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르 두다예프

Джоха́р Муса́евич Дуда́ев, 1944.2.15 ~ 1996.4.21

러시아로부터 체첸의 분리를 주도했다. 원래는 소련 공산당에도 가입했을 정도[1]로 딱히 종교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되는 것을 보고, 이슬람교를 내세우며,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했다. 한때는 서방에서 체첸 독립의 영웅처럼 칭송받았으나, 연이은 체첸 반군의 테러와 막장화로 인해 체첸에서도 그의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는 편.

체첸 지역의 얄호로이라는 시골동네에서 태어났으며 카자흐스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되서 소련 공군에 입대하고 폭격기 파일럿이 되었다. 이어 소련 공산당에 참여하였으며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무자헤딘 측에 맞서는 데 공로했으며 상까지 받았다. 그리하여 공군 소장까지 출세했다. 원래 체첸계 민족은 불온민족으로 간주되어 소련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출세했다는 것을 보면 군인으로서의 능력은 있었던 모양.

소련 붕괴 당시 에스토니아에서 반소 봉기가 터지자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라는 명령을 묵살하고 에스토니아의 독립이 유혈 사태 없이 이루어지게 했다.[2] 그리고 그는 체첸으로 돌아가 분리주의 활동을 시작한다.

1991년 11월 9일 체첸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그는 연달아 독립하는 소련 내 공화국들에 이어 어김없이 독립을 선언했으나, 안그래도 '공화국'이라는 큰 단위들이 처참하게 떨어져 나가는 상황에서 '자치 공화국'이라는 러시아 내 소속국들이 무너질 걸 우려한 러시아 정부는 체첸의 분리를 인정하지 않았다.[3] 물론 어찌어찌 힘을 모아서 러시아의 실효지배를 간신히 막는데 성공했으며, 옆나라이자 같은 캅카스계 국가인 인구시를 끌어들여 '캅카스 연합국'을 건국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고, 다 떨어져 나가고 홀로 외로이 남은 러시아 역시 체첸의 분리를 승인하지 않자, 결국 무력투쟁을 선포한다.

그러자 러시아는 수도 그로즈니 내의 민/군 공항들을 폭파시키는 것을 시초로 체첸전쟁을 일으켰고, 두다예프는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바탕으로 게릴라를 형성하여 저항을 이어나갔다. 러시아군은 그로즈니를 함락했고, 두다예프 세력은 남부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후에 반격으로 그로즈니로 돌아왔으나, 러시아 정보국 요원이 그의 위치를 알아냈고, 위성전화기로 외부와 통화하는걸 A-50 조기경보기가 역탐지하여, 위치를 알아내, Su-25에서 투하한 레이저 유도폭탄에 피탄되어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체첸의 독립을 천명했지만, 근대 국가 수반으로서의 능력은 전무했으며 현재 막장 테러 집단이 된 체첸 반군을 조장하였다는 비판을 받는다.


  1. [1] 일반적으로 소련과 중국 공산당은 종교를 가진 사람은 당원으로 받지 않는다. 특히 소련 공산당은 엄격해서, 자식에게 세례를 준 당원은 출당시켰을 정도. 하지만 모든 공산당이 그런것은 아니고, 쿠바 공산당은 카스트로 말기 종교인의 가입을 허용했고, 아랍지역의 공산당에는 무슬림-기독교인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2. [2] 지금도 그가 근무했던 에스토니아 제2의 도시인 타르투에는 그가 집무실로 쓰던 호텔방이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고,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는 등으로 두다예프를 기념한다.
  3. [3] 체첸은 러시아 내 자치 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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