷔를 하였고, 사잔 올스타즈의 등장을 기점으로 일본 락은 완연한 일본 음악의 메이저로 진입하게 된다. 대략적으로 이 70년대 중반의 시기를 제 1차 밴드붐이라고 부른다.

3.4. 1980년대

1980년대 일본 록 전성시대의 출발은 헤비메탈 음악이었다. LAZY 출신의 걸출한 기타리스트인 타카사키 아키라와, 일본 메탈(보통 재패니즈메탈을 조금 줄인 쟈파메탈로 불렸다)계를 대표하는 보컬리스트 니이하라 미노루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LOUDNESS[9], 일본을 넘어선 최고의 보컬리스트 겐키 히토미와 거물 기타리스트 야마모토 쿄지가 이끌던 VOW WOW[10], 건즈 앤 로지스와 함께 투어를 돌기까지 한 E.Z.O, 사카모토 에이조라는 거물급 보컬리스트를 주축으로 한 ANTHEM 등의 전설급 밴드가 속출하였고, 이들은 해외 진출까지 하며 쟈파메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한편 일본 국내에서는 거물 보컬리스트 히무로 쿄스케와 초일본급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가 이끌던 슈퍼밴드 BOØWY[11]가 등장하였다. 보위는 1985년 브레이크 후 불과 3년도 안된 1987년 해산을 선언하며 일본 전역에 큰 충격을 안기기도 하였다. 보위는 일본 락의 판도를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으며, 90년대 J-ROCK을 대표하는 LUNA SEA, L'Arc~en~Ciel, GLAY 세 밴드 모두 보위의 후계 밴드라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보위와 함께 또 다른 중요한 밴드로 일본 펑크의 레전드 블루 하츠가 1985년 일본 음악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평가받는 THE BLUE HEARTS[12]를 발매하면서 데뷔하였다. 블루하츠는 이후 JUN SKY WALKER(S), 유니콘, THE BOOM[13]과 함께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의 제 2차 밴드붐을 이끌었으며 상기 밴드들은 밴드붐 4천왕이라 불리면서 90년대 초반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일본 사회의 버블과 맞물린 이 시기의 2차 밴드붐은 블루하츠를 중심으로 한 펑크 락이 중심이었으며, 이러한 펑크 붐은 90년대의 Hi-STANDARD를 중심으로 한 멜로코어 열풍, 00년대 MONGOL800을 중심으로 한 청춘 펑크 열풍으로 이어진다.

이 외에도 코무로 테츠야의 그룹으로 유명한 TM NETWORK, 여성 보컬 놋코를 전면에 내세운 레베카, 포크 락의 레전드 안전지대, 빙계의 대선배인 TUBE 등의 밴드들 역시 히트곡을 연발하면서 80년대 일본 락씬의 인기를 견인하였다. 사잔 올 스타즈 역시 1985년 활동 정지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일본 국민 밴드로의 자리를 확고히 하였다. 또한 DEAD END[14], 세이키마츠, 닌겐이스 등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한 밴드들도 나타나서 일본 음악계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44MAGNUM, ZIGGY 등의 밴드들 역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또한 X JAPANBUCK-TICK을 중심으로 하여 소위 '비주얼계'라고 하는 화려하게 분장한 밴드들이 등장한 것 역시 이때부터였다.[15] 비주얼계의 전성시대는 1990년대였으나, 이미 1989년 X의 BLUE BLOOD 앨범의 히트를 기점으로 메이저에 상당한 지분을 늘려나가고 있었다. 기행으로 알려진 근육소녀대도 활동 개시 시기상으로는 이들과 비슷하며, 이들과는 사이가 나쁜것으로 알려져있다.

1989년 헤이세이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하드 록을 대표하는 최고의 인기 밴드인 B'z[16], 그리고 일본 혼성 밴드의 시초격으로 여겨지는 LINDBERG가 등장하였다.

3.5. 1990년대

일본 록 음악의 최전성기, 그러나 일본 헤비메탈 최대의 암흑기[17]

일본 음악의 최고 황금기이자 밀리언셀러의 시대였던 1990년대는 동시에 일본 록의 최전성기이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밴드 붐을 시작은 B'z. WANDS, ZARD, T-BOLAN 등을 중심으로 하는 BEING이 선도하였다. 앞서 말한 B'z, WANDS, ZARD, T-BOLAN을 비롯하여 이미 자리 잡은 TUBE, 솔로 가수인 오오구로 마키, 후배격인 DEENFIELD OF VIEW를 포함하여 어마어마한 라인업을 앞세워 1991년에서 1994년까지 최전성기를 누렸으며, 빙 음악의 열풍은 사회현상으로까지 번져나갔다. 빙 붐이 최절정이었던 1993년 오리콘 싱글 주간 차트는 단 4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빙 아티스트가 1위를 차지하였고, 연간 매상 TOP 10의 절반을 빙 아티스트가 차지하였다. WANDS와 ZARD로 대표되는 소프트락을 중심으로 한 빙 음악은 90년대 초반 일본을 상징하는 하나의 현상으로 남았다.

90년대 중반에는 Mr.Children스핏츠를 중심으로 한 모던 락 계열의 컬리지 락 밴드들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하였고, JUDY AND MARY, 샤란Q, 우루후루즈, the brilliant green 등의 밴드들이 활약하면서 밀리언 셀러를 석권하였다. 이러한 밴드 열풍의 중심에 서있던 미스터 칠드런은 이른바 '미스치루 현상'이라고 까지 불리는 사회 현상으로까지 번져나갔으며, Innocent world, Tomorrow never knows, 名もなき詩와 같은 국민 가요들을 배출해내면서 이 시대의 상징으로 남았고, B'z와 사잔 올스타즈와 더불어 일본 3대 국민 밴드로 불리게 되는 영예를 안게 된다. 특히 미스터 칠드런의 최고 히트 앨범 <Atomic Heart>(앨범판매량 11위)와 스핏츠의 최고 히트 앨범 <ハチミツ>는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명반으로 불리우며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X를 중심으로 한 비주얼계의 열풍 역시 90년대 일본 락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이었다. X의 후계 밴드 중 LUNA SEA는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LUNA SEA 이외에 Malice Mizer, SHAZNA, La'cryma Christi, FANATIC ◇ CRISIS의 네 그룹은 비주얼계 4천왕으로 불리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외에도 쿠로유메, 페니실린과 같은 밴드들이 인기를 끌었다.

1997년부터는 GLAYL'Arc~en~Ciel을 중심으로 보위의 후계 그룹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글레이와 라르크 앙 시엘은 90년대 초반에는 비주얼계의 영향력 하에 있었으나 곧 탈피하였고, 1980년대 보위가 들려주던 하드 록 사운드와 유사한 음악을 들려주면서 90년대 후반 락씬을 견인하였다. 90년대 후반 비주얼계적인 요소가 약해진 루나씨 역시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여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1/3의 순수한 감정으로 유명한 SIAM SHADE 역시 이러한 흐름에 몸담은 밴드 중 하나였다. 그러나 보위의 후계그룹들인 이들과는 별개로 MOON CHILD의 경우에는 Mr.Children의 음악성과(이들의 메인 프로듀서였던 우라 키요히데의 경우에는 Mr.Children의 서포트 멤버 출신이라 Mr.Children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서정적인 독자 인디 록 사운드를 접목시킨 ESCAPE를 발표해 59만 7천여장의 매상을 올리며 그해 싱글차트 48위에 등극했고 데뷔 1년차 밴드답지 않게 인기 밴드들 속에서 선전하기도 했다.

한편 1990년대에는 이른바 '록킹온계'라고 불리는, ROCKIN'ON JAPAN 잡지를 중심으로 한 인디밴드들의 활동 역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the pillows, BLANKEY JET CITY, 엘리펀트 카시마시, THEE MICHELLE GUN ELEPHANT, 서니 데이 서비스 등의 전설적인 밴드들이 이러한 흐름을 선도하였고, 후배격인 쿠루리, 넘버 걸, 슈퍼카의 세 밴드는 이른바 97세대로 불리면서 일본 인디씬을 견인하였다. 이중에서도 글램 락적인 요소를 선보였던 THE YELLOW MONKEY는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하여 밀리언 셀러를 배출해내기도 하였다. 멜로코어 붐을 불러왔던 Hi-STANDARD 역시 90년대의 대표 밴드 중 하나였으며 99년 Making the road는 인디즈 앨범으로 65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당시 인디즈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1990년대 초반 빙붐-중반 모던 록/비주얼 록-후반 라르크/글레이까지를 통틀어 제3차 밴드붐이라 일컬는다.

하지만 반대로 이 당시 일본메탈은 그야말로 암흑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사실 일본 메탈씬 뿐만 아니라 서구권에서도 얼터붐으로 메탈은 주류에서 밀려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Loudness 는 계속되는 멤버교체를 겪다가 결국 리더 히구치 무네타카가 탈퇴를 하였고, Anthem과 Vow wow는 해체했으며, 세이키마츠는 뜬금없이 메탈이 아닌 다른 장르(대표적으로 폴카)를 시도하는 앨범을 내어 팬들의 외면을 받았다. 인기가 많았던 타이지의 D.T.R 도 1집은 나름 성과를 얻었으나[18] 2집은 타이지를 노숙자로 만들어 버릴만큼 처참하게 실패했다. 굳이 이런 레전드급 밴드말고도 수많은 헤비메탈 밴드들이 활동중지 및 해체를 발표하였고 이렇게 일본 헤비메탈의 시대는 저무는 듯 했다.

하지만 일본의 메탈 뮤지션들은 어떻게든 메탈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탄생된 팀들이 애니메탈, 섹스 머신건즈이다.

이들은 각각 메탈을 일반 대중들에게도 알리기 위해 인기많은 애니송들을 메탈로 편곡하는 방법(애니메탈)을 사용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가사와 코믹한컨셉으로 메탈에 대한 대중들의 진입장벽을 만들어주기도(섹스머신건즈) 하였다. 특히 만화 시티헌터의 TV 스페셜 오프닝을 맡았던 섹스 머신건즈의 경우에는 전위적인 퍼포먼스로도 유명한데, 일례로 아사히맥주의 스폰서쉽으로 개최된 POP HILL 98' 콘서트에서 미발표곡 'Fire'[19]를 연주하는 도중, 입에 머금은 알콜을 횟불에 뿜어 불쇼를 선보이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노력들 끝에 현재 일본에서는 헤비메탈 장르가 다른 국가에 비해서도 상당히 잘 나가는 편이다. 다만 하이도의 인터뷰에 의하면 통칭 J-Rock 정도는 괜찮지만 헤비메탈 록밴드가 유명한 장소에서 공연하여 매스컴을 타는 것을 높으신 분들이 상당히 껄끄러워한다고 한다.[20]

아시아 시장에서 헤비메탈이 가장 잘 먹힐수 있는 곳인 건 사실이다.

3.6. 2000년대

화려한 1990년대를 장식한 일본 록은 2000년대 중반까지도 일본 음악의 최고 인기 장르로 위치하였다. 그 선두주자는 MONGOL800(별명인 몬파치로도 유명하다.)을 필두로 하는 청춘 펑크붐이었다. 2001년 발매한 몬파치의 MESSAGE 앨범의 小さな恋のうた, あなたに와 같은 수록곡들이 알음알음 방송에 노출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더니 2002년에 들어와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무려 27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이는 일본 인디즈 최고 판매량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음반 시장이 축소된 현 시점에선 불멸의 기록이 되었다.) 블루하츠의 감성에 하이스탠다드의 음악성을 더했다는 평을 듣는 몬파치는 이른바 10대층의 공감을 사는 가사를 핵심으로 하는 청춘 펑크 열풍의 선봉장 역할을 하였고, ROAD OF MAJOR[21], 175R, FLOW, 가가가SP와 같은 청춘 펑크 밴드들이 연속으로 흥행하면서 2000년대 초반을 뒤흔들어 놓게 된다.

이러한 청춘 펑크 열풍과 더불어 범프 오브 치킨을 중심으로 하는 시모키타자와 계열의 기타 록 밴드들 역시 큰 인기를 차지했다. 범프 오브 치킨의 천체관측을 시작으로 ASIAN KUNG-FU GENERATION, 레미오로멘, ACIDMAN 등의 밴드들이 큰 인기를 누렸으며, 이들 시모키타계 밴드들은 모두 록킹온계와 그 궤를 같이 한다. 하이스탠다드계의 멜로코어계 역시 엘르가든, 10-FEET 등의 밴드들이 큰 인기를 누렸다. 이외에 메이저 록에서는 포르노 그라피티LOVE PSYCHEDELICO가 큰 인기를 누렸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는 90년대 후반 드래곤 애쉬RIZE를 중심으로 소개되었던 영미권의 뉴메탈, 랩메탈 계열 음악들이 일본에서도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고 랩 메탈의 일본식 변주라 할 수 있는 '믹스처 록'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다. 믹스처 록 장르는 ORANGE RANGE를 대표로 크게 히트하였고 특히나 오렌지 렌지는 SEKAI NO OWARI 등장 이전에 최후의 일본 스타밴드라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오렌지 렌지 이외에도 HYAqua Timez, UVERworld, SID와 같은 밴드들이 큰 인기를 누렸으며, 맥시멈 더 호르몬과 같은 밴드는 영미권 스타일의 하드코어한 사운드로 큰 인기를 누렸다. 대략적으로 청춘펑크 붐과 믹스처록 붐를 중심으로 한 2000년대 초중반을 제 4차 밴드 붐이라 일컫는다.

이후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음반 시장의 축소와 맞물려 일본 락 시장은 최대 침체기에 접어든다. 이시기에는 RADWIMPS, flumpool 정도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신인들도 등장하지 않았고, 3대 국민밴드인 B'z, 미스터칠드런, 사잔 올스타즈와 라르크, 글레이, 스핏츠 등의 중견밴드, 그리고 범프 오브 치킨과 시이나 링고동경사변 정도를 제외하면 많은 밴드들이 앨범 판매량에서 쓴 맛을 맛보아야 했고, 일본 음악의 주도권은 완전히 48사단과 쟈니스를 중심으로 한 아이돌 음악과 EXILE 등의 R&B 음악으로 넘어가게 된다.

3.7. 2010년대

J-ROCK[22]의 부활

2010년대에 이르러 쟈니스, AKB 등 아이돌계의 이미지가 악화되고 방송에 대한 무관심으로 기존 J-POP가수들의 입지가 좁아지자 오히려 밴드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형성되었다. 한편으로 ROCKIN' ON JAPAN을 중심의 록킹온계들은 전체적으로 공중파 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해외아티스트들과 교류하며 제이팝으로부터 멀어지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기성밴드들이 수입을 늘리기 위해 연달아 공중파에 진출함에 따라 이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오히려 꾸준히 정체성을 고수해온 밴드들이 큰 지지를 얻게 되었다.

황금기였던 90년대의 라이벌 미스터 칠드런스핏츠가 동시에 부활한 때이기도하다. 그동안 팝 성향을 보이며 원맨밴드라고 빈축을 샀던 미스터칠드런은 기존의 프로듀서와 결별하고 완전히 락으로 회귀한 앨범 <Reflection>을 내며 재림을 알렸고 대중과 평단의 큰 호응을 얻었다. 스핏츠는 자신들의 명반 <ハチミツ>의 트리뷰트 앨범(수많은 후배밴드들이 참여하였다.)이 나오자 재평가를 받게 되고 이에 힘입어 새 앨범을 내고 인기를 회복하였다.

2000년대 초 밴드붐 속에서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후반에 침체기를 겪으며 앨범판매량 급감을 체감한 중견 밴드들은 각자 다른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범프 오브 치킨은 음악에 팝적인 요소를 더하고 적극적으로 방송에 출연하면서 새로운 팬층을 끌어모았다. <RAY>는 큰 히트를 쳤으나 <Butterflies> 이후 음악성의 큰 변화로 적지않은 올드팬들이 떠나가기도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크게 지지를 받아온 syrup 16g은 재결합 후 다시 음악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ONE OK ROCK은 앨범 <人生×僕=> 이후 크게 인기를 끌었고 그에 이어 미국진출을 시도했고 8집 Ambitions가 인터네셔널 버전이 초동 23만을 기록하는 등 순항중이다. 그동안 점점 어둡고 신랄한 행보를 보여왔던 래드윔프스는 초기의 서정성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고 OST 전곡을 맡은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다시 큰 주목을 받았다.

2010년대 중반은 일본 락의 부흥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신인들이 정상권에 진입한 해였다. SEKAI NO OWARI가 발매한 Tree 앨범은 대히트한 싱글라인에 힘입어 50만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렸고 게스노키와미오토메 역시 유튜브를 중심으로 화제를 모으면서 인기를 끌었다. [23]back number는 서정적인 락을 선보이며 큰 인기를 얻었고 MAN WITH A MISSION는 독특한 컨셉을 바탕으로 인기 밴드로 거듭났다. 이외에도 키노코 테이코쿠, SHISHAMO, UNISON SQUARE GARDEN, [Alexandros], KANA-BOON, amazarashi, WANIMA, Suchmos같은 밴드들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러한 신진 밴드들의 약진은 제 5차 밴드붐이라 불리고 있다. 일본 내 국제 락 페스티벌로는 후지락과 함께 양대산맥으로 꼽혀왔던 서머소닉 페스티벌이, 자국 밴드만 공연하는 Rock In Japan과 일정이 겹치게 되자 관객감소를 우려하여 일정을 미뤄 피해간 일은 일본 락씬의 번창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요약하자면 가장 찬란했던 1990년대 밴드들의 귀환, 그동안 침체기를 버텨온 밴드들에 대한 재평가, 해외의 영향으로 개성이 뚜렷한 신인들의 선전이 만들어낸 호황기라고 할 수 있다.

4. 기타

일본 음악계는 록밴드에 의해 이끌어져 왔다는 점에서 일본 대중음악계는 한국 음악계와는 상당히 다른 경향을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24] 심지어 힙합이나 댄스 등 다른 음악을 하는 팀들도 록 밴드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아이돌 프로듀서로서 이름을 날렸던 층쿠도 SharanQ라는 팝-록밴드 출신으로 오리콘 차트 1위까지 해봤고 아직까지 당시의 유명곡인 single bed는 40대 이상에서 애창곡 중의 하나이다. 코무로 테츠야 역시 globe 이전에 밴드를 경험한 바 있으며, 동시대의 유명한 프로듀서 중 하나인 후지이 후미야 역시 80년대 후반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checkers라는 밴드의 보컬 출신으로 인디즈에서도 그럭저럭 성공을 거두고 메이저씬에서 대박을 쳤다.[25]

또한 애니송 전문 레이블인 란티스의 사장인 이노우에 슌지도 바로 7080 황금기에 활동을 개시해 지금까지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밴드 LAZY의 키보드 출신이다.

애니메이션 음악에 비주얼계 출신 밴드를 쓰는 경우도 많다.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의 주제가를 부른 라르크 앙 시엘이나, 흑집사의 주제곡을 부른 SID 등등. 반면 데스노트처럼 Maximum the Hormone 같은 코어락 계열 밴드가 주제가를 맡는 경우도 간혹 있다.[26]

록 비트를 사랑하는 μ’s 작곡가들 답게, μ’s의 노래 중에도 이쪽 노래가 많다.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인 블러드 스테인 차일드도 세계적으로 상당히 인정받고 있는 편이며, 파워 메탈 밴드인 Galneryus도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비주얼계 출신[27]dir en grey도 외국 유명 록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등 상당히 선전하고 있다.

하드코어 펑크/메탈코어 씬의 경우 일본과 가장 밀접해있는 한국과의 교류도 상당히 깊은 편(씬 특성상 원래 국적이나 인종을 가리지않고, 브라더후드/크루로 엮이긴 하는데 교류가 가장 많다치면 역시 한국이다.)이다. 심심하면 한국 밴드와 콜라보 공연을 하거나 앨범을 내거나 한다.[28] 한국 내의 진정한 J-ROCK의 골수 팬들은 여기에 포진해 있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29] 그나마 대중적인 포스트 하드코어나 이모코어와 같은 밴드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활동 수가 적은 익스트림 메탈보다도 팬층이 더 두꺼울 정도이다.

한국인이 일반적인 록 음악을 듣는다치면 서양 쪽은 들어도 일본 쪽은 관심없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데[30], 하드코어 팬층의 경우는 반절 이상이 일본 하드코어도 같이 듣는 경우가 많다. 당연한 얘기지만 일본의 하드코어 팬들도 한국의 하드코어 밴드들을 상당히 많이 듣는다.[31]

현재 일본의 록씬은 굉장히 규모가 거대하여, 수천개의 록 밴드들이 활동하며 공연하고 있고 전국의 공연 클럽 숫자, 그리고 그 록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어마어마하다. 또한 인디씬의 경우도 The pillows처럼 음악성만 있다면 명성과 팬과 상당 규모의 음반 판매량을 기대할 수도 있다. 일본에선 아예 인디즈 씬이라는 나름 독자적인 씬도 형성되어 메이저 못지 않은 활동을 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이 때문에 앨범 판매량이 시원찮아도 공연기회를 많이 잡으면 충분히 널리 이름을 알릴수 있을 정도가 되며, 대형 록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공연할수도 있다.[32]

세계에서 록씬 규모가 제일 큰 국가는 미국, 영국 다음에 일본이다.[33] 이건 굳이 록 음악 뿐 아니라 음악 시장 전반 규모로 봐도 마찬가지다. 핀란드는 메탈이 대중적이라곤 하지만 경제 규모 때문에 약하다.

5. 관련 문서


  1. [1] 이 시기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도 재즈풍의 음악이 대 유행했다. 당시 슈퍼스타였던 무용가 최승희가 재즈 음반을 취입할 정도였다.링크
  2. [2] 1950년대 한국에 맘보차차차 붐이 불었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3. [3] 일본의 군국주의파시즘과 다르다는 평가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파시즘은 대중적 지지가 분명히 있었지만 일본의 군국주의는 사실상 권력자들 사이에서 치고박고 쿵짝이 맞아서 결정된 것이고, 개인들은 그저 대세에 따라 휩쓸려 다녔다.
  4. [4] 사실 엔카라고는 하지만, 이미 엔카가 등장한지 수십년이 되었고, 재즈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미 엔카는 거의 반쯤 재즈같은 음악이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문서 참조.
  5. [5] 이 점은 한국에서 부러운 점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이 낮은 경제력과 검열로 인해 외부의 문화가 잘 유입되기 힘들었던데 반해 이들은 당시 경제력도 있고 검열도 약했기 때문에 외국의 문화가 실시간으로 유입된다. 심지어 1966년에는 비틀즈도 투어를 온 적이 있다. 그래서 공연에 목마른 한국인들은 제창을 하고 외국밴드가 넘쳐나는 일본은 공연때 시큰둥
  6. [6] 지금은 일본의 원조 개그 그룹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엄연히 밴드로 시작한 집단이다. 그래서 코메디로 전업 한 뒤에도 멤버들이 밴드 컨셉의 개그를 자주 했다. (링크) 심지어 이들은 비틀즈 방일 당시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
  7. [7] 당시 일본 GS 밴드들의 이름은 여러가지로 일본식 카타카나 발음으로 쓰여져있었기 때문에 한국어로 옮길때 엄청나게 기기묘묘하게 발음이 괴상해 지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에 있어서 통일된 표기법이 필요하므로 이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수정바람.
  8. [8] 활동 중지 선언만 했을 뿐인데 일본 주가가 오르내렸을 정도의 인기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 유명인 중 다수가 이들의 팬임을 밝히고 있다.
  9. [9] Crazy Night라는 싱글은 일본 빌보드차트 74위까지 오른다.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진입했던 동양 록 밴드.
  10. [10] 영국에 음반이 발매되었을 때, 음악만 듣고 영국 밴드인줄 알았다가 일본 밴드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11. [11] 비주얼적 컨셉이나, 창법 등에서 이후 등장한 비주얼계 장르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아래 DEAD END와는 달리 메탈 계통의 음악을 하는 비주얼 록 밴드보다는 모던록 성향의 밴드들이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LUNA SEA 역시도 히무로 쿄스케의 창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2. [12] リンダリンダ가 바로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13. [13] 보컬로이드 KAITO의 커버로도 유명한 시마우타(島唄)가 대표곡이다.
  14. [14] 쿠로유메의 키요하루, BUCK-TICK의 사쿠라이 아츠시 등이 영향받았음을 공언하고 있으며, LUNA SEA 등도 언급만 안 할 뿐 다대한 영향을 받음.
  15. [15] 물론 이러한 스타일은 이들 전의 세이키마츠D'ERLANGER 등의 밴드들이 존재하였으며, 대중화 시킨것이 이들이라는 뜻이다.
  16. [16] 일본 최고의 인기 록밴드로서, 일본 통산 8000만장에 이르는 판매량을 기록하여,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을 가진 밴드.
  17. [17]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보통 암흑기가 아니었다.
  18. [18] 사실 메탈암흑기 시절에 낸것 치고는 매우 좋은 성적을 거둔 앨범이다.
  19. [19] 2년 뒤 2000년에 뱔매된 정규3집 BBQ-Michel에 수록된다.
  20. [20] 덤으로 보수적이라고 깠다.
  21. [21] 데뷔싱글 大切なもの는 9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인디즈 싱글 기록을 세웠다.
  22. [22] 2000년대 이전의 록과 구별된다.
  23. [23] 다만 게스오토의 경우 보컬 카와타니 에논의 잇다른 추잡한 추문으로 완전히 몰락했다.
  24. [24] (쉽게 설명해서) 한국 아이돌 그룹에 속해있던 가수들이 솔로 앨범을 내거나 드라마 OST로 참여할 경우 전부 다 발라드 곡을 부르는데, 일본은 록을 부른다고 생각하면 된다. 때문에 일본 드라마 OST는 록 장르가 굉장히 많다.
  25. [25] 악기 브랜드로 봐도 차이를 알수 있는데 한국의 기타 브랜드들이 범용기타를 제작한다고 치면 그래도 거의 빈티지쪽에 기울어져 있는게 특징인데 일본의 브랜드들의 범용기타는 거의 록, 메탈에 기울어져 있다. 물론과 아이바네즈를 비교해보면 좋을듯?
  26. [26] 간혹 하드록 밴드가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맡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신세기 GPX 사이버 포뮬러 SIN의 오프닝인 Pray를 맡은 LAZY. 그런데 이 경우는 약간 괴랄맞게도 당시 작품의 음악 담당인 이노우에 슌지가 밴드 키보디스트였던지라...게다가 의외로 이노우에 슌지는 해체 후에 음악 프로듀서로 뛴 경험이 많아서 이후 자기가 회사를 차리고 나서는 여러가지 활동을 한다.
  27. [27] 그러나 dir en grey는 현재 비주얼계라는 말에 질색팔색한다.
  28. [28] 가장 대표적인 작업물이 일본 밴드인 "SETE STAR SEPT"와 한국밴드 "Nahu"의 스플릿 앨범이다. 두 밴드 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장사 안되는 그라인드코어밴드다.
  29. [29] 역으로 일본 하드코어 팬들도 한국 하드코어 밴드들을 자주 듣는 경우도 있다. 원체 서로 많이 공연에 앨범에 엮이다보니 한일 하드코어씬 역사상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30. [30]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애초에 자기네들 음반 시장이 넓은데다가 일본록 빼면 서양의 록밴드가 세계의 주류이긴 하기 때문에 일본인 록 팬이라고 해서 한국의 록까지 들을 거라고 장담하기는 상당히 힘들다. 대신 이쪽은 한국 록을 싫어한다기 보다는 다른 나라의 록 음악에 밀려서 한국 록의 관심도 순위가 떨어지는 것 뿐이다.
  31. [31] 특히 Vassline과 MY PROOF의 스플릿 앨범은 한일 양국에서 레전드 스플릿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32. [32] 대표적으로 LUNA SEA.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적은 없지만, 왠만한 록페스티벌에서 밀리언셀러를 연속달성한 밴드들을 제치고 헤드라이너로 공연한다.
  33. [33] 경제적 규모로만 보면 영국과 거의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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