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中庸

1. 유교의 경전
1.1. 개요
1.2. 바깥고리
2. 서양철학에서의 중용
3. 기독교의 한 교파인 성공회의 중용

1. 유교의 경전

사서오경

사서

오경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상서

주역

춘추

예기

1.1. 개요

성(誠)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의 길이며, 성(誠)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길이다. 성한 자는 힘쓰지 않고도 중도[中]에 맞게 행동하고, 생각하지 않고도 얻는다. 소란을 떨지 않고도 중도에 이른 자(도(道)에 어긋남이 없는 자)를 성인이라고 한다. 성하도록 노력하는 자는 선(善)을 택해서 굳건히 잡는 자이다.

(그는) 넓게 배우고, 자세하게 물으며, 신중하게 생각하고, 밝게 분변하며, 독실하게 실천한다.

배우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배우는 한은 능숙하게 되지 않으면 배움을 놓지 않는다. 묻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묻는 한에는 알지 못하면 물음을 그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생각하는 한 얻지 못하면 생각하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분변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분변하는 한 밝게 이해하지 못하면(밝아지지 않으면) 분변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행동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행동하는 한 독실하게 되지 않으면 행동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한 번 해서 능할 수 있다면 나는 백 번을 하고, 다른 사람이 열 번을 해서 능할 수 있다면 나는 천 번을 한다.

과연 이러한 길을 걸어갈 수 있다면, 비록 어리석어도 반드시 밝아지고, 비록 유약하여도 반드시 강해진다.

"중용장구"[1], 제20장

논어, 맹자, 대학과 더불어 사서에 들어가는 유교경전.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썼다고 알려져 있으며[2], 유교의 기초가 되는 책이다. 원래는 대학과 마찬가지로 예기 제31편 중용편에 속한 글이나 송나라 때 독립해 출간되었다. 수당 시기를 거쳐 불교가 유입되면서 유교 경전을 공부하며 따르던 많은 학자들은 불교 경전의 체계적인 사상과 명료하게 정리된 형이상학적인 면의 학문적 강점을 받아들였고, 정자와 주자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은 유교 경전을 정리하여 유학의 형이상학적인 면을 강화할 뿐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성립시키는 데 집중하였다. 이 과정에서 간결하고 명료히 사상을 정리한 문헌으로 특히 주목받은 것이 예기에 포함되어 있던 대학과 중용이다.

예전에는 중용에서 다루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자사의 시절에 존재하였을 거라 보기 어렵기에 중용을 송대에 쓰여진 글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에 중국의 한 고대 무덤에서 자사가 쓴 글로 추정되는 글이 발굴되어서 중용이 자사가 썼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시되어가는 중이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판본은 대체로 송나라 때 주자의 수정을 거친 중용장구를 따르고 있다. 전체 33장으로 각 장의 이름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3]

중용이라는 말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중용은 가운데를 지키는 것이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적절함에 있다. [4] 다시 말하자면 중용이란 지금 가장 적절 것을 의미한다. 실제 『중용』의 구절을 보면 감이 잡힌다.

仲尼曰(중니 왈):

중니[5]께서 말씀하셨다:

君子中庸(군자중용), 小人反中庸(소인반중용)。

군자는 중용에 합하고, 소인은 중용에 반한다.[6]

君子之中庸也(군자지중용야), 君子而時中(군자이시중);

군자의 중용[7]이란, 군자답게 때에 들어맞게끔 함이며,

小人之中庸也(소인지중용야), 小人而無忌憚也(소인이무기탄야)。

소인의 중용이란, 소인답게 거리끼는 바가 없음[8]이다.

중용의 중에 대해서 환중(還中), 적중(的中), 표준(表準)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환중은 문의 지도리를 나타내며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모든걸 변화시키는 중이다. 적중은 관계 속에서 가장 올바른 형태이며 표준은 보편적인 도덕적 윤리를 나타낸다. 주자는 이 중 환중은 도가의 사상과 비슷하여 환중을 중으로 받아들이는건 옳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적중과 표준을 중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중간만 가라.'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용과 중간은 전혀 다르다! 만일 인사를 한다고 치자. 인사를 할 때 어린아이나 어른에게 손을 흔드는 동시에 고개 숙인다면 중간이고, 어린아이에게는 손을 흔들고, 반면에 어른에겐 고개 숙이는 방식으로 인사하는 게 중용이다.

1.2. 바깥고리

2. 서양철학에서의 중용

virtue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저서에서 말한 삶의 자세로,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이상적인 자세이다.

좌측부터 결핍, 즉 부족한 상태. 중간은 중용의 상태, 우측은 과도한 상태이다.

만용(두려움의 결핍)-용기-비겁(두려움의 과도)

겁쟁이(태연함의 결핍)-용기-무모함(태연함의 과도)

무감각-절제-방종,방탕

인색-관후-낭비,방탕

비굴-긍지-오만

무기력-온화함-성급함

거짓 겸손-진실-허풍

무뚝뚝함-재치-익살

심술궂음-친절-비굴,아첨

3. 기독교의 한 교파인 성공회의 중용

'Via Media'(중용의 길)이라고 흔히 표현한다.

영국교회가 종교개혁을 바탕으로 국가교회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모든 국민이 믿어야 하는 국가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기존의 영국에 있었던 가톨릭, 루터회, 장로회 등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교리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9]

그래서 탄생한 개념이 'Via Media'다. 기존 각 교파들 각각의 극단적인 교리를 좇기 보다는 중용을 통해서 진리를 찾아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교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그리스도 교단보다 '다양성의 존중과 이성의 중요성'이 많이 강조된다. 따라서 타 개신교에서 인정되지 않는[10] 가톨릭만의 특정 성모 교리(몽소승천, 무염시태)나 통공 교리, 성체성사의 성변화 교리, 천주교식 묵주, 성모 행진 행사 등이 성공회에서는 관용된다. 여기서 말하는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것은, 성공회가 교단 차원에서 특정 교리에 대한 믿음을 신자 개개인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성공회 주류와 다른 신앙관을 가진다 해서 출교나 영성체 제한과 같은 불이익을 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1. [1] 주자가 "중용"을 주석한 책. 가장 유명한 주석본으로, 언어학적 해석의 타당성과 철학적 기초의 보편성이 높이 평가된다. 1252년에 간행되었다.
  2. [2] 이견이 많았으나 70년대 들어 한나라 시대의 글이 출토됨으로써 자사의 저작임이 확인됐다.
  3. [3] 도올 김용옥은 자신의 책 《중용 인간의 맛》을 내면서 각 장에 이름을 붙였다. 1.천명, 2.시중 3.능구 4.지미 5.도기불행 6.순기대지 7.개왈여지 8.회지위인 9.백인가도 10.자로문강 11.색은행괴 12.부부지우 13.도불원인 14.불원불우 15.행원자이 16.귀신 17.순기대효 18.문왕무우 19.주공달효 20.애공문정 21.자성명장 22.천하지성 23.기차치곡 24.지성여신 25.성자자성 26.지성무식 27.존덕성장 28.오종주장 29.왕천하장 30.중니조술 31.총명예지 32.성지천덕 33.무성무취.
  4. [4] 도올 김용옥은 서양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개념이 유동적인 동양의 중용과는 달리 용기 같은 넘침과 두려움 같은 모자람을 양 끝으로 하는 눈금의 고정된 가운데를 상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훨씬 유연하고,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개념과 자사의 중용 개념이 유사하다는 논문도 있기 때문에, 양자의 비교에 있어서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5. [5] 공자의 자字.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할아버지의 자를 함부로 부를 수 있는지는 학계에서 살짝궁 논란이 있지만, 휘명자호諱名字號에 쓸데없이 엄격해진 것은 확실히 당송唐宋 이후이다. 춘추 전국 시대의 예법은 어땠을지 누가 알까나... 일단, 공자 사후 자사가 『중용』을 집필했을 당시부터 본격적으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였으니(묵자墨子라든지, 열자列子라든지), 『논어』처럼 자왈子曰로 표기했다가는 혼란의 우려가 있으므로 이와 같이 표기했다는 설이 지배적. 사실 그냥 공자 왈孔子曰이라 하면 유명한 공 씨가 공자 한 명이니 얼추 되지만서도, 따지고보면 자사 본인도 (친손자니까 당연히) 공씨고, 지금이야 몰라도 당대에는 달랑 '공자'라고 하면 이 공자가 본인들이 아는 공자인지, 이 책을 쓴 공 씨 얘긴지 구분이 어려웠을 수 있다. 혹은, 손자 입장에서 자기 할아버지를 '공 선생님〔孔子〕'이라 부르기도 껄끄러웠을 것이다. 하라부지(...)를 친근하게 부르고 싶었던 손자의 마음이 아닐는지? 그렇다면 꽤나 모에하게 느껴진다(...).
  6. [6] 사실 원문이 그렇듯이, '합하다'를 안 써도 된다: "군자는 중용이요, 소인은 반중용이다." 근데 이렇게 하면 후술할 문단을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라? 소인이 반중용反中庸이라면 아래에 있는 소인지중용야小人之中庸也는 문장 사이에 있던 반反이 탈자된 건가?" 여기까지면 별 문제 없는데, "그럼 내가 빠진 글자 넣어서 고쳐야지, ㅎㅎ"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이정二程과 주자朱子가 그런 짓을 한 사람들이라는 게 함정(...).
  7. [7] 군자가 '행하는' 중용 내지는 군자가 중용을 '행하는 자세'로 파악하면 편하다. 아래 소인지중용小人之中庸도 마찬가지.
  8. [8] 무기탄無忌憚ㅡ우리가 회의 장소나 면접장에서 흔히 듣는 '기탄없이 말해 보라!'라는 말이 바로 이 뜻이다.이로써 회의와 면접이 우리에게 소인 되기를 강요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중용을 행함에 있어서 경솔해서는 안 되고 항시 상황을 깊게 살피고 또 스스로를 살피며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9. [9]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으나, 영국에서 성공회의 탄생과 정착으로 인해 이후 대륙에서 겪게 되는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나 30년 전쟁같은 끔찍한 종교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10. [10] 교단, 개교회에 따라 출교 및 성만찬 제한이 될 수 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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