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애보트

"모든 희망이 없어질 때까지, 불가능한 일이란 결코 없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관문에 지나지 않습니다."[1]

이름

제임스 앤서니 애보트 (James Anthony Abbott)

생년월일

1967년 09월 17일

국적

미국

출신지

미시건 주, 플린트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소속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89-1992)
뉴욕 양키스 (1993-1994)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95)
시카고 화이트삭스 (1995)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96)
시카고 화이트삭스 (1998)
밀워키 브루어스 (1999)

특이사항

1988년 서울 올림픽 야구[2]금메달
1993년 9월 4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달성, [3][4]

1. 개요
2. 프로 이전
3. 에인절스 시절
4. 양키스 시절과 이후
5. 플레이 스타일

전직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 투수로 뛰었다. 통산 성적.

1. 개요

한계를 넘은 선수.

외팔 선수는 아니고, 오른팔이 팔목 부분까지만 자란, 일명 "조막손" 장애를 앓고 있던 선수이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팀에서 주전으로 수백 이닝을 던지며 에이스로 활약하고,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며 "장애를 뛰어넘은 선수"로서 메이저리그 역사에 나름대로 이름을 남긴 선수라 하겠다.

2. 프로 이전

고등학교 시절에는 야구 팀에서 0.73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으며, 퍼펙트게임을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미식축구에서는 쿼터백을 보는 등 다재다능한 스포츠맨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1985년 드래프트에 나와 토론토 블루제이스로부터 36라운드에서 지명을 받는 데 그치자 계약을 거부하고 대학으로 진학하였다.[6] 1988년에 열린 서울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팀으로 참가, 결승전에서 호투해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7]

3. 에인절스 시절

올림픽에서의 활약에 고무된 MLB 팀들은 그 동안 애보트의 도량을 몰라뵌 것을 사죄하고 애보트를 집중 관찰했고, 결국 1988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8순위라는 매우 높은 순위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지명받아 입단했다. 당시 에인절스의 감독 덕 래더는 애보트를 입단 직후 바로 메이저리그에 콜업시켰는데, 이로써 애보트는 역사상 16번째로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은 메이저리거가 되었다.[8] 데뷔 첫 해에 애보트는 12승 12패, 3.92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는데, 메이저리그 신인 투수가 데뷔 첫 해에 12승 이상을 올린 것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괴인 The Bird 마크 피드리치 (1976년, 19승) 이후 13년만이었다.

1990년부터 200이닝을 던지기 시작한 애보트는 1991년 243이닝을 던지면서 18승을 거두었다. 200이닝을 넘게 던지고도 20승을 거두지 못한 건 에인절스의 답답한 타선 때문이었다. 1992년에도 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서 200이닝을 넘겨놓고 7승에 무려 15패나 쌓는 기염을 토한다. 물론 애보트의 잘못은 아니지만... 에인절스는 이런 이닝이터를 잡고 싶었지만, 문제는 에이전트가 그 악명높은 스캇 보라스였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보라스는 많은 돈을 뜯어내려고 했고, 에인절스는 결국 애보트를 양키스로 보내버린다.

4. 양키스 시절과 이후

당시 양키스는 돈 매팅리가 힘겹게 타선을 이끌면서, 버니 윌리엄스, 앤디 페티트 등 새로운 시대의 새싹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무시무시한 악의 제국과는 거리가 먼, 양키스 사상 최악의 흑역사 끝에 있던 시절이었다. 그런 양키스에서 애보트는 부상으로 고생하면서 이렇다 할 성적을 못 내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4일, 힘세고 강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타선을 상대로 한 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는 노히트 노런을 기록, 양키스타디움의 관중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양키스 역사 상 정규 시즌에서 7번째로 기록된 노히트 노런이었다[9].

그 후 시카고 화이트삭스, 친정팀 에인절스를 몇 번 트레이드로 오가다, 1999년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뛴 것을 끝으로 은퇴했다. 2005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5%의 지지율도 얻지 못해 탈락했다. 현재는 미국 전국을 돌면서, 장애인들을 위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애보트의 사례는 장애를 뛰어넘어 훌륭한 성적을 기록한 야구 선수의 사례로서, 장훈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류중일이 이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기사)

5.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기교파 투수로 팜볼에 가까운 체인지업과 슬라이더가 주무기였는데 뛰어난 디셉션 덕분에 그 위력이 더해졌다.

물론 애보트는 장애를 뛰어넘은 호투를 했지만, 오른손이 불편한 상황에서 타구를 수비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투수도 마냥 제자리에서 공을 던지기만 하는 포지션이 아닌, 명백히 필요할 때에는 수비를 위해 글러브를 써야 하는 포지션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애보트는 그걸 해냈다!

일단 오른팔에 글러브를 걸친 채 공을 던진 뒤, 타구가 날아올 것을 대비해 공을 던지자마자 글러브를 왼손으로 바꾸어 끼우고, 왼손의 글러브로 타구를 잡은 뒤, 글러브를 오른팔에 걸치고 공은 왼손으로 수비수에게 송구했다. 그럼에도 수비실력은 상당히 준수했다.

동영상을 보자.

흠좀무

내셔널리그 소속인 밀워키에서 뛰던 1999년에 안타 두 개를 때렸고, 타점 세 개를 기록했다. 그 중 하나는 친정이라면 친정이라 할 수 있는 양키스의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에게서 때려난 것 (..)

위의 그림처럼 번트를 댈 수도 있었지만, 스윙을 할 때는 오른팔에 방망이를 끼고 있다가, 손잡이 부분을 몸으로 고정시킨 다음 몸과 함께 방망이를 돌렸다고 한다.


  1. [1] 원문은 "One must think that nothing is impossible until there is no hope. Obstacles are not more than a stage we must pass in order to succeed."
  2. [2] 이 때는 야구가 임시종목이라 정식 메달 집계에 들어가지 않았다.
  3. [3] 1990년대 클리블랜드는 단일 시즌에만 1000개의 득점을 기록할 정도로 강력한 공격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매니 라미레즈, 알버트 벨, 짐 토미, 샌디 알로마, 로베르토 알로마, 오마 비즈켈, 데이비드 저스티스 등등, 1990년대에 이름을 날린 타자들이 모두 90년대에 클리블랜드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4. [4] 당시 마지막으로 처리했던 타자가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활동한 바 있는 카를로스 바이에르가였다.
  5. [5] 메이저리그에서 외팔 선수 또는 한쪽 팔에 장애를 앓고 있던 선수로는 피트 그레이, 휴 데일리 등이 있었다. 그 밖에 오른손 손가락이 세 개밖에 없었던 모데카이 브라운도 활동했었고. 심지어 한 경기만에 퇴출되긴 했지만 109cm의 소인증인 에디 개델도 있긴 했다. 한국프로야구에는 아직 이런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6. [6] 훗날 인터뷰에서 애보트는 지명을 거부한 것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스카우터들이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한 흥미만을 보이고 있어서 불쾌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7. [7] 1988년 미국 대표팀에는 현재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감독이자 놀란 라이언 옹에게 두들겨 맞은 꼬맹이로빈 벤추라, 시애틀 매리너스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한 강타자 티노 마르티네즈가 함께 참가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애보트를 상대한 일본 대표팀 투수는 다름아닌 노모 히데오, 포수는 후루타 아츠야. 흠좀무
  8. [8] 사실 이게 말이 쉽지, 아무리 슈퍼 유망주라도 마이너리그에서부터 피터지는 경쟁 속에서 배워나가는 게 정석이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애보트의 활약이 굉장히 대단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그리고 당시 에인절스가 개막장이기도 했고 마이너에서 2개월만 뛰고 콜업된 김병현을 생각해보자.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데뷔한 선수로는 데이브 윈필드가 명예의 전당에 간 정도이다. 박찬호도 영입 이후 바로 빅리그에 콜업되었지만, 이벤트성이었고 얼마 후 교육을 위해 마이너로 내려간다.
  9. [9] 노히트 노런을 달성할 당시 마지막 상대타자가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활약했던 카를로스 바이에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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