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

정성일
Seong-il Jeong • 鄭聖一

본명

정성일

출생

1959년 7월 4일 (60세)

신체

175cm

가족

학력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종교

기독교

소속

한국영화아카데미,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웹사이트

#[1]
정성일 아카이브 #

" 저는 정성일 선배를 존경합니다.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고 아주 존경해요. 저는 이렇게까지 생각해요. 대한민국 평론가는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정성일, 하나는 기타 등등. "

이동진, 2007년 인터뷰에서 #

" 내가 아는 정성일은 천진한 사람이다. 존경하면서도 귀여운 어른이라는 인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천진한 사람만이 그토록 엄격한 외골수일 수 있다. "

김혜리 #

1. 개요
2. 소개
2.1. 성향
3. 생애
4. 활동
4.1. FM 정은임의 영화음악
4.2. 박찬욱과의 관계
5. 정성일이 지지하는 영화 감독
6. 기타
7. 저서
8. 연출작 일람
9. 자주 쓰는 말
9.1. "윤리적", "정치적", "미학적"
10. 인터뷰
11. 외부링크

1. 개요

1959년생. 대한민국영화 평론가, 기자, 영화 감독겸 전직 번역가.이자 누갤 갤주

2. 소개

국내 평론가 중에서 영화평을 깊이 있게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대해 동료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누군가 정성일의 어떤 하나의 평론보다 더 뛰어난 평을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정성일처럼 매 순간 모든 영화에 대해서 평론가의 자의식으로 대결하면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은 한국에서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 허문영

그러나, 이런 깊이와는 별개로 가독성이나 문체 면에서는 상당히 떨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젊은 시절 직업이던 번역가 때의 흔적이라고 한다.

영화 잡지 월간 키노에서 글을 기고하기 전(1995년 전)부터 이미 이 분야에서는 유명인사였다. 책도 언젠가 영화감독이 되면 출간하겠다고 할 정도로 글을 모아 출판하는 데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의 글을 모아놓은 웹페이지는 정성일 본인이 만든 게 아니라 팬인 김석영이 만든 것인데, 정성일의 저서에도 이 사이트에 대한 언급이 나올 정도로 실로 대단한 사이트. 정성일 아카이브

그리고 그 글을 모아 놓은 사이트를 (나와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오로지 그저 글에 대한 우정으로) 운영하는 김석영이 아니었다면, 이 중 몇몇의 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한다. - 정성일,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바다출판사, 2010), p13 "서문 '책머리에' 포함 미리읽기 링크"

2.1. 성향

정성일 자신에게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명백한 정의를 내렸다.

영화는 나에게 영원한 순정이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에 거리를 두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고 한다. 영화 비평글을 길게 쓰는 성향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요약할 수 없는 비평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스스로 말했는데, 이것은 역시 영화에 대한 그의 쉼없이 깊은 사랑이 동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비평에서 리뷰의 역할을 아예 무시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의 영화평론이 리뷰 위주로만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있다.[2]별점 평가를 싫어하여 영화에 대해 별점을 매기지 않는다. 대신 주기적으로 "Best 10" 같은 목록을 내서 평가를 요약한다. 연도별 베스트10 모음

90년대 '정은임의 영화음악' 시절에는 직접 영화에 별점을 주고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별점평가를 하지 않게 된다. 2014년 '진중권의 문화다방'에 나와서는 자신도 철없던 시절에는 별점평가를 하기도 하였으나 영화에 점수를 준다는 것은 그 순간부터 그 영화에 대한 생각을 중단한다는 의미라며, 자신은 영화에 점수를 주기 보다는 그 영화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을 하여 감상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라고 얘기하였다.

"영화 평론가에게는 영화가 최우선이다"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평론가이다. 과거 모 평론가가 영화평론가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 알려달라는 청소년의 질문에 "인문학적 교양이 있어야 영화를 봐도 깊게 이해할 수 있으니 영화를 당장 많이 보기 전에 인문학적 교양을 먼저 쌓아라"라고 한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며 "절대 이해할 수가 없는 말이다. 영화평론가에게는 언제나 영화가 우선이다. 나는 수천편의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한 교양공부도 해 왔지만 아직도 영화가 뭔지 확실히 모르겠는데, 어떻게 영화를 먼저 안 보고 인문학 공부를 먼저 하라는 말인가. 그런 지식을 익히고 나면 자신의 지식에 맞는 영화로 자기 취향이 변하게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영화를 보다보면 자신이 관심있어지는 인문학적 분야는 생기게 마련이고, 그때가서 공부하면 되는 거지. 영화를 나중에 봐서는 절대 안 된다."고 호소한 적이 있다.

또한 그의 입장에서 '최고의 영화 비평'은 영화를 만든 감독 및 제작자와의 인터뷰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박찬욱과는 정성일의 철저한 씬 분석을 토대로 하여 《친절한 금자씨》에 대해 무려 5시간 동안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씨네21.2005.08.16.516호. 이보다 더 친절할 수 없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묻고 박찬욱이 대답한 <친절한 금자씨>의 모든 것

정성일이 지지하는 한국 영화감독은 임권택, 김기덕, 홍상수가 있다.[3][4] 이 중 임권택과 김기덕에 관해서는 정성일 본인이 제작, 편집의 이름으로 책을 냈을 정도.[5] 반대로 일반적으로 영화계 거장으로 인정받는 이창동[6], 박찬욱[7], 봉준호[8], 임상수의 영화에는 조금 혹은 많이 비판적인 평론을 꽤 쓰기도 해서, 그들의 지지자들이 정성일에게 악감정을 갖는 경우도 있다. 한때 다른 영화 평론가 이동진과 정성일이 인터뷰했을때, 이동진이 대놓고 "왜 (지지하는 쪽이) 임권택, 김기덕, 홍상수입니까? 왜 이창동, 박찬욱, 임상수, 봉준호는 (지지하는 쪽이) 아닙니까?"라고 질문한 적도 있다.

이동진 : 비평을 통해 일관되게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을 옹호해 오셨습니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덜 평가하신 감독들도 있습니다. 거칠게 묻겠습니다. 왜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입니까. 왜 이창동 박찬욱 임상수 봉준호는 아닙니까.

정성일 : “물론 저는 후자로 거명하신 감독들도 장점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하지만 질문이 간단하니까 저도 간단히 답하겠습니다. 제가 지지하는 감독들의 옹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제가 ‘시네마란 무엇인가’를 질문했을 때, 그에 대해 대답을 하거나, 대답을 준비하거나, 시네마를 통해 반문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동진닷컴.2007.07.16. 정성일 평론가, 영화제 개최에서 감독 데뷔까지

한국 영화 관객이나 영화 애호가들의 세태도 안타까워 했다. 자신이 어릴 적에 영화란 건, 특히 걸작이란 영화관에서 상영할 때 안 보거나 TV에서 영화 방영해줄 때 안 보면 평생 언제 다시 볼 지 알 수 없는, 아니 평생 못 볼거라고 생각하던, 그래서 그 영화보는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걸 잊고 영화보는 것에만 모든 집중력을 투자하는 '일생일대의 가장 절실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는데, 지금은 인터넷 같은 강한 미디어의 힘을 이용해서 언제라도 볼 수 있고, 보다가도 중간에 멈추기도 하고 건너뛸 수도 있으니 오히려 미뤄두기만 하고 어쩌다가 볼 때도 별로 집중해서 보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 그것이 한국에서 영화비평계의 가치와 폭을 좁히는 영향도 미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3. 생애

어릴 때 어머니가 영화를 자주 보여줬는데, 초등학생 2학년 때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게 되고 나서부터 영화를 좋아했다고 기억한다. 그 이후 어린 나이임에도 그 영화가 너무 좋아서 나중에 본 《벤허》 마저도 재미없게 느껴졌다고 한다.

정성일이 상업영화에 대한 관심만이 아닌 예술영화나 저예산 독립영화 등에 애정이 큰 평론가가 된 동기는 1970년대였던 그의 고등학교 1학년 때 있었다. 라디오에서 소개된 르네 클레망 감독의 《금지된 장난》이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경복궁 맞은 편에 있던 프랑스 문화원에 [9] 갔는데, 막상 〈금지된 장난〉은 시간표가 안 맞았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영화를 먼저 봤는데, 이 영화가 바로 장 뤽 고다르의 《기관총 부대》(Les Carabiniers)였다.[10] 태어나서 처음 접한 영어 자막의 프랑스 영화였는데 어마어마한 충격[11]이었다고 한다. 그때 "아하, 영화라는 것은 카메라로 찍는 거구나"라는 걸 깨닫고,[12] 영화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버리고,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막상 그 다음으로 본 《금지된 장난》은 자신이 기대했던 충격적인 감흥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13] 운명의 장난이여

그 매력에 빠져 그 이후로도 상영회에 매번 참석하게 되었고, 영화를 같이 본 대학생들과 감상을 나누는 시간도 생기고, 가벼운 토론도 하게 되면서, 예술영화 자체의 매력과 영화에 대한 토론, 평론의 재미에 점점 빠져들었다고 한다. 이후 2학년 때 프랑스문화원에서 본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는 나중에 100번도 넘게 다시봤다고 할 정도로 위대함을 느꼈다고 한다. 타고난 고다르 마니아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영화감독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대학에 가고 나서는(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독일 문화원에서도 영화를 보면서 영화동호회 써클 활동까지 하다가 독일 문화원장이 독일로 강제 송환되면서 군대[14]를 갔다고 한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평론에 따르면 부대 안에서 시체를 아홉 구나 보았고 둘은 자살이었다고…

고교시절부터 영화에 대해 더 깊게 빠진 계기가 또 있었다는데, 그것은 의외의 것이다. 그는 영화를 좋아하던 것과 별개로,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 꽤나 주먹을 잘 쓰던 싸움꾼, 그러니까 싸우다가 사고도 좀 치고 하던 불량학생 출신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학년이 끝나고 2학년이 되면서 스스로 반성을 하고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막상 공부를 하려 하니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이미 주먹으로 유명해진 본인을 무서워서 피하는 경우뿐이고 본인과 가까운 친구들은 다들 좀 놀거나 주먹을 쓰는 친구들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과의 관계를 줄이고 청산하다보니 주변에 친구들이 너무 적어졌고, 공부 외의 시간들은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영화를 많이 보는 데 더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교시절 2년은 사실상 영화와 공부 두가지에만 몰입했던 시간이었다고. TTL Cinema Club.2001.04.1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영화 '친구'를 보고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은 군대를 갔다 온 뒤부터 시작된 것이라 한다. 지인들이 스태프들로 들어갔던 이장호 영화를 보면서 한국영화가 좋아졌다고 한다. 그 후 임권택 영화를 본 뒤에는 영화에 관련한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결심도 생겼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 영화와 관계가 없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사 기자를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해 1년 정도만에 그만두었다고 하고, 이에 대해 아버지가 매우 싫어하였다고 한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는 비평 활동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진중권 : 자식이 평론한다고 그러면은 시키시겠어요?

정성일 : 이렇게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사실은 제가 영화를 하겠다는 것을 부모님이 단 한 번도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없습니다. 심지어 마흔이 넘어서 세배를 드렸었을 때에 저희 아버님이 제가 세배를 했더니 저한테 그랬습니다. "성일아, 너 요즘 어떻게 지내냐" 그래서 "아, 예. 영화에 대한 글도 쓰고, 영화잡지도 만들고 있고.." 이랬더니 "아니, 그런 거 말고 일은 언제 할 거냐?" 그래서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은, 제가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살았는데 제 아이가 제 뜻을 거스를 때, 제가 그것에 대해서 탓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창비라디오. 2014.09.25. 진중권의 문화다방 - 정성일 1부. 1:28:00 시점

4. 활동

월간지 《》에 연재하기 전에는 입에 풀칠하느라 글도 더 쉽고 단순하게 썼었고, 정성일 본인이 혐오하는 별점평가까지도 했었다. 스스로도 이때를 흑역사로 생각하고 있고, 이때의 필명을 밝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팬들이 당시 필명이 '정예린'(...)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때의 글들도 다 찾아내서 글모음 사이트에 올려놓았다.(...) 남의 흑역사를 들춰내지마!

그는 잠시 ‘위장 취업’을 하기도 했다. 여성지와 단행본 출판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학원사에 들어갔다. 유학자금과 가족 생계자금을 벌기 위해서. 그러나 이 선택이 잘못됐다는 걸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1년 8개월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충무로 영화기획사에 있으면서 그는 ‘생활비라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의 알음알음으로 청탁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단 모두 필명(정예린)으로. 영화를 글로 풀 생각은 없었으므로. 그런데 세상사가 좀 이상야릇한 것이 풀렸으면 좋겠다 싶은 것은 자꾸 꼬이고 그만둬야지 생각했던 일은 술술 풀렸다.

“그때 『말』지 기자 한 분이 와서 제게 원고를 써달라고 하더군요.” 그 때가 1991년 10월. 그런데 『말』지 기자 왈, “우리는 수배자가 아닌 이상 본명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필명 사수를 위해 수배를 선택할 수는 없는 법. 40매짜리 원고가 1991년 『말』지 11월호에 실렸다. 영화 관련 매체가 아닌 종합지 성격의 대중매체에 그의 글이 실린 것이다. (월간말.2002.06. 문화인물탐험 영화평론가 정성일

1995년, 월간 《키노》를 창간하였다. 수준 높은 기사와 진지한 비평으로 가득 찬, 오로지 시네필을 위한 잡지였다.[15] 그는 편집장으로서 잡지에 지대한 열정을 쏟았는데, 어떨 땐 정성일 혼자 잡지글을 모두 쓰기도 했을 정도였다. 1990년대, 한국 극장가에 예술영화 붐이 일었을 때 타르코프스키의 작품들과 《키노》는 그 중심에 서있었고, 당시 《키노》가 널리 알린 영화 용어들과 비평들은 한국 시네필들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16] 하지만 현학적이고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서서히 인기를 잃어, 10년도 못 가 폐간되었다. 단 영화 잡지 시장이 완전 몰락하고 웹진만 살아남은 거나 다름 없는 2010년대 기준에서 볼 때, 이 어려운 잡지가 어떻게 10년을 버텼는지 신기할 정도. 지금 봐도 내용이 너무 어렵다

종종 사람들은 키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정신없이 내다 버리듯 개봉하는 영화들 속에서 소비를 멈춰 세우고 사유하게 만드는 방법은 스무 자로 요약될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중략) 당신들이 우리를 있는 힘을 다해 부를 때, 여러분들이 간절하게 소망할 때, 그저 막무가내로 기다리면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때,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들은 결국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은 전진합니다. KINO.2003.07. 결국 다시 만나게 될 우리들은 전진합니다!

2000년 제 1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초대 프로그래머로서, 영화제의 중심 목표인 디지털, 독립영화라는 특성, 현재도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의 기초를 닦아 놓았다. 다만 전주시와의 갈등이 심화되어 결국 사표 내고 본인이 만들다시피 한 영화제와 인연을 끊은 것은 유명한 흑역사. 결국 그 해 정성일이 빠진 영화제는 급하게 치뤄져 휘청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천영화제 사태 이전에 이미 영화제에 정치권이 손대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보여주었던 사례. 2001.02.10.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임에 관한 경과 보고와 공식적 입장입니다.

그 후 2007년에 시네마 디지털 서울 (이른바 CinDi) 이라는 영화제를 세워, 2012년에 CJ에서 재정지원을 중단해 폐지될 때까지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영화제를 꾸려나갔다. 영화제의 기조가 '아시아 신인감독들의 디지털 영화'라는 점에서 위의 전주국제영화제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2010년,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광 3단계' 격언[17]을 실천이라도 하듯, 영화감독으로서 첫 작품을 내놓게 되었다. 바로 《카페 느와르》. 신하균정유미가 출연하지만 상영시간이 3시간을 넘으며, 유럽 영화들에 영향을 받은 실험적인 영화이기에 난해한 면이 있다. 그가 한없이 흠모한다고 말한 장 뤽 고다르도스토옙스키의 영향이 짙은 영화라고 정성일은 애써 주장하지만 영화가 예술영화임을 감안해도 사후세계를 흑백으로 표현하는 등 표현이 진부하고 수준이 낮다는 혹평이 지배적이다. 일류 평론가가 삼류 영화감독 보다도 영화를 훨씬 모른다는 트뤼포의 격언이 증명된 셈. 영화 비평가 이동진은 "영화 물리학 실험"이라는 어정쩡한 말로 선배 평론가를 위한 접대용 별점 3개반을 매기기도 했다.

영화 물리학실험이라는 말은, 정성일이 이 작품을 통해서 영화라는 매체의 물성에 대해 자연과학적인 방식으로 실험하는 듯 치열하게 탐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중략) 제게 '카페 느와르'는 굉장히 흥미진진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버거워하시고 지루해하시니 일반적인 의미와는 좀 다르긴 하지만) 러닝타임 내내 계속 재미를 느끼게 했던 작품이기도 했죠.'카페 느와르'에 대해서 (2011.1.8. 이동진 네이버 블로그)

4.1. FM 정은임의 영화음악

정은임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FM 정은임의 영화음악"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출연해서 영화에 대한 분석을 하는 방송을 했다. 사정상 잠시 그만두었는데,[18] 반년도 안 된 1995년에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바람에 아예 출연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2003년 10월에 다시 프로그램이 부활하자 2004년 1월에, 거의 10년만에 다시 참여하게 되기도 하였다.[19] 이 때의 기억에 대해 그는 매우 긍정적이다. 씨네21.2004.08.24. 당신 없이 누구랑 영화 이야길 하지?

처음에는 딱히 영화에 큰 관심 없이 프로그램을 맡고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프로그램을 잘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뿐인 그저 그런 아나운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정은임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영화를 대하는 성의[20]가 커지는게 보여서 '내 편견이 완전히 틀렸었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도 모자라 그녀에 대한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방송에선 정성일이 나오면 정은임이 거의 말을 못했다. 정성일이 쉬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했기 때문(...) 정은임은 겨우 틈을 비집고 질문 한두 번 하는 정도였다. 자세히 들어보면 정성일이 말하는 도중에, 정은임이 뭔가 말하려고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리면, 정성일은 개의치 않고 다음 문장을 계속 이어간다. 선생님, 제가 말하려는 거 안 느껴지시나요 결국 정은임은 말하는 것을 포기. 정성일이 멘트를 하도 멈추지 않아서 영화광들 중 정성일을 좋아하던 팬들조차 엽서로 불편을 토로했다

정성일 선생님 나오실 때, 좋은 정보나 분석내용을 들으면 적곤 하는데, 하도 말씀이 빠르고 끊기지 않아서 옮겨 적는데 신경쓰느라 제가 간첩이 된 것 같아요. 비밀 암호문을 전달받는 방송을 듣고 적는 것 같다니까요. 왜 이래요 선생님

심지어 2004년에 프로그램이 부활하여 정성일이 돌아온 뒤부터는, 아예 포기한 정은임이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긴 설명이 필요없는 분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다리시던 그 분. 이 분이 나오시는 날엔 저 역시 여러분들과 함께 조용~히(웃음) 이 분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정성일씨 모셨습니다. 그래도 신경쓰지 않고 그 날도 자기 얘기만 했다

물론 그녀도 정성일의 영화에 대한 열정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끝까지 그에게 배려와 호의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4.2. 박찬욱과의 관계

박찬욱과 30년 넘은 친한 형동생 사이이다.[21] 본인도 인간 박찬욱은 낙천적이고, 꾸준함과 근성을 가지고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라며 좋아한다고 말해왔지만, 《공동경비구역 JSA》를 제외하면 박찬욱의 영화에 대해 긍정적이기보다는 비판적인 성향의 평론을 많이 한 평론가이다. 형 나한테 왜 그래요

먼저 그가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평했던 《공동경비구역 JSA》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

" 이 영화는 진정성이 있다. 빨갱이 영화와 반공 영화의 어느 편에서도 서지 않으며, 친절하게 설명하다가 이 우스꽝스러운 영화 속 상황을 깨닫는 그 순간부터 영화 속 장르가 영화 바깥 세상을 공격한다. 영화 속에서 미스터리와 코미디를 넘나들며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하다가, 사건을 파악할 때쯤부터 조마조마하게 몰고 가는 아이러니야말로 우리를 처연하게 만드는 반성적 성찰에로 이끌고 간다. 이런 정치적 아이러니를 연출하는 분단국가의 상황에 제발 이제 종지부를 찍자고 간절하게 호소한다. 나는 이보다 더 맹렬하게 통일을 다그치는 우리 세대의 전쟁영화를 본 적이 없다. " 월간말.2000.10. 맹렬하게 통일을 다그치는 이 순진한 전쟁영화 - 공동경비구역 JSA

그러나 그 이후부턴 신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복수는 나의 것》 비평 - 씨네21.2002.04.09. 그들은 이유없이 죽는다, 코미디다 - 정성일의 <복수는 나의 것> 비판론

" 이 영화 속 모든 것은 항상 그 시점에 정확히 도착하여야만 한다. 인과 관계가 배제되었으나 결과가 원인을 채우려드는, 신비주의가 서술과정을 장악한 코미디. 무정부주의자면서 '민중은 무산계급과 다르지 않으며, 부자들의 돈을 빼앗아 무산계급에게 나눠주자'는, 그래서 자본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을 자기도 모르게 추구하는 반공주의적인 영미(배두나)의 정치적 모순은 이 영화를 정치성과 결별하게 한다. 마지막에 동진(송강호)을 무정부조직이 살해하는 장면에서 선언되는 유죄는 그저 그가 영미를 죽인 부자라서이다. 혁명을 참여하지 않고 그를 방해했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된다는 점에서 스탈린주의가 어슬렁거린다. " → 비판

올드보이》 비평 - theDVD.2005.07. 홍상수와 박찬욱 - 한국이 낯선 작가주의 혹은 한국과 상관없는 작가주의 중 임의로 편집

" 한국 영화지만, 한국이란 국적성을 탈색시키까지 할 정도로 너무나 국적성이 없다. 그 영화 속 일이 일본에서 일어났건 대만에서 일어났건 뭐가 달라지겠나. 민족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미학에 집중한 채 한국이라는 국적 자체가 낯선 작가주의는 결국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나는 영화 마지막에 남녀주인공이 자신들이 어떤 관계인지 알지 못한 상태로 함께 외국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끝난 이유를 이제서야 얼핏 알 것 같다. " → 비판

친절한 금자씨》 비평 - theDVD.2005.09. 정성일이 말하는 박찬욱과 <친절한 금자씨> 중 임의로 편집

" 영화 속 이금자가 복수의 순간 한단계 멈춘 것에서 그가 한단계 점핑한 것을 느꼈다. 이건 그가 악한 것 앞에서 그 실체를 보고 부서져 나가는 대신 반대로 악한 것의 앞에서 선한 것을 생각함으로써 그 안에서 그것을 다시 반복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한 것이다. 여기서 그의 태도는 대중들이 세상 안의 악을 넘어갈 수 있도록 도우려는 선행의 의지가 보인다. "[22](약간의) 칭찬

" 솔직히 말해 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약점도 많고, 진부한 구석도 좀 있다. 마지막 복수장면에서 신파스럽고 쥐어짜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 자신의 테마를 마주할 자신이 없다. 이 영화에서 그는 그의 테마에 대해 빛과 그림자나 공간, 배우의 연기 등 미학적으로만 고민한다. 그는 테마라고 생각되는 것을 그저 소재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테마에 대해서 감독의 일부 의지는 볼 수 있지만 그 영화 자체의 윤리적 태도를 알 수는 없다. 니체가 반문한대로 선한 의지 자체가 선이라 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박찬욱의 것이다. 그의 다음 영화를 기다려 보자. " → 잔인하게 돌려서 비판

심지어 영화적 성향에 대해 "박찬욱과 홍상수는 그렇게 세계 영화들에 대해 뛰어난 교양을 가졌으면서도, 한국 고전영화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홍상수는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꽤 오래하기라도 했지만, 박찬욱은 한국 영화의 연출부나 조감독 경험이 있으면서도 그렇다" 며 비판하기도 했다. 하도 비판을 많이 해서, 박찬욱은 정성일에게 "JSA는 형이 제 영화에 대해 처음으로 긍정적인 글을 써주신 영화에요."라고 비꼬듯이 말하기도 했다.[23]

이후에도 박찬욱이 영화에 대해 언론에 말했던 견해들과 충돌되는 것이 꽤 있었다. 박찬욱이 "영화는 아무리 미디어가 발전되어도 영화관 상영이 중심이어야 하고, 난 영화관 상영을 위한 영화를 계속 만들 것이다"고 한 말에 대해서는 "그가 영화관 상영을 우선으로 고려하여 제작한다는 의견은 존중하지만, 혹여 영화를 영화관에서만 상영되어야 하는 존재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동의할 수 없다. 기술의 발전으로 TV나 컴퓨터 등을 통해 영화를 보게 되는 것, 그리고 이를 목적으로 영화가 제작되는 것 역시 다양성의 측면에서 충분한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한 적도 있다.

또한 정성일이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영화를 반복 관람하는 것에 비해, 박찬욱은 재미가 있건 없건 같은 영화를 두 번 보진 않는다고 한다.처음부터 안 맞았어

그래도 박찬욱에 대한 존중은 남아있어, 어느 인터뷰에서 박찬욱에 대해 "20대 초반 어릴 적부터 봤는데, 평소에 조용하다가도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체계적으로 잘 말하고, 글을 너무 잘 써서 지금의 나보다는 훨씬 훌륭한 영화 평론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하여 놀랐다."

5. 정성일이 지지하는 영화 감독

정성일은 영화를 철저히 감독의 예술로 보며 영화의 작품성을 평가하는 데 매우 까다로운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특정 영화 감독에 대해 쉽사리 호평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일단 기준을 넘어서고, 해당 감독이 꾸준히 발전/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면 열렬히 지지하며 옹호하는 평론을 쓰는 경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대체로 아래 리스트의 감독들이 정성일의 지지를 받고 있다.

데뷔작 《악어》(1996)의 초현실적인 미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정성일은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인 《열혈남아》를 보고 감격하여, 차기작인 《아비정전》을 왕가위 감독이 찍을 때에는 촬영장까지 취재를 다녀올 정도로 초창기부터 왕가위에 대한 깊은 지지를 보냈다. 로드쇼, 키노 등을 통해 왕가위의 영화를 높게 평가하는 평론도 수시로 작성했으며, 여러 차례 인터뷰도 진행했을 정도. 심지어 왕가위 영화 중 가장 범작이라고 평가받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평론을 썼는데, 똑같이 왕가위를 높게 평가했지만 이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비판적인 시선을 보낸 이동진이, "정성일의 글이 자신에게는 설득이 안 되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왕빙
중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정성일은 2003년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왕빙 감독의 《철서구》[24]를 처음 보고 "마음이 충만해졌음"을 느꼈다고 한다. 정성일의 두 번째 영화인 《천당의 밤과 안개》는 왕빙의 2013년 작품인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Til madness do us part)를 제작하는 영화현장을 기록하며 왕빙의 작품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며 부산국제영화제와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정성일은 임권택과 그의 영화세계를 존경하며, 임권택의 영화 102편 전편에 대한 평론집을 냈다.
정성일의 영화인생을 결정지었다고 봐도 무방한 누벨바그 영화의 거장. 저서에서도 고다르의 기관총부대를 자주 언급한다.
정성일은 허우샤오셴이 《비정성시》의 성공 이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했다며 대단히 칭찬하였다.
  • 알베르 세라
스페인 감독으로 미술 비평가 출신이다. 시네필 안내서에 기사에게 경배를이라는 영화를 올린적이 있으며 신작이 나오면 반드시 베스트에 올릴을 정도.

6. 기타

귀여니의 소설을 모두 읽었으며 자칭 팬. 귀여니에대한 글도 여러번 썼고, 직접 만나 인터뷰도 했다.# 그러나 문학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기 보다 청소년들의 문화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취지라고 보는것이 합당하다.

영화 평론으로 유명해 영화 말고는 관심이 없어보이지만, 의외로 음악에대한 조예가 깊다. 조이 디비전, 밥 딜런 [25], 더 클래시, 블론디 같은 록밴드 및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헨리크 구레츠키 등의 현대 음악가도 선호한다.

후일 진중권의 문화다방에서 밝히기를 겨울에는 클래식, 봄과 가을에는 록, 여름에는 재즈를 즐겨 듣는다고 한다.

엽기적인 그녀로 유명한 곽재용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남들이 유치하다고 비웃을지언정 자신의 영화 색채를 밀고 나가는 고집을 존중한다'고 했다.[26][27]

목숨을 건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게 싫다고 해서 그게 없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것만 있다면 얼마나 황량하고 따분하겠는가? 혹은 그게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결국 세상은 싫은 것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곽재용은 싫은 것을 사랑하는 법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여친소’를 보고 난 다음 난 그냥 중얼거렸다. “당신, 싫지만 참 멋있다.” 포스코신문.2004.06.24. 싫은 것을 사랑하는 법

학창시절 주먹 좀 썼다고 한다. 지금도 손에는 굳은살이 박혀있다고.

7. 저서

  • 《한국영화연구 1 : 임권택》 (1987)
  •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1, 2》 (2003) - 임권택, 정성일 공저
  • 《필사의 탐독》
  •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8][29]
  • 번외

8. 연출작 일람

  • 2009년작 카페 느와르 (극영화, 198분) - 2010년 12월 30일 개봉[30]
  • 2015년작 천당의 밤과 안개 (다큐멘터리, 235분) - 2018년 11월 29일 개봉 시리즈 다운로드 링크
  • 2018년작 녹차의 중력 (다큐멘터리, 130분) - 미개봉
  • 2018년작 백두 번째 구름 (다큐멘터리, 166분) - 미개봉[31]

9. 자주 쓰는 말

정성일의 글을 읽다보면 무심코 반복하는 건지 노리고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그만의 기괴한 말들이 있다. 아래는 예시. 더 아시는 분은 추가바람.

  • "결국 실패할 것이다"
  • "~라는 물음과 ~라는 물음은 사실상 같은 말이다"
  • "말하자면 ~인 것이다"
  • "~의 가장 놀라운 재능은 ~라는 것이다"
  • "첫번째 포스트 ~영화이다"
  • "~의 변증법"
  • "좋은 소식. 나쁜 소식"
  • "여기서 함께 끌려들어오는 것은"
  • "이 때 물론 작동을 멈추는 것은"
  • "~이 되기 직전에 멈춘다"
  • "같은 말의 다른 판본."
  • "약간의 우회."
  • "당신은 누구십니까?"
  • "~하시기 바란다."
  • "~하는 중이다"
  • "~라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 "우스꽝스럽다"
  • "역겨운 일이다"
  • "나에게 ~가 허락된다면"
  • "이보다 더 ~한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 "쓰레기"
  • "저주받은 걸작"
  • "~는 우리에게 ~로 도착한 것이다"[32]
  • "망연자실해지고 말았습니다"
  • "저는 지금 -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 "A라는 B. B라는 A(혹은 A')"
  • "지금 우리에게 도착한 이 영화는"
  • "~할 때 나는 ~해진다"
  • "여기에는 ~가 있다."
  • "~로 철수한다 or ~로 철수하기 시작한다"
  • "~라 말한다면 정확하다."[33]
  •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습니다." or "~라고까지 말하고 싶어집니다."
  • "혹은"[34]
  • "~었었습니다." or "~였었습니다." or "~했었습니다."[35]
  • 여고생 인용

이 어휘들은 평소 영화에 대한 말을 할 때도 그대로 쓰인다. 90년대 초, 중반에 출연한 라디오 방송(MBC의 FM영화음악)을 들어보면 위 어휘들을 자주 들을 수 있다. 허문영의 말에 의하면 "문어체는 정성일의 구어체"라고 한다. 평소 말할 때도 글의 문체대로 똑같이 말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방송이나 언론 인터뷰처럼 공적인 관계로 만난 사람들과 대화할 때만 그렇게 하는 것이지, 아예 실생활을 "~합니다."하는 문어체로 이야기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그가 자기 과거를 방송에서 이야기하거나 할 때 "당시 그 어려움에 처해, 저는 그 선배에게 '형, 우리 이제 어떡해요'라고 호소했습니다." 결국 마무리는 또 "~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고, 영화의 대사를 방송에서 읽거나 할 때는 그 인물의 "~했어요."라는 구어체 말투를 충분히 정상적인 톤으로 표현한다. 심지어 본인이 감명깊게 본, 혹은 진짜 좋아하는 영화일 때는 특히 그 인물의 감정에 몰입해서 마치 성우처럼 대사를 표현하기도근데 그게 여배우일 때도 많아서 한다. 이런 걸로 보아 실생활 전체가 문어체라는 게 아니라 공식적인 자리 혹은 공적인 관계에서의 말투만 문어체라는 것으로 보인다.문제는 실생활에도 결국 공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많아서 구어체를 듣기가 어렵다는 점

어느 디시인의 정성일 군함도 비평예상.jpg

9.1. "윤리적", "정치적", "미학적"

이 세가지는 정성일이 영화의 가치를 판단하는 3대 기준이다. 제일 중요한 게 윤리성. 정성일은 항상 도덕과는 구별된다고 하는 "영화의 윤리성"에 대해 강조한다. 영화는 항상 자신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만들어놓은 질문에 어떻게든 대답을 하고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답변이 나오지 않을 때는, 최소한 영화 내에서 답변을 찾기 위해 깊게 고민한 흔적을 보여주거나, 또다른 질문으로 반문하는 정도의 모습(쉽게 말하자면 답변의 다른 방식)을 보여 줘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만 관객들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영화의 윤리성이라 한다. 윤리적이지 않은 영화는 관객이 그냥 보고 아무 변화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상품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한다.그렇다고 미학성, 정치성이 다 딸리면 무시한다. 어느 정도는 되어야 정치적, 미학적으로 훌륭하더라도 윤리적(누누히 말하지만 '도덕과 윤리'의 윤리가 아니다)으로 동의할 수 없는 영화는 그래서 정성일이 항상 비판한다. 왜냐하면 그런 미학성과 정치성의 측면에서 능력이 있는 감독이기 때문에 윤리적 질문에도 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능력이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 미학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영화라도 윤리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면 그 영화를 지지하거나 최소한 그 감독과, 그 영화 만든 사람들을 지지한다. 대표적인 것이 과거 류승완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미학적으로도 문제가 많고[36], 정치성도 보이지 않지만 '영화적 콤플렉스가 없는, 순수한 액션에 대한 열정'으로 나아가는 작품이라며 극찬했다.

즉 정성일 영화평론에 있어 '윤리'라 언급하는 것은 정 요약하자면, 그 영화에 대한 감독과 제작자의 순수성있는 태도나 열정, 의식 정도로 대체해 생각 해 볼 수 있고[37], 자세히 들어가면 '하나의 쇼트는 하나의 우주'라고 말한 정성일의 말대로 영화 속 한 장면 한 장면을 볼 때 그 장면을 자신의 메시지대로 찍기 위해 상세히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경우를 윤리성에 동의한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정성일이 말하는 그 영화의 윤리성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윤리성이 없는 경우에 대해서는 여러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가장 단순한 경우는 영화를 만들기 전에 본인이 표현하고자 한 메시지를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쉽게 꺾는 경우, 즉 흥행을 위해 영화 내용과 상관없는 노출신 같은 장면을 일부러 넣는다거나, 투자사나 제작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처음부터 기존 시나리오를 대폭 바꿔 서사가 흐려질 만큼 수정한다거나, 자본에 간섭받다가 마지 못해 영화의 색깔 자체를 바꿔버릴 만큼 다 바꾼다거나[38], 그 감독이 전에 만든 영화랑 연출이나 서사 패턴이 거의 다 똑같아서 다른게 안 느껴지는 경우 등은 전형적으로 정성일이 지적하는 윤리성이 떨어지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도 레벨은 일반 관객들도 깔 수 있는 정도로 영화 윤리성이 심각한 예이긴 하므로, 정성일은 보통 이런 영화는 평론 자체도 거의 안 했다.[39] 보통은 윤리성이 1%도 안 보이는 영화는 평론하려고도 하지 않으므로, 영화의 윤리성 대부분에는 동의를 못해도 일부에는 약간 동의라도 하는 경우에 그 일부에 대한 애정을 느끼는 마음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을 비판하려고 한다는 쪽. 일단 상업성을 고려한 것 외에 기존 영화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며 다른 변화에 대한 노력 흔적이 전혀 안 보이는 상업영화는 그에게 윤리성에 동의할 수 없는 영화이므로, 그의 평론이 상업영화 위주로[40] 보는 일반 관객들 주류의 성향과 안 맞는 경우가 다수라는 결과는 사실 필연적이다.

10. 인터뷰

[정성일 아카이브] 77개의 본인 인터뷰 리스트

[중등교육] 2005.01. 인터뷰 영화는 저에게 세상과 만나는 방법입니다 -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네21] 2007.04.24. 정윤철의 인터뷰 "감독, 평론가에게 묻다": 정윤철 감독, 평론가 정성일을 만나다

[이동진닷컴] 2007.07.16. 이동진 기자의 인터뷰 정성일 평론가, 영화제 개최에서 감독 데뷔까지

[씨네21] 2009.09.22. 김혜리 기자의 인터뷰 김혜리가 만난 사람 - 영화평론가·영화감독 정성일

[씨네21] 2010.04.25. 16주년 창간 기념 토크쇼 정성일 토크쇼 영상

[F.OUND] 2010.10. 인터뷰: 정성일, 온 마음을 다하다 Part1 Part2

[상상마당] 2013.05.31. 제4회 KT&G 상상마당 어바웃북스 '오늘 꺼내본, 어제의 잡지#

[진중권의 문화다방] 2014.09.25. Part1 Part2

11. 외부링크

정성일 영화감독/영화평론가 아카이브

위키백과: 정성일

정성일이 꼽은 베스트10 리스트 (1975~2016)

정은임의 FM영화음악 출연분 (1992.11.08~2004.01.28)

[네이버영화] 2010.09.23. 정성일이 추천하는 21세기 최고의 영화들

[맥스무비연재] 정성일의 영화순정고백담 (2010.12.31~2011.06.22)

[디씨 브레인갤러리] 2012.02.25. 카페 느와르 GV

[이주연의 영화음악] 정성일이 뽑은 21세기 영화 30편 (2011.10.25~2011.12.06)

[BFI투표] 2012.08.17. 올타임 베스트 10

임권택x102; 정성일, 임권택을 새로 쓰다 (2012.11.05~) - 원래는 임권택x101; 정성일, 임권택을 새로 쓰다였는데 화장의 개봉 이후 102로 숫자가 하나 올랐다.

[KMDb] 2014년 사사로운 영화리스트 10편 (2014.11.21)

실험영화 "파장(Wavelength)"에 대한 정성일 평론가의 오해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탑텐리스트 #


  1. [1] 비공개 트윗이다
  2. [2] 물론 이는 대부분의 평론가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3. [3] 추가로 류승완까지를 꼽을 수 있으나 데뷔 초까지였고 시간이 지난 뒤의 작품들에는 평가가 안 좋을 때가 꽤 있었다. 특히 《피도 눈물도 없이》 때 평가가 가장 나빴다. 대신 '이는 본인의 방향성을 잃은 류승완 잘못이 아니라, 주변 탓이다. 주변에서 (헛바람을 넣어 방향성을 잃고) 망친 것일 것이다. 다음에는 다시 그가 방향을 잡고 돌아오길 기대한다'라며 쉴드를 쳤지만..
  4. [4] 물론 홍상수에 대해서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만큼 센세이셔널한 작품이 더 이상 안 나오는 걸 안타까워하는 측면도 있다. 이는 그 작품이 워낙 특출났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5. [5] 직접 쓴 것은 아니다. 임권택에 관한 책은 인터뷰 모음이고, 김기덕에 관한 책은 편집에 참여했다.
  6. [6] 그의 영화 《오아시스》에 대해, 씬분석을 통해 분석한 긴 내용의 평론을 비판적 논조로 썼던 걸로 유명하다. 씨네21.2002.10.01.341호. 정성일의 <오아시스> 비판론 - 안전한 환상, 혹은 비겁한 위로 원래 긴 편인 정성일 평론 양보다도 훨씬 많던 역대급 평론내용의 양 때문에 한국 영화평론계 레전드 사건 중 하나로 꼽히며, 이창동 영화의 많은 팬들이 정성일에게 등을 돌리게 된 사건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당시 한예종 교수였던 이창동이 이 평론을 읽고 그날 강의를 휴강해버렸다고 한다.
  7. [7] 상술된 대로 거의 대부분의 박찬욱 작품에 대한 평론이 비판적이다.
  8. [8]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에는 다소 비판적이었으나, 마더를 보고는 경지의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고 하였고 기생충에 대해서는 긴 글을 쓰기도 했다.
  9. [9] 당시 프랑스 문화원은 한국에서 공개되기 힘든 프랑스 영화를 틀어주기로 유명했고, 초기 한국 시네마테크와 시네필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김홍준, 듀나가 영향을 받은 세대.
  10. [10] 당시엔 반공 분위기가 강해 사회주의가 조금이라도 보이던 영화들, 특히 고다르처럼 사회주의를 넘어 마오이즘 성향까지 보이는 감독의 작품은 상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는데, 프랑스 문화원은 프랑스 대사관의 관리 하에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상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11. [11] 정성일은 이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12. [12] 일반인들이 볼 때는 너무 당연한 거지만, 고다르가 말하는 영화가 '카메라의 예술'이라는 걸 안다면 이게 얼마나 단순하면서 가장 중요한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다.
  13. [13] 교묘하게도, 클레망은 고다르가 속한 《카예 뒤 시네마》, 즉 누벨바그 멤버들과 사이가 매우 나쁜 감독이었다.
  14. [14] 1980년 5월에 입대하여 1982년말에 제대하여 군생활을 29개월 가량 했다고 한다.
  15. [15] 이 취향이 너무 심해 B급 영화를 무조건 배척하기도 했다고 하지만...매해 8월에는 비디오로 출시한 B급 걸작 추천을 하듯이, 무턱대고 배척하는 게 아니다.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도 추천작으로 소개한 바 있다.
  16. [16] 미장센몽타주라는 단어가 이때 널리 알려졌다.
  17. [17]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며, 두 번째 방법은 영화평을 쓰는 것이고, 세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18. [18] 그 직후 박찬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19. [19] 그러나 2004년에 다시 폐지되게 된다. 또 그로부터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정은임 아나운서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같은 해 7월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생사를 오가는 중태에 빠져 8월에 사망한다.
  20. [20] 프로그램 시작하던 처음에는 그리 깊은 지식이 보이지 않았지만, 점점 영화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해 오는 게 느껴졌고, 스스로 주요 멘트들을 작성해 오면서 자신에게도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게 좋았다고 한다.
  21. [21] 박찬욱, 곽재용, 이준익과는 데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22. [22] 박찬욱과 친절한 금자씨에 대해 5시간의 기나긴 공격적 인터뷰를 마친 뒤에 쓴 내용이다. 친절한 금자씨의 서사, 연출, 인물 등에 대한 허점에 대해 신랄하게 공격하는 질문이 많았고 답변자 박찬욱이 최대한 성실히 답변하려 했지만, 박찬욱의 불쾌감이 약간 느껴지는 답변도 분명하게 섞여 있다. 특히 당시 영화 속 시대 배경인 90년대 상황상 한국에서 주목받던 외국 연예인이 아닌 올리비아 핫세를 금자의 미모에 비유하는 영화 속 한국 언론의 모습에 대해 정성일이 지적했을때는 '그런 건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시대 상황 맞춘다고 뭐 줄리아 로버츠, 그런 식으로 할 거였으면 아예 그냥 하지도 않았을거에요.'라며 짜증섞인 답변을 남겼다. 아무래도 이런 직접 대면 직후의 평론이라 '의도적으로' 이 영화 속 윤리적 측면에서의 긍정적인 부분도 짚어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영화에 대해 정성일이 했던 모든 공식적 평론들을 정리해보면 결국 이 영화에 대한 정성일의 결론은 여전히 명백하게 '이 영화의 윤리성에 동의할 수 없음'이기 때문이다.
  23. [23] 정성일이 쓴 글이기에, 정확히 말하면 박찬욱이 약간 서운하지만, 선배 정성일을 존중한 태도라는 의미였다. 이 내용이 실린 글은 정성일이 박찬욱의 사려깊은 인간적 성품을 칭찬하는 논조의 글이었고, 과거 정성일이 다른 감독의 영화를 신랄하게 비난했다가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그 감독이 다가와서 말도 없이 정성일의 뺨을 폭행하고 욕을 하고 떠났던 경험을 서술한 뒤에 서술한 내용으로 정성일이 박찬욱의 영화를 부정적으로 비평하는 논조를 가져가던 와중, 박찬욱을 우연히 만났을때(순간 상술된 그 감독에게 모욕당한 사건이 생각났다고) 그가 화내지 않고 밝게 웃으며 다가와 JSA라도 저런 평론을 써 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말해줬다며, 정성일이 자신을 비판하는 평론가에게 인간적 예의를 지켜준 박찬욱에게 가슴깊이 진심으로 고마워 한 내용이다. 물론 그후에도 박찬욱 영화에 대한 평론글 논조는 변하지 않고 같았다... 일관성의 최강자...
  24. [24] 러닝타임이 9시간40분(!)인 다큐멘터리이다.
  25. [25] 이 둘의 경우 직접 팬 인증을 했다.
  26. [26] 이런 부분이 정성일이 주장하는 "영화의 윤리성에 해당되는 사례다. 정성일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 제작자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영화세계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영화의 윤리성"이며 그것만을 꾸준히 추구해 나간다면 그것은 정성일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성이 아니어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높게 평가한다는 뜻.
  27. [27] 정성일이 주장하는 윤리성이란것은 흥행을 위해 자신의 세계를 포기하는 일 없이 자신의 세계를 영화 장면 속에 구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일관된 '자기자신에 대한 솔직함'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그런 영화만이 상업영화라 해도 최소한 '상업예술'이라는 말이라도 들을 수 있는 영화라는 것.
  28. [28] 제목을 질 들뢰즈의 글에서 따왔다고 밝혔다.
  29. [29] 질 들뢰즈가 세르쥐 다네에게 써준 《Ciné journal 1981-1986》 의 서문에서 따온것으로 추정된다.
  30. [30] 현재 합법적으로 보는 방법은 전국 도서관의 DVD 뿐이다.
  31. [31] 임권택을 다룬 영화로 녹차의 중력과 한 세트다.
  32. [32] 20세기의 후기 구조주의자 자크 라캉이 작가 에드가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라는 소설을 인용하여 기존 구조주의를 벗어나야 할 근거를 설명할때 쓰던 표현을 정성일이 인용하는 것이다. '편지가 도착한다'는 것과 관련된 개념들을 기호학적으로 인용한다 보면 된다.아 몰라 뭔소리야
  33. [33] 방송할때는 상대가 "~~라는 말씀인가요?"라고 하면 "정확합니다." 라고 말한다.
  34. [34] 또는, 아니면, ~거나 등의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서 문구의 연결이 매우 단조롭게 느껴진다.
  35. [35] 강조를 하고 싶을 때 단순과거가 적당할 시제에 대과거를 즐겨 사용한다.
  36. [36] 류승완 본인이 훗날 언론이나 방송에서도 스스로 몇 번 말했듯, 붐마이크가 나오는 장면도 있었고, 조명의 기본적인 부분들을 조절 못하고 찍은 장면들도 많았다.
  37. [37]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 과거 일부 평론들을 보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특정 영화들의 평론에서 저 부분들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부분의 부족을 비판하며 윤리성에 동의하기 힘들다고 한 적도 있기 때문에.
  38. [38] 만드는 사람 본인의 생각이 바뀌어서 내용이 바뀐 경우는 제외.
  39. [39] 최소한 윤리성이 보이는데 동의할 수 없는 영화를 평론하려 하므로, 다른 영화를 비판하다가 '그래도 이 영화는 그 영화 같은 막장 수준까지는 아니다'라고 하는 예시로 드는 정도에서 그친다.
  40. [40] 사실 어느 나라건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는 관객들에게 접근성의 차이가 많이 나고, 한국은 정식 독립영화관 비율이나 독립영화 제작자들이 안정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적다는 부분에서, (물론 과거보다는 상당히 진보했으나) 아직 미국, 유럽이나 일본처럼 한국보다 영화역사가 더 긴 국가들에 비해서 그 인프라 차이가 더 많이 나는게 사실이다. 일반적인 도시에서는 바쁜 일상 중에 짬이나면 언제라도 멀지 않은 동네 영화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업영화와 달리, 본인이 열심히 찾아다닐 정도가 아니면 많은 독립영화를 장기간 주기적으로 접하는건 쉽지 않다. 심지어 저 나라들도 한국보다 조금 나은거지 많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평론가들도 상업영화 위주로만 돌아가는 영화계 구조는 까도, 상업영화 위주로만 보는 관객들의 성향 자체를 비판할 수도 없으며 실제로 전혀 비판하지 않는데다가, 어쩌다 한명이 그런 행동을 하면 평론가들끼리 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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