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커리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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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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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조지 워싱턴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제임스 먼로

존 퀸시 애덤스

앤드루 잭슨

마틴 밴 뷰런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윌리엄 해리슨

존 타일러

제임스 포크

재커리 테일러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밀러드 필모어

프랭클린 피어스

제임스 뷰캐넌

에이브러햄 링컨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앤드루 존슨

율리시스 S. 그랜트

러더퍼드 B. 헤이스

제임스 가필드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체스터 A. 아서

그로버 클리블랜드

벤저민 해리슨

그로버 클리블랜드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윌리엄 매킨리

시어도어 루스벨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우드로 윌슨

제29대

제30대

제31대

제32대

워런 G. 하딩

캘빈 쿨리지

허버트 후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해리 S. 트루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린든 B. 존슨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제45대

도널드 트럼프

※ 22.24대 미합중국 대통령인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한차례 건너뛰고 연임한 사례의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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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 color: #fede58;">Congressional Gold Medal
<span style="text-shadow: 0 0 10px #ffffff; color: #fede58;">의회 명예 황금 훈장</span>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776년

1777년

1779년

1781년

조지 워싱턴

소장 호레이쇼 게이츠

소장 앤서니 웨인

사령관 헨리 리 3세

준장 대니얼 모건

1781년

1787년

1800년

1805년

1813년

소장 너새니얼 그린

존 폴 존스

대령 토마스 트럭스턴

준장 에드워드 프레블

대령 아이작 헐
대령 스티븐 디케이터
대령 제이콥 존스

1813년

1814년

대령 윌리엄 베인브리지

대령 올리버 해저드 페리
대령 제시 엘리엇

대위 윌리엄 워드 버로우즈 2세
대위 에드워드 맥콜

대령 제임스 로렌스

대령 토머스 맥도너
대령 로버트 헨리
대위 스티븐 카신

1814년

1814년, 1848년

1814년

대령 루이스 워링턴

대령 존스톤 블레이클리

소장 제이컵 브라운

소장 윈필드 스콧

소장 피터 부엘 포터
준장 엘리저 윌락 리플리
대령 제임스 밀러

1814년

1815년

1816년

소장 에드먼드 P. 게인즈

소장 알렉산더 마콤

소장 앤드루 잭슨

대령 찰스 스튜어트

대령 제임스 비들

1818년

1835년

1846, 1847년, 1848년

1847년

1854년

소장 윌리엄 해리슨
주지사 아이작 셸비

대령 조지 크로간

소장 재커리 테일러

소머스 호의 장교 및 승무원 구출

중령 던컨 잉그함

1858년

1863년

1864년

1866년

1867년

프레데릭 로즈

소장 율리시스 S. 그랜트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로버트 크레이튼
에드윈 J. 로우
조지 C. 스투퍼

사이러스 웨스트 필드

1867년

1871년

1873년

1874년, 1904년

1883년

조지 피바디

조지 F. 로빈슨

대령 자레드 크랜달 그 외

존 혼 주니어

존 폭스 슬레이터

1888년

1890년

1900년

1902년

1909년

조셉 프란시스

수석 엔지니어 조지 W. 멜빌 그 외

중위 프랭크 H. 뉴콤

중위 데이빗 H. 자비스
소위 엘스워스 P. 버트홀프
사무엘 J. 콜 박사

라이트 형제

1912년

1914년

1915년

1928년

대령 아서 로스트론

폴 H. 크라이봄 그 외

로물로 세바스티안 나온
에두아르도 수아레즈 무히카

찰스 린드버그

로알 아문센
움베르토 노빌

1928년

1929년

1930년

1936년

토머스 에디슨

최초로 성공한 대서양 횡단 비행사들

소령 월터 리드

준장 리처드 에벌린 버드

링컨 엘스워스

1936년

1938년

1939년

1940년

조지 코한

리처드 올드 리치 부인
안나 불리니

하워드 휴즈

목사 프란시스 퀸

윌리엄 시노트

1942년

1945년

1946년

롤랜드 바우처

1939-1941년 미국 남극 탐험대 멤버들

미합중국 육군 원수 조지 C. 마셜
미합중국 해군 원수 어니스트 킹

미합중국 육군 원수 존 조지프 퍼싱

준장 빌리 미첼

1949년

1954년

1955년

1956년

1958년

앨번 W. 바클리

어빙 벌린

조너스 소크 박사

남북 전쟁의 참전 용사들

준장 하이먼 리코버

1959년

1960년

1961년

1962년

로버트 고다드

로버트 프로스트

토마스 안소니 둘리 3세

밥 호프

샘 레이번

1962년

1968년

1969년

1973년

1977년

미합중국 육군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

월트 디즈니

윈스턴 처칠

로베르토 클레멘테

매리언 앤더슨

1978년

1979년

중장 아이라 C. 이커

로버트 F. 케네디

존 웨인

벤 아브러조
맥시 앤더슨
래리 뉴먼

휴버트 호레이쇼 험프리

1979년

1980년

1982년

미국 적십자

케네스 테일러

1980 미국 하계 올림픽

베아트릭스 여왕

대장 하이먼 리코버

1982년

1983년

프레드 워링

조 루이스

루이스 라머

레오 라이언

대니 토마스

1984년

1985년

해리 S. 트루먼

레이디 버드 존슨

엘리 비젤

로이 윌킨스

조지 거슈윈
아이라 거슈윈

1986년

1987년

1988년

나탄 샤란스키
에비탈 샤란스키

해리 차핀

에런 코플런드

메리 래스커

제시 오언스

1988년

1990년

1991년

앤드루 와이어스

로렌스 록펠러

대장 매튜 B. 리지웨이

대장 노먼 슈워츠코프

대장 콜린 파월

1994년

1996년

1997년

랍비 메나헴 멘델 쉬니어슨

루스 그레이엄
빌리 그레이엄

프랭크 시나트라

마더 테레사

바르톨로메오스 1세

1998년

1999년

넬슨 만델라

리틀록 9인

제럴드 포드
베티 포드

로자 파크스

테오도르 헤스버그

2000년

존 오코너

찰스 먼로 슐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로널드 레이건
낸시 레이건

나바호 족 코드 토커

2002년

2003년

대장 휴 쉘튼

토니 블레어

재키 로빈슨

도로시 하이트 박사

조셉 디레인 [br[ 해리 & 엘리자 브릭스
레비 피어슨

2004년

2006년

마틴 루터 킹
코레타 스콧 킹

터스키기 에어맨

14대 달라이 라마

바이런 넬슨

노먼 볼로그 박사

2007년

2008년

마이클 데바키 박사

아웅산수지

콘스탄티노 브루미디

에드워드 브룩

아메리카 원주민 코드 토커

2009년

2010년

여성 공군 서비스 조종사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존 글렌

아널드 파머

무함마드 유누스

100연대 보병 대대
442 연대 전투단
군사 정보국

2011년

2012년

2013년

몬트포드 포인트 해병대

2001년 9월 11일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으로 사망한 남녀들

라울 발렌베리

애디 매 콜린스
데니스 맥네어
캐롤 로버트슨
신시아 웨슬리

제1 특수임무단

2014년

둘리틀 특공대 멤버들

미국의 공군 에이스들

제2차 세계 대전 민간 항공 초계 부대 멤버들

시몬 페레스

모뉴먼츠 맨

2014년

2015년

2016년

제65 보병연대

잭 니클라우스

셀마 몽고메리 행진

제2차 세계 대전 필리핀인 참전 용사들

OSS

2017년

밥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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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초상화

풀네임

Zachary Taylor

출신정당

휘그당

생몰년

1784년 11월 24일 - 1850년 7월 9일(65년 7개월 15일)

재임기간

1849년 3월 5일 ~ 1850년 7월 9일(1년 4개월 3일...)

서명

173cm

1. 전반적 생애
2. 사망
3. 일화

1. 전반적 생애

1784년 버지니아 주의 부유한 농장주 리처드 테일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은 후 민병대에 들어갔던 적이 있던 그는 교육을 마치고[1] 정식 군대에 들어가게 된다.

입대하고 터진 첫 전쟁인 미영전쟁에서 윌리엄 해리슨과 함께 인디애나를 원주민들의 공격에서 지켜냈고 막바지인 1814년에는 존슨 요새를 점령하는 등의 공적을 세웠다. 이를 계기로 차근차근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잡아 승진을 하면서 군인으로서 지내던 그에게 제임스 포크 대통령의 밀명이 전달되었다. 그 내용은 "국경을 넘어서 멕시코군을 도발하라!"는 내용이었고 그는 그대로 했다. 이렇게해서 터진 전쟁이 바로 미국-멕시코 전쟁.

이 전쟁에서도 그는 뛰어난 실력으로 멕시코군을 격파하며 승장이 될 수 있었다. 원주민 핍박 전문인가 이러한 그의 인기를 높이 산 휘그당에서는 테일러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정작 휘그당원 대다수는 전쟁에 반대했는데도 말이다. 어쨌건 마틴 밴 뷰런이 경선에서 자꾸 미끄러지자 독자 출마하여 민주당이 분열된 틈을 타 손쉽게 당선되었다.

참고로, 그의 취임식이 일요일이었는데 테일러가 죽어도 일요일에는 취임선서를 못하겠다며 거부해 결국 하루 뒤인 3월 5일에 취임선서를 한다. 여기서 한가지 사소한(?) 논쟁이 생기는데, 대통령 임기가 만료됬기에 자연히 부통령도 임기가 만료했고, 후임 부통령도 취임선서를 하지 않았기에 상원 의장 대행이었던 데이비드 라이스 애치슨이 하룻동안 임시 대통령으로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2]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부정하며 전임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된 시점에서 테일러가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가진다고 말한다. 하여튼 애치슨의 묘지에는 미국의 일일 대통령이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다.

그는 정치를 해본 적이 전혀 없는 전형적인 무골이었고 그간 1848년 이전에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나타내지 않아 사람들은 그가 어떤 대통령이 될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으나 대선 출마가 기정사실이 되자 정치적 신념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기본적으로 군 출신답게 내셔널리스트였고, 주의 주권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미합중국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깨져서는 안된다는 연방파였다. 비록 경제적으로 휘그당이 원했던 국가의 기반 시설 확충, 보호무역은 반대했으나, 정치적으로 대통령은 헌법에 관련되지 않는 이상 거부권을 사용하면 안 되고 의회에 맡겨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했으므로 휘그당에서 그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게 된다. 추대될 때도 휘그당 전당대회에서 대놓고 "비록 휘그당 후보로 출마하지만, 무소속처럼 행동할 것이며 휘그당을 위해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여 휘그당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 당선 이후에 공개적으로 휘그당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 침묵했지만, 사적으로는 대놓고 반대를 함으로써 자주 휘그당과 충돌했다.

테일러가 남부 출신이였고, 노예를 많이 부렸던 지주집안의 아들이였기 때문에 남부 유권자들은 그가 노예제 확대 찬성파일거라고 착각했지만, 사실 그는 노예 문제는 주에게 맡기자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의 제일 큰 관심사는 어떻게 협상을 해서 미국이라는 국가를 하나로 묶을지였다. 이는 남부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것이였는데, 남부는 캘리포니아 및 새로 편입된 영토와 주가 노예제를 합법화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넓히고 싶어했기 때문이다.[3] 본인 역시 남부 출신이자 노예 소유주라서 남부가 노예제를 유지할 권리를 당연히 존중했고 노예제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였다.[4] 그러나 이런 중립적인 행동이 남부에서는 배신으로 받아들여졌고, 점점 남부 출신 정치인들이 미국을 갈라 독립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자 이에 테일러가 남부를 달래기 위해 내세운 것이 헨리 클레이 등이 제시한 1850년의 타협안이다. 이 타협안 외에도 여러가지를 제시하는 한편 만약 정말 남부가 독립할 경우 본인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내려가 반역자놈들은 다 목매달아 주겠다고 강하게 나갔다.[5]

2. 사망

이 타협안을 놓고 의회에서 옥신각신하던 중 독립기념일날 테일러는 갑작스럽게 쓰러졌다. 하필 그 날은 몹시 더운 날이었는데 체리우유를 과식했다 탈이 나고 만 것이다.(정확히는 위장염이었다고.) 그리고 5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미국에서 독살설이 도는 대표적 대통령이다. 거기다 테일러가 타협안에 반대하고 있던 것도 한 몫했다. 하도 소문이 끊이지 않자 1991년 유해를 부검했다. 100년이 넘었는데?? 결과는 자연사였다. 그럼에도 이 밑밥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강직한 성품에 추진력을 갖추기는 했지만, 오래살았다면 앤드류 잭슨 2기 정도 되었을 것이다. 본인도 남부 출신에 노예 소유주라 북부의 노예제를 없애자는 주장에는 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군 출신에다가 열렬한 연방주의자였기 때문에 그가 대통령을 계속했다면 임기 내에는 적어도 링컨 시절같은 피비린내나는 내전은 없었을 것이라는게 중평이다. 그러나 앤드류 잭슨이 예언했던 것처럼 노예문제는 구실에 불과했고, 어쨌든 분리독립하고 싶어했던 남부가 언젠가 독립할것이라는 건 거의 기정사실화 되었기 때문에 시기만 늦춰졌지 남북전쟁은 피할수 없었다. 그래서 음모론이 나왔던 것이고.

이렇게 휘그당의 두 대통령이 모두 군인 출신으로 취임 직후 병사하면서 휘그당은 빠르게 몰락하고 민주당이 다시 8년간 대통령을 배출하게 되며, 결국 링컨 때 휘그당은 공화당으로 재창당되게 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지만 테쿰세의 저주 대상이 아닌데도 임기 중에 사망한 유일한 대통령이다.하지만 얼마나 원주민들의 증오를 받았겠나? 멕시코도 함께..

3. 일화

평생 군인으로 지낸 것 때문이었는지 죽는 순간에도 제법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I have always done my duty, I am ready to die. My only regret is for the friends I leave behind me."

"나는 항상 내 의무에 충실했으며,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게 걱정이 하나있다면 내가 떠난 후 남을 친구들이다."

전쟁 등으로 명성을 높여서 얻은 별명은 "Old Rough and Ready".(거칠고 노련한 준비된 지휘관.)

제퍼슨 데이비스와도 접점이 있다. 항목 참조.

초상화에서는 주로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정작 군인 시절에는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병영에서 군복을 입는 것을 싫어했고 사복 상태로 있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한 일화를 들면 테일러의 부대에 새로 부임한 신임 장교가 늙은 촌부의 모습으로 술을 먹고 있는 테일러를 알아보지 못하고 테일러에게 "요즘 인디언들 때문에 고생이 많지? 내가 다 무찔러 줄게"라고 떠벌렸는데 테일러는 그 장교의 장단을 맞춰주며 "그래 주시면 정말 고맙습죠"(...)라고 응수했다. 다음날 그 장교가 지휘관에게 인사를 하러 지휘관실을 찾아오자 군복을 입고 있던 테일러를 보고 깜짝 놀라 데꿀멍하며 사죄했지만 테일러는 웃으면서 "처음 보는 사람을 옷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네. 친구"라고 충고를 해 주고 넘어갔다고 한다.

또 한 번은 해군 사령관인 데이비드 코너 제독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코너 제독은 테일러와는 달리 복장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군인이었다. 그래서 테일러는 예의를 지키기 위해 모처럼 군복을 FM대로 입고 코너 제독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막상 코너 제독을 만나자 테일러는 깜짝 놀랐는데 그 이유는 코너가 테일러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가벼운 사복 차림으로 테일러를 만나러 왔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한참을 멍때리고 있다가 자초지종을 말하고 서로에게 사과를 했다고. 과잉배려


  1. [1] 당시 그가 살던 곳은 켄터키와 인접해 있었는데 그곳에는 아직 학교가 없었기에 그는 가정교사의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2. [2] 애치슨은 잠자다가 판사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었고 그 판사는 애치슨에게 미합중국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해달라고 농담했다고 한다. 이때문에 스펀지에서는 캘빈 쿨리지와 함께 잠자다가 대통령이 된 사람 중 한명으로 소개한다. 스펀지에서는 애치슨이 3월 4일 하룻동안 쭉 자고있었다고 말했는데 이 일화대로라면 몇분동안은 깨어있었던 셈.
  3. [3] 서부 신개척지에는 남부인들보다는 북부인들이 주로 진출했기에 노예제에 반대하는 성향이 강했다. 주에 알아서 맡기면 새로 생겨날 주들은 모두 노예제에 반대했을 것이다.
  4. [4] 이런 경향은 상당히 흔한 것이었다. 당장 제퍼슨만 봐도...
  5. [5] 앤드류 잭슨과 비슷한 성향인데, 앤드류 잭슨 역시 남부 주들에게 동정적이였으나, 자꾸 찡찡대면서 독립하려고 하는 주들에게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테일러의 후임인 필모어도 마찬가지로 북부 출신으로서 남부에 편을 들어줬는데도 사우스캐롤라이나가(남부연합의 첫번째 주가 된 주이기도 하다.) 연방을 탈퇴할 기미를 보이자 그러면 군사조치로 답하겠다고 함으로서 찍어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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