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해군

대일본제국해군

大日本帝国海軍(だいにっぽんていこくかいぐん)


Imperial Japanese Navy(IJN)

일본제국 해군기[1]

창립

1872년(메이지5년)

해체

1945년(쇼와20년)

명령체계

대본영

국적

일본제국

병종

해군

해군가

군함행진곡(軍艦行進曲)

본부

해군성: 도쿄도 고지마치구(현 지요다구)

기념일

1905년 5월 27일(쓰시마 해전)

주요참전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지휘

#!folding [ 대원수 ]
[[메이지 덴노]], [[다이쇼 덴노]], [[쇼와 덴노]]
#!folding [ 주요인물 ]
[[이토 스케유키]], [[도고 헤이하치로]][br][[야마구치 다몬]], [[야마모토 이소로쿠]][br][[나구모 주이치]], [[나가노 오사미]][br][[겐다 미노루]], [[오자와 지사부로]][br][[이노우에 시게요시]], [[요나이 미츠마사]]

1. 상세
2. 역사
3. 군복
7. 일본 해군이 보유했던 군함 목록
8. 관련 문서

1. 상세

일본 제국 시절의 해군. 정식명칭은 대일본제국해군(大日本帝國海軍)이며, 상징 이미지는 벚꽃, 상징 깃발욱일기를 썼다. 전후 해상자위대욱일기와 주요 간부진을 그대로 계승[2]했는데, 그래서 넷 우익들의 일본군 부활 떡밥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한다.

최고통수권자는 육군과 마찬가지로 덴노였으며 내각에는 권한이 없었다. 그 아래로는 군정권은 해군대신이 군령권은 군령부총장이 실전부대 지휘는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담당하는 일종의 과두제 구조였다. [3] 전시에는 육군과 대본영을 설치했다. 프로이센 육군을 모방한 육군과 달리 일본 해군은 영국 해군을 모방했다. 일본이 섬나라이기 때문에 제해권을 중시하였다.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으로 잘 알려져있듯 육군과 사이가 굉장히 나빴다. 미국 육군과 해군은 태평양 전쟁에서 합동작전을 실시했지만 일본 육해군이 합동전투를 한 것은 과달카날,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레이테 만 해전 뿐이었다. 인원은 해군이 훨씬 적어서 육군보다 복지가 좋았는데, 그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육군에서 많이 느꼈다고.

그래서 그런지 해군은 여건이 좋고 기술도 배울 수 있어 입대경쟁이 치열했다. 대신 국내 정치에서 입김이 강한 것은 육군이었으니 해군도 아쉬운게 있기는 하다. 전통적으로 일본 육군은 러시아와 소련을 가상 적국으로 판단했지만 해군은 미국을 가상적으로 판단했다.

출신 학교와 학교에서의 성적을 따지는 철저한 학력 절대주의 집단이었으며[4], 해군의 특성상 외국인과 접할 기회가 많다보니 서양인들에게 무시받지 않기 위해 해군 장교들에게는 상당한 수준의 교양 교육이 행해졌던 것이 특징. 덕분에 해군의 장교들은 사회 최상류층과 대등한 혹은 오히려 그 이상의 교양수준을 쌓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었고, 일본 제국 신민들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수도 육군에 비해 적었고.[5]

하지만 이것이 삐딱한 엘리트 의식을 낳아 경직되고 폐쇄적인 조직체계가 갖춰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일단 군내부에서의 지위와 대우는 오로지 학력에 의해 결정되었다. 실제 능력은 그 다음 문제. 또한 장교들이 엘리트 의식에 빠져있는 탓에 부사관들은 장교로 진급을 할 수 없었다. 경력이 오래되고 능력있는 인물들을 그대로 하사관에서 썩게 만드는 것은 전력손실이라는 이유로 제도가 개편되긴 했는데, 그렇게 생긴 것이 특무사관이라는 특별 계급. 하사관에서 능력있는 인물들을 특무사관으로 진급시켜 특무소위, 특무중위, 특무대위 등으로 장교 취급을 해주긴 했는데, 사실상 형식적인 것이었다. 계급장부터가 한눈에 봐도 장교와는 구분되도록 만들어졌으며, 아직 부임조차 하지 않은 견습장교의 지휘권이 특무대위보다 위에 있었을 정도의 위치. 당연히 장교들로부터도 같은 급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이러다보니 하사관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수병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했고, 장교계급 외의 군기는 상당히 막장이었다.[6]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보급의 중요성 자체는 이들도 알고는 있었고 잘 갖춰진 기지에서의 보급은 일본의 경제사정에 비해서 제법 괜찮은 수준이었다.[7] 하지만 그것도 영미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었고, 당장 시급하게 필요로 하는 물자를 제 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떨어졌다. 그러나 2차 대전동안 97식 전차, 잘못된 전술으로 대변되는 육군[8]과는 달리 상당히 활약했는데 태평양 전쟁 중반까지는 미 해군과 그럭저럭 호각으로 싸울 수 있었다. 실제로 개전시 일 해군의 전력은 영국과 미국에 이은 3위였고 초반에 미 해군의 전함 상당수를 전열에서 이탈시키면서 잠깐동안 미국보다 전력이 강해지기도 했다. 1941년 기준으로 총톤수를 비교하면 일 해군이 18만톤으로 진주만 공습 때문에 13만톤까지 떨어진 미 해군보다 우세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도 전략적 능력의 부재, 국력의 차이등의 이유로 미국에게 완벽하게 패배했다.[9]

일본제국해군 함선들의 선수에는 일본 제국의 국장이자 일본 황실의 상징인 금색 국화문양이 달려있는데 이는 진짜 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통짜 금을 깎아 만든것은 아니고 나무에 금박을 두껍게 씌운것이다. 금박을 붙인 것이라해도 크기가 상당히 컸기에 무시할 수 없을정도로 비쌌다고 한다.[10] 이 국화문양은 순양함, 전함, 항공모함에만 달았는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국화문양은 일종의 계급장같은 역할도 했기에 일본제국해군에서 급이 낮은 함선 취급을 받았던 구축함, 잠수함은 국화문양을 달 수 없었다.

하지만 함급이 구축함 이하인 포함은 예외적으로 국화문양을 달았다. 포함은 바다의 대사관 역할을 했기에 국내외의 고위급 인사가 승선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하츠하루급 구축함 ‘네노히’의 함장이 자신들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시무슈형 해방함 쿠나시리에게 ‘왜 귀함은 본함에 경례를 하지 않는가’라고 따졌다가 쿠나시리가 국화문양을 달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사죄를 하러 직접 다녀왔다라는 일화도 있다. 그만큼 국화문양의 상징성과 영향력은 막강했다.

욱일기를 비롯해 일본제국해군으로부터 많은 것을 계승한 해상자위대는 의외로 이 국화문양은 달지 않는다. 국화문양은 과거 제국 시절과 마찬가지로 현재 일본의 국장이긴하지만 그와 동시에 일본 황실의 상징이라는 점도 변함없는데다 국화문양이 달린 것은 일본 황실의 소유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 국화문양이 달려있는 함선은 요코스카에 보존되어 있는 미카사가 유일하다. 물론 도난 위험 때문에 금박으로 된 진품이 아닌 모조품이다.

2. 역사

굳이 기원을 따지자면 도쿠가와 막부 휘하의 수군일 것이다. 막부 수군은 1845년에 이양선이 나타나자 해군으로 정비하였다. 재래식 군선으로 모양새를 갖추긴 했지만 쿠로후네(黑船)를 당할 바는 아니었다. 쿠로후네 사건으로 1854년 강제개항을 하게 되었고 근대적 해군의 필요성을 절감한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1866년에 대규모 군제 개혁을 실시해 해군봉행을 설치하고 해군총재를 뒀다. 당시 일본엔 막부 말고도 각 번에서도 해군력을 조직했는데 막부 해군은 영국에서 고문단을 초빙해 본격적인 해군을 양성하려고 하였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 그러나 막부 해군은 제대로 세워지기 전에 대정봉환으로 신정부에 흡수되었다. 1870년엔 육군과 해군이 분리되고 도쿄 츠키지[11]에 해군성을 설치했다. 초기에는 사쓰마[12]가 주도했으며 1876년에 일본해군병학교가 세워진다. 서남전쟁으로 사쓰마가 밀려나면서 일본군 내부에서 육군 중심주의가 강해진다. 윤요호 사건으로 조선을 개항시키기도 했다.

청일전쟁풍도 해전으로 시작되었으며 황해 해전위해위 전투에서도 이홍장북양함대에게 크게 이겼다. 자세한 내용은 청일전쟁/해군 전투력 비교 참조. 대규모 승전은 러시아 해군 발틱 함대를 궤멸시킨 러일전쟁쓰시마 해전이 대표적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영국의 요청으로 칭다오에 있던 독일 아시아 함대 추격전에 나서기도 했으며 지중해에서 수송선 호위 업무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U-27을 비롯한 독일 유보트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잠수함들에게 피격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칭다오 공격 당시 영국군과 협조하여 칭다오 항 봉쇄하기도 하였다. 또한 미국과 협력, 태평양에서 일본 해군은 활동을 개시하기도 하였다.

1941년에는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했다. 그리고 결과는... 1945년 일본이 항복하면서 해군성은 제2복원성으로 불린다. 육군과 달리 완전히 해체되지는 않았는데 이는 일본이 저항하느라 연안에 기뢰를 잔뜩 설치해뒀고 이를 제거할 소해부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해상보안청이 이 임무를 위해 1만명 규모로 유지됐고 1952년에는 보안대란 이름으로 해상자위대의 전신이 해상보안청에서 분리되었다. 사실상 해상자위대는 일본 해군을 계승하고 있다.그것도 과거의 악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해군병의 복무기간은 3년이었고 해군 지원병은 5년이었다.

3. 군복

1943년에는 육상 전투복인 육전의와 유사한 디자인의 황록색 해/육상 전투복인 제3종 군장이 도입되었고, 기존 제1, 2종 군장은 정복으로만 쓰게 된다. 지팡구 16권 표지의 사관용 3종 군장 육전 소요가 늘어나 함정과 육상에서 함께 입을 수 있는 전용 피복 소요가 제기된 점, 사관용 1, 2종이 목을 감싸는 형태라 불편했던 점 등이 도입 사유다.

해군 장교의 동정복과 하정복은 미 해군의 동정복과 하정복을 본따서 만든 것이다.

4. 편제

2차 대전참전하지 않은 함대는 ☆

5. 해군 육전대

해맑

해군 육전대는 해병대 기능을 했다. 일본군에선 초기엔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부대를 설치하는 식으로 운용했지만 1930년대부터는 상설부대로 전환했다. 내부에 공수부대도 설치해서 1942년엔 첫 공수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종전 직전에 인원 규모는 10만 명이었는데 일본군 해군이 워낙에 강한 지휘권을 발휘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뭔가를 수행하진 못 했다. 그 때문에 자위대가 생겼을 때 해병대 기능을 갖춘 부대는 계승되지 않았다. 다만 해군이 아닌 육군인 육상자위대 서부방면대에 직속으로 보병연대[13]가 도서 지역의 방어를 위해 상륙작전을 실행하며 2014년 기준으로 이들은 수륙기동단이란 이름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육전대의 경우 해군 장교들 사이에선 좌천되는 곳이었고, 사병들이라고 해서 다르진 않았다. 분위기 험악하기로 유명한 일본 해군 내에서도 똥군기 심한 축에 들었고, 사기도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육군한테 질수없다 마인드로 인해 훈련은 빡센 편이었으며 그에 따라 해병대의 임무로 돋보이는 활약을 하였다.1943년부터 조선인을 지원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해군이 이들을 집중 배치한 곳도 육전대였다.[14] 광복 이후, 대한민국 해군이 창설되던 시절 해군에 합류한 구 일본 해군 출신 대다수가 대한민국 해병대가 창설되면서 몰아넣어졌는데, 선술했듯 함정 근무자가 전무하다시피하여 함정 운용에 도움이 안 되는 대신 육전에는 익숙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때문에, 해병대가 해군에 비해 유달리 구 일본군 해군의 잔재(주로 악습이나 은어 등)가 많이 남아 현재까지 골치를 썩이고 있다.

6. 해군 항공대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 육·해군 항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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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항공대

단좌 전투기

Ki-27 97식 전투기, Ki-43 하야부사, Ki-44 쇼키, Ki-61 히엔, Ki-84 하야테, ◈나카지마 Ki-87
카와사키 Ki-88, ◈다치카와 Ki-94, ◈만슈 Ki-98, Ki-100 5식 전투기, †ⓩ타치카와 Ki-162
◈ⓩKi-200 슈스이, ◈ⓩKi-201 카류, †ⓩ카야바 Ku-4

복좌 전투기

Ki-45 토류, Ki-51 99식 습격기, Ki-102 5식 습격기

폭격기
습격기

BR-20 시코그나, Ki-21 97식 중폭격기, Ki-30 97식 경폭격기, Ki-32 98식 경폭격기,
Ki-49 돈류, Ki-67 히류

특공기

Ki-115 츠루기

해군
항공대

함재기

A 함상
전투기

A5M 96식 함상전투기, A6M 0식 함상전투기, A7M 렛푸, †A8M 리후쿠

B 함상
공격기

B5M 97식 2호 함상공격기, B5N 97식 함상공격기, B6N 텐잔, B7A 류세이

C 정찰기

C3N 97식 함상정찰기, C5M 98식 육상정찰기 C6N 사이운

D 함상
폭격기

D3A 99식 함상폭격기, D4Y 스이세이, †와쿠세이

E 수상정찰기

E7K 94식 수상정찰기, E13A 영식수상정찰기, E15K 시운, E16A 즈이운

F 수상관측기

F1M 영식수상관측기, 아이치 F1A

G 육상공격기

G3M 96식 육상공격기, G4M 1식 육상공격기, G5N 신잔, G8N 렌잔, †G10N 후가쿠

H 비행정

H6K 97식 비행정, H8K 2식 비행정, H11K 소우쿠

J 국지전투기

J1N 겟코, J2M 라이덴, ◈J4M 센덴, ◈J6K 진푸, ◈J7W 신덴, ◈ⓩJ9Y 킷카, ▼N1K-J 시덴

K 훈련기

K9W 코우요, K11W 시라기쿠, ▼A6M2-K 영식훈련용전투기, ▼M6A1-K 난잔

L 수송기

L2D, ▼H6K 97식 비행정, ▼H8K 세이쿠, ▼H11K-L 소우쿠, ▼G5N2-L 신잔 카이

M 특수공격기
MX 특수활공기

MXY-7 오카, M6A 세이란

N 수상전투기

N1K 쿄후, ▼A6M2-N 2식 수상전투기

P 폭격기

P1Y 긴가, †ⓩP3Y 텐가

Q 초계기

Q1W 토카이, †Q3W 난카이

R 육상정찰기

R2Y1 케이운, ◈ⓩR2Y2 케이운 카이, ▼J1N1-R 2식 육상정찰기

S 야간전투기

S1A 덴코, ▼J1N-S

연합군 노획 항공기

LaGG-3, I-16, F2A 버팔로, B-17, P-51 머스탱, P-40 워호크

◈ 프로토타입 / † 페이퍼 플랜 / ⓩ 제트 혹은 로켓 엔진 장착기 / ▼ 타 목적 기체를 유용함
국지전투기: 일본군이 운용했던 본토 방어 및 폭격기 요격 전용 전투기. 요격기 문서 참조.
※ 나무위키에 문서가 없거나 이 틀에 기재되지 않은 일본군의 항공병기 전체 목록은 일본의 항공병기 설계안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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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항공모함 등의 이유로 항공부대를 운용했다. 1904년에 최초 기안이 검토됐고 풍선을 운용하는 육군과 달리 해군은 정찰이 필요하단 이유로 1912년에 해군항공기술연구회가 설치됐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2,900대의 항공기를 운용했다.

7. 일본 해군이 보유했던 군함 목록

제2차 세계대전기의 일본군 군함

전투함

구축함

이소카제급, 미네카제급, 카미카제급, 무츠키급, 후부키급, 하츠하루급, 시라츠유급, 아사시오급, 가게로급, 유구모급, 시마카제, 아키즈키급, 마츠급

사쿠라급, 카바급, 모모급, 나라급, 모미급, 와카타케급

잠수함

L급, 해중형, 해대 1형, 해대 2형, 해대 3형, 해대 4형 해대 5형, 해대 6형, 해대 7형, 순잠 1형, 순잠 2형, 순잠 3형, 순잠 갑형 순잠 을형, 순잠 병형, 순잠 정형, 센토쿠급, 키라이센급, 갑표적, 삼식잠항수송정

경순양함

텐류급, 쿠마급, 나가라급, 센다이급, 유바리, 아가노급, 오요도

중순양함

후루타카급, 아오바급, 묘코급, 타카오급, 모가미급, 토네급, 이부키급

순양전함

공고급, 아마기급, 13호급, B-40, B-65

전함

경 / 개조 / 호위항공모함

호쇼, 류조, 쇼호급(쇼호-즈이호), 류호, 히요급, 치토세급, 신요, 다이요급, 카이요, 시마네마루급-야마시오마루, 아키츠마루급, 쿠마노마루

정규항공모함

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 쇼카쿠급, 운류급, G18, 다이호, 카이다이호 시나노

수상기모함

노토로, 카모이, 아키츠시마, 미즈호급, 닛신

연습함 / 포함

카토리급, 하시다테급, 아타다*

어뢰정

치도리급, 오오토리급, 제1호형 어뢰정, 갑형 어뢰정, 을형 어뢰정

해방함

시무슈형, 에토로후형, 미쿠라형, 히부리형, 우쿠루형, 제1호형, 제2호형

군수지원함

공작함

아카시, 아사히

급유/급탄/급병함

시레토코급, 온도급, 카자하야, 하야스이, 타카노급, 하리오급, 무로토급(급탄함), 카시노(급병함)

급양함

마미야, 이라코

상륙함정

신슈마루, 대발동정, 제101호형 수송함

잠수모함

진게이급, 타이게이

잡역선

아스카*, 아타다*

취소선: 계획만 되거나 건조 중 취소, (*): 노획 함선, 윗첨자C: 전후 완공

기타 함선은 해당 문서 참조.

8. 관련 문서


  1. [1] 같은 욱일기이지만 중심의 태양 모양이 왼쪽에 살짝 치우쳐 있는 점에서 육군기와 다르다.
  2. [2] 육상자위대도 욱일기를 쓰지만 그 쪽은 뻗어나간 빛살이 8개짜리인 8조이고, 해상자위대는 일본군 시절의 16조를 그대로 이어서 쓴다.
  3. [3] 30년대 당시 셋의 위상은 복잡하다. 사실 해군대신이 명목상 서열이 높았다고는 하지만 후시노미야같은 황족이 군령부총장으로 있을 경우는 사실상 군령부에 힘이 쏠리기 쉽고, 야마모토같은 아이돌이 함대를 틀어쥐고 있을 경우는 역시 상급자인 해군대신, 군령부총장도 통제를 못했다. 그런 경우를 빼면 보통은 동급으로 대우받는다.
  4. [4] 일본군 해군 내부의 파벌다툼으로 인해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인사기준이 오직 학교 성적뿐이었다.
  5. [5] 이런 해군 특유의 귀족주의 현상은 일본만 특이한 건 아니고 1인당 소득은 다소 처지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해군에 투자를 좀 한 나라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쪽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6. [6] 반면 육군의 경우 학력과 성적은 일절 관계 없는 평등주의,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두가 똑같이 개같은 취급을 받았다. 장교들 같은 경우는 출신학교에 따라 인맥에 의해 진급에 영향이 있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능력이 중시되었고, 하사관들도 장교 진급이 가능했다. 또 이렇게 진급한 하사관들은 장교들과 계급상 규정된 똑같은 대우를 받았다. 비육사라고 암암리에 무시되는 건 장교들 사이에서 마찬가지긴 했다.
  7. [7] 사실 러일전쟁 이래 일본의 병참 능력은 진보하는 축이었다. 당장 러일전쟁 즈음과 달리 어지간한 장비는 훨씬 대규모로 대량생산이 가능했고, 보급의 범위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넓어지기는 했다.
  8. [8] 그런데 그 일본 육군도 일단 현장의 병력들이 대체로 못 싸운 건 아니다. 무다구치 렌야는 그 일본에서도 답이 없는 드문 사례고. 다만 일본 육군의 상당수가 중국과 동남아에 묶여있었고 기본적으로 병력 수, 장비의 양과 질 자체가 떨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과 같은 도서에서의 육전은 지는 쪽은 후퇴가 어려우므로 무조건 전멸 확정이다.
  9. [9] 물론 이런 문제는 따지고 보면 일본 제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상대적 후진성에 기인하는 면이 크다.
  10. [10] 국화문양을 선수에 붙이는 작업을 한 노동자(또는 수병)들은 행여나 금박을 빼돌리진않았을까라는 이유 때문에 철저히 신체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모조리 탈의당하고 군의관에게 항문까지 검사받았다고 한다.
  11. [11] 어시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한국의 노량진 같은 곳.
  12. [12] 현재의 가고시마현과 미야자키현 남동부를 지배한 곳으로 당시 현 야마구치현 인근을 중심으로 한 조슈 번(나가토국)와 함께 일본 정치,군사쪽에서 강세를 보인 세력으로도 유명함. 이곳을 다스리던 가문이 그 유명한 시마즈 가문이다.
  13. [13] 일본어로는 보통과연대.
  14. [14] 소수의 인원이 해군 지원부대나 항공부대에도 배치됐다. 일본 군부는 조선인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함선근무는 시키지 않았다.
  15. [15] 일본 해군 예과 연습생 출신이다.
  16. [16] 애초 니콘의 탄생이 일본군 해군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해군은 고성능 잠망경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에 부응한 미쓰비시가 출자한것이 니콘. 실제로도 세계대전 연간에 해군 잠망경 등 군수납품이 활발했었다.
  17. [17] 일본군에서 활약했던 함선을 모티브로 의인화 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온라인 게임으로,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18. [18] 일본 해군의 군함 건조계획을 총칭하며, 일본어로는 丸-계획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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