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걸륜

1. 개요
2. 상세
3. 출연작
4. 트리비아
5. 사이트

1. 개요

중화권 대중음악계의 황제

중화권 음악계의 레전드로 남을 아티스트

현재 중화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아티스트, 연예인 중의 한 명

대만의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 겸 영화감독, 영화배우. 1979년 1월 18일 중화민국에서 출생했다. 매년 포브스에서 발표되는 중화권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연예인에서 매년 최상위권에 랭크 하고 있는 중화권을 대표하는 연예인이다.한자 표기는 周杰倫(간체자 표기를 기본으로 하는 중국에선 周杰伦으로도 쓴다.) 영어로는 Jay Chou.[1]

2. 상세

대만 타이베이시 린코구 출신. 3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16세때 작곡을 시작했다. 대만 신베이시 딴수이에 있는 '담강중학' 음악과에서 주전공은 피아노, 부전공은 바이올린으로 클래식을 전공했다.

개신교 신자이다. 대만의 환경 상 외성인들이 대게 그리스도인인 만큼 외성인 출신이었던 걸로 강하게 추정된다.[2]

장학우의 '키스 굿바이(吻別)'를 듣고 감동을 받아 대중음악에 입문했다. 1997년 TVBS-G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프로그램 진행자이자 대만의 유명 MC인 우종시엔(吳宗憲)에게 발탁됐다. 2000년 정규 1집 'JAY'로 데뷔, 2001년 2집 '판타지'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2002년 중화권의 최고 권위 음악시상식인 금곡장(골든 멜로디 어워즈)에서 최우수 작곡가상과 최우수 음반 프로듀서상, 최우수 대중가요 음반상 3관왕에 올랐다. 그후 발표하는 앨범마다 대박을 치고 다른 가수들에게 작곡해 준 곡까지 히트하며 중화권의 본좌 오브 본좌의 자리에 올랐다.

지금은 용이 됐지만 데뷔 때만 해도 갓 상경한 듯 투박한 외모였다. 그러나 그런 외모와 독특한 보컬, 갓 10대 티를 벗은 소년의 수줍은 이미지가 그만의 개성이 됐다. 특히 대중성과 실험성을 두루 갖춘 음악은 중화권에 충격을 가져다줬다. 데뷔 초부터 어마어마한 팬덤을 구축, 아티스트이자 아이돌을 겸한 새로운 시대의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했다. 주걸륜의 성공 이후 대만을 중심으로 20대 초반의 남성 싱어송라이터 가수들이 꾸준히 양성됐다.

2014년 12월 정규 13집이 나왔다. 자신의 곡들은 모두 직접 작사 및 작곡을 하고(간혹 대필을 받기도 한다), 악기연주도 직접한다. 곡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중압감넘치는 비트에 동양적인 색채가 묻어나오는 힙합스타일의 곡에서 일반적인 팝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발라드, 록, 중국 전통음악 등 폭넓은 장르를 소화하는데다 심지어 탱고, 클래식 등도 다룬다. 그중에서도 학창시절에 갈고 닦았던 클래식은 그의 음악적 역량의 바탕이 됐다. 그리고 모든 곡을 훌륭히 소화해 내는 것 또한 특징이다. 대신에 어디까지나 자기곡을 훌륭히 소화해 낸다는 것이지 절대 가창력 자체가 뛰어난 가수는 아니라는 것이 평단이나 팬의 의견이다. 힙합 스타일의 곡에서는 랩도 곧잘 하기는 하는데, 곡 절반 이상의 가사가 대필가시나 합작가사가 많아서 랩퍼 자체로써의 평가보다는 프로듀서 및 작곡자로써의 평가가 더 높은 편.

중화권 대중음악계에 힙합으로 성공했다는 것, 힙합과 알앤비, 록 등 서구의 장르에 중화권 고유의 사운드를 접목했다는 것 등에서 중화권 대중음악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영화감독, 배우 등 다방면의 활동을 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부터 그가 음악에 대해서는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비판도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 1~5집은 중화권 대중음악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꼽힌다. 그러나 8집을 기점으로 점점 참신함과 실험성을 잃어가더니, 갈수록 음악적 진보 없이 과거의 히트곡들을 우려먹기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앨범을 발표 순으로 듣다 보면 코드진행이나 멜로디 등을 자기복제 수준으로 우려먹은 흔적이 매우 자주 눈에 띈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거나 다른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며 음악을 공부하기보다 기존에 해봤던 장르에서 이리저리 변주하는 수준에 머무는 경향도 보인다. 그러면서도 앨범은 1~2년 간격으로 자주 발표하고 있으니... 팬들 사이에서는 "앨범 자주 안 내도 좋으니 제발 잘 만들어달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들이 좋으니 미워할래야 미워할수가 없다. 중화권 대중음악의 황제 답게 음반판매량이나 차트 성적은 올킬 수준이다.

2005년 만화 '이니셜D'를 리메이크한 영화 '頭文字D'에서 주연을 맡으며 배우로도 데뷔했다. 영상에도 관심이 많아 자기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직접 찍어내더니, 2007년에는 자신이 직접 각본과 감독, 주연, OST 작곡을 맡은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로 감독 데뷔까지 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대만에서만 163만달러, 중국에서 3000만위안, 홍콩에서 180만달러 등의 수익을 벌어들이며 대만 상업영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7년 중화권 최고의 영화시상식인 금마장(골든 필름 어워즈)에서 6개 부문 노미네이트, 올해의 대만영화상과 최우수 OST, 최우수 시각효과상 3관왕에 올랐다.

한국의 어둠의 경로에서 다운받아 볼 경우 자막에 주걸륜의 극중 배역 이름을 '주걸륜'으로 처리해놨지만, 실제 극중 이름은 '예샹룬'이다. 그리고 주걸륜이 피아노를 치는 씬은 모두 대역이 아닌 자신이다. 실제로 주걸륜은 어렸을 적 피아니스트가 장래희망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었으며 콘서트 현장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기도 한다.

싸이강남스타일 열풍에 "한류에 지지 않을 정도로 중화권 가수들이 단결을 해야한다"는 것을 언론에 자주 언급했다. 당시 발언이 "한류나 일본문화가 중국에서 날뛰고 있는 것을 두고만 봐서는 안된다고 봅니다"라는 발언이었는데, 대중들이나 팬들이나 이에 대해서 해석문제 등등으로 논란이 되었다.

3. 출연작

4. 트리비아

  • 14살, 중학교 2학년때 부모가 이혼했다. 자신의 부모가 이혼전에 부모는 냉전상태였다. 부모가 이혼하기 전에 부모님과 같이 있었을 때 즐거움이 없었기에 주걸륜은 부모의 이혼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후 주걸륜은 자신의 어머니와 지냈으며 가정환경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 어렸을때 가장 자주했던 오락은 길 옆에서 친구들과 하는 농구였다고 한다.
  • 고등학교 졸업 후 식당에서 종업원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수많은 힘든 일들을 겪었다.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급여가 주어지면 바로 음반 매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거의 모든 급여를 음악 테이프를 사는데 썼다. 한 번 그를 힘들게 했던 일은 어느날 한 손으로 음식을 받치고 걸으며 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그런중 부주의로 다른 여종업원과 세게 부딪쳐 접시 위의 모든 음식이 여종업원 위로 쏟아졌다. 여종업원의 손은 화상을 입어 물집이 잡혔고 고통때문에 울었다고 한다. 사장이 와서 반달여의 급여를 벌금으로 가져갔고, 대화에 익숙지 못한 주걸륜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 18살때 농구를 하다가 자신의 부주의로 다쳤다. 스스로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안마(물리치료 정도)를 받았는데, 결과적으로 나아지기는 커녕 더욱 악화되었다. 혈액검사를 받은 이후에서야 의사는 그가 강직성 척추염이 있는것으로 진단했다. 그때, 그는 너무 아파 옆으로 누워 잘 수 밖에 없었고 손을 들 수도 없었다. 의사는 완치가 어렵고 약물과 물리치료를 통해 억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의 병은 자신 가족의 유전이었고, 자신의 삼촌도 같은 병이 있다는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만도 군 징병제. 강직성 척추염으로 대만에서 군대면제를 받았으나 TV나 영화에서 보면 날아다닌다. 대만 국내에서도 겉보기에는 평소와 다를게 없어보이는 연예인이 군대면제를 받은것을 보기에는 뭔가 부조리하다는 여론이 있지만, 강직성 척추염인 사람도 겉보기에는 일반사람이랑 평소엔 다를 게 하나도 없으며 속이 불편해 군생활에 부적절한 것일 뿐.
  • 여성 연예인들과 스캔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대만 여가수 채의림과 가수-프로듀서의 관계로 만나 사귀었다. (연애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둘이 사귀었다는 건 중화권에 기정사실화됐다.) 그러다 주걸륜이 대만의 아나운서인 후패잠과 밀월여행을 즐기는 모습이 파파라치에 포착됐고 채의림과 결별했다. (중화권에서는 서태지-이지아 이혼에 버금가는 초대형 스캔들이었다..) 한동안 채의림이 인터뷰에서 주걸륜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며 사이가 멀어졌으나, 지금은 화해하고 좋은 관계로 지내는 중. 14세 연하로 아버지가 오스트레일리아, 어머니가 대만,한국혼혈인 모델 쿤링과 연애 후 2015년 1월 결혼했다.
  • 노래를 부를 때 발음이 뭉게져서 뭔 소린지 못 알아듣겠다는 의견이 절대적인 가수다. 7집 依然範特西(Still Fantasy)에 수록된 천리지외(千里之外)를 들어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데, 후반부에 비옥청(費玉淸)이 부르는 부분과 주걸륜이 부르는 부분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문제는 주걸륜도 이걸 알고 있어서 금곡장 시상식 홍보 영상에서 셀프디스를 시전했다.
  • 바로 위에 상술했듯이 주걸륜의 극악한 보통화[3] 발음은 유명하다. 평소 주걸륜이 쓰는 언어 자체가 민 방언 성향이 강한 대만어이기 때문. 근데 이게 또 희한한 건 정작 주걸륜이 자란 타이베이시는 대만어보다도 표준중국어가 더 많이 쓰인다.
  • 국내에서는 혐한파 이미지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주걸륜이 혐한파냐 아니냐는 이 항목에서 가장 수정이 잦은 부분이다. 그만큼 이견이 분분하다는 뜻. 그가 혐한파가 맞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주걸륜이 뼈속까지 중화주의자라고 비판한다. 반면 그가 혐한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국내 언론의 잘못된 번역과 자극적이고 왜곡된 보도로 인해 생긴 오해이며, 대만음악(나아가 중화권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할 뿐 한국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한국은 물론 일본, 미국 등 외국의 음악에 그닥 관심이 없는 것이 맞다고 설명한다. 사실 주걸륜은 한국을 싫어하고 아니고와는 별개로 실제로 공식 석상에서 좀 말을 거침없이 하는 성향이 있다. 말이 많지는 않지만 서슴없다는 평가가 절대적이다.
  • 2015년 11월 30일에 리그 오브 레전드 대만 프로게임단인 MRJ를 창단해 구단주가 되었다.
  • 2016년 4월 19일리그 오브 레전드 대만 프로게임단인 TPA를 인수해 Team J라는 팀으로 재창단 구단주가 되었다.

5. 사이트


  1. [1] 사실 주(周)의 정확한 병음은 Chou가 아니라 Zhou가 맞다.
  2. [2] 대만 내에서 타이베이는 외성인이 대부분이라 기독교세가 강한 편이다. 나머지 지역은 미약하다. 쯔위의 출신지 타이난 같은 경우는 교회는 찾기도 힘들 정도. 이것은 중국 국민당이 기독교인들이 만든 정당이라 기독교=대륙 압제자 종교로 인식되어서이다.
  3. [3] 대만에서는 표준중국어를 '국어(國語)'라고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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