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라브리에

Kevin James LaBrie[1]

왼쪽이 라브리에. 젊었을 때는 그래도 제법 샤프했다! 오른쪽은 윈터 로즈의 리더이자 현재는 프로듀서로서 활동하고 있는 리차드 칙키.[2]

로드러너로 들어가는 DT 9집 시점부터 수염을 길렀다.

존 페트루치

존 명

제임스 라브리에

조던 루데스

마이크 맨지니

드림 시어터의 보컬. 조던과 존, 마이크가 실력 떨어지는 찰리를 해고하고 다음 보컬을 구하지 못해 안달하던 중 혜성처럼 나타났다.

참고로 원래 이름은 "케빈 제임스 라브리에"였으나, 안 그래도 존 명존 페트루치, 두 명의 존이 있는데 케빈까지 두 명이 될 수는 없는지라, 제임스 라브리에로 하기로 한다. 200대 1 경쟁의 오디션 합격 후 본인이 개명했다.

전 드러머 였던 마이크 포트노이에 의하면, 한참 보컬리스트를 찾던 1991~1992년에 다른 사람과 계약하기 직전에 그의 오디션 테이프가 도착했는데, 테이프에 동봉됐던 그의 사진을 보며 "노래 잘부르는데 인물도 훤칠한걸 보니 참 재수없는 친구겠다." 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뉴욕에 도착해서 직접 이야기 해보니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죽이 잘맞아 그자리에서 계약했다고 한다.

전성기 시절에는 그야말로 존 앤더슨에 맞먹는 우주구 급의 보이스를 자랑했다. 두 말이 필요없고, Learning To Live 중반의 워어어- 워어어- 워어아아아- 를 들어보라.7분 부터 보면된다. 영상 말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오디션 당시의 녹음 자료가 있는데 그야말로 군더더기가 없는 목소리를 자랑한다. 그리고 3집의 Innocence Faded는 밴드 역사상 최고음을 자랑하는 곡, 이것도 들어볼 만하다. 라이브 앨범인 Live at the Marquee에선 스튜디오 버전을 뛰어넘는 전성기 시절 라브리에의 보컬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사실 이런 음역 자체의 리즈시절은 드림 시어터 재적 당시보다는 오히려 1989년 발표한 윈터 로즈의 유일한 앨범에서 확 나타나는데, 라브리에의 당시 보컬을 득음의 경지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

맑고 높은 음역만이 라브리에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다채로운 분위기 변화를 소화해내는 감정표현력이 특히 인정받았다. 곡의 테마와 소재, 심상이 바뀔 때마다 자연스럽게 맞춰가며 청자를 잡아끄는 라브리에의 보컬은 자칫 기교넘치는 음악 탓에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일 수도 있을 드림 시어터의 음악에 대중성을 부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허나 이 탁월한 목소리는 1994년 그가 식중독에 걸리며 위기를 맞는다. 멕시코 음식을 잘못 먹고 계속 구토를 하는 바람에 안 그래도 과다한 투어로 인해 갈라지던 목이 완전 상해버린 것[3]. 일단 1년 만에 정상적으로 복귀해 콘서트까지 뛰었지만, 그뒤로 목소리가 적잖이 변하고 공연중 삑사리 횟수(...)도 늘었다.

Six Degree Of Inner Turbulence 앨범 발매시기까지 가서야 어느 정도 목소리가 회복이 되는데, 이제 스튜디오 사운드에서는 괜찮지만 콘서트 삑사리가 엄청나게 늘어버렸다. 구토 사건 이후로는 7집 투어 때 즈음이 라브리에의 보컬이 가장 안정적이고 출력이 좋다고 평가받는다.[4] [5][6]

9집, 10집 들어서부터는 아무래도 나이 탓인지 애써 바꾼 창법에도 불구하고 예전 같지가 않다.

그런데 최근 Breaking The Fourth Wall 라이브를 보면 어려운 곡들을 굉장히 잘 소화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오오 회춘.

가끔씩 무식한 인간들 중에 드림 시어터는 보컬이 검열삭제던데 보컬이 하는게 훨씬 나을듯 ㅎㅎ, 키넌이 신임 라브리에 껒여식의 헛소리를 지껄이는 인간이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메이나드 제임스 키넌의 보컬 스타일과 제임스의 스타일부터가 다른데다가, 메이나드도 라이브에선 삑사리 제법 낸다.

어렸을때 교회의 성가대 단원이었다고.

최근 메탈코어를 좋아한다고 한다. 어거스트 번즈 레드, 브링 미 더 호라이즌 등의 밴드에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링크 [7] 그의 솔로 앨범에도 메탈코어나 멜로딕 데스메탈적인 요소가 반영되어 있다.

마이크 포트노이의 밴드 탈퇴 후 가진 인터뷰에서 "포트노이가 떠났는데 슬프지 않나?"라는 질문에 "아니, 나 하나도 안 슬퍼. 그러고 싶지도 않고. 포트노이가 떠났어도 드림 시어터엔 네 명이 남아있음. 우리 창작욕 뻗침.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기대감만 가득함. 님들도 기대하삼."이라는 경쾌한 반응을 보였고, 포트노이가 밴드 홈페이지에서 자기 페이지가 썩둑 잘려나간 것도 있고 해서 "거 되게 섭섭하다. 상처받았다."라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그러자 라브리에는 "그런 의도가 아닙니다. 오해입니다."라고 대응했고, 포트노이는 "나도 오해한 것 같긴 해. 그런데 왜 내가 보낸 멜 안 읽음? ㅜㅜ"라며 답답해했다... 이와 더불어 포럼에서는 "포트노이 당신 나갔으면 자꾸 찌질하게 매달리지 마라. 관심 끊어."라는 친DT파와 "야 그래도 DT 이름도 포트노이 아빠[8]가 지어준 거고, 포트노이한테는 DT의 의미가 남다른데 그렇게 안면몰수하면 그게 사람이냐?"라는 친MP파 식으로 싸움판이 벌어지고... 지금은 당사자들이 더 이상의 관련글을 쓰지 않고 멈춘 상태라서 직접적인 싸움판은 그쳐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벽은 점점 두터워지는 듯.

1. 솔로 활동

1집 - Elements of Persuasion (2005)

2집 - Static Impulse (2010)

3집 - Impermanent Resonance (2013)


  1. [1] 실제 발음은 라브리에가 아니라 '라브리' 라고 발음한다.
  2. [2] 참고로 칙키는 13번째 스튜디오 앨범 Dream theater에서 엔지니어로 참여하며 라브리에와 재회했다.
  3. [3] 항상 성대를 오버클락해야 하는 보컬리스트들에겐 목에 조금만 무리가 가도 치명적이다. 게다가 평소 라브리에 스타일을 생각해보라!
  4. [4] 위에서 언급된 "Learning to Live"의 "워어어~ 워어어~ 워어어~"를 40대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한창 때에 비해 힘은 딸리지만 무리없이 보여준다.
  5. [5] 참고로 5집과 6집 사이에 가진 뉴욕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에서는 이 3단 고음 부분이 도저히 소화가 불가능했는지 첫 두 단계만 올리고 가장 높은 세번째 단계는 음을 확 낮춰서 부른다.
  6. [6] 7집 발매이후 2004년 4월 있었던 서울 내한공연에서는 클라이맥스 부분은 힘들었지만 another day ㅡmetropolis part 1 라던가 보컬 역량 시험하는 곡들을 마구 불러재끼는 등 컨디션을 많이 회복했었다. 그 덕에 서울 내한공연 이후 라이브 앨범으로 나온 도쿄 공연은 셋리스트부터 라브리에 컨디션까지 아무래도 쳐져보인단 평가가 나왔었다(...)
  7. [7] 라브리에가 메탈코어 밴드 이름들을 대고 있는데 존 페트루치는 옆에서 "그거 지어낸거지?"하고있다... 잘 모르는 밴드인가 보다.
  8. [8] 10집 제작 시점에서 그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를 추모하는 곡(The Best of Times)이 앨범에 실리기까지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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