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디콘

<span style="text-shadow: 0 0 6px #000000;color:#000000">프레디 머큐리</span>

<span style="text-shadow: 0 0 6px #000000;color:#000000">존 디콘</span>

<span style="text-shadow: 0 0 6px #000000;color:#000000">로저 테일러</span>

<span style="text-shadow: 0 0 6px #000000;color:#000000">브라이언 메이</span>

존 디콘
John Deacon

본명

John Richard Deacon
존 리처드 디콘

생년월일

1951년 8월 19일(68세)

출생지

잉글랜드 레스터

국적

영국

신장

180cm

직업

베이시스트[1]

학력

런던 첼시대학교(現 킹스 칼리지 런던) 전자공학과

악기

베이스 기타(은퇴)

소속

배우자

베로니카 테츨래프(1975~)

자녀

로버트 디콘(1975~), 마이클 디콘(1978~), 로라 디콘(1979~), 조슈아 디콘(1983~), 루크 디콘(1992~), 카메론 디콘(1993~) - 총 5남 1녀

70년대 장발의 디콘.

은퇴후의 모습

왼쪽부터 마이클 잭슨, 프레디 머큐리, 존 디콘

1. 개요
2. 베이시스트
3. 트리비아

1. 개요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로 구성되었던 퀸은 존 디콘 이전에 세 명의 베이시스트가 거쳐갔는데 모두 각각의 이유로 밴드를 떠났고[2], 런던에서 공연 구경다니던 존이 베이시스트를 찾던 퀸에 오디션을 치르게 된다. 그리고 안정적인 연주실력과 나머지 멤버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을 만한 조용한 성격, 그리고 가난한 밴드에게 큰 도움이 되어줄 전자기기를 다룰 줄 아는 능력[3]까지 여러 조건이 맞아 퀸의 마지막 멤버로 합류하게 된다.[4]

존 디콘은 어릴 적부터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기계 만지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장래희망도 원래는 뮤지션이 아니라 기술자였다고. 흥미뿐만이 아니라 재능도 출중해서 고장 난 라디오를 고치거나 다른 기기들을 조립하는 등 기계 만지는 것도 잘했다. 존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장래에 당연히 공학 기술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할 정도였다고.

존은 어릴 때부터 라디오 듣는 것을 좋아했는데, 11살 때는 스스로 신문배달을 해서 돈을 모아 연습용 어쿠스틱 기타를 사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카피 연주하며 점점 실력을 쌓는다. 그리고 특히 비틀즈를 비롯한 여러 밴드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록밴드의 꿈을 키우게 되었고, 장래희망도 기술자에서 뮤지션으로 바뀌게 된다.

존 디콘은 14살 때 opposition이라는 밴드를 결성하는데 이때부터 베이스를 잡게 된다. 존 디콘의 밴드는 점점 이런 저런 행사를 뛰며 지역과 학교에서 명성을 쌓아나갔고, 나중에는 밴드 행사비로 돈을 모아 중고차(?)도 살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밴드의 보컬이 다른 밴드로 스카웃되어 가면서 opposition는 해체되었고, 존은 다시 공부에 전념해서 런던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런던에서 대학교에 다니던 존은 이런저런 밴드 공연을 보러 다니며 여가를 보냈다. 이때 존은 자신이 가입하기 전의 퀸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의 퀸은 존에게 큰 감명을 주지 않은 듯 싶다. 존 曰 "솔직히 그때 퀸은 제게 별 인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내가 없잖아

대학교에 다니던 존은 다시 밴드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자신이 직접 멤버를 모집해 밴드를 만들었지만 딱 한번 공연하고 밴드는 해체했다. 밴드 멤버들의 역량이 존에 비해서 떨어져서 그랬다는 후문이 있다. 이때 이 일회용 밴드는 밴드 이름도 제대로 안 지어서 'deacon'이라는 밴드명으로 공연했다고 한다. 존은 어쨌든 음악 활동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고 이리저리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와중 디스코 축제장에 놀러갔다가 친구의 소개로 로저 테일러브라이언 메이를 알게 된다. 마침 로저와 브라이언도 베이시스트를 구하던 도중이었고, 존은 다른 퀸의 다른 멤버들 앞에서 오디션을 치르게 된다. 당연히 결과는 합격.

이후 베이스주자로서, 그리고 작곡가로서 퀸의 활동에 크고작게 이바지하게 되는데 연주력으로 팬들에게 까인 일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조용한 성격 탓에 화려한 다른 멤버들, 특히 프레디에게 묻혀서 연주력이 과소평가되었다는 평이 많다. 베이스를 백그라운드 역할을 넘어 메인 혹은 리듬 악기로 사용하곤 했으며, 대표적으로 <Another One Bites the Dust>, <Under Pressure>, <Dragon Attack>[5],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A Kind of Magic>, <Liar>, <The Millionaire Waltz> 등의 리프가 유명하다.

2. 베이시스트

워낙 성격이 조용하고 무대에서도 제일 눈에 띄지 않다보니,[6] 명베이시스트로 자주 언급이 되지는 않아도 실력만큼은 확실한 뮤지션이었다. 피아노 멜로디가 강조되는 클래시컬한 70년대 퀸의 음악에 베이스음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곡에 녹아들어 있는 걸 보면 베이스 리프 짜는 능력도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오히려 어쩔 때는 피아노음과 더불어 곡의 전개를 이끌고 있다는 느낌도 준다. 퀸은 다양한 형식과 장르의 음악을 시도했던 밴드인데, 단 한번도 베이스의 표현력이 부족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존 디콘의 실력을 대변해 준다.[7] 특히 프레디 머큐리가 만든 유려한 곡들에서 그의 베이스 센스가 빛난다. 5집의 <The Millionaire Waltz> 같은 곡의 베이스라인은 가히 곡의 분위기에 걸맞게 고풍스러운 분위기까지 날 정도.[8]

위에서 말했듯 말 수도 적고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는 모습 때문에 유튜브 등지에서는 그가 등장하는 부분을 광장히 소중하게 여기는 듯하다.

주로 사용하는 악기는 68년 생산된 펜더의 프레시전 베이스.[9][10]. 라이브 땐 프레시전 픽가드에 피크를 주렁주렁 끼워놓고 곡이 끝날 때마다 가끔씩 던져가며 연주하는 게 특징.

작곡가로서 퀸 멤버 가운데 가장 적은 수의 곡을 썼음에도[11] <Another One Bites the Dust>[12], <I Want to Break Free>, <You're My Best Friend> 등의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퀸 팬들의 페이보릿 넘버 중 하나이자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Spread Your Wings> 역시 존의 작품.

노래를 하지 않는 유일한 퀸 멤버다.[13][14] 브라이언과 로저는 백킹 보컬로서, 때로는 리드 보컬로서 보컬에 참여하나 존은 퀸의 그 어느 앨범에서도 보컬을 보여주지 않았다. 라이브에서는 다른 멤버들처럼 개인용 마이크를 받기는 한다. 그런데 분명히 코러스에서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가 잘 안들린다. 그래서 마이크가 꺼져 있거나, 립싱크를 하는 건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이크가 꺼져 있는 것은 아니다. 1981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연 등에서 입증되었는데, 프레디 머큐리가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 자신의 마이크가 나가버리자 임기응변으로 존 디콘의 마이크로 노래를 마저 불렀다. 존 디콘의 마이크는 항상 켜져 있었고, 성능도 전혀 문제 없음을 머큐리가 입증했다.

Save Me (1981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라이브 공연)

<Radio Ga Ga>의 라이브 공연에서는 존 디콘의 목소리도 코러스에서 들린다. 아래의 1984년 밀라노 1일차 공연의 <Radio Ga Ga>의 코러스에서 존 디콘의 목소리가 확연히 들린다. 이것말고도 Radio Ga Ga 라이브에서는 코러스에서 크건 작건 간에 존 디콘의 목소리가 들리는 편이다. 결국 립싱크가 아니라 본인은 열심히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피아노 같은 건반 악기도 다룰 줄 알았다. 특히 전술되어 있듯이 퀸 멤버 중에서 전자 기기를 다루는 기술이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종종 일렉트릭 건반을 담당했다. 다만 퀸이 그랜드 피아노를 무척 선호했기 때문에 존 디콘이 건반을 담당한 적은 별로 없다. 일단 퀸에는 프레디 머큐리 이외에도 브라이언 메이도 피아노 실력이 좋았고, 베이스 기타가 어느 부분에서라도 빠지는 부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존 디콘이 키보드를 담당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존 디콘은 You're My Best Friend를 작곡하고 프레디 머큐리에게 월리처 일렉트릭 피아노 연주를 부탁했지만, 프레디 머큐리가 원체 일렉트릭 피아노를 싫어했던 까닭에 결국 존 디콘이 직접 쳐서 녹음했다고 한다.

락밴드의 멤버답지 않게 무대액션도 드물고[15] 해서 카메라에 잡히는 횟수는 프레디의 1/20 수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된 무대매너를 보여주며 웸블리 공연같은 86년 퀸의 마지막 투어 공연을 본다면 은근히 한바퀴 돈다든가 하는 움직임이 많다.[16]

그런데 오히려 그룹 초창기 1~3집 투어 영상들을 보면 70년대말이나 80년대보다 더 활발한 무대액션을 보여준다. 현란한 핑거/피킹 연주장면도 많이 나오고, 특히 Liar 라이브에서는 프레디와 듀오 보컬을 연출하는 장면도 있다.

존경하는 베이시스트로는 예스(밴드)크리스 스콰이어더 후존 엔트위슬을 뽑은 적이 있다.

3. 트리비아

전자공학도[17]였던만큼 전자기기를 다루는 데 능숙했으며,[18] 일렉트릭 피아노를 다루기도 했다. 원래 피아노는 프레디 머큐리 아니면 때때로 브라이언 메이가 쳤는데, 프레디 머큐리가 일렉트릭 피아노를 싫어해서 존 디콘이 직접 쳐서 녹음한 적도 있다. 디키 앰프는 워낙 유명해서 다른 회사에서 뜯어보고 복각판이 나온 적도 있다.

밴드의 재정 문제도 이것저것 관리했다고. 퀸 인터뷰에서 존 디콘은 거의 말이 없고 다른 세 명의 멤버들만 신나게 말하는데, 유일하게 존 디콘이 활발하게 말하는 부분이 퀸의 계약 및 재정과 관련된 부분이다. 존 디콘이 은퇴한 후에도 브라이언 메이는 재정 문제와 관련해서 존 디콘에게 계속 조언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밴드에서 제일 막내였고[19], 프레디 머큐리와 가까웠던 사이로 프레디 역시 존을 좋아하고 아꼈다고 한다.[20]

밴드 내에서의 역할은 베이시스트였지만 기타와 드럼도 연주한 적이 있다. The GameAnother One Bites the Dust에서의 리듬기타는 메이가 아닌 존이 연주했다. 또한 Hot Space에 수록된 곡 'Staying Power'에서는 녹음때 텔레캐스터를 연주해 라이브에서도 연주했다. 'Cool Cat'에서는 기타, 베이스, 드럼 모두 연주했으며 A Kind of Magic에서는 'One Vision' 녹음 현장(뮤직비디오)에서도 존이 드럼을 치거나 드럼 앞에 앉아 드럼 스틱을 들고있는 모습을 볼수있다.

밴드의 막내였지만 결혼은 가장 먼저했다. 1971년부터 교제하던 베로니카와 1975년에 결혼식을 올렸고, 현재까지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자녀도 5남 1녀로, 밴드 멤버 중 가장 자녀가 많다. 이혼이나 외도, 동성애의 풍파가 잦던 다른 멤버들과 달리 무척 조용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다.

프레디가 세상을 떠나면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거의 전무하다시피 할 정도로 줄였다. "우리로서는 이게 끝이다. 더 계속해 봤자 이젠 의미가 없다. 프레디의 자리를 채우는 건 불가능하다"라고 말하며 활동을 그만두었다고. 물론 1995년 발표한 15집 Made in Heaven에는 참여했지만, 모습을 보인 게 정말 손에 꼽힌다. 1992년 프레디 머큐리 트리뷰트, 1993년 로저와만 함께한 자선공연, 1995년 SAS 밴드 공연에 잠깐 얼굴 비출 때, 1997년 발레 사전공연으로 연주한 The Show Must Go On 정도. 1997년 컴필레이션 앨범 《Queen Rocks》를 녹음한 후 정말 은퇴하여, 일절 외부 음악 활동을 하지 않고 조용히 가족들과 지내고 있다. 6명의 자녀를 두었음에도 은퇴기준 1150억원을 보유했을 만큼의 부자였던 그는 어느 한 섬을 통째로 구매해 거주하며 가끔씩 술마시러 나온다.

97년 존 디콘의 마지막 공연(퀸 + 엘튼 존의 <The Show Must Go On>)

이후 브라이언과 로저가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했던 프로젝트나 투어에도 모두 참여하지 않았고, 공식행사나 인터뷰 등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브라이언 메이에 따르면 이후 디콘은 다른 분야의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2014년에 브라이언 메이가 언론과 한 인터뷰에 따르면 지금도 디콘에게 재정적인 자문을 구한다고 한다.[21] 또한 보헤미안 랩소디(영화)의 제작에도 동의를 표했다고 한다.[22]

밴드 멤버들 사이에서는 본명인 존 보다는 주로 디키라고 불렸다.[23]

1984년에 로저 테일러와 함께 프로모션 일환으로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다. 같이 동석한 오아시스 레코드[24] 관계자에 따르면 로저 테일러는 성격이 쾌활한 반면 존 디콘은 내한 내내 과묵했고 줄담배를 피워댔다고 한다.

2018년 10월에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디콘 역을 조셉 마젤로[25]가 맡았다.[26]

막내 아들 카메론 디콘은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데, 케이팝 팬이다. 인스타그램도 하고 있는데, 보헤미안 랩소디의 영화 판넬 앞에서 인증샷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 당연히 유명인사들의 자녀들이 늘 그래듯이 아버지에 대한 언급과 질문을 피하고있다. 존의 가면을 쓰고 소원을 말해봐를 추거나, 퀸 팬픽을 읽기도 했다(...)

퀸 멤버들 중에서 헤어스타일이 가장 많이 변한 멤버이기도 하다.

존 디콘 헤어스타일 변천사 은퇴 이후에 찍힌 근황 사진에 따르면 삭발한 것으로 보인다.


  1. [1] 현재는 직업 없이 그간 모아놓은 돈으로 노년을 보내는 듯 하다. (은퇴기준 순자산 1억 3백만달러 한화로 약 1150억원 보유.)
  2. [2] 한 명은 성격 차로 인해서 떠났고, 또 다른 한 명은 가입 하루만에 모든 주도권을 잡으려고 해서 프레디와 브라이언, 로저가 만장일치로 쫓아냈다고 한다. 나머지 1명은 불분명.
  3. [3] 디콘이 기기를 고치고 있으면 다른 멤버들은 모두 신기하게 쳐다봤다고.
  4. [4] 프레디는 디콘의 판단(경제적 문제나 밴드경영 등등.)을 신뢰하여 퀸의 닻 이라 불렀다. 한 인터뷰에서는 "만약 신이 우릴 버린다면 디콘이 'OK'라고 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할 것"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5. [5] 디콘의 베이스와 메이의 기타 톤이 일품인 곡으로, Another One Bites The Dust보다 낫다는 평도 있다.
  6. [6] 오죽하면 존의 겸손과 조용함을 표현하는 말이 있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전부 추장들로만 이루어졌을 밴드 안에서 그는 홀로 기꺼이 인디언이 되었다."
  7. [7] 오죽하면 다른 멤버 연주에서는 지적할 거리를 찾아내던 프레디가 존의 베이스 연주에는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한다.
  8. [8] 여담이지만 존은 손이 빠른데다가 핑거 주법을 쓰는데, 이를 모르고 존을 우습게 본 다른 베이시스트들이 존에게 도전했다가 역관광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9. [9] 매직 투어에서는 검은색으로 도색해서 쓰기도 한다.
  10. [10] 그 이전에는 65년제 프레시전 베이스를 많이 썼다. 그 이외의 스페어로는 뮤직맨 스팅레이, 81년제 프레시전, 크레이머 등의 베이스를 썼다. 이 중에서 크레이머의 사용 빈도가 극히 적다. 뮤직맨 스팅레이는 Another One bites the dust를 연주할 때, 81년제 프레시전은 Under Pressure 연주에 사용했다.(81년도 몬트리올 공연 기준이고, 매직 투어에서는 68년제 베이스로 다 연주한다.)
  11. [11] 커리어 내내 쓴 곡이 20곡이 채 되지 않는다.
  12. [12] 밴드 커리어 단 2번뿐인 미국 빌보드 Hot 100 1위곡중 하나고, <We Are the Champions>보다 많이 팔린, 퀸 노래 통틀어 Bohemian Rhapsody 다음으로 많이 팔린 곡. 하지만 당초 멤버들은 앨범에 넣을 자격도 있을까 말까한 후진 노래였던 이 곡을 싱글로 발매할 생각이 없었는데, 싱글 발매하도록 강력하게 권유한 건 바로 마이클 잭슨이었다. 그의 말대로 발매되자마자 미국에서 대박을 친다. 클럽이나 라디오에서 주구장창 틀어댔고 특히 흑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13. [13] 그래서인지 곡 <Somebody to Love>의 아키펠라 부분에서 로저, 메이, 프레디가 뮤비에서 같이 노래를 녹음하는 장면이 나올때도 얼굴 몇번만 비추고 거의 부르지 않았다.
  14. [14] 이유는 본인의 노래 실력이 형편없어서라고.
  15. [15] 아예 관중석을 등지고 연주할 때도 있다.
  16. [16] 로저의 증언에 따르면 존은 앰프 뒤에 조그만 칵테일 바를 차려놓고 공연 중간중간에 음주를 즐겼다고 하니 이런 동작들은 술기운의 영향일 가능성도 많다. 로저테일러의 말로는 공연이 끝나갈때쯤에 그는 날고 있었다고. 거의 레드아이를 제조해서 마셨다고 한다.
  17. [17] 사실 2집 발표 전까지만 해도 그는 무려 현직 중학교 교사였다. 존의 경우로 알 수 있듯(특히 메이는 무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출신) 퀸은 멤버 모두 음악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아갈 길이 있는 고학력자 모임이었다.
  18. [18] 브라이언은 존이 만든 앰프인 'Deacy Amp'를 몇몇 곡에서 사용하기도.
  19. [19] 막내인데다가 가장 늦게 밴드에 합류해서 그런지 1집 앨범에서는 본명인 John Deacon의 이름이 거꾸로 Deacon John으로 나오는 굴욕을 당하기도...이름을 거꾸로 바꾼 건 프레디와 로저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그게 더 재밌게 들린다면서 Deacon John이면 성공회나 가톨릭의 부제 존이라는 의미가 된다.
  20. [20] 단 여기서 친하게 지냈다는 건 음악 동료로서의 개념이지, 사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주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존이 와일드라이프를 즐기던 프레디와 사교적으로 어울리기에는 거리가 있으니까. 멤버 중에 프레디와 사적으로 가장 친했던 것은 로저 테일러. 아무튼 가까웠던 만큼 프레디의 사망이 존에게 가장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들 보는 견해가 많다.
  21. [21] 현역 시절에도 제일 어리지만 동시에 가장 이성적인 태도를 지닌 멤버여서 재정적인 부분을 담당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듯.
  22. [22] 여담으로 퀸 멤버들이 현재 어떤 일을 할 때 존의 동의가 필요해 존에게 허락을 맡을 때, 그 방식이 조금 애매하다. 존에게 "이런이런 일을 할 예정이야."라는 편지나 서신 등을 보냈을 때, 존에게서 아무런 답장도 오지 않으면 동의의 표시로 받아들인다고(...)
  23. [23] 영미권에서는 dick이라는 단어가 음경을 뜻하지만, 그냥 '놈', '녀석'이란 뜻도 있기 때문에 이게 아니다. 더군다나 존의 별명인 디키는 철자가 'Deaky'이다. 오해말자.
  24. [24] 80년대 중반에 EMI와 계몽사가 합자하여 국내시장에 들어오기 전까지 EMI계열 음반은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
  25. [25] 쥬라기 공원 시리즈에서 아역인 팀 머피로 유명한 배우이다. 드라마 더 퍼시픽의 주인공 유진 슬레지로도 출연했었는데, 같이 등장하는 메리엘 쉘튼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바로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은 라미 말렉이다.
  26. [26] 영화에선 싱크로율이 로저, 브라이언과 함께 괜찮았지만 존이 조용하고 다른 멤버들과 충돌이 워낙 없어서였는지 비중이 공기인 데다가 밴드에 합류하는 과정이 통째로 생략되어 갑툭튀하듯 나오는데 프레디가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 들어온 걸로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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