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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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명예의 전당 7인}}}

김용식

홍덕영

이회택

차범근

김화집

히딩크

정몽준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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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경남 울산시 동구)

분리
김태호[A]
심완구[A]

제13~15대
정몽준

개편
정몽준[2]

대한민국 국회의원 (울산 동구)

개편
정몽준[3]

제16·17대
정몽준

제18·19대
안효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동작구 을)

제17대
이계안

제18·19대
정몽준
[4]

제19·20대
나경원


대한양궁협회 회장

창설

초대
정몽준

제2~5대
정몽구


대한축구협회 회장

제45·46대
김우중

제47~50대
정몽준

제51대
조중연

}}}

이름

정몽준 (鄭夢準)

영문 표기

Chung Mong Joon, Jeong Mongjun

출생일

1951년 10월 27일 (67세)

출생지

경상남도 부산시 범일동[5]

본관

하동 정씨

본적

강원도 통천군

신체

185cm, 83kg

종교

개신교(장로회)

최종 학력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정치학 박사

십이지

토끼띠

별자리

전갈자리

혈액형

O형

병역

육군 학군장교 중위 만기전역

부모

아버지 정주영, 어머니 변중석[6]

형제

정몽구, 정몽헌, 동생 정몽윤

배우자

김영명(1979년 결혼)

자녀

아들 정기선(1982년생), 정예선(1996년생)
딸 정남이(1983년생), 정선이(1986년생)

소속 정당

무소속[7]

의원 선수

7

의원 대수

13, 14, 15, 16, 17, 18, 19

약칭

MJ

1. 개요
2. 정치인이 되기 전
2.1. 병역
3. 정치인으로서의 행보
3.1. 2002년 이전까지
3.2. 잠깐의 리즈시절 그리고 망했어요
3.3. 한나라당 입당 이후
4. 국제정치학 박사
5. 재산
6. 국내 축구계의 초거물
8. 선거 이력
9. 논란
10. 이야깃거리

△ 정몽준 전 의원

1. 개요

정몽준은 대한민국정치인, 기업인, 축구행정가이다.

정주영 회장의 6남으로, 現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주주.[8] 그리고 전직 7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9] 또한 축구행정가로서 한국 축구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FIFA 부회장(4선, 현 명예 부회장),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K리그1 소속 프로축구단 울산 현대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과거 새누리당과 전체 국회의원 의원 재산 조사를 하면 항상 정몽준 의원의 조 단위가 넘는(...) 재산 때문에 평균치가 급격히 오르는 경향이 있어서 그는 빼고 조사하는 경우가 많았다.[10]

2. 정치인이 되기 전

△ 정몽준과 그의 아내

장충초등학교, 중앙중학교,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한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해 학력 콤플렉스를 가졌던 정주영 회장은, 정몽준이 서울대 경제학과에 들어가자 다른 재벌 총수들을 만나면 아들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11]그 덕분인지 형제들 중에서 가장 빠른 31세에 사장이 되는 기염을 토했고, 왕회장과 술집에 가서 자신이 외상으로 달아놓은 술값을 그 천하의 왕회장한테 덤태기 씌우는 용자짓도 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왕회장 본인도 어이없어했다고.[12]

아무래도 머리가 워낙 좋다보니 현대그룹을 물려줄 생각도 해봤으나 본인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정치자금 겸 현대중공업그룹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정치란게 정치자금이 있어야 돌아가는 법이기도 하고, 본인도 대선에 출마한 적이 있으니 아들의 꿈을 어느정도 이해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대통령의 꿈을 아들이 이루어주길 바랬던 측면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못 이뤘다. 대신 현대에 입사했던 어느 사원이 대통령이 되었다.

2.1. 병역

정치인·재벌가 사람들 중 병역문제에서 깨끗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ROTC로 복무했는데 후보생 시절 동기들의 단가방을 자비로 다 갈아치우기도 했다. 중위로 만기 전역했다.

범현대가에는 남자라면 모두 제대로 군대를 가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이 전통은 정주영 때문에 생겼는데 정주영은 평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 싶어했고 그래서 실제 대선 출마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회창의 예가 있듯이 자식들의 병역에 문제가 발생하면 대선에 출마해서 당선되기 힘들다는 걸 알 수 있다. 전 국민의 45%가 예비역 병장이니 그럴 수밖에... 또 전 국민의 1%는 장교부사관 출신이고... 그 때문에 정주영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서 일족들의 병역부터 제대로 관리해왔다는 얘기가 된다.[13]

정몽준의 장남(정기선)도 육군 학군사관(ROTC)으로 병역을 마쳤으며, 1군단 특공대에서 소대장과 연대 작전과장으로 군생활을 마쳤다. 당시 아들이 복무하는 특공대를 방문하여 모든 병사들에게 피자 한 판 & 치킨 한 마리씩을 돌렸으며, 낙후한 시설을 보고 사비로 군 시설을 개선해주고 싶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후자는 당시 지휘관에게 거절당했다고 한다. [14] ´육군 제대´ 정몽준 "사회 지도층 자녀 전방복무""병역 의무 엄격히 관리" 강조.

3. 정치인으로서의 행보

3.1. 2002년 이전까지

△ 정몽준 전 의원

현대중공업 회장을 하고 있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1990년 3당합당을 전후로 해서 민주자유당에 입당했지만, 1992년초에 아버지 정주영통일국민당을 창당하면서 당연히 민자당을 탈당하고 통일국민당에 합류했다.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재선되었고 당 대변인, 정책위원회 의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아버지를 도왔다. 대선 직전 초원복집 사건을 기획했으나, 지역감정 역풍으로 아버지의 득표를 오히려 까먹었고 본인은 대선 후 범인도피죄로 기소되었다[15].

통일국민당이 와해된 후로는 당적을 갖지 않고 2007년까지 무려 15년동안 무소속, 1인정당 소속으로 남았다. 1998년 정권이 교체된 후로는, 한나라당 강세 지역인 울산에서 기반을 다진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과 여당 쪽의 손을 들어주는 행보를 하기도 했다.[16]

3.2. 잠깐의 리즈시절 그리고 망했어요

△ 정몽준 당시 축구 협회 회장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유치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진 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기적적인 4강에 오르자, 축구협회 회장으로서 한국축구를 적극 후원한 그의 입지가 급격히 올라가 유력 대선 후보에까지 등극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한때 다수 여론조사에서 노무현을 앞지르고 이회창을 위협하기도 했을 정도.

이에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선 출마를 결심하고 국민통합21을 창당한다. 처음에는 한나라당을 탈당한 박근혜의 힘을 빌려보려 했으나[17], 식사 자리에서 박근혜로부터 다짜고짜 김재규를 변호한 강신옥 변호사를 내치라는 요구를 받았고, 이에 강신옥 변호사가 곁을 떠났으나 박근혜는 한나라당으로 복당해 버린다.(...)#

그 후 후단협의 펌프질로 힘을 얻어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여론조사 방식에 따른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으나, 여론조사 결과 간발의 차로 패하고 만다. 일단 승복한 뒤 노무현 후보 선거운동에 나섰으나, 선거일 전날 밤 지지를 돌연 철회했다.

지지 철회 이유로는 외교 정책상의 이견과 차기대권주자로서 인정받지 못한 소외감 등이 회자되지만, 당시가 여론조사로 단일화가 된 최초의 사례였기 때문에 큼지막한 이유로 지지철회가 된 것이 아니었다. 김민석의 증언에 따르면 기존 단일화 합의에 의하면 모든 유세에서 단일후보 둘만 오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명동 유세에서 당 관계자의 실수로 노후보 진영 인물 대다수가 단상에 오르게 된다. 김민석은 사고를 직감했고, 종로에서 분위기가 이상해지면 본인이 커버를 칠 생각으로 갔다고 한다. 그리고 종로 유세에서 서갑원의 지시로 또 다시 모든 인물이 단상에 오르게 된다. 그 직후 정 후보 진영에서 어떤 사람이 '차기는 정몽준!'이라 외치자 노무현이 '속도위반하지 마라. 정동영 최고위원, 추미애 최고위원도 있다.'고 한 것이 결정적으로 정몽준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 이후 이동하게 된 냉면집에서 정몽준은 화가나 소주만 마시고 있고 당직자들은 가만히 냉면만 먹는 분위기 속에서 김흥국이 열이 뻗쳐 혼자 떠들고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18] 그 후 정몽준은 즉시 지지철회 오더를 내린다. 그리고 이 날 밤. 당황해서 정몽준의 집에 달려온 노무현에게[19] 문도 열어주지 않은 채 밖에 세워두다 돌려보내면서 정몽준과 노무현은 정치적으로 결별하게 된다. 뼈를 때리는 굽시니스트 만화

하지만, 노무현 후보가 극적으로 당선되면서 결과적으로 하루만 더 참았으면 얻을 수 있었던 국무총리직을 스스로 날려먹은 셈이 되었고, 이후 뒤통수 이미지까지 씌워지면서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 또한 타격을 입게 된다.[20] 노무현 정부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면 서거 이후 친노 열풍이 불 때 그 바람을 타고 다시 유력 대선후보로 급부상했을 수도 있다.[21]

이후 국민통합21을 이끌고 17대 총선에 나섰으나 본인 1명만 당선된다(...) 결국 국민통합21을 해체하고 다시 무소속으로 있다가, 2007년 이명박 지지를 선언하면서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3.3. 한나라당 입당 이후

△ 정몽준 의원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울산 동구를 측근인 안효대에게 넘기고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로 지역구를 옮겨 정동영을 누르고 당선되었고[22] 같은 해 8월에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2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된다. 2010년 박희태 대표가 사퇴하면서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직을 승계하였으나 월드컵 열기가 식어서[23] 예전만큼 대권주자로 두각을 보이지는 못한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도 동작 을에 출마해 당선되는데, 상대 후보는 17대 국회 당시에 이 지역구의 의원이었던 현대자동차 사장/현대카드 회장 출신의 이계안 전 의원이었다.

△ 정몽준 후보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서울특별시장 후보로 나섰다. 당초에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마땅한 후보가 없던 새누리당의 강력한 요청과 함께 당시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활동으로 야당표가 갈릴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입장을 바꿨다. 같은 당의 김황식, 이혜훈 후보와 경선을 치러 5월 13일에 최종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후보 등록과 함께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그러나, 선거 결과 현직 박원순 시장에게 큰 표차로 참패하면서 낙선하고 만다. 정치 인생 최초의 낙선이라 더더욱 뼈 아팠을 듯 하다.[24]

패배한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후보자 토론에서의 발언 문제[25], 그리고 너무나 어설펐던 네거티브 전략 등이 있다. 박원순이 포스터에서 정면이 아닌 측면 사진을 쓴 건 떳떳하지 못해서라고 하는가 하면, 박원순 부인 잠적설을 꺼내는 등, 정말 안하느니만 못한 무리수같은 네거티브였다. 이로 인해 이미지가 망가진 건 물론이고, 네타 캐릭터로 등극했다. 자세한 내용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화젯거리 문서 참조.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뼈아픈 건 아래의 논란에서도 설명하는 가족들의 팀킬이었을 것이다.

2016년 20대 총선에는 아예 불출마하였다. 대신 이런 글을 블로그에 올려 안효대 의원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으나, 안효대 후보는 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울산연합 계파인 김종훈 후보에게 패배하여 낙선하고 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분당 사태까지 벌어진 2016년 12월 29일 새누리당을 전격 탈당했다. 개혁보수신당으로의 합류는 부인했으며, 이후 별다른 정치 활동이 없는 상황. 이제는 나이도 70이 다 되어가는 만큼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한 것으로 여겨진다.

△ 정몽준 전 의원

4. 국제정치학 박사

1993년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대학원(SAIS)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본인의 프로필에도 '국제정치학 박사'임을 자주 강조하고 있다. 이 점은 본인의 주도로 설립된 아산정책연구원은 국내 유수의 국제정치 연구기관, 싱크탱크로 성장하고, 자신이 주장하는 핵무장론이 국내외의 주목을 이끌어내는 배경으로 작용했다.[26]

단, 정몽준의 박사 논문 주제인 "일본의 정부-기업간 관계: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원제: The government-business relationship of Japan : a case study of the Japanese automobile industry)는 외교, 국제분쟁과 같은 일반적인 국제정치보다는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비교정치, 정치경제 부문에 더 가깝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국제정치는 이런 지역정치학 역시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기 때문에 납득의 여지는 있는 편.

5. 재산

구 버전

2015년

현역 국회의원일 당시, 재산 1위를 항상 고수했다. 알려진 재산 총액은 2조[27]대이다. 대선 출마 경력까지 생각하면 사실 한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인물.[28] 워낙 천문학적 금액이라 국회의원들의 평균 재산액이 언론에 보도될 때, 정몽준 재산은 반드시 빼고 평균을 계산하는 것이 거의 불문율이다. 대학교 통계학 교재에서도 평균값의 맹점에 대해 잘 나오는 사례이다. 평균 금액을 심각하게 왜곡시킬 정도로 재산 액수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왜곡시키냐면, 정몽준을 제외한 국회의원 총 재산 평균은 대충 30억 원 정도 하는데, 정몽준을 평균에 포함시키면 거의 100억원으로 뻥튀기(!)된다. 2조 원을 국회의원 총 인원인 대략 300으로 나누면 67억 원이다. 그러니까 다른 국회의원 재산을 다 합쳐도 정몽준의 반도 안 됐다!

이 재산 때문에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공직자들은 자신이 맡은 직무와 주식 및 해당 기업이 전혀 무관함을 입증하지 못하면 관련 주식을 비롯한 자산을 3000만원만 남긴 채 모두 처분하거나 금융기관에 신탁 처분해야 한다. 이를 주식백지신탁제도라고 한다. 상임위 활동을 위해서 재산을 몽땅 처분할 수는 없기 때문에 2조를 버리라고? 현대중공업과 무관한 외교, 통일 분야에서 활동한 것.

이 때문에 현역 국회의원이던 시절 '다른건 몰라도 이 사람은 뇌물 받을 일 없다(...)'는 반응들이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사람들 사이에 종종 나돌았다.

참고로 재산 꼴찌는 성완종으로 나와있는데, 성완종 게이트 당시에 그가 전달한 뇌물의 액수나, 경남기업 회장을 지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순 뻥(...)이다.[29]

6. 국내 축구계의 초거물

△ 정몽준 전 대한 축구협회 회장

한국 축구 역사에서 정몽준의 공로는 그야말로 지대하다. 1993년부터 2009년까지 16년간 47~50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일하였다.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전 당시 한국은 일본보다 5년이나 늦게 유치 준비를 시작한데다, 당시 FIFA의 주앙 아벨란제 회장은 대놓고 일빠였다. 하지만 사실상 패배나 다름없는 상황 속에서 정몽준은 치열한 축구 외교전을 벌였고 현대그룹의 재력까지 총동원하여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레전드인 디에고 마라도나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등의 성과를 쌓아가며 기적적으로 공동개최안을 성사시킨 것이다.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 그 후의 한국 축구의 비약적인 발전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단 월드컵 개최에 성공한 것 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계의 인프라 개선에 자신의 사비까지 써가며 앞장섰고, 그 결과 축구 선진국 못지않은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그 이후 계속 조별리그 탈락만 전전하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에서는 FIFA 월드컵 사천왕이라는 의 멤버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도움으로 원정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룬다.

또 1994년~98년 기간 동안 한국프로축구연맹 1~ 4대 회장을 맡았다.

현재 대한축구협회 일선에서 물러난 상황에서도 한국 축구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몽준과 현대 家의 영향력이 없다면 한국 축구계는 지금처럼 운영하기가 힘들어 질 것이다. 이것은 정몽준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명백하게 인정하는 사실이며 장기간 K리그의 공식 스폰서가 현대 오일뱅크였다.[30] 덕분에 축덕 겸 가수협회장 김흥국이 측근이 되었다.[31]

△ 정몽준

사진은 AFC회장선거에서 정몽준 지지파가 떨어졌을 당시 사진으로 정몽준의 침울한 얼굴과 대조적으로 미소짓는 제프 블라터. 자세한 내역은 항목참조..

FIFA 회장이나 AFC 회장직도 노렸으나 모두 실패했다. 제프 블라터와 반목했었고 반블라터파 렌나르트 요한손 전 UEFA 회장을 지지하며 그의 FIFA 회장 선거를 열심히 도왔으나 완패를 당했고, 이후 요한손이 블라터 지지를 얻은 미셸 플라티니에게 UEFA 회장 재선에 실패하면서 피파 내에서 블라터파에게 많은 견제를 받아야 했다. 결국 2011년 정몽준은 FIFA 부회장 5선을 노렸으나 블라터의 지지를 받은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에게 패하여 떨어지고 명예 부회장이 됐다. 하지만 말 그대로 명예직이라 아무런 권한이 없기에 더 이상 FIFA에선 아무런 영향력을 가지진 못한다.

그의 몰락은 한국 축구 국제 외교력의 몰락이라는 말도 있으나 김운용과 마찬가지로 후계자를 전혀 만들지 않고 자신의 집권에만 신경썼다는 지적도 있다.

주앙 아벨란제 전 FIFA 회장의 심복이 바로 제프 블라터였다. 덕분에 아벨란제가 물러난 뒤로 터진 그의 비리혐의를 죄다 블라터가 쉴드쳐주거나 덮어버려서 그 어떤 수사도 조사도 이뤄지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IOC 위원장 자크 로게는 전 위원장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심복으로 역시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이 두 조직 부회장, 부위원장인 정몽준, 김운용은 전혀 후계자 및 지지 후임자가 전무했다.

반면 블라터에 맞서다가 지금은 야인이 된 렌나르트 요한손 전 UEFA회장은 후임을 여럿 둬서 이들이 현재도 UEFA 고위직으로 남아서 플라티니의 경쟁후보로 남아있다. 그래서 블라터와 플라티니가 요한손 전회장에 대한 문제를 언급할 때 이들이 똑같이 막아버린 거와 달리 김운용, 정몽준은 그러질 못했다. 파벌까지 뿌리뽑고 IOC에서 어떤 명예직도 없고 축출당한 김운용과 달리 그나마 정몽준이야 비리적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기에 명예부회장이라는 이름만 그럴듯한 걸 내주긴 했지만.

그의 몰락에 대하여 IOC가 안타까워했다는 후문. 2012 런던 올림픽까진 23살 이하 선수로 3명에 한하여 축구 와일드카드가 이뤄지고 있다. 이후론 21살 이하 선수로 자격을 제한하거나 아예 21살 이하 축구 대회를 올림픽 축구로 대처하고 블라터 뜻대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는 와일드카드 및 올림픽 축구 제한이 바꿔질 예정이라는 루머도 있으나 아직까지 이에 관련되어 확정된 사안은 없다. 결국 2016 올림픽도 와일드 카드 제도가 유지되었고 2020 도쿄 올림픽도 별 말이 없다.

사실 한국에선 경악할 일이겠지만 U-20 청소년 월드컵은 유럽 축구리그에서 외면하는 게 크다. 유달리 아프리카에서 청소년 축구와 올림픽 축구 성적이 좋은 이유도 유럽 리그에서 외면하던 덕분이라는 분석도 많다. 사실 경기 수익도 월드컵에 견주면 없는 수준이며 우승상금도 없는 명예대회인지라 올림픽 축구에 병합해도 FIFA에선 별다른 피해도 없다. 그저 유망주 발굴이라는 요소로 보면 되니까. 게다가 21살 이하로 와일드 카드를 줄이자면 20살 이하 축구대회와 차이가 없고 유망주 및 선수 혹사라는 비판 및 문제도 없앤다고 여기기 때문에 90년대부터 꾸준히 FIFA에서 논의하던 사항이다.

2018월드컵 개최지투표에서 한국은 영국에 투표하고 영국은 2022월드컵에서 한국에 표를 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나왔다. 그리곤 영국측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항의하자 "이것이 축구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그러나 제프 블래터가 회장직을 사임함에 따라 FIFA 회장 출마여부를 국제 축구 인사계들을 만나 경청한 후 좀 더 차분히 결정할 것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하지만 결국 6월말 들어서 피파 회장에 도전한다고 뜻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몽준의 피파 회장 당선에 대해서는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아프리카 및 아시아 쪽 상당수 피파 임원들이 블라터 지지파이며[32] 다른 경쟁자들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 중에서도 아시아 축구연맹을 좌우하고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는 아랍 측에서도 정몽준을 견제해오는 게 사실. 위에 서술한 대로 정몽준을 그동안 피파 부회장이나 AFC에서도 견제하고자 블라터가 지지하던 게 아랍 측 인사였듯이. 게다가 블라터 반대파가 가장 많은 유럽 쪽도 유럽파 후보를 지지할게 뻔하다.

△ 정몽준

2015년 7월 23일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8월에 공식 출마선언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선가능성이 그렇게 높지 않지만, 출마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8월 들어서 강력하게 어필하고 개혁을 촉구하면서 강력한 후보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회장을 블래터 전 피파 회장과 아들과 아버지라고 비난하면서 나서고 있다. 문제는 2015년 들어서 터진 현대중공업 비리 문제로 반대 후보들이 기업 하나 감당못하는 주제에 어디서 피파 개혁을 외치냐고 맞설 거리를 만들어버린 셈. 게다가 더더욱 문제는 AFC 안에서조차 정몽준 지지세는 그리 없다는 점[33] 사실상 정몽준이 승리보단 정치적인 홍보로 이미지를 남기고자 크게 나선다는 반응이다. 이런 가운데 정몽준 사촌동생인 정몽규 축구협회 회장이 지지를 표명하며 피파 내에서 정몽준 입지를 보여주고자 2005년 8월 이후 끊긴 남북친선 평화축구 부활을 부르짖었으나...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 서부전선 포격 사건이 터지는 통에 이건 가망이 없게 되었다.

정몽준 본인도 승산이 없다는 걸 아는지 2015년 9월, AFC가 블래터의 똘마니(...)라는 듯한 발언을 하며 하고픈 말을 다했다. 당연히 AFC에서는 분노했다.

시사저널 지에서도 사실상 정몽준이 회장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기사로 분석한 바 있다. 유럽에서는 플라티니를 비난하면서도 사실상 그가 된거나 다름없다고 본다고 독일 및 여러 유럽 나라 언론을 보도하고, 남미, 아프리카는 플라티니 절대 지지세, 북중미도 미국 빼고 플라티니 지지세, 오세아니아랑 아시아도 마찬가지라면서...정몽준이 안된다는 글은 없으나 해외 5대륙 반응, 외신 보도로 보면 딱히 가망이 없어보인다.

여기에 FIFA 윤리위원회에서 2022 월드컵 대회 유치과정에서 한국 유치위원회의 국제축구발전기금 조성안 계획을 각국 집행위원들에게 전달했다는 이유로 자격정지 15년, 윤리위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혐의로 4년을 구형받았다. 김 이에 한국의 법률회사인 '김앤장'이 정몽준을 변호하기 위해 나섰다는 기사가 떴다. 다만 정몽준 자신은 이에 대해 자신이 개혁세력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꿈보다 해몽'급 해석을 시전했다. 결국 2015년 10월 8일에 FIFA로부터 6년간의 자격정지를 받았다.

이에 항소했지만 기각당해 사실상 피파 회장 도전은 나서지도 못하게 되었다. 사실 피파 회장은 너무나도 가망이 없었고 차라리 부회장 선거로 나가고 강력한 회장 후보를 지지했더라면 어떨까하는 아쉬움도 있다. 물론 플라티니가 너무나도 굳세 다른 후보로도 도저히 가망이 없었다는 의견, 그리고 이전에 요한손을 이렇게 밀어줬다가 참패하고 자신도 부회장에서 오래가지 못했던 일이 있었기에 이것도 어렵다는 분석도 많았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후 플라티니와 블래터도 정몽준과 같이 징계 및 처벌을 받아 피파에서 사실상 매장되었다(...) 그리고 피파 회장은 또 그 놈의 스위스 잔니 인판티노가 새롭게 취임했다.

그런데 징계가 취소됐다. 그의 징계 취소 후 첫 행보는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1차전 한국-스웨덴 경기 관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젠 피파에선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기에 정치인으로만 활동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와 범현대가는 한국 축구계쪽에선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본인은 울산 현대 구단주이고, 조카 정의선전북 현대 구단주, 대한축구협회장이자 FIFA 평의회 위원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 정몽규가 사촌동생이다.[34]

7. 가족 관계

부인은 김동조외무장관의 딸인 김영명이다.

장남 정기선은 1982년생으로 대일외고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스탠포드 대학교 대학원 MBA를 마친 뒤 2013년부터 현대중공업에서 근무를 시작하여 2019년 현재 현대중공업 부사장이다. 사실상 현대중공업을 물려받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가족 중 제일 유명한 사람은 바로 늦둥이 막내아들(...)

  자세한 내용은 범 현대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울산 동)

무소속

40,253 (54.35%)

당선 (1위)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울산 동)

통일국민당

61,263 (71.14%)

당선 (1위)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울산 동)

무소속

55,697 (71.00%)

당선 (1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울산 )

무소속

51,346 (61.48%)

당선 (1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울산 동)

국민통합21

56,851 (65.22%)

당선 (1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작 을)

한나라당

47,521 (54.41%)

당선 (1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작 을)

새누리당

46,480 (50.80%)

당선 (1위)

[35]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새누리당

2,109,869 (43.03%)

낙선 (2위)

9. 논란

9.1. 버스 요금이 70원인가?

그야말로 재벌스러운(?) 흑역사. 2008년 6월 27일 KBS1라디오의 전당대회 출마 후보간 생방송토론에서 요즘 버스비가 얼마냐는 질문에 머뭇거리다가 "한 70원 하나요?"라고 전설의 멘트를 날렸다. 2008년 당시 서울 기준 지간선 버스의 요금은 성인 기준 현금 1,000원, 카드 900원. 타지역도 그 값에서 대동소이했다. 1979년에 일반 버스 요금이 60원, 1980년에 일반 버스 요금 80원이였다.

설상가상으로, 그 이후 여론이 악화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교통카드를 보이며 교통요금을 잘 안다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하필 그 카드가 청소년 교통카드였다.[36] 그 이후 정몽준 하면 70원 드립이 항상 따라다니게 되었으며, 2014년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을 때도 '공약으로 버스비 70원 해 주나요?'(...)라는 드립이 나왔을 정도.

이 사건 후 정몽준은 아예 각종 생활 물가를 미리 준비해다녔다고 한다. 2014년 4월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들이 TV토론을 하는데 정몽준의 자료집에 돼지고기 한 근 가격 등이 적혀있었다고.

사실 버스 요금을 잘 모른다는 것 자체는 조금 이해할 수도 있는게, 굳이 재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런저런 이유로 버스를 오래 안타다 보면 충분히 까먹을 수 있다. 지하철이 없는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지하철 요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예 한 세대가 넘는 30년치 물가를 틀려버린다는 것은 시장 물가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다고 인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서민의 기본 생활을 한 치도 모르면서 서민, 즉 대다수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특히, 정몽준은 표심을 얻기 위해 자신은 재벌이지만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하기까지 했기에 더더욱 그렇다.[37]

사실 그의 아버지 정주영은 아들을 천룡인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최소한 학창시절에라도 버스로 통학하게 하고, 보통 수준의 용돈을 지급하면서 서민 혹은 일반인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같이 공부하도록 했으며, 부자가 되었다고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는 인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정몽준이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레 대중교통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며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정몽준이 버스를 타고 다녔을 법한 시절인 1965년에서 발언을 한 당시인 2008년까지 물가가 약 31배 올랐는데,[38] 당시 버스요금이 8원이었다. 즉 어찌보면 정몽준도 자신이 버스를 타던 시절의 금액에서 '이만큼 올랐겠지?'하고 어림짐작으로 최대한 열심히 계산한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변명을 들어줄 서민은 없어서 대중정치가의 꿈은 꺾여버렸다.

9.2. 가족들의 발언 논란

2014년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정몽준 후보의 정몽준의 막내 아들[39] 페이스북에서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고위 공직자에게 물을 뿌리는 유족들[40]을 향해 '시민의식이 미개해서 국가가 미개하다'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정몽준 후보는 네티즌들의 분노하는 반응에 크게 놀라서 "자식 잃은 부모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아들의 불찰이다."라면서 즉각 사과하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결국 이 사건은 그의 지지율을 떨어뜨리는데 한 몫 했고, 역전의 발판을 만들어도 모자라던 판에 필화를 입은 탓에 결국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하고 만다. 이후 정치적 재기가 어려울 정도로 몰락했다. 서울시장 선거는 대통령으로 가는 발판 중 하나로 취급될 정도로 중요한 선거니...

더 자세한 사항은 정몽주니어 문서 참조. 이후 정몽준의 부인이 "아들의 발언은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시기상 좋지 않았다"고 발언해 또 구설수에 휩싸이기도 했다.[41] 이 정도면 가족이 아니라 X맨.

그리고 이 발언이 있은 후 정몽준 후보는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해 보고자 한 고시원을 방문했는데, 이때 정 후보의 문화충격을 받은 듯한 리얼한 표정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여기서 사람이 산다고 ?#

10. 이야깃거리

△ 정몽준 전 의원

  • 글씨가 좋게 말하자면 심플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초딩같다.(...) 다행이도 어맹뿌 같은 사태가 일어날 일은 없는 알아보기 쉬운 글씨체라는게 그나마 다행일지도. 안철수 글씨체와 상당히 유사한데 가장 큰 차이를 하나 꼽자면 정몽준은 글씨를 상당히 큼직하게 쓴다. 방명록을 쓸 때 남들은 종이의 절반을 채울까 말까 할 때 몇 자 안되는 글로 종이를 가득 메워버리는걸 보면..... 그리고 본인은 이에 썩 개의치 않는것 같은데 이렇게 대놓고 자신의 글씨를 내세우는데 거리낌이 없다.
  • 프로필상 키가 182cm다. 2018년 기준으로도 어지간한 젊은이보다 키가 크다. 참고로 부인도 키가 꽤 크다. 170대 초중반인데, 지금 기준으로도 꽤 큰 키인데 옛날에는 가히 거인 수준이었다고. 그래서 정몽준의 부인은 정몽준과 결혼한 것을 행복하게 여긴다고 한다. 정몽준도 상당한 애처가라고 한다.
  • 현대학원 이사장 시절에 졸업식 같은 주요행사에는 많이 참석했는데, 당시 재학생은 실제로 정몽준을 보고서 키도 훤칠한데다가 젠틀하고 멋있는 이미지라는 평을 하기도 했다.
  • 좌우명은 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 뜻은 군자는 남들과 조화롭게 잘 어울리지만, 남들과 같아지려 하지는 않는다. 소인은 남들과 같아지려고만 할 뿐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 2016년 10월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 회고록 논란이 일어나자, 야권이 과거 정몽준이 쓴 회고록의 한 문단을 들고 반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내용인즉슨, 2002년 방북해 김정일과 회담하고 돌아온 박근혜가 이후 남북간 친선축구경기를 주최했는데, 거기서 박근혜가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로, '대~한민국' 대신 '통~일조국'으로 구호를 부르기로 합의를 봤는데 실제 경기에서 응원단들이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당시 축구협회장인 정몽준에게 화를 냈다고 적혀있었기 때문.[42]
  • 울산 동구 지역 문화 시설을 방문하면 죄다 그의 이름이 걸려있다.지역에서 국회의원을 내리 5선을 했고, 이후에도 현대중공업의 실질적 소유주로서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다.
  • 거물 정치인이자 동시에 대기업 대주주라는 어마무시한 스펙으로 같은 국회의원들에게도 엄청난 대접을 받은 듯하다. 강용석썰전에서 나와 이야기하기를[43] 언젠가 정몽준과 골프를 치고 식사를 하는데 정몽준이 못 보던 와인을 마셔서 무엇이냐 물었는데 미국 가서 먹어보니 맛있어서 수입한다(...) 라고 답했다 한다. 또 정몽준이 다른 국회의원들과 사적으로 식사하러 가면 정몽준이 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1인당 10만원이 넘는 비싼 밥을 먹어도 국회의원들이 농담 삼아 더 비싸고 맛있는 거로 먹자 라고 한다 했다. 그리고 윗 문단에도 적혀있듯 정몽준이 국회의원이던 시절엔 정몽준은 빼고 평균 재산을 계산 한다고 한 것도 강용석이 썰전에서 다시 부각시킨 것. 정몽준을 빼는 이유는 왜냐하면 정몽준이 포함되면 국회의원 평균 재산이 몇백 억이 넘어가기 때문이라고..
  • 2012년 7월 2일 19대 국회가 진통 끝에 원 구성을 마치고 늑장 개원을 했는데 당시 최다선(7선) 의원으로서[44]국회의장 직무대리를 맡아 국회의장 및 부의장단을 뽑는 첫 회의를 주재하였다. 이 회의에서 친박계이자 민정계였던 새누리당의 강창희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당선되었다.
  • 축구협회장 당시 연예인으로선 유일하게 자비를 들여 원정 응원을 다녔던 김흥국과 연을 맺어 지금도 절친인 건 공공연한 사실. 그래서 매번 선거철만 되면 기자들이 김흥국에게 들러붙어서 출마할 거냐고 물어보는 게 관례였는데, 이에 김흥국이 총선 출마 포기 선언을 한 일이 있다. 그리고 김흥국이 출마를 못 하는 이유를 라디오 스타에 나와서 직접 밝혔는데 그 말이 걸작. "공천을 줘야 출마를 하지!"
  •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한양궁협회 초대 회장이기도 하다. 현재야 뭐 정몽구정의선[45]이 하고 있어서 모르는 사실이지만 대한양궁협회 역대 회장 명단에 들어가 있다.[46]
  • 현실주의 FPS 게임인 SQUAD의 냉전 버전 Escalation 1985의 냉전과 관련된 명언 목록 중에 자신이 했던 발언인 "냉전을 억제시킨 유일한 억제제는 핵무기였다"란 말이 명언으로 올라왔다. 해외 게임에 한국인의 발언이 명언처럼 소개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특수한 일이나 게임이 비주류 마이너 게임이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 인터넷상에서 BMW i8을 탄 인증샷이 돌아다닌다. 퍼포먼스 차원으로 탄 것인지 정말 마음에 들어서 산 것인지는 불명.

  1. [A] 1.1 1.2 울산시·울주군(중선거구)
  2. [2] 울산광역시 동구
  3. [3] 경상남도 울산시 동구
  4. [4] 의원직 사퇴
  5. [5]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하지만 성장지는 서울특별시라서 초중고 모두 서울에서 나왔고 서울 말씨를 쓴다.
  6. [6] 왕회장의 몇몇 아들들이 그렇듯, 생모는 따로 있다. 정몽준 본인도 생모가 따로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일종의 서자인 셈. 생모로 유력시되는 인물들이 있으나, 확실히 확인된 인물은 없다.
  7. [7] 2016년 12월 29일에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8. [8] 현대중공업은 전문 경영인이 경영하고 있다. 정계 입문 전인 1988년까지는 정몽준이 현대중공업 회장이었다.
  9. [9] 현대중공업 공장이 있던 울산 동구에서 5번 연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13·14·15·16·17대)됐다가, 18대와 19대 총선 땐 서울 동작 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2014년 서울시장선거에 나갔다 낙선하였고 2016년 20대 총선엔 출마하지 않았다. 참고로 20대 기준 울산 동구 지역구 국회의원은 민중당 김종훈 의원이며 서울 동작 을 지역구 국회의원은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이다.
  10. [10] 그가 떠난 20대 국회 들어와서 부동의 1위는 김병관 의원이 차지하고 있으며, 자산 500억 원이 넘는 김병관, 김세연, 박덕흠 세 사람을 빼고 평균을 내고 있다.
  11. [11] 정주영 회장의 자녀들은 전반적으로 학력이 준수한 편이다. 정몽준을 제외하고 국내 대학을 진학한 형제들의 학력은 다음과 같다. ●한양대학교:정몽구, 정몽근. ●연세대학교:정몽필, 정몽헌, 정몽일. ●중앙대학교:정몽우.
  12. [12] 다만 정몽준은 정실부인인 변중석의 소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찬밥대우를 어린 시절에 받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정몽준이 서울대학교에 진학하고서는 완전히 대우받았다는 후문.
  13. [13] 예외적 케이스로 정의선은 면제 판정을 받았고 이게 정의선의 컴플렉스가 되어 지금은 정의선 앞에서는 절대 병역관련 얘기를 꺼내지 않는게 현기차 그룹의 불문율이다.
  14. [14] 막내아들 또한 학군단으로 보내고 싶다는 견해를 내비친 적이 있으나, 막내아들은 공군 병으로 입대했다.
  15. [15] 항소심에서 선고유예를 받아 의원직 상실은 면했다.
  16. [16] 14대 대선 후 강도 높은 세무조사, 대출 제한 등 정치보복을 겪으면서 현대가는 DJ에게 줄을 댔고, DJ가 대통령이 되자 남북 화해 무드 속에서 정주영 회장이 북에 소떼방문도 하는 등 제법 득을 봤다는 것이 세간의 중평이다.
  17. [17] 정몽준과 박근혜는 장충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
  18. [18] 이는 지지철회 선언을 발표한 김행 대변인(이후 朴 정부에서 대변인을 지내게 된다.)과 허운나 전 의원의 증언이다.
  19. [19] 이렇게 쓰여있기는 하지만 사실 노무현 본인은 절대 찾아가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절했었다고 한다. 결국 가게 된 것은 참모진의 성화 때문이라고.
  20. [20]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참여정부는 임기 말 인기가 곤두박질해 한나라당에서 개가 나와도 당선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기에, 어차피 정몽준이 노무현의 곁을 지켰어도 대권의 꿈에서는 멀어졌을 것이다. 다만 차기는 힘들어도 노무현 곁에서 국무총리직도 하고 중책을 맡아서 장기적으로 정치인으로서 성장할 순 있었다. 물론 정치란게 모르는 것이긴 하지만, 이때 월드컵으로 얻은 정치적 위상 및 입지를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신기루처럼 흩어보낸 것은 아쉬운 일.
  21. [21] 다만 이 부분에 대해 정몽준의 입장에서 옹호를 해 본다면, 정치권이란 1년... 아니 6개월 뒤의 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곳이며, 이는 정몽준이 노무현 후보로부터 확실한 미래(차기 대권 또는 내각 구성권, 또는 당대당 합당 후의 당권 보장 등)를 보장 받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국무총리는 청문회와 국회 과반의 표결을 거쳐야 하는데 당시 국회 구성은... 더군다나 2008년 촛불집회 중에 치뤄진 2008년 6월 재보궐선거 이전까지 당시 민주당의 상황이 매우 나빴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미 한국 현대정치사에는 보장되지 않은 미래 때문에 단일화가 결렬되어 상호 독자 노선으로 갈라진 사례가 있으며(87년 YS, DJ 단일화 결렬), 심지어 미래를 보장한 경우에도 팽 당하는 경우(JP가 YS ,DJ 2대에 이어 내각제 개헌을 약속 받았지만, 끝내 이뤄지지 못한 것)도 있기 때문에 정몽준이 멍청했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몽준보다는 노무현이 처한 상황이 유권자들에게 더 측은하게 여겨졌고, 서로 간의 감정을 정산하는 문제는 이긴 뒤에 해도 늦지 않은데 굳이 선거 전날에 판를 깨어서야 되겠느냐하는 비판 등으로 인해 정몽준이 뭔가 쪼잔한(....) 인간같은 이미지가 되어 버리며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된다. 더욱이 비교 상대가 이미지상으로는 쪼잔함과 매우 거리가 먼 노무현이라 더더욱...
  22. [22] 여기에도 에피소드가 있는데, 원래 정몽준은 자기 지역구에 출마할 예정이었고 동작구 을에는 비례대표였던 이군현이 출마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정동영이 동작구 을에 나오면서 한나라당 지도부는 정동영을 잡기 위해 정몽준을 서울 동작구 을, 안효대를 울산 동구로 공천하고, 대신 이군현은 통영ㆍ고성으로 내려보내서 공천을 주게 되었다.
  23. [23] 축구열기보다는 하단에 언급되는 버스비 사건의 여파가 컸다.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지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서민 생활도 모르는 재벌 출신 도련님에게 대통령 자리까지 맡기기는....이라는 분위기가 상당히 강해졌다. 그나마 도덕성에 타격을 입을 수준의 문제는 아니고 실책 정도로 받아들여져 대권주자까지는 아니라도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줄이 약해지지는 않았지만.
  24. [24] 더군다나 대선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전국민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서울시장 선거였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사람은 정치적으로 몰락한다는 징크스는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유일한 예외가 바로 나경원이다.
  25. [25] 발언의 내용도 문제가 많았지만 정몽준답지 못하게 토론의 자세 또한 엉망이었다. 자신의 질문에 무조건 '네, 아니오로만 대답하라'고 강요하며 토론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심지어 박원순 특유의 말투와 목소리를 성대모사하며 빨리 대답하라고 떼를 쓰는 등 초등학생들 싸움에서나 나올 법한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다.
  26. [26] 한국 정계에서 핵무장론을 이야기하는 정치인은 소수나마 있기는 했지만, 정몽준 정도의 거물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사실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은 케네스 월츠가 중동 정세를 언급하며 차라리 핵확산이 중동 평화를 부를 것이라고 주장한 것의 동북아 버전으로 근거 없는 허튼 소리로 치부될 것은 아니지만 유불리를 따지면 불리함이 많을 것이라는 게 전반적인 평. 다만 연구원에서 주최하는 '아산 핵포럼' 등의 각종 행사에 참석해서 늘 언급하기 때문에 꽤나 많은 주목을 받는 편.
  27. [27] 현대중공업 주가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에는 4조 원이었지만 2015년 기준으로는 조선업이 최악의 불황을 맞은 탓에 1조 7천억 원대로 쪼그라들었다.
  28. [28] 문서 내에도 나와있지만 정몽준의 막말 워딩도 나름 화려하다.
  29. [29] 김한표 의원도 재산이 없는 편인데, 이 사람은 15~19대 총선에 무소속, 민주국민당 같은 군소정당에서 내리 출마해서 선거 자금으로 재산을 많이 까먹었다.
  30. [30] 현재는 맡고있지 않으며 17시즌 부터 20시즌까지 하나은행을 메인 스폰서로 두게 되었다.
  31. [31] 다만, 정몽준의 입장에서는 미묘한 사이인 것도 사실이다. 대놓고 밀어줄 정도로 공천을 주는 것도 아니고.
  32. [32] 아프리카 축구협회장 이사 하야투가 정몽준과 함께 반 블라터 진영 핵심 인사로 자리했었고, 지금도 정몽준과 가까운 사이지만, 현재는 하야투가 거듭된 패배로 인해 친 블라터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원래 아프리카가 하야투가 반 블라터 활동을 할 때에도 표 단속이 안 될 정도로 친 블라터 성향이 강하고.
  33. [33] 정몽준이 블래터 전 회장을 비난하면서 내세운 근거가 2022 카타르 월드컵 선정비리인데 이 점으로 나서자면 AFC에서 입지가 큰 아랍 측에게 분노를 받을게 뻔하다. 그리고 알 칼리파 AFC 회장, 알리 후세인 피파 부회장이나 알 사바 OCA(아시안 게임 조직 위원회) 총재 겸 피파 진행위원은 정몽준에 대하여 어떤 지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다가,알 사바나 알 칼리파는 알리 후세인 부회장이 피파 회장 후보로 나서지 않는다면 플라티니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당연히 한국 편 들어줄리가 없기에 공식적으로 플라티니 지지를 밝혔다. 이로서 아시아에서조차 지지도 못 받는 주제에 무슨 회장이 된다는거냐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34. [34] 다만 현대가는 왕자의 난을 치루며 그룹이 분해되는 내홍을 겪었기 때문에 단순히 족보만 가지고 한데 엮기는 무리가 있다.
  35. [35] 2014.5.14 의원직 사퇴 (서울특별시장 선거 출마)
  36. [36] 보좌진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교통카드를 정몽준이 직접 사러 갔을리가 없으니까.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대중앞에서 서면서 최종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정몽준 자신에게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보좌진마저 저런 실수를 하면...
  37. [37] 실제로도 이후로 좌우 막론하고 정치인이 버스, 지하철 요금이나 물가같은 걸 잘 모르거나 약간씩 틀리는 모습이 종종 나오곤 하는데, 그래봤자 기껏해야 10~20% 차이 정도, 몇 년 전 물가 수준 정도밖에 안 되기에 그리 큰 논란거리도 되지 않은 채 잊혀지곤 한다. 하지만 정몽준과 버스 요금 70원은 아예 끝까지 따라다니는 개그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38. [38] CPI 참조
  39. [39] 1996년생으로 2014년 당시엔 재수생이었다. 빠른 생일이 아니고 96년 3월생이지만 1년 빨리 입학해 95년생과 같은 학년. 이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에 합격해 15학번으로 입학했다.
  40. [40] 세월호 유족들이 정홍원 총리에게 물을 뿌린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 알다시피 세월호 사건은 수색, 구조 과정이 개판이었는데, 이 때문에 한참 속이 타고 있던 유족들 앞에서 하나마나 한 소리만 하러 온 걸 보고 전시행정 하지 말라며 분노해서 물병을 던진 것이다.
  41. [41] 후보 가족의 이런 국민과 동떨어진 정서는 이 생각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정치인에게는 심각한 흠결이 된다. 그리고 틀렸다. 즉, 표를 얻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 그리고 국민더러 함부로 '미개'라는 표현을 쓰는 건, 개인의 정치적 소신 따위로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질 나쁜 발언이다. 후일 비슷한 소리를 한 나향욱이 어떤 꼴이 났는지를 보자.
  42. [42] 물론 이는 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오류이다. 박근혜가 그리하도록 지시한 것과 송민순 회고록 관련 문재인 행위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43. [43] 이때 방송이 썰전 초창기인 2013년 인데 지금과 같이 급박히 돌아가는 사회이슈를 두고 계속 토론하기 보단 주제를 하나 잡고 거기에 대해 썰을 푸는 때도 있었다. 국회 출신이면서 최초로 예능에 나오는 강용석이 주로 재미삼아 국회의 뒷이야기를 털었다.
  44. [44] 19대 국회 당시 같은 7선 의원인데다가 나이가 더 많았던 서청원은 2013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기 때문에 19대 국회 개원 당시에 원외에 있었다. 따라서 개원 당시에는 정몽준이 유일한 7선이자 최다선 의원이었다.
  45. [45] 정몽준에겐 장조카다.
  46. [46] 이 영향인지 양궁협회는 현대그룹의 빵빵한 지원을 받는 중. 참고로 정몽준 이후의 회장도 전부 현대그룹 관련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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