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동

장세동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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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장

제5공화국 (1981 ~ 1988)

제 12 대
노신영

제 13 대
장세동

제 14 대
안무혁


대통령경호실장

제4공화국 (1972 ~ 1980)

제5공화국 (1980 ~ 1988)

제4대
정동호

제5대
장세동

제6대
안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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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동(張世東)

1936년 9월 27일~

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60년 ~ 1984년

임관

육사 16기

최종계급

중장

최종보직

대통령경호실장

주요보직

제 3공수특전여단장

1. 소개
2. 생애
2.1. 군인 시절
2.2. 전두환 정권 시절
2.3. 이후
3. 기타

1. 소개

대한민국 제5공화국 당시 대통령경호실장,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역임했다. 이른바 전두환베리야

전두환 정부의 실질적인 2인자로 그전에 박정희 정권에 인사로 대입하면 그 권세와 공작과 신임이 이후락+차지철이라 할 수 있다.

제30경비단[1]장으로, 직속상관인 장태완 장군을 배신하고 반란에 가담하였다. 장태완이 말한 "반란군놈의 새끼들", "역적놈의 새끼들" 중 한 명. 게다가 실제로 장태완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장세동을) 발견 즉시 사살하라"는 명령까지 내리기도 했다.

전라남도 고흥군 출신이다. 장세동은 본적이 경상북도 대구, 즉 그의 아버지는 대구광역시 출신이라는 말도 있지만 근거는 없다. 선산이 녹동에 있으니...[2] 근데 정작 안기부장 시절에 고흥지역 원로들이 자신을 만나려는 것도 거부했다.

2. 생애

2.1. 군인 시절

1960년 육군사관학교를 16기로 졸업하고 하나회에 가입하였다. 하나회는 경상도 출신 군인들이 주축인데 호남 출신인 장세동이 가입한 건 그만큼 장세동이 소위 '난 놈'으로 통했던 셈.

전두환과는 기수차가 있기 때문에 육사 시절에는 인연이 없었고, 처음 만난 것은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을 때라고 한다.당시 장세동은 교전 중에 큰 부상을 입었는데, 마침 베트남에 파병 중이던 전두환 중령은 장세동의 무용담을 전해듣고 안면이 없는 사이임에도 장세동을 찾아가 그의 용맹함을 치하했다고 한다. 직속상관도 찾아온 적이 없는데, 안면도 없는 중령이 찾아와준 것에 대해 장세동은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3] 이후 전두환이 단장으로 있던 수경사 제30경비단에 배속되어 전두환과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에 전두환이 제1공수 여단장을 할 때, 장세동은 그 아래서 대대장을 맡는 등 전두환의 심복 역할을 자처하며 하나회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다.

장세동이 전두환의 힘만으로 군내에서 출세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전두환과 인연을 쌓기 전에 베트남전에서의 무공을 쌓았기 때문에 귀국 후 군내에서 출세가 보장된 상황이었다. 때문에 장세동의 능력과 자질을 알아본 전두환이 장세동에게 먼저 접근하여 자신의 심복으로 만든 것이라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1979년 대령시절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장을 맡았는데, 12.12 군사반란 때 지휘계통을 어기고 하나회 인맥에 의해 신군부에 가담하고 직속 상관인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을 체포하였다. 이 공로로 준장에 승진하며 육군특수전사령부 제3공수여단장을 맡게 되었다.

2.2. 전두환 정권 시절

http://www.ehistory.go.kr/movie_pds/ImageRoot/Yesterday%2Fpix%2F19%2F19810026001.jpg

1981년, 현역 장군 신분을 유지한 채 제3공수여단장에서 대통령경호실장으로 임명되었다. 여느 육군 장성들처럼 육군참모총장을 꿈꾸었던 장세동 개인으로서는 별로 원치 않던 자리였으나[4] 각하가 하라면 해야지 어쩔 수 있겠나(...)[5] 이는 전두환이 허화평 비서실 보좌관과 허삼수 사정수석비서관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듬해인 1982년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이후 전두환이 경호실의 위상을 높여 허화평 허삼수를 압박하는 목적으로 장세동을 소장으로 진급시켜주었다.[6]

http://www.insight.co.kr/news/13186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97523

1982년 전두환 경호를 위해 무리한 출격명령으로 특전사 53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명 봉황새 작전을 강행한 지시자로 알려져 있다.

http://www.ehistory.go.kr/photo_pds/PG-%C3%D1%B8%AE%2B%C0%CF%B9%DD%2FPG-1984%2F%C4%AE%B6%F3%2FPG-1984-1004%2F2400dpi%2FPG-1984-1004-002.jpg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으로 인해 경호실장으로서 책임을 져야함에도 불구하고 노신영 국가안전기획부장과 함께 유임되어 직책을 계속 수행했던 것을 본다면, 전두환은 단순히 세력 견제용으로 장세동을 불러들인 차원을 넘어서서 권력다툼이 난무한 청와대 내부에서 장세동을 매우 신임하고 심적으로도 매우 의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84년 12월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http://www.ehistory.go.kr/photo_pds/PG-%C3%D1%B8%AE%2B%C0%CF%B9%DD%2FPG-1984%2F%C4%AE%B6%F3%2FPG-1984-1009%2F2400dpi%2FPG-1984-1009-018.jpg

민주화 요구가 거세진 1985년 국가안전기획부 부장에 임명되었다. 이 때 노태우의 손아래 사촌 처남이자 당시 대통령비서실 법률비서관 겸 정무비서관이던 박철언을 자신의 특별보좌관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하여 정권 후반기에 노태우, 노신영 등과 함께 후계자로 주목받았다. 그가 국가안전기획부를 맡았을 때 일으킨 사건만 여러건이다.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평화의 댐 사건,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 게다가 야당 국회의원 빼오기 같은 공작에는 꼭 그의 그림자가 있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해외 정보나 대 북한 정보 수집에는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1986년 국가안전기획부가 김일성 사망설을 발표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서 망신당하였다. 그러다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물러났다.

2.3. 이후

전두환의 심복으로 찍혔기 때문에 같은 신군부 출신인 노태우가 집권한 후에는 전혀 권력을 얻지 못하고 청문회에 불려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청문회에서는 비교적 당당한 모습으로 일관하여[7] "의리의 사나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8]

여러번 5공세력을 규합하여 정계에 진입하려고 했으나 너무나 음험한 이미지가 굳어져서 할 수 없었다. 전두환이 나들이라도 하면 항상 따라다니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김영삼 대통령 시절 소위 "역사바로세우기" 때 전두환과 함께 구속되어 12.12 때 반란 가담혐의로 3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김영삼 대통령김대중 대통령 당선인과의 합의를 통해 사면되었으며, 그 이듬해 복권되었다.

2002년, 수많은 정치인들이 눈앞의 이익을 위해 당적을 옮기는 등 철새 정치인 행보가 이어지자 의리와 소신이 사라지고 배신과 변절이 난무하는 시대에는 자신과 같은 의리 있는 사나이가 나서야 어지러운 사회를 바로잡고 국력을 신장할 수 있다는 이유[9] 개짖는 소리 안나게 하라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기대한 전두환이 지원을 안 해주면서 득표율이 처참할 듯 하자, 투표일 하루 전날 후보를 사퇴하였다. 전두환의 말로는 출마 전까지 극구 반대했으나 기어코 출마를 해버리자 "세동이도 나이 먹으니 내 말을 안 듣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참고로 16대 대선에 출마할 당시 군소후보 토론회에서 사회당 김영규 후보에게 극딜을 당했었다.

당시 김영규 후보는

지난 79년 오늘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는데 오늘 그 정권의 하수인과 같이 자리한 것이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다."

라고 했었다.심지어 토론 이후에도 김 후보는 '"쿠데타의 주역과 악수하지 않겠다"'는 뜻을 토론회 전부터 밝혀 끝내 장세동 후보와 악수를 나누지 않았다. 이는 '과거 청산'을 공약으로 내세운 사회당의 정책이 있기 때문이었다.

2013년 11월, 취재파일 K에서 수지 김 간첩 조작 사건으로 인해 장 씨에게 청구된 구상금 6억여 원이 아직 납부되지 않았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으며#, 2014년 6월 13일에는 장세동 등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장성 10명이 국방부를 상대로 군인연금 지급 거부 취소소송을 제기했으나 원고 패소 판결했으며, 위헌법률심판제청 또한 기각되었다.#

3. 기타

제5공화국 드라마에서는 홍학표가 캐스팅되었는데, 외모상 싱크로율이 높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5공 청문회 영상을 보면 목소리까지도 복붙 수준이다. 이 드라마 초기에 출연한 김재규 역의 김형일은 외모만 흡사했지 목소리가 정반대였던 걸 감안[10]하면 장세동은 가히 도플갱어 직전 수준이었던 셈.

1화에서 보안사령관 전두환(이덕화)을 만나 경호실장이 이렇게 설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라고 불만을 나타내는데, 정작 그도 전두환 집권 후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본다면 묘하다.

다만 이승만곽영주박정희의 차지철과는 달리, 경호실장 시절에는 대놓고 설치는 스타일은 아니긴 했다. 경호실장 시절에는 허화평-허삼수, 노신영 등이 권력을 서로 견제하는 구도였기 때문. 드라마에서도 경호실장 시절의 장세동은 정치적인 사안보다는 군부 자체 문제나 허화평-허삼수 견제 등에 전두환에게 조언 좀 하는 모습으로 주로 나온다. 물론 안기부장이 되고부터는 야권분열 등 정치공작이나 서울 물폭탄, 수지김 등 각종 공안이슈를 조작하고 실행하는 간교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안 믿길 수 있으나, 옛날 미의 기준으로 상당한 미남이다!(!!!)

정말 믿기지 않는다면 나이많으신 분들께 물어보자. 십중팔구 미남이라 하실 것이다.

영화 1987에서는 배우 문성근이 캐스팅되었다.[11] 본인의 정치 성향과는 정 반대 배역인 게 특징. 게다가 베우 본인의 친부인 문익환 목사를 간첩으로 몰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으로 나온다. 배우가 그 장면을 찍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1. [1] 함께 쿠데타에 가담한 김진영이 지휘했던 33경비단과 함께 현 수방사 제1경비단의 전신.
  2. [2] 녹동 근방에 장씨들이 많다. 장성민이나 가수 거미(가수)의 어머니(장씨이다)가 이쪽 출신.
  3. [3] 하나회는 육사 졸업 즉시 가입하도록 되어 있고, 선배와 후배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입식을 가지기 때문에 안면이 없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전두환이 베트남에서 장세동을 찾아간 것은 하나회 후배 챙기기일 뿐, 장세동의 군공이나 전두환의 인품과는 무관하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4. [4] 게다가 장세동은 단순히 하나회 연줄로만 덕을 보았다기 보다는 과거 월남전 참전 등에서 군인으로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승승장구하던 사람이었기에 그런 마음이 더욱 컸던 것도 사실이다.
  5. [5]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전두환이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는지 내 마음이 외로워서 그랬다며 장세동에게 미안하게 되었다고 달래기도 한다.
  6. [6] 허화평 허삼수는 당시 예편한 민간인이었지만 예편 최종 계급은 장세동과 같은 준장이었기 때문이다.
  7. [7] "본인의 지시, 책임"이라 말하는 장면도 많았다고 함
  8. [8] 노태우 전 대통령의 심복이(장세동 정도의 위치) 비자금 사건이 터지자 바로 미국으로 도망갔던 것과 대비되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인복은 많았다고 비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현재까지 건재한 이유는 측근들이 버텼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 과정에서 재밌는 설이 있는데 장세동이 전두환을 대신해서 자신이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갔고 출소한 뒤 바로 전두환을 찾아가 인사하며 '대통령님! 휴가 다녀왔습니다!' 했다고 하며 전두환은 장세동을 크게 치하하며 장세동에게 후한 보상(대략 수십억)을 했다고 한다.
  9. [9] 웃긴 것은 장세동 본인도 12.12 반란 당시 직속상관인 장태완을 배신했으며, 국가와 국민에 충성해야할 군인의 신분으로 국민을 배신했다.
  10. [10] 외모도 얼굴만 비슷했지 김형일은 180센치가 넘는 풍채가 좋은 편 이지만 실제 김재규는 키 170도 안되는 왜소한 인물이었다.
  11. [11] 작중에는 장씨 성만 나오고 이름은 후반에 딱 한번 나오나, 1987년 당시 안기부장은 장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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