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보베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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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의 국가 및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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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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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부베르드 공화국
República de Cabo Verde
Republic of Cabo Verde

국기

국장

상징

위치

국가

자유의 노래
(Cântico da Liberdade)

국화

없음

국조

없음

표어

없음

역사

탐험가 디오고 고메즈에 최초발견됨 1460년
포르투갈 제국1963년
포르투갈으로부터 독립 1975년 7월 5일

수도

프라이아

최대 도시

민델루

면적

4,033㎢ / 세계 175위
내수면 비율: 0,08%

인문 환경

인구

총인구

553,335명(2018년)

인구밀도

137명/ 세계 71위

출산율

2.3명

공용 언어

포르투갈어, 크레올어(비공식)

종교

국교없음
가톨릭교(98%), 개신교(2%)

자국군 보유 여부

카보베르데군

하위 행정 구역

10개의 섬, 2개의 제도(도), 22개 콩셀류(시) 32프레게스티아(군)

정치

정치 체제

공화제, 단일국가, 이원집정부제

민주주의지수

169개국 중 23위[1]

정부 요인

대통령

조르지 카를로스 폰세카

총리

울리시스 코레이아 이 실바

법무장관

오스카 실바 타바레스

외무장관

루이스 필리페 타바레스

경제

명목 GDP

전체 GDP

1인당 GDP

GDP(PPP)

전체 GDP

1인당 GDP

수출입액

수출

수입

외환보유액

신용 등급

화폐

공식 화폐

에스쿠도

ISO 3166

CVE

국가 예산

1년 세입

1년 세출

ccTLD

.cv

국가 코드

132, CV, CPV

국제 전화 코드

+238

단위

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2

도량형

SI 단위

외교

대한수교현황

대한민국: 1988년 10월 3일
북한: 1975년 8월 18일

국제연합 가입

1975년 9월 16일

무비자 입국 가능기간

양국간 외교·관용여권 비자면제

자국민 교민현황

4명

주한 대사관 / 총영사관

주한대사관

없음

1. 개요
2. 역사
3. 자연
4. 경제
5. 사회
6. 교통
7. 여행
8. 외교관계
9. 행정구역
10. 카보베르데의 국가
11. 트리비아

언어별 명칭

한국어

카보베르데
카부베르드 공화국

영어

Cape Verde
Republic of Cabo Verde

일본어

カーボベルデ
カーボベルデ共和国

포르투갈어

Cabo Verde
República de Cabo Verde

중국어

佛得角
維德角共和国

힌디어

केप वर्दे
केप वर्दे गणराज्य

아랍어

الرأس الأخضر
جمهورية الرأس الأخضر

러시아어

Кабо-Верде
Республика Кабо-Верде

프랑스어

Cap-Vert
République du Cap-Vert

1. 개요

서아프리카 대서양에 위치한 섬나라로, 정식국명은 카부베르드 공화국. 수도는 해변이라는 뜻의 프라이아(Praia), 공용어포르투갈어이다. 통화는 이쉬쿠두를 사용한다.

인구는 약 56만명(2017)으로,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다. 때문에 2015년 1월 5일, 첫 추기경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임명되었다. 또 다수 인종이 흑인과 포르투갈계 백인 혈통이 섞인 혼혈인이다. 그러기에 포르투갈과 비슷한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고있으며 그 외 1% 정도의 백인도 소수 잔존해 있다.

여담이지만 아프리카 최서단에서도 좀 더 서쪽으로 떨어진 해상에 있다보니 지역별로 세세하게 그리는 세계지도에는 여백상 문제[2]로 인해 자주 누락되거나 붙여넣기 형식으로 꼽사리 껴서 나오는 비운의 나라이기도 하다. 심지어 가장 공신력이 큰 지도책인 아틀라스(Atlas)에서도 어지간하면 발견하기 쉽지 않다. 수도인 프라이아는 간혹 나와도 국명 카보베르데는 잘 안 나오는 정도.

2. 역사

국명 "카보베르데(카부베르드)"는 포르투갈어녹색의 곶(=베르데 곶)[3]"이라는 뜻인데 정작 포르투갈의 엔리크 왕자이 목격한 진짜 베르데 세네갈에 있다(...). 하기야 섬나라에 무슨 곶이 있겠냐만은

이시대가 유럽의 대항해시대스페인 제국과 식민지 다툼을 한 포르투갈 제국이 당시의 포르투갈 제국의 초기를 다진 엔히크왕자는 아프리카를 돌아서 아시아로 가는 방향의 길을 개척하는 것을 지원했는데. 이때 포르투갈의 탐험가 디오고 고메즈가 1460년에 최초로 섬을 발견하고 발을 밟았는데 당시에는 이 군도 전체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한다(무인도). 다만 발견 년도는 찾았지만 월일을 못찾아서 과연 엔히크왕자가 생전에 발견한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엔히크왕자도 1460년에 사망했기 그런것이다. 하지만 이전에도 페니키아인, 아랍인, 무어인 및 인근 서아프리카의 부족들이 이 섬을 왔다갔다고 한다. 그렇지만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기록은 남긴 디오고 고메즈가 최초발견으로 남기고 있다. 그 이후로 포르투갈인들이 건너와 정착하기 시작하고, 16세기경에 노예 무역이 성행했을 때 아프리카의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끌려왔다. 때문에 이들과 이들의 혼혈로 이뤄진게 현재 카보베르데 주민의 조상들인 셈. 그렇게 노예무역이 쇠퇴한 후에도 이 지역은 대서양의 거점항으로 성장했다.

>엔히크 왕자는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어떻게 보면 포르투갈과 유럽에 입장에서는 당시에 생소한 아프리카대륙의 서쪽과 남쪽(희망봉)의 항해길을 개척하고 발견한것은 거이다 포르투갈 제국시기에 발견한것이다. 그가 만약에 항해와 바다에 관심이 없었다면 포르투갈보다는 당시의 다른 항해사와 다른 국가가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르투갈 제국에 기초를 다지도 왕자가 지원함에 따라서 여러 곶이나 제도를 발견했고, 북아프리카에 무슬림 항구를 함락하는 것도 도와주었고, 그가 세운 천문대와 항해 연구소가 항해사들에게 항해기술이 도움이 되었다. 후에 그가 죽자 그의 형의 아들인 주앙 2세가 엔히크 왕자의 기반으로 포르투갈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에 불어닥친 민족주의 열풍에 편승하여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며, 1975년 독립하였다. 이때 같은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기니비사우와 통합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 끝내 성사되진 못했다.

왼쪽이 카보베르데의 옛 국기(1975년부터 1992년까지), 오른쪽이 기니비사우의 국기이다. 둘이 서로 비슷하게 생겼는데, 둘 다 기니-카보베르데 독립 아프리카당의 당기에서 유래한 디자인으로 이는 카보베르데와 기니비사우가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니비사우와 통합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에도 1992년 현재의 국기가 제정되기 전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3. 자연

섬들의 면적을 다 합쳐보면 4,033㎢로, 전라북도의 절반과 거의 같으며, 가장 큰 섬이자 수도 프라이아의 소재지인 상티아구 섬은 약 991㎢로 강원도 횡성군과 거의 비슷하다.

기후는 바다 한복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열대 고압대의 영향을 받아 열대 해양성 기후. 연평균 22도, 최고 기온도 30도를 넘지 않아 쾌적한 편이다. 최저 기온은 15도까지도 떨어질 정도. 특히 우기에 비가 오면 밤에 15도까지 떨어져서 외투없이 못다닐 정도로 쌀쌀해진다. 낮에만 좀 뜨겁고 밤엔 선선한 한국의 늦봄이나 초여름, 늦여름이나 초가을 날씨가 1년 내내 계속된다고 보면 된다. 즉, 살기 제법 괜찮은 날씨.

화산 활동과 침식으로 생긴 섬이기 때문에 화산 활동이 있다고 한다. 페드로 코스타용암의 집을 보면 전형적인 화산 지형 국가라는걸 알 수 있다. 암석도 현무암이 많을 정도.

4. 경제

2017년 기준 1인당 GDP는 3212달러 정도로 절대치로 보면 높다고 볼 순 없지만, 그래도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보다는 나은 편이다. 지니계수도 0.50 정도로 아프리카 국가 치곤 양호한 편. 다만 절대치로 보면 여전히 한국의 0.302 ,미국의 0.4에 비해 여전히 높긴 하다.[4] 주요 수출품은 물고기 등 수산물이다. 과거엔 상술했듯 대서양의 거점항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 나라가 20세기 기준 국제연합에서 지정한 최빈국 카테고리에서 상당히 소득 수준을 올린 몇 안되는 나라라는 것이다. 즉, 유엔에서 공인된 진짜 밑바닥에서 올라간 몇 안되는 케이스. 참고로 1971년 국제연합이 최빈국 카테고리를 지정한 이래 최빈국에서 그 위 수준으로 올라간 나라는 카보베르데 외엔 보츠와나, 몰디브 정도 뿐이었다. 보츠와나는 엄청난 양의 다이아몬드가 국가 수입의 대부분이고 몰디브는 관광업의 효과를 많이 본 나라이기 때문에 카보베르데의 경제 성장은 더욱 돋보인다.

5. 사회

아프리카, 그것도 서아프리카 지역 국가 가운데서는 그래도 제법 사회가 안정되고 정치적 자유도 있는 나라다. 때문인지 2010년대 들어선 포르투갈에서 유로존 경제위기 등으로 청년실업이 심각해지자, 이에 절망한 2~30대 청년들이 대거 포르투갈을 버리고 이 나라로 건너오는 케이스도 생겼다. 유럽인들의 자발적 아프리카행? 그래서 다시 점점 활력을 찾아가는 아이러니한 상황(...). 포르투갈 청년들 입장에선 일자리도 없고 미어터지는 본국에서 N포 세대가 되느니 차라리 언어, 종교, 문화적 코드가 어느 정도 맞는 이 나라에 건너와 떵떵거리고 사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포르투갈 본토와도 생각보다 멀지 않은 거리로 비행기로 리스본에서 6시간 정도.

2010년대 세계 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정치적 자유 지수와 시민적 자유 지수가 동시에 1점을 받았다.[5] 또한 취약국가지수에서는 73.7점으로 세계에서 94위를 기록했다. 이건 아프리카에서 국가 실패 위험이 8번째로 적은 국가라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겨우 5년 전인 2008년에는 80.7점으로 65위였다. 5년 새 30계단 가까이 내려간 셈. 2017년 EIU의 민주주의 지수 조사에서도 23위로 일본과 동급을 기록했다.[6]

6. 교통

수도인 프라이아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이외에도 몇몇 국제공항이 있지만 대부분 폐쇄되었다고 한다. 도로는 대부분 조약돌로 포장돼있으나 최근 중국의 원조로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있다. 작은 섬이 여럿 모인 국토 특성상 현재 철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와 도시는 서아프리카의 최서단인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임에도 프라이아의 국제공항에서 직항편이 드문 편이다. 오히려 후술되어있듯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역사 때문에 더 멀리 있는 리스본과 항공편이 비교적 더 많다.

7. 여행

한국에서 가기 위해서는 항공편을 여러 번 환승해야하는데, 카보베르데에 들어가기 전 대개 리스본을 많이 경유하지만 그 리스본으로 가는 한국발 직항편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카보베르데가 포르투갈 식민지였다 보니 TACV 카보베르데 항공과 TAP 포르투갈 항공이 모두 리스본과 카보베르데 간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울 (인천)/ 부산(김해) ↔ 리스본, 리스본 ↔ 프라이아 구간을 따로 끊어야 하며, 이렇게 끊을 경우 인천 출발은 1,200달러 정도, 김해 출발은 1,500달러 정도 한다. 만약 인천 ↔ 프라이아를 한 구간으로 끊을 경우 최소 3천달러 정도 하므로 주의할 것. 그래서 캐세이퍼시픽으로 인천/김해-홍콩-런던을 이용 후 히드로 국제공항에서 영국항공으로 리스본, 그리고 리스본에서 다시 TAP로 이 나라로 가는게 효율적이다. 아니면 두바이 국제공항을 거치는 에미레이트 항공이나 이스탄불을 거치는 터키항공도 있다.

8. 외교관계

카보베르데는 대한민국북한 동시수교국이다. 대한민국은 1988년 카보베르데를 인정하면서 대사급 수교를 맺었으며 1992년 경제기술협정을 체결하였다. 현재 주(駐) 세네갈 한국대사관이 직할로 겸임한다. 북한은 1975년에 국교를 수립하여 현재 주(駐) 기니공화국 북한대사가 겸임한다.

9. 행정구역

10. 카보베르데의 국가

자유의 노래(포르투갈어: Cântico da Liberdade)는 카보베르데의 국가이다. 아밀카르 스펜세르 로페스가 작사했고, 아달베르토 이히노 타바레스 실바가 작곡하였다.

원본가사

한국어 가사

후렴

Canta, irmão
Canta, meu irmão
Que a liberdade é hino
E o homem a certeza.

형제여, 노래하라
나의 형제여, 노래하라
자유는 찬송가라네
그 사람은 확실하다네.

1절

Com dignidade, enterra a semente
No pó da ilha nua;
No despenhadeiro da vida
A esperança é do tamanho do mar
Que nos abraça,
Sentinela de mares e ventos
Perseverantes
Entre estrelas e o Atlântico
Entoa o cântico da liberdade.

진심을 다해 씨앗을 심었네
벌거벗은 섬의 먼지에서
인생의 절벽에서
희망은 바다처럼 크다네
바다와 바람의 산호초는
우리를 꼭 껴안았다네
변하지 않는
별과 대서양 사이에서
우린 자유의 노래를 읊조리네.

11. 트리비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디바 세자리아 에보라가 바로 이 나라 출신. 특유의 애수어린 목소리로 카보베르데 모르나 음악의 여왕이라 불렸다. 이외의 뮤지션으론 페드로 코스타 영화에 삽입된 Os Tubaroes 같은 카보베르데 록 밴드도 있다.

스포츠는 축구가 인기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나니가 여기 태생이다. 또한 스웨덴의 레전드 축구선수 헨릭 라르손의 아버지가 여기 출신. 파트리크 비에이라도 여기 혈통이다. 국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카보베르데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고.

한국과는 1988년에 수교하였고, 북한과는 1975년 수교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을 당시에는 IOC 정회원 가입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때 처음으로 출전하였다.

포르투갈 감독 페드로 코스타의 영화 대부분이 이 나라를 소재로 삼고 있다. 이 중 용암의 집이 카보베르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용암의 집을 보면 살라자르 정권 하 많은 포르투갈인들이 카보베르데로 떠났다는걸 알 수 있다.

캠퍼 애니메이션 1화에서는 콘도 미코토가 이 나라에서 보내온 편지가 나왔다.

미드 화이트칼라에서 주인공 닐 카프리가 FBI를 피해 도피한 곳이기도 하다.


  1. [1] 결함있는민주주의
  2. [2] 이 나라를 표기해주려면 그만큼 의미없는 바다를 더 그려줘야 한다. 작은 섬나라 외 도시국가들도 흔히 겪는 서러움 중 하나.
  3. [3] 그래서 영어로는 "케이프 베르드(Cape Verde)"이다. 다만 카보베르데 정부 측에서 2013년 포르투갈어 이외의 언어에서도 국명을 "카보베르데"로 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으니 카보베르데라고 쓰는 게 좋다.
  4. [4] 언제 시점인진 추가바람.
  5. [5] 해마다 수치가 조금씩 바뀌긴 하지만, 같은 기간 한국은 정치적 자유 지수가 2, 시민적 자유 지수가 2였다. 한편, 같은 아프리카 국가인 가나 공화국는 각각 1, 2로 모리셔스 같은 섬나라를 제외하곤 대륙 아프리카 국가 중에선 1위였다. 반면에 북한은 아프가니스탄의 6, 6보다 높은 7, 7을 기록했다. 여기서 매긴 점수(score)를 보면 카보베르데는 90점, 한국은 83점, 그리고 북한은 3점(...).
  6. [6] 참고로 해당 조사에서 같은 기간 한국은 20위, 포르투갈은 26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 중에선 모리셔스가 16위, 대륙 아프리카 국가 중에선 보츠와나가 28위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대륙 아프리카 2위는 41위를 기록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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