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경비단

수도방위사령부의 예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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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공통의 직할부대(본부근무대, 의무근무대 등)는 제외.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해당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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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경비단
第1警備團
1st Security Group[1]

부대훈

행동으로 충성하자

약칭

1경비단

별칭

추가바람

창설일

1996년 12월 17일

단장

대령

상급부대

수도방위사령부

위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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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예하부대
4. 직할대
4.1. 1대대 (제30경비대대 청룡)
4.2. 2대대 (제33경비대대 백호)
5. 과거부대
6. 출신인물
6.1. 경비단장/장교
6.2. 병
7. 기타
7.1. 근무환경
7.2. 선발
7.3. 경비단가
8. 사건사고
9. 여담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의 리멤버 1.21 훈련 모습

1. 개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을 근거지로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급 부대. 1996년 12월 17일 창설되었으며, 청와대 외곽 및 북악산인왕산 일부 경비를 담당한다.

2. 상세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직할 급 경계부대로 청와대 외곽 및 북악산인왕산 일부 경비를 담당한다. 즉 전방 GOP, GP와 비슷하게 서울 도심 속 주둔지와 산 속 근무지를 4개월 단위로 교대[2]하며 근무한다. 인왕산이나 북악산에서 종종 보이는 군인들은 대부분 이 부대 소속 장병들이다.

실제로 격오지 대우를 받아 과자, 컵라면 등의 특수근무자 증식도 나온다. 과거에는 특식으로 크림빵도 나오고 추가수당도 있었으나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폐지되고 2020년 현재까지 복구되지 않았다. 교대하는 단위는 두 대대인 청룡대대와 백호대대로, 이에 대해서는 아래 역사 문단 참고. 수방사 특성상 인력난에 시달리는 만큼 비번 없는건 물론이고 청와대 근위부대라는 명칭에 걸맞는 각종 작전 및 훈련을 특정지 근무와 병행해서 진행한다! 잠이 부족하다 게다가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시위[3]라도 벌어지면 증가초소까지 투입되므로 업무강도가 배로 늘어난다.

수방사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부대들 중 하나고, 심지어 나이 좀 있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수방사 = 제1경비단 병력 + 그 외 나머지 기타 등등' 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애초에 수방사 창설 목적이 5.16 군사정변 이후 정변 세력의 보호를 위한 친위대 성격이 강했는데 그 핵심이 1경비단의 전신인 30, 33대대였기 때문에 예전에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제1방공여단제1113공병단이 편입되기 전까지는 수방사 직할부대 중에 경비단과 비교할 만한 사이즈의 부대가 기껏해야 군사경찰단 말고는 없었기도 하다.

5.16 군사정변 때 서울로 진입한 두 개의 수도권 지역 향토예비사단이었던 30사단(당시 서울지역 향토예비사단. 지금은 서울 인근의 제30기계화보병사단)과 33사단(현 제17보병사단. 당시 경기 서부(인천, 영등포 포함) 지역 향토예비사단)의 병력이다. 5.16 쿠데타 성공 이후에 이 두 개 사단에서 각각 1개 대대가 서울에 남아 그것이 30대대와 33대대라고 불리다가 30경비단과 33경비단이 되었다. 즉 수방사 창립 멤버다. 쿠데타 이후 30단은 경복궁[4], 33단은 현 1경비단 주둔지 위치에 주둔했다.

12.12 군사반란의 핵심 병력으로 제30경비단장 장세동 보병 대령과 제33경비단장 김진영 보병 대령은 당시 직속상관이었던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을 배반하고 쿠데타의 주축이 되었다. 전투병력을 모두 잃은 장태완 장군은 눈물을 머금고 저항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이 현재의 제1경비단으로 통합된 것은 1996년으로, 군사정권 잔재 청산 겸 조직의 통합이 목적이었다. 통합 후 현재의 위치인 구 33단 주둔지에 자리잡았으며, (참고) 30단은 청룡대대, 33단은 백호대대로 격하되며 병력은 2/3로 축소되었다. 더불어 당시까지 경복궁 내에 함께 주둔했던 [[대통령경호처/지원부대|대통령경호로여서 청룡대대는 북악산, 백호대대는 인왕산에 한번에 2개 중대씩을 투입하여 6주마다 교대를 실시하며 전담 방어했으나 2001년부터 대대 단위로 부대교대가 실시되어 각 대대가 전 구역을 다 담당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참 아이러니하게도, 명색이 대통령을 지키는 경비부대인데 5.16 군사정변12.12 군사반란이라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양대 쿠데타 모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부대, 혹은 그 후신인 셈이다.

이러다 보니 권력의 핵심 중 핵심에 해당하는 부대라, 전직 대통령인 전두환노태우, 그 외에 이름을 대면 알만한 군사정권 시절의 군인 출신 정치인 상당수가 30단 또는 33단의 단장에 취임했었다.[5] 이 흔적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아서 1경비단장(대령)은 유사한 55경비단장과 함께 육군 보병 장교의 핵심 진급 코스 중 하나다.[6] 단가나 영내 여기저기 붙어있는 슬로건에도 근위부대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2009년도 노무현 대통령 경복궁 앞 추모식이 있었을 때에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비상출동 대기한적이 있다. 총기휴대는 없었던것으로 기억.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에서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에 따르면 계엄령의 첫 스타트를 끊는 부대로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물론 1경비단 장병들은 이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임무가 청와대 지키는 거니까, 명령 받아서 출동하고서도 그게 계엄령 시작인 줄 모를 거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를 떠나 북악산을 시민들에게 돌려준다고 하니 경비단이 없어지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점이 명확하지 않을 뿐더러, 청와대나 광화문이나 서울 한가운데 있는 건 똑같다는 점, 그리고 유사시에 경비단의 역할 등을 생각하면 경호부대는 몰라도 경비단 자체는 존속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광화문 이전이 공수표가 되면서 경비단 역시 존속이 확정되었다.

3. 예하부대

4. 직할대

  • 전투지원중대

4.1. 1대대 (제30경비대대 청룡)

청룡대대는 북악산 경비를 담당한다.

4.2. 2대대 (제33경비대대 백호)

백호대대는 인왕산 경비를 담당한다.

5. 과거부대

6. 출신인물

6.1. 경비단장/장교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경비단장.

역대 경비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前 경비단장

00대

김용현

예) 중장

육사 38기

수도방위사령관

00대

구홍모

예) 중장

육사 40기

수도방위사령관

6.2. 병

1경비단 백호대대의 전신인 33경비단 출신이다. 경북고등학교 동기들의 증언에 따르면, 신교대에서 정말 열심히 훈련을 받아 1등으로 수료하여 신교대장이 "특별히 복무하고 싶은 부대가 있나?" 하고 묻자, 훗날 아내가 되는 당시 여자친구가 다니던 이화여자대학교 근처에서 복무하고 싶다고 솔직히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대에서 정말 가까운 33경비단에 배치받았다고. 당시 교통편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걷는 시간 포함 대중교통으로 20~30분 거리. 우연히도 유승민이 복무하던 당시가 바로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 병력의 주축이었다. 물론 당시 유승민 본인은 일개 병사였으니 영향 따위는 전혀 없었다.

7. 기타

7.1. 근무환경

단본부는 서울 시가지 한복판에 아파트학교에 둘러싸여 있다. 군사보안이지만 하도 면회가는 곰신들이 많아서 네이버 검색만 해봐도 다 나온다. 심지어 제도권 언론사에도 버젓이 나올 정도니 말 다했다.[7] 국군정보사령부 같은 다른 서울 소재 부대들처럼, 80년대까지만 해도 주변이 그냥 다 이었지만 그 후로 도시화가 급격히 진전되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 부대 특성상 제1경비단 주둔지는 수방사 직할 부대들 중에서도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 통합주둔지를 제외하면 유달리 도심에 있는 편이다.

실제로 오후 전투체육때는 연병장에서 도수체조등을 하면, 주위에 체육공원 언덕배기위로 올라와서 운동하시는 어르신들이 동물원 구경마냥 군인들을 구경한다.

실제 근무지는 물론 속에 있다. 다만 예하대대 및 지원중대 소속 경계병력이 아닌 단본부 행정병이나 일부 파견인원을 제외한 운전병들은 일반적인 수방사 병사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된다. 특정지 뿐 아니라 일부는 대통령경호처 및 그 예하기관에 파견나가 근무하기도 한다. 이 경우 같은 수방사 소속의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33, 55, 88)와는 별개의 파견인원으로 취급되며 어색한 동거관계(?)가 이뤄지기도 한다. 제1경비단과 경호부대는 좀 데면데면한 편이라는 속설이 있다.

이처럼 중요한 부대이다보니 후방 부대임에도 현역으로 부대가 완편되어 있다. 전시에도 병은 예비군이 충원되지 않는다. 부대 특성상 전시에 수방사 예하사단에 지역을 인계하고, 어느 곳으로 이동한다. 간부[8]만 예비역이 충원될 수도 있다. 다만 장비 경신은 늦다. K2 소총도 30만번대의 낡은 물건에 2000년대 후반까지도 각 소대M60 기관총이 지급되어 있었다. K3 경기관총은 "내년에 나온다"는 소문만 몇십 년 동안 계속 돌았다.

2010년 4월 K3 보급이 시작되기전 집체교육이 있었다.

2017년 3월 전입당시에도 K3는 소대당 화기분대에 두정씩 있었다.

1경비단 복무의 가장 큰 낙은 서울시내 야경보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서울시내를 내려다보는 위치의 부대들이 다 그렇지만. 주둔지 저녁 식사 후 식당 앞 흡연장에 서서 흡연하며 감상 할 수 있는 남산타워의 야경은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근무지인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을 더 높게 치는 전역자들도 있으니 개인의 주관이 개입된다고 보는 게 옳다. 또한 인왕산 근무부대는 등산객들이 많아 등산객 구경하는 것도 재미다. 물론 등산객도 감시대상이므로 감시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개갈굼을 먹게 된다.

근무강도 뿐 아니라 군기도 매우 센 것으로 유명한데, 보통 2000년대 초 혹은 그이전까지 대부분의 군대가 말년에는 아무것도 안하는게 일반적이지만 이곳은 그렇지가 않았다. 2010년까지만 해도 말년휴가 나가기 전날까지 청소를 하거나 근무를 나가는 인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부대를 보는 눈이 워낙 많기 때문에 FM으로 돌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당장 주둔지든 소초생활이든, 주위에 민간인들 투성인데다가 부대특성상 스타계급들이 워낙 자주 방문하다보니 타부대처럼 가라로 돌리다 걸리면 간부들 입장에서는 정말 큰일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대대장급 이상부터는 전부 엘리트 진급코스를 받고 온 인물들이고 또 장군을 목표로 군생활 하는 사람들이라 당연히 FM이 일상화기 때문에 군기가 빡센것이다.

서울 시내에서 유일하게 실탄을 휴대하고 민간인과 직접 접촉하면서 근무하는 부대라는 점도 빡센 군기의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제55경비단도 실탄을 소지하긴 하나, 이들은 민간인을 접촉하지 않는다. 경비단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초소 근무중에 총과 탄약을 소지한 채 그대로 서울 시내로 걸어들어갈 수도 있다. 때문에 경비단 배정 자원들도 모두 신원조회를 기본으로 받는다.

경비단에서는 2013년까지 주단위 동기제를 유지했다. [9] 이게 지속된 이유인즉슨 부대 운영 특성상 2, 3달 안에 많은 인원이 신병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월별로 선후임을 가르는 것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2014년이 되어서야 당시 대대장에 의해 병영부조리 척결의 일환으로 월별 동기제로 전환되었다. 같은 시기 전방 육군 사단 중에는 1년 동기제가 도입된 곳도 있었다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뒤쳐진 것이다.

7.2. 선발

과거 쌍팔년도에는 전방 부대를 돌면서 몸 좋은 병사들을 그냥 골라서 뽑아 왔다는 고참 부사관들의 증언(1999년 경)이 있다.

1경비단의 전신인 수방사 30경비단의 경우 1991년 이전에는 키 178cm 이상, 시력 1.5 이상, 격투기 유단자, 오다리제외, 청와대에서 요구하는 신원조회 통과자로 신교대에서 차출해 왔다. 1992년에는 키 175cm이상으로 기준이 완화 되어 키가 175cm였던 한 병사의 별명이 "땅콩"이였다는 슬픈 전설(당사자에게 확인가능)이 있다. 그러다 1993년 2월 김영삼 전대통령 취임 후 문민정부라는 미명아래 수방사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일시적으로 뺑뺑이를 통해 175cm 이하, 안경낀 병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이전에는 키작고 안경 낀 병사가 없었다.) 몇개월간 뺑뺑이를 통해 들어오다가 다시 차출로 변경되었으나 기준은 점차 완화되었다.

1995년 전후의 선발은 306 보충대 옥상에서 키는 175cm 이상, 오다리 제외(실제로 차렷 시켜놓고 무릎사이로 주먹 넣어봐서 뽑았다) 시력은 1.0 이상을 뽑았다. 30단과 33단 구분없이 필요 인원의 2배수를 뽑고, 훈련소에서 받는 성적과 신원조회결과 이상없는 인원이 최종적으로 남아 방교대에서 30단과 33단으로 분리되었고 탈락한 인원들은 위탁교육을 받은 사단에 남았다. 방교대에서는 아무래도 직접적인 청와대 외곽 근무를 서는 30단의 인사장교의 파워가 세서 먼저 30단 인원을 뽑고 나머지는 33단으로 갔다.(이 사실은 단 통합 후 인사장교가 불공정하게 인원 선발을 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격투기 유단자가 있을 경우 간혹 방교대에서 35특공으로 뽑혀가는 경우도 있었다. 30단과 33단이 통합된 직후 30단에서 온 인사장교가 1대대(전 30단)으로 괜찮아 보이는 인원을 먼저 다 빼돌리고 2대대(전 33단)에는 별볼일 없어 보이는 병사만 떨궈줘서 원성이 자자해지자 경비단 인사장교가 갈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1995년 기준으로 경비단에 안경을 끼거나 키가 작은 병사들은 모두 논산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단 본부중대에만 배속되었고, 중대단위의 행정병의 경우 일반 병들을 뽑았고 후에 주특기 번호만 변경해서 행정병 근무를 시켰다.

최소 1999년(정확한 시작 시점 확인바람)부터 2010년대 초까지는 수방사 선발 자원들(수방사 선발 참고)이 신병훈련을 마치고 방패교육대에서 대기하는 동안 55대, 338, 사령부 본근대 경비중대, 35특공, 문서고관리대 등 소규모의 특수한 부대들이 먼저 엘리트 인원을 싹 뽑고 나면 나머지를 경비단과 방공단이 나눠 갖는 식이었으며, 병력을 인수하는 날까지 경비단 사람은 방교대에 오지도 않았다.

1999년 입영자의 경우 키는 172cm, 안경 미착용의 두 가지 조건만 갖추면 선발이 가능했다. 14년 이전까지는 최소 170cm 이상이라는 암묵적 선발 기준이 있었으나 이후 병력부족의 이유로 그 이하 병사도 소수지만 보이기도 한다.

안경 역시 마찬가지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논산 출신 운전병이나 의무병, 화학병, 전문 행정병인 대대계원 이상이 아닌 전투병력 중에는 안경 낀 병사는 사실상 없었으나, 2016년 현재는 안경 낀 병사들도 바글바글한 듯하다.

그러던 것이 2013년 중반부터 수방사와 별개로 1경비단이 신교대에서 면접을 통해 우선선발을 하게 되었다. 보통 서울이라는 미끼에 낚인 불쌍한 영혼들이 다수지만, 1경비단이 빡세다는 게 알려져서 가기 싫다고 해도, 모집간부가 선발인원 채우느라 허우대 멀쩡하고 인성/학력 괜찮으면 "싫어요?→질어요→좋아요?"라고 하며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한 채 반 강제로 뽑기도 한다. 즉, 이 병사들은 이때부터 경비단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방교대에서도 다른 부대가 데려갈 수 없어서, 방교대로 병력 뽑으러 온 다른 부대들이 징징대는 경우도 많다. 방교대에 온 보병 자원이 30명이 넘는데 죄다 경비단 선발자원이라 타 부대가 뽑을 수 있는 병력이 전혀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단, 처음부터 배수로 뽑기 때문에 일단 일차선발 되어 방교대까지 온 뒤 방교대에서 죽어도 가기 싫다고 거부하여 수방사 다른 부대에서 복무하는 존나좋은 방법 경우도 있다. 아니면 35특공이나 1방공여단에서 미친듯이 고생할수도 있다. 실제로 허리아파서 경계근무 못 선다고 빠진 뒤 본근대나 지원부대에서 꿀빠는 사례도 2015년 현재 실존한다. 당연하지만 웬만해서는 안 빼준다. 게다가 수틀리면 '부적격자 전군 재분류'로 전방 부대 재배치 처분도 가능하며 병의 인사이동이 드물어 중간에 전출 1회만 가도 부대에서 문제아라고 낙인찍는 육군 특성상 이는 꽤 큰 처벌이다.

물론 이는 경계병 한정으로, 특기병(운전병, 조리병 등)은 다른 부대와 동일하게 방교대에서 선발한다. 또한 행정병 등도 방교대의 보병 자원 중에 데려가기도 한다.

7.3. 경비단가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같이 의지와 정열로 뭉친 용사들

북악과 인왕의 정기를 받아 서울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가슴에 깊이 새긴 결의로 내 조국 철통경계 위하여

천년을 우뚝 선 소나무처럼 굳건하게 나라 지켜나가자

청룡 백호의 용맹 받아 행동으로 충성 다하여서

전군 유일 최정예 근위부대 제1경비단

-경비단가[10]

8. 사건사고

9. 여담

  • 여군이 없는 부대이다. 단 본부 행정반이나 정훈장교 등 특정지에 들어가 소초에서 생활할 필요가 없는 보직이 있는데도 여군은 없다. 가끔 이동중에 방공단이나 제55경비 섹터에서 여군을 마주할 때가 유일하게 접하는 여군이다. 주둔지 병사식당을 책임지는 아주머니가 부대 유일 여성. 한때 여성 민간상담사와 PX 관리관이 있었으나 상담사는 그 뒤에 남자로 바뀌었다.
  • 병사들 뿐 아니라 간부들도 힘든지 1경비단에서 근무하다 수방사 타부대로 전출 온 간부들은 진절머리를 낸다. 1경비단을 떠난 것에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사실 수방사 소속 부대들 상당수가 간부들에겐 상당히 기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대 특성상 업무는 많은데 전방과 같은 혜택은 없다보니... 게다가 기혼 장교들에게 제공되는 군인아파트도 직책이 낮으면 코딱지만하게 마련이라 별로 좋은 환경이 못 된다. 물론 그 외에도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생활의 질이나 가족들을 생각하면 서울에서 복무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메리트라 여전히 많은 간부들이 수방사를 선호하기도 한다. 이 경우 자녀의 교육 문제 등을 생각해 타지 인사이동해도 본인만 가고 배우자와 자녀들은 서울에 잔류시키는 주말부부도 꽤 된다.
  • 장교들 중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중대장 이상은 사실상 대부분이라고 봐도 된다. 이는 대통령경호실 소속부대(33, 55, 88)도 마찬가지.
  • 과거에는 영내에 K-1 전차KM900 K200 장갑차가 있었는데 이들은 전차대대, 장갑대대 소속으로 파견을 나왔을 뿐 경비단 정규 소속이 아니었다. 주력은 단 주둔지에 있으면서 주둔지에서는 보통 장갑차 정비와 불침번을 하고 경비중대 특정 소초로 한번에 장갑차만 1개 소대씩 파견을 나가는 방식으로 운용했다. 현재는 전차는 없으며 장갑차도 경비단 소속 별개 중대라고 하는데, 편제 변경 시점 등은 확인을 요한다. 낡은 KM900 장갑차는 2019년에 K808로 교체되었다. 기사.
  • 18년 현재 단 직할로 장갑중대가 존재하며 단본부대와는 별개다. 육군훈련소에서 선발해서 데려오고 타 경비중대와 마찬가지로 4개월마다 부대교대를 한다.
  • 2000년 경, 경비단 PX는 육군 전체에서 매출이 2위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PX 자체도 상당히 넓을 뿐더러 넓은 정원도 딸려 있어 면회시의 풍경이 보다 다양한 편이다. 본래는 면회외출도 가능하여 부대 밑의 공원까지는 나갈 수 있었으나 2015년도 초 쯤에 폐지되었다. 아마 위수지역 이탈하는사람이 많아서 그랬을지...도? 실제로 2000년에도 수시로 허용지역을 벗어나 홍대거리모텔(...)에 가다가 걸려서 2주 영창을 다녀오고 타 중대로 전출된 고문관의 사례가 있다.
  •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2018년기준 넓은정원은 없다. 공원에 있는 쉼터같은 조그마한 곳이 있긴한데 진짜 조그맣고 오래된 공원같은 느낌이 든다. 그냥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에 따라 넓게 보고 작게 보는 걸지도.
  • 특정지에서는 본래 규정상 면회가 불가능했으나 2018년 현재는 잠깐 외출처럼 가능하다. 물론 과거에도 소대장 재량으로 잠시 눈감아주는 비공식적인 면회가 시행된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 전투지원중대는 원래 단 주둔지에 같이 있었고 경계부대처럼 교대로 근무투입을 했으나 2000년 경 아예 별도 주둔지로 따로 독립해 나갔다. 주둔지와 떨어져있고 근무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경비단 내 자체 관심병사가 해당 중대로 전출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경비단의 그린캠프라는 인식이 있으나 편견일뿐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하는 병사가 많다. '이상할 정도로 전문 하사 지원률이 높다
  • 바로 옆이 아파트다 보니 이런 사례도 있다. 2000년 경에 부대 옆 아파트에 사는 신병이 전입을 왔는데, 이 무개념이 오렌지 입은 채로 부대 담을 넘어 집에 갔는데 부모님이 두 손 잡고 부대로 다시 데리고 왔다. 여기에다 중대원 중 누구도 그 신병이 없어진 사실을 몰랐다나 어쨌다나.(실제로 부대담이 높지 않고, 택시 잡기도 쉬워서 마음만 먹으면 가장 탈영하기 쉬운 부대다. 그럼에도 이 부대에서 탈영병은 거의 볼 수가 없다.)
  • 2010년 여름 경에 5중대 이병지휘통제실 위에 놓여져있던 실탄이 든 탄창을 가져다가 화장실에서 총기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그 사건 이후에, 대대 OP에서도 이병이 나무을 메고 자살하는 일이 생겼다. 물론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대부분의 군내 사고가 그렇듯이 언론에서 다루어진 일은 없었다.
  • 이 외에도 빡센 군기와 상시 실탄 휴대 근무 때문에 별의별 사건이나 병영부조리, 가혹행위가 많았다고 한다. 경계근무는 정해진 사수-부사수 두 명이 짝을 지어 서는데,[11] 이 때문에 근무시간은 부사수에게 지옥이었다고 한다. 사수 입장에서도 부사수가 작은 실수만 하면 자신이 선임들이나 간부들에게 개털리니 빡세게 잡을 수밖에 없고. 가장 기상천외한 가혹행위는 조정간 단발 상태의 K-2를 입에 물고 근무서기. 쌍팔년도 도시전설이 아니라 엄연히 2010년대 초반 전역자의 증언이다. 다만 이 문제는 어느 부대, 어느 시기나 마찬가지로, 사수 및 부사수의 성격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얼마든지 다른 사례가 나올 수 있음을 감안해서 볼 것. 혹시라도 당하게 되면 수방사 말고 육군본부국방부조사본부 혹은 군인권센터에 신고하는 게 훨씬 좋다.
  • 예비역이라면 다 알고 있겠지만 특정지 곳곳에는 폐기된 장비(...)들이 매몰되어 있다. 이외에 등산로 주변에 존재하던 초소가 철거된 흔적을 볼 수 있는 곳도 군데군데 있다. 본래 군병력 순찰로였던 곳이 개방된 등산로가 된지라, 원래 있던 초소들은 갈수록 폐쇄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근무지가 옮겨지고 있다. 심지어 2019년에 인왕산 구역에서는 초소가 아닌 소초까지 하나 폐기되었다(기사). 그 소초에 배치되던 소대 편제가 아예 없어졌는지, 병력이 재배치되었는지는 불명이다.
  • 타 부대에 비해 혹한기 훈련, 유격 훈련이 짧다. 2000년 경에는 4박5일이었다. 이중에 한나절은 숙영지 건설, 한나절은 화생방이므로 실질적인 "유격"은 3박 4일. 굵지만 개꿀 경호부대는 아예 안받는데? 수방사 예하이므로 유격은 방교대에서 받는다.
  • 엄밀히는 경호부대가 아니지만 그래도 그에 준하게 취급받으므로, 경호부대처럼 대통령경호실 특별부식을 받는다. 대통령 생일이나 영부인 생일에 병사들에게 고기를 사서 보내는데, 양이 어마어마하다. 3끼 고기반찬을 원없이 먹을 정도다. 또한 기무사 창립일에는 간단한 부식과 선물도 받는다. 1년에 1번 정도 가족들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하는 행사도 열린다. 2000년경에는 병사들만 연 1회 중대 단위로 견학했다. 금속탐지기 검사를 거쳐 청와대 경내에 들어가면, 엘리트복을 입고 베레모를 쓴 55대 병사들이 지프차를 타고 견학 대열을 따라다녔다. 탄창 꽂은 K-2를 지향사격 자세로 겨누고.
  • 역할이 역할이니만큼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는 비상대기 상태였다. 부대내 가용한 모든 교통수단(육공,버스)들이 연병장에 도열했다. 2016년 11월에도 내내 주말마다 비상대기 상태 였다. 당시 면회도 제한되고 당연히 청원휴가를 제외하고 최소 2달여간 휴가가 통제되었다. 실제로 5차 촛불시위 시기에 북악산을 넘어 청와대 진입을 시도한 이적단체원 4명이 경비단 병력에게 체포되기도 했다. 잡았다 거수자. 건졌다 포상!

  • 어느 날 밤 관사 앞 초소에 있는 야간근무자 앞에 단장이 나타났다. 술 한 잔 먹고 기분좋으신 단장님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뭔지 아냐"고 물어봤고, 긴장한 초병이 경비단가라고 말했다. 단장 왈 "불러봐."
아닌 밤중에 술주정 받아주냐 속으로 투덜대다 그래도 계급이 깡패라고 경비단가를 불렀다. 헌데 노래가 끝난 순간 단장이 초소로 들어와서 지통실에 연락 때려 "지금 초소근무자 내일 포상휴가 보내라"고 했다고 하는 신의 은총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 그 이후로 단장 만나길 비는 초병들이 늘어났으나 같은 사례는 더 이상 없었다고 한다.
  • 2002년 헌병 총기탈취사고후 초병들에게 무선버튼을 나눠줬었다. 엑스반도에 부착 하고 근무서는데 이게 실수로 누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누르면 바로 지통실에서 자동으로 5대기 비상이 걸렸다. 2000년대 중반 모소초는 목에 무선버튼을 걸고 다녔다. 그 외 다양한 말할 수 없는 다양햔 경보수단이 있었다. 2014년도 1월군번 때는 이미 없어졌다는데, 대신 초소마다 벽면에 비상벨이 있었다고 한다.
  • 언제부터인지 몰라도[12] 1중대에는 부대 울타리 밖을 벗어나는 순간 (외박, 휴가등)선후임 관계없이 형동생,친구 하며 말을 놓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덕분에 말년이든 신병이든 출타시(부대밖에서만큼은) 편하게 지낼 수 있었으므로 좋았다고. 복귀시 위병소 기준으로 호칭, 말높임이 달라지는 모습은 어색하였다고 한다. OOO병장님/OO이 형[13] 14군번 전역자: 1중대만이 아니라 경비단 전체가 위병소 안과 밖에서가 다르다. 밖에서는 형, 동생이고 안에서는 다시 선후임이 된다. 09군번 전역자: 관습까지는 아니고 선임이 허락하면 그런 경우도 있었다.
  • 의외로 보급이 풍족하지 않다. 2000년대 초만 해도 퐁퐁이 없어서 주둔지 취사장은 모를까, 특정지에서는 빨랫비누로 식판을 닦았다. -> 중대 행정보급관이 부대 운영비를 아껴서다. 물로 희석해쓰기, 빨래비누 쓰기, 오이비누 쓰기 등등 별 짓을 하다 보급관이 대용량 주방세제를 사주었다. 보급 휴지가 떨어져 매우 고생한 적은 한번 있다. (2000년대 중반) 2016년에도 퐁퐁이 없어서 고기담았던 바트를 뜨거운 물로만 씻는 경우도 많았다.
  • 참고로 비슷한 명칭을 한 부대로 제2경비단, 제3경비단, 세종시경비단이 있는데, 이 부대들은 각각 육군본부 직할과 제17보병사단 직할로 계룡대, 인천국제공항, 정부세종청사 외곽을 경비한다.


  1. [1] 한편 특이하게도 제2경비단2nd Guard Group이다.
  2. [2] 교대주기는 2000년 이전에는 중대별로 6주, 2001년부터 한동안은 대대 단위로 3개월이었다.
  3. [3] 대표적으로 2008년 촛불집회,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등.
  4. [4] 멀쩡한 궁궐을 허물고 들어앉은 것은 아니다. 본래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태원전 자리였으나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열기위해 허물어졌다. 이후 조선총독부와 총독관저를 경호하는 일본군 부대 주둔지로 쓰였다.
  5. [5] 본관 내에 있는 부대 역사관에는 역대 단장들의 사진이 죽 전시되어 있다.
  6. [6] 수도방위사령관이었던 김용현 중장(육사 38기), 구홍모 중장(육사 40기)등이 대령 시절 제1경비단장을 역임했다. 2020년 현재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최병혁 대장(육사 41기)도 대령 시절에 제1경비단장을 지냈다.
  7. [7] 엄격히 따지자면 해당 글들 대부분은 보안 위반이다. 워낙 유명한 부대인데다 주변의 학교나 아파트에서도 뻔히 다 보이니 굳이 제재하는 것이 의미없을 뿐.
  8. [8] 중대 기준으로 부중대장, 대대 기준으로 장교보직인 부대대장(말년대위 또는 소령급)과 부사관보직인 본부중대 처부소대장(중사급)은 어느 부대든 항상 예비역 편제다.
  9. [9] 같은 수방사 소속인 군사경찰단도 비슷한 걸 한다. 기수 동기제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육군 군사경찰이 전부 후반기 교육 배출순서로 기수를 매긴다. 이래서 월 단위 동기제는 없다. 역사도 오래 됐으며 군사경찰단만 이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치기는 힘들어보인다. 그래도 운전병이 많은 육군수사단에선 별 의미가 없다.
  10. [10] 2001년에 제정되었다. 그 이전에는 소대가, 중대가, 대대가는 있어도 단가는 없었다.
  11. [11] 부대에 따라 근무형태는 케바케다. 근무 사수-부사수가 정해져 있지 않은 부대도 많고, 실탄 들고 혼자 서는 부대도 있다. 다만 이는 신원조회를 매우 빡세게 하는 모 부대.
  12. [12] 2000년대 이후에 생겨난 새로운 관습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독특한 전통이 소문이 나지 않을 리가 없는데, 01년까지 그런 소문은 없었다.
  13. [13] 서울권 몇몇 부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증언이다. 추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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