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워싱턴

미국의 초대 대통령

본명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

출생

1732년 2월 22일, 대영제국 버지니아 식민지 웨스트모어랜드

사망

1799년 12월 14일 (향년 67년 295일), 미국 버지니아 주 마운트 버넌

국적

미국

직업

정치인, 군인

배우자

마사 워싱턴

최종 계급

중장, 대원수 (추서)

종교

성공회

신장

188cm

정당

무소속[1]

경력

컬페퍼 카운티 측량기사 (1749년)
버지니아 군대 부관 참모 (1752년)
식민지군 총 사령관 (1775년)
버지니아 주 대표 (1787년)
미국 초대 대통령[2] (1789년 4월 30일 ~ 1797년 3월 4일, 7년 11개월 5일)

서명

1. 개요
2. 생애
2.1. 출생
2.2. 젊은 시절
2.3. 영국군 장교시절
2.4. 결혼
2.5. 미국의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2.6.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2.7. 사망
3. 업적
3.1. 노예 제도에 대한 평가
4. 성격
5. 서브컬쳐에서의 조지 워싱턴
6. 기타
7. 둘러보기

1. 개요

세계사에 등장한 최초의 대통령, 미국 최초이자 최후의 선거 군주[3]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국부, 그리고 새롭게 탄생할 조국의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

다만 President라는 단어는 1775년 대륙 의회 의장(President of the Continental Congress)들이 최초로 썼다. 며칠만 하다 관둔 의장들을 제외한 사실상의 초대의장은 4대 의장이자 독립선언문에 최초로 서명을 했던 존 핸콕[4]이었다. 이 직위는 핸콕 이후 12년간 11명[5]에게 돌아가다가 그 이후에야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이 되었다. 대개 1년 임기로, 독립이 인정된 1783년 이후로는 7명이 있었기 때문에 총 16대 15명. 지금의 미국에서도 President는 연방 대통령과 연방 의회의 상원 의장 두 명이 사용하는 호칭이다.[6]

1달러 지폐에 삽입된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

2. 생애

2.1. 출생

버지니아의 나름대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인 존 워싱턴(John Washington)은 영국의 설그레이브(Sulgrave)로부터 1656년 미국 버지니아로 이민하였으며, 조부인 로렌스 워싱턴(Lawrence Washington)을 거쳐 아버지인 오거스틴 워싱턴(Augustine Washinton) 대에 이르렀을 때, 담배를 주로 경작하는 큰 농장과 상당수의 노예를 보유하고 있는 버지니아의 상류 층에서 중간 급의 위치를 차지하는 가문이 되었다. 워싱턴의 아버지인 오거스틴 워싱턴은 웨스트모어랜드 카운티의 판사이기도 했다.

2.2. 젊은 시절

워싱턴이 11살일 때 아버지가 질병으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이복 형인 Lawrence가 가장이 되었다. 워싱턴은 버지니아 민병대의 지휘자였던 이 이복형의 영향을 많이 받아 군인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해군에 지원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무산되었으며 그는 대신 버지니아 민병대로 지원, 대령의 계급으로 근무했다.

광활한 토지에 대한 측량 업무가 중요하던 그 시절, 워싱턴도 일찍부터 측량 기술을 익혀 17살이던 1749년 정식으로 전문 측량사 업무를 개시하였으며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College of William and Mary)으로부터 측량사 자격증을 받았다. 그 후 시간이 있을 때마다 워싱턴은 측량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2.3. 영국군 장교시절

1753년 조지 워싱턴은 오하이오 회사라는 개척회사의 대리인 자격으로 오하이호 강 지역에 파견되든데 이때 프랑스와 충돌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버지니아에서 영국군 소령 직위를 받았고 이렇게 워싱턴은 영국군에 입대한다. 그러던 중 1754년 7년 전쟁 (Seven Years' War, 1756–63)의 전초적 전쟁이었던 French and Indian War(1754–62)이 벌어지고 조지 워싱턴은 중령직위로 버지니아 의용군을 이끌고 프랑스 식민지 군대와 참전하였다. 1755년 워싱턴은 영국 에드워드 브래드덕(Edward Braddock) 장군의 미국 측 자문관으로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에 미국 최초의 정규 민병대인 버지니아 연대의 연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10개월 동안 인디언과 벌어진 20번의 전투에서 연대 병력의 1/3을 잃는 등 격렬한 전쟁을 지휘하였으며 1758년 퇴임하였다. 워싱턴이 그 후 독립 전쟁에서 발휘한 군 지휘관 및 정치가으로서의 탁월한 능력은 이 참전을 통해 얻게 되었다. 그는 영국군의 군사 전술과 영국군의 장점과 약점을 훤히 꿰뚫게 되었으며, 군 조직, 군사 교육 및 훈련, 군수의 중요성 등을 이 기회를 통해 파악했던 것이다. 지휘관으로서의 워싱턴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앞장 서는, 타고난 지휘관이라는 믿음을 부하들에게 심어 주는 존재였다.

2.4. 결혼

1759년 워싱턴은 마사 커스티스(Martha Custis)라는 과부(3000명이 넘는 노예와 1만 7000에이커의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와 결혼, 당대의 미국 최대 갑부(결혼 후 워싱턴의 토지는 2만 2000에이커가 됨. 워싱턴 자신의 상속재산 포함이다)중 한 명이 되었다. 마사는 매우 지적이고 우아한 태도를 가진 여자로서 광대한 농장의 관리에도 뛰어난 재원이었으며 둘의 결혼 생활은 워싱턴이 사망할 때까지 원만하게 지속된다. 처가 전 결혼에서 출산경험이 있음에도 결혼에서 아이가 없었다. [7] 그리고 처가 사별한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자 입양한 아들인 존 커스티스가 사망하자, 존 커스티스의 아들이자 자신의 외손자 조지 워싱턴 파크스 커스티스를 입양해서 아내의 전 남편의 후손이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참고로 조지 워싱턴 파크스 커스티스는 장성한 자녀가 딸 한명이라서 딸과 사위에게 모든 재산이 돌아갔는데 그 사위가 바로 로버트 E. 리 장군이다. 그리고 조지 워싱턴은 자신의 재산중에 원래 워싱턴 가문의 재산이었던 유산은 조카 부시로드 워싱턴에게 상속한다. 그런가 하면 당시 법적으로 금지된 지역을 개척해 재산을 불렸다는 흑역사도 존재한다. 이 당시 영국 측은 13개 식민지(미국)가 끊임없이 땅을 개척하도록 놔두면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사사건건 부딪히고, 그 세력이 본국에서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개척에 상당한 제약을 가했고 심지어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으로는 가지도 못하게 법으로 금할 정도였다.

2.5. 미국의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유럽에서 7년 전쟁이 벌어지자, 신대륙에도 그 영향이 미쳐 프랑스-인디언 전쟁(전역)[8]이 발발, 조지 워싱턴은 다른 영국계 식민지 유지들과 함께 영국군을 지원하는 식민지 의용군에 가담 나름의 공로를 세우나, 식민지 전쟁에 많은 예산과 국력을 소모한 영국 정부가 이 빵구를 매꾸려고 식민지에 세금을 늘리고, 새로 편입된 식민지의 원주민을 다독이기 위해 식민지인의 구 프랑스 식민지 지역으로의 개척을 금지시키자, 이런 불만들이 쌓여서 독립전쟁이 발발한다. 전의 전쟁에서 인망을 보인 워싱턴은 식민지군(Continental Army) 총사령관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초반에는 영국군에게 연전연패했고[9], 이후 영국에게 이를 갈고 있었던 프랑스, 네덜란드 등으로부터의 지원에 힘입어 영국군을 소모전의 늪으로 끌어들였다. 결국 토벌군은 소모전에 승리를 했음에도 계속 끌려다가 마지막 요크타운 전투에서 패해서 항복, 그길로 식민지에서 손을 뗀다.

워싱턴이 없었으면 미국 독립전쟁은 얼마 안가서 끝났을 것이란 것이 중론이다. 일단 당시 왕당파에 비해 독립파 자체가 지지율이 그다지 높지도 않았고(현재 연구로는 지지율은 거의 비슷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인망이 없는 사람이 독립파를 지휘했으면 바로 민중의 지지를 잃고 독립파는 망할 판이었다. 또한 당시 미국군을 지휘할만한 역량을 가진 인물은 극도로 부족했는데, 그 이유는 영국군의 보조병격이었던 식민지군 출신들은 원주민 또는 (비슷한 처지의) 프랑스 식민지군이나 상대해 본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영국군 같이 고도화된 유럽의 선진군대와 싸운바는 없었기 때문이다. 초기의 영웅이자 후반의 배신자인 베네딕트 아놀드나 대니얼 모건, 너대니엘 그린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중에 총사령관이 가능한 인물은 베네딕트 아놀드 정도. 반면에 호레이쇼 게이츠를 비롯해서 한 줌되지 않는 군대를 말아먹을 인물은 고위층에 많았다. 더구나 워싱턴은 미국 독립전쟁을 소모전으로 규정하여 전개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모습은 베트남 전쟁 시기의 호치민이나 보응우옌잡과 상당히 유사하다. 전술적 능력은 부족했지만 대전략을 진행하는데 구심점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어쨌든 전술적으로는 대단한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인품과 친화력, 그리고 리더쉽으로 말 많은 13개 주를 단합시켜 끝내 독립을 쟁취한 것은 그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2.6.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승리 후 그는 미련없이 군권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다른 사람들의 추대로 결국 미합중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10] 만장일치로 결정된 대통령직은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11] 대통령으로써의 평가 또한 성공적이다. 그는 이 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던지라[12] 임기를 2번 치르고 물러나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당시 정당간의 극심한 대립을 어느정도 통솔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밖에도 내각(cabinet) 시스템, 국가 은행 등, 헌법에 기술되지 않은 대통령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그 후 2번의 임기가 끝나자 워싱턴은 바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미국 법 어디에도 대통령직은 2번까지만이라는 말이 없었지만, 워싱턴이 2번만 하고 물러난 뒤로 다른 사람들도 2번 넘게 대통령직을 하지 않았다.[13] 그러다가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4회 연임을 한 뒤에 1951년에야 법으로 4년 중임제가 명시되었다.

이 사실이 얼마나 대단하냐하면, 권력을 잡았다가 놓기란 정말 쉽지 않다. 특히 조지 워싱턴은 2번의 임기후에 워낙 미국을 잘 이끌어서, 미국 온 국민에게서 추앙받았었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2번 넘게 집권하게 되면 왕권이 된다는 생각에 후회없이 내려오는 어마어마한 일을 했고, 시작을 정말 잘 끊은 것이 지금 바로 미국의 민주주의와 대통령제가 문제없이 돌아가는 이유라고 볼 수도 있다[14]. 사실 이 그가 보여준 이 모범적인 행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워싱턴은 독재자가 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상기했듯 민중의 지지도 있었고 정부권력을 확고히 쥐고 있었으며, 미약하긴 해도 군대마저 그의 통솔 하에 있었던데다 본인이 군인이기도 했다.[15] 더군다나 대통령의 개념이 잡히지 않았을 시기라 마음만 먹었다면 종신집권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유혹을 이겨냈다. 그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미국에서 최고의 대통령을 뽑으라면 여론에서 톱 5안에 거의 반드시 들 정도로 미국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2.7. 사망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지 2년후인 1799년 12월 14일에 사망했다. 워싱턴의 공식 사인은 '무리한 과다출혈'이다. 워싱턴은 눈내리는 날 무리하게 말을 타고 산책하다가 폐렴에 걸렸고, 치료를 하기 위해 무리하다고 생각될 만큼 많은 피를 뽑았다.(당시 서양에서는 그때까지도 병이 나면 무작정 피를 뽑는 '사혈치료'가 유행했다.) 결국 5파인트(약 2.35리터)나 되는 피를 뽑은 워싱턴은 폐렴에 걸린 지 3일만에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3. 업적

평화로운 권력이양(Peaceful Transition)을 몸소 보여주며 이를 미국의 정치적 전통으로 만들었다.

미국이 개국이래 독재자 없이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펼 수 있었던 것은 이 사람의 역할이 가장 컸다. 당시 미국이 강대국이 아니었고[16] 그와 같이 생사고락을 같이 해온 나름대로 자부심이 쩌는 관료들과 좁아터진 백악관에서 미래가 불안한 신생국가의 미래를 도모하며 사느니 316명(워싱턴이 사망할 때의 기준)에 달하는 노예를 부리며 자신의 별장에서 한가로이 사는 것이 그에게 더 나았기에 대통령직에 집착하지 않았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권력욕을 과소평가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개발되지 않은 광대한 영토와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무수한 관리의 등용을 실시하고 법률의 제정, 시행을 시작한 신생 독립국의 체계와 국력을 개인의 재산과 비교하여 미약하다고 할 수는 없다. 거기다 당시에는 왕이나 황제가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지도자 역할이였으며 [17], 21세기에서도 형식상 민주국가에서 왕처럼 행동하는 지도자가 상당수라는 것을 보면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스스로 물러난 워싱턴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 수 있으며 나무위키에서도 박수칠 때 떠나라의 대표적인 사례로 나오기도 한다. 애초에 초기 미국의 먼지만큼도 안 되는 권력과 권한을 차지하려고 아귀다툼하는 무수한 사람들을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6.25로 나라 콩가루 된 상태[18]에서도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뭐 하고 있었나 보자.

워싱턴이 권력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으며 상당한 영토를 보유한 한 나라의 시조가 되어 평생, 자손 대대로 왕이 되거나 로마의 종신 독재관처럼 권력을 사용할 기회를 버렸다는 점에서 워싱턴이 미국과 민주주의에 기여한 바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의 고별사(Farewell Address)[19]에서도 보이듯이, 워싱턴은 진정한 힘은 그 힘을 버리는 것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게 쉬운 일이면 이런 쉬운 일도 못한 인간들은 뭘까?

워싱턴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시절에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역시나 왕이라는 생각 때문에 조지 워싱턴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2번의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마운트 버논(Mount Vernon)으로 낙향하여 여생을 보냈으며 이를 통하여 최고의 권력이 의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도 미국 국회의사당에 가면 정중앙 돔의 천정에는 조지 워싱턴이 당시 주 갯수였던 13명의 천사에 둘러 싸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조지 워싱턴을 신격화 한 것이다. 원래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처럼 국회 의사당의 지하에 조지 워싱턴의 을 안치하려고 했지만 미망인 마사는 이를 거부했고 워싱턴의 관은 생전에 살았던 마운트 버논에 만들어진 개인 영묘에 안치된다. 초대 대통령이 국회 의사당 지하에 마련된 묘실을 이용하지 않자 이후에 어느 누구도 이 자리를 이용할 수 없었고 현재는 "워싱턴을 안장하려 했던 자리"로 팻말만 붙어 있고 비어있는 상태다.

임기 중, 국채 상환을 위해 위스키에 대한 과세를 부과했는데 이에 반발한 농민들이 위스키 폭동 을 일으킨다. 위스키는 보관기간이 한정된 곡물이라는 상품을 보다 장기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또 화폐를 대신하는 현물이었다. 무엇보다 곡물의 판매가 생각보다 힘들었던 북부지역에서는 위스키를 통한 생활유지가 컸다. 이를 연방정부(중앙정부)가 과세하고 나서자 반란을 일으켰고 워싱턴은 직접 자신이 출정하여 토벌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줬던 바 있다. 위스키 폭동으로 인해 연방정부가 강력한 힘을 과시함에 따라 그 권한이 강하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준 사례가 되기도 하였다.

일각에서 흑인 노예랑 불륜을 저질렀고, 한겨울 엄동설한에 자신이 사랑하던 흑인 노예를 만나러 가다가 폐렴에 걸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워싱턴은 천하의 바람둥이이자 호색한이란 주장이 있긴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폐렴에 걸려 죽은 건 맞지만 흑인 노예와의 불륜설은 증거가 없다. 흑인 노예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았던 미국의 국부는 토머스 제퍼슨이다.

흑인노예와는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염문설은 많다.[20] 독립전쟁 때 자신의 부관에게 "애인을 기쁘게 하려면 열심히 자신의 무기를 갈고 닦아라"라는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불임인 분이 이런말 하는게 어색한건 기분탓..

3.1. 노예 제도에 대한 평가

노예 제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지만, 스스로는 노예를 거느렸다. 한국에서 알려진 통설과는 달리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체로 노예제도에 비판적이었다. 다만 노예제도의 존폐를 헌법에 명시하면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북부와 찬성하는 남부의 연합이 균열되어 연방이 와해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개별 주에 맡기는 정책을 썼다. 워싱턴, 제퍼슨, 매디슨은 노예제가 조만간 자연스레 폐지될 것이라고 생각했다.[21] 당시의 노예제 인식은 "필요악" 수준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많은 이론들이 나와서(ex:자본주의의 빈부격차에 의한 갈등을 완화시킨다-노예니까 가난해도 문제없음!) 정당화되었다.

워싱턴이 결혼과 함께 생활하고 항상 은퇴 후에 돌아갈 곳으로 생각했던 Mount Vernon은 결혼 당시에는 50명의 노예가 있었지만 사망 직전에는 300명이 넘는 숫자로 늘어났는데 운영했던 농장의 규모나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그 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워싱턴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아이돌이라 불리울 정도로 인기가 많았으며 워싱턴이 사망할 때까지 지냈던 Mount Vernon의 노예들은 단지 잡일의 역할이 아닌 대장장이나 천을 짜는 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특기를 발휘할 수 있었다. 워싱턴은 직접 작성한 유언장에 독립전쟁때부터 자신을 수행한 비서 흑인을 자신의 사후에 자유인으로 풀어주도록 했으며 Mount Vernon에 있는 나머지 노예들은 부인 Martha Washington이 사망한 후에 모두 자유인으로 풀어 주도록 하였다.

4. 성격

초상화를 보면 상당히 무뚝뚝하고 권위적으로 생겼지만, 그와는 달리 대단히 자유분방하고 쾌활한 사람이었다고 한다.[22] 관저에서 카드놀이를 열광적으로 즐겼고, 무료하면 관저를 나서 여우 사냥에 심취했으며 다과회도 자주 열어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또한 미식가라서 음식에도 엄격했으며 특히 포도주에는 사족을 못 썼다고. 어렸을 때부터 말타기 등을 즐겨서 그런지 외모는 정말 장군감이었다고 한다. 어깨는 딱 벌어졌고, 키도 187cm로 매우 컸다.[23]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천연두를 앓아서 곰보였는데, 이오시프 스탈린과 마찬가지로 초상화에는 이것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게다가 독립전쟁 이전부터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아메리카 대륙 버지니아 식민지 사교계에서 알아주는 사람이었다.

5. 서브컬쳐에서의 조지 워싱턴

  • 게임 Liberty or death
코에이의 역사게임 Liberty or death에서 미국측 총사령관 캐릭터로 나오는데 다른 코에이의 역사 게임의 주인공격 캐릭터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칭기즈 칸이 전투형 캐릭터인데 비해 워싱턴은 정치형 캐릭터에 더 가깝다. 사실 워싱턴은 총사령관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인물이었다. 전투력만 따지면 베네딕트 아놀드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문명 4문명 5에서 미국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문명 4의 경우 확장팩을 모두 설치했다고 가정할 때 프랭클린 루즈벨트, 링컨과 공동 출연.
티미의 못말리는 수호천사에서도 등장. 여기서는 티미가 역사 숙제를 하기 위해 수호천사에게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을 불러오라는 소원을 빌어서 등장. 여기서는 나무를 보자마자 도끼로 찍을려고 발작을 한다. 후술할 벚꽃나무 일화의 패러디인듯. 이때 발작하면서 외치는 대사인 "MUST CHOP WOOOD!!!!!"는 밈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성우는 코스모와 조르겐 등을 맡고 있는 대런 노리스. 여기서 나온 워싱턴의 필수요소 3가지는 흰 머리, 나무틀니, 자유 정신(...)이라고 한다. 참고로 티미 엄마가 제퍼슨을 보고 니켈(5센트)에 그려진 사람이라고 신기해하자 "하, 니켈이라고! 나는 1달러에 있다고! 너보다 20배는 더 잘났단 말씀!"이라며 놀렸다.근데 제퍼슨은 2달러에도 그려져 있고 그 뒤에는 100배가...
흥미롭게도 이 게임에서 조지 워싱턴은 주인공의 협력자도 되지만 동시에 원수도 되고, 선하고 정의로운 성격이지만 동시에 악행도 저지르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심지어 DLC에덴의 조각에 지배당한 조지 워싱턴이 절대군주가 되어 폭정을 자행하는 환상이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조지 워싱턴(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항목 참조..
진짜 조지 워싱턴은 아니지만, 그 사람을 모델로 한 19세기형 자동 인형 살인 기계 적, '기계 애국자'가 나온다.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적 참고. 팬들과 게이머들 사이에선 '좀비 로봇 워싱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코믹 어드벤처 게임인 이 작품에선 황당하게 나온다. 과거로 간 주인공 중 하나인 호기가 게임 진행을 위하여 미래에서 건네받은 폭발하는 시가(담배)를 그에게 주는데 고맙다고 그 시가를 피다가 폭발하면서 이빨이 다 부숴진다. 덕분에 이빨이 하나도 없는 확 늙어버린 모습으로 변하는데 역시 미래에서 건네받은 딱딱 움직이는 틀니를 주면 그걸 끼는데 이빨이 딱딱 움직이는 지라 얼굴이 흔들리면서 마치 추워보인다고 존 핸콕이 토머스 제퍼슨에게 모닥불을 피우게 한다.나중에는 그 모닥불을 엄청 화력이 높게 만들면 불이야~ 소리 지르면서 핸콕, 제퍼슨과 같이 창문을 깨고 달아나는데 대머리(가발)이다. 특별히 병신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그냥 가볍게 웃기게 만든 수준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말트루언트를 막기 위해 타임 사이클을 통해 1773년으로 시간 이동한 벤과 루크가 만나며 배관공의 일원이란 설정이 붙었다. 성우는 David Kaye.
작중 세계관에서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브리타니아 공작에게 회유되는 바람에 미국 독립전쟁에 실패한다고 나온다. 여기서는 미국 독립 전쟁이 아닌 워싱턴의 반란으로 나온다. 대신 영국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이 건국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5.1.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 캠페인 등장인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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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

대전사

아시아 왕조

액트1. 피

액트2. 얼음

액트3. 강철

액트1. 불

액트2. 그림자

액트1. 일본

액트2. 중국

액트3. 인도

주인공

모건 블랙

존 블랙

아멜리아 블랙

나다니엘 블랙

체이튼 블랙

사쿠마 키치로

지안 후앙

나니브 사히르

서브
영웅

엘리자벳 램지

카넨케

조지 워싱턴

성난 말

토리이 모토타다

라오 첸

프라바르 파텔

사힌

노나키

쿠퍼 소령

카넨케

도쿠가와 이에야스

알레인 매그넌

워릭

피에르 보몽

스벤 쿠첼러

윌리암 홈

이시다 미츠나리

왕 진하이

조지 에드워드슨

델가도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NPC

칠체

스튜어트 블랙

시몬 볼리바르

노나키

아멜리아 블랙

-

-

바하두르 샤

조지 워싱턴

칠체

미션에서 주요 인물이자 주인공 가문인 블랙 가문의 조력자로 등장. 성우는 홍성헌. 영국군 해군장교[24]로 나오며 캠페인 2장 '얼음'에서 주인공인 존 블랙과 7년 전쟁 속에서 합동작전을 펼치며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5.1.1.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 대전사

사진 오른쪽의 인물. 왼쪽은 나다니엘 블랙

성우는 오리지널과 마찬가지로 홍성헌. 오리지널에서는 그냥 장교였지만 확장팩의 캠페인 '불'에서는 잘 알려진 독립전쟁의 총사령관으로 등장. 존의 아들인 나다니엘 블랙의 보좌를 받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오리지널과 확장팩에서의 스킨이 다르며, 체력이 좋고 공격할 때 군도를 들고 직접 공격한다. 컨트롤을 안 하면 다른 유닛들이 원거리 공격을 하는데 워싱턴 혼자 군도 들고 돌격하다가 쓰러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래 살려가면서 컨트롤해봐야 특별히 이득이 있는 스팩도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제일 먼저 앞세워 일점사를 받아내게 하고 다른 유닛들로 공격을 하면 유닛 손실 없이 캠페인을 클리어 할 수 있다. 체력이 네자릿수라 은근히 오래버틴다.

5.2. CF

야 이 영국군 놈의 새끼들아! 거기 꼼짝말고 있어! 내가 지금 닷지를 몰고 가서 네놈들의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 킬러조

크라이슬러닷지 챌린저(Dodge Challenger) 광고에 등장했다. 친히 자동차를 운전해 영국군에 돌진해서 격퇴시킨다(...)는 내용. 이게 그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Boston Car Party)이다 혹시나 정말 믿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이다. 이건 구라다

6. 기타

  • 오늘날 워싱턴의 얼굴은 1달러짜리 지폐에 새겨져 있으며 이유는 가능하면 많은 이들이 그를 보게 하기 위해서라고.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대통령의 권위를 확립한 성공적인 대통령으로서 워싱턴은 모든 미국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미국인들은 그딴거 크게 신경 안 쓰고 자주 지폐를 구기고 주머니에 쑤셔넣고 다니지.[25]
  • 1달러 지폐에 실려있는 워싱턴의 입이 부풀려져 있는데, 틀니를 껴서 그런 것이다. 워싱턴은 양치를 꼼꼼히 하는 편이었으나 그 당시 치약은 재료부터가 병맛인지라(담배가루를 치약으로 썼다) 워싱턴은 젊은 나이에 가 빠져 틀니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틀니는 성능이 안 좋아 항상 냄새가 났고 당시 의치 재료로 많이 사용한 것은 하마바다코끼리의 엄니였는데, 사용하다 보면 미세한 구멍에 찌꺼기가 끼어 아무리 닦아도 냄새가 났다. 밤이면 뽑아서 물에 담가 놓고 하루 여섯 번씩 닦아도 냄새가 났다고 한다. 워싱턴은 그 냄새가 역겨워 항상 입을 부풀린 채 다녔다. 워싱턴의 초상화는 매우 다양한 버전으로 존재하는데 표정이 일그러져있는 그림도 다수 보이며 이는 새로 장착한 틀니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경우였다고 한다.
  • 더불어 미군에서도 가장 높은 계급장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비록 그가 전역할 땐 중장(Lieutanant General)에 불과했지만 19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그를 3계급 특진하여 대원수(General of the Armies)로 추서한 것.별이 6개![26]
  • 워싱턴의 벚꽃나무 이야기가 유명한데, 그가 도끼로 아버지가 아끼는 벚꽃나무를 베었을 때 그가 솔직하게 말하자 아버지가 용서해줬다는 것이다.[27][28] 참고로 아메리칸 조크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선생님 "조지 워싱턴이 벚나무를 자른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그를 용서했습니다. 왜 일까요?"

학생 "네, 조지 워싱턴은 아직 도끼를 손에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패륜

그런데 정말로 손에 도끼가 들려있었으면 용서해줬을 것 같다.아, 손도끼! 훌륭한 대화수단이지
  • 위스키와 인연이 좀 있는 인물인데 영국과의 전쟁으로 국고가 바닥나자 위스키에 세금을 매겼다가 폭동이 일어나서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그런데 반란은 일으킨 쪽에도 사정이 있는 것이, 애팔레치아 개척지역민들은 험난한 산맥으로 곡물을 나르는 대신 남는 곡물로 만든 위스키를 운반하는 걸 선호했을 뿐더러 현금이 귀했던 개척지의 사정상 위스키는 일종의 화폐로도 사용되어 왔었다. 워싱턴 정부는 위스키세를 사치세로 생각했는데 이들에게는 소득세가 된 셈. 결국 반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워싱턴 본인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토벌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직접 군사를 이끈 최초이자 최후의 사건이었다. 이렇게 보면 워싱턴과 위스키가 악연일 수도 있겠지만...그가 퇴임하던 해, 워싱턴은 버지니아주에 증류소를 세웠고 사망하기 전 까지 미국 최고의 양조업자가 되었다고 한다.
  • 청탁금지법을 시행하기도 했다.[29]
  • 역사가들이 당시 문서를 찾아내어 그의 사생활을 공개했는데, 겉보기와 달리 멋부리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카스웰 메시 향수를 즐겨 썼고, 틀니를 항시 착용했으며 파우더를 뿌린 가발을 썼다. 그런데 이 틀니가 바다코끼리 엄니를 갈아서 만든 거였는데, 재료의 성질상 기공이 많아서 쉽게 변색되고 심하게 냄새가 났다. 초상화 속 워싱턴의 얼굴이 찌푸려진 이유 중 하나가 이 틀니의 냄새였다고 한다.
  • 독립군 시절에 영국군과 내통하던 요리사가 조지 워싱턴을 독살하려고 한 일화가 있다. 그 요리사는 조지 워싱턴이 평소 즐겨먹는 요리에 독을 바른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 독이라는 게 다름이 아니라 토마토(...). 그 요리사는 토마토를 바른 요리를 워싱턴이 깨끗이 비우자 계획이 성공했다고 생각해 영국군에게 밀서를 보낼 정도. 근데 토마토가 독이 들어있을 리가 없었고(...)[30] 워싱턴은 아~무런 탈 없이 잘만 먹었다고 한다.

7. 둘러보기


  1. [1] 연방주의자로 간주되기도 한다.
  2. [2]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왕정이 보편적인 정치체제로 존재하던 시대에 왕을 대신할 수 있는 연방의 최고지도자로 신설된 직책이였다. 즉 미국의 초대 대통령일 뿐 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3. [3] 일단 세계 최초의 대통령 선거가 일종의 선거군주제의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고 조지 워싱턴 자신도 스스로 왕처럼 행세했지만 약속된 임기를 지키면서 직간접적으로 임기제와 공화제를 도입해 대통령직의 기틀을 잡았다.
  4. [4] 독립선언서에 제일 먼저 서명하면서 "크게 써야 영국 왕 조지 3세가 돋보기 없이도 이름을 볼 수 있지 않겠소?"하면서 큰 글씨로 서명을 한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존 핸콕이란 이름 자체가 '자필 서명(autograph)'이란 뜻으로 쓰인다. 가령 'Please put your John Hancock'이라고 하면 '여기 서명 좀 해 주세요'라는 의미다.
  5. [5] 핸콕이 두 번 했다. 첫번째엔 2년 5개월, 다음번엔 7개월.
  6. [6] 2001년 미 상원에서는 부시와 대선에서 붙었다가 낙선한 부통령이 겸임하고 있던 상원의 'President' 자격으로 직접 부시의 'President' 당선 확정 선언을 하게 되는 장면이 연출되며 한동안 놀림거리가 되었다. 덧붙이자면 하원 의장은 'Speaker'로 불리므로 여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7. [7] 워싱턴이 10명의 사생아를 두었다는 낭설이 있는데, 근거가 없다.
  8. [8] 프랑스 + 원주민 대 영국 식민지군의 전쟁이라고 알려졌지만 영국군과 프랑스군 모두 병력과 보급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 각기 다른 원주민 부족과 연합했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 7년 전쟁참조
  9. [9] 당시 영국 육군은 소수정예로서 병력수는 적었지만, 전투력은 세계 최강이었다. 이랬으니 민병대에 불과한 식민지군이 패하는건 당연. 더구나 워싱턴은 몇번의 전략적 실수를 했다. 이 중에는 치명적일뻔한 실수도 몇번 있었는데, 정말 천운이 따라서 넘어갈 수 있었다. 반면 영국군으로서는 정말 더럽게 운이 없었다.
  10. [10]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워싱턴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아니다. 처음 독립한 13개주의 모임인 대륙회의가 14년 동안 헌법을 만들고 합중국의 기초를 닦는 동안 각 주의 대표자들이 돌아가면서 대통령직을 짧은 기간 맡았었기 때문. 하지만 이 당시에는 회의의 사회자 성격이 더 강했고 각각의 사정으로 사퇴하곤 해서 1년이상 임기를 맡은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다. 진정한 국가의 수장으로서의 초대 대통령은 워싱턴이 맞다.
  11. [11] 재선때도 그랬는데, 다만 부통령은 존 애덤스와 조지 클린턴이 경쟁을 통해 선출되었다. 단 1820년 제임스 먼로의 재선 선거에서는 후보자가 한 명 뿐이었는데, 선거인단 선거 지지율은 100%였지만 존 퀸시 애덤스를 찍은 반란표로 선거인단 만장일치는 없었다.(228/231)
  12. [12]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영국 왕의 이름(조지)과 같았고, 그의 행동은 왕이나 마찬가지기는 했다. 전임을 본게 없으니 워싱턴은 "전하"라는 호칭으로 자신을 부르게 했으며 유럽의 왕들처럼 스스로를 3인칭으로 불렀다. 초기의 대통령의 개념은 "투표로 뽑는 왕"과 같은 것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래서 첫단추가 중요하다는 것.
  13. [13]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경우 세 번 출마해서 세 번 다 최다 득표를 했지만, 두번째 선거 때는 선거인단 수에서 패해 당선되지 못하고 세번째에서야 재당선되었다. 즉 연임이 아니라 두 임기를 나누어서 했다는 말. 율리시스 그랜트시어도어 루즈벨트의 경우 한번 연임 후 퇴직했다가 나중에 3선에 도전했지만 당선에는 실패했다.
  14. [14] 참고로, 남아메리카에도 조지 워싱턴 격의 인물이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등의 여러 나라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시몬 볼리바르이다. 그는 미국을 롤모델 삼아서 그란 콜롬비아라는 연방국가를 세우고 스스로 연방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나, 각지에서 속출하는 반란을 막는다는 이유로 종신 대통령을 자칭했다가 대통령직에서 축출되고 객사했다. 조지 워싱턴과는 달리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해서 망한 케이스. 다만, 진짜로 박수칠 때 떠났으면 그란 콜롬비아가 뿔뿔이 분열될 수도 있었다는 분석도 있어서 평가가 좀 엇갈린다. 어차피 분열될 나라는 분열됐다 하지만 미국도 노예제 문제로 분열되었다 남북전쟁을 거치고 나서 완전히 통합되었으니 결국은 워싱턴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사실이다.
  15. [15] 독립투사들이 독재자가 되는 루트를 밟는 경우는 흔하다. 로버트 무가베도 독립투사였으나 결국 독재의 길로 접어들어 나라를 말아먹었다.
  16. [16] 물론 미국의 지리조건과 그 밖의 요건을 보면 상위권 지역강국 수준은 되었다. 현재로 따지자면 캐나다 수준.
  17. [17] 조지 워싱턴이 왕처럼 행동하고 말 했다는 루머가 이곳 나무위키를 포함해 인터넷에 떠도는 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대통령에게 유럽의 왕이나 황제에 준하는 의례를 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은 부통령 아담스(후일 대통령이 되는)였으며, 워싱턴 자신은 의회에서 대통령의 호칭을 정할 때 "전하(His Mejesty)"같은 호칭대신 "대통령님(Mr. President)"이라고 정하자 받아들이며 "드디어 일이 끝나서 좋다. 다시는 이 이야기 안했음 좋겠다"식으로 일을 끝맺었다.
  18. [18] 이 때에는 군사력도 경제력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던 전세계 최약소국 중 하나였다. 현재로 따지자면 소말리아, 말라위에 비교하면 되겠다.
  19. [19] 명칭은 저렇지만 워싱턴은 이를 직접 연설하지는 않았고 1796년 9월 17일 필라델피아의 한 신문에 내용이 발표되었다.
  20. [20] 고대 노예제에서도 그렇지만, 애당초 미국에서 여성 노예는 불륜에서 예외적인 존재로 취급되어, 주인이 흑인노예와 사생아를 낳았다고 해도 좀 쑥쓰러울 뿐 크게 비난받지는 않았다. 남부 대농장 주인은 예외없이 이런 짓을 일삼았다고 하며, 유명한 미니시리즈 "뿌리"에서도 쿤타 킨테의 10대 딸이 부모로부터 격리되어 팔려가자마자 백인 주인이 "신고식"을 하겠다며 덮쳤고, 그 이후 출산하게 된다. 현재 미국흑인의 유전자에 10~20%의 백인유전자가 섞인 것은 바로 이때 수많은 흑인 여자 노예들이 백인남자에게 범해져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21. [21] 이 생각은 남부에서 면화농업이 번성하기 전까지는 거의 맞았으나 면화농업이 번성하자 노예제는 오히려 강화된다.
  22. [22] 사실 무뚝뚝한 이미지는 입을 다문 초상화 때문에 생겼는데, 입을 꽉 다문 이유는 후술할 틀니 때문이었다
  23. [23] 당시 유럽 남성의 평균 신장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165cm ± 3cm 전후였다. 2014년 현재 미국 백인 남성의 키는 179cm이므로 현재 관점에서도 상당히 큰 키다.
  24. [24] 사실 Colonel을 오역한 고증오류(...)다.
  25. [25] 대한민국천원권 지폐처럼은 아니지만 물가 사정상 거래의 주역은 안 되어 잔돈 취급을 당하기 때문이다. 흔히 볼 수 있는 1달러 지폐들은 갓 찍어낸 것이 아니면, 대부분 지폐는 구겨져 있거나 심지어는 기괴한 낙서가 적혀져 있는 것도 다반사다. 참 이래저래 험한꼴 많이 보는 지폐다. 워싱턴 지못미.
  26. [26] 같은 영어명으로 존 조지프 퍼싱도 받았지만 당시 군대 계급으로 봤을 때 이 경우는 대원수가 아닌 원수이다. 대원수 항목 참조.
  27. [27] 이 이야기는 사실 목사 행세를 했던 외판원 웜스란 사람이 위인전이 너무 얇다고 생각해 맘대로 붙인 이야기라고 한다. 이 Parson Weems는 벤자민 플랭클린이 소년 시절에 물건을 팔면서 가격을 깎고자 하는 손님에게 가격을 계속 올리면서 시간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간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더군다나 원래는 워싱턴을 포함한 형제들이 같이 놀다가 벚꽃나무 가지를 꺾어먹는 것이었고, 이 때 무려 4살짜리 막내 워싱턴이 자기가 했다고 말했다는 엄청난 내용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현재의 내용으로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바람.
  28. [28] 이 웜스라는 남자는 어쌔신 크리드 3에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으며 매우 영악한 쥐새끼라고 까이는데, 코너가 워싱턴 암살 기도에 대해 말하자 "워싱턴은 주피터의 환생이자 이 나라를 자유하게 할 뿐만 아니라 위대한 국가로 키워낼 인물이니 죽어선 안된다."라며 (당시로써는)엄청나게 말도 안되는 허풍을 떨어댄다. 이 윔즈라는 남자는 나중에 미국 국부들에 대한 위인전도 썼다. 이 아저씨가 다른 국부들을 어떻게 묘사했을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9. [29] 그러나 규정이 생각보다 빡세서 선물을 주고 받을 수가 없고 발각시에는 무조건 폐기처분해야 한다.
  30. [30] 사실 줄기와 잎 쪽에 독이 있기는 하다. 근데 당시에는 그런 지식이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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