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무리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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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모리뉴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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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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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23대, 3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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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59대


FC 포르투 역대 감독

옥타비오 마차도
(2001~2002)

주제 모리뉴
(2002~2004)

루이지 델 네리
(200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역대 감독

로베르토 만치니
(2004~2008)

주제 모리뉴
(2008~2010)

라파엘 베니테스
(201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감독

24대
루이 판 할

25대
주제 모리뉴

26대
올레 군나르 솔샤르

2014년~2016년

2016년~2018년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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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모리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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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UEFA 올해의 팀

FW
뤼트 판 니스텔로이

FW
티에리 앙리

MF
파벨 네드베드

MF
지네딘 지단

MF
데이비드 베컴

MF
루이스 피구

DF
호베르투 카를로스

DF
파올로 말디니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파울루 페헤이라

GK
잔루이지 부폰

HC
주제 모리뉴

2004 UEFA 올해의 팀

FW
안드리 셰브첸코

FW
티에리 앙리

MF
파벨 네드베드

MF
호나우지뉴

MF
마니시

MF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DF
애쉴리 콜

DF
히카르두 카르발류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카푸

GK
잔루이지 부폰

HC
주제 모리뉴

2005 UEFA 올해의 팀

FW
안드리 셰브첸코

FW
사무엘 에투

MF
파벨 네드베드

MF
스티븐 제라드

MF
호나우지뉴

MF
루이스 가르시아

DF
파올로 말디니

DF
존 테리

DF
카를레스 푸욜

DF
카푸

GK
페트르 체흐

HC
주제 모리뉴

2010 UEFA 올해의 팀

FW
다비드 비야

FW
리오넬 메시

MF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MF
베슬리 스네이더르

MF
사비 에르난데스

MF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DF
애쉴리 콜

DF
카를레스 푸욜

DF
제라르 피케

DF
마이콘

GK
이케르 카시야스

HC
주제 모리뉴


2010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주제 모리뉴

2위
비센테 델보스케

3위
펩 과르디올라

2011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펩 과르디올라

2위
알렉스 퍼거슨

3위
주제 무리뉴

2012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비센테 델보스케

2위
주제 모리뉴

3위
펩 과르디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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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축구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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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주제 모리뉴
José Mourinho

본명

주제 마리우 두스산투스 모리뉴 펠리스
José Mário dos Santos Mourinho Félix, GOIH[1]

출생

1963년 1월 26일 (56세) /
포르투갈 세투발현

국적

포르투갈

신체

176cm | 체중 74kg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2]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히우 아브 FC (1980~1982)
CF 벨레넨세스 (1982~1983)
세심브라 (1983~1985)
코메리쿠 인두스트리아 (1985~1987)

감독

스포르팅 CP (1992~1993 / 수석코치)
FC 포르투 (1993~1996 / 수석코치)
FC 바르셀로나 (1996~2000 / 수석코치)
SL 벤피카 (2000)
UD 레이리아 (2001~2002)
FC 포르투 (2002~2004)[3]
첼시 FC (2004~2007)[4]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8~2010)
레알 마드리드 (2010~2013)[5]
첼시 FC (2013~2015)[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6~2018)[7][8]

국가대표

없음

링크

인스타그램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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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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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이름 표기
2. 감독이 되기 전
4. 전술 스타일
4.1. 장점
4.2. 단점
5. 특징
5.2. 모리뉴 2년차
5.3. 부족한 선수 육성
5.4. 선수단 장악 문제
6. 여담
7. 어록
8. 기록
8.1. 감독 기록
8.2. 수상 기록
9. 라이벌리

1. 개요

포르투갈축구선수 출신 감독.

별명은 '스페셜 원(Special One)'. 여러 클럽을 돌고 돌아서 마음의 고향인 첼시 FC에서는 '해피 원(Happy One)'으로 불러달라고 부탁까지 했으나#, 행복한 결말은 맺지 못했다.

체육 교사, 통역관 등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진가를 증명해내며 단기간에 탑 클래스 감독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축구 감독으로, 선수 시절에는 중앙 미드필더로 활동하면서 초기에는 포르투갈 1부 리그 소속의 히우 아베라는 팀에서 뛰었으나 기량이 그저 그래서 이후 하부 리그를 전전하다 1987년에 24세의 아주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선수 시절 개인 기록은 94경기 13골. 스스로도 자신이 일류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것을 알아챈 순간부터 매 순간 감독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준비했다고 한다. 이 까닭인지 그를 비선수 출신 감독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뛰어난 선수 장악능력과 꾸준한 커뮤니케이션으로 팀의 활력을 높이는 감독으로 전략선택 역시 현재 팀에 맞춰 분배하는 식의 운영체제를 보인다. 본래 체육교사 출신으로 스포츠 과학, 스포츠 생리학, 심리학에 능통하며 이를 기반으로 선수들 쥐락펴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통역관을 오랜 시간 역임하여 외국어도 능통하다.

"나의 팀에 소속된 선수들은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다. 열심히 훈련하는 자는 기회를 받을 것이요. 그렇지 않는 자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할 것이다. 그 외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방침, 즉 내 말만 믿고 따라와라다. 이런 방침을 토대로 하여 FC 포르투첼시 FC에서의 성공으로 명감독 소리를 듣게 되었고, 인테르에서도 트레블을 달성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려오고 있다.

한때는 젊은 감독의 대표주자로 꼽혔으나 더 젊은 1971년생인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르샤 감독 데뷔 후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그 명칭은 넘어갔다.[9] 그리고 그 둘은 엄청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현대 축구판에 재미있는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

감독 최초 유럽 4개국 4개 리그(포르투갈,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정복[10], 트레블을 포함한 2회의 챔스 우승 등 커리어가 정말 화려한 편이다. 리그 성향도 모두 다르고 구단 특성도 제각각인 4개국, 4개 리그를 돌아다니면서 각 리그 내에서 들 수 있는 우승컵은 모두 들어본 경험이 있는 만큼 그 누구보다도 검증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위 안티 풋볼, 수비위주의 답답한 축구를 한다고 까는 사람들이 있다. 재미의 유무에 따른 호불호로 보이는데, 공격축구는 승패를 떠나 상대팀에게도 찬사를 받는 경우가 있지만 안티풋볼은 승리를 추구하는 팬들은 결과에 열광하지만 상대팀뿐 아니라 제3의 축구팬들에게도 재미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사실 수비적전술을 쓰는 감독들은 모리뉴 외에도 널렸다. 다만 모리뉴가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했기에 집중포화를 당하는것이다. 다만 지속적으로모리뉴의 축구스타일을 비판하던, 토탈 사커 덕후 요한 크루이프만큼은 트레블 이후에도 깠다.

전술은 수비라인을 끌어내려 수비적으로 한 뒤, 피지컬과 활동량을 바탕으로 공을 뺏으면 바로 공격적으로 나가는 축구를 선호한다. 수비라인을 끌어내리기 때문에 다소 발이 느린 수비수들도 활약할 수 있고, 역습을 빠르게 해야 하기 때문에 미드필드에서 패스를 잘 뿌려줄 수 있는 선수나 활동량이 많은 선수를 필요로 하고 스트라이커들의 결정력이 매우 중요하다. 가장 높이 평가받는 것은 수비라인 구축 능력으로, 모리뉴가 이끈 역대 팀들은 모리뉴가 있었던 동안의 수비력이 최고라는 평가를 항상 받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술로 인해 수비적으로 나오는 약팀들에게 어이없게 당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이러한 현상은 공격수, 특히 스트라이커의 폼이 노답일 경우 극대화된다. 04-05 시즌부터 06-07 시즌까지 첼시에서는 디디에 드록바, 인테르에서는 디에고 밀리토사무엘 에투,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카림 벤제마곤살로 이과인이 있었지만, 의적이라고 조롱받은 13-14 시즌 첼시의 공격진은...

1.1. 이름 표기

José Mourinho라는 이름을 발음 그대로 한글로 옮기면 '주제 모리뉴'가 된다. 이름 부분의 경우 Jos'É'로 "제"에 강세가 들어가, 강세가 없는 o는 약모음 u로 소리가 변해 주제가 되고, Mourinho에 있는 ou는 이중모음처럼 생겼지만 항상 ㅗ로 발음한다. 제목처럼 ou를 ㅜ로 발음하는건 오히려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도 조제 리뉴지만 한국에서는 절대 이렇게 불리지 않는다. 축구 팬들이 부르는 이름 중에는 모리뇨, 모링요, 모링유, 모링뇨, 모링뉴, 무링뉴, 무링유, 무링요, 무링뇨, 무리뇨, 무리뉴 등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언론에서는 무리뉴라는 표현을 지속적으로 사용해오다가 외래어 표기법에 맞추어 '모리뉴'라는 표기를 사용하는 일이 점점 늘고 있지만,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팬들이 많기 때문에 원칙에 따른 표기법을 사용한 기사에는 '모리뉴가 뭐임?', '제발 모리뉴란 이름좀 쓰지 마세요' 하는 댓글이나 달리곤 한다. 초창기에 정확한 표기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방면의 동료는 트레버 로젠탈[11], 표도르 예멜리아넨코[12] 등 수없이 많다.

영국에선 '조세 뭐뤼뇨'에 가깝게 불린다. 참고로 그의 고향 세투발에서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를 '제 마리우(Ze Mario)'라고 부른다고. 모리뉴는 이 호칭이 자신을 자신답게 느껴지게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무링요라고 불렸던 과거 때문에 간혹 콜롬비아인 수비수 제이손 무리요하고 헷갈리는 사람도 있다.

2. 감독이 되기 전

선수 시절의 모리뉴[13]

포르투 시절의 바비 롭슨과 모리뉴

바르셀로나 시절의 바비 롭슨과 모리뉴

축구 선수를 24세에 일찍 은퇴한 후, 어머니의 의사를 따라 경영대학원에 등록했지만 하루 만에 관뒀다고 한다. 대신 본인이 원했던 스포츠 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리스본 공과대학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국립체육교육학 코스를 밟았다. 이후 5년간 여러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체육 교사로 재직하면서[14] 해당 코스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였고,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코칭 코스까지 수료하며 축구 감독계에 입문했다. 체육 교사를 관둔 후에는 하부리그 구단이었던 에스트렐라 다 아마도라의 수석 코치와 오바렌세의 스카우터 직으로 재직하였다. 그러던 중 1992년에 스포르팅 CP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故 바비 롭슨의 통역관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스포르팅 CP를 시작으로 FC 포르투, FC 바르셀로나까지 바비 롭슨 감독과 계속 동행하며 그의 담당 통역관 및 코치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에는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이자 당시 바비 롭슨의 후임이었던 루이 판 할과 일하기도 하였다. 2010년 인테르를 이끌고 판 할의 바이에른 뮌헨과 챔스 결승에서 마주한 것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직을 주고 받은 일을 생각하면 꽤나 재미있는 과거. 그리고 펩 과르디올라와도 선수와 코치로서 이 때 처음 만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통역관을 하던 시절 일화가 있는데 96/97 시즌 빌바오 원정에서 1:2로 바르셀로나가 패했던 경기에서 빌바오의 거친 플레이를 참지 못하고 당시 빌바오 감독이었던 루이 페르난데스에게 폭언을 쏟아냈다고 한다. 경기 후 열받은 페르난데스 감독이 모리뉴를 잡으러 갔지만 펩이 페르난데스 감독을 붙들곤 언쟁을 벌였고, 모리뉴는 그 사이에 도망쳤다. 이 사건 후 모리뉴는 징계를 먹었다고 한다.

바비 롭슨은 그전 스포르팅 리스본에 있을 때부터 모리뉴의 재능을 알아보고 함께 전술에 대한 논의를 자주 나누곤 했고 모리뉴는 이 과정을 통해 전술적인 실력을 쌓아가게 된다. 바비 롭슨을 따라 바르셀로나로 온 모리뉴는 통역관뿐만 아니라 전술 어드바이스, 선발 선수 관리 등을 수행하며 지도자로써의 역량을 쌓았다. 마찬가지로 독설로 유명한 판 할 감독과는 서로 죽이 아주 잘 맞았다고. 롭슨과 판 할이라는 뛰어난 스승 아래 모리뉴의 전술적 역량은 나날히 성장해 나갔다. 하지만 워낙 통통튀는 성격 때문에 다른 스탭들과 사이는 썩 좋지 않았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수업을 받은 모리뉴가 바르셀로나와 극도로 다른 전술을 사용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

지금은 故 요한 크루이프와 사이가 안좋다고 알려져 있으나, 바르셀로나에서 통역사-수석코치 시절에는 모리뉴가 크루이프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긴장해서 말도 못 걸고 벌벌 떨었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원정경기를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우연히 크루이프 옆좌석에 배치되었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도 더듬으며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안쓰러운 나머지 크루이프가 먼저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모리뉴도 답변을 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긴장을 풀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판 할과 모리뉴

과르디올라와 모리뉴[15]

"바르샤는 내 마음 속에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할 거야"

- 주제 모리뉴, FC 바르셀로나 통역사, 1997년 우승 축하 행사에서

하지만 그는 바르사의 철천지 원수가 되어 나타난다...#

둘의 라이벌리는 펩 과르디올라 항목 참조.

3. 감독 경력

자세한 것은 주제 무리뉴/감독 경력 항목 참조.

4. 전술 스타일

4.1. 장점

한마디로 말하자면 철저한 실용주의자. 일단, 극단적인 수비축구만을 구사한다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약팀 vs. 강팀(모리뉴 팀) 구도의 경우라면 어느정도의 점유율을 확보한 상태에서 자기 팀이 게임을 주도하는 경기 운영을 한다. 기록적으로 봐도 평균 점유율은 늘 리그에서 상위권에 있고 15-16시즌 첼시를 제외한 모리뉴가 맡은 팀은 항상 리그 득점 3위 이내에 있었다. 심지어 레알마드리드 시절에는 리그에서 100골 이상 넣은 적도 있다. 또한, 공격 패턴이나 득점 루트가 역습에만 치중되어있다는 편견과는 다르게 점유율 축구, 선수들간의 유기적인 패싱플레이, 간격 유지, 부분 전술에도 세밀하게 신경쓰는 타입이다.[16]

이러한 기본 컨셉에도 불구하고 모리뉴 감독이 수비축구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그의 극단적인 실리주의성이 중요한 경기에서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모리뉴는 확률적으로 이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술을 구사하는 감독이다. 즉, 이기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술적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 타입이다. 때문에 만약 상대 팀의 객관적인 전력이 자기 팀보다 우위에 있으면 지체없이 라인을 내리고 선수비-후역습 전술에 치중하는 것이다. 반대로 만약 라인을 올리고 공격적으로 나서는 것이 승리(혹은 우승)를 위해서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마찬가지로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한다. 그런데 모리뉴에게 전자의 이미지가 강한 이유는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 당대 우주 최강팀이었던 바르샤를 상대로 보여주었던 수비전술, 첼시 시절에 존 테리의 느린 발을 커버하기 위해 수비라인을 내린 그의 선택이 많은 팬들에게 인상깊게 남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르샤한테 여러번 얻어맞으면서 상대에 대한 연구가 되었는지, 이제는 어느정도 해볼만 하다라고 판단하여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정상적인 경기운영을 하거나 오히려 맞불작전을 펼쳐서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첼시 시절에도 이른바 '버스 세우기' 전술을 들고 나온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하지만 확실히 맨유에서 감독직을 맡은 뒤 수비적인 운영을 매우 선호한다. 특히 원정에서는 버스 세우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홈에서도 가끔 안티 풋볼을 구사하곤 한다. 기본적으로 맨유에서는 매우 수비적이고 신중한 전형으로 경기를 펼친다.[17]

이미지와 다르게 극단적인 수비축구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수비에 엄청난 신경을 쓰는 것은 사실이다. 대체로 수비라인을 내리는 강력한 수비축구를 지향하나 수비 일변도 뿐만 아니라 중요한 타이밍 때 신속하게 역습하여 상대의 허를 찌르는 이탈리아식 선수비 후역습에 충실하다[18]. 이런 방식의 축구로 인해 라인을 올려 속공을 하는 방법이 잘 듣지 않는다. 이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모리뉴식 전술이 들어간 팀의 구성이 수비수가 많은 데다 미드필더들도 수비에 잘 들어가서 상대방의 침투를 원천 봉쇄하여 상대방의 침투를 수적우위로 밀어 버려 공격수들의 침투가 어렵다.

둘째, 만약 모리뉴가 지휘하는 팀이 수비로 상대의 침투를 막기만 하면 다행인데 축구가 막기만 하는 스포츠인가?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패스를 침투가 뛰어난 공격수에게 정확히 전달하면 라인을 올려서 생긴 뒷공간이 다 뚫려 상대 수비가 말 그대로 초토화 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심지어 골키퍼와 1대1 상황이 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속공을 위해 라인을 올려 공격하는 전술을 쓴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가 피본적이 엄청나게 많다. 벵거가 모리뉴를 이긴 것은 첼시가 망가지기 시작한 2015/16시즌 커뮤니티 쉴드뿐이다. 라인을 내려 역습하는 방법 외에도 팀의 전체적 밸런스를 중시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가 중원을 구성할 때 공격적인 재능이 뛰어나도 수비적 기여도가 낮은 선수[19]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후안 마타가 첼시를 떠나게 된 이유도 같은 맥락.

전술적인 부분과는 별개로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며 감독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팀을 운영하는 것도 그의 능력. 통역관 출신으로 6개 국어가 가능한지라[20] 선수 한명한명을 개별적으로 붙잡고 직접 전술에 대한 이해와 필요한 플레이 등을 머릿속에 주입시킨다고 한다. 한마디로 선수단 장악력이 뛰어나다. 디디에 드록바 같은 경우 '시합이 그의 말대로 움직이니까 그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는 미래를 보는 마법사 같다.'라고 절대적인 신뢰를 보였을 정도. 다만 레알 마드리드과 첼시 시절에는 스타 플레이어들과의 불화로 선수단 통제에 실패한 오점을 남겼다.

각 포지션마다 선호하는 선수 유형도 본인의 전술만큼 정형화가 어느정도 된 감독이다. 이를 전성기 인테르 - 첼시로 비유하자면,

스트라이커 : 포스트 플레이와 결정력이 좋은 선수를 선호한다. 활동량이나 수비가담도 중요시 여기지만, 골을 잘 넣느냐 마느냐를 상당히 중요시 여긴다. 이는 디에고 코스타의 경우가 바로 그 예시. 맨유에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역습 속도를 죽이는 것 아니냐는 식의 말이 있었음에도 팀에서 가장 골 잘 넣는 스트라이커라서 거의 혹사에 가까울 정도로 절대적인 신뢰를 주었다.

윙어 : 모리뉴의 윙어 특색은 4-3-3 전술에 기반한 컨셉 그대로이다. 이는 디마리아 & 호날두로 대표되는 양윙어라인으로 대변될 수 있다. 득점에 강점을 가진 선수드리블에 강점을 가진 선수를 이용해서 상호보완을 하는 전술을 택한다. 또한 양쪽 윙어들에게 활발한 수비가담을 요구한다.

공미 : 공미를 선호한다고 볼수는 없지만, 이 포지션에 한해서는 많은 유형의 선수를 사용해왔다. 데코와 같이 경기 조율에 강점을 지닌 유형, 스네이더처럼 다재다능하고 활동량도 좋으면서 득점가담도 적절히 하는 유형 그리고 외질처럼 철저히 어시스턴트 유형의 선수등 다양한 선수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스네이더르와 오스카의 예를 보면 가장 선호하는건 박투박 유형의 활동량, 수비가담이 좋은 공미를 선호하는걸로 보인다. 첼시 1기 시절의 램파드같은 유형의 선수를 위로 끌어올린 형태다

중앙미들 : 모리뉴가 점유를 중시하는 감독임을 대변해주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모리뉴가 운용했었던 미드라인을 보면 알론소 & 람파드, 모타, 캄비아소와 같은 선수가 마에스트로 역할을 맡는다면, 이를 케디라 & 마티치, 에시앙등의 전투적이면서 헌신적인 선수들이 보좌를 적극적으로 해준다. 모리뉴가 부진한 시즌은 대부분 이 중원미드라인 케미의 균열이 발생하면서부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비수 : 탑 클래스의 감독치고 그 누구보다 고전적인 수비라인을 중요시 여기는 감독이다. 요즘과 같이 빌드업이 중요시 되는 시점에서도, 모리뉴의 축구사전에서 수비수는 수비를 잘하는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첼시 1기의 테리&카르발료, 인테르에서 트레블을 일궈낸 루시우&사무엘, 마드리드 시절의 페페&라모스, 첼시 2기의 테리&케이힐, 맨유에서의 바이&존스까지. 이 조합들이 빌드업이 안되었던건 아니지만 수비력이 가장 큰 장점이었지, 빌드업에서 두드러지는 선수들은 아니었다. 일부 감독(대표적으로 반 할)들이 각광하는 왼발잡이 센터백에도 크게 매달리지 않는다. 풀백은 공격적이건, 수비적인건 그때그때에 팀 사정에 맞춰서 라인을 운용한다. 다만 맨유에서는 수비력이 부족하지만 빌드업이 뛰어난 빅토르 린델뢰프를 영입한 것을 보아 이제는 빌드업 또한 어느 정도 신경 쓰는 것으로 보이나 지금까지는 처참한 결과만 보이고 있다.

4.2. 단점

모리뉴가 다시 첼시로 복귀하면서부터 결과 지상주의, 승리 지상주의의 모리뉴의 축구에 대해 '보는 재미가 많이 뒤떨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실제로 모리뉴가 애용하는 전술 방식, 수비 라인을 바짝 내리고 빠른 역습을 통해 골을 넣는 전술, 특히 그라운드의 모든 선수들에게 유난히 보수적으로 수비력을 강조하는 전술이 승률에 기여했을 수는 있어도 축구 보는 재미를 반감시켰다는 의견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프리미어리그로 , 클롭, 에메리, 사리와 같이 공격 전술에 유니크한 재능이 있는 감독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모리뉴의 스타일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에서, 쉽게 말해 재미의 측면에서 경쟁력이 부족하다. 축구 경기에 재미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축구는 돈의 스포츠다. 이기지도 못하면서 재미없는 축구가 지속되면 입장료와 중계료 수입이 하락하게 되고 이는 구단 재정 악화로 이어져 장기적인 구단 운영에 걸림돌이 된다. 모리뉴 정도의 감독이 일할 정도의 클럽이라면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명문 클럽이 대부분인데, 이러한 빅클럽들은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에서도 아름다움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첼시 1기 시절과 같이 신흥 강호, 갓 클럽이 도약을 시작한 신흥 강호의 시절이라면 모리뉴식의 스타일이 충분히 먹힐 수 있었으나 역사가 깊고 오랫동안 명문이었던 클럽의 경우에는 승률 뿐만 아니라 승리를 가져가는 과정에서도 만만치 않은 수준을 요구한다. 특히 폴 스콜스와 같은 일부 맨유 레전드들이 맨유를 이끄는 모리뉴가 아니라 펩 과르디올라를 칭찬하는 것도 '승리의 과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5. 특징

5.1. 독설 및 논란

주제 무리뉴/독설 및 논란 항목 참조.

5.2. 모리뉴 2년차

팀을 융합시키는 과정에서 첫 번째 시즌을 끝내고 나서야 겨우 적절한 시스템이나 플레이에 대한 사고방식이 스며든다. 항상 말해오던거지만, 나의 팀은 두 번째 시즌부터 피크를 맞이한다. 어떤 팀에서도 첫 시즌에 우승했던 것은 행운이었을 뿐이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 부임 이후 인터뷰에서)

모리뉴 2년차 커리어에 우승한 트로피 리스트. 총 5번의 2년차 시즌을 겪을 동안 도합 12개나 되는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모리뉴 2년차라는 단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모리뉴가 맡은지 2년차가 되는 팀은 그 해 시즌에 유독 뛰어난 퍼포먼스와 조직력을 보여주며 우승컵을 여럿 들어올리는 특별한 징크스가 존재한다. 인테르 시절 트레블도 2년차에 이룬 성과고, 무엇보다 유럽에서 4개국, 4개 리그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팀들의 감독을 맡아봤음에도 아직까지 모리뉴 2년차의 팀이 리그 우승을 놓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자만, 맨유 감독 2년차인 2017-18 시즌에는 맨시티의 조기우승으로 인해 결국 우승을 놓쳤다. 모리뉴 2년차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던 시기는 레알 마드리드 감독 2년차 시즌 무렵으로,[21] 11-12 시즌 전의 레알 팬들의 여론은 모리뉴는 2년차까지는 믿고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과 아무리 모리뉴라도 역대급 멤버진이라 칭송받는 바르셀로나를 제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 등으로 분분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탄탄한 조직력으로 완성된 팀의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에서 라 리가 역대 최다 승점인 100점 기록으로 기어이 리그 우승컵을 들었고, 수페르코파까지 우승하며 승승장구해오던 바르셀로나의 행진에 제동을 거는데 성공한다.

첼시에 복귀해서도 이것이 그대로 이어지는지 14-15 시즌 리그 11경기 무패행진을 기록하는 등 시즌 초중반부터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중이다. 결국 14-15 시즌 3월 초에 캐피탈 원 컵을 제패했고, 리그에서도 35라운드에 2위와의 격차를 16점 차까지 벌려내는데 성공, 자력으로 우승을 미리 확정지으며 앞서 언급한 2년차 때 리그 우승을 거두는 징크스를 어김없이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 징크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2년차에 무관으로 끝나면서 마무리되었다.

일각에선 반대로 모리뉴 3년차라는 말 또한 있다. 모리뉴가 감독으로 부임한 지 3년째가 되면 역으로 팀이 부진하는 양상을 보여 3년차 징크스가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좋은 성적을 단기간에 거두기 위해서 주전 멤버들을 혹사시키고 로테이션 활용도가 낮으며 유스 육성 등에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라는게 중론. 따지고 보면 비교적 최근 생긴 징크스로 모리뉴의 커리어 중 '3년차는 부진했다'라고 명시할 정도로 부진했던 시즌은 세 번이다. 첫 번째는 커리어 최초 무관의 수모[22]를 당했던 레알 마드리드 3년차와 두 번째로 리그 하위권까지 추락했던 첼시 2기 3년차, 그리고 세 번째는 첼시 2기와 마찬가지로 시즌 도중 경질된 맨유 3년차다. 이전 팀인 포르투 3년차에는 리그 우승과 챔스 우승을 거머쥐었고, 첼시 1기 3년차에도 FA컵 우승과 칼링컵 우승에 리그 준우승, 챔스 4강을 찍으며 나쁘지 않은 시즌을 기록했다. 모리뉴 3년차라는 말은 레알-첼시 2기-맨유를 거치면서 자리잡은 비교적 최근 생긴 문제점이다.

모리뉴 3년차 징크스라는 주장은 프로 축구팀 감독의 평균 재임기간을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주장도 있다. 알렉스 퍼거슨이나 아르센 벵거 감독 때문에 EPL 감독 재임기간이 길다고 생각할지 모르는데, EPL 감독의 평균 재임기간은 겨우 1.6년이다. EPL에서 감독으로 3년을 버티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23] 참고로 1990년대 이후 레알 마드리드 감독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고, 최장 재임 감독도 1위인 비센테 델보스케가 3년을 조금 넘겼고 뜻밖에도 2위가 모리뉴였다. 지네딘 지단 감독의 재임기간은 만 3년이 안 되어 4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징크스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모리뉴 3년차라는 말은 2년차의 훌륭한 퍼포먼스에 비해서 3년차에 급격하게 실적이 부진하고 무관으로 끝나서 생긴 말이다. 즉, "다른 감독들도 3년까지 못 버티는 경우가 허다한데 왜 모리뉴만 징크스라고 하는가."라는 말은 이 징크스가 왜 생겼는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 한 주장이다. 마치 거스 히딩크의 4강 징크스와 비슷한 것. 못 하는 팀을 4강 실력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분명 엄청난 성과지만 그렇다고 그의 팀들이 자주 4강에서 탈락하는 것을 징크스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EPL 감독들의 평균 재임 기간이 3년 미만이라고 해서 모리뉴의 3년차를 징크스라 부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2년차에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할만한 성과를 내놓고 3년차에 부진하는 패턴이 3번 연속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24] 특히 그냥 계약 해지 된 것도 아니고 3번 연속 선수단과 심한 불화를 겪고 안 좋은 상황 속에서 퇴진하였다. 부진한 3년차가 3번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렇기 때문에 징크스라는 주장이 최근 들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5.3. 부족한 선수 육성

선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걸 육성하는 감독이 아니고 완성된 선수 중 자기 입맛에 맞는 선수를 영입해오는 경향이 강한데 전성기때는 밀리토와 에투, 스네이더르 같이 정말 실력있는 선수들을 데려왔지만 첼시 2기부터는 월드클래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선수가 내쳐지고, 전성기가 지났거나 빅팀에 어울리지 않는 기량을 가진 선수를 비싸게 사오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육성 실패 사례는 로멜루 루카쿠케빈 더 브라위너모하메드 살라.[25][26]

루카쿠는 모리뉴가 부임하기 전인 12/13시즌 웨스트브롬으로 임대를 가서 프리미어 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며 17골 7도움을 기록했지만 13/14시즌 모리뉴는 프리시즌 중 에버튼으로 임대를 보내버렸다. 그리고 모리뉴가 선택한 라인은 바로 그 전설의 에토바. 결과는 리그 15골 8도움으로 에토바 3형제를 압살해버렸고 첼시팬들 또한 14/15시즌에 루카쿠가 기회를 받을만하다고 생각했지만 모리뉴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두시즌 연속 15골 이상을 기록한 유망한 공격수임에도 모리뉴는 단 한번도 기회를 주지않고 루카쿠를 내치고 디에고 코스타를 영입했다. 그런데 모리뉴는 맨유에 부임한 뒤 루카쿠의 포텐이 터지자 1000억이 넘는 이적료에 부대조항과 루니까지 사실상 얹어주면서 데려왔다.

케빈 더 브라위너의 경우 그 당시 윌리안, 오스카, 아자르가 있었고 로테이션 자원으로 쉬를레까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순 있다. 하지만 모리뉴는 13/14시즌 브라위너가 주전으로 뛰기 위해 도르트문트로 이적을 하려는걸 막고서는 리그에서 단 3경기에 밖에 기용하지 않았고 브라위너가 주전 출장을 요구하자 포지션 경쟁자들을(마타, 아자르, 오스카, 윌리안, 쉬를레) 모두 불러모아서 그들 앞에서 브라위너의 스텟과 경쟁자들의 스텟을 비교해가면서 브라위너를 몰아세웠다.[27] 그리고 겨울 이적시장에서 브라위너는 볼프스부르크로 임대를 떠나서 16경기에서 3골 6도움을 올리며 본인이 기회를 받을만하다는걸 증명했지만 돌아온건 볼프스 완전이적이었다. 그리고 그 14/15시즌에 브라위너는 리그에서만 10골 21도움으로 분데스리가 최다도움을 갱신하고 평가가 짜기로 유명한 독일의 스포츠 잡지 키커에게 월드클래스 공미라고 평가받는다.[28][29] 그 뒤 맨시티로 이적해서 세계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거듭난걸 보면 바이백 조항조차 달지 말라고 요청한 모리뉴 감독의 안목은 그다지 뛰어나다고 볼 순 없다.

물론 결과론이라고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고 당시에는 팬들이 보기에도 맞는 결정이라고 해도 일주일에 한두번 축구보는 팬들과 선수들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 감독의 안목이 비슷하다는건 반대로 모리뉴의 선수 안목이 팬들보다도 떨어진다는 걸 증명할 뿐이다. 또한 보기에 맞는 결정이라고 하기에도 위의 선수들은 임대에서 죽을 쑨 것도 아니고 본인들의 경쟁력을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선수들을 써보지도 않고 내친 것은 모리뉴의 실책이라고 볼 수 있으며 두명의 유망주들이 모리뉴에게 내쳐진 뒤 타 팀에서 에이스 놀이를 하기 시작한 걸 보면 모리뉴의 안목은 부족한게 맞다.[30][31][32]

5.4. 선수단 장악 문제

위에 소개나 밑의 여담에도 나와있듯 원래는 뛰어난 선수 장악 능력이 장점인 감독이었다. 모리뉴의 전성기 시절 모리뉴와 함께 했던 선수들 상당수는 모리뉴에게 존경심과 감사함을 표할 정도로 원만한 관계를 쌓던 감독이었다. 심리학과 외국어에도 능해서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뛰어났다. 외부에는 독설과 막말을 해댔지만 내부 선수들은 확실하게 챙기면서 선수들의 심리를 이용하던 감독.

그러나 모리뉴는 가는 팀마다 선수단과 불화를 일으키며 인테르와 포르투시절을 제외하면 재임중 마지막 시즌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 팀의 핵심이었던 호날두와 라모스, 팀의 심장이나 다름없던 성골인 카시야스와 불화#가 있었던 건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고 첼시 시절 막판에는 태업설이 나올정도로 겉으로 보기에도 팀은 화합과는 거리가 멀었고 단장이었던 에메날로는 누가봐도 선수단과 불화가 있었기 때문에 모리뉴를 해고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맨유에 와서는 또 다시 팀의 핵심인 포그바와의 불화설이 나오고, 결국 선수단 대다수가 모리뉴의 경질에 동의하며 쫓겨나고 말았다. 이는 그의 감정적이며 직설적인 언행이 이유이며 일례로 일반적으로 선수를 특정 지어 비난하는 데 있어 말을 아끼는 여타 감독들과는 달리 기대치에 어긋날 경우 불만사항을 공개석상에서 맹목적인 선수 비난을 통해 표출하는 점을 들 수 있겠다.##2

201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역시나 선수단과 불화설이 흘러나오자 모리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시대에 따라가지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메수트 외질과 같이 모리뉴 아래에서 뛰어본 선수들이 밝히기로는 모리뉴는 아주 확실한 당근과 채찍 방식으로 선수단을 길들인다고 한다. 때때로 동기 부여를 위해 온갖 험한 말이나 약올리는 말을 이용하여 선수들을 자극하기도 하고 때때로 다른 선수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특정 선수에게 자극을 준다. 물론 자신의 마음에 들거나 칭찬을 받을만한 선수들은 사적인 자리는 물론 인터뷰 자리에서도 특유의 재치 있는 말솜씨로 띄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축구 선수들, 특히 어린 축구 선수들은 점점 더 엘리트적이고 전문적인 환경에서 축구를 배우고 성장하기 때문에 모리뉴의 당근과 채찍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혹은 이 방식이 단기적으로 통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통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분석도 있다. 빅클럽의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주목을 받던 유망주고 엄청난 자존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들을 한 군데 모아서 멘탈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감독이 전술만 잘 짜는 사람은 아니라는 의미. 뿐만 아니라 오늘날 축구 선수들은 유망주 시절부터 각종 미디어와 SNS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감독의 말이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순식간에 이러한 정보가 가십 뉴스가 되어 퍼져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선수 하나하나 영향력이 커지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개인주의적인 성향마저도 축구선수들 사이에서 심화되는 이 시대에 모리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과연 지금도 통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은 꾸준히 제기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세대의 선수들의 성향이 감독의 말을 받아들이기만 하는게 아니라 자기 의견을 피력하며 불만이 있을 경우 그것을 표출하는 빈도도 높아졌고 2010년대 들어서 SNS가 급격히 대중화되며 그 불만을 표출할 창구 또한 늘어났다는 것이다.

예전에야 모리뉴가 혹독한 채찍질과 적당한 당근을 이용하여 팀을 조련하고 불화가 생기면 팀 밖으로 퍼져나가기 전에 해결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새로운 세대에게는 SNS를 포함해 여러 부분에서 외부와 소통할 창구가 늘어났다. 불만이 생기는 즉시 대중에게 알려지며 해결하기 전에 대중들과 언론들이 팀을 흔들어서 선수단 화합에 없던 금도 가게 만든다.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SNS 사용 금지 등을 지시하는 것 또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말하자면 감독이 말하는걸 의문없이 무조건 따르길 바라는 모리뉴의 방식은 2010년 후반의 시점으로 보면 구식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모리뉴의 전임자인 반할 역시 맨유에서 겪었던 문제다.

애초에 맨유를 포함한 영국 팀들은 팀 내에 엄청난 똥군기가 만연했던 경우가 많다. 리오 퍼디난드는 박지성에게 한국의 선후배 악폐습을 듣고 오히려 "좋은 문화인데 요즘엔 사라져서 아쉽다." 같은 말을 해댔다. 에릭 칸토나도 말이 카리스마지 실상은 퍼기의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종종 폭력을 행사하던 선수였다.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부터 상명하복적인 마인드로 팀을 지휘하기도 했고. 이런 식의 "내가 시키는대로 따라 와라"라는 스타일이 선수들에게 통했던 것은 저 맨유 선수들과 동세대인 모리뉴 첼시 1기나 인테르 시절 정도까지였고, 그 이후 세대부터는 점차 어려워졌다고 봐야 한다. 이를 단순히 요즘 선수들이 버릇없고 나태해져서 그렇다고 볼 문제는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그에 맞는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지도법이 있게 마련이다.[33] 한때 모리뉴 아래에서 뛰었던 마켈렐레 역시 모리뉴에 대한 비슷한 진단을 했다.# 마켈렐레 본인이 뛰었던 세대의 선수들과 오늘날 세대의 선수들은 다르며, 모리뉴는 예전 세대 선수들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는 의미. 실제로 팀을 막론하고 모리뉴에게 좋은 말을 주로 해주는 선수들은 대부분 2000년대 초중반의 과거 선수들이거나 애초에 멘탈 케어가 필요없는 충성파 선수들이다.[34]

SNS가 핑계거리가 될 수 없는게 SNS를 하는 것은 모리뉴의 선수들만이 아니다. SNS는 기자들에게 불화설을 제기하는 떡밥 정도에 불과하지, 결국 근본적으로는 선수와 감독간의 관계에 모든 것이 달린 것이다. SNS에다 뭔 짓거리를 하더라도 선수 본인이 감독을 심리적으로 존경하고 따른다면 결국 SNS에 올라오는 글들은 해프닝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선수단에게 신임을 잃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SNS를 하는데 모리뉴의 팀이 불화설이 더 많다면 명백히 모리뉴의 방식이 선수들의 불만을 더 자주 유발한다고 보는게 맞다.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모리뉴의 경질이 선수단의 90%가 원해서 이루어졌다는 말이 나왔다. 선수단이 감독에게 반항하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선수와 감독은 비지니스적인 사이에 불과하지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같은게 아니다. 리더가 비지니스적으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 하고 인심을 잃었다면 경질 외에는 방법이 없는게 당연하다. 그리고 유사한 일이 세 번 연속으로 일어났다면 모리뉴의 선수 통제 방식이 분명히 2018년 시점에서는 안 먹히고 있다고 봐야 한다. 모리뉴가 다음에 찾을 팀에서는 이 문제를 극복할지 주목받는 부분.

이 문제는 위에 언급된 부족한 선수 육성 문제와도 연결되고 있다. 케빈 더 브라위너의 이적과 관련하여 더 브라위너가 밝힌 기사에 따르면 자신을 사무실로 불러서 그의 저조한 스탯을 읽었고, 뒤이어 윌리안, 오스카, 후안 마타 등의 우수한 스탯을 읽은 뒤 더 브라위너가 말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에 더 브라위너는 비교하는 선수들은 15~20경기를 나왔지만 자신은 3경기 밖에 못 나왔다며 항변했지만 불쾌감을 느끼며 이적을 결심했다고. 물론 선수 육성 문제 문단에도 언급된 바와 같이 당시 첼시에는 윌리안, 오스카, 아자르 등 브라위너를 대신해 뛸 선수가 많았지만, 아무리 전력 외로 분류된 선수라고 하더라도 이적 과정에서 선수에게 모욕을 주는 행위가 결코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누적되어 무리뉴와 함께 한 선수들 중에는 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선수들도 제법 있다. 무리뉴와 사이가 좋은 선수들은 대체로 첼시 1기나 인테르 시절 선수들이다. 결국 무리뉴의 직설적이고 때로는 모욕적인 화법이 선수단 장악 문제로 연결되며, 장차 좋은 선수로 자라날 여지가 있는 어린 선수들마저 놓치게 된다.

뮌헨시절 까지는 모리뉴와 마찬가지로 선수와의 불화에서 아쉬운 대처법을 보여주던 펩이 맨시티 부임 뒤로는 자신과 불화가 있던 야야 투레를 일방적으로 배척하지 않고 선수단 분위기도 해치지 않게 적절히 타협하며 기용하다 야야 투레가 은퇴뒤 오히려 소인배적인 디스를 하며 자폭을 하는 역관광을 보여주었듯이 그또한 불화설로 다시 곤경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리하자면 전성기 시절에는 카리스마와 특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선수단을 쥐락펴락 하던 감독이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신세대의 심리와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이해하지 못 하고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반발을 사면서 선수단 통제에 실패하고 있다.

6. 여담

  • 미중년 감독하면 떠오르는 사람 중 한명이다. 커리어 및 외모의 최전성기 시절이라 할수 있는 인테르 감독이었을 땐, 온통 그의 얼굴을 찬양하는 댓글로 넘쳤을 정도. 본인도 잘생긴걸 아는지 자신을 모델로 한 영화가 나온다면 주연으로 이 사람을 캐스팅 하라는 말까지 했다.

  • 05/06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받은 우승 메달을 관중석으로 던져버린 적이 있다. 이 메달은 경매에 붙여 한화로 약 3000만원에 거래되었다. 또한 발롱도르 감독상 트로피도 경매로 내놓았다고...모리뉴는 우승으로 받은 부상품보다는 우승 그 자체에 더 만족하는 듯 하다.
  • 첼시에서 감독을 할 때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어느 소년이 딸에게 "너네 아빠는 전혀 스페셜하지 않아"라고 놀리자 바로 초등학교로 찾아가 그 소년의 귀를 잡아당겼다는 보도가 났었다. 신체적 접촉은 없었다고 결론이 났으나 혼내러 간건 확실하다고. 아무래도 자기때문에 괜히 딸까지 시비걸리니까 더 화가 난 모양.
  • 헌데 2011년 10월에 그 동안 모리뉴가 가정형편 때문에 축구학교를 그만둘 지경에 처한 어린 학생들의 수업료를 남몰래 대신 납부해왔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모리뉴는 이 사실을 몰래 했지만 그 학교의 교장이 그의 자선을 널리 알리고 싶어했다고. 10명이 넘는 학생의 수업료를 대신 내왔고 환율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천만원에서 수백만원대의 금액이라고. 이 기사를 접한 국내의 해외축구팬들은 팬이든 적이든 일단 끌어모으는 모리뉴라면서 훈훈한 기사라는 반응을 보였다.
  • 불성실한 선수를 매우 싫어하기로 유명하지만 유일하게 갱생하려고 정성을 쏟아부었던 선수가 있는데 그가 바로 아드리아누이다. 당시 인테르 구단주인 마시모 모라티의 신임과 기대가 있었다 해도 재능만큼은 확실한지라 포기하지 않고 갱생을 시키려고 죽을 똥 싸가면서 노력했지만 결과는 아시다시피 팀 무단이탈 및 은퇴뻥카로 되돌아 왔다. 훌리오 크루즈도 깽판을 부렸지만 이내 꼬리를 내리고 사과했다.
  • 가족관계에서 매우 자식들을 아끼고 아내에게도 매우 약한듯. WWE 보러갔다가 딱 걸린적도 있고 항상 가족, 아내 이야기를 많이 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도 유명하다.
  • 게다가 인재를 보는 안목도 좋은 편이라 2010년 월드컵이 끝나자 자신의 팀에 여러 선수들이 영입되었다. 모리뉴는 이 중 앙헬 디 마리아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디 마리아를 골라서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아주 특별한 훈련을 매일 꾸준히 시켰다. 2012년 말에 레알 마드리드의 주요 수비수들이 부상을 당하자 모리뉴는 이 특별한 훈련의 성과물을 검증하기 위해 디 마리아를 왼쪽 풀백으로 집어넣고 도르트문트전에 출전시킨다는 언플을 하기도 했었다.[35] 이에 대해 디 마리아는 "팀에 기여할 수 있다면 어느 포지션도 고마운 마음으로 뛰겠다."고 밝혔다.
  • 축구에도 농구처럼 작전타임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작전타임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 "감독이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경기 흐름을 읽고 끊임없이 수정해서 상황에 맞게 수정된 감독의 전술이 선수들 한명 한명에게 완전히 녹아들어가게 함으로서 축구의 질적 수준을 더욱 높이자는 취지"라 한다.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부 최전방 스트라이커들과 악연이 있다. 우선 척을 진 사이인 호르헤 발다노가 86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의 9번 롤이었고[36] 이후 첼시 FC에서 자신의 전술에 더 부합하는 디디에 드록바를 중용하기 위해 에르난 크레스포를 벤치로 보냈고, 결국 다시 인터밀란으로 되돌아갔다.[37] 다만 인테르에서 만난 디에고 밀리토는 그야말로 트레블의 주역이었고, 곤살로 이과인도 레알 시절 꽤 쏠쏠하게 써먹었기 때문에 그닥 들어맞는 말은 아니다. 특히 이과인은 10/11시즌 25경기 14골 6도움, 11/12시즌 54경기 26골 13도움 12/13시즌 44경기 18골 9도움으로 확실히 수준급 스트라이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0/11시즌은 좀 덜 뛴 것 같아보이지만 부상을 입어 못 나온 것 뿐이다. 심지어 12/13시즌엔 맨유와의 챔스 16강 2차전, 도르트문트와의 4강 2차전 등 큰 경기에서는 이과인을 쓰기도 했다. 오히려 이과인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나폴리로 이적한 시즌은 모리뉴가 아닌 안첼로티 시절인 13/14시즌이다. 결론은 그냥 발다노하고만 사이가 안 좋은 것일뿐, 나머지 아르헨 스트라이커들과는 악연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 앙숙인 아르센 벵거를 매우 잘 잡는다. 그것도 경기장 안과 밖 모두. 첼시 감독으로 복귀하고 시즌을 치루면서 선두를 질주중인데 우승 가능성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첼시는 우승 전력이 아니라며 엄살을 부렸는데, 벵거가 "자신의 팀이 우승 전력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공격하자 "벵거는 실패의 전문가다. 8년이나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지 못하다니, 내가 그랬다면 런던으로 다시 돌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반격해버렸다.[38] 둘 간의 맞대결은 모리뉴 입장에서 8승 6무 2패로 절대적인 우세.
  • 14-15 시즌 아스날과의 홈경기 도중 벵거와 논쟁이 벌어졌고 그에게 1밀침을 당해 화제가 되었다. 경기는 첼시의 2-0 승리로 끝났고, 모리뉴는 그 동안 자신이 많은 잘못된 행동들을 해왔어도 이번 건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벵거도 추후 프랑스 언론과 인터뷰에서 당시 행동에 대해 후회하고 있으며, 이를 사과한다고 언급했다. 기사
  • 주로 디스로 점철되는 언론에서의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장난끼가 많고 인간적인 면모가 넘치는 편이다.

첼시 재직 시절 현지 TV 패널들의 성향에 대한 불만을 장난식으로 토로하는 영상

기자회견 도중 빵 터진 모리뉴 관련 기사

인터뷰 중 난입하며 장난치는 모리뉴#

https://www.youtube.com/watch?v=pIqKNpxpcFk

모리뉴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영상 중 하나로 암투병을 했던 기자가 돌아왔을 때 그 기자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하는 영상이다. 기자에게 이제 몸은 괜찮냐고 하면서 서로 안부를 묻는다. EPL에서 언론하고 티격태격 하는 이미지이지만 은근히 친한 기자들이 상당히 많다.

  • UNICEF에서 주관하는 2014 Soccer Aid 자선 축구 경기에 세계 올스타의 감독으로 나선 적이 있다. 상대는 샘 알라다이스가 이끄는 잉글랜드 올스타. 시즌 중에 빅 샘과 서로 디스전을 주고 받았지만 실제로는 사이가 나쁘지 않은듯하다.

  • 맨유 감독으로 페예노르트와의 경기중 나온 짤. 소위 '모리뉴 마법사짤'이라고 부르며 인기를 탔다.

  • 2014년 5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위치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인 파라다이스 카지노의 모델로 발탁되었다.[39]

  • 2015년 12월 26일 영국 데일리 익스프레스에서 로멜루 루카쿠의 인터뷰가 기사로 나왔다. 루카쿠는 그의 이적에 대해 모리뉴가 자신을 내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고싶은 마음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며, 모리뉴는 오히려 자신에게 행운을 빌어주었으므로 존경한다는 내용. 모리뉴가 그토록 까이는 이유들 중 하나가 케빈 더 브라위너로멜루 루카쿠 등의 벤치멤버들을 내쫓았더니 펄펄 날아다닌다는 것인데, 루카쿠만큼은 내쫓은게 아닌 모양.

  • 사진에서 보다시피 수트빨을 참 잘받는 남자다.
  • FIFA 17에서 홍보모델로 발탁이 됐다. 처음 티저영상에서 나레이션을 했고, E3 발표회에서 출현했다. 물론 대본이지만, 발표자가 모리뉴의 출현에 당황하는 모습에 백미.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하고 난 후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3달동안 꽤 활발하게 게시물을 올리다가 정규시즌 시작 직전에 인스타그램 중단을 선언했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기 때문에 진지해질 필요성을 느꼈다고...[41]
  • UEFA에 선정한 1954년 이후 축구계에 임팩트를 준 역대 축구감독 1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 레알 마드리드 시절 초상권 수입을 탈세한 혐의로 스페인 검찰에 기소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하지만 이에 모리뉴의 에이전시는 "스페인 세무당국은 물론, 스페인 검찰에서도 현재 아무런 통보를 받지 않은 상태다."라며 기소 의혹 기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러나 결국 탈세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218만 유로의 벌금을 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버진 아일랜드 등 해외 법인을 통해 2011년, 2012년 총 330만 유로를 탈루한 혐의가 인정되었다. #
  •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성공적인 외국인 감독 중 한 명이지만 유독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만큼은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다. 2018년 기준 SJP에서만 3무 4패. 모리뉴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동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뉴캐슬보다 전력상 우세한 팀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점을 볼 때 이채로운 점. 2018년 2월 11일에도 강등권 다툼을 벌이는 뉴캐슬에게 모리뉴의 맨유가 1-0으로 패배하며 모리뉴는 또다시 징크스에 울어야 했다.
  • 위르겐 클롭 감독과 특이한 악연이 있다. 2013 레알감독시절 클롭의 도르트문트를 만나서 4대1로 패하고 한달 뒤 경질당했고 2015년 첼시감독 시절 클롭의 리버풀을 만나서 3대1로 패하고 바로 경질, 바로 3년후 2018 맨유감독으로 클롭의 리버풀을 만나서 3대1로 패하고 이틀뒤 훈련장에서 경질통보를 받았다...물론 딱 그 경기들때문에 경질된게 아니고 여러가지 문제가 쌓이다 터진거지만 이만하면 클롭과는 뭐가 있는듯...하지만 클롭 본인은 모리뉴를 존중한다고 인터뷰를 한것과 둘이 만나면 웃음으로 맞이하는 것을 보아서 사이는 좋으나 항상 타이밍이 이상한듯...
  • 모국어인 포르투갈어를 비롯해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해 챔스 인터뷰에서 모리뉴의 능력을 확인할수 있다.

2017년 F1 모나코 그랑프리 예선전에 참석하여 레드불 레이싱 소속의 F1드라이버 맥스 베르스타펜과 대화하는 모습이 중계카매라에 포착되었다.

6.1. 무리타

악성 모리뉴 팬을 의미한다. 자세한 것은 무리타 문서 참고.

7. 어록

난 어릴 때부터 내가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감독으로서 세계 최고가 되기로 결심했다. 매년 하루 한 시간 미래의 감독직을 위한 대비였다.

나는 내가 세계 제일의 감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를 능가하는 감독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첼시에는 최고의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오만으로 듣지 않아줬으면 하지만, 최고의 감독을 손에 넣었다. 나는 유럽 챔피언이고,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Special One)다. (UEFA컵과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고 첼시로 이적한 직후 기자회견에서)(참고)

유럽 3대 리그 모두에서 우승을 거머쥔건 나 하나뿐이다. 앞으로는 '특별한 존재(Special One)'가 아니라 '유일한 존재(Only One)'라고 불러주길 바란다.[42][43]

내가 레알 마드리드를 지휘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축구 감독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만은 확실하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 취임 기자회견)

중압감은 1등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2등이나 3등에게 오는 말이다.

축구에 관한 내 철학은 축구에는 오직 단 하나의 승자밖에 없다는 것이다. 2등은 꼴찌 중에 1등일 뿐이다.[44]

맨유에서 차지한 리그 2위는 나에게 가장 큰 업적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위선자가 돼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 보다는 솔직한게 낫다. 나는 선수들에게 가는 압력을 덜어내기 위해서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 뿐이다.

바르샤 기자 : 당신은 바르샤에서 통역관이나 했던 주제에 왜 이렇게 바르샤에 무례하느냐?
모리뉴 : 그때는 통역관이었지만 지금의 난 첼시의 감독이다. 그런데 내가 통역관에서 명문팀 감독이 될 동안 당신은 여전히 삼류 기자 나부랭이에 멈춰있다. 지금까지 뭐했나?

아스날은 훌륭한 선수와 훌륭한 감독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축구가 승리해야 하는 스포츠라는 것을 망각한 듯 하다. 첼시는 멋진 경기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승리한다.

나도 퍼거슨의 말에 동의한다. 돈으로 챔피언이 될 수 없고 승리를 보장 받을수도 없다. 난 맨유의 10% 예산인 포르투를 이끌고 맨유를 박살냈다 그것이 그 증거다.[45]

리버풀 팬들은 늘 첼시를 보고 역사가 없다며 조롱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 리버풀은 리버풀대로 역사가 있고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있다. 리버풀의 역사는 위대하고 나 역시 그들의 역사를 존중한다. 하지만 리버풀은 지난 17년간 리그 우승을 못했고, 반면 첼시는 지난 3년간 2번의 우승을 이루어냈다. 역사는 박물관에, 나는 현재와 미래를 위해 일한다.

말대답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선수들 앞에서 나와 싸워야 한다. 그것이 주장의 임무다(첼시 부임 이후 존 테리를 주장에 임명하면서)

고개를 들어라. 저 턱 밑까지 숨이 차도록 뛰어준 선수들에게 환호하라. 그들은 환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행복하다. 왜냐하면 인테르가 이겼으니까. 한편으로 나는 불행하다. 왜냐하면 첼시가 져버렸으니까. 또한 나는 행복하다. 인테르 팬들이 기뻐하고 있으니까. 나는 불행하다. 첼시 팬들은 슬퍼하고 있으니까. 불행으로 행복을 산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인생이다.[46]

오늘 시합을 가지고 선수들을 비난하고 싶거든 우선 나를 죽이고나서 해라.

나는 경기력이 나쁜 선수를 절대로 비판하지 않는다. 외부에서의 공격으로부터도 철저하게 지킨다. 하지만 팀을 위해 플레이하지 않는 선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이 팀워크에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팀을 위해 플레이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 선수를 지켜줄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가 절대로 하지 않는 짓은 시합이 끝난 후 매스컴 앞에서 선수를 비판하는 것이다. 패배나 무승부 후에 도망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선수들이 보호받고 안정된 기분을 유지하는 것이 매스컴을 기쁘게 만드는 것보다 100배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쓰러뜨려야할 적은 나이며, 기분 나쁜 녀석은 나이며, 건방진 녀석은 나이며, 무능한 감독은 바로 나다. 내가 그러한 대상이 되는 것은 팀에 있어서 긍정적인 것이다.

나에게 박수를 보내지 말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라. 그리고 기 죽지 말고 고개를 들어라.

모리뉴 : 압박감요? 무슨 압박감요?
기자 : 2게임 연속으로 진 것에 대해서요.
모리뉴 : 자녀에게 먹을 걸 사다줘야 하는데 돈이 전혀 없는, 전세계 수백만의 부모가 느끼는 것. 그런 걸 압박감이라고 합니다. 축구에선 없습니다.

두려운 것은 신 뿐이다. 축구에서 두려울 것이 뭐가 있나. 맨유보다 조류독감이 더 걱정이다.

팀이 이긴다면 그것은 선수들이 잘한 것이고, 팀이 진다면 그것은 내 전술이 잘못된 것이다.

축구에는 시인들이 많지만 시인들은 많은 타이틀을 따지 못한다.[47]

경기 전후로 인터뷰에 응할 때는 언제나 그것도 시합의 일부로서 대처하고 있다. 경기 전의 기자회견에 나가면 머릿속에서 이미 경기는 시작되고 있다. 경기 후의 기자회견까지도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첼시를 4번 우승시키는 감독이 나올 때까지는 내가 No.1이다. 그때가 오면 내가 No.2를 해주겠다. 현재로선 유다가 No.1이란 뜻이다.[48]

I have nussing to say. (할 말이 없다.)[49]

8. 기록

8.1. 감독 기록

8.2. 수상 기록

  • 옹즈도르 올해의 감독 (2) : 2005, 2010
  • FIFA 올해의 감독 (1) : 2010
  • IFFHS 올해의 클럽 감독 (4) : 2004, 2005, 2010, 2012
  • 포르투갈 올해의 감독 (2) : 2002-03, 2003-04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감독 (3) : 2004-05, 2005-06, 2014-2015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3) : 2004년 11월, 2005년 1월, 2007년 3월
  • 이탈리아 세리에 A 올해의 감독 (2) : 2008-09, 2009-10
  • 알보 판치나 도르[53] (1) : 2009-10
  • 미구엘 트로피 (2) : 2010-11, 2011-12
  • UEFA 올해의 감독 (2) : 2002-03, 2003-04
  • UEFA 올해의 팀 (4) : 2003, 2004, 2005, 2010
  • 월드 사커 매거진 선정 올해의 감독 (3) : 2004, 2005, 2010
  • LPFP 어워드 올해의 해외팀 소속 포르투갈 감독 (2) : 2008-09, 2009-10
  • BBC 스포츠 올해의 감독 (1) : 2005
  • 가제차 스포츠 선정 올해의 스포츠 맨 (1) : 2010
  • 국제 스포츠 기자 협회 선정 올해의 감독 (1) : 2010
  • Prémio Prestígio Fernando Soromenho (1) : 2012
  • Football Extravaganza's League of Legends (1) : 2011
  • Globe Soccer Awards Best Coach of the Year (1) : 2012
  • Globe Soccer Awards Best Media Attraction in Football (1) : 2012
  • Portuguese Coach of the Century (1) : 2015

9. 라이벌리

9.1. 펩 과르디올라

코치와 선수로 처음 만나 각각 감독이 되어 경쟁하는 관계. 라 리가의 레알 마드리드FC 바르셀로나에서 감독으로서 붙었으며, 무대를 옮겨 EPL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이 되어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54] 라 리가 시절에는 굉장히 사이가 나빴으나 요즘은 큰 충돌은 없이 서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상태이다. 다만 서로를 존중해서라기보단 더러워서 피하는 성격이 짙다.

서로 치열하게 입씨름한 것 때문인지 상대 전적을 박빙으로 아는 사람이 많으나, 상대 전적은 펩 과르디올라가 일방적으로 압살하고 있다.[55] 모리뉴가 이 정도로 전적이 확 밀리는 경우는 잘 없는데, 대부분 인테르(1승 1무 2패)와 레알 마드리드(2승 4무 5패) 감독 시절에 하필 전성기 FC 바르셀로나를 만나 털린 것들이다. 세르히오 라모스가 스페인 국대 선배인 카를레스 푸욜의 싸대기를 때려 공개사과까지 해야했던 엘클 5-0이 바로 이 분이 레알 감독일 때 쌓은 업적이다. 물론 그 땐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단 기량 차이가 너무 심해서 갓 부임한 모리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56] 그나마 이 시절 모리뉴는 인테르 감독으로 펩 바르샤의 챔스 3연패를, 레알마드리드 감독으로 펩 바르샤의 두번 째 트레블과 라리가 4연패를 막으며 나름 괜찮던 모리뉴이고, 2014-15 시즌 첼시의 EPL 우승을 이끌고 나서 모리뉴는 모우린호가 되어버렸다는

(한국 기준) 2018년 11월 12일 맨더비(EPL)는 '모리뉴 vs 과르디올라'의 현재를 여지없이 보여줬다. 이 경기에서 모리뉴의 맨유는 과르디올라의 맨시티를 상대로 아무것도 못한 채 지고 말았다.[57] 물론 맨시티가 객관적인 전력에서 살짝 우세했으나, 마샬의 PK를 제외하고는 '강등권 팀'도 맨시티 상대로 충분히 기록할 수 있는 유효슈팅(필드)을 모리뉴의 맨유는 기록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일방적으로 수비만 하다가 결국 맨시티에게 추가 골을 헌납했다. 즉, 모리뉴는 과르디올라에게 전술적으로 완패를 당했다. 막판 '스털링-사네-필 포덴'에게 농락당한 것은 덤. 현시대를 대표하는 감독(펩)과 현시대에서 계속 멀어지고 있는 감독(무)의 실태를 잘 보여준 경기.

9.2. 알렉스 퍼거슨

오래 전부터 모리뉴는 퍼거슨을 존경해왔는데, 과거 포르투 시절 챔피언스 리그에서 맨유를 꺾은 직후 퍼거슨이 모리뉴에게 와인을 권했을 때 자신을 존중해준 것에 대해 감동받았다고 한다. 모리뉴가 처음으로 EPL에 진출해 갑부 구단주의 지원 아래 첼시를 강팀으로 만들어 갈 때, 퍼거슨의 디스에 주눅들지 않고 맞디스를 해주고 경기 후에는 함께 와인을 마실만큼 서로 존중하는 관계.

포르투 시절부터 첼시,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를 거쳐가며 퍼거슨의 맨유와 경쟁을 이어갔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 퍼거슨의 마지막 챔피언스 리그에서 맨유를 꺾기도 했지만 이제는 모리뉴가 맨유 감독이 되어 퍼거슨 시절의 영광을 계승해나가고 있는 상태.이제는 짤렸다

9.3. 아르센 벵거

모리뉴의 밥이자 승점 6점 자판기. 경기는 물론 입으로도 털면서 아르센 벵거를 바르곤 했다. 관음증 환자라는 발언부터 시작해, 실패셜리스트, '나라면 십 년동안 트로피 없으면 런던에 다시는 안온다'라는 주옥같은 멘트로 벵거를 털었다. 어찌나 털고 관심을 가졌는지, 모리뉴가 첼시로 복귀했을 때, '우승을 못한 감독' 얘기를 했을 때, 팬들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그 감독을 벵거라고 예측하면서, '모리뉴는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벵거를 저격했다.'고 하면서, '그래도 벵거 챙겨주는 건 모리뉴다.'란 반응을 할 정도. 전설적인 벵거의 천 번째 경기에서 6:0으로 개박살내기도 했지만 요즘은 벵거가 말년에 모리뉴를 꺾고 설욕을 해나가는 상태. 그러나 싸우다가 정이 든 건지, 이어지는 싸움에 본인들이 '같이 저녁을 먹었다'는 인터뷰도 했다[58].

상대전적은 모리뉴가 압도적이다. 승리 아니면 무승부였지만 요즘은 벵거도 모리뉴를 꺾기도 하고, 여러모로 흥미거리가 넘치는 라이벌이다.

그리고 벵거가 17/18 시즌을 마지막으로 아스날 감독직을 그만두기로 하면서 당분간 또는 평생 둘 사이의 경기는 볼 수 없게 되었고, 시즌 막판 아스날이 맨유 원정을 위해 올드 트래포드를 찾아오자 퍼거슨과 모리뉴는 벵거를 위해 그동안의 아스날 감독으로 일한 헌신에 존중을 표하는 트로피를 맨유 구단을 대표하여 직접 선물하였다.

10여년간 필드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정이 들어버렸는지, 이제는 비인스포츠의 방송 패널로 둘이 나란히 출연해서 케미를 보여줄 정도로 사이가 봉합된듯하다. 세상 모른다

9.4. 위르겐 클롭

만났다하면 두들겨 맞는다. 둘 간의 대표적인 경기는 모리뉴의 마지막 레알 마드리드 시즌이었던 12/13 시즌에 챔스 4강에서 만나 1:4로 진 경기가 있다. 클롭의 도르트문트 시절.

클롭감독 성격상 둘은 사이가 나쁘지않다. 매번 만나면 반가워서 포옹하고 악수하는 정도.[59] 물론 모리뉴의 성격상 매번 클롭을 디스하지만 클롭은 그딴거 전혀 신경쓰지도 않고 무시해버린다...

가장 최근 경기는, 18/19 EPL에서 201번째 북서부 더비인 가운데 모리뉴의 맨유가 클롭의 리버풀을 상대로 3대1로 처참히 털렸다...기록은 더 가관인데 슈팅개수 6대36, 코너킥개수 2대13, 패스횟수 202대 456, 점유율 35대65로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전술적으로 완패를 했다. 결국 이 경기 후 모리뉴는 맨유에서 경질되었다.[60]

통산전적 4승 3무 10패로 클롭에게는 열세.

9.5. 안토니오 콘테

이때 상황은 이렇다. 첼시가 4:0으로 앞서자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제스쳐를 취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모리뉴 감독이 1:0의 스코어에서 그러는건 이해가 가지만 지금은 4:0이다. 이건 모욕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기자회견에선 콘테가 모리뉴 감독과의 사이에 문제가 없다고 말해 그냥 전임 첼시 감독들 간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다음 만남에선 그렇게 곱게 끝나지 않았다. 양쪽 모두 심판의 판정에 불만이 있어 항의하러 나오다가 하프라인 근처에서 마주쳤는데, 모리뉴가 라인 밖으로 빠져나온 공을 콘테 쪽으로 아주 살짝툭 차서 보낸 것. 그러나 성격이 불같고 지난번 일로 모리뉴를 벼르고 있던 콘테는 건수를 잡자마자 엄청난 사자후를 뿜으며 모리뉴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당연히 깜짝 놀란 모리뉴는 황급히 맨유 쪽 벤치로 돌아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딱 잡혀버렸다. 자신의 핀잔을 꾹 참고 넘어간 콘테를 만만히 보고 도발했다가 굴욕적인 장면만 찍혀버린 것. 이 후 콘테는 기자회견에서 “모리뉴는 원래부터 소인배였다.”라고 주장하며 맹비난을 늘어놓았다.

EPL에 등장한 새로운 이야기거리인 두 감독이다. 이전에는 서로 관심도 없던 사이지만 모리뉴가 맨유로 가고, 떠난 자리를 콘테가 받으면서 라이벌리가 생겼다. 본래도 얌전한 성격관 거리가 먼 두 감독이지만, 귓속말 사건을 시작으로 제대로 불이 붙었고, 이후에도 모리뉴 시즌 발언,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견제로 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상대전적은 콘테가 우위.

그리고 서로 우승 트로피가 절실한 가운데 시즌 마지막 경기인 17/18 잉글리시 FA컵 결승에서, 콘테의 첼시가 1:0으로 승리하였다.

총 상대전적은 콘테가 4승 2패로 모리뉴에게 상당히 강한 점을 알 수 있다.


  1. [1] 엔히크 왕자 3등급 훈장을 받았다.#
  2. [2] 중앙 미드필더
  3. [3] 시즌 도중 부임
  4. [4] 시즌 도중 사임.
  5. [5] 시즌 도중 경질
  6. [6] 시즌 도중 경질.
  7. [7] 시즌 도중 경질.
  8. [8] 기묘하게도 경질된 날짜가 전 첼시 2기때와 똑같이 12월 18일이다.
  9. [9] 풋볼 매니저는 패키지 표지로 하관까지만 드러나는 축구감독 사진을 쓰는데, 2005 이후 꾸준히 모리뉴 스타일의 사진이었다가 2010 무렵부터 머리숱도 많이 부족하고 수염도 깎다만 것 같지만 수트빨은 쥑이는 사람 사진으로 바뀌었다.
  10. [10] 리그, FA컵, 슈퍼컵 등 각 리그 내에서 우승 가능한 모든 타이틀들을 획득했다.
  11. [11] Rosenthal에서 th부분이 θ발음이기 때문에 국립국어원에선 '로즌솔'을 권장하고 있다.
  12. [12] 이 쪽은 언론에서의 지속적인 사용으로 '효도르'라는 표기는 대단히 줄어들었지만, 대신 성 부분의 표기가 어렵다.
  13. [13] 오른쪽 사진은 아랫줄 맨 오른쪽이다.
  14. [14] 이 때 실제로 여학생들에게 인기 절정이었다고 한다.
  15. [15] 모리뉴 앞에 있는 선수는 바르셀로나 시절의 루이스 피구. 펩 옆에 있는 선수는 전 바르셀로나 감독인 루이스 엔리케이다.
  16. [16] 이러한 부분은 알렉스 퍼거슨과 유사하다. 맨유 레전드 게리 네빌은 사람들이 퍼거슨 전술의 중점이 양쪽 윙어를 이용한 고속 역습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맨유 전술의 일부분이었을 뿐, 퍼거슨이 가장 신경썼던 부분은 공의 점유였다고 한다.
  17. [17] 맨유에서의 답답한 경기 결과들은 내린 수비 전술의 필수 요소인 속공 역습이 안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속공 역습은 선수들의 순수 실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고 그 때문에 영리하고 속도가 빠른 선수들(특히 윙어)을 보유하고 있어야되지만 맨유의 스쿼드에서 그런 선수가 적다. 특히 마타의 오른쪽 윙 + 포그바의 링커 기용은 맨유의 역습 속도를 현저하게 떨어트리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후방 빌드업이 현대 축구의 필수적인 요소인건 맞지만 라인을 내린 팀이 후방 빌드업을 사용하는건 이미 라인을 올려버린 상대팀 전방압박의 좋은 먹잇감밖에 되지 않고 상대팀의 뒷공간을 노리겠다는 선수비 전술의 기본조차 지키지 못하며 후방에서 빌드업을 통해 올라오는 동안 상대팀 선수가 내려앉아버린다. 즉, 현재 모리뉴의 전술은 있는대로 얻어맞고 정작 본인은 때리지도 못하는 식의 어이없는 무압박 선수비 후점유라는 이상한 전술이다.
  18. [18] 다만 모리뉴 본인은 인테르 부임 당시 '나는 이탈리아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19. [19] 그렇다면 왜 수비 가담을 안하고, 전술적 한계가 있는 포그바를 영입했냐는 의문이 들것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포그바를 받쳐줄 3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쉬네들랑, 펠라이니, 에레라) 모두 망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20. [20] 이탈리아어 같은 경우 인테르에서 오퍼가 온 직후부터 배우기 시작했음에도 인테르 부임 인터뷰에서 거침없는 이탈리아어를 구사하며 이탈리아 현지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이탈리아어를 배운 기간은 불과 3주라고.(단,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는 모두 고대 이탈리아(로마)어에서 파생된 언어라서 서로 상당히 비슷하고 배우기 쉽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스페인어 사용자와 이탈리아어 사용자는 각자 자기 나라 언어로 이야기 해도 서로 상대의 말을 절반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통설일 정도다. 아무리 그래도 외국어이므로 몇 주 만에 유창하게 구사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한국인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배우는 것처럼 몇 주 학습으로는 기본 회화도 쉽지 않은 그런 난이도는 아니다.) 그만큼 현지 선수, 팬, 언론과의 소통을 중요시한다.
  21. [21] 모리뉴 2년차를 다룬 골닷컴 기사, 레알 마드리드 공식 홈페이지에도 올라왔다!!
  22. [22] 재직 기간이 1시즌 미만이었던 벤피카, 레이리아 시절 제외.
  23. [23] 3년차 징크스가 없는 감독은 이미 2년차에 경질됐기 때문에 3년차 경력이 없는 것이다. 안토니오 콘테우나이 에메리는 전 소속팀에서 2년 마치고 경질됐기 때문에 3년차 경력 자체가 없다.
  24. [24] 물론 맨유 2년차는 그나마도 무관으로 끝나서 3년차에 대한 기대도 낮았다.
  25. [25] 물론 감독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다. 유망주를 키우는 감독도 있고, 완성형 선수를 데리고 잘 융합시켜서 단기간에 우승시키는 감독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스타는 언제나 팬들의 사랑을 받고 팀의 얼굴이 되며 클럽의 인기를 높여주는 원인 중 하나고 돈을 들이지 않고 수준급의 선수를 얻을 수 있는 길이며 여러모로 팀의 재정을 좋게 만들어주는 현대 클럽의 중요요소다. 또한 국제대회나 많은 리그에서 과열화되고 있는 이적시장에서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가 가지 않는 상황을 막기 위해 유소년 시절 클럽에서 훈련받은 선수를 일정 수 이상 등록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축구에서 유망주를 키우지 못하는 감독들은 왠만큼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이상 입지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26. [26] 사실 최전성기였던 인테르 시절도 앞의 성공사례에 묻혀서 그렇지 4300만 유로를 들여 콰밥만훈중에 2명(옵션 포함 3000만 콰레스마+1300만 만시니)을 사게 만든 사람이다.
  27. [27] 매번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과 2경기 선발 1교체로 뛴 선수가 스텟이 비슷할리도 없거니와 선수들과의 호흡도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 이건 굉장히 불공평한 비교다. 브라위너도 위와 같은 이유로 분노했다고.
  28. [28] 키커에게 월드클래스로 평가받는다는건 굉장히 대단한 일이다. 분데스리가에 뛰어난 선수들도 많고 바이에른 뮌헨 같은 굇수들이 모여있는 구단이 있음에도 월드클래스 평가를 받은 선수가 아예 없는 시즌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29. [29] 반대로 모리뉴가 KDB를 내보내고 로테이션 자원으로 선택한 쉬를레는 14경기에서 3골만을 기록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 뒤 겨울 이적 시장에서 쉬를레는 방출되고 콰드라도가 영입되지만 콰드라도는 12경기에서 무스텟을 기록하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
  30. [30] 물론 모리뉴도 더 브라위너와 로멜로 루카쿠를 기용하고 싶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코스타라는 큰 무대에서 이미 검증을 끝낸 선수가 존재했기 때문에 루카쿠를 포기했다. 하지만 코스타의 영입도 에토바의 실패 이후 루카쿠를 기용해보지도 않고 실행한 영입인데다 로테이션도 잘 안돌리는 모리뉴 특성상 애초에 플랜에 포함시키지 않았거나 철저하게 코스타의 체력 안배용 백업으로만 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31. [31] 루카쿠는 이적 초반에 부진했지만 14/15시즌 후반부터 살아나더니 15/16시즌에 에이스로 거듭났다.
  32. [32] 살라 또한 여기에 포함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정말로 결과론일뿐이다. 지금이야 살라가 득점, 패스, 드리블이 모두 가능한 크랙이지만 당시에는 병역 문제 등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드리블만할 뿐 나머지 능력치가 폐급이나 마찬가지였었다. 거기다가 첼시 쪽에서는 임대를 보낼 때 완전 이적 조항까지 붙여놨기 때문에 피오렌티나에서 잘하던 살라를 붙잡을 수도 없었고, 모리뉴의 전술 스타일과는 상반되는 전방압박이 강한 팀에 어울리는 살라를 붙잡을 이유도 없었다. 다만 이후 모리뉴는 살라는 본인이 이적을 시킨 것이 아니며 본인이 이적 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상황임에도 이적 자금 확보를 위해 구단에서 먼저 이적시킨 것이라고 밝히긴 했다. 뭣보다 이 당시엔 같은 자리에 이 선수가 있기도 했기에 살라가 설 자리가 있었을 리가...
  33. [33] 당장 학교에서만 해도 옛날에는 체벌이나 심한 경우는 구타까지 하며 사람을 조련했지만 요즘은 함부로 매를 들지 않는다. 심한 경우는 체벌하는 행위가 SNS 등을 통해 전파되기도 한다. 이를 보고 요즘 세대가 빠졌다, 반항적이다 라고만 치부할 일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을 뿐이다. 결국 모리뉴도 최근의 어린 선수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34. [34] 레알에서의 아르벨로아, 맨유에서의 마타,마티치, 에레라. 이들을 예시로 드는 이유는 모리뉴가 이들의 프로의식을 만들어 줘서가 아니라 애초에 감독이 누구더라도 불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낮은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35. [35] 이 경기에서 왼쪽 풀백 자리에 에시앙이 뛰면서 낚시임이 드러났다.
  36. [36] 실제 등번호는 11번. 발다노와 10번 마라도나, 7번 부르차가는 당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 대표팀의 삼각편대였다.
  37. [37] 다만 크레스포와 사이가 나쁘거나 한건 절대 아니다. 실제로 크레스포는 모리뉴에 대해 긍정적인 인터뷰를 많이 했고, 모리뉴도 레알 재직 시절 크레스포를 초청하여 경기 전 훈련을 함께 참관할 정도. 기사
  38. [38] 다만 벵거 본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39. [39] 첼시 시절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던 검은 코트인데, 경기장에 항상 이 코트만을 입고 나왔던지라 당시 화제가 되었다. 코트가 한벌 밖에 없다느니 승리를 부르는 행운의 코트라느니 등등. 이후 이 코트에 대한 질문에 '그냥 이 코트가 마음에 들 뿐이다. 부드럽고 따뜻하니까. 이거 캐시미어다.'라고 대답했다.
  40. [40] EPL 역대 최고 승점 기록(95점), 한 시즌 최소 실점 기록(15실점), 최다 홈 무패행진(77경기), 최연소 챔스 100경기 달성(49세)
  41. [41] 다만 완전히 중단한 것은 아니고 크리스마스 때 가족과 함께하는 사진으로 다시 찾아오겠다고 밝혔다. 물론 선수들은 자유다.
  42. [42] 위 기록은 펩 과르디올라이 EPL, 라리가, 분데스리가에서 우승을 달성하면서 only one은 물건너갔다...
  43. [43] 다만 이 당시 모리뉴가 말하는 3대 리그는 EPL, 세리에, 라리가다. 펩은 세리에에서 우승한 적이 없다.
  44. [44] 그런데 17-18시즌 맨유가 2위를 확정한 후 1위를 놓쳤다면 2위가 최고의 결과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내로남불이라며 까이고 있다.그리고 2019년 맨유에서의 2위가 재평가 받고있다(...)
  45. [45] 맨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적시장에 거액을 쏟아붓는 첼시에 돈으론 성공을 살 수 없다고 비판하자.
  46. [46] UCL에서 인테르의 감독으로서 첼시에게 승리한 뒤.
  47. [47] 참고로 이 말은 야약스와의 유로파리그 결승후 아약스 감독인 피터 보츠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롱볼 게임때문에 우리는 오늘 우리의 게임을 하지 못했다. 양팀 서로 기회가 별로없는 지루한 게임이였다"란 말을 반박한 것이다.
  48. [48] 2017년 FA컵 준결승에서 첼시에게 0-1로 패배한 직후의 인터뷰. 경기중 자신을 배신자라 야유했던 첼시 서포터들에게.
  49. [49] 2015년 첼시 감독이었을 당시 졸전을 거듭하는 와중에 리버풀에게 홈에서 3:1 패배를 당한 직후 인터뷰에서 한 말. 특유의 억양과 맞물려 지금까지도 해외에서 모리뉴를 깔 때 등장하는 어록.
  50. [50] 01/02 시즌 도중 부임
  51. [51] 포르투갈 FA컵
  52. [52] 2015년 12월 17일 성적부진으로 경질
  53. [53] 이탈리아 축구협회 선정
  54. [54] 인테르 시절 챔피언스 리그 4강전이나 첼시로 복귀한 뒤에 뮌헨과의 슈퍼컵 경기에서 만난 적도 있다.
  55. [55] 10승 7무 5패로 펩이 압도적 우세.
  56. [56] 펩 과르디올라 부임 후 레알은 바르셀로나와 10번 붙어서 1번 이겼다. 당연히 레알 수뇌부의 목표는 전성기에 오른 바르셀로나를 막는 것이었다. 다만 그 방식에 있어 차이가 있었는데 단장 겸 디렉터 호르헤 발다노는 공격축구를, 감독 모리뉴는 수비 축구를 주장했다. 즉, 이 경기는 지금 라인을 끌어올려 바르셀로나와 정면으로 붙으면 이 꼴이 난다를 보드진에게 똑똑히 보여준 시위의 성격이 짙다. 실제로 5-0 패배란 대참사를 똑똑히 본 후 레알 수뇌부는 바로 발다노를 잘라버렸다. 이후엔 '버스를 세우든, 늪축구를 하든 어떻게든 바르셀로나로부터 리그 우승컵을 탈환하라'라며 모리뉴의 손을 들어준다. 모리뉴는 부임 2년차에 라리가 우승컵을 가져오며 이 요구를 충족해줬다.
  57. [57] 정말 아무것도 못 했는데, 관련 지표를 보면 얼마나 일방적인 경기였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58. [58] 실제로는 불화설 해명
  59. [59] 심지어 경기 중에도 하프라인 근처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곤 한다.
  60. [60] 이로써 클롭은 모리뉴를 무려 3번 경질시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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