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인관계

中印關係 (간체: 中印关系)

भारत-चीन सम्बन्ध (바라트-친 삼반드)

중화인민공화국인도 공화국 간의 관계.

1. 개요
2. 교류
3. 갈등
4. 주변국과의 관계
5. 국력 비교

1. 개요

두 나라는 모두 10억이 넘는 인구 대국으로, 이들 두 나라만으로 지구 인구의 1 / 3 을 구성하며, 브릭스로 대표되는 신흥 경제성장국인데다가 군사적으로도 핵보유국이며, 티베트 (달라이 라마 망명정부) 문제 및 국경·영토분쟁 (악사이친, 카슈미르 등) 도 겪고 있고, 동남아시아 일대의 정치 · 경제 · 군사적 영향력을 두고 충돌하고 있다.

미국에게 있어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어 일본과 함께 가장 큰 카드이다.

참고로 최근 통계를 기반으로 해서 두 나라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구

중위연령

GDP

수출액

수입액

문해율

인터넷 사용자 수

경제 활동 인구

GDP 대비 군사비

연간 인플레이션율

외환보유고 및 금 보유고

중국

14.03억 명

37.6세

11.93조 달러

2.26조 달러

1.84조 달러

96%

7.21억 명

8.07억 명

1.9%

-1.4%

3.00조 달러

인도

13.24억 명

27.1세

2.65조 달러

0.27조 달러

0.38조 달러

72%

4.62억 명

5.11억 명

2.5%

-1.5%

0.42조 달러

2. 교류

비록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지형적 요소 때문에 직접적인 교류는 어려웠지만 인도가 중국에 끼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는 중국에서 꽃을 피웠고, 인도에서는 거의 사그라들었다. 도올 김용옥에 따르면 중국에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문화권은 아편전쟁 이후의 서구 문화권을 제외하면 인도가 유일하다고 한다. 일단 인도가 중국을 영원토록 변화시킨 문화요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불교가 있다. 중국의 장기도 인도에서 유래한 것이다.[1]

중국과 인도의 관계는 제국주의 국가에 시달린 동병상련의 경험 때문에, 양국의 건국 직후에는 상당히 좋았다. 1949년 장제스 정권을 대만으로 패퇴시키고 베이징에 세운 중공정권을 세계에서 최초로 승인한 것은 바로 1948년 영국에서 갓독립한 인도 공화국이었다. 한국전쟁에서도 인도는 중립을 지켰지만, 제국주의 국가에 시달린 동병상련인지 그 밖의 문제에 있어서는 중인 양국은 매우 가까웠다. 중공이 미국과 수교가 되어 있지 않았을 때인 1950년대, 장제스의 중화민국이 아니라 중공측을 자신의 조국으로 생각하는 미국내 중국교민들의 비자-여권 업무는 주미 인도 대사관이 대리했을 정도.

하지만 이렇게 좋았던 관계는 양국이 주변국가를 병합하며 국경을 맞닿게 되자 갑자기 험악해진다. 한국에서는 중국이 티베트를 합병한 것만 알려져 있지만,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총리도 비슷한 팽창주의를 시전했으며, 독립후 1950년대 영연방 인도령 내에 반독립 상태로 있던 히말라야 방면의 여러 소국들 (시킴 아삼 등등)을 합병하면서 부탄을 경계로 중인 양국은 군사적으로 대치하게 되었다. 이때문에 서로 급격히 사이가 나빠졌으며, 결과적으로 1959년 중인전쟁이 발발하여 총칼을 맞대게 된다. 이후 인도는 중국과 사이가 나쁜 소련과, 중국은 인도와 사이가 나쁜 파키스탄과 편을 갈라 대치했고, 결과적으로 교류는 거의 없어진다.

중국-인도 간의 항공기 직항편도 얼마 없어 홍콩 국제공항을 경유했으며 수출 / 수입도 홍콩을 중재지로 쓸 뿐 상호 간 직교역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중국이 경제적 투자가 많아지면서 인도 시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세계 인구 2위에 막대한 부유층이라든지 중국 못지 않은 황금시장인 인도를 구경만 할 리가 없다.샤오미 제품이 중국도 놀랄 정도로 인도에서 단기간에 막대한 판매량을 보이자 인도에서 제품 판매를 일시 금지해버렸듯이 중국 기업들도 인도 시장에 대하여 이젠 무시 못한다.[2]

또한 인도가 중국의 영향권을 인정하고 대신 남아시아 일대의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에 한해서 권리를 확보하는 걸 목표로 했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중국은 남아시아 쪽에서 인도의 권리를 인정해 주고 대신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모두를 장악할 수 있게 되며, 인도와의 정면 대결 없이 남아시아만을 내주는 거라면 나쁠 게 하나도 없다. 게다가 인도의 대외정책은 현재 친서방 성향이긴 하지만 중립에 가깝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중국이 인도 코앞의 파키스탄과 미얀마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는 시점에서 남아시아 전체의 주도권을 인도에게 양보하는 타협은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서로 브릭스상하이협력기구 그리고 AIIB로 연관성이 있다. 물론 상하이협력기구는 인도가 러시아와의 친교로 가입한 면이 크기도 하다.

중국이 주도하는 AIIB 지분율 2위가 바로 인도다 연합뉴스

일부에서는 인도가 중국의 팽창정책에 위기감을 느끼고 일본-미국에 보조를 맞춰 중국에 대한 포위망에 동참한다고 주장하지만, 인도도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협력이 절실하기 때문에, 일본과 미국의 입장과는 조금 다르다. 즉 중국의 팽창은 단호히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일처럼 극단적인 반중정책을 펴는 것은 아니다. 중국도 한반도일본과 달리 인도에 대해서는 딱히 도련선에서도 언급하는 게 없고, 내부적으로도 인도양은 중국의 패권구역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이 어느 정도의 협조를 유지하는 걸로 충분하다.

인도는 냉전시절에도 기본적으로 제3세계의 맹주로서 미국-소련과도 양다리를 걸쳐왔으며, 현재도 미중사이에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2018년에는 중국의 눈치를 봐서 자국내에 망명한 달라이 라마의 활동도 규제하기 시작했다. #

3. 갈등

영토 분쟁의 경우 사실 두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영국의 업보이다.[3] 19세기 말, 인구 밀도나 국경 개념이 희박했던 지역에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영국의 외무부에서 제멋대로 선을 그으면서 불거진 문제인데, 이것이 인도의 독립 후에 양국의 충돌을 불러온 것.

1962년 아루나찰프라데시 주에서 이른바 중인전쟁으로 불리는 국경분쟁이 있었고, 이는 중국의 대승으로 끝났다. 이는 청나라의 멸망 이후 인도 제국을 다스린 대영제국맥마흔 라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

주요한 영토분쟁지역은 중국이 소유한 카슈미르 일부 아크사이친, 인도가 소유한 아루나찰프라데시가 있다. 물론 중국이 소유한 쪽이 훨씬 쓸모가 없는 땅이지만 그래도 땅은 땅이라서 인도에서 돌려달라고 하긴 한다.

게다가 최근(2017년) 중국이 부탄과 접한 도클람 지역에 도로를 건설하면서 부탄 측이 반발했고 인도 측도 중국을 비판했다.#

2017년 7월 6일 기사에 따르면 국경 지역에 3000명의 병력들이 대치 중이라고 한다. #

2017년 7월 13일 기사에 따르면 인도군은 이 지역에 20만 명의 병력을 배치하였다. 인도군, 중국과 대치 국경지역에 20만 병력 집결

2017년 7월 20일 중국 측에서는 이에 대응해 군수물자와 수술용 혈액을 티베트 자치구에 집결시키는 등 긴장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중국군, 인도군과 대규모 무력충돌 임박 징후 결국 양측은 8월 말 대치 상태를 중단하는데 합의했다. 이와 관련된 이슈는 2017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 항목 참고.

다만 양국 모두 군사강국으로 충돌은 승패에 관계없이 국제관계에 매우 부담되기 때문에 한발자국씩 물러섰다.

4. 주변국과의 관계

국제적으로 인도는 미국, 러시아와, 그리고 중국은 파키스탄과 친하다.[4] 심지어 파키스탄의 신드 주(州)에서는 중국어를 의무과목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 반면 부탄 같은 곳은 중국보다는 인도에 더 가깝다.[5]

최근 남중국해 문제까지 있어 인도가 미국, 일본과 합동 군사 훈련을 했다. 기사 그리고 여기에 중국과 사이가 안 좋은 대만이 끼어들어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대만-베트남-싱가포르-인도로 대중국 포위망이 구성되고 있다. 이에 중국도 질세라 미얀마-파키스탄-스리랑카와 연합해 대 인도 포위망을 만들고 있다.

이런 인도 견제를 위해 중국은 파키스탄스리랑카, 그리고 북아프리카 지부티에 해군기지를 마련해서 인도양에 출동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

인도양의 중국 해군 기지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을 묶는데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개시했으며, 이때문에 육로로는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해로로는 인도양을 통해 아프리카까지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중국의 인도양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인도는 미국과 일본,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대표적 해양 국가들과의 제휴 강화로 대응하고 있다. 이는 나렌드라 모디 현 수상의 '동방 개입'(Act East) 정책, 그리고 인도양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단일 전략공간으로 규정하는 '인도-태평양'(Indo-Pacific) 개념으로 구체화되는 중이다.

5. 국력 비교

중국 VS 인도 항목으로


  1. [1] 사실 장기뿐만 아니라 체스도 인도에서 유래했다.
  2. [2] 그러나 영토 문제로 둘이 서먹서먹하여 아직 제대로 된 통계가 없으나 인도라고 마냥 중국을 무시할 수도 없는데 상임이사국 항목에도 나오듯이 2014년 일본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상임이사국 선정에 협조를 부탁한 아베 신조에게 말을 피하며 비협조로 나섰고 일본 언론도 인도조차도 중국에만 신경 쓰며 홀로 중국을 달래고 있다고 한탄했다. 하긴, 인도는 중국만 지지하면 상임이사국 선정 가능성이 높기에 일본보다 훨씬 유리한 터에 뭐하러 일본이랑 손을 잡겠는가. 오히려 일본과 손 잡았다가 러시아와의 관계도 나빠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안 하니만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상임이사국 항목에 나오듯이 일본, 인도, 브라질, 독일의 상임이사국 반대를 부르짖는 나라들의 협동만 높이기 때문.
  3. [3] 오히려 중국과 인도는 의외로 역사적 관계가 좋았다. 둘 다 아시아에서 가장 문화와 문명이 발달했던 곳이라 교류할 내용들도 많았고 서로 도움되는 경우가 많았다. 20세기나 되서 2천여년 만에 처음으로 문제가 생긴 것. 물론 이는 인도가 진짜 통일국가를 만들어본 적이 없어 딱히 중국 같은 큰 나라와 덩어리끼리 충돌할 만한 상황도 잘 안 만들어졌고 과거 중국은 현재 영토보다 더 서쪽 영역이 적고,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 있는 지역 근처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라서 부딪힐 일이 없던 탓도 크다.
  4. [4] 양측 모두 인도를 견제하기 위한 의미가 크고 이는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 파키스탄은 대표 친중 국가로 꼽힌다. 사실 중국-인도-파키스탄은 모두 핵보유국으로,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세계적 군사대국 미, 중, 러, 일이 모두 관계하며 실질적 핵보유국 북한까지 있는 한반도 다음으로 위험한, 첫 전쟁 발생지가 될 수도 있는 곳이다. 그래서 세 나라 모두 정치적으로 서로와의 관계를 엄청나게 신경 쓴다.
  5. [5] 그래서 2017 국경분쟁때도 사실 원래 시작은 부탄-중국 문제였는데 인도가 거의 부탄의 대리분쟁국 수준으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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