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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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赤壁大戰

시기

208년 11월

장소

중국 후베이 성 셴닝 시[1] 츠비 시[2]

원인

전국(戰局)의 주도권을 장악한 조조의 강동 진공(進攻)

교전세력

조조

손권·유비 연합

황제

황제 유협

지휘관

조조군

손권군

승상 조조
조인
악진
서황
가후
장료
이전
허저






토로장군 손권
주유
정보
노숙
황개
한당
감녕
여몽
주태
능통
여범

유비군[3]

좌장군 유비

병력

조조군
160,000명[A][5]

손권군
20,000명[6]~30,000명[7]

유종군
80,000명[A]

유비군
2,000명[8]~20,000명[9]

피해

피해 규모 불명

피해 규모 불명

결과

조조군의 참패. 손권과 유비 연합군의 대승리.

영향

조조, 남형주 지배력 및 천하통일의 기회 상실.

1. 개요
2. 배경
3. 정사에서의 적벽 대전
3.1. 유비와 손권의 연합
3.1.1. 노숙과 유비
3.1.2. 제갈량의 낚시질
3.1.3. 동맹의 최초 제안자는 누구?
3.2. 동오 내부의 분열
3.2.1. 노숙
3.2.1.1. 이에 대한 위나라의 기록
3.2.2. 주유
3.2.2.1. 시기의 문제
3.2.3. 사실은 아직도 불안하다
3.3. 유비와 주유
3.3.1. 이 기록의 신빙성
3.4. 전투의 진행
3.4.1. 전초전
3.4.2. 사항계
3.4.4. 조조의 도망 길
3.4.5. 기타 다른 기록들
3.5. 적벽대전의 결말과 평가
3.6. 과연 적벽대전은 존재했는가
3.7. 연합군 병사의 규모
3.8. 화계의 실제 전공
4. 삼국지연의에서의 적벽대전
4.1. 시작
4.2. 모략전
4.3. 전투
5. 연의에서 각색된 부분
6. 트리비아
7. 기타 창작물

1. 개요

赤壁大戰 / 赤壁之战

좀 더 자세한 개념도. Xinye는 신야, Fanchang은 번성, Xiangyang은 양양, Battle of Changban은 장판파 전투, Hanjin은 한진나루, Jiangling은 강릉, Xiakou는 하구(夏口), Fankou는 번구(樊口), Chaisang은 시상, Wulin은 오림, Huarong은 화용도, Baqiu는 파구(巴丘), Dongting Lake는 동정호를 뜻한다. Yangtze River는 장강, Han River는 한수, marshland는 습지대이다. Liu Bei(유비)Guan Yu(관우), Liu Qi(유기)는 빨간색, Sun Quan(손권)Zhou Yu(주유)의 군대는 노란색, 보라색은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 Cao Cao(조조)의 군대는 초록색이며 초록색 점선은 조조의 퇴각로이다. 마지막으로 Battle of Red Cliffs는 적벽대전이다.

삼국지 최고의 하이라이트이자 천하삼분지계 직전의 클라이맥스. 관도대전, 이릉대전과 더불어 삼국지 3대 전투로 꼽히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전투. 삼국지를 안본사람도 들어봤을 정도의 명성을 자랑한다.

관도대전이릉대전은 전투의 규모를 떠나서 유관장[10], 그리고 조조 혹은 제갈공명 등의 활약이 크게 없었거나 아예 참여조차 없었던 경우도 있는 반면에 적벽대전에서는 조조는 패배, 유관장, 제갈공명, 손권은 승리라는 포지션으로 삼국지 최고의 인기캐릭터였던 6명이 전부 참가했던 전투였으므로 가장 유명하다. 특히 애시당초 유비손권이 우세하던 상황이 아니었고 조조의 위나라가 압도적으로 우세를 점하던 시기에 조조의 천하통일의 염원이 박살나고 천하삼분지계가 시작된 사건이었기에 재미의 요소도 있다.

다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는 실제 적벽대전이 일어난지 약 1000여 년이 지난 1363년 진우량주원장의 대결인 파양호 전투로부터 나관중이 모티브를 얻어서 각색한 것이다.

2. 배경

실제 적벽대전이 벌어진 츠비(赤壁: 적벽). 한국에서 위와 같은 사진만 보고 '등애가 오르내린 친링산맥에 비하면 동네 뒷산 아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직접 가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바로 저 엄청난 수역으로 보는 사람을 너비로 압도해버린다. 백만 대군이 연환계로 배를 묶어놓고 싸운 게 이해가 된다.[11]

이곳의 원래 명칭은 푸이(蒲圻: 포기)였으나, 1998년, 도시 이름을 츠비로 변경했다. 사실 양쯔강의 수역이 계속 변화한지라 지금의 츠비가 정말 그때의 전쟁터인지도 잘 모른다. 참고로 저 사진에 붉은 글씨로 쓰여진 '적벽'이란 글자는 적벽 대전의 승리 이후 주유가 크게 기뻐하며 손수 쓴 글씨라고는 하는데 진실은 저 너머에... 풍화면역 오파츠 염료

당시 조조원소와 그 아들들의 잔당을 모두 처리하고 208년 6월 한나라의 승상에 오른 후, 7월에 남하하여 유표가 죽고 유종이 뒤를 이은 형주를 침공해 9월에 항복을 받아낸다. 유비군은 장판파에서 조조의 추격을 받았으나 하구로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여기서 조조는 가후가 말림에도 불구하고 강동으로 쳐들어갈 계획을 세운다.[12]

한편 패퇴한 유비를 보고 조조 휘하 의논하던 사람들이 손권이 반드시 유비를 죽일거라 여기니, 정욱이 이를 헤아려 보고서 말하길

손권이 이제 막 자리에 오른지라 해내(海內)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조공께선 천하에 적이 없고 이제 막 형주를 점령하셔서, 그 위엄이 강표(江表, 장강 이남 지역. 즉 동오)에 떨쳤으니, 손권에게 비록 지모가 있다한들 능히 혼자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유비에겐 빼어난 명성이 있고, 관우와 장비는 모두 1만 명을 상대할 수 있으니, 손권이 필히 그를 빌어 우리를 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세력을 풀어 나누기는 어렵고, 유비의 도움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으니, 또한 죽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즉 손권은 유비가 없으면 조조를 막아낼 수 없으니 죽일수 없을 거라고 여긴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3. 정사에서의 적벽 대전

  • 이 문서에서의 타임라인은 자치통감을 따라갑니다.

3.1. 유비와 손권의 연합

3.1.1. 노숙과 유비

유비가 이렇게 거듭 패퇴할 동안 208년에 오범의 예측대로 유표가 죽었다. 오나라에서는 노숙이 유표의 세력을 흡수하기 위해 유비를 설득할 것을 손권에게 권하였고, 손권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노숙이 유비가 이끄는 군세에 도달하기 전에 유종은 조조에게 항복해 버렸고, 유비는 장판파에서 추격해오던 조조의 오천 기병에게 한바탕 당한 뒤였다. [13]

당양의 장판에서 유비를 만난 노숙이 이제 어찌할 요량이냐고 묻자, 유비는 옛 친구 오거에게 의지하러 가겠다고 한다. 노숙은 오거에게 가기보다는 손권과 결합하기를 설득하였고, 이어 제갈량에게 제갈근과 친분있음을 밝혀, 양측은 즉시 함께 수교하기로 결정하였다. 결국 유비는 노숙의 말을 따라 악현 번구[14]에서 행군을 멈춘 후, 제갈량을 오나라로 보내 노숙을 따라 손권에게 나아가게 해 동맹[15]의 서약을 맺었다.

3.1.2. 제갈량의 낚시질

시상에서 정국을 고민하고 있던 손권을 만난 제갈량은 그를 만나자마자 "유비님을 도와주어 싸우도록 하십시오. 만약, 이길 수 없다고 생각되면 그냥 조조한테 항복하시든가요." 하고 말하며 오나라의 국력을 무시했는데 만일 오나라의 국력을 추켜세우는 발언을 하면 유비가 손권에게 빌붙을 수밖에 없다는 걸 환기시키는 꼴이므로 손권이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쨌든 장판파에서 조조한테 신나게 쫓겼던 유비가 보낸 제갈량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손권은 부아가 치밀어 되물었다, "그럼 어째서 유비는 조조한테 항복하지 않는가?" 이에 대한 답변으로, 제갈량은 자신의 주인 유비를 애초부터 손권과는 격이 다른 인물로 추켜세움으로써 손권을 겁 많은 졸장부로 만들어 버렸다. 당신 정도의 인간은 항복한들 어떠한가, 그러니까 잘 생각해서 항복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시오 정도의 의미.

이런 말을 들으니 손권은 발끈하여 결연하게 항전의 의지를 밝혔다. 젊은 손권이 안 그래도 긴장되는 국면에 놓여 성마르게 되었으니 발끈하기야 했겠지만, 손권이 놓인 현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시키는 측면도 있다. 이렇게 제갈량이 딱 원하는 결정이 났으니, 제갈량은 아직 유비에게 2만 명의 군사가 있다면서 강노지말 고사를 예로 들어, 조조군은 밤낮으로 달려 남하하였으므로 지쳤는 데다가, 형주의 인심마저 얻지 못하고 있으니[16] 유비와 손권의 군세가 힘을 합하면 솥의 세 발과 같은 균형잡힌 세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를 유심히 들은 손권은 납득이 되어 부하들과 유비와의 동맹에 대하여 심도있는 의논을 하였다.

3.1.3. 동맹의 최초 제안자는 누구?

내용을 보게 되면 노숙이 동맹을 제안했는지 제갈량이 동맹을 제안했는지 확실하지가 않은데 배송지는 노숙전에 이렇게 주를 달았다.

신 배송지가 생각하기는 이와 같습니다. 유비가 손권과 협력하여 함께 중국(조조군)에 저항하였던 것은 이미 노숙이 꾸민 계략입니다. 또한 제갈량에게 '나는 자유의 친구요.'라 말했던 까닭으로 제갈량도 곧 노숙의 의견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촉서 제갈량전에는 '제갈량이 동맹의 계책을 손권에게 설파하자 손권이 크게 기뻐하였다.'라 말하고 있어, 마치 그 계략이 제갈량으로부터 나온 것처럼 적고 있습니다. 양국의 사관들이 각기 견문을 기록하고, 자국의 우위를 칭송코자 다투어, 서로 그 공적을 빼앗으려 하는 듯합니다. 지금 이 두 글(오서 노숙전과 촉서 제갈량전)은 한 사람(진수)에게서 나온 것인데, 이렇게나 다른 점이 있습니다. 저술로서의 체계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양측의 사관들이 자기네들 재상이 공적이 있다고 다투었는데 진수가 제대로 정리를 안했다는 뜻이다.

자치통감의 타임라인을 따르면 노숙이 장판까지 쫒아와 동맹을 맺자고 하고 유비는 이미 제갈량한테 융중대를 듣고 손권과의 동맹이 최상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오거에 의탁하겠다' 하고 노숙에게 말을 해보았다. 이에 노숙이 손권이야말로 최상의 동맹감이라며 동맹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이에 유비가 기뻐하며 노숙의 설을 따랐다. 이후 제갈량에겐 제갈근과의 친구임을 말하고 서로 친교를 맺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에 제갈량은 하구에서 자기가 사자로 가겠다고 나섰다 하여 양측을 적절히 조합했다. 사실 이 부분은 정사나 연의나 거의 비슷하다. 노숙이 장판에서 유비를 만나 번구에 주둔시키기까지 하면서 동맹하자고 나서는거 빼곤 말이다.

따지고 보면 노숙이 먼저 나섰지만 원래부터 손권과의 동맹에 뜻이 있던 제갈량이 맞장구치는 형태로 이 두 사람이 이해관계가 맞았다고 보면 될 듯한데 어차피 제갈량 역시 융중대에서 오와 화친하여 동맹으로 삼아 조조에 대항하자는 의견은 이미 제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 둘은 유손동맹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게 되지만. 제갈량은 "형주를 토대로 촉을 삼켜라"고 말했고, 노숙은 "형주를 삼켜서 촉을 어렵게 만든 뒤 조조에 맞서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형주를 두고 불같이 싸우게 된 것. 그리고 이후 서로 형주를 익양대치로 적절히 나누어 형주 분쟁을 종결하려 했는데 노숙 사후 여몽은 형주 분할에서 만족하지 않았고 유손동맹은 파탄을 맺고야 만다. 일설에 의하면 제갈량이나 노숙 외에도 당대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자주 오르내렸던 말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가 아는 형태의 천하삼분지계는 제갈량만의 계책이 맞다.

3.2. 동오 내부의 분열

3.2.1. 노숙

손권은 싸울 것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부하들을 불러 모은다. 하지만 이때 조조가 보낸 편지가 도착한다.

근래 천자의 말씀을 받들어 죄지은 자를 처벌하였소. 깃발이 남쪽을 가리키니 유종이 손을 모았소. 지금 수군 80만 명의 무리를 다스려서 바야흐로 장군과 함께 오에서 만나 사냥하려고 하오.

유종도 그냥 항복했으니 이제는 손권의 양주를 정복하겠다는 뜻. 손권 자신이 10만이라고 칭할 정도의 병력이었으나 각지에 흩어져서 반란병들을 토벌하던 세력들도 있어서 전군은 동원할 수는 없었는데 조조는 손권군 전군이라고 쳐도 8배가 되는 군사를 끌고 온다는 편지가 떡 하고 오니 이 편지를 본 오나라의 신하들은 장소진송을 필두로 항복을 주장한다.

이들은 조조는 천자를 끼고 있어 명분이 있다는 점과 오가 가지고 있는 지리적 이점인 장강을 이미 조조가 형주를 얻었기에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고 유표의 몽충 1천척을 비롯한 잘 조련된 수군을 얻었으니 항복하는 것만 못하다고 한다.

이때 동오의 명분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는데, 손책과 손권이 구축한 세력은 어디까지나 동오 지역의 호족 연합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측의 세력 차이가 너무 나기도 했고. 많은 인물들이 그저 일시적으로 난을 피하기 위해 손씨의 세력에 가탁했을 뿐, 한나라 황실이라는 중앙의 권위에 대항하여 할거하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손책이 공들여 영입했던 화흠 같은 경우는 이미 손권을 배신하고 조조에게 붙어버렸다. 심지어 손씨 내부에서도 손권의 사촌형인 손분은 아들을 볼모로 보내 조조에게 항복하려고 할 정도였고 이는 주치가 나서서야 겨우 말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 오직 노숙만이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화장실에 가는[17] 손권을 따라잡아 처마 밑에서 만난다. 노숙이 무슨 뜻으로 왔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 손권은 노숙의 두 손을 잡고 의중을 물으니 이에 노숙은 다른 사람은 모두 항복해도 주공(손권)만큼은 항복할 수 없다. 신하들이 항복하면 모두 적당히 대우를 받고 태수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으나 손권만큼은 갈 곳이 없으니 항복하자는 개소리는 무시하고 어서 대계를 정할 것을 권한다.

이는 다른 신하들은 조조의 세력으로 전향하면 벼슬을 하면서 출세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뜻인데 실제로 다른 세력에 있다가 조조 측에 투항하여 높은 벼슬을 받은 사례는 여러 명이 있었다.[18] 하지만 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손권은 투항해봤자 잘 해야 목숨만 건지고 견제 받으면서 한직이나 내도는 처지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이 사람들이 견지한 의견은 나의 소망을 크게 실망시키는 것이었소. 오늘 그대가 원대한 계획을 분명하게 밝힌 것은 나와 생각이 일치하오. 이것은 하늘이 그대를 나에게 내려 준 것이오!

그 말에 손권은 탄식하며 곧장 파양에 있는 주유를 돌아오게 한다.

3.2.1.1. 이에 대한 위나라의 기록

노숙전에 주석으로 있는 위서와 구진춘추에는 제갈량이 손권을 도발한 것이나 싸우자고 주장한 것도 모두 노숙이 한 것으로 되어 있어 다른 기록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손성오서강표전에는 노숙이 처음으로 손권과 회견하였을 때부터 조공을 막아야 한다고 진술하여 제왕의 계략을 논하였고, 유표가 죽은 뒤, 곧 사자를 보내 정세를 관찰하게 하도록 요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이제 와서 의견을 바꾸어 조공을 맞이하도록 권하여 도발하려 한 것은 있을 법하지 않은 행동인데다가 이때 조공을 맞아들이도록 권하는 자가 많았는데, 노숙 한 사람만을 베려고 하였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평했다.

3.2.2. 주유

파양에서 돌아온 주유는 사실상 황실의 적인 조조를 오히려 이 기회에 무찔러야 한다며 항복 측의 의견을 반박하고,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로 인해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1. 수전에서는 우리 오군을 이길 수 없다는 것.
  2. 북쪽에는 아직 마초, 한수 같은 배후의 세력이 남아있다는 것.
  3. 지금은 겨울이라 말에게 먹일 것이 없다는 것.
  4. 중원의 사람들이 이 먼 곳까지 왔으니 반드시 질병이 돌 것이라는 것.

주유의 이 같은 말에 손권은 전쟁을 결심하고

사악한 적이 한 왕실을 폐하고 스스로 황제로 일어서려고 한 지 오래되었소. 단지 원씨 두 명,[19] 여포, 유표만을 꺼렸을 뿐이오.[20] 지금 몇몇 영웅은 이미 소멸되었고, 오직 나만 여전히 남아있소. 나는 사악한 적과 양립할 수 없는 형세요. 그대가 당연히 공격해야 한다고 한 것은 나의 생각과 매우 부합하는 것이며, 이는 하늘이 그대를 나에게 준 것이오.

그리고는 칼을 뽑아 앞에 있는 주안[21]을 찍으며

제장과 관리들 가운데 감히 다시 마땅히 조조를 맞이해야 한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이 탁자와 같게 되리라!

하고는 회의를 끝마쳤다.

3.2.2.1. 시기의 문제

주유전에는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 조조에게 항복할 것을 권하자 주유가 나서 이들을 물리쳤다고 되어있는 반면 노숙전에는 다른 이들이 모두 항복을 논할 때 노숙이 혼자 반대하고 주유를 불러온 것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배송지는 주를 달아 노숙이 먼저 반대를 한 뒤 주유를 부른 것이 맞다고 확정하며 주유전의 내용은 노숙의 기록을 가로챈 것이라고 기록했다.

3.2.3. 사실은 아직도 불안하다

주안까지 내려찍으며 결의한 손권이었지만 조조의 80만의 군대는 확실히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주유는 그런 손권에게 밤 중에 다시 찾아가 80만은 아무리봐도 무리이며 조조가 원래 거느리고 있던 병사는 많아야 16만명, 거기다가 아직 확실하게 항복하지 않은 유표의 병사 8만이 다라고 하며 자신에게 5만의 병사만 주면 이들을 무찌르겠다고 한다. 손권은 주유의 등을 어루만지며

공근, 경이 여기까지 말한 것을 들으니 아주 내 마음과 같소. 자포와 원표[22]와 같은 사람들은 각각 처자식을 생각하며 사적인 생각을 마음속에 품어서 기대하던 것을 깊이 잃었으며 오직 경과 자경만이 나와 같을 뿐이고, 이것은 하늘이 경 두 사람으로 나를 돕게 한 것이오.

5만 명의 병사를 군사를 갑자기 모으기는 어려우나 이미 3만 명을 뽑아놓았고, 배와 양식, 전쟁도구를 다 갖추었소. 경과 자경, 정공[23]은 편리한 대로 앞서 출발하면, 는 마땅히 인원을 계속 발동하고 자신과 양식을 많이 수레에 싣고서 경을 위하여 후방에서 지원하겠소. 경은 이번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니 진실로 해결하시오. 해후하는 것이 의도대로 아니 된다면 편리한 대로 에게 돌아오시오. 고가 당연히 맹덕과 이것을 결판내겠소.

그런데 건강실록에 따르면

유비는 제갈량으로 하여금 손권에게 이르게 하였고, 손권은 주유, 정보와 장병 2만, 제갈량과 더불어 유비를 따르게 하여 남쪽에서 조조와 맞섰고, 손권은 스스로 장군이 되어 중군 1만으로 이어나가게 했다.

라고 되어 있다. 오주전에도 정보와 주유가 거느리고 있는 병사가 2만명으로 되어 있는데 건강실록과 함께 해석하면 실제로 싸운 군대는 주유, 정보의 2만 군대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는 주유와 정보를 좌우독으로 삼아서 유비와 함께 힘을 합쳐서 조조와 맞서게 하고 노숙을 천군교위로 삼아 방략 세우는 일을 돕게 하였다. 사실 이 당시 정보는 주유를 그렇게 좋게 보고 있지 않았으니 주유 입장에선 내부 균열을 봉합해야 하는 고단한 작업이었을 듯하다.

이건 주유뿐만 아니라 손권도 마찬가지였던 듯, 주유가 말한 5만명도 모아주지 못해서 기껏해야 3만명밖에 모으지 못했고 그나마도 1만은 자신이 중군으로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제갈량 앞에선 10만 대군을 논했던 당찬 모습과는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인데 워낙 주전파와 항복파간의 격렬한 논쟁끝에 일이 결정된 것이라 정작 싸우기로 결정되었어도 몸을 사린 호족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호족연합체인 동오의 태생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다.

3.3. 유비와 주유

번구에서 손권의 원군만을 기다리고 있던 유비는 드디어 손권이 보낸 주유의 배를 발견하고 사람을 보내 주유를 위로한다. 그런데 자신의 아랫사람이 되는 주유는 부서를 떠날 수 없다면서 거꾸로 유비보고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유비는 관우, 장비에게 이 자리에서 이미 힘을 합치기로 했는데 부르는 것을 안 갈 수는 없다면서 말하는데 아무래도 동맹이랍시고 이렇게 나오는 주유의 이런 태도에 저 둘이 화가 난 모양이라 달랜 모양이다. 그래서 유비는 직접 호위도 대동하지 않고 주유를 찾아간다. 유비가 강하에 머물면서 주유가 만난 사람이 유기가 아니라 유비라는 점에서도 이 시점에 강하에 유비가 세력을 잡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곳에서 유비는 주유의 군대가 그렇게 많지도 않은 3만인 것을 주유에게 듣고 발견한다. 노숙의 말에 허풍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겨우 3만?[24]유비가 실망감을 나타내며 적다고 말하자 주유는 실병력도 2만인 주제에 3만이라고 뻥카를 치면서 '그냥 자신이 공을 세워 적을 쳐부수는 것을 지켜보기나 하라'고 오히려 핀잔을 준다. 유비는 예전에 만났던 노숙 등을 불러다가 함께 얘기를 하자고 하지만 주유는 이번에도 '노숙은 명을 받아 움직일 수 없으니 (본인이) 보고 싶으면 직접 찾아가라고 공명도 조금 있으면 올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라' 말한다.

아랫사람이 이렇게까지 대하니 빡칠만도 하지만 유비는 노숙을 부르려고 했던 자신의 잘못에 부끄러워하는 한편 한 군대를 이끌 주유의 엄정함을 확인한 것에 대해서는 기뻐한다.

3.3.1. 이 기록의 신빙성

이 기록은 선주전의 강표전에 있는 기록인데 이 뒤에 유비는 주유가 대단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기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고 2천 명을 이끌고 형세를 관망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손성은 이 기록에 대해

유비는 웅재로, 필히 죽을 형편에 처하자 위급함을 오에 고해 도움을 얻어 달아날 수 있었으니, 다시 강변을 고망[25]하며 훗날의 계책을 품을 까닭이 없다. 강표전(江表傳)의 말은 응당 오인(吳人)들이 전미[26]하려는 말이다.

라고 기록했으며 자치통감 또한 강표전의 내용은 기록하되 유비가 주유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부분과 관망했다는 내용은 제외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강표전 기록에는 저렇게 나와있는데 자치통감에는 이후 유비가 느낀 감정이 딱 네 글자로 서술되어 있다. 저 위의 서술도 이 네 글자를 보고 해석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여기에선 유비가 주유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異瑜)는 기록이 없으며 그저 유비(備)가 심히(深) 수치스러워하고(愧) 기뻐했다(喜)는 기록뿐이다.

3.4. 전투의 진행

3.4.1. 전초전

그리고 두 군대는 적벽에 집결했다. 과연 주유의 예측대로 조조의 군사들은 풍토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다. 때문에 첫 교전에서 조조군은 패배하여 장강 북쪽으로 물러났다. 주유는 조조군을 견제하고자 하여 남쪽 강 언덕에 진영을 세웠다. 하지만, 양측의 병력 차이는 여전히 컸을 뿐더러, 시간이 끌면 끌수록 오나라가 불리해져갔다. 그렇게 속절없이 대치하던 어느날, 황개가 주유를 찾아왔다.

3.4.2. 사항계

주유를 찾아온 황개는 적이 배를 서로 붙였음을 지적하며 화공을 사용할 것을 건의한다. 주유는 그 계책을 받아들여 몽충 10척에 마른 억새와 장작을 싣고 그 가운데에 기름을 붓고 휘장으로 덮어서 위장한 다음 위에는 정기를 세우고 미리 주가[27]를 준비하여 그 끝에 맨다.

그리고는 조조에게 항복의 편지를 보내니 조조는 황개의 사자를 만나 자세히 묻고는 결국 황개의 사항계에 속아 넘어가 버린다.[28] 사실 오나라의 신하들은 이미 항복론자가 많이 나올 정도로 정치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주유와 노숙만이 주전론을 펼친다'는 말은 온전히 거짓은 아니었고, 조조 역시 이러한 내부 사정은 정탐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이 황개의 사항계를 믿을만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주유의 항전과 풍토병에도 시달리니 전황을 뒤집고 빨리 끝내고픈 조조의 심리도 사항계의 성공률을 매우 높였을 터이다.

3.4.3. 적벽은 불타고 있는가

동남풍이 급하게 불자, 다급해진 황개는 열 척의 함선을 최전방에 내세우고, 강 가운데서 돛을 올려 나머지 배와 함께 차례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조조군의 병사와 관리들은 이를 보고는 "황개가 진짜로 항복하러 왔다!"며 좋아하였지만, 황개는 조조의 배들에서 2리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미리 준비해두었던 인화물질에 불을 붙여 조조의 함선들과 충돌하였다. 강한 바람을 타고 사이좋게 엮어져 있던 조조의 배들은 불에 타 침몰하는 배가 부지기수였으며, 곧이어 거센 불길은 강 언덕 위에 있던 군영에까지 이어졌다.

검은 연기와 붉은 화염이 하늘에 피어올랐고, 사람과 말은 쉴새없이 낼름 거리는 불길에 사로잡혀 불타올랐으며, 뜨거움을 해소하고자 강에 뛰어들었다가 빠져 죽은 자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뒤이어 주유는 경무장한 정예병을 인솔하여 조조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뇌고[29]를 쳐서 오림의 조조군을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선주전에 따르면 유비 역시 이 공격에 참여해 조조와 적벽(赤壁)에서 싸워 이를 대파하고 그 배를 불태웠다.

하지만 일등공신 황개는 날아왔던 유시에[30] 맞아 부상을 입었고,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배에서 떨어져 강에 빠졌다. 그가 인솔하던 병사들이 그를 구출해줬으나 어둠속에 그가 누군지 몰라서 그냥 화장실 안에 넣어버렸다. 가끔씩 이걸 평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지만 원문에는 置廁床中 이라고 하니 평상이 맞긴 하다. 다만 문제는 측상(廁床)이라는 게 화장실 속에 비치된 평상이라는 것… 결국 황개는 병사들의 실수로 위생상태 괴악한 당시의 화장실 속에서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것이다. 다행히도 황개가 한당을 보고는 죽을 힘을 다해 소리쳐서 한당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마터면 전쟁의 승리에 큰 공을 세운 구국영웅 장수가 화장실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웃지 못할 사례가 될 뻔했다.

3.4.4. 조조의 도망 길

유비와 주유가 계속해서 진격하니 조조는 화용으로부터 도보로 달아난다. 그런데 중간에 진흙탕을 만나서 길이 통하지 않고 날씨 또한 바람이 엄청 불어서 군사들에게 풀을 져다가 그것을 메우게 하고서야 기병이 마침내 지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병들에게 길을 만들어준 파리해진 군사들은 사람과 말에 밟혀서 진흙 속에 빠져 죽고 만다.

유비와 주유는 계속해서 조조를 쫓아 남군까지 도착하는데 도망쳐 나온 조조는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주위 제장들이 왜 그러냐고 묻자

유비는 나의 맞수이나 다만 계책을 쓰는 것이 부족하고 늦는구나. 만약 일찍이 불을 놓았다면 내가 비견될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고 잠시 후 유비가 불을 놓았으나 이미 조조는 지나간 뒤였다.[31]

3.4.5. 기타 다른 기록들

태평어람에서는 영웅기의 기록을 보여주며 조조가 뗏목을 만들었고 그걸 주유가 불태웠다고 말한다. 또한 오주전에서는 조조가 남아있는 배에 불을 지르고 도망쳤다고 한다.

무제기에서는 대놓고 '공이 적벽(赤壁)에 이르러 유비와 더불어 싸웠는데 불리했다.'라고 하여 상대의 대장을 유비로 기록하고 있으며 산양공재기에서는 적벽에서 조조의 군선을 불태운 것을 유비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유비 역시 유기와 관우의 수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전에 함께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또 같은 기록에서는 화용도에서 조조가 달아나며 유비는 나의 맞수이나 다만 계책을 쓰는 것이 부족하고 늦구나라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유비가 조조가 지나간 지역에 불을 질렀다고 나오니 유비가 조조를 화용도까지 추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주전에서는 '손권은 주유, 정보 등 수군 수만을 보내 선주와 힘을 합해, 조공과 적벽에서 싸워 이를 대파하고 그 배를 불태웠다. 선주는 오군과 함께 물과 뭍으로 아울러 진격하고, 조공의 군을 추격해 남군에 이르렀다. 이때 또한 역병이 돌아 조조군에 사망자가 많자, 조공이 군을 이끌고 되돌아갔다'고 되어 있어 조조군을 대파한 주장이 유비고 주유, 정보가 파견되어 힘을 합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주유, 정보의 주 병력이 수군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만 선주전에는 조조군을 추격하는데 있어서 주유와 정보의 수군만 나오는데 적벽대전도 그렇고 이후 곧바로 벌어진 남군 공방전에서도 오나라 육군을 이끄는 장수들과 조인군과의 교전이 보이므로 오군 역시 육전에서 유비군과 함께 활약했을 것이다.

오주전에서도 유비가 먼저 (조)공의 군대를 격파하고 그 뒤에 손권이 합비를 공격했다고 하니 선주전, 무제기, 오주전 셋 다 실질적으로 조조를 격파한 걸 유비로 기록하고 있는 셈인데 이 점을 볼 때 유비가 가진 반조조 세력 결집능력과 관위등을 따진 것만이 아니라 유비도 주장의 신분으로 이 전투에서 주유의 손오의 군대 못지 않은 비중을 가지고 활약했고 이후 남군공방전까지 주유와 같이 진행했으며 이런 큰 비중 덕분에 사서에서는 연합군에서 실제 조조를 격파한 것은 주장격 신분인 유비라고 다들 판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32] 애당초 비중도 그렇거니와 당시 유손동맹에서 가장 관위가 높아 관위상으로도 사실상 총사령관 위치에 있던게 유비기도 했다.

3.5. 적벽대전의 결말과 평가

사실상 실제 역사에선 조조에 맞서 유비와 손권이 군단 단위 전투로는 처음으로 제대로 한 방 먹인 사건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삼국지 관련 작품들은 제갈량의 극적인 활약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인지 대부분 연의의 내용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조조는 이 시기를 전후하여 주유에게 남군을 빼앗기는 등 형주 남부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했으며 반대로 유비의 세력이 이를 거점으로 급격히 팽창했다. 자세한 내용은 형주 공방전을 참고하자. 정원기 교수는 조조의 패인이 형주의 민심을 다 수습하지도 못했는데 서둘러 공격한 데다가 궁지에 몰린 유비와 손권을 압박해 둘이 힘을 합치게 만들어 난이도를 스스로 올린 것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적벽대전이 겨울(음력 11월의 동지철)에 일어난 것을 본다면 조조가 전투를 서둘렀으며 이는 결국 패배로 이어진다.[33] 주유가 지적했듯 조조군은 유비를 쫒기 위해 상당한 강행군을 하였으며 이들은 물 위에서의 싸움에 익숙하지 않았다. 또한 조조군의 주유, 유비 연합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력한 전력이었던 기병의 경우 말먹이를 확보할 수 있는 계절이 아니었으며 또한 배 위에선 기병의 강점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조조는 자신의 군의 강점을 발휘할 수 없는 곳을 전쟁터로 삼은 셈이었다.

조조군이 전염병으로 인해 고생했다는 기록을 본다면 군의 컨디션도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기후 조건과 강행군의 여파였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조조군이 주유군의 화공에 대책없이 당한 것을 본다면 적벽이 좁은 협곡을 끼고 있어 대선단을 기동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형인 듯하는데 그 이유는 넓은 곳에 포진하였다면 기동함으로써 화공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조는 유종을 공격하기 위해 남하할 당시 손권까지 공격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 보이며 이는 합비에 대한 수비가 매우 빈약한 것으로 보면 알 수 있다. 형주 공방전 항목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조조가 자랑하는 하북 기병으로 원술을 죽이고 차지한 회수에서 장강으로 도하해 건업을 치는 게 더 빠르고 간단하다. 오히려 형주에서 강을 타고 내려가는 게 더 번거롭다. 손권은 그 위험성 때문에 회수를 손에 넣겠다고 열심히 꼴아박다 모두 실패하기까지 했다. 당대 최고의 전략가로 불린 조조가 진심으로 시간을 들여서 강동 침공을 계획했다면 합비에서 건업으로 밀고 내려갔을 것이다.

즉 조조가 적벽에서 싸우는 것은 치밀한 계획 끝에 나온 것이 아니라 유종이 너무도 쉽게 무너지자 내친 김에 손권까지 정복해 보려는 다소 즉흥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결과 조조군은 만반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형편없는 컨디션으로 대군이 싸우기에 불리한 지형에서 싸움을 강요받은 것이었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조조가 직접 지휘한 전투 중 유례없을 정도의 참패를 당하게 된다.

보면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전략가 답지 않은 모습을 많이 보였다. 조급증에 뻔하디 뻔한 사항계에 속았고...수전에는 당연히 서툴렀고 또 수전에 약하다해도 20만 넘는 군사가 다 배에 타고 있는게 아니다, 물리적 공간으로도 불가능하고, 배가 그렇게 많을 수도 없다. 적벽에서 수전이란 도하를 놓고 벌이는 일부 병력의 전초전이라 수전에 참여한 병력보다 훨씬 많은 병력이 오림쪽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수전이야 패배할 수 있는데 오림의 진을 지키지 못하고 조조 자신부터 혼란에 빠져 역으로 도하한 유비와 주유군에게 미친듯이 썰리며 화용도까지 도망간건 통솔 잘못이라고 할 수 밖에는...게다가 육상 병력은 오림에서 압도적이었으니 오림에 방어선을 치고 압도적인 병력을 이용해서라도 도하하는 적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조인에게 간신히 남군을 수비할 병력만 남기고 형주를 거의 포기한채 하북으로 피할정도로 궤멸적인 패배였다.

참패에 의한 손실이 상당히 큰지 조조는 화용도를 황급히 빠져나오는 구절이 정사에 보이며, 남군을 지키라고 남겨둔 조인의 경우 손권, 유비의 연합군보다 열세의 병력으로 지켜야했다. 적벽대전 이전 조조가 거느린 병력의 수가 유비, 주유의 연합군을 크게 웃돈 것을 감안해보면 조인이 이토록 적은 수의 병력을 거느린 것은 사실상 조조가 적벽전투에서 그의 병력 대부분을 잃었다고 봐야 하고 따라서 적벽에서의 패배는 삼국지 연의에서 묘사한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을 정도의 대참사라 추측된다. 이때의 손실의 여파 때문인지 조조는 그 이후로 대규모 총력전을 통해 유비나 손권을 멸망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그저 국지적인 승리에 만족하며 병력을 철수하는 모습을 보인다.

거기다가 사실상 거저 얻은 남형주는 그대로 유비와 손권에게 넘어가버렸고 덕분에 유비는 훗날 익주로 진출할 발판을 얻게 된다.

흔히 역병 때문에 졌다고는 하는데 그게 사기에 영향을 미칠 수준이었다기엔 장수 중 누구도 역병에 걸린 기록이 없고 그러니 전투를 강행했을 것이다. 즉 역병은 없진 않았더라도 무제기에 나올 정도로 큰 영향이 아니라 미미한 수준인데 진수가 위진 건국 시조인 조조의 패배 책임을 피하기 위해 핑계로서 사용했을 공산이 크다.

신 배송지는, 가후의 이 전략은 시의를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한수나 마초 등의 무리는 관우(관서)지방에서 승냥이같이 (중원을) 노리고 있었고 위의 무제가 영주(형주)에 느긋하게 앉아, 위광으로 오지방을 다룰 여유가 없던게 명백한 상황이었다. 형주는 손권, 유비 쟁탈의 목표였던 지방이다. 형주의 주민은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유주(유비)의 웅세를 흠모하고 손권의 무략을 두려워 했다. 실제로 조씨의 제장이 방어해낼만한 곳이 아니다. 그래서 조인은 강릉을 수비한 때, 곧바로 패배를 겪고말았다. 어째서 '위애'하는것이 가능하며, '머리를 숙이고 귀순'시키는걸 기대한단 말인가. 장강과 한수에 끼인 지역(형주)를 새롭게 평정하고, 양주와 월주(오 지방)를 떨게 만드는 이 때에. 유표의 수전용 무기를 이용해 형초의 지방에 수오의 손을 빌리는 것은 말 그대로 강남을 제압할 호기, 천하를 넓게 평정할 큰 기회였다. 이 기회를 타고 오를 빼앗지 않고서, 언제 찾아올 기회를 노릴 것인가. 적벽의 패배에 있어서는, 아마 그렇게 될 운명이어서였을 것이다. 실제로 역병이 대유행해 예리한 창끝을 잃어버리고, 남풍이 불어와서 불의 기세를 타버렸다. 하늘이 이렇게 만든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책임인가. 그렇다면 위무제의 동진은 실책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후의 이 계략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위무제가 후년(215년) 장로를 평정한 때 촉 내부에서는 하루에 수십번이나 패닉상태가 일어나 유비는 그들을 억누르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때 무제는) 유엽의 계략을 채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촉을 취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계획에서 벗어난 뒤에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이것도 마치 여기서 논한 일과 같은 실패와 같다. 세간의 사람들이 모두 유엽의 계략이 옳았다고 인정하는 이상, 결국 가후의 의견에 잘못이 있는게 확실하게 드러난 것이 아닐까.

배송지의 평

다만 배송지의 경우는 가후전에 가후가 더 이상의 진격을 반대하는 대목에 주석을 달아 조조의 이런 결정을 옹호하며 결과가 나빴을 뿐이지 의도는 좋았다며 득롱망촉의 고사까지 들어가며 설명을 한다.[34] 즉 일을 망친 건 맞지만, 조조가 성급하게 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는 소리.

사실 이해하려거든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가후의 지연책은 그 자체로만 보면 온전한 전략인 듯 보이지만, 해당 기사에 주를 단 배송지가 지적하였듯 한수와 마초를 비롯한 관중의 제장들이 언제고 조조의 배후를 치고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유비와 손권이 쉽게 굴복할 만한 인물들이었는지도 의문이다. 자칫 기약 없는 기다림에 빠져 형주에 군사를 묶어만 놓고 있다간 대군이 체제하고 있는 형주의 민심과 물산이 더 빨리 바닥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당장 형주에 무혈 입성하고, 장판에서 유비의 무리를 대파시킨 기세를 타 강동까지 벼락같이 들이쳐 병합시키는 것이 여러 모로 이치에 맞았다. 만약 공격을 포기하고 대책없이 주저앉아만 있다 후방에 일이 생기거나 해서 형주 현지에 대군을 더 주둔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간 소득 없이 회군해야 할 판이고, 그렇게 되면 일껏 피해 없이 점령한 형주를 놓고 유비, 손권 등과 격렬한 싸움을 벌이게 될 수도 있음을 고려했다고 하면 가후의 전략을 거부한 조조의 판단을 마냥 잘못된 것이라 비판할 수만도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확전을 제지한 가후 등의 식견이 결국엔 옳았다고 후대 사람들이 믿어버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전쟁을 결행한 조조의 판단이 결국 전에 없는 대실패를 불러왔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가후의 전략을 비판하고 조조의 선택을 지지한 배송지조차도 "(조조가) 오 지역을 얻음에 장차 이보다 더 안전한 기회가 없었으나, 결국 적벽에서 대패함은 그의 운수가 사나웠기 때문이며… 하늘이 이와 같이 한 것일 뿐 사람의 노력으로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며 깊은 허탈감이 느껴지는 견해를 제기한 것이 아닐까.

또한, 조조가 이처럼 준비가 철저하지 못하고 시기도 좋지 못한 상황에서 굳이 전면전을 감행하였다가 참패를 초래한 원인을 조조의 연령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적벽대전 당시 조조의 나이는 50대 중반으로, 당대의 기준으로는 이미 할아버지 테크를 탔다고 봐야 할 나이였다는 점을 생각하자.

예순을 넘기기도 쉽지 않고 일흔을 넘기면 드물게 장수한 것이라고 하던 당시 기준으로 조조는 사실상 은퇴할 시기가 멀지 않은 노인이었다. 그런데 한 번 출병한 군대를 되돌린다면… 갓 점령한 형주를 안정시키고 다시 출병을 준비하는 데는 수 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할 것이고, 이 경우 나이 예순에 가까운 조조가 다시 직접 출병할 수 있을지 자체가 불투명했던 것.

노년에 갑자기 건강이 악화될 가능성도 상당하고, 예순 살 노인이 직접 군을 이끌고 출전한다고 하면 주변의 만류나 불신 등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도 감안할 수밖에 없었다. 뭐 실제로 삼국지(정사든 연의든)를 보면 이후에도 조조가 직접 군을 이끌고 출병한 사례가 몇 차례 더 있었으니 지나친 걱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35], 어지간하면 내일이 보장되는 젊은이의 사고방식과 하루하루 늙고 쇠약해지는 자신을 느낄 수밖에 없는 노인의 사고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특히 그때까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천하를 재패해 온 조조로서는 보장되지 않는 훗날을 믿기보다는 가능하기만 하다면 당장 문제를 해결하는 쪽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더구나, 적벽대전에서 조조에 맞선 손권-유비진영의 주요 인물들의 나이를 살펴보면 조조와 비슷한 세대인 유비를 제외한 손권, 주유, 제갈량등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으로 조조보다 20세 이상 젊었다. 즉, 당시 조조의 입장에서는 자신보다 한 세대 젊은, 아들뻘 되는 세대들이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충분한 활력을 가지고 대두해서 성장해 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적벽대전 당시의 조조는 자신 를 제패하고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젊은 세대가 성장해서 그 자리를 위협하고 있음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는 것이다. 이 경우, 세대론의 입장에만 한정해서 본다면 당장 싸우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인 것이 당연하다. 자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늙고 쇠약해지고 약해질 테고, 젊은이들은 경험을 쌓아서 성장하며 강해질 테니까. 이래서야 조조가 조급함에 일을 그르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이런 조조의 개인적 상황에 맞물려, 예상보다 훨씬 쉽게 형주를 점령한 결과 형주 점령을 위해 준비한 군대와 군비가 온전히 남았고, 약점이었던 수상전력 역시 형주를 흡수하면서 어느정도 보충된 상황이라면 준비가 불충분하고 상황이 최적이 아니라도 당장 싸우는 쪽이 더 낫다고 느끼는 것 역시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사실 형주에서 강동보다 익주를 먼저 정리한다는 게 말은 좋지, 강동은 그나마 장강 수로가 있으니 일이 끝나면 주력병력을 빠르게 빼낼 수가 있는데 익주는 한 번 병력을 들여놓았다가는 언제 다시 이동시킬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험난한 지형이다. 게다가 무려 10만이나 되는 민간인이 우르르 조조를 피해 유비를 따라갈 정도로 형주 민심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상 시간을 질질 끄는 것 역시 위험부담이 크기는 마찬가지였다.

간단히 말해, 손권+유비를 배후에 놔 둔 상태로 익주를 먼저 칠 경우 손권과 유비 연합세력이 오히려 형주를 장악하고 조조의 배후를 끊어버릴 수 있다는 것. 10만이나 되는 인구가 우르르 조조를 피해 유비를 따라갈 정도로 적대적인 형주 민심+10만이나 되는 인구를 따라오게 할 정도로 상당했던 형주 내에서 유비의 인망+유표의 장자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는 와일드카드 유기까지 있으니 유비가 의외로 손쉽게 형주를 장악해 버릴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형주에 믿을 수 있는 병력과 장수를 충분히 남겨둬야 하는데, 전력을 이렇게 분리하면 당연히 익주 공략에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유약한 성격의 유장이 저항을 포기할 경우 익주를 생각보다 쉽게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 그나마 조조에게 유리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유장 밑에도 바보만 있는 것은 아닌 이상 '조금만 버텨내면 손권+유비가 조조의 배후를 끊어줄 것이다' 라는 기대로 익주의 지세에 기대어 방어하는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36] 이렇게 시간이 끌릴수록 위험요소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최악의 경우 익주를 장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손+유에게 장악된 형주와 익주 사이에 갇혀버릴 수도 있으며, 설령 어찌저찌 익주를 장악한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형주를 빼앗긴다면 한중이 아직 장로의 손에 남아있는 상황에서 방금 점령하여 제대로 장악하지도 못한 익주에 고립될수도 있는 것.

무엇보다도... 이런 고립 상황에 빠질 경우 조조 자신이 중원+하북에 걸친 광대한 세력권과 단절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평소라면 설령 패전하더라도 자기 세력권 내로 퇴각하여 이후를 기약할 수 있지만, 이런 고립 상태에서 패배할 경우 본거지로 돌아갈 길도 막혀 모든 것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즉, 이런 고립-패배의 가능성을 낮게 보더라도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막대하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1) 방금 장악한 형주에 충분히 머무르며 상황을 충분히 안정시키거나 2) 일단 본거지로 물러난 후 다시 한중의 장로를 복속시키고 익주로 넘어가는 것 과 같은 방책을 선택해야 할 텐데. 이것은 형주를 쉽게 얻음으로써 발생한 이점을 포기하고 재원정을 한다는 의미이니 아예 논외. 어차피 유비 하나만 확실하게 잡을 수 있으면 중국 천하에 그 어느 누구도 감히 조조에게 맞설만한 담력도, 명분도 보여줄 사람이 없었고[37], 유비에게 마지막 발 붙일 땅이었던 강동의 상황은 위에서도 살펴봤지만 항복파의 목소리가 워낙 컸으니[38] 조조로서는 자못 자신감을 가질만했다.

적벽의 대패로 입지가 약해진 조조는 이후 동작대를 세우면서 "내가 다른 애들은 다 잡았는데 유비랑 손권 등만은 평정 못했으니 군권 못 내놓는다"면서 입지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이후로도 조조에 반항하는 이들은 많았다. 군사적 세력으로는 여전히 조조가 최강자였지만 적벽 이후 정치적 세력으로는 유비와 손권이라는 라이벌들이 힘을 얻어서[39] 조조에겐 골치 아프게 된다. 따라서 정치적 위상에 커다란 타격이 가는 것은 피하기 어려웠다. 실제로도 관도전과 원가 잔존세력을 쓸어버린 이후 어느 누구도 도전할 수 없던 조조의 위상이 흠이 간 것이 결국 삼국정립의 길을 열어준 것이니까.

결국, 적벽대전은 조조가 평생을 바쳐서 꿈을 이루고자 했던 천하통일의 달성을 눈 앞에 두고 극적으로 좌절되어버린 천추의 한이 남는 패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조 본인은 물론이고 조씨 가문 전체에게도 천하통일의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으며, 천하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또한 적벽대전에서 패함으로서 조조는 자신의 남은 시간 중 세력 내부의 체제개혁에 쓸 시간이 없게 되었고, 결국 사대부와 결탁한 조비가 후계자가 되자 체제개혁의 희망은 사라진다.

3.6. 과연 적벽대전은 존재했는가

사실 정사에서 누구의 기록을 보느냐에 따라 내용이 좀 다른데, 무제기(조조전)에서는 역병으로 군사를 물렸다고 짤막하게 기록된 반면 주유전에서는 화공으로 조조군이 다 불탔으며 연기가 하늘을 메웠다는 묘사가 나온다.

정사 삼국지는 조조의 패배를 돌려 말한데 비해 산양공재기의 경우는 확실히 조조가 패배했다고 쓰고 있다. 기전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정사의 모든 기록들을 자세히 종합해본다면 적벽에서 실제로 큰 싸움이 있었고 조조가 대패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우선 무제기를 제외한 나머지 기록에는 적벽에서의 전투에 대해서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원래 삼국지 같은 기전체 역사서가 각 전의 주인공에게는 옹호적인 서술을 하는 문제점이 있고 특히 진수의 삼국지는 위나라 진나라에 대한 옹호가 좀 많이 심하다는 것도 감안해야한다.

그리고 적벽에서의 전투는 앞서 말했던 전초전으로 주유의 화공으로 대승을 거둔 것은 오림이다. 진수도 혼용하기는 했다.

3.7. 연합군 병사의 규모

유비군, 손권군의 병력에 대한 고찰.

일단 대체적으로 군사의 규모는 비슷하지만 살짝 살짝 차이가 난다.

  • 먼저 선주전에 주석으로 딸린 강표전의 기록에 따르면 주유가 3만의 군사를 이끌고 갈 때 유비는 2천의 군사로 뒤에 남았다고 나와있다.
  • 정사 제갈량전의 제갈량의 말에 따르면 유비의 패잔병에다가 관우의 수군을 합쳐 만 명, 강하의 유기가 지원한 병력 만 명, 이 둘을 합쳐 2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였다고 나오고 손권은 3만의 군사를 지원했다고 나온다.
  • 마지막으로 오주전의 기록을 보면 정보와 주유가 각기 1만을 이끌고 갔다는 말이 나온다. 거기다가 주유전 주석에는 5만을 달라는 주유에게 손권은 갑자기 5만을 주기는 어렵고 이미 뽑아놓은 3만이 있다는 말이 있으며 주유가 유비에게 3만의 병력이 있다는 말을 한다. 이걸로 손권측의 군대는 3만이 거의 확실해지나 유비 쪽은 손성이 너무 과장되었다고 말한 강표전의 2천이라는 말과 제갈량이 주장한 2만이라는 말밖에 없어서 2만으로 추정된다.
  • 오주전에는 주유와 정보가 이끈 군대가 2만이라고 하고 건강실록에는 1만의 군사가 손권의 중군이라고 한다, 실제로 손권군의 군사중 실제 전투에 참여했던 군사수는 2만명으로 보인다.

결국 그들의 군대의 규모는 유비군 2만(제갈량의 주장)+ 손권군 3만 해서 5만의 병력 정도. 추가적으로 적벽에 참가한 오나라의 장수는 주유, 정보, 노숙, 황개, 한당, 감녕, 여몽, 주태, 능통, 여범, 서성이 확인된다.

3.8. 화계의 실제 전공

기록에 따르면 결국 전투를 결정지은 화계는 10여척의 배와 동남풍 두 가지만으로 효과가 극대화되었다는 기록뿐이다. 다만 이것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어림잡아도 10만 명 규모를 실을 배들을 끌고 왔는데 기껏 10여 척의 화공선에 허무하게 패퇴했다는 점에서 조금 의문이 든다.

대형 산불과 같은 경우에 큰 불덩이가 강한 바람을 타고 왕복 4차선 도로 정도는 우습게 뛰어넘어 날아가서 불을 옮겨 붙인다. 적벽대전에서도 오군이 배에 기름과 장작을 가득 싣고 강한 동남풍을 이용해 화공을 펼쳤다는 기록을 볼때, 거대한 화염이 강한 바람을 타고 사방을 넘나들면서 불바다로 만들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조조군은 수전에 익숙치 않은 병력을 고려해서 배들을 쇠사슬로 연결했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에 화염이 더욱 빨리 번질 수 있다. 다만 자치통감에는 실제로 쇠사슬을 연결했다는 기록이 없는 반면 다른 기록에서는 발견되기 때문에 쇠사슬 부분은 자세한 교차검증이 필요하다.

다시 대형 산불의 예를 들자면, 강한 바람을 탄 산불의 전파 속도는 초속 30-40m 정도나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우사인 볼트 정도는 가뿐히 넘어서 자동차보다도 빠른 속도이다.[40] 그래서 만약 조조군의 진영이 적벽에 집결되어 있었다면, 제대로 불길을 잡기도 전에 강한 동남풍을 타고 불이 순식간에 전군으로 번졌을 수 있다. 실제로 조조군 병력이 적벽에 모여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당시 중국의 강남 지역이 개발이 덜 되어서 사방이 늪지와 밀림이었기 때문에, 대규모 군대가 기동하고 막대한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을 끼고 작전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먼 바다에서의 해전과는 달리 강에서의 수전은 강가에 배치된 육군이 전투에 큰 도움이 된다. 강가에서 발사한 화살이나 다른 원거리 무기가 배에 닿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투 중에 강가로 밀려나온 배들은 육군의 좋은 먹이감이 되기 때문이다. 당시 수전에서 오군에게 밀리고 있던 조조군의 입장에서는 수군을 지원하기 위해 육군을 강가에 근접하게 배치하고 나무로 방어용 시설을 많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시 적벽에 화공이 성공할 요인이 갖추어져 있었다고 해도, 인류의 오랜 전쟁사에서 화공선을 이용해 보려는 시도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제대로 성공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은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일단 공격자의 입장에서는 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는 배에서 내려서 도망가야 하기 때문에 배를 더 이상 조종할 수 없고, 그래서 결국 화공선이 목표에 제대로 돌진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시에 수비자의 입장에서도 화공선을 발견하면 미리 밀어내거나 파괴를 시도하고, 가능한 빨리 아군의 배들을 대피시키기 때문에 화공의 성공 확률이 낮은 것이다. 만약 적벽에서 오군의 화공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면, 화공선들이 강한 동남풍을 타고 직선으로 달려가서 제대로 목표로 돌진했고, 동시에 수전에 미숙한 조조군이 쇠사슬로 묶어 놓은 배들을 가지고 우왕좌왕하다가 제대로 피해를 입었어야 한다. 즉, 운칠기삼 식으로 운이 어느정도 작용했어야 한다.

황개가 화계에 동원한 배가 겨우 10여 척뿐인 것도 화공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요인이 되곤 한다. 이 배들이 모두 성공했을 경우 배에 가득 채운 인화물질과 강한 바람의 도움을 고려하면 10여 척으로도 충분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조조군의 거대한 규모를 고려했을 때 수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감이 있다.[41] 다만 배에 불을 붙인 다음에는 선원들이 대피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배를 조종할 수 없고, 따라서 화공선끼리 부딪히는 일이 없도록 거리를 널찍널찍 띄워놔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화계에 가장 적절한 화공선의 숫자가 10여 척뿐일수도 있다.[42]

화공선의 전과에 의구심을 가지는 입장에서 대안으로 내놓은 의견 중에 대표적인 것은 주유전과 무제기를 조합한 결과이다. 화공으로 큰 성과를 거둔 것도 맞지만 실제로 결정적인 패주 요인은 전염병이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화계는 전염병으로 저하된 사기를 결정적으로 터뜨리는 촉매제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것.[43] 하지만 화공으로 인해 전세가 바뀌질 않았다면 어찌 될지 모르는 부분이니 마냥 깎아내릴 수 없겠다.

4. 삼국지연의에서의 적벽대전

4.1. 시작

조조군의 남하와 바로 항복해버린 유종으로 인해 위험에 처한 유비군은 간신히 신야에서부터 도망쳐서 당시 하구에 머물게 된다. 유비군의 참모 제갈량은 직접 강동으로 건너가 손권을 만나기 전에 먼저 장소, 우번, 육적 등의 오나라 투항파 문신들과 설전을 벌여 주장을 논박하였다.(이 설전에 관해선 제갈량 문서 참고.)

이후 손권 앞으로 간 제갈량이 설득을 계속하지만 손권은 결단을 못 내리고 '나라 안의 문제는 장소에게 물어보고 나라 밖의 문제는 주유에게 물어보라'는 오국태의 조언을 받아들여 주유를 호출한다. 노숙, 제갈량과 만난 주유는 조조의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싸워도 승산이 없을 것이니 항복해야겠다는 말을 하지만, 제갈량은 그것도 현명하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며 역사에 길이 남을 패드립을 남긴다.

조조가 업에 동작대를 올리면서 자기 아들인 조식에게 동작대부란 시를 짓게 했는데, 그 시에 강동의 두 미녀 대교소교 자매를 동남쪽에 거느리고 아침 저녁으로 즐기고 싶다는 시구가 있었다. 그러니 둘을 조조의 첩으로 보내면 된다.

실제 동작대부에 "連二橋(이교)於東西兮"라는 문구가 있긴 했지만 여기에서 이교는 대교와 소교를 칭하는 것이 아닌, '두 다리'로 한자가 달랐다. 이부분을 제갈량이 "攬二喬(이교, 여기서는 당연히 대교와 소교다.)於東南兮"로 슬쩍 바꾼 것. 문제는, 저 대교와 소교가 각각 손책과 주유의 부인이란 것이었고, 제갈량의 제안은 손권한테는 자기 형수를, 주유 입장에서는 자기 처도 모자라 처형까지 대놓고 조조에게 갖다바치란 말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제갈량은 이교가 손책과 주유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두 사람을 자극하기 위해 시구를 살짝 바꿔서 알려 준 것이었고, 제갈량의 계획대로 손권과 주유는 제갈량이 읊어 준 시를 듣자마자 화를 버럭 낸다.어느 누가 자기 아내를 NTR 해간다면 좋아하겠냐만은 제갈량은 이교가 손책과 주유의 아내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사과하고, 열이 뻗힌 손권과 주유는 바로 조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손권은 칼로 책상을 반토막낸 뒤 부하들에게 전쟁을 반대하는 자는 이 책상과 같은 꼴이 될 거라고 한다.[44]

이후 손권은 노숙, 주유 등과 함께 조조를 물리칠 계책에 대해 논의한다. 조조군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대부분이 내륙지방 출신이기에 수군이 강한 손권군과는 반대로 수전에 매우 약하다는 것이었다.

4.2. 모략전

적벽대전의 서전에 해당하는 조조와 주유의 모략전은 아주 흥미진진한 장면이다. 단순히 동오와 조위 사이의 모략뿐만 아니라 제갈량의 재주를 경계하는 주유와 이로 비롯된 견제 및 암해도 일미.그 와중에 노숙은 양자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느라 참 바쁘다.

일단 손권은 설득당하긴 했지만 아직도 내심 불안해하였고 이를 간파한 제갈량은 이 사실을 주유에게 알린다. 확인 결과 제갈량의 추측이 맞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이때부터 주유는 제갈량을 위험인물로 경계하며 제거하려 한다. 노숙이 말려서 일단 제갈량의 형인 제갈근을 시켜 제갈량을 스카웃하려고 시도하지만 오히려 역으로 "형님께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셈"하고 역으로 스카웃 제안을 받는다.[45]

하지만 어쨌든 동맹 관계인지라 대놓고 제갈량을 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하여 관도대전 때 조조가 소수로 다수를 이긴 건 군량을 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수의 병력을 지원하겠으니 조조가 군량을 쌓아둔 취철산을 공격하라고 제갈량에게 퀘스트를 내준다. 물론 실제로는 조조의 손을 빌어서 제갈량을 제거하겠다는 속셈. 하지만 제갈량은 걱정되어 찾아온 노숙에게 넌지시 주유가 수상전밖에 모른다고 디스했고 이 말을 전해들은 주유는 길길이 뛰며 자신이 직접 공격하겠다고 나선다. 그제서야 제갈량은 "조조가 평생 하는 짓이 군량 털기이니 그만큼 대비도 철저하게 했을 것이다. 가봤자 역관광이나 당한다."고 조언해서[46] 자연스럽게 없던 일로 만든다.

그리고 양측은 전초전을 벌이는데 조조군은 허접한 수군 실력 때문에 패배하고 이에 조조는 수전에 능숙한 채모와 장윤을 수군 도독으로 기용한다. 이에 주유는 두 사람이 위협이 될 것을 짐작하여 제거하려고 한다. 마침 조조 측에서 주유를 항복시키겠다고 장간이 나선다. 하지만 주유가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장간은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쩔쩔맨다. 오히려 주유는 장간을 거꾸로 이용하여 장간에게 조조군의 수군 담당자인 채모장윤에게 보내는 거짓 밀서를 가져가도록 상황을 꾸미고, 결국 주유에게 제대로 낚인 조조는 그들을 의심하여 목을 치게 된다.

물론 주유의 이 계책도 제갈량의 눈을 피할 수 없었고 노숙에게 설명한 뒤, 주유에게는 내가 알아차렸다고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노숙은 전부 일러바친다. 하여 핑계를 잡기 위하여 주유는 제갈량에게 화살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제갈량에게 열흘 내에 10만 발의 화살을 만들어 내라고 퀘스트를 준다.[47] 이에 제갈량은 한술 더 떠서 사흘이면 된다고 하고, 주유는 옳다구나하며 군령장까지 적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갈량의 큰소리를 미심쩍게 생각한 주유는 노숙을 보내어 제갈량이 무슨 속셈인지 염탐하게 한다.

제갈량은 찾아온 노숙에게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책임지셈 하여 필요한 물자를 뜯어내면서 입단속을 시킨다.[48] 하지만 약속한 기일 바로 전날까지 장인을 동원하지도 않다가 그날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끼자, 동오군에게 배를 빌려 짚을 실은 뒤 조조군 진영 근처로 갔다. 의심 많은 조조는 접근하려 하지 않고 대량의 화살을 밤새 쏘아댔으며, 짚더미에 꽂힌 화살을 회수하니 무려 10만 발이 넘었다고 하며 보고를 들은 주유는 기겁했다고 한다.[49][50]

화살 10만 발을 잃은 조조는 뭔가 좀 해야 되겠다 싶어서 처형당한 채모의 사촌 동생인 채중채화를 주유에게 거짓으로 투항시킨다. 채중과 채화는 채모가 조조에게 처형당해 분노했다면서 주유에게 믿음을 사지만 주유는 이미 그들이 첩자라는 것을 다 꿰뚫어보고 있었다. 채중과 채화가 투항하면서 일가족을 데려오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한편 조조를 어떻게 격파할지에 대해 주유와 제갈량의 의견은 화공으로 통일되었고[51] 때마침 황개도 주유를 찾아서 화계를 진언한다. 그러면서 보다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서 황개는 손견-손책-손권까지 손씨 3대를 섬겨온 자신이 나서서 고육계를 실행해 완벽히 속여야된다고 간청하고 주유도 받아 들인다. 그후 군사회의에서 황개는 일부러 주유의 명에 딴지를 걸어서 일부러 태형을 맞고 스스로 중상을 입는다. 채중과 채화는 이를 그대로 조조에게 보고했고 조조는 제대로 속아 넘어간다. 물론, 현명한 제갈량은 얘기 듣자마자 바로 고육계라고 눈치를 깠다. 물론, 주유에겐 모른 척 하며 오히려 장수를 매질한 것을 비난하는 척 했다.[52]

여기에 의문을 품은 조조는 다시 장간을 보내는데 주유는 짐짓 자신과 내통하던 채모와 장윤이 정보 누설로 죽였다고 분노하는 척 하면서 장간을 붙잡아 한 암자에 가둬버린다. 여기서 장간은 방통을 만나는데 방통은 주유가 자신의 재능을 질투하여 암자에 가뒀다고 말하고, 조조에게 등용되고 싶다면서 장간과 함께 조조 진영에 간다. 조조는 복룡과 함께 '봉추', 즉 새끼 봉황으로 이름 높은 방통이 자신에게 왔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방통은 북쪽 병사들의 배멀미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는 조조에게 "연환계"를 진언하여 배를 전부 쇠사슬로 묶게 해버린다. 정욱은 이 상황에 화공을 걱정하지만 조조는 풍향이 맞지 않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대답한다. 이후 방통은 주유에게 불만을 가진 오나라 인사들을 회유해서 조조 편으로 만들어보겠다는 핑계로 조조 진영을 빠져 나온다. 조조 진영을 빠져나오기 직전 연환계의 정체를 모두 눈치챈 서서에게 뒤를 잡힌다. 방통이 "이 책략은 우리 강동 81주 백성들의 목숨이 달려 있네."라고 말하자 "그럼 이 80만 장병들의 목숨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란 대화를 나눈다. 서서는 방통과의 친분도 있고 이전의 유비에게 받은 은혜를 생각해서 방통의 모략 자체는 눈감아줄 생각이었지만 대신 화공을 피해서 도망칠 방도를 찾고 있었다. 이에 방통은 서량의 마등이 허도를 공격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리도록 조언했다. 그래서 서서는 조조에게 '소문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제가 허도로 돌아가서 방비를 잘 하고 있겠습니다.'라는 핑계를 걸고 허도에 돌아갈 수 있었다.

오나라는 위를 공격할 모든 준비를 전부 마쳤지만 풍향이 맞지 않아서 화공을 시도할 수 없었다. 남쪽에 있었던 오군이 화공을 펼치려면 동남풍이 불어야 했는데 전쟁을 준비하던 때는 한겨울이어서 서북풍이 불고 있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람이 부니 자칫하면 오히려 오군이 역으로 화공을 당할 것이 분명했었다. 주유는 너무 고민한 나머지 한 차례 쓰러진다. 판본에 따라 다르지만 위나라의 대장기가 바람에 부러지는 걸 보고 "저놈들 우리에게 ㅈ된다는 계시다!"라고 좋아하다가 오나라 대장기도 바람에 부러져 주유의 뺨을 스치자 얼굴이 새하얗게 되어 쓰러진다. 상처가 그리 심각하지 않은대도 식음을 전폐하며 일어나질 못하자 노숙이 제갈량에게 가서 하소연하고 제갈량이 주유를 찾아가 동남풍이 없어서 그러는거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자 주유가 '이놈은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구나!'라며 자기 병명을 알았으니 처방전도 있을거라 믿는다고 하기도 한다. 제갈량이 약이 있다며 주유를 찾아가 술법으로 동남풍을 불러오겠다고 한다. 한겨울에 부는 서북풍이 며칠 동안 동남풍으로 역류한다는 사실을 공명이 술법으로 속인 것이다. 무릇 전술을 짜는 전략가는 하늘의 이치에도 능통해야함을 보여준 사례.

주유는 이를 믿지 못하나 제갈량은 기도를 하여 천문을 움직여 풍향을 바꾸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주유는 경비병까지 배치하며 제갈량이 남병산에서 칠성단[53]을 만들어놓고 기도를 올리는 동안 지켜본다. 제갈량이 며칠간 기도를 마치자 정말 풍향이 바뀌어 동남풍이 불고 주유는 천문까지 바꾸는 제갈량의 능력에 경악하여 제갈량을 죽이려 하나 조운이 제갈량을 구출해 가면서 실패하고 만다. 근데 이것도 제갈량이 미리 예측하고 유비한데 조운을 보내달라 요청했다고 묘사되었다.

4.3. 전투

전투 전날, 조조는 휘하 장졸들을 강가에 모아 놓고 연회를 벌였다. 연회의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자 조조는 단가행이라는 시를 지어 즉석에서 읆는다. 하지만 시를 듣던 사람중 유복이 전쟁을 앞둔 시점인데 시구 하나가 불길하다는 말을 조조에게 했다가 조조의 노여움을 사 그 자리에서 조조의 창에 맞아 죽어버리고, 이로 인해 연회는 흐지부지 끝나 버린다.

이튿날 주유의 오군은 진격을 개시한다. 첩자 노릇을 하던 채중은 감녕에게 오림으로 잡혀가서 목을 잘리고, 채화는 주유에게 끌려와서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군사들 앞에서 처형당한다.

황개는 짚을 가득 실은 배를 싣고 조조군 진영으로 오는데, 깃발에는 '선봉황개'라고 써있고 양곡을 실어놨다는 배가 흘수선이 너무 높아 충돌 직전에 정욱에게 들키게 된다.[54] 형주 출신이라 그나마 수전에 능한 문빙이 저지하려고 나섰지만 일을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어서 화공에 당해버리고 사슬로 묶인 배들은 뗄 수가 없어서 서로 붙어 깔끔하게 타버렸다.

조조군은 그 가운데서 떼죽음을 당하고 만다. 조조는 남은 군사를 이끌고 달아나지만 오군과 유비군이 이를 추격한다. 적벽을 벗어나기 전에 오의 맹장들에게 신나게 두들겨맞고 튄 조조는 복병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복병이 없는 줄 알고 껄껄 웃으면서 주유와 제갈량을 비웃지만[55] 그때마다 장비, 조운에게 차례차례 복병을 당해 군사들을 잃고 만다.

결국 화용도에서 관우에게 빌고 빌어 수 차례에 걸쳐 굴욕씬을 연출하며 겨우 목숨만 건져 도망가버린다. 말 그대로 조조군의 참패였다.

5. 연의에서 각색된 부분

국방TV 순삭밀톡. - 삼국지 하이라이트 '적벽대전', 소설보다 재미있는 팩트폭격!!

국방TV 순삭밀톡. - 나관중이 생략한 적벽대전보다 더 치열했던 '적벽, 그 후'

연의에서는 주원장진우량이 싸운 파양호에서의 싸움을 어느 정도 차용했다. 파양호 대전 항목도 알차니 보면 얼마나 닮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연의에서는 나관중의 문학적 재능에 의해 상당히 극적으로 포장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적벽대전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적벽대전은 아래서 읽을 수 있듯이 중요한 싸움이었다. 나관중의 각색은 워낙 중요한 싸움이니 그에 걸맞게 극적인 각색을 거쳤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아무튼 연의에서 각색된 부분은 앞에서 말한 동남풍은 말할 것도 없고 몇 가지 더 말한다면…

  • 채모장윤이 수군 대도독, 부도독을 맡다가 조조에게 죽게 하도록 장간을 이용했다는 것은 허구. 주유와 장간은 서로 아무 관계도 없고 전쟁이 끝난 뒤에 생애 딱 한 번 만난 사이다. 더욱이 장간은 사실 당대의 유명한 거상이었다. 이중 스파이로 삽질을 거듭하는 채중채화 역시 허구의 인물들이다.
  • 본래 역사에서 태사자는 적벽대전 이전에 풍토병으로 병사하지만 연의에서는 멀쩡히 살아서 조조를 추격하고, 훨씬 뒤인 합비 공방전에서 전사한다.
  • 조조가 패퇴 중 이리저리 복병에게 쳐맞는 묘사 역시 허구다. 실제론 형주 수비군들에게 나름 할 일을 다 제시한 뒤에 여유있게 허(許)로 철수한다. 그 뒤에 형주는 제대로 관광을 타지만… 그나마도 제갈량은 조조가 형주/남군 길에서 형주 쪽을 택하고 남이릉/북이릉 갈림길에서 북이릉으로 갈테니 조운은 형주 길을, 장비는 북이릉 길을 막을 것을 명령하지만 조조는 남군 강릉으로 가기 위해 남이릉으로 이동하고, 조운은 남군 가는 길에[56], 장비는 남이릉 길에서 조조를 습격한다.

어찌 보면 삼국지연의의 하이라이트라고 봐도 좋은 부분이다. 이 사건 전에 사실상의 진 주인공인 제갈량이 등장하고 서서히 제갈량의 활약이 쌓여가면서 지금까지 거의 불패에 무적이던 조조가 크게 패배하며 이야기가 조조 1강 체제에서 조조, 유비, 손권이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하는 본격적인 삼파전이 시작된다. 게다가 제갈량, 방통, 주유라는 삼국지연의에서 탑 클래스로 꼽히는 모사들이 이중간첩, 연환계, 고육계, 10만개 화살 얻기, 동남풍 등의 여러가지 계책들을 정교하게 계획해서 조조군이 여기에 완벽하게 박살나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할 정도이다.

적벽대전의 구성 자체도 거대한 적 한 명을 두 약한 동맹이 극적으로 물리친다는 이야기로 만들기 좋은 구성이라 적벽대전만 다룬 작품도 많을 정도다.[57]

그전까진 강동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다-정도로만 나오던 오나라가 본격적으로 스토리에 개입하는 부분인지라 오나라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진 부분이다.

제갈량이 대폭 부각된 연의와는 달리 정사에선 제갈량의 활약이 외교뿐이라고 까는 사람이 있지만 연의는 정사에서 간략하게 묘사된 부분을 소설적으로 묘사하고 흥미를 위해 과장된 부분이 있다.

우선 동오의 설전. 물론 작중 묘사된 것과 같은 설전은 없었겠지만 제갈량이 손권을 설득할 때 손권이 순순히 넘어갔을까? 손권의 마음을 잡고 혹시나 모를 항복론자들의 논리를 논파하기 위해 제갈량도 무던 애를 썼을 것이다. 최소한 손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설전한 부분은 나와있다만…

그리고 작중 주유가 제갈량을 죽이려 하는 것은 그런 손유동맹이 속으론 다소 위태한 상황이었음을 예고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론 동맹파였던 주유가 악역이 된 건 아마 도독이었던 그가 더 위협적인 인물로 비쳐질 수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자신들의 조국을 위해선 형주를 지키거나 빼앗는 게 이득이었기에 같은 편이라 해도 뒷날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

6. 트리비아

그 유명세 때문에 조선에서 '적벽가'라는 판소리로 나오기도 했다. 여기서 조조는 장승을 보고 "장비도 끔찍한데, 그 사촌이냐!"하면서 덜덜 떠는 추태를 보였다. 아니, 원래 민담에서 조조가 추태보이는 게 한두번이 아니지만…

재밌는 것이 적벽대전은 삼국지 연의 120화 중 50화 정도에 끝난다.[58] 즉, 절반도 안된 부분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그러나 보통 아동용 삼국지 각색물(보통 5권 정도 하는,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고 끝나는 책들.)들에선 4권, 즉 최후반의 빅 이벤트로 나온다.

7. 기타 창작물

삼국지 최고의 하이라이트인만큼 수많은 삼국지 관련 게임/영상물에서는 끊임없이 언급되고 활용된다. 특히 삼국을 대표하는 유비, 손권, 조조와 지혜의 대명사인 제갈량, 적벽의 공신인 주유, 장비, 관우, 조자룡등 삼국지를 잘 몰라도 들어봤을 정도의 네임드급 인물이 대량으로 등장하는만큼 어느 창작물에서나 적벽대전이 최고급 이벤트로 나온다.

대부분의 미디어에서는 연의 기준으로 나가는데 물론 정사 내용을 참고하는 작품들도 없진 않고, 아예 연의와 정사 둘 다 생까고 제 3의 루트(?)를 타는 작품들도 많다.

7.1. 삼국전투기

제 3의 루트를 타는 최훈삼국전투기에서는 유비군과 제갈량 둘 다 전쟁 내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와 위 둘 사이에 끼여서 기회주의적인 면모만을 보인다.

7.2. 창천항로

창천항로에서는 계획 된 전쟁이 아닌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그려진다.[59]

오는 주유를 중심으로 한 무관들은 주전론을, 장소를 중심으로 한 문관들은 항복론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손권을 별 다른 말 없이 관망하는 상황이었다. 주유는 노숙을 시켜 유비와 접촉케 한다. 그렇게 형주에 온 노숙은 형주에서 쫓겨나 조조를 피해 달아나는 유비에게 수많은 민초가 따라붙는 모습을 보고 감명 받고 자의로서 손권과 유비의 동맹을 제의하게 된다. 유비가 천하삼분 천하삼배를 선언하고 한진을 넘어 도피에 성공한 뒤 제갈량과 함께 양주로 돌아온 노숙은 유비와 동맹을 맺기를 손권에게 제의하지만 항복파의 비웃음과 함께 장소에게 그 논리가 논파당한다. 허나 이때 손권에게 도착한 조조의 협밥이 담긴 서장이 도착하면서 손권은 유비와 손 잡고 조조에 대항하기로 결심한다.[60]

유비를 추격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유종의 항복을 받고 형주의 문관들과 수군을 흡수한 조조는 장강을 타고 내려가 대해를 거슬러 황하를 통해 업으로 귀환하는 대유람을 실행한다. 대선단과 함께 장강을 따라 내려가던 조조군은 손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자욱하게 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감녕이 이끄는 오군의 기습을 받는다. 감녕이 직접 조조가 탄 배에 도선해 조조를 암살하려 하나 허저에 의해 저지당한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진 공격으로 인해 조조가 탄 배가 침몰하고 수 천의 병사가 수몰 당하는 큰 타격을 받는다.

침몰한 배에서 허저가 필사적으로 조조와 같이 타고 있던 가후를 구해내었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순유와 조조의 문관들은 큰 슬픔에 빠진다. 허나 순유는 조조의 군사로서 감정을 추스리고 군대 수습해 오림에 진을 치고 오군과 대치한다. 대치하는 도중 주유는 조조군을 계속 도발하지만 조조군은 흔들리지 않는다. 가후는 허저와 빈사 상태에 빠진 조조를 인근 마을에 맡겨두고 오림의 진영으로 귀환해 조조가 죽었다면서 거짓말을 하고, 이 죽음을 이용해 오군을 흔들고 각지에서 조조의 위엄에 짓눌려 나서지 못하는 인재들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계책을 세운다.

빈사 상태로 잠자고 있는 조조에게 초현실의 세계에서 접촉한 제갈량은 조조에 반하여 하나가 되고 싶다며 조조와 합체퓨전하였고, 빈사 상태에 누워만 있던 조조가 깨어나 일어난다. 그러나 금새 조조에게서 떨쳐진 제갈량은 조조가 자신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에 상처 받는다. 이때 깨어난 조조는 다시 마을로 찾아온 가후와 허저와 함께 오림의 진영으로 귀환하고 때마침 적벽의 소식을 들은 서황,이통,하후연,악진,정욱,장료가 도착하게 된다.

평소와 같이 조조군을 도발하던 오군 앞에 조조가 모습을 드러내었고, 계속된 대치와 매일 같은 도발 속에도 흔들림 없는 조조군의 진영에 초조함을 느끼던 오군과 화공을 계획하던 주유에게도 조조의 생환 소식이 닿게 된다. 갑작스레 등장한 조조 때문에 당황한 사이에 황개가 자진해 거짓으로 투항하여 조조군의 진영 안에서 스스로 도화선이 되기로 한다. 화공선을 이끌고 조조군 진영에 도착하여 조조를 면전에서 만나게 되지만 조조의 위엄에 화공선의 병사들이 굳어버렸고, 그렇게 주저하는 동안 조조가 황개의 책략을 눈치채고 체포 명령을 내리며 화공의 계획이 실패하려 한다. 그러나 조조에게 떨쳐져 상처 받고 조조에게 상처 입히고 싶다는 욕망에 가득찬 제갈량이 초현실적인 힘으로 굳어있던 화공선 병사들의 손에 있던 부싯돌에 불꽃을 일으켜 화공선에 불을 붙여 버린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오의 계획대로 실행된 화공과 함께 동서에서 오군의 공격이 시작된다. 정욱은 이 정도 기습엔 대비하고 있었다면서 오늘 밤 안으로 적군을 패퇴시킬 수 있다고 전하지만 조조는 퇴각을 명령한다. "패도에 있어서 대패이나 그저 한번의 패배"일 뿐이라는 조조의 독백을 마지막으로 그 뒤의 자세한 전투의 모습과 전황에 대한 묘사는 함께 정사의 기록을 인용하며 적벽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대유람이 시작될 당시 가후가 조조 거병 이후 청주군, 여포군, 원소군, 뒤이어 유표 사후의 형주군까지 흡수하며 조조군의 규모는 거대해졌지만, 이들은 각기 다른 출신, 다른 배경에서 성장한 뒤 조조의 휘하로 흡수되었을 뿐이라 군 전체의 유대감이 희박하다는 것이 문제를 지적한다. 이에 조조가 제시한 해법이 대패를 통해서 결정적인 패배감을 공유 시킨다는 것.[61] 때문에 작품 내에서 조조는 불리하지 않은 전황에도 퇴각을 명령하고, 대패 하였으나 그저 한번의 패배일 뿐이라고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조조 찬양 일대기인 창천항로다운 재해석이다.

적벽 이야기 마지막에 제갈량은 진영에서 탈출하는 조조를 죽이려고 하지만 조조는 작품 내에서 처음으로 제갈량을 똑바로 인지하면서 제갈량에게 사람다움을 더 묻히고 오라 일갈한다. 이후 삼국지 관련 창작물들 중에서 가장 파격적으로 재해석 되어 마치 신선이나 선인 같은 초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제갈량은 머리색이 검은색으로 바뀌며 이후 작품 내에서 등장할 땐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미지의 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7.3. 삼국지 시리즈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관련 이벤트가 시리즈마다 나오는 걸로 유명하다. 하지만 삼국지 11에서는 적벽대전 이벤트가 안 나온다. 웃기는 건 삼국지 11 매뉴얼에서는 이벤트에 대해 설명하는 항목에서 적벽대전이 언급되어 있었다.[62] 6 PK 이후로 전통이 된 전술시뮬레이션 모드에서도 관우의 죽음 부분과 함께 전부 재현된 전투.

예를 들어 삼국지 10 PK의 적벽대전 시나리오에서는(조조군 기준 서술), 초반에 역병으로 인해 병력이 감소한 뒤 몇 턴 후에 감택이 조조에게 거짓항복을 하러 오는데, 이 때 설전 이벤트 할래? 말래? 선택지가 나온다. 당연히 안 하면 나중에 황개가 조조군 아무 배로나 접근하면 화공 때문에 개발살이 나므로 조조로 이기고 싶으면 해야 한다. 물론 신들린 컨트롤로 황개를 접근하기 전에 죽이면 이벤트는 발생하지 않지만…

명령을 받지 않고 자기 맘대로 움직이는 지원군들과 오군의 배가 제일 좋은 배(투함)들이라 설전 전에 도발을 이용한 유인으로 죽이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근데 유인을 가지고 있는 게 조조 혼자인 데다가 2턴 정도면 풀리기 때문에 엄청난 화력 집중이 필요하고, 조종 가능한 궁병부대가 채모 혼자이므로 포기하는 게 좋다. 만약에 이 설전을 이기면 오히려 황개가 조조군 배로 접근했을 때 조조군이 역화공을 걸어서 적군들을 다 개발살낼 수 있다. 그럼 승리가 거진 확정된다. 반대로 설전을 졌을 경우에는 이미 끝났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조조로 적벽대전을 클리어한 후에는 허저로 개인 플레이가 가능한데, 이 경우에는 허저로 조조와 설전을 떠서 이겨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나온다. 물론 다른 군대를 선택시에는 그냥 원작대로 플레이 하면 된다. 져서 도망가다가 화용도에서 관우를 만나는 경우도 있으며, 이 때 조조가 불리한 상황에서 관우와의 설전이 시작된다. 패가 나빠서 설전에서 졌을 경우 조조로 관우와 일기토를 떠서 이겨야 하는 상황이 나온다. 둘 다 지면 당연히 끔살.

삼국지 12에선 수전이 없어서 적벽대전을 실제로 진행하는 게 아니라 이벤트로 진행된다. 물론 스토리 전개는 연의를 따르며 내정 좀 하다보면 각종 이벤트가 알아서 진행되면서 조조가 그냥 물러가고 유비가 강릉을 낼름 먹어치운다. 동영상으로 연의 이벤트를 나름대로 충실히 재현하지만 실제로 인게임으로 진행할 수 없는 것은 마이너스 포인트.

삼국지 13에서는 영걸전 스테이지와 본편 시나리오로 등장하며 수전도 추가되었다. 물론 이벤트도 존재.

7.4. 영걸전 시리즈

7.4.1. 삼국지 영걸전

짤막하게 이벤트 씬 한두 장면으로 처리되고, 전투 자체가 없다. 아마도 수상전을 구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7.4.2. 삼국지 공명전

주유제갈량을 처치하려고 보낸 군사들로부터 도주하는 전투와 패주하는 조조군을 발라먹는 전투가 있다. 일방적인 추격전으로, 조조군이 모두 정상이 아니다.

이벤트 영상으로 황개가 불을 당겨 조조군의 함대를 불태우는 장면이 적벽 전투 I에서 등장한다.

7.4.3. 삼국지 조조전

보기 드물게 아군 부대 수가 적보다 많은 전투다.[63] 뭐 그래봤자 1부대 차이에다 이건 컨트롤이 불가능한 아군 잡궁병과 잡보병을 포함한 숫자다.[64] 게다가 아군 부대들은 흩어져 있어서 각개격파당하기 쉬우므로 수적 의미가 거의 없다.

이때 곽가가 살아있으면 주유의 화계를 간파하나 그렇지 않으면 물 위에서 보정을 받는 손권의 수군을 상대하느라 애먹게 된다. 그래도 불탄 배들이 오히려 적당한 장애물이 되어주기 때문에 의외로 상대하기 쉬운 구석도 있다. 하지만 이건 조조가 원체 능력이 좋고 패기를 써서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데다 이 덕에 레벨이 높아서 그런거지 조조와 같이 있는 정욱은 함부로 나서다간 끔살당하기 쉽다. 조조와 정욱 외에 한명이 더 편성되는 데 이 한명을 누구를 쓰느냐도 은근히 중요한 면, 책사나 풍수사를 쓰면 뒤로 물려야 하고 근접계로 가면 보병을 넣어주는 편이 좋다. 궁수는 책사, 풍수사와 동일. 해상전이고 적의 수가 많고 해적의 책략[65]/상성이나 주유/육손의 책략 및 허보등이 아픈 등의 이유로 해전에서는 조조전 전체의 전투들과 비교해 볼 때 난이도가 상당하다. 다만 육지에 파견된 병사는 능력이 좋을지 몰라도 우리도 비슷하게 맞설 수 있는 관계로 책사 여몽과 상당한 대미지를 주는 감녕(특히 바다)과 능통 정도만 조심해주면 된다. 해적들은 육지로 올라오면 별볼일 없기 때문이다.

화계를 간파하지 못하고 도망치거나 혹은 간파했어도 아군 피해가 누적되면 화용도를 통해 도망치는 전투가 구현되는데 조조전에서는 다소 어려운 전투로 나온다. 주인공에 따라 입장이 뒤바뀌기 때문. 대신 전투에서 상당히 많은 보물을 얻을 수 있는데 황개를 잡으면 청낭서, 한당을 잡으면 용린갑옷, 주유를 격퇴시키면 태평요술서를 얻으며 적 전멸에 성공했을 경우 쌍편을 얻는다.

사실 모드에서는 동남풍이 그냥 기후상으로 나온 것이었지만, 가상 모드의 엔딩에서는, 누군가로 인해 동남풍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7.5. 진삼국무쌍 시리즈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도 빠짐 없이 등장하는데 특히 진삼국무쌍4에서의 조조의 대사가 하나하나 큰 웃음을 주어서 명대사로 꼽히고 있다.

진삼국무쌍5에서는 수영 시스템의 추가로 적을 배에서 날려 물로 떨어뜨리거나 직접 물로 뛰어들 수 있다. 문제는 배에서 뛰어내리면 다시 올라갈수 있는 계단이 꽤 멀어서 한참 수영해야 된다. 그리고 이전까진 움직일 수 없었던 배가 이번 작에선 징을 울리면 실시간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배를 육지에서 떼어놔 선상을 방해하는 등의 행동이 가능… 하지만 적벽전 맵 자체가 바쁘게 이동해야 하는 맵이라 잘 쓰이지는 않는다. 조조군 시나리오로 할 때 방통을 없애거나 제단을 파괴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해도 클리어가 수월해진다. 손권군 시나리오의 경우는 제갈량의 기도를 방해하는 적을 처단하고, 황개를 화공선까지 무사히 인도하면 화계가 벌어지고 적군 사기가 대폭 하락하므로 쉬운 플레이를 할 수 있다.

번외로 여포군 시나리오가 존재하는데, 조조vs손권 싸움에 끼어들어 깽판을 치는 스테이지. 황개를 잡거나 제갈량을 잡거나 하는 식으로 화계를 방해할 수 있고, 그냥 방치해뒀다가 다 잡을 수도 있다. 특기할 점으로 조조를 잡으면 전위가 격분하고, 손권을 잡으면 주유가 격분하는데, 조조와 손권을 잡고 나서 주유와 전위가 다 살아 있다면 조조군과 손권군이 연합하여 공격해온다. 킬수를 왕창 늘리고 싶다면 이쪽이 나을 것이다.

진삼국무쌍6에서는 조조군일 경우 이전 시리즈와는 달리 연환계, 동남풍, 화계 저지가 전부 불가능하다. 허저가 암만 무쌍펼쳐봤자 무조건 화계이벤트가 일어나고 전 부대가 속속들이 나가떨어지니 조조 탈출에만 신경쓰자. 후편은 적벽탈출전. 손권군은 주유로 본진과 제단을 노리는 조조군을 막다보면 화계이벤트가 일어나고 황개로 플레이무장이 바뀐다. 이후는 학살타임. 유비군은 조운으로 공작선의 연노에 탑승해서 배에 올라타는 조조군 장수들을 격파하면 된다. 후편은 관우로 조조추격.

진삼국무쌍7에서는 정사와 IF로 분기가 나뉜다. 다른 세력에 비해 분기가 빠른 편.[66]

진삼국무쌍 7 분기 전투

여포

번성 전투

적벽 전투

합비 전투

허창 전투

정도 전투

위군은 사실 모드면 6편처럼 대패하고 도망치는게 승리 조건이 되지만, 곽가가 살아있는 IF면 오히려 역관광하는 시나리오.

IF에서는 허저가 바람, 즉 동남풍이 불길하다는 말을 곽가가 찍어 화계를 확실시하며 발빠르게 움직이라고 지시. 일단 손권군 선봉을 몰아내면 서서가 따라오라는데, 따라가면 아군으로 위장해있던 방통이 계략이 들켜 덤벼온다. 방통을 몰아내면 곽가가 황개와 한당의 화계지점 통로를 막아 화계를 약화시킨다. 두 명을 몰아내면 이번엔 채모가 적이 되어 덤벼오는데, 쓰러트리면 다시 아군이 되어 배를 내준다. 배를 타고 손권군 진영으로 쳐들어가 분탕치면, 다른 아군들도 속속들이 배 타고 손권군 진영을 공격한다.

오나라 시나리오는 화공준비를 위해 우선 조조군 예봉을 몰아낸 뒤, 제갈량을 엄호해 책략을 성공시키는 시나리오다. 촉군 시나리오는 유비, 제갈량, 조운이 손상향과 노숙의 엄호를 받아 동남풍을 일으키고, 연환을 성공시키기 위해 조조군 내부에 잠입한 방통 증원을 위해 조조군 선단에 진입해 책략을 마무리하는 것. 여기서 IF조건을 만족시킨 상황[67]이라면 서서를 설득시켜 전장을 이탈하게 한 뒤 클리어 후 다시 유비에게 돌아오게 된다.

7.6. 태조왕건

태조왕건에서 삼국지연의를 차용한 부분이 많은데, 이 적벽대전 부분도 상당수가 차용되었다. 왕건의 책사인 태평이 동남풍을 부르기 위해 제사를 지내자 동남풍이 분다거나, 패전 후 견훤이 퇴각하면서 자기라면 갈대밭에 매복군을 두겠다고 하며, 거기까지는 왕건이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자 곧이어 신숭겸이 이끄는 매복군을 만나 고생하는 것은 판박이 수준이다. 이에 대해 KBS 측에서는 실제 나주 영산강 일대에 동남풍이 불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각종 연출을 차용한 데에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7.7. RPG 게임 적벽대전

삼국지 무장쟁패폭소피구로 유명한 대만의 팬더에서 적벽대전이란 RPG 게임을 발매하기도 했다. RPG게임으로서는 독특하게 주인공이 3명이었으며, 유비, 조조, 손견 3명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해 진행할 수 있었다. 그 대신 게임의 전체적인 길이는 조금 짧다. 무장들이 무장쟁패의 그래픽 그대로 도트화되어 등장하는 것도 특징. 제목은 적벽대전이지만 시나리오는 황건난 때부터 시작한다. 최종전은 역시나 적벽대전으로 마무리. 성내 주민들이나 영채내의 병사들 같은 NPC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며 약간의 삼국지 배경지식도 얻을 수 있다.

7.8. 천지를 먹다

패미컴용 RPG 천지를 먹다 2와 유명한 벨트스크롤 액션게임 천지를 먹다 II 에서 모두 적벽대전이 등장한다.

패미컴용 천지를 먹다 2에서는 시나리오의 중요한 이벤트로 등장하며 화살 조달, 연환계, 동남풍 기원 등 나름 연의의 요소들을 많이 구현했다.다만 화살 100만개는 (게임속 설명이 10만개가 아니라 100만개로 슬그머니 늘어나 있다) 양양성의 채모를 물리치고 보물상자에서 얻을 수 있으며, 동남풍은 제갈량이 기도를 하는 게 아니라 뜬금없이 일본에 가서 오로치를 없애고 히미코에게 비법서를 받아온다. 전투시 비법서를 사용하면 동남풍이 불고 주유의 화계와 100만개의 화살이 날아와 조조군은 거의 전멸하고, 패주하던 조조가 조운, 장비를 간신히 따돌리고 마지막에 화용도에서 관우를 만나는 장면까지 구현되어 있다. 적벽대전 후 필드 배경음악이 바뀌며 후반부로 넘어간다.

액션게임 천지를 먹다 II는 부제가 아예 적벽대전이다. 다만 적벽대전 자체는 후반 3 스테이지 정도에 불과하며 마지막 화용도에서 여포, 조조가최종보스로 등장한다.

7.9. 영화 적벽대전

영화로는 적벽대전이 유명하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7.10. 명탐정 코난

명탐정 코난의 애니메이션 558~561화의 에피소드인 사망의 관, 붉은 벽(死亡の館、赤い壁) 에피소드에서 붉은 벽이라는 의미의 赤い壁에서 의미가 없는 글자인 い를 제외하면 적벽대전이 일어난 장소인 적벽(赤壁)을 가리키는 글자가 된다.

실제로 명탐정 코난 내에서의 붉은 벽은 피해자가 만들어낸 다잉 메시지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이 경우에는 이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모로후시 타카아키 경부가 제갈량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중의적인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이 3부작 에피소드에서 사용된 부제 또한, 삼국지와 관련된 고사이다. 삼고의 예, 장중의 물건, 죽은 공명[68], 공성의 계.[69]

7.11. 화봉요원

화봉요원에선 특이하게도 오군의 모든 계략이 이미 조조에게 들통난 상황.

가후가 이미 계략을 다 꿰뚫어 본 상황이기에 오군이 오히려 궁지에 몰려 고생하는 전개가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사마의가 이중삼중으로 첩보전을 벌이며 밀약했음이 밝혀지면서 전개는 반전되고, 결국 조조군 함대는 본래 역사대로 주유에게 박살난다.

적벽에서 황개, 장흠 등이 화공을 시도했지만 이미 대비해놔서 실패했는데, 장강 하류 쪽 해혼 부근에서 주유의 본 함대가 나타났다가 퇴각하는 척 하더니 여범이 만들어놓은 후방의 보급선들을 이용해 가후가 매복한 조조군의 후방에 있는 숲으로 전부 태웠다.

심지어 화용도를 통해 달아나야 했을 조조는 아예 제갈량과 관우에게 사로잡히기까지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사마의와 제갈량은 여기서 조조가 죽으면 오나라가 너무 급속히 커진다는 데 의견을 일치하고 놔준다. 순식간에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이름으로 조조를 놔주게 되어 의리의 화신격이 된 관우의 투덜거림은 덤.

7.12. 레전드히어로 삼국전

47화 제목. 극 중에서 적벽무술대회라는 무술대회에서 조조사마의신화가 시작된 장소라는 점을 이용, 카이저 영웅패의 완성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영웅심을 흡수하고자 대회장을 습격한다.

7.13. 일본의 삼국지 매거진

일명 '조조와 곽가의 적벽 전투 반성회'

적벽 전투 후 조조가 그 유명한 곽가가 살았다면 안망했을텐데 탄식을 하자 곽가 유령이 나타나 자기 있었어도 별 다른 수 없었을 거라고 갈구는 내용. 뭐 실컷 갈군 뒤 '한 번 졌다고 징징대는 것도 당신답지 않으니, 괜히 죽은 나 들먹여서 살아있는 사람들 물 먹이지 마라'고 조언해준 곽가 덕분에, 오히려 이 패배를 거름삼아 훗날 동관과 한중에서의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는 훈훈한 엔딩(?)으로 끝나는 물건. 내용을 살펴보면...

  • 첫 번째 반성 - 황개의 고육계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조조: 저런 빤히 보이는 수작에 당한 것이 실수다. 어째서 내가 이런 계책에 넘어간 것일까.

곽가: 넘어갔다기보다는 넘어가고 싶었던 것 아닙니까? 병력은 압도적이지만 병참은 한계 상태고, 중원으로부터의 먼 거리를 강행군 한데다 익숙하지도 않은 수군 흉내까지 내다보니 병사들의 체력은 바닥나 있었죠. 그렇게 약해진 병사들한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풍토병까지 닥쳐 왔고. 게다가 남방이라고 해도 대륙의 추위는 만만치 않은데, 월동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아군의 철퇴는 이미 기정사실, 시간의 문제나 다름 없는 상황 아니었습니까. 그런 시점에서의 투항이라니,넘어가지 않는 게 힘들죠. 솔직히 말해, 내가 받아들이지 말라고 간언해도 말귀를 알아 들을 정신상태였나요? 분명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간언했던 것 같은데요.

조조:......

  • 두 번째 반성 - 오림으로부터 재빨리 철퇴했더라면.

조조: 그렇다면, 차라리 진작 철수하기로 결단을 내렸더라면 병력 피해도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주유나 손권 놈들의 명성을 높이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곽가: 아, 그거 무리.

조조: 무리라니.

곽가: 적 코앞에까지 와서 철퇴라면 수군은 버릴 수밖에 없잖아요? 능숙하게 물살을 거슬러 철퇴전 할 수 있는 수준의 수군이 아닌 것은 육구 전초전에서 이미 드러났고. 결국 적에게 배를 넘겨주지 않기 위해 다 불사른 뒤에야 철퇴했을 테니, 결과는 적벽 전투와 다를 바 없어요. 불을 지른 게 우리 쪽이란 것만 다르지.

조조: 결국 같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건가.

곽가: 뭐 그런 셈이죠. 게다가 주유나 손권 쪽도, 어차피 '무적의 조조군'을 물러나게 했다는 것은 다를 바 없으니 결국 똑같은 결과였을 겁니다.

  • 세 번째 반성 - 손권과 손을 잡을 수는 없었나.

조조: 그럼... 손권에게 '사냥' 따위 도발을 던진 게 잘못이었나. 어떻게든 손을 잡고 유비를 고립시키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곽가: 대장, 천하통일은 포기했어요?

조조: 그럴리가.

곽가: 어쨌든 황제를 끼고 그것을 대의명분으로 하고 있는 입장인데, 북방의 지배를 꺼리는 남방의 호족과 백성들을 회유하려면 결국 강동 전역을 재패해 안정 시키는 것은 필수불가결. 그럼 결국 머지않아 또다시 남정을 반복하게 될 텐데, 그건 문제의 연장일 뿐이잖아요. 솔직히 대장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같은 문제를 그렇게 질질 끌어서 좋을 일은 없지요.

  • 네 번째 반성 - 유비를 쫓아낸 후 형주 지배를 안정시킨다.

조조: 생각해 보니,그렇게 서둘러 손권, 유비와 결전을 벌일 필요가 없었지. 강릉을 점령한 후 형주를 안정시키고, 차분히 녀석들을 상대했으면 좋았을 텐데.

곽가: 뭐, 이상론이지만요.

조조: 무슨 뜻이지.

곽가: 강하에 빤히 위험을 남겨두고 남정이 완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중원으로 부터 끌고 온 병력을 형주에 세월아 네월아 주둔시키면 그 부담에 짓눌린 형주 정세는 악화될 테고. 그렇다고 병력을 도로 빼가면 유비가 다시 기어 나오는 것을 막기 힘들고.

조조: 단기 결전은 피할 수 없었다는 건가...

곽가: 군사는 신속을 중시한다는 말은 항상 진리인 거죠.

  • 다섯 번째 반성 - 형주의 항복을 받아들인 후,유비를 쫓지 않고 병력을 보존.

곽가: 말할 가치도 없네요.

조조: 뭐,그렇지.

곽가: 그 시점에서 유비를 추격하지 않았다면 강릉을 빼앗겼을 테고, 형주 남부 전체가 놈에게 넘어갔을 겁니다. 하나도 좋을 것이 없죠. 솔직히 그때 대장의 결단과 추격전은 굉장히 훌륭했어요.

조조: 하하,그런가?

곽가: 뭐 그 뒤에 거나하게 말아 드셨지만.

조조:......

  • 여섯 번째 반성 - 형주로부터 공격하지 않고 서주로부터 침공.

조조: 애시당초 형주로부터 남하한 게 잘못이었을지도 몰라.

곽가: 이제는 아예 전략 자체를 걸고 넘어지는군요. 확실히 서주에서부터 남하해 단숨에 오군 일대를 공격하면 '손권'은 많이 동요했겠지요.

조조: 그렇지?

곽가: 하지만 유표 세력이 남아있고 그 객장인 유비는 항상 대장의 틈을 찔러 허도를 공격할 생각뿐이었습니다. 대장이 서주에서 남하하면 그야말로 최고의 기회가 되지요. 아니 애시당초, 형주를 굴복시켜 수군의 인재나 노하우, 거기에 광범위한 남방 정보와 자료 등을 확보하지 않고서 무슨 수로 장강을 도하하고 남방을 억제하겠다는 건가요?

조조: ......

  • 일곱 번째 반성 - 형주를 내버려 둔다.

조조: 솔직히, 내가 공격하지 않아도 그해 유표는 죽어 버렸으니. 그대로 내버려 뒀다가 유종과 유비가 싸우고 내전에 돌입한 후에 남하하는 게 좋지 않았을...

곽가: 지금 그 시나리오, 유종이 시원스럽게 항복하고 유비 추격에 성공한 원래의 전개보다 편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건가요?

조조: ......

곽가: 형주가 내분으로 뿔뿔이 흩어질 경우 유종 하나의 항복을 받는다고 형주 전체가 넘어오는 게 아니고, 오히려 그 능구렁이 같은 유비가 감쪽같이 형주를 삼켜 버릴 가능성이 높은데 그건 최악의 전개죠. 애시당초 유표의 죽음이 상정외였으니 그걸 전제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고요.

결론적으로 조조가 그 타이밍에 안 내려왔다면 형주는 유비 손아귀에 넘어갔을 확률이 높고 단기결전 타이밍은 적절했으나 여러가지 한계 때문에 결국 적벽에서 말아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7.14. 토탈 워: 삼국

전투 난이도는 어려움. 손권군 + 유비 진영의 제갈량 연합군과 조조군의 대결이며 일반적으로 적벽대전 하면 떠올리는 수전이나 상륙전이 아니다. 화공과 상륙 장면은 오프닝 동영상으로만 나오고 플레이어는 그 뒤에 펼쳐지는 육상전을 진행하게 된다. 실제로도 함대에 기습으로 불지르고서 도망나오는 병력을 육상에서 썰어댔던 전투이기도 하고. 다만 난이도는 높은 편인데 다른 전투들은 결투에 강한 장수가 있어 그것으로 전투를 풀어가갈 수 있으며, 수는 적어도 병종 혹은 질의 이점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무 것도 없다. 아군 장수인 손권, 유비, 주유는 모두 일기토를 할 수 없거나 취약해 서황이 홀로 깽판을 부리는 것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70] 덤으로 유비, 손권, 주유 각자가 하나의 군단 수준의 병종 구성을 갖추고 있으며, 상대도 마찬가지로 구성되었으며, 각지 전선을 형성하고 있어서 실질적으로 전투 3개를 동시에 컨트롤 해야된다. 그나마 가진 장점은 사격유닛이 더 많은 점과, 상대가 후방의 정착지에 들어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즉 스킬들을 사용해 최대한 버티며 사격 다구리로 적장들을 죽이며 진격해야 한다.


  1. [1] 후베이성의 2급 행정구역으로는 12개 지급시(부성시급인 우한시 포함)와 1개 자치주가 있는데 셴닝시는 지급시에 해당한다. 셴닝시는 다시 3급 행정구역으로 시할구 1개, 현급시 1개, 현 4개를 보유하고 있는데, 츠비시가 현급시에 해당한다.
  2. [2] 중국사에선 츠비대전이라 기록한다. 츠비를 한국식으로 읽으면 적벽.
  3. [3] 적벽대전 때 관우, 장비, 조운의 기록은 나와있지 않지만 조조와의 결전이었던만큼 이들도 종군했을 것이다.
  4. [A] 4.1 4.2 주유의 주장.
  5. [5] 조조는 편지에 (호왈) 800,000명에 달하는 병력이 있다고 했으나 실제로 이 정도 병력을 동원했을 확률은 희박하다.
  6. [6] 오주전 정보와 주유가 거느리고 있는 병사 한정.
  7. [7] 선주전 주석 강표전, 제갈량전, 자치통감, 건강실록에 따르면 주유, 정보군 각각 1만씩 보내 유비군과 함께 조조군과 싸우게 하고 손권이 후방 중군으로 1만을 거느렸다 되어 있다.
  8. [8] 선주전 주석 강표전에 유비가 후방병력과 함께 남은 2천 병사를 뜻하는데 이 기록은 다른 기록과 달리 유비가 직접 공격한 게 아니라 후방에 남았다고 기록하고 있어 오류로 여겨진다.
  9. [9] 제갈량전 제갈량의 주장. 다만 선주전을 보면 이전부터 유비와 연관이 깊던 유기의 병사들이 1만이 넘는다는 점은 확인이 되고 제갈량이 언급한 관우의 수군이 있었다는 점 역시 확인이 가능하다. 유비 본인도 최전방이던 번성에서 가지고 있던 병사들이 얼마 정도 있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 물론 상당수가 패잔병이다만.
  10. [10] 유비, 관우, 장비
  11. [11] 정사에선 대략 15만~20만 대군
  12. [12] 이 가후의 의견에 대해서는 배송지가 길게 평을 해뒀는데 아래의 결말과 평 문단에서 확인하도록 하자.
  13. [13] 이후 노숙전 주석 오록에서는 노숙이 이 당시 유비군이 장판에서 '一校'도 안되었다고 언급하는데 一校는 천명이니 장판파에서 천명도 없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유비군이 패하고 뿔뿔히 흩어진 상황을 말한것이지 이후 강하에서 정비된 유비의 전군이 아니다. 장판에서 날려먹어 장판 당시에는 1천명 정도의 병력이 있었을진 몰라도 곧이어 합류한 관우가 보존한 병력과 패잔병을 수습하고 추가로 유기가 1만명을 보충해 줬기에 적벽과 남군 공방전에서는 거의 오나라와 비슷한 수준의 병력이 있었고 제갈량은 자신있게 유비군에는 2만명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걸 오나라가 보충해 준 것은 단 한푼도 없다.
  14. [14] 악현은 강하의 속현인데 호종이 악현장을 지내는 등 손권의 땅이었다.
  15. [15] 손권이 6군의 군주고 유비가 땅 한뙈기 없는 난민 신세라고 하면서 유비가 종속되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적벽대전 당시 유비는 유기와 함께 강하를 다스리고 있었으며 선주전에 주석으로 달린 (오나라 입장에서 쓰여진) 강표전에서도 엄연히 양측관계를 처음부터 '동맹관계를 맺었다'(結同盟誓)라고 서술하고 있다. 자치통감과 제갈량전에서도 '지금 장군께서 진실로 맹장(猛將)에 명령하시어 수만 군사를 통솔하여 유예주와 함께 협칙(協規, 협정과 규칙을 세움, 협력함)하여 힘을 모으면 필히 조조군을 격파할 수 있습니다. 조조군을 격파하면 조조는 북으로 돌아갈 것이고 형, 양의 세력이 강해져서 정족(형주의 유비, 양주의 손권)의 형태가 됩니다'라고 하자 손권이 크게 기뻐하여 이 문제를 여러 부하들과 논의하였다라고 되어 있어 둘간의 관계가 처음부터 협력관계임을 나타내고 있다. 자치통감과 노숙전에도 손권이 보낸 노숙과 유비, 제갈량이 만나 '즉시 함께 수교하기로 정하였다'(即共定交)라고 했다. 즉 동맹간의 역학관계에서 힘의 차이가 있을진 몰라도 유비와 손권은 동맹이 맞다. 유비는 이후 주유를 맞이할 때도 동맹으로서 가보지 않는것은 맞지 않는다고 했고 자치통감과 오주전에서조차 익양대치로 동맹관계가 파탄났다가 다시 화해할때 '다시 곧바로 동맹을 맺었다.'(更尋盟好)라고 써서 이전의 동맹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16. [16] 신빙성을 더하자면 유비가 도망칠때 백성 10만명이 유비를 따라갔다. 백성들 입장에서는 지배자가 바뀌는 것 이외엔 변화가 없다면 따라갈 이유가 없겠지만 조조 밑에서는 별로 좋을 거 없다고 판단했다면 얘기가 다르다. 즉 조조는 형주의 민심을 얻지 못했고 때문에 백성들은 조조가 아닌 유비를 택한 것
  17. [17] 당시 옷을 갈아입는다는 말은 화장실에 간다는 말을 에둘러 이르는 말이었다. 당시 화장실은 사용방법이 좀 복잡했다. 입고 있던 옷을 꽤 벗고 일보고 다시 옷을 입었기에 화장실은 일보는 장소만 있는게 아니라 여유공간이 꽤 되었고, 한무제는 누나집에 놀러갔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유흥을 위한 가수로 온, 뒤에 황후로 세워주는 위씨)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거사를 치루기도 했다.
  18. [18] 대표적으로 조조의 친아들, 조카, 심복을 죽인 것을 포함해서 조조에게 두번이나 빅엿을 먹였음에도 조조의 생전에는 측근으로 중용되었던 가후를 들 수 있다.
  19. [19] 하북의 원소와 회남의 원술로, 조조에게 가장 큰 위협세력이었고 관도대전을 전후로 정복하지 않았다면 남쪽을 평정할 때 후방에서 배후를 치기에 가장 좋은 세력이기도 했다.
  20. [20] 이들 전부가 사실상 조조에게 가장 위협적이었던 세력들이었다.
  21. [21] 천자에게 올리는 글을 올려놓는 책상.
  22. [22] 각각 장소진송
  23. [23]. 정보를 말한다.
  24. [24] 그나마도 건강실록, 오주전 기록에 따른다면 유비가 직접 본 병사는 2만으로 본인이 보유한 병사랑 똑같다.
  25. [25] 顧望 - 형세를 관망하며 거취를 결정하지 아니함.
  26. [26] 專美 - 아름다운 명성을 독차지함. 그러니까 오나라 쪽이 적벽대전 승리를 자기들에게 좋게만 포장하려고 했다는 뜻이다.
  27. [27] 일종의 쾌속선으로 쇠북종과 기치를 배 위에 설치했고 뱃전 위에는 낮은 담을 세웠으며 노를 젓는 선부는 많고 전투병이 적은 병선이다. 승선원이 전부 힘센 장사에다 정예병이었으며 배의 속도는 마치 갈매기처럼 빨랐다고 한다. 이상 해당 내용에 대한 권중달역 자치통감 주석의 기록.
  28. [28] 여기서 주유가 황개를 때리는 고육지책과 조조의 의심에 대한 감택의 답변은 연의 창작이다.
  29. [29] 팔면으로 된 북, 병사를 지휘하는 도구로 북을 치면 공격하도록 약속이 되어 있으며 특히 뇌고는 전술 시 신속한 공격에 사용된다. 이상 역시나 자치통감의 주석의 기록이다.
  30. [30] 연의에서는 장료가 쏜 화살에.
  31. [31] 이 부분은 패주하는 와중에 유비를 콕 찝어서 언급하며 내가 유비라면 진작 화공을 해서 꼼짝 못하게 했을 거라는 발언은 제발 유비가 그렇게 하지 않기를 원했는데 소원대로 돼서 안도함과 동시에 자기가 인정한 적수지만 그래도 자기보다는 아래라고 여기는 심리를 반영한 거라는 시각이 있다. 실제로 둘의 마지막 맞대결인 한중 공방전 때도 유비가 법정의 조언을 따라 하후연을 계책으로 전사시켰다는 말을 들은 조조가 '그럼 그렇지. 유비 혼자서 그런 계책을 짜냈을 리가 없다.'고 유비를 헐뜯으며 쉽사리 유비를 자기와 같은 급의 맞수임을 내심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사실 화용도 추격은 육지에서 펼쳐졌고, 연합군은 수전을 펼친 직후 조조가 퇴각할 시간을 벌려고 남은 조조군의 후미를 뚫는 과정과 상륙 과정을 거치면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32. [32] 튿히 삼국지 오서는 오나라 관찬 사서인 위소의 오서를 그대로 붙여넣은거라 오나라 측에서도 유비가 조조를 격파했다는 걸 사실상 인정했던 셈이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33. [33] 삼국지연의처럼 조조가 강의 서북안에 포진했다는 가정하에 조조가 소위 계절풍을 믿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정작 동지에는 역계절풍이 하루이틀 정도 부는 경우가 있다. 조조는 바로 이것에 당했던 것이다. 연의에도 "동지(冬至)는 음기가 절정이라 다시 양기(陽氣)가 움트는 시절이니, 어찌 잠시인들 동남풍이 없겠는가. 조금도 이상히 생각할 것 없다.(冬至一陽生 來復之時,安得無東南風, 何足為怪)”라면서 애써 황개의 투항을 믿으려는 장면이 있다.
  34. [34] 배송지위진남북조 시대 한족 출신 최고의 명장인(간단히 말하자면 촉한+동오에 회수, 산둥 반도, 일시적이지만 관중까지 손에 넣었다) 남조 유송유유를 따라 종군한 경험이 있어서 싸움에 일자무식은 아니었다.
  35. [35] 실제로 조조는 꽤나 건강관리에 신경을 썼다. '조조닭'이라는 전용 보양식도 챙겨먹었으며, 전복요리를 즐기는 것을 넘어서 아주 환장했다고 한다.
  36. [36] 여기에 유장은 진짜로 유비에게 공격당했음에도 3년이나 버텼다. 유비 세력이 조조 세력보다야 작긴 했지만 조조는 조조대로 제일 거대한 세력답게 견제 세력도 많은 만큼 세력이 제일 크다고 익주공략에 몰빵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니 아무리 유장이래 해도 조조를 상대로 버티기 정도는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조조는 시간을 날려먹는 것이고. 그리고 유비는 오히려 익주의 유장 쪽에서 어느 정도 입구를 열어 줬기 때문에 3년만에 익주를 점령할 수 있었던 거지 조조는 처음부터 익주를 치러 가는 입장이므로 아예 입구를 열어주지 않고 우주방어로 일관한다면 더 시간이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
  37. [37] 사실 순수하게 세력으로 따지자면 유비의 세력은 조조는커녕 유장이나 손권보다도 한참 뒤떨어질 정도로 보잘 것 없었지만, 종실 출신+헌제의 밀명+좌장군-예주목의 직위와 같은 강력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함부로 경시할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조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이 다스리는 익주조차 제대로 휘어잡지 못하고 있는 무능하고 유약한' 유장이나 '나이로 따지면 조조의 아들뻘 정도밖에 안 되는 애송이' 손권에 비해 한 평생을 전란 속에서 보낸 조조 자신과 같은 시기에 전란 속에 뛰어들었으며, 조조 자신과 마찬가지로 평생동안 전란의 한복판을 해쳐나왔고, 조조 자신보다 훨씬 불리한 처지에서도 종종 눈에 띄는 활약상을 보여줄 정도의 유능함과 명망을 가지고 살아남은 유비쪽이 훨씬 신경쓰이는 상대였을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군웅할거시대가 거의 끝나가던 적벽대전 당시 남아있던 세력들을 보더라도 한수, 마등등의 관서군벌이나 요동의 공손씨 정권, 교주의 사섭 등은 전란의 한복판에서 크게 벗어난 변방에 위치한 세력들이었고, 익주의 유장 역시 아버지가 평정한 익주를 물려받아 지형의 유리함에 힘입어 전란의 한복판에서는 비껴나 있었으며, 강동의 손권은 군웅할거 시대에 활약한 아버지 손견 및 형 손책의 세력을 '물려받은' 인물이었다.(단 폄하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물려받긴 했지만 그 물려받고 난 후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오죽했으면 적벽대전 전에 자신과 맞서려는 손권을 보며 조조가 "아들을 낳을거면 손중모(중모는 손권의 자)같은 아들을 얻어야지 유표의 아들들은 개돼지다!" 라고 했을까 조조 입장에서도 손권은 애송이겠지만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운 애송이였을 것이다. 실제로도 조조는 적벽대전 이후 손권 스스로가 형식상으로 숙이는 것을 받을 수 있었지 스스로 손권을 복속시키지 못했다.) 한중의 장로는 애초에 전란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천하를 노린 군웅이라기보다는 험지로 보호받는 한중에 세력을 구축하고 웅거했던 종교 지도자였다.(게다가 이쪽도 교주 노릇을 물려받은 인물이었다.) 즉, 군웅할거 시대 천하의 패권을 노리며 서로 다투던 군웅들 중에서 적벽대전 시점에서 남아있는 인물은 '군웅할거 시대의 최종 승리자' 인 조조 이외에는 유비뿐이었던 것. 며칠만에 삼국지를 읽어내려갈 수 있는 현대의 독자에겐 실감이 덜 갈 수도 있겠지만, 십여년간의 처절한 전쟁끝에 천하를 다투던 군웅들을 제패하고 1인자가 된 조조의 입장에서는 한때 자신과 더불어 천하를 다투던 군웅 중 마지막으로 남은 인물인 유비를 의식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것.(특히나 유비는 그 세력이 몇번이고 박살났지만 계속해서 재생하는 조조 입장에서는 기겁할만한 상대이다.) 게다가 이후의 전개를 보더라도 조조의 선택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조조는커녕 형주도 다 장악하지 못한 상태의 유비의 공격을 받고도 허무하게 항복해버린 유장보다는 강동의 호족 연합체를 나름 효과적으로 규합하여 제대로 된 세력을 구축, 칭제하기에 이른 손권+적벽대전 후 조조의 위세가 축소된 틈에 당장 자기 세력을 구축할 정도의 역량을 가진 유비를 여유가 있는 김에 한큐에 처리해 버리는 쪽이 더 중요한 과제였던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처리에 실패해서 급성장을 허용하고 말았다는 거지만.
  38. [38] 심지어 서주 출신인 장소가 항복파의 수장이었을 지경이었다.
  39. [39] 적벽 이후 유비는 남형주를 얻으며 손권도 적벽땐 2~3만 정도밖에 군사를 못 모았지만 이후 합비에는 10만이나 되는 병사를 쏟아부을 정도로 세력이 강해진다.
  40. [40] 실제로 2017년 중반의 스페인-포르투갈 산불에서 도로를 달리던 차량 안에 있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도로를 덮친 산불에 갇혀 불에 타 죽은 사례가 있다. 상상하기로야 불이 붙지도 않는 아스팔트 도로 위의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그냥 빨리 차 몰고 빠져나가면 될 것 같지만, 산불이 퍼지는 속도와 화염의 강도는 그런 조악한 상상을 가볍게 초월한다. 역시 2017년도를 강타한 미 서부의 산불에서는 불길이 그런 식으로 퍼져 잡히지 않은 산불의 면적이 뉴욕시를 넘어선다. 제대로 붙은 불은 그냥 인접한 곳에서 붙붙을 만한 것을 철거하고 물 뿌려주는 정도로 잡히지 않는다
  41. [41] 다른 기록에 따르면 실제로 화공에 동원된 배들은 수십여 척이라는 기록도 존재하기는 하다.
  42. [42] 실제 연의에서의 적벽대전 묘사에 큰 영향을 준 파양호 대전에서 사용된 화공선의 규모는 고작 7척이며, 이 7척으로 주원장군은 진우량군에 큰 타격을 주었다. 물론 화약 등까지 활용 가능한 명대와 삼국 시대를 동급으로 비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는 화공선의 숫자는 생각보다 적어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43. [43] 전염병으로 인한 사기 저하는 생각보다 무시하기 힘든데 전염병은 사기뿐 아니라 실제 병력 손실과 부상병으로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며 동료의 전염병이 자신에게 감염된다는 공포와 전염병 관리로 인해 진영이 어수선해지는 효과까지 나오며 실제 관리도 안돼서 삼국지 무장중 병으로 죽은 명장만 여럿 된다. 따라서 어떤 상황이든지 전염병은 패주 원인으로 매우 좋은 기폭제가 된다. 대표적인 예가 2차 합비전인데 이 당시에도 장료의 습격이 충격적이긴 했으나 10만명 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그냥 돌아간 결정적인 원인은 결국 전염병으로 인한 사기 저하였다. 물론 저 전염병이라는 기록이 기록자가 패자 입장에서 변명차 구겨 넣은 구실적인 측면도 있긴 하지만 단순 변명용 거짓 기록으로 치부하기엔 시대상 의료가 제대로 발달되지 않은 시기의 전염병은 충분히 전황을 좌지우지할 만한 위력을 지녔다는 가능성이 있어 어느 정도 사실로 받아들일 만한 부분도 있다.
  44. [44] 참고로 삼국지연의의 내용을 보면, 조조가 적벽대전 전날에 연회를 벌이며 한 말을 볼 때 조조는 진짜로 오나라를 정벌하면 대교와 소교를 취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애초에 조조는 장수의 사촌 장제의 미망인 추씨를 건드리는 등 그동안 유부녀를 건드린 적이 꽤 많았으니, 제갈량의 수작을 패드립이라고 알고 있어도 듣는 주유에게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에 제갈량이 조조의 이런 점을 이용해 거짓말을 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조조의 의중을 맞춘 것. 신삼국에서는 아예 제갈량이 대놓고 "어익후 두 분 부인이셨다구요? 근데 조조 그새끼 유부녀라면 환장을 하는뎁셔 이거 어쩔?"이라며 2중으로 도발을 건다.
  45. [45] 정확히 말하면 제갈근은 백이와 숙제 형제 얘기를 꺼내며 "우린 형제니까 함께 해야지?" 라고 했는데 제갈량이 "오 맞는 말이네요. 근데 형님쪽이 우리에게 넘어오면 크게는 같이 한나라를 섬기는게 되고 작게는 형제가 함께 하는 것이니 더 쩔어주는거 아닐까요?" 라고 맞받아쳤다.
  46. [46] 실제 조조는 관도대전에서 원소군의 오소에 있는 군량을 태우는 것 외에도 여남에서 유비와 대치할 때에 하후연을 보내서 공도의 보급부대를 공격하는 등(연의 한정), 군량 털어먹기를 자주 했다. 조조: 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
  47. [47] 물론 장인들이나 필요한 재료들은 일부러 지원하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48. [48] 주유에게로 돌아간 노숙은 "제갈량이 아교, 칠 등의 재료를 쓰지 않는다"고 두리뭉실하게만 보고한다.
  49. [49] 현대에서는 '조조가 당시 불화살을 쏘게 했으면?'이라는 IF 시나리오가 제기되는데, 실제 사서에서 불화살이 처음 기록된 건 위략으로 제갈량의 2차 북벌 때에 학소가 썼다. 즉 적벽대전 시점에서 불화살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화살 받기 일화는 연의 창작인 만큼 나관중이 정사를 고려했다기보다는 이 부분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물론 스토리 상으로도 보면 아예 이때에는 불화살이 없었다고 봄이 옳을 듯한데 제갈량이 작중에서 먼치킨급 인간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불화살이 있었다면 당연히 이에 대한 생각을 해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푸라기를 잔뜩 실었다는 것은 불화살에 대한 생각을 전혀 안 했다는 것, 다시 말해 불화살이 아예 없었으니 처음부터 고려도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된다. 더군다나 비 오는 날씨라면 모르겠지만 단순히 안개가 꼈다 정도로 날씨 설명은 끝이었으니...
  50. [50] 실제 역사상 이런 일이 있었다. 당나라 시절 안사의 난 때 장순은 개원-천보년간 군사활동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하긴 커녕 내지에서 현령을 지내던 인물이었는데, 신당서에서는 장순에 대해 '여러 책에 통달해 싸우고 진치는 것에 밝았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반란군은 756년 2월부터 5월까지 장순을 필두로 한 당군이 지키는 옹구를 수차례 공격했음에도 이곳을 함락하지 못했다. 하지만 장순측은 점점 물자소모 문제에 직면했고, 결국 수비군의 화살이 바닥나게 되자 장순은 다음과 같은 계책을 쓴다. '신당서 권192 열전117 충의中 : "성 안의 화살이 다 떨어지자, 장순은 사람 모양의 짚을 1000여 개를 엮어 검은 색 옷을 입히고 밤에 성 아래에 그것들을 매달았는데, 영호조(반란군 장수)의 병사들이 앞다투어 그것들을 화살로 쐈는데 오랜 뒤에야 볏짚 인형인 것을 알았다. (인형을) 올리니 화살 수십만 개를 얻었다. 그 후 다시 밤에 사람이 내려오자 적이 비웃으며 대비하지 않았는데, (성에서 내려온) 결사대 500명이 영호조의 군영을 공격하자 반군이 크게 어지러워져 보루와 장막을 불태우고 10여리를 쫓아갔다.' 그 뒤에도 장순은 계속해서 반군에 저항했다. 끝끝내 옹구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이 되어서야 인근의 수양으로 옮겨 식인까지 해가며 10개월을 더 버텼다. 757년 10월, 수양성이 함락되고 장순은 반군에게 온갖 저주와 험담을 퍼부으며 죽음을 맞이했고 드디어 반군이 강회지방으로 진출하나 했는데, 그 때는 곽자의 등이 이끄는 당군이 낙양으로 돌격해오던 상황이었다.
  51. [51] 서로 손바닥에 글로 써서 보여주는데 둘 다 불 화(火)자를 썼다.
  52. [52] 주유가 이때도 노숙을 제갈량에게 보내 자신의 계책을 꿰뚫어봤는지 확인시켜보는데, 제갈량은 당연히 '눈치 못챘으며 주유를 비난하고 있다'고 전하라고 했다. 노숙은 이번엔 제갈량의 말대로 주유에게 거짓 보고를 했다.
  53. [53] 이를 기념해서 중국에는 배풍대라는 제갈량을 기리는 사당을 세워놨다.
  54. [54] 정욱은 군량을 실은 배가 저렇게 적게 (물 속에) 잠길 리가 없고 저렇게 빨리 올 수도 없다고 말했다.
  55. [55] 패턴이 적군이 없는거 보고 조조가 크게 웃으며 "ㅉㅉ 주유와 제갈량은 아직도 2% 부족하구먼. 나라면 여기에 복병 깔아뒀을 텐데 그럼 우리는 끝장" 이라 말하고는 그 즉시 장비/조운이 나타나고 조조가 털리는 것 이 패턴은 화용도에서도 나타난다.
  56. [56] 이 부분은 묘사가 정확히 되지 않아서 조조가 형주 길로 가다가 조운의 습격을 받고 남군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가능성도 있다.
  57. [57] 우리나라의 판소리 중 적벽가가 바로 적벽대전만 다룬 작품이다.
  58. [58] 화용도가 나오는 부분이 50화.
  59. [59] 이렇게 표현된 이유는 22권 말미에 '환상의 적벽'이라는 제목의 작가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정사에선 적벽대전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으며 작가의 생각으로는 조조의 침공과 협박문에 개연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때문에 대중의 인식 속의 적벽대전은 연의의 영향력이라 생각하며, 연의의 창작을 걷어낸 빈 부분에 만화가의 솜씨를 발휘했다고 한다.
  60. [60] 이때 서장을 가지고 오는 사자가 조조의 인물이 아니라 작품 내에서 제갈량을 따라다니는 노인인 것으로 보아, 명확하게 표현되진 않지만 손권과 유비의 동맹을 성사 시키려는 제갈량의 계책으로 추측된다.
  61. [61] 가후는 함대에 한조의 깃발을 올리는 것을 제의했다.
  62. [62] 이후 11 PK에서 결전제패에서 적벽대전 전투가 수록된다.
  63. [63] 엄격하게 말해서 계책을 간파했을 경우의 실제 참전 병력 한정. 스토리 진행상 오나라 측에서 운수대 3기가 본격 전투에 돌입하기 전에 퇴각한다.
  64. [64] 곽가를 살리지 않아서 계책을 간파하지 못한 경우 이 잡병 보병과 궁병은 모조리 화계에 불타 끔살당하고, 이들이 있던 위치는 이동 불가능한 불타는 배 지형으로 변해 버린다.
  65. [65] 빗나가는 일도 상당하지만 제대로 집중돼서 맞으면 타격이 큰 편이다
  66. [66] 오는 합비 전투, 촉은 번성 전투로 제일 늦다.
  67. [67] 서서를 잘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화계 실행 이후 북쪽 선단 지역에 보면 서서가 무적 판정으로 서 있다. 도중에 유비가 서서에 대해서 걱정하는 말을 하면 그때 가서 이벤트를 진행시켜야 한다.
  68. [68] 이 경우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내쫓는다에서 앞부분만 나온 것으로, 저 문장을 쓰려다가 범인에게 얻어맞고 저 단어만 남았다.
  69. [69] 공성의 계에서는, 제갈량과 주유가 손바닥에 글씨를 써서 계책을 내놓는 대목을 재현한 것도 있다. 손바닥 대신 핸드폰 메모로
  70. [70] 서황을 잡아도 끝이 아닌게 뒤에는 장료가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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