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제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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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필
2. 소개
3. 레슬링 경력
3.1. 정식 데뷔 전
3.2. WWF 데뷔 (1993~1996)
3.3. 인생 최대의 굴욕경기
3.4. WCW와의 단기 계약 (1996~1997)
3.5. WWF로의 복귀 (1997~1999)
3.6. WCW에서 찝찝하게 이룬 메인이벤터의 꿈 (1999~2001)
3.7. TNA 창립, 그리고 장기집권 (2002~2006)
3.8. 선역으로의 컴백 (2007~2009)
3.9. 카렌 앵글과의 염문설, 그리고 잠적 (2009)
3.10. 압박당하던 40대 중년남 (2009~2010)
3.11. 이모탈 (2010~2011)
3.12. 퇴사 그리고 GFW 출범
3.13. 임팩트 레슬링 퇴사, 알콜 중독
3.14. WWE 명예의 전당 헌액
4. 사용하는 기술
5. 트리비아
6. 둘러보기

1. 프로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본명

제프리 레너드 제럿
Jeffrey Leonard Jarrett

링네임

제프 제럿
Jeff Jarrett

별칭

Double J

The Chosen One

The King of the Mountain 산왕

생년월일

1967년 7월 14일

신장

183cm

체중

107kg

출생지

미국 테네시 주 헨더슨빌

피니쉬 무브

스트로크(리버스 러시안 레그스윕[2])

피겨 포 레그락

어쿠스틱 이퀄라이저(기타 샷)

주요 커리어

AAA 메가 챔피언 2회

AWA 남부 태그팀 챔피언 4회

CWA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CWA/AWA 인터내셔널 태그팀 챔피언 2회

NWA 미드 아메리카 헤비웨이트 챔피언 5회

NWA 사이버스페이스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PCW U.S 챔피언 1회

RCW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USWA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USWA 남부 헤비웨이트 챔피언 9회

USWA 통합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US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14회

EWP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W.S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CWA 월드 라이트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WC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3회

WSW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노스 아메리칸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6회

WWF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WWF 유로피언 챔피언 1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4회

WCW U.S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레슬케이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TNA 킹 오브 더 마운틴 챔피언 1회

NWA 킹 오브 더 마운틴 2회 우승 (2004, 2006)

TNA 킹 오브 더 마운틴 우승 (2015)

멤피스 그리즐리스 레슬링 챔피언 1회

테마곡

My World

2. 소개

"Ain’t I great?"

"That's J-E-Double-F, J-A-Double-R, E-Double-T!"

테네시 주 출신, WWEWCW, TNA에서 활동했었던 프로레슬러 및 프로모터. 제법 커리어도 되고, 북미 메이저 단체 월드 챔피언 10회 이상 등극자이기도 한 베테랑 프로레슬러이다.

다만 커리어와는 별개로 찝찝하게 체결된 일부 비즈니스적인 잡음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고, 이 점에 불만을 가진 것도 사실이었다. 이 불만 끝에 WWE를 퇴사한 뒤 NWA의 산하단체로 출발하여 그의 아버지 제리 제럿과 함께 TNA[3]설립하기도 했는데, 이 단체의 명운은 끝내 팬들의 평가가 증명하고 만다.[4] 이후에는 GFW를 출범하며 재도약에 나섰으나 미국 내 주간 방영권을 획득하지 못하고 합병했다 합병이 파기될 즈음 흐지부지해졌다.

따라서 사실상 제럿의 이미지는 시련을 겪고 그 시련에 이어지는 삽질들에 추락한 프로모터.[5] 설립한 단체들의 실패와 알콜 중독까지 겹쳤을 때는 팬들에게 TNA 관련 건으로 조롱받거나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었으며, 지금은 그땐 그랬지 하고 회자되는 까마득한 과거의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레슬링 경력

3.1. 정식 데뷔 전

학창시절에는 농구를 했지만 역시 프로레슬러였던 아버지 제리 제럿의 단체인 CWA에서 간간히 레프리로 활동한 바 있다.

아버지와 토조 야마모토 밑에서 훈련을 받아 1986년 프로레슬러로 데뷔했고, 제리 제럿이 WCCW를 인수하여 CWA와 병합시켜 만든 단체인 USWA에서 활동하면서 사장 아들빨로 10회 헤비웨이트 챔피언 및 15회 태그팀 챔피언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세웠다. 이후로도 쭉 인디에서 활동함은 물론 일본이나 푸에르토 리코 등 해외 이벤트에도 출장하던 제럿은 1993년 WWF에 들어가게 된다.

3.2. WWF 데뷔 (1993~1996)

컨트리 가수인 '더블 J' 기믹으로 등장한 제프 제럿은 1994년 레이저 라몬을 꺾고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에 오르는 등의 활약을 보여줬고, 디젤의 WWF 타이틀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패배했다. 컨트리 가수 지망생인 더 로디(BG 제임스)를 매니저로 대동하고 레이저 라몬과 타이틀을 주거니 받거니하며 3회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을 달성한다.

1995년 7월 PPV인 WWF 인 유어 하우스 2: 더 럼버잭스에서 제럿은 숀 마이클스에게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을 뺏기고 당분간 WWF를 떠나있게 된다. 1996년초 짤막하게 컴백하여 아메드 존슨과 대립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상의 의견차로 인해 WWF를 떠난다.

한 편 1995년 컨트리 가수라는 기믹에 맞게 'With My Baby Tonight'이라는 곡을 발표했었고, 이 곡을 유명 컨트리 밴드인 소여 브라운과 함께 부른 적도 있는데 1996년 제럿이 WWF를 떠난 뒤 로디는 '사실 이 곡을 부른건 자신이고 제럿은 립싱크를 했을 뿐'이라며 비난했다. 로디는 이 곡을 자신의 테마곡으로 사용하면서 또 다른 컨트리 가수인 리얼 더블 J 제시 제임스 기믹으로 활동했지만 동시대의 페이크 디젤, 페이크 레이저 라몬과 더불어 최고의 쓰레기 기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뉴 에이지 아웃로스를 결성하기 전까지 제시 제임스의 암흑기.

3.3. 인생 최대의 굴욕경기

1995년 4월 8일 슈퍼스타즈에서 펼쳐진 경기인데, 당시 제프 제럿은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이었다. 과거 한국의 AFKN에서도 중계되던 슈퍼스타즈는 자버들을 상대하는 경기였는데, 당시 알도 몬토야는 자버는 아니지만 자버급 선수였다. 당시 선역선수는 나중에 입장하는게 관례였으나 위 경기를 보면 몬토야는 선역임에도 먼저 입장하여 대기하는 것만 봐도 당시 클라스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몬토야는 불과 3월 25일 슈퍼스타즈에서도 악역 일본인 레슬러 하쿠시에게 패하는 잡을 해줬으며, 이때도 먼저 입장했었다. 나름 하쿠시와 명승부는 펼쳤으나 항상 끝은 패하는 선수였다. 독특한 복장과 신나는 테마곡과 함께 입장신에서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불꽃 퍼포먼스가 인상적인 선수였으나 승리와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선수였다.[6]

당연히 제럿을 이길꺼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없었는데, 판정논란이 있는 극적인 경기가 펼쳐진다. 마지막에 카운트를 할때 몬토야가 팔을 치켜드는데, 제럿은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하고 여유있게 두 팔을 들어 보이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제럿의 테마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몬토야의 테마곡이 섞여서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심판이 몬토야의 승리를 선언하며 경기장은 뒤집어진다. 신나는 몬토야의 테마곡이 흘러 나오면서 몬토야가 관중석 부근에서 두 팔을 치켜들고 포효하며 관중들은 열광하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나름 감격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몬토야도 나름 레슬러인데 맨날 패하는 잡만 해주니 한번 승리해보고 싶다란 마음이 왜 없겠는가? 헌데 무려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이란 대어를 낚으며 승리하는 극적인 순간이었으니 당시 관중들과 하이파이브도 하며 축하를 받으면서 두 팔을 치켜들고 포효하는 몬토야의 기쁨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비록 제럿에게는 최대의 굴욕경기였을 수 있으나, 몬토야에게는 인생 최고의 경기였다.

몬토야의 신나는 테마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제럿이 링 위에 남아 절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물론 판정논란으로 인해 다음 슈퍼스타즈에서 재대결이 펼쳐지고 제럿이 승리한다.

3.4. WCW와의 단기 계약 (1996~1997)

1996년에는 1년간의 단기 계약을 맺어 WCW에 데뷔한 제프 제럿은 크리스 벤와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포 호스맨에 가입했다. 그리고 딘 말렌코를 꺾고 WCW U.S 챔피언에 오르는 등의 활약을 보여줬지만 계약기간 1년을 정확히 딱 채운 뒤 스티브 맥마이클에게 타이틀을 잃고 계약을 해지했다.

3.5. WWF로의 복귀 (1997~1999)

1997년 WWF와 WCW를 비교하는 세그먼트과 함께 WWF에 다시 돌아온 제럿은 베리 윈햄을 꺾고 공석이었던 NWA 북미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이에 NWA 소속 레슬러들이 주축이 된 짐 코넷의 스테이블 NWA에 가입하여 WWF 방송상에서 NWA 북미 헤비웨이트 타이틀 방어전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입한지 채 2개월 남짓된 1998년 3월 NWA 스테이블을 떠나면서 타이틀을 박탈당했고 이 타이틀은 다시 윈햄에게 돌아갔다.

NWA 스테이블을 떠나 컨트리 가수 기믹으로 돌아온 제럿은 경호원으로 사우던 저스티스[7]를, 매니저이자 여자친구로 데브라 마샬을 대동하고 다녔으며, 이 시기 드디어 자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기타샷을 필살기로 장착하게 된다.

D-X와 대립하기 시작한 제럿은 D-X 소속의 X-PAC(션 월트먼)과 1998년 WWF 섬머슬램(1998)에서 머리카락을 걸고 경기를 펼치지만, 사우던 저스티스가 X-PAC을 기타로 가격하려다가 핫 샷에 맞아 나가떨어지며 링 안에 기타를 놓쳤고 이 기타를 잡은 X-PAC이 역으로 제럿에게 레프리 몰래 기타샷을 날리면서 승리한다. 이 날 머리를 짧게 깎인 뒤 9월 WWF 인 유어 하우스 24: 브레이크다운에서 사우던 저스티스와 함께 다시금 D-X의 제시 제임스, X-PAC, 빌리 건과 3 VS 3 태그 경기를 가지지만 또 패배했고 사우던 저스티스와 결별하게 된다.

머리를 짧게 깎인 이후 그냥 별 특징 없는 깔끔한 외모의 찌질한 악역으로 활동하던 제럿은 이후 오웬 하트와 함께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을 차지해 WWF 레슬매니아 15에서도 타이틀을 방어해냈지만 1999년 5월 중반에 방송된 RAW에서 케인과 X-PAC의 태그팀에게 타이틀을 뺏겼다.

얼마 지나지 않은 5월 23일, PPV인 WWF 오버 디 엣지(1999) 도중 오웬 하트가 등장씬에서의 추락사고로 그만 사망하고 만다. 원래 이 날 오웬 하트는 갓파더를 꺾고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에 오를 예정이었으며, 후일 오웬 하트 몫의 푸쉬까지 몰아받은 제럿은 인터컨티넨탈 타이틀을 따낸 뒤 오웬 하트의 이름을 외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8]

하지만 WWF와 제럿의 계약기간 만료가 가까워옴에도 양측은 만족할만한 상충안을 얻지 못했고, 절친한 친구였던 각본진의 빈스 루소가 WCW로 떠나자 그를 따라 WCW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제럿은 WWF와의 계약 만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여성혐오증이라는 석연찮은 기믹으로 활동하게 된다. 정작 더 캣은 어딜가나 데리고 다녔으면서...여자란 여자들을 모두 피겨 포 레그락으로 공격하던 제럿에게 도전해온 것은 떠오르던 여장부 차이나.

헌데 빈스 루소가 WWF를 떠나기 전 짜놓은 각본에는 제럿이 계약 만료일인 10월 16일까지 인터컨티넨탈 타이틀을 방어하게끔 되어 있었고 다급해진 빈스 맥마흔은 10월 17일 PPV 노 머시에 출장하는 대가로 30만 달러를 달라는 제럿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결국 WWF 노 머시(1999)에서 제럿은 인터컨티넨탈 타이틀을 두고 굿 하우스 키핑 매치[9]차이나와 맞붙어서 벨트샷을 날리고 3카운트를 가져가지만 당시 레프리였던 시어도어 롱이 이를 무효[10]로 선언해 경기가 재개된다. 분노한 제럿은 롱에게 피규어 포 레그락을 시도하지만 이때 차이나의 기타샷이 작렬하며 차이나는 여성 최초의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으로 이름을 올리고, 경기에서 패배한 제럿은 WWF를 떠났다. 노 머시가 끝나고 2일 뒤 제럿에게 돌아온 것은 약속된 30만 달러가 아닌 WWF의 스톡옵션이었다.

3.6. WCW에서 찝찝하게 이룬 메인이벤터의 꿈 (1999~2001)

노 머시 바로 다음 날 나이트로에서 버프 백웰을 공격하며 WCW로의 컴백을 알린 제럿은 더스틴 로즈, 크리스 벤와 등과 대립을 해나가다가 케빈 내쉬, 스캇 홀, 브렛 하트와 함께 nWo 2000을 결성하지만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은 nWo에 대한 관중들의 반감 및 브렛 하트의 부상 등으로 인해 오래 가진 못했다. 이시기에 WCW타이틀을 놓고 시드비시어스와 대립하였다

2000년 4월 WCW는 에릭 비숍빈스 루소에 의해 리부트되어 모든 타이틀이 공석이 됐으며 신진 세력의 모임인 뉴 블러드와 노장들의 모임인 밀리어네어즈 클럽 사이에 대립이 일어났는데 제럿은 뉴 블러드의 편에서 활동했다.

공석이 된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토너먼트에서 결승까지 올라간 제럿은 4월 PPV 스프링 스탬피드에서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를 꺾고 커리어 첫 메인 타이틀을 차지한다. 물론 절친인 빈스 루소의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했긴 하지만 그래도 WWF에서는 만년 미드카더였던 제럿이기에 어느 정도 감회가 남다르긴 했다.

허나 이 타이틀은 불과 8일 후 나이트로에서 DDP에게 뺏기고, 그 다음날 썬더에서 제럿은 핀폴을 가져간 사람이 타이틀을 가져가는 룰의 태그팀 경기로 에릭 비숍과 팀을 이뤄 챔피언인 DDP와 배우 데이비드 아켓의 팀을 상대하게 된다. 그 결과 골때리게도 에릭 비숍에게 스피어를 날리고 핀폴을 얻어낸 아켓이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고 말았다.[11]

5월 PPV 슬램버리에서 아켓, DDP, 제럿 세 명은 타이틀을 두고 레디 투 럼블 철창 경기로 맞붙게 되지만 본업이 프로레슬러가 아닌 아켓은 양념에 가까웠으며 경기는 거의 DDP와 제럿의 대결 위주로 흘러갔다. 하지만 경기 막바지 최상단 철창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켓이 돌연 DDP에게 기타샷을 날리고 제럿의 편으로 돌아서면서 제럿은 약 2주 만에 타이틀을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이런 타이틀을 또 1주일만에 릭 플레어에게 뺏기고, 그렇게 뺏긴 타이틀을 빈스 루소가 강탈해서 다시 제럿한테 돌려주고, 그 타이틀을 케빈 내쉬가 따내서 릭 플레어에게 돌려주고, 그걸 또 제럿이 가져오는 정신없는 스토리가 진행됐다. 이게 다 3주 남짓한 기간 사이 벌어진 일들.

4회째 월드 챔피언이 되어서야 안정적으로 롱런해나가던 제럿은 7월 PPV 배시 앳 더 비치에서 헐크 호건과 맞붙게 된다. 하지만 당시 호건은 지난 활동기간 동안 각본진과의 마찰이 쌓일대로 쌓여있던 상태였고, 루소는 제럿과의 경기에서 무조건 자신이 승리해야한다고 우기는 호건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던 상태. 결국 이 둘의 대립은 당일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표출되고 만다.

링에 올라온 제프 제럿은 바로 링 중앙에 벌러덩 누웠고, 빈스 루소는 어서 핀하라며 호건을 부추킨 뒤에 먹고 떨어지라는 양 타이틀 벨트를 링 안에 던져주고는 퇴장했다. 호건은 마이크를 들고 '이런 쓰레기 같은 일들이 이 회사가 글러먹은 이유다.'라고 한 마디를 남긴 뒤 발로 제럿을 밟아 3카운트를 가져가고, 그대로 퇴장하여 WCW를 떠나게 된다. 이 경기는 정식 타이틀 경기로는 인정되지 않았고, 바로 등장한 부커 T가 대신 제럿을 상대하여 WCW 월드 챔피언에 오른다.

제럿은 부커 T와의 짤막한 대립 후 스팅 , 필시애니멀즈와 대립한후 메인 전선에서 물러나 스캇 스타이너와 연합을 맺고, 릭 플레어가 이끌었던 스테이블 '매그니피선트 세븐'의 일원으로 로즈 부자와 대립하지만 얼마 안 가 WCW의 최후가 찾아왔다.

WWF가 WCW를 인수한 뒤 2001년 3월 26일자 WWF RAW에서 빈스 맥마흔은 WWF와 WCW 영상을 동시에 틀어놓고 자신이 WCW를 사들였다며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마침 WCW측 화면에 나오고 있던 것은 제프 제럿.

지난 1999년 노 머시건으로 인해 빈스와 제럿의 관계는 당연히 불편했고 빈스도 제럿과의 계약을 원하지 않았다. 이 날 빈스는 제럿에 대해 Capital G Double-O Double-N Double-E[12]이라고 비꼬면서 제럿과의 계약 따윈 없음을 시사했다.

3.7. TNA 창립, 그리고 장기집권 (2002~2006)

졸지에 백수가 된 제럿은 호주와 유럽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신생 프로레슬링 단체 WWA의 흥행에 참가해 WWA 월드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의 활동을 보여주다가 제리 제럿과 함께 유한회사 'J 스포츠 &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으며 이를 베이스로 신생 프로레슬링 단체 TNA를 출범시킨다.

TNA 초기에는 전속 계약 선수가 거의 없다시피했기 때문에 당시 TNA의 최고 타이틀이었던 NWA 월드 헤비급 챔피언을 아무한테나 맡기기 뭣한 면이 있었는데 이러한 요인과 사장 파워에 힘입어 제럿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악몽의 장기집권을 시작한다.

시작은 좀체 안 어울리는 선역 기믹으로써 빈스 루소의 도움을 받아 론 킬링스의 NWA 타이틀을 가져왔으나 루소의 도움을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둘의 관계는 틀어지게 됐다. 이에 제럿은 루소가 이끄는 잡탕 악역 스테이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익스트림[13]'과 대립하며 AJ 스타일스와 타이틀을 주거니 받거니 했으며, AJ에게 뺏겼던 타이틀을 다시 찾아와 3타임 NWA 챔프를 기록한 뒤로는 악역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 때까지 제럿은 WCW 시절의 조루 챔프 기록에 한이 맺힌 것인지 단 2타임 챔프로 385일의 타이틀 보유 기간을 기록했다. 이 무렵 제프 제럿은 '킹 오브 더 마운틴(산중왕)'이란 닉네임을 밀었는데,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대도시(WWE)에서 벗어나 깊은 산(TNA) 속의 왕으로 살겠단 뜻을 내포했다는 시각도 있다.

3타임 챔프에 오른 뒤의 제럿은 제프 하디,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몬티 브라운, 케빈 내쉬 등 내로라하는 상대들을 기타샷, 로블로 등 온갖 비겁한 수법으로 모두 무찌르고 근 1년 동안 경이로운 장기집권으로 뭇 레슬링팬들의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 마침 동시대 WWE RAW에서는 트리플 H가 마찬가지로 최악의 타이틀 장기집권을 이루고 있어 둘이 한데 묶여 욕을 얻어먹는 시기였다. 결국 월간 PPV제로 전환된지 근 반 년이 지나서야 AJ에 의해 제럿의 장기집권은 막을 내리는가 싶었지만...

2005년 9월 당시 NWA 타이틀은 레이븐이 쥐고 있었다. TNA 임팩트는 폭스 스포츠 넷에서 스파이크 TV로 채널 이전이 결정된 상태였고 이런 와중에 제럿은 '이왕이면 네임밸류가 있는 내가 메인 타이틀을 쥐고 있는게 시청률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그럴싸한 논리로 TNA도 아닌 인디단체 BCW의 흥행에서 팀 캐나다와 AMW의 도움으로 NWA 타이틀을 가져오는 각본을 결정한다.

바람대로 스파이크 TV로 자리를 옮겨 처음 방영된 임팩트에서 제럿은 한 단체를 대표하는 챔피언으로 보무도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지만 팀 3D와 케빈 내쉬에 의해 수세에 몰리고, 10월 PPV에서 케빈 내쉬와의 타이틀전이 결정된다.

하지만 케빈 내쉬는 PPV 전날 갑자기 심장쪽의 통증을 호송하며 병원에 긴급후송되며 PPV 당일 건틀릿 매치를 통해 제럿과 한 패였던 라이노가 도전자로 결정된다. 이 날 몬스터즈 볼 매치, 건틀릿 매치, 제럿과의 타이틀전까지 총 세 탕을 뛴 라이노는 제럿과의 경기에서까지 승리하며 챔피언에 오르는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2주 후 방영된 임팩트에서 제럿은 패거리들의 도움으로 다시금 타이틀을 가져오는데 성공한다.

한 때 제일 강력한 도전자 중 하나였던 몬티 브라운도 '내 말을 잘 들으면 도전권을 주겠다'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에 넘어가 제럿의 수족으로 열심히 뛰고 있었지만 결국 제프 하디와 경기를 치뤄 진짜 도전권을 얻게 된다. 허나 갑툭튀한 크리스찬 케이지가 몬티 브라운을 꺾고 도전권을 가져가며 제럿에게 큰 위협으로 떠오르고, 2006년 2월 PPV 어게인스트 올 오즈에서 크리스찬은 게일 킴의 방해와 제럿의 갖은 반칙을 이겨내며 NWA 챔피언에 오른다.

3월 PPV 데스티네이션 X에서 스캇 스타이너까지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제럿은 크리스찬, 스팅, 라이노, 사모아 조, AJ 등 선역들과 떼거지 대립을 펼치다가 6월 PPV 슬래미버서리의 메인이벤트로 펼쳐진 킹 오브 더 마운틴 경기에서 레프리 얼 헤브너[14]의 도움으로 비겁하게 타이틀을 되찾으며 6타임 NWA 챔피언을 기록한다.

당시 TNA를 총괄하는 역할로 나오던 짐 코넷은 얼 헤브너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제럿의 타이틀을 박탈했다가 7월 PPV인 빅토리 로드에서 4자간 경기를 통해 결정된 도전자와 경기를 치뤄야한다는 조건하에 타이틀을 돌려주고, 빅토리 로드에서 승리하며 도전자로 지목된 스팅은 8월 PPV 하드 저스티스에서 제럿과 타이틀전을 치르게 된다. 제럿의 코너에는 스타이너, 스팅의 코너에는 크리스찬이 나와 있었지만 경기 후반 갑자기 크리스찬이 스팅을 배신해 기타샷을 날리면서 제럿은 타이틀을 방어해냈다.

이 당시 제럿은 PPV의 메인이벤트를 타이틀전이 아닌 챔피언이 참여한 태그 경기, 도전자 결정전 등으로 메꾸는 변태적인 운영방식으로 챔피언 재임 기간을 늘려나갔는데 9월 PPV 노 서렌더의 메인이벤트도 타이틀이 걸려있지 않은 사모아 조와 제럿 간의 럼버잭 경기였다. 헌데 이 날 럼버잭으로 선정된 사람들은 다름아닌 관중들. 경기 이름부터가 '팬들의 복수'였다. 당연히 링 밖에 나갈 때마다 관중들에게 몰매를 맞았고 마지막에는 사모아 조의 머슬 버스터까지 맞으며 확인사살당한다.

기세가 꺾인 제럿은 10월 PPV 바운드 포 글로리에서 스팅의 스콜피언 데스 락에 탭아웃하며 타이틀을 내준 뒤 당분간 TNA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현재까지는 이것이 그의 마지막 메인 타이틀 보유 기록이며, 4년동안 총 6타임 NWA 챔프에 보유일수 1006일이라는 징하디 징한 이 기록은 앞으로도 팬들에게 종종 회자될 것이다.

3.8. 선역으로의 컴백 (2007~2009)

한편 TNA의 지분이 판다에너지라는 회사에 대부분 넘어가면서 제럿은 졸지에 부사장이 되어버렸고, 각본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워졌다.

당분간 선수로써 활동을 접고 부사장 역할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2007년 4월 임팩트에 모습을 드러내 사모아 조를 도우면서 선역으로 링에 돌아왔고, 4월 PPV 락다운에서의 리썰 락다운 경기에서는 팀 커트 앵글의 마지막 멤버로 참여하여 팀 크리스찬 케이지를 꺾는데 공헌했으며 사모아 조가 TNA 세계 타이틀을 가져갔던 시기 조의 타이틀 방어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기타샷을 얻어맞고 타이틀 획득의 기회를 날린 커트 앵글이 제럿에게 도전해왔으며, 믹 폴리가 특별 집행관으로 참석한 가운데 10월 PPV 바운드 포 글로리에서 제럿과 앵글의 맞대결이 이뤄진다. 경기는 회심의 기타샷을 날린 제럿의 승리로 돌아갔고 커트 앵글은 재대결을 요구하며 믹 폴리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제럿은 12월 PPV인 파이널 레졸루션에서 앵글이 라이노를 상대로 이긴다면 다시금 대결해주겠지만, 패배시 해고당한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앵글은 이에 응하여 라이노에게 승리, 2009년 1월 PPV 제너시스에서 노 DQ 경기로 다시금 제럿과 맞붙게 된다. 경기 막바지 제럿이 핀을 시도했지만 뒤집히면서 패배하고, 앵글은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음에도 집요하게 제럿을 공격하여 들것에 실려나가게 만든다.

약 1개월 후 임팩트에서 컴백한 제럿은 3월 PPV 데스티네이션 X에서 당시 TNA 챔피언이던 스팅과 커트 앵글의 타이틀 매치를 주선하고 자신은 특별 심판으로 경기에 개입했다. 또한 믹 폴리도 특별 집행관으로 이 경기에 개입했으며, 결과는 스팅의 타이틀 방어로 돌아갔다. 이후 믹 폴리가 제럿을 공격하며 둘의 대립관계가 본격화됐고, 5월 PPV 새크리파이스에서 이 둘은 물론이거니와 스팅과 앵글까지 얽혀 네 명이 각자 한 가지씩을 내걸고 경기해 핀을 얻은 사람이 핀을 당한 자의 권리를 가지기로 한다. 제럿은 자신이 가진 TNA의 주식을, 앵글은 메인 이벤트 마피아의 리더 자리를, 스팅은 자신의 은퇴를, 믹 폴리는 자신의 TN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을 걸었다. 결과는 제프 제럿이 탑로프에서 뛰어내리며 커트 앵글에게 스트로크를 시전하나 스팅이 앵글을 핀한다. 믹 폴리와 제프 제럿은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었다.

3.9. 카렌 앵글과의 염문설, 그리고 잠적 (2009)

2008년 암으로 투병하던 제럿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고,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극진히 보살펴왔던 제럿의 애틋한 모습이 팬들의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었지만 2009년 7월 그 모든 이미지가 박살나고 만다.

커트 앵글의 아내 카렌 앵글은 부부간의 불화로 인해 이혼 절차를 준비하고 있던 상태였는데 그 이전부터 제럿과 만남을 가져왔었던 것. 익명을 자처한 TNA의 직원이 버바 더 러브 스폰지 라디오쇼를 통해 제럿과 카렌의 동거 사실을 폭로하면서 이 문제는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당연히 이 소식을 알게 된 앵글은 아무리 이혼 직전의 마누라였다지만 배신감과 분노로 길길이 날뛰었고, 앵글에 대한 죄책감이었는지 제럿은 에릭 영과의 대립이 진행 중이었음에도 모든 권한을 포기한채 TNA에서 돌연 잠수를 타버렸으며 제럿이 에이전트직에 임명했던 BG 제임스와 킵 제임스도 이로 인해 물러나는 등 TNA의 인사면에서도 많은 파장이 있었다.

당시에는 파문이 컸으나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지금은 딕시 카터의 중재 등으로 인해 둘 사이의 감정이 많이 가라앉은 듯한 분위기. 어쨌든 2010년 8월, 카렌은 제럿과 재혼하면서 카렌 제럿이 됐다.

3.10. 압박당하던 40대 중년남 (2009~2010)

2009년 12월, 당시 TNA를 총괄하는 역할로 나오고 있던 믹 폴리는 헐크 호건의 영입설이 확정되면서 자신의 입지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했고, 이에 폐인처럼 지내고 있던 제럿을 찾아가 TNA에 다시 나와줄 것을 요청한다. 이에 12월 17일자 임팩트를 통해 간만에 나타난 제럿은 앵글의 락커룸을 찾아가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사과를 받은 앵글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2010년 1월 4일자 임팩트는 헐크 호건의 데뷔로 인해 성대한 분위기 속에서 치뤄졌으며, 이 날 링 위에 등장한 제럿은 TNA를 설립하던 때를 추억하며 앞으로의 포부를 말하지만 영상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호건은 제럿이 TNA를 바닥까지 끌어내렸다고 비난하며 자신과 딕시 카터가 힘을 합쳐 TNA를 정상으로 이끌겠다고 선언한다.

자신이 만든 TNA를 호건이 좌지우지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어떻게든 방책을 알아보려던 제럿이지만 끝내 지금의 상황에 순응하며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 호건의 파트너인 에릭 비숍은 이런 제럿을 갖은 방법으로 굴려먹는다.

비숍의 명령에 의해 요리, 청소 등의 잡일부터 온갖 불리한 조건의 경기까지 치뤄대던 제럿은 참다 못해 비숍에게 기타샷을 날려버렸다. 이에 열받은 에릭 비숍은 제럿과 믹 폴리의 노 DQ 경기를 부킹시킨 뒤 패배한 쪽이 해고당한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의자 위에 스트로크를 날리며 승리해 TNA에 남게 된 제럿은 호건과는 그럭저럭 괜찮아졌지만 비숍과는 여전히 사이가 나쁜 애매한 관계를 유지해나갔다. 4월 PPV에서는 팀 호건의 일원으로 팀 플레어와 리썰 락다운 경기로 맞붙어 승리한다.

스팅과 호건의 대립에 끼어든 제럿은 5월 PPV 새크리파이스에서 스팅을 상대하게 되지만 경기가 시작되기 전 스팅에게 야구배트로 무지막지하게 구타당한 뒤 경기 시작 3초만에 핀을 내주며 패배했고, 1개월 정도 공백을 가진 뒤 케빈 내쉬 & 스팅의 연합과 대립을 이어나간다.

제럿은 자신을 도와줄 지원군으로 사모아 조를 선택했고, 처음에 이를 거부하던 조는 계속되는 제럿의 도움에 의해 마음을 돌려 제럿을 돕기로 한다.

10월 PPV 바운드 포 글로리에서 제럿과 조는 내쉬, 스팅, 디엔젤로 디네로와의 2 VS 3 핸디캡 태그 경기를 가진다. 하지만 경기 막바지 제럿은 돌연 조의 태그를 거부하면서 그대로 퇴장했고 홀로 남은 조는 세 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뒤 마무리로 내쉬의 잭나이프 파워 밤을 맞고 패배한다.

이 날 메인 이벤트로 치뤄진 커트 앵글 VS 미스터 앤더슨 VS 제프 하디의 3자간 경기에서는 막판에 호건과 비숍이 난입해 제프 하디를 도와주면서 RVD의 각본상 부상으로 인해 공석이었던 TN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을 제프 하디가 가져가게 됐는데 여기에 제럿과 어비스까지 가세하면서 호건을 중심으로 한 악역 스테이블 이모탈이 출범하게 된다.

3.11. 이모탈[15] (2010~2011)

이모탈의 일원이 되면서 본연의 악역으로 돌아간 제럿은 스스로를 MMA 전문가라 칭하면서 애들을 상대로 한 서브미션 강습 영상을 내보내거나 10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MMA 챌린지를 여는 등의 활동을 열었다.

앞서 배신당한 바 있던 조가 제럿에게 도전 의사를 밝혀서 11월 터닝 포인트에서 맞붙었지만 심판이 기절한 사이 제럿이 통파로 조의 목을 졸라 반쯤 실신 상태로 만들면서 승리했고, 12월 파이널 레졸루션에서 서브미션 경기로 다시금 맞붙었지만 이번에는 제럿의 경호원인 거너와 머피의 난입에 힘입어 앵클락으로 조를 탭아웃시킨다.

비겁한 수법으로 조까지 제압한 제럿의 기세는 점점 높아져갔고 만만한 관중들을 상대로 서브미션을 걸어 탭아웃시키는 MMA 챌린지도 계속되어나갔다. 12월 23일자 임팩트에서는 어메이징 레드를 불러내 앵클락으로 탭아웃시켰고, 레드는 다음주 동생을 데려오겠다고 한다.

12월 30일자 임팩트에서 168cm/68kg의 레드가 데려온 동생은 198cm/114kg의 거한 크림즌(타미 머서).[16] 일방적으로 몰리던 제럿은 앵클 락에 걸려 탭아웃할 위기에 처하지만 거너와 머피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빠져나오고, 기타샷을 날리려 했지만 레드가 기타를 뺏으며 저지하자 상금 10만 달러를 챙겨 황급히 도망간다.

이 와중에 커트 앵글이 MMA룰로 제럿과의 대결을 제안, 2011년 1월 PPV 제네시스에서 MMA룰 시범 경기로 맞붙었으나 3라운드에서 앵글의 출혈로 인해 무승부로 끝난다.

경기가 찝찝하게 끝났으니만큼 이후 임팩트에서 앵글은 제대로 된 승부를 원하며 제럿을 공격하려 했지만 카렌 제럿까지 등장하면서 제럿의 편을 들어줬고, 둘은 전형적인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담은 영상까지 내보내며 앵글의 속을 뒤집어놨다.[17]

다음달 PPV인 어게인스트 올 오즈에서 제럿은 승리의 대가로 키라와 코디의 친권을 요구하는 앵글에 맞서 결혼식에 들러리로 참가하라는 조건을 내걸고 다시 맞붙었으며, 선셋 플립 후 앵클락을 시도하는 앵글을 그대로 깔고 앉아 핀폴을 챙기면서 승리했다. 결국 조건대로 앵글은 둘의 결혼식에 들러리로 참가해야할 판이지만 들러리는 커녕 깽판만 치면서 대립의 장기화 조짐을 보여줬고[18] 2개월 후 PPV 락다운에서 울트라 메일 룰스라는 3판 2선승제 철창경기로 앵글과 맞붙어 또다시 비열하게 승리했으나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그렇게 기세 좋게 앞서나가던 제럿이었으나 이후 PPV에서의 혼성 태그팀 경기, TNA 타이틀 도전자 결정전에서 연거푸 앵글에게 패하면서 세력이 꺾였고, 이후 2011년 6월, TNA와 업무 제휴를 맺고 있는 멕시코 단체 AAA의 '트리플매니아 19'에 어비스, 미스터 앤더슨 등의 다른 로스터와 함께 참가하여 AAA 헤비웨이트 챔피언인 엘 조로에게 도전해 죽도를 이용한 스트로크로 승리하며 최초의 미국인 AAA 챔피언이 되었다.

각본상 멕시코 여행에서 돌아온 제럿은 이모탈 멤버들에게 선물을 가져왔다면서 AAA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보여주고 환대를 받았다. 또한 멕시코 사람들을 링 위에 불러놓고 '누가 멕시코의 왕이냐?'는 질문을 날린 뒤 '게레로'라는 답변이 나오자 무자비하게 구타한다던가, 멕시칸 아메리카와 손을 잡는 등 야매 멕시칸 기믹으로 전환.

이런 악행을 일삼던 중 돌아온 제프 하디와 간만에 대립을 맺어 해고 조건을 걸고 파이널 레졸루션에서 철창 경기를 치뤘으나, 카렌의 적극적인 도움이 스팅에 의해 모두 무위로 돌아가면서 트위스트 오브 페이트를 맞고 패배했다. 이후 임팩트에서 부부가 모두 해고. 제럿은 당분간 인도쪽의 프로젝트에 집중할 것이라 하며, 카렌은 발목 부상을 완치시키기 위해 요양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3.12. 퇴사 그리고 GFW 출범

은근슬쩍 TNA에 돌아와 백스테이지 업무 및 각본 총괄을 맡아왔었지만 2013년 12월 TNA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2014년 4월 7일 제프 제럿은 새로운 미국 메이저 프로레슬링 단체인 글로벌 포스 레슬링의 출범을 발표한다.

이후 새로운 단체를 홍보하기 위해 8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2014년 8월 G1 그랑프리 AJ 스타일스타나하시 히로시의 경기에 등장했다. 막판 타나하시가 스타일스를 롤업으로 이기면서 승리를 따내자, 분노한 불릿 클럽 멤버들이 일제히 난입해 타나하시를 집단구타했다. 결국 스타일스 크러쉬까지 얻어맞고 타나하시가 실신하자, TNA에서의 스타일스의 숙적이었던 제프 제럿이 난입해 불릿 클럽 멤버들을 링 밖으로 몰아내고 그의 상징인 기타를 꺼내들었다.[19] 그리고 타나하시에게 기타 샷을 날렸다. 이후 두 사람은 격하게 포옹을 하고 제럿이 웃통을 까자 안에 불릿 클럽 티셔츠를 입고 있는 충격적인 광경을 연출했다. 스테이블에 가입까지 한 걸로 봐선 좀 더 길게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그의 모습을 볼수 있을듯 하다.

또한 안토니오 이노키가 개최하는 평양 흥행에도 참가한다고 한다.

2015년 6월 24일 갑자기 자신이 13년전에 창설했던 TNA 무대에 등장한다. 결국 두 단체는 경쟁관계에서 제휴관계로 태세를 전환한다. 2015년 6월 27일 제4대 TNA 명예의 전당 헌액자가 된다. 그리고 양 당체의 성장과 원상태 복구를 위해 TNA 인베이젼 스토리를 진행했는데 본인이 먼저 슬래미버서리 13에 참가해 초대 TNA 킹 오브 더 마운틴 챔피언쉽에 올랐고, 그 밖에 GFW 소속의 선수들을 데리고, 전혀 긴장감 안드는 스토리 라인을 진행했다.

3.13. 임팩트 레슬링 퇴사, 알콜 중독

2017년 딕시와의 소유권 분쟁 끝에 임팩트 레슬링을 가져온 앤썸 스포츠 & 엔터테인먼트 측이 임팩트 레슬링과 GFW를 합병시키며 제럿을 컨설턴트직으로 앉히게 된다. 그러나 제럿이 자기 라인을 대거 꽂아넣자 임팩트 레슬링 임원진 중 상당수가 이에 반발하여 나가버렸다. 루머에 따르면 임팩트 레슬링이 매트 하디와 브로큰 기믹을 놓고 소송까지 가게 만든 것도 제럿이 에드 노드홀름[20]에게 해준 조언 때문이었는데, 매트 하디의 절친이기도 했던 그레고리 헴즈는 임팩트 레슬링이 제럿 라인으로 물갈이되고, 그 제럿이 자신의 절친을 고생하게 만든 원인까지 되자 견디지 못하고 임팩트 레슬링을 퇴사했다.

또한 애초에 딕시와 처음 분쟁을 빚었던 빌리 코건은 딕시와 법정 배틀을 벌이던 앤썸을 도와주되, 누구한테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단체를 갖겠다는 의지로 임팩트 레슬링 복귀 대신 NWA 인수를 추진했고 앤썸은 빌리 코건의 NWA 인수 과정에 도움을 주며 앞으로 임팩트 레슬링과 NWA 간에 교류 관계를 맺는 것을 추진했다. 빌리 코건 라인이라 할 수 있는 데이브 라가나는 제프 제럿의 텃세에 지쳐 임팩트 레슬링을 떠나 NWA로 갔지만, 제프 제럿은 이 임팩트 레슬링과 NWA간의 교류마저도 반대하고 나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협업 단체 확장에 제럿의 인맥을 이용하려던 앤썸은 미련없이 제럿을 내쳐버린다.

GFW는 임팩트 레슬링과 합병되며 사라지고, 그 합병된 단체에 기껏 취업했지만 온갖 트롤을 일삼다가 잘려버리고, 여기에 알콜 중독까지 얻은 제럿은 그야말로 폐인과 같은 삶을 살게 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끝까지 원수로 남아 있던 WWE의 지원하에 재활 센터에서 알콜 중독 치료에 들어가 2017년 12월 퇴원하게 되면서 GFW도 부활한다.

3.14. WWE 명예의 전당 헌액

그간 마지막 안티 WWE의 상징격인 선수였으나, 2018년 2월 19일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발표되었다. 스팅, 커트 앵글, 더들리 보이즈에 이어 4번째로 TNA 명예의 전당과 WWE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된 인물이 되었다. 아마도 WWE에게 알콜 중독 치료를 지원받은 것을 계기로 그동안의 불화를 털어버리게 된 것 같다. 임팩트 레슬링에서 내쳐져서 이제 돌아갈 곳이 없기도 하고... 이 무렵 인터뷰를 통해 과거 빈스와의 갈등을 두고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만 했다'라고 발언하는 등 확실히 감정을 털어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간 마음 고생이 많긴 했는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스팅, 사모아 조, AJ 스타일스 등 안티 WWE라고 불리던 선수들과 WWE와 관계가 안좋다고 알려져있던 브루노 삼마르티노얼티밋 워리어에 이어 제프 제럿마저 WWE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되면서 트리플 H의 포용력이 다시 한 번 조명받고 있다.[21]

TLC 2018이 끝나고 WWE의 유튜브 채널에 짧은 인터뷰가 올라오면서 뭔가를 암시하더니 로얄럼블 2019에 깜짝 등장. 무려 2번으로 기타맨 기믹 후배인 엘라이어스(1번)과 세그먼트를 가지기도 했으나 시작한지 1분 18초만에 탈락하셨다. 하루 후에 백스테이지 프로듀서로 WWE와 공식 계약을 한다. 이날 RAW에서 각본진 중역인 '로드 독' 제시 제임스[22]와 함께 공연을 하다가 엘라이어스의 기타샷을 맞았다. 그리고 로얄럼블 다음 날 및 그 다음 주 RAW에 등장하여 앨라이어스와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4. 사용하는 기술

아주 가끔 선역을 할 때도 있었지만 웬만하면 악역으로 활동했으며, 그래서 시원시원한 기술보다는 릭 플레어의 악역 운영처럼 무릎 부위를 집중 공격하는 야비한 기술들이 위주가 된다.

피겨 포 레그락을 즐겨 사용하지만 MMA 전문가 기믹 이후로는 피규어 포 레그락 대신 앵클 락을 남발하는 분위기. 덧붙여서 위의 영상에도 나오지만 자신의 앵클 락은 켄 샴락에게 전수받은 것으로 커트 앵글 따위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피규어 포 레그락도 피규어 포 레그락이지만 릭 플레어 특유의 걸음걸이까지 따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릭과 많이 비교되기도 했다.

엔지그리드롭킥 등의 기술도 즐겨 사용한다. 특히 드롭킥의 경우 젊은 선수들 못지 않게 깔끔하게 사용하는 편.

그를 대표하는 피니시 스트로크는 상대와 나란히 선 상태에서 양손으로 각각 한 팔과 머리를 잡고 앞으로 쓰러지며 내리찍는 포워드 러시안 레그스윕으로, 제일 임팩트가 약한 피니시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기술 중 하나이다. 미즈의 스컬 크러싱 피날레와 사실상 같은 기술.

실제로도 쌩으로 써서 핀을 가져오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으며 기타나 의자 위에 사용한다던가, 2단 로프 위에서 뛰어내리며 사용한다던가, 2연속 3연속으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배리에이션이 가해져야 간신히 핀을 가져올 수 있는 기술. TNA가 슈퍼액션에서 방송되던 시절 전용준이 끔찍히 싫어했던 기술이기도 하다.

사실 진정한 피니쉬 무브는 통기타로 냅다 상대의 머리 혹은 몸통을 후려치는 어쿠스틱 이퀄라이저.[23] 대신 웬만한 일반 경기에서는 반칙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주로 심판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가 있거나 기절한 틈을 타서 사용한다. 케빈 내쉬와의 경기에서 기타샷을 사용시 타이틀을 박탈당한다는 조건이 붙자 첼로를 가지고 나온 적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전형적인 언더독 악역에 맞는 기믹과 경기운영에 최적화 되어있고 지저분한 난전에 능한 더티 플레이어 타입이다. TNA에서 이짓을 너무 심하게 하긴 했지만. WWE 현역 선수 중에선 미즈가 제럿의 스타일에 가장 근접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력이 그만도 못해서 그렇지

5. 트리비아

  • 하드코어 할리가 자서전에서 대놓고 싫어하는 레슬러중 한명으로 꼽을 정도이며 레슬링 업계에서 대놓고 윗사람들에게 정치질 하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자신의 아버지의 후광을 믿고 프리마돈나 처럼 굴었다고 대놓고 깐다.
  • 좋든 나쁘든 위상이 높고 실전에 강한 상대방 기분을 잘 맞춰주는건지 인간관계 좁기로 유명하고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약하면 괴롭히고 주먹 날리는걸로 악명이 높은 스캇 스타이너가 유일하게 동등한 친구로 인정해주는 인물. 이것만으로도 제럿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대목. 스타이너의 트윗에서도 함께 휴가나간 사진이 올라가기도 했다.

6. 둘러보기

2015년 TNA 명예의 전당 헌액자

2018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역대 바운드 포 글로리 메인이벤트[★]

2005.10.23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제프 제럿 vs 라이노

2006.10.22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제프 제럿 vs 스팅

북미 메이저 단체 세계 챔피언 10회 이상 등극자

링네임
(총 합계)

이력

릭 플레어
(20회)

(※ WWE 기준 16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9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7회
WCW 인터내셔널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WWF 챔피언 2회

(※ WWE 기준)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8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WWF 챔피언 2회

존 시나
(16회)

WWE 챔피언 13회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트리플 H
(14회)

WWE 챔피언 9회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5회

스팅
(14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TN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4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WCW 인터내셔널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랜디 오턴
(13회)

WWE 챔피언 9회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4회

헐크 호건
(12회)

WWF 챔피언 6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커트 앵글
(12회)

TN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WWE 챔피언 4회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에지
(11회)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7회
WWE 챔피언 4회

더 락
(10회)

WWE 챔피언 8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제프 제럿
(10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4회

번 가니에
(10회)

A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0회

11명


  1. [1] 우리나라의 악덕기업 콜트 기타를 들고 있는 모습.
  2. [2] 페이스 버스터 류로 분류된다.
  3. [3] Total Nonstop Action의 약자.
  4. [4] 회사의 통합 과정에서 사명을 TNA 엔터테이먼트 LLC로 변경하고 이 과정에서 부사장이었던 제럿은 회사를 완전히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관련 주식도 판다 에너지 인터네셔널에 모 매각하여 판다 에너지의 자회사 형식으로 존재, 실질적인 소유자는 판다 에너지의 사장인 제임스 카터이며 사장으로 자신의 딸인 딕시 카터를 임명해 운영하게 했다.
  5. [5] 단체의 설립자가 무적 선역 챔피언으로 군림했었다(...).
  6. [6] 사실 알도 몬토야는 ECW에서 저스틴 크레더블로 활동하고 ECW 챔피언도 지냈던 선수다.
  7. [7] 이 이름보다는 갓윈 형제로 더 잘 알려진 태그팀이다.
  8. [8] 20여년이 지난 2018년에도 제프 제럿은 WWF에서의 날들을 회상하며 오웬 하트를 떠올리고 눈물을 흘린다. 영상
  9. [9] 평범한 하드코어 경기지만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가정용품으로 제한된다.
  10. [10] 가정용품이 아닌 타이틀 벨트로 공격했다는 이유.
  11. [11] 당시 아켓이 주연을 맡았으며 WCW를 무대로 촬영한 영화인 레디 투 럼블의 홍보를 위해서였을 테지만 한 단체를 대표하는 타이틀의 가치를 깎아먹는 영 좋지 않은 선택으로 종종 회자된다.
  12. [12] 제럿이 더블 J 시절 자신을 소개할 때 쓰던 멘트에서 따온 것. 원본은 "That's J-E-Double-F, J-A-Double-R, E-Double-T!". 빈스의 멘트는 Gone, 즉 꺼지라는 소리.
  13. [13] Sports Entertainment Xtreme, 약자는 SEX.
  14. [14] 몬트리올 스크류잡사건 당시의 심판이다.
  15. [15] 'Immortal' 즉 불멸자들이란 의미.
  16. [16] 물론 각본상 동생이지만 실제로도 나이가 더 어리다. 레드는 82년생, 크림즌은 85년생.
  17. [17] 앵글과 카렌이 이혼했을 때 양육권은 카렌이 가져갔다. 즉, 앵글의 피가 이어진 아이들인 키라와 코디가 제럿을 아버지라 부르며 따르고 있는 상황.
  18. [18] 위에도 언급해놨지만 둘은 이미 2010년 8월 결혼했다. 여기서의 결혼식은 각본상의 연출.
  19. [19] 기타 뒷면에 불릿 클럽 로고를 그려놓아서 눈썰미가 좋은 팬이라면 사태가 잘못 돌아간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20. [20] 앤썸 직원이자 현 임팩트 레슬링의 사장.
  21. [21] 물론 스팅은 트리플 H보다는 빈스 맥맨과 친했고 빈스가 계속 영입을 노리던 선수였다.
  22. [22] 과거 WWF 시절에 활동할 때도 제시 제임스가 제럿의 매니저 역할을 맡은 바 있다.
  23. [23] 당연한 이야기지만 제프 제럿이 반칙용으로 사용하는 통기타는 상대를 때려도 부상없이 잘 부서지도록 미리 개조가 된 물건이다. 실제 통기타 몸통속이 텅 비어 있어 강도가 약할것 같지만 의외로 단단해 위의 영상처럼 깔끔하게 부수는게 매우 어렵고, 나무가 날카롭게 박살나 상대를 다치게 만들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 하지만 이렇게 신경써서 만든 반칙용 기타였어도 WWF 시절 엑스팍이 이걸 맞다가 운나쁘게도 파편조각이 눈쪽으로 가는 바람에 하마터먼 실명할뻔하기도 했다.
  24. [★] 24.1 오른쪽이 도전자, 밑줄이 승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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