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보병사단

대한민국 육군 보병사단 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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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보병사단
第1步兵師團
The 1st Infantry Division

부대훈

천하제일사단

약칭

1사단

별칭

전진부대

창설일

1947년 12월 7일(제1여단)
1949년 5월 12일(제1보병사단)

사단장

소장 김홍석(육사 46기)

부사단장

상급부대

제1군단

위치

경기도 파주시

1. 개요
2. 상세
4. 예하부대
4.1. 사단직할대
4.2. 제11보병연대 육탄
4.3. 제12보병연대 쌍용
4.4. 제15보병연대 무적칼
4.5. 포병연대 으뜸
5. 과거부대
6. 출신인물
6.2. 장교
6.3. 병
7. 기타
7.1. 근무환경
7.2. 사단가
8. 사건사고
9. 여담

보병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보병사단(이하 "사단"이라 한다)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전진!

1. 개요

대한민국 육군 1군단 예하 제1보병사단. 별칭은 전진부대[1]. 경례구호전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위치하고 있다.

2. 상세

현재도 경기도 파주에 주둔하고 있으며 주둔 지역은 임진강을 넓게 끼고 있다. 개성공단 출입인원을 관리하는 서해지구 군 운영단(舊 도라산 CIQ)와 임진강을 건너는 통일대교도 관리하고 있어서 각종 미디어에 출연 빈도가 아주 많은(?) 부대이다 사단이 수도권에서 가까운 최전방 지역이어서 안보견학 및 어르신들의 효도관광(?) 코스로도 인기 있는 지역. 수도권에서 제일 가까운 최전방 부대라는 이유로 정치인, 국빈들의 외부 부대방문도 잦은 편. 그리고 방문 부대엔 헬게이트가 열린다. JSA 경비대대 또한 1사단의 지역에서 행정 지원 및 보급을 받지만 이쪽은 1사단 소속이 아니며 일단 유엔사에 정보작전권한이 있다. 물론 JSA 근처에 국빈이 오면 몇 일동안 그 지역엔 비상경계가 내리는건 마찬가지. 그래서 미국 국빈방문이 종종 있기도 하다. 아님, 중립국감독위원회 측 외빈이 찾아오거나(...) 군생활 동안 외빈들이 절대로 안 오길 기도하자. 또한 1사단은 담당하는 곳이 제일 많은 사단이라 할 수 있다. DMZ수색작전, 개성공단 출입관리, GPGOP경계, 임진강 및 통일대교 경계, JSA 작전지원 등 임무가 많은 부대이다.

지리적인 조건은 최전방사단 가운데서는 가장 좋은 축에 속한다. 일단 휴전선의 서쪽 끝이기도 하고[2], 전반적으로 담당지역이 평야와 강을 끼고 있기 때문에 고저차가 크지 않다. 물론 모 연대가 관리하는 쪽에 있는 그야말로 미친 각도를 자랑하는 맥도날드 고개같은 영 좋지 않은 곳도 있긴 있으니 1사단 배치됐다고 너무 방심하진 않는게 좋다(...) 서울에서 매우 가깝기도 한데, 사단 위수지역 내로 서울 소속 버스들과 서울가는 전철이 들어오는 유일한 최전방사단이기도 하다. 때문에 외출나온 장병들이 서울로 점프뛰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여기까진 좋은데 여름철에는 파주의 유명한 모기와 사투를 벌이며 클로로퀸이라는 아주 독성이 강한 말라리아 약을 먹어야 한다. 약의 부작용이 심한 사람은 차라리 말라리아에 걸릴 각오로 약을 버리기도 하지만 말라리아가 잘 걸리는 지역이다보니 간간히 말라리아에 걸려서 실려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거기다 말라리아의 경우 잠복기간이 6개월~1년이 넘기도 하므로 전역후 발병하는 재수없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헌혈의 집에서도 이쪽에서 복무했던 사람을 잘 안받아준다.[3] 이곳은 들쥐로 인해 전염되는 제2종법정전염병인 유행성 출혈열로 유명하다. 한탄바이러스의 한탄강이 이곳 관할이다.

앞에서 서술했듯 임진강 하류를 넓게 끼고 있다 보니 GOP경계와 동시에 강안 경계도 맡고 있다. 실제로 95년 임진강 벼락바위 일대에서 임진강 하류로 침투하는 간첩을 격멸한 사례(벼락바위사건)도 있다. 제3땅굴 발견 등과 함께 부대의 자랑거리 중 하나.

게다가 이 부대는 전방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거점인 관계로 완벽한 진급코스이다. 장교라면 이 부대에서 한 번 이상은 복무해야 장성까지 무난하다.

위수지역2011년까지는 파주시 시내, 그중에서도 금촌역까지가 대부분이었으나, 2012년에 하창호 사단장[4]이 부임한 이후 제1군단과의 협의를 통해 1사단 전 부대의 위수지역을 고양시까지 확장하였다. 이에 따라 일산신도시까지 합법적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서울특별시계와 한강을 건너지 않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다들 서울특별시점프를 뛰지 그런데 2012년 전에도 위수지역이 일산까지인 부대가 더 많았다.

미군정이 1946년 1월 15일 창립한 국방경비대는 동년 6월에 조선경비대로 명칭을 바꾸고서 1947년 12월 1일에 3개 여단을 창설하였는데 그중 '제1여단'(서울)이 1949년 5월 12일 '제1사단'으로 승격된 것이 제1보병사단의 시작이다. 초대 여단장은 중국 국부군 및 독립군 출신의 송호성[5] 준장이었다. 그러나 일본군 출신이 군을 장악함에 따라 김구와 가까웠던 송호성 준장이 밀려나고 1948년 2월 5일에는 일본 육사 26기 이응준 대령이 제2대 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1949년 1월 7일에 일본 육사 27기 출신의 김석원[6] 대령이 3대 여단장으로 부임하였고 1949년 5월 12일에 여단이 사단으로 승격됨으로써 여단장 김석원 대령이 그대로 초대 사단장에 취임했다. 같은 해인 1949년 5월에는 11연대가 북한군과 개성에서 5.4 송악산 충돌(육탄10용사) 국지전을 벌이게 된다. 이후 개성등을 포함하는 38선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1949년 10월 1일에는 일본 육사 26기 유승렬 대령이 제4대 사단장을 맡았으며, 1950년 4월 22일에는 역시 만주군 간도특설대 출신의 백선엽 대령이 제5대 사단장으로 취임하였다.

6.25 전쟁 발발 이후에는 임진강파주에서 방어전을 펼친 후 한강교가 폭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대 건제를 유지한 채 지연작전을 벌이며 낙동강까지 철수해 대구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하여 낙동강 전선을 지켰다.

인천 상륙작전 이후 10월 19일 평양 전투에서 괴뢰 잔당들을 물리치고 평양에 가장 먼저 입성하는 부대가 되었다. 이때 선봉에 섰던 미1군단에 소속된 부대 중 미 제1기병사단과 미 제24보병사단, 1보병사단 간에 평양 선봉 입성을 위한 경쟁이 붙었다. 1보병사단에는 미군 전차부대가 사단에 배속되어 있었는데, 속도에 맞추기 위해 전차부대는 낮에는 이동하고 밤에는 휴식, 보병부대는 낮이나 밤이나 그냥 걸었다(…). 당시 미군들도 '우리는 미군이지만 지금은 1사단이다'라면서 결국 평양에 가장 먼저 입성한 부대가 되었다. 평양 입성 다음날인 10월 20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평양 선봉 입성을 기념하여 '계속 전진하여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라'는 의미로 전진이라는 부대 명칭을 내린다.

참고로 7사단도 부대 역사에 자신들이 18일 오후 평양에 선봉 입성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평양에 선봉 입성한 7사단의 부대라고는 8연대 9중대 하나 뿐이라 대외적으로는 사단이 직접 평양으로 진군해 동평양(11/12연대)과 본평양(15연대)을 점령한 1사단을 평양선봉입성 부대로 인정하고 있다.[7] 참고로 이 당시 미 1군단(미1기병사단, 미24보병사단, 국군1사단)이 평양으로 진격하고 있었기에 7사단은 평양 방면으로 진격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서울 선봉입성을 미해병대에게 빼앗긴 이승만이 평양마저도 미군에게 선봉을 빼앗길 수 없다며 평양 인근까지 진군한 7사단에게 즉시 평양으로 진격하라며 명령하는 바람에 부대 일부가 황급히 평양으로 향한 것이다.[8] 참고로 8연대 9중대 이후 8연대의 나머지 대대들도 들어왔는데, 영문도 모르고 따라온 1사단 1개 대대를 흡수해 4개 대대로 김일성 대학과 모란봉을 점령하고 괴뢰군과 교전 중 1사단 11연대로부터 57mm 대전차포로 공격당했다. 이후 서평양을 탈환해 나가던 중 8연대장 김용주 중령은 1사단장 백선엽으로부터 "전쟁 문란죄가 뭔지 아느냐" 며 추궁당했고, 이에 (유재흥) 군단장과 (신상철) 사단장께서 까라면 까라 어쩔수 없이 왔다며 쩔쩔매기도 했으며, 1사단 내에선 7사단이 '전공 욕심에 눈이 멀었다'는 편견이 쌓였다.# 자세한 건 평양 전투 참조.

이후 중공군의 개입 이후에도 사단 건제를 유지한 채 후퇴하였다가 다시 북진해서 개전 직후 방어하였던 임진강-파주 지역에 되돌아오게 된다. 이후 한국전쟁이 휴전될 때까지 후방 재편성 및 일부부대 전용을 제외하고는 해당진지를 고수한 채 휴전을 맞는다. 물론 그동안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밀려오는 중공군을 상대로 격전을 벌인 것은 다른 지역과 동일했다.[9]

한국전쟁에서는 개전 전에 편성된 사단이면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단 건제를 끝까지 유지한 정예사단으로 평가받았으며, 미군이 항상 신뢰하는 유일한 국군 사단이었다. 당장 백선엽 사단장이 승진과 보직변경으로 물러날 때는 이미 타 사단의 사단장들은 다른 인물로 여러번 교체된 이후였다.

자주국방 네트워크 신인균 대표는 2013년 7월 종편 채널A의 시사프로 쾌도난마에 출연하여 정전 60주년 기념특집으로 한국전에서 가장 잘 싸운 5대 국군부대를 꼽았는데, 전진부대는 2위로 평가받았다.

1위-육군 제6사단(청성부대. 김종오 장군 지휘. 춘천전투, 백마고지 전투 등)

2위-육군 제1사단

3위-해병대(진동리 전투, 통영 상륙작전, 인천 상륙작전, 도솔산전투 등)

4위-육군 제3사단(백골부대. 38선 첫 돌파, 현리전투 등)

5위-육군 수도사단(맹호부대)

참고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한국전쟁 초기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국군 부대로 육군의 6사단, 8사단, 1사단을 꼽았다.

78년에는 제3땅굴을 발견하기도 했다. 도라산 바로 밑에 있기에 도라산역 관광코스로 끼여있기도 한다.

참고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당시 작업반으로 위장한 특전사가 진입할때 판문점을 둘러싸고 수색대대, 중대 병사들이 전투태세를 취한채 수풀안에 매복해 있었다.

GP, GOP가 아닌 임진강 경계 [10]근무를 담당하고 있다. 사단 내에 3개 연대가 모두 경계부대인 건 1사단과 22사단밖에 없다....

3. 신병교육대

크게는 전진돌격관,중대막사,전진교회,영점/전진사격장,수류탄훈련장,각개전투장이 있다.

전진돌격관은 훈련병들이 제일 먼저 입소하는 장소이며 입영식과 수료식을 진행하는 장소다. 그 외에는 제식연습이나 보급품 지급 또는 보호의 착용 등 화생방 연습을 하는데도 사용하는 시설이다. 바닥에 앉아서 쉬라고 할때가 있는데 바닥이 돌이라 겨울엔 엉덩이가 시렵다.

증대막사는 본래는 5~60명씩 수용하는 침상과 심심하면 변기가 막히는 화장실 등 시설이 매우 열악했던 컨테이너 구막사였으나 2020년 1월 초반에 신막사가 완공되었다. 새로운 건물이라 시설은 신교대 치고는 훌륭한 편이다. 물론 샤워실 벽이 터져서 물이 새거나 다목적실에 말벌집이 생성되는등[11] 건물에 자잘한 결함들도 보인다.

전진교회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라 종교활동 외에도 중대인원들이 집합하는데 많이 쓰인다.

주로 금융교육이나 예방접종, 정신전력 교육 그 외에 중대장/대대장 말씀이 있을때도 사용한다. 물론 현재는 신막사가 완공되었으므로 일부 스케줄은 다목적실에서 시행할 확률도 높다.

여담으로 전진교회 뒤에 있는 화장실이 고장난 상태라 그냥 철조망에 대고 볼일 보라고한다. 근데 철조망 뒤는 민간사회라 볼일보는 훈련병들이 탈영마렵다고 한다(...)

영점사격장은 전진교회 바로 옆 계단 위로 올라가면 존재한다. 그냥 말 그대로 영점사격장이다.

전진사격장은 전차대대 뒤쪽으로 걸어가다보면 나온다.

수류탄 훈련장과 각개전투 훈련장은 전차대대쪽 뒤로 나가서 2~3km 걷다보면 나온다. 각개전투 훈련은 겨울에 입영한 경우엔 될 수 있으면 각개전투 평가를 오후조로 보자. 오전조는 땅이 얼어서 팔꿈치와 무릎이 굉장히 아프다. 그리고 늦가을~겨울에 각개전투 훈련을 받는다면 약진할 때 능선이 미끄러워 다칠 수 있다며 오솔길 있는데까지만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장구류들은 일반 K-2에 구형 방탄헬멧에 탄띠를 지급해준다. 화생방 오염극복훈련 (CS탄)용으로 K-5 방독면이 지급되긴 하지만 매우 많은 훈련병들이 귀찮다고 그냥 정화통을 물에 씻고 이전 기수들에서도 그랬을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지급받은 방독면이 재대로 작동할거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리고 훈련병 1인당 1개씩 탄박스에서 나온 나무판을[12] 약진할 때 능선이 미끄러워 다칠 수 있다며 오솔길 있는데까지만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여담으로 1사단 신병교육대 바로 옆에 철조망 하나로 구역지어 30사단 포병부대가 붙어있다. 그래서 간혹가다 각개전투장에서 공기를 찢는 포병의 굉음을 들을때도 있다.

4. 예하부대

4.1. 사단직할대

  • 본부대
  • 수색대대
  • 공병대대
  • 제7전차대대[13]
  • 정보통신대대
  • 보급수송대대
  • 정비대대
  • 군사경찰대대[14]
  • 의무근무대
  • 화생방지원대
  • 방공중대
  • 토우중대
  • 보충중대[15]
  • 군악대
  • 신병교육대대
신병교육대대는 전차대대와 의무근무대가 주변에 이웃해있다. 신병교육대대에서 영외에서 실시하는 교육훈련 교장[16]으로 이동할 때 거의 필수적으로 전차대대 주둔지를 통과한다.

4.2. 제11보병연대 육탄

육탄10용사의 그 부대이다. 사단 우측방 GOP를 담당하고 있다. 사단 내의 다른 부대들과는 달리, 가장 외진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여담으로 각 대대 병영시설이 율곡부대와 GOP 후방CP 빼고는 사단 내에서 가장 구리다. 참고로 여기에는 대단한 기록이 있는데 이 연대에서 최소 6명의 4성장군이 배출되었다.[18]

  • 연대본부
  • 1대대 일월성
  • 2대대 율곡
  • 3대대 백학

4.3. 제12보병연대 쌍용

한국전쟁 기간 중, 평양입성 시에 미군 전차부대가 배속되어 선봉에 섰던 부대이다. 사단 좌측방 GOP를 담당하고 있다. 심심하면 언론에 노출되는 도라산 OP를 담당하고 있다. 경의선 경비및 개성공단 출입로 를 담당하고있다.(덕분에 해당 GOP 출신들은 수많은 VIP 동석 식사, 일반인 수탁급식, 동네 아저씨처럼 드나드는 사단장과 군단장 덕분에 청소 스킬 하나는 어마어마하다.)

여담으로 GOP 철책섹터가 매우 완만하다.... 그나마도 높은 언덕과 경사로는 한쪽에 몰빵되어있고 나머지는 거의 평지이다.

  • 연대본부
  • 1대대 마정
  • 2대대 운천
  • 3대대 도라

4.4. 제15보병연대 무적칼

>겨례의 소원인 통일을 위해>육군의 선봉에선 무적의 용사>뭉치어 싸워서 이겼으니>평양에 선봉으로 입성하였다>아~~ 그 이름 칼부대 용사>영원히 빛내리 15연대> >'-15연대가

한국전쟁 기간 중 평양에 선봉으로 입성한 부대이다. 사단 예비연대인 동시에 평시엔 임진강[19]. 통일대교 경계를 담당하고 있으며, 연대본부 위병소를 지나서 연병장으로 올라오다 보면, 거대한 언월도 상징물[20]을 볼 수 있다. 원래 부대명칭은 13연대였으나, 임진강과 파주 전투에서 예하 부대가 큰 피해를 입고 1개 대대 전력만 남게 되었고, 이후 5사단 15연대를 배속받아 3개 대대 체제를 회복하나, 정통성 문제로 낙동강 다부동 전투 말기에 현재의 단대호로 개칭하였다.[21] 이후 13연대 단대호는 공란 상태였다가 11사단 창설 시 예하 연대로 신규 창설되었으나 15연대 장병들이 분가해 만든게 아니다 보니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22]

참고로, 김신조 사건당시 15연대가 공비들을 진압할때 큰 활약을 해서 15연대가 한때 큰 명성을 얻기도 했다. 물론, 피해도 있었다. 당시 15연대장 이익수 대령이 흉탄에 맞아 전사하기도 한다.[23]

연대본부 주둔지가 예전 미군부대 주둔지[24]여서, 상대적으로 편의시설이 좋다. 부대 내에 스쿼시장, 풋살장, 체육관, 목욕탕 등이 있다. 연병장의 형태도 잘 보면 일반적인 직사각형 연병장이 아니라 야구장 모양의 연병장이다. 2005년경 축구하기 좋도록 직사각형에 좀 더 가깝게 하면서 넓혔다. 부대 정문에 M47 패튼전차가 세워져 있다.[25].

여우고개대대 생활관은 2006년에 완공된 침대형(1층 침대) 막사로 PX까지 생활관 건물에 있다. 입주 당시 총기보관함까지 전부 새거였다고. 하지만 철조망 자재를 이용해서 크고 아름다운 총기보관함을 자작한건 안비밀

문산읍 선유리 통일로 인근에 있었던 막사는[26] 2014년 말 ~ 2015년 초에 철거되어 지금은 문산어울림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당시 장병들은 이곳을 문산대대라 불렀었고 문산읍내와 가까워[27] 출타가 다른 대대에 비해 편했다. 그리고 2006년 당시 이 대대에 주둔했던 장병들에 한해 문산역 앞에 있는 목욕탕으로 단체 목욕외출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물론 상.병장급들은 하라는 목욕은 안하고 목욕탕 건물에 있는 PC방으로 놀러갔다.

과거 사단 내 제2신병교육대대가 15연대에 속해있었다.[28]

  • 연대본부
  • 1대대 방미
  • 2대대 장단
  • 3대대 여우고개

4.5. 포병연대 으뜸

예하에 4개 포병대대가 있다. 예전에는 모든 장비가 견인포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연대 직접지원대대는 K55A1으로 교체가 되었고, 사단일반지원대대도 K-9 자주곡사포 로 교체 되었다.
  • 연대본부 및 본부포대
  • 제17포병대대 백곰 [29]
  • 제58포병대대 백호
  • 제59포병대대 사자
  • 제629포병대대 독수리

5. 과거부대

6. 출신인물

6.1. 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30]

송호성

예) 준장

前 태백산지구 전투사령관

2대[31]

이응준

예) 중장

일본육사 26기

육군참모총장

3대[32]

김석원

예) 소장

일본육사 27기

前 수도사단장

국회의원

4대

유승렬

예) 소장

일본육사 26기

前 육군 경북지구 계엄사령관

5대[33]

백선엽

예) 대장

군사영어

합동참모의장, 육군참모총장, 제1야전군사령관

교통부장관

00대[34]

전두환

예) 대장

육사 11기

국군보안사령관

대한민국 대통령

00대

최연식

예) 중장

육사 11기

前 육군사관학교장

00대

김동진

예) 대장

육사 17기

합동참모의장, 육군참모총장, 한미연합군부사령부

국방부장관

00대

길형보

예) 대장

육사 22기

육군참모총장, 제3야전군사령관

00대

정승조

예) 대장

육사 32기

합동참모의장, 한미연합군부사령부, 제1야전군사령관

00대

이성호

예) 중장

육사 33기

前 국방대학교 총장

국민안전처 차관

00대

신현돈

예) 대장

육사 35기

제1야전군사령관

00대

서형석

예) 소장

육사 37기

前 군사정전위원회 한국군 수석대표

00대

하창호

예) 소장

육사 39기

前 육군교육사령부 부사령관

00대

장경수

소장

육사 41기

現 국방정책실장 직무대리

00대

이종화

소장

육사 42기

現 육군학생군사학교장

47대

박정환

중장

육사 44기

現 2군단장

48대

김홍석

소장

육사 46기

사단장

6.2. 장교

6.3. 병

자대 배치를 이 부대로 받았다. 입소대대는 55사단.
12연대 전투지원중대에서 복무 도중 GOP에 올라가지 못하여 본부중대로 전입 후 점심시간 방송병(정훈과)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사단 군악대 출신.
2017년 10월 23일, 파주시 소재 1사단 신병교육대로 현역 입소했다. 원래는 심장질환으로 4급 판정을 받았지만 꾸준한 관리로 재검결과 1급 현역 판정을 받아 입대하게 된 것이다. [YTN] 공익에서 현역으로.. 김수현, 오늘(23일) 군 입대 신교대 수료후 사단 수색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원래는 특전병으로 지원하려고 했으나 특전병은 만 28세 이하만 지원이 가능해 수색대로 바꿨다.훈련소에서 동기들끼리 가위바위보 했다가 꼴찌해서 딱밤 30대 맞았다고 한다. 훈련소 때 인터넷 편지가 혼자서 몇 바구니가 나왔다.
2018년 2월 19일, 최전방 수호병 모집에 합격하여 26세의 나이로 전진부대 신병교육대입대하여 1사단 전진부대 수색대대로 전입하였다. 기사 하단 참조
11연대 소속 GOP 근무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11연대 3대대 11중대에서 대대 천주교 군종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사단 문화선봉대에서 병사로 복무하며 부대 행사의 사회자로 활약.
1993년 12월 입대, GOP 근무
10군번 일병 때 탈영.

7. 기타

7.1. 근무환경

여타 전방 부대들에 비해 비교적 보급 현황이 넉넉하게 들어오는 편이다.

12연대의 경우 11,15연대에 비해 생활 환경 개선이 늦은 편이었으나 지금은 상당히 개선되었다.

최전방 부대의 고질적인 문제인 건지, 2013년 기준으로 병영 선진화가 더디어 영내 폭력이 만연해 있었다. 소원수리는 사실상 불가능.

7.2. 사단가

내 조국 삼천리를 지켜서 싸워가는

우리는 맹호 같은 필승의 용사로다

송악산 10용사의 투혼을 본 받아서

옹진전투 싸워 이긴 명예로운 1사단

청사에 찬란히 길이 빛날 전공을

세기에 휘날리는 당당한 사단

1사단 1사단 천하의 1사단

승리의 개가를 높이 불러라

세계에 이름떨친 평양성 공략작전

서울을 재탈환한 우리의 장한무훈

임진강 대반격적 신벽제 봉일천들

차례로 싸워이긴 승리의 1사단

청사에 찬란히 길이 빛날 전공을

세기에 휘날리는 당당한 사단

1사단 1사단 천하의 1사단

승리의 개가를 높이 불러라

인류의 자유평화 위하여 진격하는

용감한 유엔군과 굳세게 뭉치었다

조국의 통일위해 들끓는 이 가슴들

화랑의 정신으로 단결한 1사단

청사에 찬란히 길이 빛날 전공을

세기에 휘날리는 당당한 사단

1사단 1사단 천하의 1사단

승리의 개가를 높이 불러라

충성과 명예로써 단결된 전진부대

우리의 가슴에는 통일의 굳은 의지

3 땅굴 발견하여 드높은 이 기상을

통일의 그날까지 떨쳐가는 1사단

청사에 찬란히 길이 빛날 전공을

세기에 휘날리는 당당한 사단

1사단 1사단 천하의 1사단

승리의 개가를 높이 불러라

-1사단가

8. 사건사고

  • 2007년 3월 9일 15연대 모 대대에서 대대장과 대대 주임원사가 반환미군기지에서 나온 고철을 무단으로 매각했다는 이유로 헌병대에 연행되는 일이 있었다. 해당기사매각한 대금은 대대장과 대대 주임원사가 개인적으로 유용하지 않고 부대 시설개선(주로 운동기구 마련)에 사용했다. 당시 대대원들은 대대장이 결백하다는 탄원서를 쓰기도 하였다.
  • 연평도 포격 도발 후 당시 1사단 포병연대의 모 포병대대[35]에서 북 도발에 대한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155mm 자주포로 실탄 장전 연습 도중 실수로 적 GP 부근 DMZ를 향하여 실탄을 발사하였다. 당시 1사단장은 당장 전 병력 방탄착용 후 대피하라 지시를 하였고, 다행히도 큰 일없이 잘 넘어갔다.[36]
  • 2015년 10월 29일 새벽 5시, 경기도 파주시 육군 1사단 GOP에 근무하던 박 일병이 후임과 같이 경계근무를 서던 중에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비운 뒤 가지고 있던 수류탄을 터트려 자살했다. 박 일병이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조사했지만 “가족에게 미안하다” 등 선임들의 구타와 부대 내 부조리를 암시하는 내용의 메모를 발견되면서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로 인해 자살한 걸로 밝혀졌다..보도 기사자세한 내막의 기사

9. 여담

  • 제1보병사단이 선봉으로 평양에 입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하 연대들이 서로 자기가 평양에 선봉으로 입성한 부대라고 자랑질을 하는데 진실은 저 너머로... 15연대는 부대 정문에 "평양선봉입성부대", 12연대는 부대 정문에 "평양입성선봉부대" 라는 팻말을 걸고 있다. 요새 15연대 정문 지나갈 때 봤는데 팻말 안 보이더라 백선엽장군 기록에 따르면 15연대가 선봉 입성이다.
2016년 8월 기준으로 12연대 정훈장교가 기록을 모조리 뒤져 12연대가 먼저 입성했다는 증거를 찾았다며 예하부대를 돌아다니면서 교육했다.12연대에 배속된 미군 전차부대를 선두로 평양 외곽에 입성하여 15연대가 안전하게 입성할 수 있게 방비해줬다고 한다.

* 대동강을 기준으로 우측을 동평양, 좌측을 본평양이라고 하며 12연대는 동평양에, 15연대는 본평양에 먼저 입성하였으며 북한의 주요시설이 본평양에 위치하여 있어 15연대가 선봉입성의 기준으로 잡는다.(12연대, 15연대 모두 복무한 정훈장교가 확인)

  • 6.25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제1보병사단이 등장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미군과 자주 붙어다녀서이다.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태,진석 형제의 소속은 이 1사단이다.
  • 도라산 정상의 도라전망대도 같이 관리하는데, 도라전망대에서 망원경쪽 벽을 월담하면 바로 DMZ다. 덤으로, 도라전망대엔 군인들만을 위한 공짜 망원경이 있는데, 500원도 내기 싫은 구두쇠 민간인도 몰래몰래 이용한다. 그리고 경비서던 군인이 그걸 잡겠지 보다보면 중국인 관광객도 와서 구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중 연합군인데, 왜 과거 적군의 땅에와서 동맹의 땅을 구경할까? 대만 국적일 수도 있잖아[37]
  • 전두환이 제1보병사단장을 맡은 적이 있으며 군사독재에 열심히 도와주었다. 쿠데타 당시 동원했던 전차가 현 소속 대대 것이라는 소문이 부대 내에서 돈다. 물론 실제로는 2010년 기준 사용하는 전차가 K1전차이기 때문에 해당 전차일 리는 없다.[38]
    • 12.12사태 당시 신군부측에서 동원된 전차부대는제1군단 황영시 중장 예하 제2기갑여단 이상규 준장의 16전차대대이다. 1사단 관할지역은 서울 근교가 아닌 최오지 전방이라 12.12사태에 낄 수 없는 부대이다.[39]
  • 이 부대의 위수지역에 초평도라는 섬이 있다. 이 섬은 임진강 중류에 위치한 하중도이며 현재는 민통선 내에 있어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원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섬의 규모도 상당히 넓은 섬이였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휴전이 성립되어 휴전선이 결정되자 이 섬은 민통선 내에 들어가 버려 그 이후 주민들이 모두 떠나고 현재는 무인도가 되었다. 가끔 헬기타고 가던 미군이 내려서 소변을 보고간다...
    • 추가)소변을 볼 수 없고 강수량이 많은 장마철에 섬이 물에 잠기기도하며 만조간만의 차이가 있기에 사람이 산적은없다.
  • 무한도전 자유로 가요제 때 협조 해줬다. 가요제가 임진각에서 했는데 가뜩이나 대중교통이 불편한 이곳에 사람들이 그렇게 몰리니 별수 있나. 1사단 군인들이 인원통제를 도와줬었다. 당시 근처 부대에서 위병소 근무를 서면 노랫소리가 부대까지 들리기도 했다..통일대교 근무자들이 죽어났다. 위문공연이 임진각에서 많이 열린다. 정작 작계지역이 임진각 근처인 부대들은 인원통제나 경계근무 때문에 가지도 못한다.
  • 일본 방송국에서 1사단 전방을 방문,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적이 있다. 내용이 크게 잘못된 것은 없었고(각 섹터마다 초소에 설치된 크레모어를 일본 방송에서 수류탄이라고 말했다. 수류탄은 말 그대로 손으로 투척하는 유탄) 한국의 징집된 장병들이 이전에는 각자 사회에서 했던 일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단의 비극을 보여 주려 했다.
  • 단대부고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 2010년 즈음 본명이 '전진'인 병사가 1사단 자원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성이 전이고 이름이 진(...). 이는 속설이 아니다. 12,15년에도 있었다고 한다(15년에 입대한 김제중과 동기였다고)..
  • 2010년 즈음 본명이 '박격포'인 병사가 1사단에 들어온적이 있다. 다행히 박격포 분대나 화기중대에 배속받진 않고 GOP근무를 마치고 FEBA 생활을 하다 전역하였다.[40]
(여담으로 이 병사는 '나는 남자다' 20회에도 특이한 이름으로 출현한 일이 있다.)
  • 헌병대대와 공병대대는 한 위병소 두 집 살림을 살고있으며(유격대 및 사단법무부 또한 영내에 위치해 있다), 한때 정비대대,보급수송대대,의무근무대가 한 위병소 세 집 살림을 하였으나 현재는 의무근무대가 신병교육대대로 이사갔다.


  1. [1] 공식별칭은 천하제일 전진부대
  2. [2] 우리나라 지형은 동고서저임을 기억하자.
  3. [3] 정확히는 복무 후 2년 동안 헌혈 불가 대상으로 분류되며 예외적으로 혈장헌혈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입대 전까지 전혈헌혈만 해왔던 사람은 전역 후 혈장헌혈을 처음 해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 끔찍한 소요시간 탓에 고개를 가로젓게된다...
  4. [4] 육사39기, 춘천제1고 졸업
  5. [5] 김구가 장제스에 위탁 교육을 맡긴 조선 청년들 중 하나로 국부군에서 장교를 하고 이후 독립군에 편입하였다. 해방 이후 미군정 아래 국군 창립군의 장교가 되고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였으나 이후 여순사건 진압 등에서의 책임을 물어 일본군 출신들(이응준, 채병덕 등)에 밀려 점차 요직에서 밀려났다. 그리하여 한국전쟁 발발 후 청년방위대 고문이었던 장흥 대령의 권유에도 피난을 가지 않다가 한강 철교를 건너지 못한 3명의 장교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에 북한에 납북되었고 대남방송을 하거나 북한에 투항한 국군포로부대를 지휘하기도 했으나 후에 반혁명분자로 몰려 북한 양덕의 수용소에서 죽었다. 위에 대남방송과 거꾸로 총을 돌린 것 때문에 초대 조선경비대사령관이었던 송호성은 대한민국 국군에서 사실상 병적이 말소되어 버렸다. 하지만 최근 송호성이 북한에 납북된뒤 한 대남방송 등은 자의로 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어 논란이 있다.
  6. [6] 초대 1사단장. 김석원은 중일전쟁의 공로로 히로히토 천황에게서 공3급 훈장을 받은 일본 육사 27기 출신으로 1945년 8월 해방 당시 일본군 평양병사부에서 대좌로 근무하고 있었다. 말년에는 성남중고등학교 재단이사장을 지냈다.
  7. [7] 육군 공간사에도 1사단을 공식 입성부대로 명기하고 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 사단 전체를 1계급 특진시키고 1사단의 부대애칭도 "전진"으로 명명한 것이다.
  8. [8] 이조차도 군 작전지경선을 함부로 침범하는 행위이기에 중대 하나만 보낸 것이다.
  9. [9] 김만술 상사 지휘하의 국군 1개 소대(11연대 6중대 2소대)가 중공군 1개 연대와 싸워서 이긴 베티고지 전투가 대표적인 예. 참고로 2소대는 24명이 전사하고 12명이 생환하였다.
  10. [10] 강안경계
  11. [11] 10마리가 넘게 날라다니며 실제로 쏘인 훈련병이 있었다
  12. [12] 5.56mm
  13. [13] 보병사단 전차부대 중에서 최초로 K-1 전차를 장비하였다.
  14. [14] 현병대에서 2014년 대대 편제로 개편되었다.
  15. [15] 정비대대 영외 중대와 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16. [16] 실거리 사격(전차대대 주둔지 바로 옆에 있다.), 수류탄, 지뢰 및 BT(부비트랩), 각개전투숙영
  17. [17] 공식적으로 UN군사령부 소속이지만 1사단에서 행정지원을 받는 형식이다. 일단 신병부터 1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차출하는 형식이다.
  18. [18] 현 육참총장 서욱은 2대대장이었고 지작사령관 남영신은 3대대장이었다. 1군사령관을 역임했던 김영식 장군은 1대대장 출신. 3사 출신 최초의 대장 진급자인 박영하 장군과 합참의장을 지낸 정승조 장군은 연대장 출신. 2군 사령관과 합참의장을 역임한 문형태 장군도 11연대장을 지냈다.
  19. [19] 매년 연대 예하 1개 대대씩 돌아가면서 투입되며 대대 예하 1개 중대씩 임진강 이북, 임진강 이남, 대대 주둔지(잔류 중대)로 돌아가면서 투입하고 있다.
  20. [20] 2005년경 강풍으로 인해 칼날 중간쯤 부분이 부러져서 붙였다.
  21. [21] 자세히 풀어쓰면 1950년 7월 5일, 13연대 재편과정에서 기존 1개 대대에 15연대 2개 대대 병력들을 넣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15연대장이었던 최영희 대령도 13연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에 전 15연대 장병들이 호칭문제(15연대가 다수인데 13연대라니)로 불만이 높아지자, 연대장의 건의로 육본 일반명령(육53호)에 의거 8월 25일부로 현재의 단대호로 개칭되었다.
  22. [22] 다만 해당 연대에서 구 13연대의 역사를 개칭 전(다부동 전투 때)까지 공유하고 있는지, 확인되면 추가바람. 15연대 역대 연대장 액자를 걸어둔 곳에는 1사단 13연대 창설 시 연대장을 제1대 연대장으로 해놓았다.
  23. [23] 사후 준장으로 1계급 추서가 되었다.
  24. [24] 이전에 미2사단 수색대대의 역할을 담당하는 7기병연대 4대대(이하 4/7기병대대) B중대 (B Troop, 4/7 Cavaly)(기갑수색-전차 및 장갑차, 헬리콥터로 구성)가 주둔하고 있었다. 그 당시 기지 명은 Camp Rice였다가 Camp Garry Owen으로 변경되었고, 후에 4/7 기병대대는 선유리의 사단 전차대대 근처의 Camp Palham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해당 부지가 무적칼연대 연대본부 주둔지가 되었다. 이전 당시 무적칼연대 연대본부 주둔지는 육탄연대 연대본부 주둔지가 되었다. 선유리에 있는 Camp Palham은 4/7기병대대 이전후에 Camp Garry Owen으로 다시 변경되고, 4/7기병대대가 미2사단 2여단 소속이었다가, 이라크전으로 해당 여단이 이라크로 파병나가면서 1중기갑여단으로 소속이 변경되고, 1여단 완전 해체시까지 Camp Garry Owen으로 유지되었다. 지금은 해당부대는 완전히 해체된 상태.
  25. [25] 2000년대 초반까지는 A/B/C동 막사가 있어서 A동에는 본부중대, 의무중대, 통신중대, B동에는 수색중대, 전투지원중대가 있었다. C동은 C동창고라는 이름으로 1층만 각종 공구들과 기자재의 창고로 활용되었으나, 2000년대 초반 C동을 전반적으로 개수하여 사단 BOQ로 용도 변경하였다. 2000년대 중반 A동 1층은 100일 휴가대기(출발 전 연대장에게 휴가신고를 하고 연대 수송부에서 문산역까지 차량지원을 해줬다.) 등으로 사용하다가 수송대 독립 후 수송대, 2층은 본부중대, 3층은 통신중대가 사용하였고, B동 1층은 의무중대, 2~3층은 지원중대가 사용하였다. A,B동 막사는 한 내무실당 6~7명 정도가 생활하였고, 내무실마다 화장실이 있었으나 사용은 하지 않았다. A동과 B동이 통합하여 신막사로 다시 지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C동은 BOQ 전환공사 전까지는 1층의 창고 외에는 비둘기들이 살던 비둘기집이었다. 각 방마다 비둘기 똥이 한가득.
  26. [26] 대대급 부대가 주둔했었다.
  27. [27] 다른 대대에서 차타고 나오는 시간만큼 걸어가면 바로 문산읍내다.
  28. [28] 2012년 폐지
  29. [29] 대한민국 최초로 창설된 6개의 포병부대 중 하나
  30. [30] 초대 제1여단장
  31. [31] 2대 제1여단장
  32. [32] 3대 제1여단장 겸 제1사단장
  33. [33] 6.25 전쟁 당시 사단장
  34. [34] 제3땅굴이 발견
  35. [35] 629포병대대
  36. [36] 이게 그때 당시에 사격제원으로 로켓탄(RAP)에 장약을 8호를 사용해 실제로 적 GP 부근 DMZ를 타격할 수 있었으나, RAP탄의 로켓추진마개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발사되어 넘어가지 않고 남측 구역에 낙하하며 끝이 났다. 낙탄 직후 남측에서는 북측에 오발 사고임을 즉각 통보하였고 북측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돗개는 더 오래갔고, 그 후 연습용인지 교보재인지, 상황보고용인지 실제탄과 똑같은 모의탄을 해당대대의 간부들이 와서 받아갔는데, 부대의 간부,병사 할 것없이 그 간부들에게 눈초리를 보냈었다. 정말 위급상황이었는지 방탄과 방독면만 챙겨서 뒷산으로 당장 올라가라 했다.(60미리 포반이였는데 박격포도 두고 갔다...) 저녁이 되어 날이 추워지자 분대장과 선임병들이 내려가 옷만 챙겨서 대기하다가 철수(율곡대대 10년 5월군번)
  37. [37] 참고로 도라산전망대에서 북쪽으론 촬영금지다. 멋모르고 카메라 들이대면 바로 군인들의 제지를 받는다. 전망대에서 북쪽을 볼수 있는 곳 바닥을 보면 노란 선이 그어져 있는데 그 선을 넘어가면 촬영금지고 안넘어가면 촬영허용이다.
  38. [38] 이 K1 전차도 기계화보병사단이 아닌 일반 보병사단 전차대대 중에서는 최초로 K1을 장비한 것이다. 나름 명예라면 명예랄까.
  39. [39] 당시 전방병력을 빼려면 한미연합사 사령관(주한미군 사령관)의 승인이 있어야 했다.
  40. [40] 공군 부사관 중에도 한 분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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