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문화권에 따른 황제의 호칭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7px"

유럽권

고대 그리스
비잔티움

고대 로마

독일 문화권

슬라브 문화권

오스만

바실레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저

차르

파디샤

동아시아권

몽골
튀르크

일본

중국

토번

흉노

가한

천황

천자

찬포

탱리고도선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권

말리

에티오피아

와가두 제국

카넴-보르누 제국

만사

네구스 네게스티

가나

마이

중동권

동남 및 남아시아권

아메리카권

이슬람

페르시아

힌두

크메르 제국

아즈텍

잉카

칼리파

샤한샤

마하라자

데바라자

틀라토아니

사파 잉카

}}}}}}

명나라 성립 이후 약 500년간 동아시아 세계에서 최고의 권력자였던 중국의 "황제"이자 "천자"의 자리인 자금성 태화전의 옥좌.

1. 개요
2. 상세
2.1. 타국에 전파
3. 천자인 인물
4. 각종 매체에서 천자인 인물
5. 같이보기

1. 개요

천자(,)는 중국 고대 전설 때부터 있어온, 중국 왕조의 주권자라 할 수 있는 칭호를 말한다. 천자의 뜻풀이는 말 그대로 하늘의 주인인 '천제(天帝) 또는 상제(上帝)'[1]의 아들'인 천자(天子)로, 하늘(신)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봉선(封禪)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신분을 말한다.

2. 상세

황제와 비슷한 호칭이고 실제로 황제가 곧 천자로 간주되는 기간이 길었지만 황제는 진시황이 새로 만든 지위고 천자는 그 이전에도 계속 존재했다. 진시황 이전에는 (王)이 본래 천자의 칭호였으며 오직 주나라 천자만이 왕이었고, 나머지 제후들은 (公), (侯) 등을 칭했다. 춘추오패가 그 예시. 그러나 중국 기준 이민족이던 초나라초무왕이 먼저 주나라와 동일한 왕을 자칭하고 나중엔 고조선 등도 칭왕했다. 결국 춘추전국시대에 들어 주나라 천자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제후들이 너도나도 칭왕하면서 왕이란 칭호가 너무 흔해져버렸고 이에 전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차별화되는 칭호를 새로 만들어낸 것이 황제였다. 춘추전국 때보다 한 단계씩 칭호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격이다.

황제가 정치적인 절대자라는 뉘앙스가 강한 데 비해 천자는 종교적 뉘앙스가 더 강한 호칭이다. 도교식 사고방식으로 천자의 아버지는 천황(天皇)으로 상제(옥황상제 하나가 아니다)를 의미한다. 상제는 하늘의 천황뿐만 아니라 지황(地皇)과 인황(人皇) 등을 총괄하는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일반적인 고대 중국의 사상으로는 의인화되어 신격화된 하늘(天) 그 자체의 아들이란 뜻이다.

옛날 농민들은 가까운 주변의 사직이나 조상에 제례를 지냈지만 감히 "하늘"에 직접 말을 걸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반인의 역량이 아니고 수장인 왕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었다. 고대 중국인의 의식에서 하늘은 대자연의 질서 조절자이고 변화무쌍한 날씨의 주재자이며 시간의 창조자다. 하늘이 창조한 시간은 순수한 세월의 흐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적 사실의 연속이다. 하늘은 또 역(歷, 자연의 주기적 현상)이라는 질서의 거룩한 투영이며 그 실현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늘은 자연을 주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 대한 제례는 하늘과 같은 권위를 갖춘 사람에 의해서만 집행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고대 중국에서는 하늘과 소통하며 하늘과 대화할 수 있는 왕, 즉, 인간의 몸을 받아 하늘로부터 태어난 하늘의 아들인 천자만이 자연의 은혜를 백성에게 나누어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천자만이 하늘에 무언가 빌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천자의 밑에서는 각각의 수장이 신분과 재력에 걸맞은 의식을 실시한다. 대국의 제후는 자기 나라의 사직(산과 강)에 제례 지내고 부족장은 그 영토내의 사직에 제례 지낸다.

천자는 하늘에 제례 지내지만, 그 하늘은 천자에게 있어서는 조상이기도 했다. 조종(祖宗)에 대한 존경과 숭배의 마음은 농민도 부족장도 제후도 천자도 같았다. 자연숭배와 조상에 대한 제례는 별개의 숭고한 의식으로서 계속 내려오고 있다. 특히 천자로서는 조상에 제례 지내고 조상과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일반인보다 중요했다. 천자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신적 존재나 전설적 인물로 이어진다. 그런 인물들은 또 직접 천자에 이어진다. 바로 그렇기에 왕은 큰 권력을 부여받아 민중의 안녕과 국가의 번영에 좋은 영향을 주는 존재라고 믿었다. 천자의 권위는 세습에 의해 하늘과 연결되는 조상으로부터 받아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조상의 위엄은 한없이 큰 것이었다.

이런 농경민족의 발상이 이후 종교생활에 영향을 미친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천자는 하늘에 제례 지내지만 제례의 대상은 천자의 조상이며 동시에 아버지로서의 하늘이어서, 말하자면 하늘은 조상과 한 몸인 영적 존재다. 고대 중국에서는 제례마다 천자가 하늘에 말을 걸기 위한 멋진 제단을 만들어 거기에 가장 훌륭한 제물을 올린다. 경우에 따라서는 산 제물을 바치기도 했다.

천자의 제례는 반드시 격조 높고 훌륭하게 집행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제례의식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했다. 사회체제나 관례는 이렇게 생겨 "예"(禮)로서 정리되었다. 마침내 생산력의 발달에 따라 도시국가가 출현하고 제례는 시절마다 빈번히, 그것도 대대적으로 행해지게 되었다.

그라네는 고대 중국의 노래를 기초로 도시국가 출현 후의 중국인 신앙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그 옛날 마을 중심은 왕과 가신들의 주거였다. 왕이 사는 곳에 가신이 모이고, 왕의 궁궐을 만들고, 가신들도 신분에 맞는 생활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지키고 귀족적인 생활을 지키기 위해 왕의 주변을 튼튼히 했고, 겨우 먹고 살 정도의 생활을 하는 민중을 깔보며 왕의 권위를 방패 삼아 자신들의 신분을 지키려 했다. 거기서 정치가 시작된다. 그것을 "덕"(德)이라고 말했다.

덕(정치적 의미)은 도시에 뚜렷이 나타난다. 도시는 한 사람의 "조상"이 건설한 것으로 되어있다. 왕은 우선 산이나 언덕에 올라 정상에서 햇볕이 닿는 산허리와 응달이 지는 산허리(즉 나라의 음과 양)를 확인하고, 강의 흐름이나 산의 위치를 관찰한다. 마을을 정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왕도 일반적으로 높은 곳을 골라 나라 전체를 본다. 이어 햇볕과 그림자를 관찰해 도시의 바른 방향을 정한다. 겨울 초입에 길흉을 점친 뒤 "정"(定)의 뜻을 가진 별자리가 저녁 무렵 자오선에 달했을 때 성벽 공사에 착수한다. 성벽은 왕과 마을의 격(格)에 따라 진흙이나 돌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동서남북에 하나씩 문을 설치하고 사각형으로 성벽을 쌓았다. 이어 사당과 궁궐과 집이 세워졌다.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 잉여물을 비축하는 시설을 만든다거나, 거주 이외의 목적(제례용)으로 건물을 짓고 문자를 만들었다. 마을 중심에 사는 가신(귀족)은 당연히 성벽의 중앙에 거처를 정한 주군에게 생활을 의존한다. 이 공동체는 농촌공동체와는 다른 조직이었지만, 농민의 집과 마찬가지로 연대를 중시하고 조화를 중하게 여겼다. 주군의 권위는 절대적이었고 주군은 가신들의 모든 것을 뜻대로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가신들은 질서 있는 집단이 되었다. 그 가운데 분명한 계급이 있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대지와 인간이 조화를 추구하며 서로 부딪히는 가운데 집단이나 개인의 행위에 방향을 세우고, 이를 조정하는 현자가 두각을 나타낸다. 그중에는 점술 등의 재능을 인정받은 자도 나온다. 이렇게 서서히 특별할 재능을 가진 인물이 수장으로 인정되어 그 가운데에서 왕이 생겼다. 왕은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는 대지를 주재하는 "하늘의 주권자"가 된다. 부족장의 위에 선 왕이다. 이런 왕은 "천자"라 불린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조화시키려면 자연의 주재자이며 절대적인 힘을 가진 하늘과 통하는 인물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따라서 천자가 될 인물은 늘 하늘과 한 몸이 되어 하늘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해서 혈통을 하늘과 이을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가계도 신화가 창조된다.[2] 혈통을 중시한 것은 왕뿐만 아니라 멀리 공자 이전부터의 전통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은나라나 주나라 시절 제정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을 시기에 해당하고, 이후에는 글자 그대로 '하늘의 아들'이라기보다는 '천명을 받아 천하를 올바르게 통치하는 자'라는 뜻이 된다.

진시황 때부터 황제(皇帝)란 칭호와 같이 쓰이게 되었다. 하나라(夏), 상나라(商), 주나라(周) 시대의 천자의 정치적 호칭은 이었으나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부용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왕을 자칭함에 따라 진시황이 지난 육국(초나라, 오나라, 월나라, 제나라, 연나라,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과 같은 호칭에 불쾌하여 3황의 황과 5제의 제를 붙여 황제를 칭하면서 천자는 왕이 아닌 황제를 지칭하는 말로 바뀌었다.

천자의 상징은 본디 아홉 개의 가마솥 구정(九鼎)이었다. 정鼎이란 다리가 셋 달린 솥으로, 일상용이 아닌 제례용의 솥을 말한다. 아홉이라는 숫자는 9주(옛 하나라에서 다스렸던 9개의 지역. 넓은 의미에서는 중국 전체)를 상징한다.

그러다 진시황에 이르면서 전국옥새(傳國玉璽)로 바뀌었다. 애초에 자신을 지난 왕들과 다름을 나타내고 싶었고, 진무왕(秦武王)이 구정의 무게를 재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바꿀 만도 하다. 그 대신이라긴 뭐하지만, 진시황은 열두 제후국의 무기를 모두 거두어 12개의 동상을 만들었다. 옹중이라 하는데, 옹중은 이후 한나라까지 황궁 앞을 지켰다고 한다.

2.1. 타국에 전파

천자라는 명칭은 위에 설명하다시피 중국 왕조의 종교적 색깔이 진한 단어였지만 그 왕조들이 다른 국가들과 교류를 하면서 그 문화가 전파됐고, 그러면서 타국에선 천자라는 명칭은 자국의 임금을 칭하는 단어가 된다. 물론 중국 왕조가 알게 되면 불경하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시비를 걸었기 때문에 중국한테는 제후, 본국에선 천자가 되는 외왕내제 체제가 형성된다. 대표적으로 한국(고려, 갑오개혁~대한제국 선포 이전의 조선), 베트남(레, 쩐 왕조, 응우옌조 등), 일본(덴노 가문)이 유명하다.

3. 천자인 인물

  • 중국사의 군주 대부분
    • 중국사의 군주라도 천자는 아니었던 항우, 정성공, 이정기, 그리고 오월 같은 예외가 간간이 있긴 하다. 명분이 부족하거나, 정성공 가문은 명나라가 없어진 뒤에도 주씨 명나라의 부흥을 내걸었기에 일부러 천자에 오르지 않았다.
    • 일반적으로 한(漢)족을 제외하고, (元)/(淸)과 같은 정복왕조와 요(遼),서하(西夏), 그리고 한족화를 추진했던 북위(北魏) 등의 비(非)한족 왕조가 천자국의 위상 그 이상이 되거나 스스로 황제가 되어 천자국을 선포하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오늘날 '중국'이라는 이름으로 묶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는 애매하다. 참조바람.
    • 기본적으로 중국의 황제들은 대부분 천자라고 불렸고, 중국 본국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표문에 중국 황제를 높임말인 "덕이 높은 천자"라는 뜻의 성천자(聖天子)라고도 불렀다.
    • 천자도 추서가 있었다. 삼국시대에서도 손견, 조등, 사마의 등이 천자로 추서되었다.
  • 일본 천황(?)
    • 수양제에게 '해지는 나라의 천자에게 해뜨는 나라의 천자가 보내노라.'로 시작하는 패기 넘치는 국서를 보낸 사건이 유명하며, 오늘날 일본에서는 일본의 자주성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립된 섬나라라는 특성 때문에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에 대해 무지하여 벌어진 해프닝에 가깝다. 당장 훗날 명나라와의 관계에서 명(明)에 의해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일본 천황을 대신해 일본 국왕에 책봉되었음을 생각하면, 일본은 동아시아의 천자국 개념과는 동떨어져 있었으며 호칭에 관해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웠다는 걸 알 수 있다.
  • 원 간섭기 이전 고려국왕
    • 고려의 역대 국왕들은 황제(皇帝)를 자칭하지 않았지만, 천자(天子)를 자칭해 내부적으로 하늘에 제사지냈으며, 묘호를 올리고, 제후를 봉하고, 만천하에 사면령(大赦天下)을 내렸다. <고려사> 악지에 실려 있는 '풍입송(風入松)'에서는 고려국왕을 해동천자(海東天子)로 지칭했다. 문종은 태평천자(泰平天子), 고종은 만년천자(萬年天子)라고 불린 적이 있다. 또한 국왕을 만승(萬乘), 천(天) 등으로 부르는 등 자주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충렬왕 때 원 천자의 제후가 되어 독립적인 모습이 없어진다.

4. 각종 매체에서 천자인 인물

5. 같이보기


  1. [1] 다시 말해 옥황상제
  2. [2] 공자 같은 사람도 가계도를 위조했다는 의심을 산다.
  3. [3] 1인독재를 향한 단계를 착실히 밟아가는 것을 두고 비꼬아 시황제라고 칭하는 별명이 있다.

분류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67.28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