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

親李

1. 개요
2. 역사
3. 나무위키에 등재된 친이계 정치인

1. 개요

한나라당 출신 전 대통령인 이명박의 정치적 이념을 따르거나 측근이었던 정치세력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나라당-새누리당 내에서 친이와 계파갈등을 벌이던 대표적인 계파로는 친박(親朴)이 있다.

2. 역사

90년대 3당 합당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던 신한국당은 YS가 힘을 잃게 되면서, 90년대 중반 이회창 전 총리에게 당권이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도 이후 2번이나 대선에서 낙선하면서 2천년대 초반 정계은퇴를 하게 되고, 이 국면에서 새로이 떠오른 두 인물이 김영삼 대통령이 픽업한 이명박과, 후에 한나라당에 합류한 박근혜였다. 그러다 마침내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내 경선을 치르면서 두 후보의 지지자들로 한나라당 내부가 확 나뉘면서 친이와 친박이라는 계파정치가 시작됐다. 당시 여권에선 고건 전 총리의 불출마가 확정되면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마땅한 대권후보가 없는 상황이라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한나라당 경선은 그만큼 치열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자수성가한 기업인 출신 이미지로 다소 권위주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박근혜 후보에 비해 일반 국민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1] 대신 박근혜 후보는 한나라당 당원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전면에 나선 2007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무소속 후보들에게 줄줄이 패하며 당원들의 지지가 줄어드는 타격을 입게 된다.

이쯤해서 이명박 후보 측은 여론조사 반영비율을 크게 높인 경선을 요구했으며, 실제로 당원투표는 박근혜 후보가 이겼지만 여론조사를 이명박 후보가 크게 이겨서 대선 후보가 되었고[2]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이 당선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친이계가 당권을 잡았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박계에 대한 공천 학살이 일어나 많은 친박계 정치인들이 탈당해 친박연대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 때 대표적인 친이계였던 이방호를 몰아내기 위해 친박계가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 후보로 사천시에 출마한 강기갑 후보를 내심 팍팍 미는 정치 코미디가 벌어지기도 했고,[3]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박근혜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타 당인 친박연대 후보들에게 "꼭 살아서 돌아오시라"는 격려를 남기는 묘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여하튼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는 TK지역구와 비례득표율 13.2%를 얻어 총 14명의 의원을 당선시키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며 민주노동당을 제치고 원내 4당으로 올라서지만, 결국 TK 지역 외에선 별 성과를 내지 못하다보니 친박성향의 무소속 출마자를 시작으로 친박연대를 포함한 친박세력은 몇년 후 소리소문없이 한나라당으로 복당하게 된다.

다만 친이계도 상황이 좋진 않았는데, 2008년 정권 출범 1년차부터 광우병 논란이 터지면서 MB정부는 10%대까지 지지율이 급락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고 이후에도 국정원 민간사찰, 명박산성 등의 과를 범하면서 2010년 지방선거도 참패하는 등 민심의 지지를 잃게 된다. 퇴임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일부 보수진영에서 그토록 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것보다도 낮았다.[4] 기사.

이렇게 2012년 총/대선이 다가오면서 이전과 달리 상황이 역전된다. 친이계는 MB정권 지지율의 하락과 함께 마땅한 차기 대선 주자도 없어 친박계에게 당권을 빼앗기고, 친박계는 친이계에 대한 공천탈락의 명분을 얻으며 18대 총선의 복수를 할 기회를 잡은 것. 결국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에 의해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강제개명 이름을 바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반대로 친이계가 대거 공천학살 당한다. 18대 총선의 친박과 마찬가지로 몇몇 의원들은 탈당해 무소속 출마하거나 당을 만들어 새누리당 후보와 붙기도 했으나 과거 친박연대와 달리 차기 대권주자가 있는 미래권력도 아니었고, TK만큼 탄탄한 지역적 지지기반을 가진 것도 아니다 보니 대부분 낙선하고 만다.

한 여성 의원의 경우 새누리당 공천이 잘못됐지만 자기 지역구에 공천받은 후배의 앞길을 막을 순 없다며 지역구 출마를 포기하고 스스로 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1순위로 출마했으나 이름을 스틸한 군소정당 한나라당에도 못미치는 굴욕을 당했다.(...) 물론 거기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도 낙선.(...) 여튼 이후 2012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는 친이계/비박계 7인과의 경쟁(?)을 뚫고 박근혜 후보가 압도적으로 추대 선출된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이후로도 친이계들은 당권과는 거리가 멀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2014년 세월호 침몰 참사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크게 낮아진 상태에서 평행이론 그놈의 지지율 친이계들에게 다시 반짝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다. 결국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친이계의 몇몇 여성 정치인들은 국회 재입성에 성공했고, 남성 정치인은 낙선했다. 이후 친이계는 비박계와 함께 행동을 할 때가 많다.

다만 민심이반과 달리 당 내부에선 아직 친박계가 건재했기 때문에 이한구 공관위원장을 비롯한 친박세력이 공천권을 휘두른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이계는 그나마 살아남았던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비박계와 함께 다시 한번 공천학살을 당한다. 부관참시 오죽하면 이재오가 아무리 사람이 미워도 그러는거 아니다고 성토했을 정도.(...) 그 덕에 당의 친박 순도는 더욱 높아졌으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며 새누리당 자체가 위기에 빠지는 바람에(...) 친박계는 위기에 빠지고 친이계는 총선패배의 주범으로 친박계를 까며 속으로 내심 미소를 짓게 된다. 다만 무소속으로 출마한 친이계 좌장 이재오 후보조차 낙선함으로 인해 친이계 자첸 이제 거의 명맥이 다하고 비박계에 흡수될 처지가 된 것으로 보인다.

3. 나무위키에 등재된 친이계 정치인

친이계 출신이라도 상대적으로 중도적인 인물이 있고, 보수적인 인물이 있으며 정치생명을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한 인물이 있고, 도중에 정권에 비판을 하며 거리가 좀 생긴 인물도 있고 애매하게 퇴임이후 색이 엷어진 의원도 있으므로 하나의 균질한 집단으로 봐서는 안 될것이다.


  1. [1] 때문에 후보자 본인들의 성향과 무관하게 지지자들 성향은 대체로 친이계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신봉하는 자유주의 보수주의자들이 많았고, 친박계는 박정희 향수에 취해있던 군부 계열의 권위주의 보수주의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런 연장선상에서 당시 박정희를 무쟈게 싫어하는 YS는 이명박을 지지했다.
  2. [2] 박근혜 후보의 안 대로 계산했어도 이 후보가 가까스로 승리할 것이었긴 했다.
  3. [3] 이 여파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18대 총선에서 강기갑 후보는 영남지역 진보후보 당선이라는 대이변을 만들었다.
  4. [4] 다만 일부 비판론자들의 왜곡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의 퇴임시 지지율은 한국갤럽 기준 27.9%로 역대 정권 중 1위다. 오히려 제일 낮았던 시기는 북핵이 터졌던 4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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