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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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제임스 브라운
(James Brown)

생년월일

1908년 12월 31일

사망년월일

1994년 11월 9일

국적

미국

출신지

스코틀랜드 킬마녹

포지션

윙 하프, 윙 포워드

신체조건

185cm / 80kg

등번호

-[1]

소속팀

플레인필드 사커 클럽 / 바욘 로버스 S.C (1928)
뉴어크 스키터스 (1928-1929)
뉴욕 내셔널스 (1929)
뉴욕 자이언츠[2] (1929-1930)
뉴욕 사커 클럽 (1930)
브루클린 원더러스 (1931)
뉴어크 아메리칸스 (1931-193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32-1934)
브렌트포드 FC (1934-1936)
토트넘 핫스퍼 (1936-1937)
길드포드 시티 (1937-1940)
브렌트포드 FC (1940)
클라이드 (1941)
그린포트 유나이티드 (1950-1952)

국가대표

4경기 / 1골(1930)

감독

그리니치 고등학교 (1948-1950)
그린포트 유나이티드 (1950-1952)
브런즈위크 스쿨 (1952-1974)
엘리자베스 팰컨스 (1956-1958)

영국 1부 리그에 진출한 최초의 미국 국가대표

1. 생애
1.1. 어린 시절
1.2. 클럽
1.2.1. 미국
1.2.2. 영국
1.4. 은퇴 이후
2. 뒷이야기
3. 수상
3.1. 클럽
3.2. 국가대표
3.3. 개인

1. 생애

1.1. 어린 시절

짐 브라운은 스코틀랜드 킬마녹에서 4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동생들 중 두 명도 나중에 골키퍼를 할 정도로 축구와 친했던 가정이었지만, 아버지가 1920년에 가정을 버리고 미국으로 갔다. 이에 브라운도 아버지를 찾아 미국으로 떠났고 뉴저지의 웨스트필드에 정착했다. 여기에서 그는 13살 무렵부터 금속 상자 공장에서 일하면서 리베팅을 담당하였다.

1.2. 클럽

1.2.1. 미국

브라운은 미국팀 플레인필드에서 축구를 처음 접했다고 알려져 있다. 측면 하프백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활동할 때에는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려주는 등 꽤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1930년, 미국도 프로축구의 물결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뉴욕 자이언츠에서 26경기 13골의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리그가 망하기도 하고, 미국 명예의 전당의 기록원으로 일하기도 했던 콜린 호세에 따르면 미국 축구계가 그를 더 이상 받아주지 않아 결국 1932년 8월에 영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1.2.2. 영국

미국 프로무대에서 득점력을 갖춘 하프를 원하는 팀은 많았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많은 팀들이 브라운을 놓고 경쟁을 벌였고, 여기에서 브라운을 차지한 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당시 맨유는 감독이 직접 보트를 타고 와서 브라운을 설득하는 큰 정성을 보였고, 브라운이 이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브라운은 2년간 맨유에서 활약하며 40경기 17골을 넣어 팀 내 득점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브라운은 선수 노조에 호의적이었던 탓에 맨유 보드진의 눈 밖에 났고 브렌트포드 FC로 300파운드에 팔리게 되었다. 브렌트포드에서는 주로 리저브 팀에서 활약하였고, 여기에서 총 74경기 53골을 기록하였다.

  • 맨유 팀 내 득점 2위가 브렌트포드 같은 듣보잡팀에게 팔려나가 뭔가 기록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브라운이 뛰던 당시의 맨유는 현재 축구팬들이 알고 있는 맨유가 아니었다. 맨유는 당시 2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었다. 브라운이 떠나기 직전인 1933-34 시즌에는 2부 리그에서조차 20위로 3부 리그 강등을 간신히 면한 수준이었고, 오히려 브라운이 소속되어 있던 시기만으로 한정한다면 브렌트포드가 맨유보다 훨씬 강력한 팀이었다. 특히 브렌트포드는 1935-36 시즌에 1부 리그 5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이는 아스날보다도 높은 성적이었다. 참고로 아스날은 이 시즌에서 6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2부 리그 소속이었던 토트넘으로 1,200파운드에 이적하였고 여기서도 주로 리저브 팀 소속이었다. 그 이후에는 세미프로 무대에서 주로 활약하였다. 여기에서는 5회의 해트 트릭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골폭풍을 몰아치기도 했고, 우승을 맛보기도 했다.

1939-40시즌 길드포드를 나온 브라운은 스코틀랜드 클라이드에서 활약했다.

1.3. 국가대표

초대 월드컵에 미국 대표로 참가한 브라운은 당시 미국 대표팀의 3경기에 모두 참가하였다. 그리고 4강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한 골을 넣었다. 하지만 팀의 대패를 막지는 못했다.

1.4. 은퇴 이후

브라운은 1941년 은퇴 이후 리베팅 일을 하기도 했고 고등학교에서 축구 감독으로 주로 활동하였다.

2. 뒷이야기

  • 골키퍼 두 동생 중 조크[3]는 나중에 스코틀랜드 국가대표로도 선발되기도 했고, 존 역시 프로 골키퍼로 오랫동안 활약했다.
  • 맨유에서의 데뷔 골을 다이렉트 코너킥 골로 장식하였다. 그리고 클라이드에서도 다이렉트 코너킥 골을 한 차례 더 기록하기도 했다.
  • 제임스 브라운이라는 이름이 엄청나게 흔한 이름이기 때문인지 1907년생의 동명이인이 맨유에서 1935년부터 4년간 활약하기도 했다.
  • 그의 아들 존 브라운도 1995년에 미국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3. 수상

3.1. 클럽

  • 미국 축구 리그 준우승 1회: 1931(브루클린 원더러스)
  • 디비전 2 우승 1회: 1934-35(브렌트포드)
  • 런던 챌린지 컵 우승 2회: 1934-35(브렌트포드), 1935-36(토트넘)
  • 잉글랜드 남부 풋볼 리그 우승 1회: 1937-38(길드포드)
  • 잉글랜드 남부 풋볼 리그 준우승 1회: 1938-39(길드포드)
  • 스코틀랜드 남부 풋볼 리그 준우승 1회: 1941(클라이드)

3.2. 국가대표

  • 월드컵 3위 1회: 1930

3.3. 개인

  • 미국 축구 명예의 전당: 1986

  1.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2. [2] 흔히 알고 있는 메이저리그뉴욕 자이언츠와는 다르다.
  3. [3] 또는 존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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