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키스타도르

  음악에 대한 내용은 Conquistador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개요
2. 콩키스타도르의 전술
2.3. 철제 무기와 무술
2.4. 병력과 외교
2.5. 세균병기(?)
2.6. 항해술
3. 창작물
4. 이에 해당하는 사람

1. 개요

콩키스타도르의 상징인 모리용(Morion) 철모.

당시 콩키스타도르의 무장과 의복. 맨 좌측의 군인은 로델레로라고 불리기도 했다.

Conquistador. 콘키스타도르라고도 한다.[1] 15-17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한 스페인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 존재하는 여러 국가들의 조상이기도 하다. 포르투갈 출신 정복자를 포함시키기도 하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타 지역 정복자들을 포함시키기도 하지만[2] 보통은 아메리카를 침략한 스페인계 정복자를 말한다.

콩키스타도르는 스페인어정복자[3]라는 뜻이며, 어원상 레콩키스타와도 약간 연관이 있다.[4] 콩키스타도르는 남성형이며, 여성형은 콩키스타도라(Conquistadora). 당시에는 여성도 남성들과 함께 탐험가 혹은 장수로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하여 원주민들과 전쟁을 벌였기에 여성형인 콘키스타도라도 종종 쓰였다. 복수형은 콩키스타도레스(Conquistadores).

이베리아 반도에서 레콩키스타를 진행하는 동안 스페인은 막대한 수의 용병을 유지해야 했으며, 이슬람 세력과의 지속적인 전쟁 때문에 스페인군 병사들의 전투력은 월등하게 높아졌다. 그런데 그라나다를 함락하여 일단 레콘키스타를 완수하고 나자 전쟁은 소강상태가 되고 레콩키스타에 참가하던 용병들은 일자리가 없어졌다.

그 와중에 스페인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인도'를 발견하였고, 인도에는 금은이 곳곳에 잔뜩 쌓여 있다는 정보가 퍼지게 된다. 용병들은 과감하게 배를 사고 콜롬버스를 흉내내어 대서양을 건너 금을 찾아 그들이 '인도'라고 믿고 있는 신대륙으로 모험을 떠났다.

그 결과 단 수백 명의 스페인 용병들이 강력한 세력을 과시하던 아즈텍 제국잉카 제국, 그 외 여러 중남미의 원주민 집단들을 토벌하고[5]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전역에 스페인 식민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식민제국에서 스스로 왕을 칭하거나 귀족으로 칭하면서 온갖 횡포를 부렸고 현지인들을 마구잡이로 약탈, 학살을 벌였다. 나중엔 수탈할 물자가 없어지면, 원주민을 노예로 부려먹으며 그들의 농장이나 광산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부를 얻으려고 하였다. 이 때문에 급기야 스페인 왕실조차도 "그만해라, 이제 그들도 제국 백성인데 마음대로 죽이고 그러지 마라."라고 통첩을 보내기에 이르지만, 스페인의 통제권은 배타고 몇 달 가야 나오는 대서양 반대편에 있었으니 제대로 먹혀들 리가 없었다. 물론 스페인 정부도 바보가 아니라서 이들이 세습 영주가 되는 것을 경계하여 부왕을 임명하는 등 직접 통치를 했다. 여기까지는 콩키스타도르들도 어찌 하지 못하고 받아들였으나 스페인 정부는 멍청하게 콩키스타도르들을 식민지 촌놈들이라며 차별하는 실책을 저지른다. 이 때문에 불만을 품다가 19세기에 와서는 미국 독립 전쟁 당시의 자결권 논리를 자기들에 맞게 차용해서는 스페인을 아예 몰아내어 현재의 중남미에 독립국가들을 세운다. 통제하던 스페인에서 벗어나자 이제는 대놓고 원주민들에게 막장짓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극단적인 혼란은 이런 콩키스타도르와 미국의 주변국 통제정책이 만들어낸 산물.[6] 콩키스타도르의 초기 근거지였던 쿠바푸에르토리코는 남미, 중미 본토와 달리 스페인이 좀 더 오래 지배하지만 결국 미국-스페인 전쟁에서의 패전으로 잃는다.

에르난 코르테스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한 콩키스타도르들은 신분이 거의가 하급 귀족이나 그저 입에 풀칠만 할 정도의 하류층 출신으로 학식이 매우 얕았다. 이점에선 19세기 후반 골드 러시 때의 개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통계적으로 어느 나라든지 식민지로 이주하는 본국인들 대부분이 본국의 하류층 출신들이다. 코르테스도 가난한 하급 귀족이나 아버지의 교육열 덕분에 살라망카로 유학가 (대학교육을 받았다 아니다, 법학사 자격을 땄다, 법원 서기로 근무했다 등등 주장이 엇갈려서 확정할 수가 없지만) 고등교육을 받았고, 아메리카로 넘어온 뒤 20대를 고스란히 행정 관료(시청 서기로 시작했다.)로 보내서, 고급 어휘와 수사법, 행정능력과 정치 감각을 두루 겸비했다. 이걸로 카를 5세의 환심을 얻었으며, 자기 아래 원주민들을 대하는 방식도 여느 콩키스타도르들과 달라서 봉건제하의 영주와 영민 관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반면 잉카를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서명도 못 해서 자기 이름을 새긴 판에 잉크를 묻혀 서명을 찍을 정도의 문맹이었다. 대개 하층민 출신들이 신분 상승을 추구했다는 점 때문인지 칠레 역사학의 거장 중 한 명인 가브리엘 살라사르(Gabriel Salazar) 교수는 이들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왕, 교회, 대상인들의 점점 더 심해지는 억압 앞에 무너져가는 이베리아 반도 촌락 민주주의를 아메리카에서 되살린 민주주의의 중흥자들'이라는 원주민들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2015년 7월 9일, 볼리비아 원주민 대표들과 만난 교황 프란치스코는 과거 콩키스타도르 시대부터 교회가 원주민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저지른 중대한 죄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2. 콩키스타도르의 전술

2.1. 화약

널리 알려진 대로 콩키스타도르의 화약이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다.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거의 마술이나 신의 힘과 같이 보였으며, 몇몇 경우에는 단지 화약을 터트려서 폭음으로 위협하는 것으로 무릎 꿇릴 수 있었다.

하지만 원주민들도 이들과 계속 싸우면서 익숙해지자 화약에 일방적으로 겁먹지는 않았다. 압도적인 화력과 우세한 기술력으로 원주민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했다고 여겨지곤 하지만 실제론 전혀 아니다. 당시의 총과 대포는 파괴력과 연사 속도가 썩 좋지도 않았고, 습한 기후 속에서 당시의 조잡한 화약 무기들은 신뢰성이 떨어졌으며 본국과의 거리 때문에 보급도 힘들었다. 화약을 만들기 위해 화산을 올라 유황을 채취해야 했다. 특히 떨어지는 연사력 때문에 쏘고 나서 근접전으로 싸워야 했다. 또한 총기도 부족했기에 석궁을 대타로 써야 했다. 게다가 원주민들은 활을 잘 쏘며 투척 솜씨도 뛰어나 스페인군의 석궁과 총에 대등하게 싸웠다.

유럽인들이 순전히 화력만으로 원주민을 압도하게 된 것은 인구가 그들보다 많아지고[7] 기관총자동소총이 발명된 이후이다.

2.2. 기마술

콩키스타도르는 원주민들에게는 없는 (馬)을 가지고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일부 남미 안데스 산맥 고산 지대에 라마알파카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말과 같은 대형 가축은 전혀 없었으므로, 원주민들이 난생 처음 보는 짐승인 말은 위압용으로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으며, 이들이 마치 인간이 아닌 켄타우로스 '괴물'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자 이 위압 효과는 금세 사라져버린 것으로 보인다. 아즈텍의 용맹한 재규어 전사들은 코르테스의 을 공격하여 목을 베어버렸다는 일화[8]가 전해져 오는 것으로 보아 원주민들이 말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공포 효과는 결국 무마된 것으로 보인다.

잉카인들은 말다리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기병대를 상대했다. 게다가 포로로 잡은 스페인군을 심문해서 말을 다루는 방법을 알아내 기병대를 양성하려고 시도까지 했다.

마푸체인들도 스페인 기병을 대적할 때 장창으로 기병돌격을 막고 곤봉 투척으로 말을 공격해서 상대했다. 이 전술이 효과가 있어 스페인 기병들이 크게 털렸다. 나중엔 마푸체인들이 노획한 스페인인들을 번식시켜 기병대까지 양성하여 스페인군과 대등하게 싸우게 된다.[9]

그러나 의 기동성과 돌파력은 여전히 유용하여 콩키스타도르들은 원주민들의 느슨한 분산 대열 사이로 말을 몰아 달려가서 화려한 복장을 입은 지휘관을 살해하여 지휘를 무력화하는 전술을 자주 사용하였다. 게다가 기병을 막기엔 원주민들의 은 너무 짧은 데다 경험에서 비롯된 대(對)기병 전술까지 없다보니 기병한테 심하게 털리곤 했다. 그 대표적인 전투가 슬픔의 밤 이후 도망치던 에르난 코르테스가 치른 오툼바 전투이다. 원주민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콩키스타도르들을 협곡으로 유인한 뒤에 기병대를 상대로 바위를 굴려서 기병을 몰살한 전적이 있다.

2.3. 철제 무기와 무술

유럽에서도 고품질로 이름 높았던 스페인강철 과 강철 갑옷은 콩키스타도르의 가장 든든한 무기였다. 그 명성이 고대 로마 시대로부터 이어지는 톨레도산 검은 휘두를 때마다 원주민의 사지를 손쉽게 잘라냈으며, 일찍이 본 적 없는 이러한 광경에 대한 공포는 아즈텍의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묘사되어 있다.[10]

반대로 스페인철기에 맞서는 원주민들은 아직도 신석기 시대의 무장에 머물러 있었다. 이들은 나무로 된 무기를 사용하고 가죽이나 식물로 만든 방어구를 착용했다. 전사 계급에게 최상의 무기는 흑요석 무기였다. 흑요석 자체는 오늘날 외과수술에도 사용하는 예가 있을 정도로 날카롭다. 따라서 원주민끼리의 전쟁에서는 충분히 살상력이 높은 무기였다. 그러나 강철 갑옷을 입은 상대에게는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흑요석이 깨질 뿐이었다. 콩키스타도르들은 원래 강철 갑옷을 착용하였으나, 나중에는 무겁고 덥다는 이유로 강철 갑옷 대신 가죽이나 패딩 갑옷을 입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원주민들의 무장에 대한 방어력은 확보할 수 있었다. 반면 원주민 입장에서는 자기들끼리는 무기를 막던 방어체계를 갖추더라도 콩키스타도르의 강철제 무기를 막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남미에 철광석이 없었던 게 아니다.[11] 분명히 철광석이 매장되어 있는데, 그들의 문명으로는 철광석을 캐서 주물을 만들어서 무기를 제작하는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이들도 차후에 스페인 포로들을 심문하여 야금술을 배워서 철제 무기를 만들지만, 철기 제련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끝내 장비 면에서 스페인 침략자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콩키스타도르는 슬픔의 밤에서 화기와 무구를 대량으로 상실하였고 원주민들이 이를 노획하였지만, 콩키스타도르들이 사용법을 철저하게 비밀로 했기에[12]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대포가 주어졌어도 사용법을 몰라 쓸 수가 없었으며, 설사 발사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화약을 제조하는 방법을 몰랐으므로 지속적인 사용은 불가능하였던 상황이었다. 톨레도 역시 활용할 검법을 몰라 막대기에 매달아 처럼 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총기석궁 역시 사용법을 몰라서 버릴 수밖에 없었다.

전술 개념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당시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검술은 오로지 적을 인정사정 없이 살해하기 위한 실전 검술이었다. 특히 대다수의 콩키스타도르들은 본국에서 레콩키스타에 장기간 참여해온, 전쟁으로 단련된 프로 용병들이었다. 사실 이런 실전 검술은 유럽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모든 구대륙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검은 흉기, 검술은 살인술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기가 더 힘들었다. 이에 반해 전통적인 아즈텍 군대의 전략 전술은 적을 죽이지 않는 것에 초점이 있었다. 전투는 반드시 상대를 죽이지 않더라도 기량의 격차를 확인하면 승패가 결정되었고, 불복하더라도 두들겨 패서 기절시켜 포로로 만들었다. 대규모의 인신공양 풍습을 가지고 있던 아즈텍 문화의 특성상 적을 살해하는 것보다 생포하는 것이 훨씬 가치있었기 때문이다.

인신공양이 아니더라도 포로를 생포해서 그 노동력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유럽과 다르게 , 같은 대형 가축이 없기에 전적으로 농사나, 운송은 전적으로 인력에 의지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포로를 죽이는 것보다는 투항시키는 게 유리했던 것이다.

아즈텍 전사들은 뛰어난 운동 능력과 무술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주변국과의 꽃의 전쟁에서는 대개 승리했지만, 그들의 무술은 어디까지나 상대를 생포한다는 규칙 안에서만 효과적인 것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그때까지 해왔듯이, 콩키스타도르의 급소를 노려 살해하기보다는 완력으로 제압하거나 기절시켜 끌고 가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았다. 이런 비효율적인 방식을 고집한 것 때문에 아즈텍 전사들은 불필요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또한 기껏 적을 제압하더라도 후방으로 끌고 가던 와중에 다른 적들이 달려와 구출해버려 놓치는 일도 자주 있었다. 코르테스 본인도 한 전투에서 3번이나 이런 일을 겪었다. 결국 아즈텍인들도 후기에는 생포를 고집하지 않고 살인을 위주로 한 전투방식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살해하기보다 기절시켜 끌고 가려는 오랜 관습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기에, 콩키스타도르를 잡았다 놓치는 일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2.4. 병력과 외교

비록 콩키스타도르의 무장이 압도적으로 좋기는 했지만, 그에 반해 아즈텍, 잉카 등은 어마어마한 인구수를 가지고 있었다.[13] 특히 본국과의 거리가 멀어 본국에서도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였다.

압도적인 숫자의 원주민 속에서 콩키스타도르들은 강력한 무기를 가졌음에도 항상 고전해야 했다. 인구수 수십만의 도시에서 탈출하거나, 그들을 쫓는 수만의 분노한 군중들 속에서 추격을 뿌리쳐가며 도망치는 등, 오히려 객관적인 시점에서 보자면 이들은 죽을 만큼 고생했다.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들은 주변 부족들과의 갈등과 내분 상황을 적절히 이용하여 정치적 술수를 썼다. 에르난 코르테스는 이러한 부족 족장의 딸인 말린체와 결혼까지 하고 슬하에 득남까지 했다. 아버지를 에르난 코르테스로, 어머니를 말린체로 둔 이 아들은 어른이 되자 아버지의 후광으로 스페인군 기병대 장교가 되었다. 코르테스뿐만 아니라 다른 콩키스타도르들도 원주민 여성들과 결혼하거나 첩으로 두곤했다. 그러다보니 중남미의 인구 과반수를 차지하는 메스티소들이 이때부터 탄생했다.

게다가 콩키스타도르들은 아즈텍 제국에 반기를 드는 부족에게 전에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대량으로 베풀었는데 그게 바로 돼지고기였다. 아즈텍 일대에는 대형 동물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기에 인신공양을 감수하면서 고기를 맛봐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때문에 무지막지하게 많은 돼지고기를 보자 당연히 눈이 휘둥그래질 수밖에 없었고 돼지고기를 먹고 싶어서라도 콩키스타도르와 친분을 맺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법은 콩키스타도르들의 정복에 어마어마한 도움을 주었다. 원주민들은 하나로 단합이 되어있지 않았고, 서로가 같은 종족, 민족이라는 관념도 없었다. 아즈텍도 명목상으로는 제국이라지만, 실상은 테노치티틀란이라는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텍스코코, 틀라코판의 세 개 도시가 동맹을 맺어 타 부족들을 무력으로 복속시킨, 실질적인 도시 연맹에 지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 동맹조차 중심인 테노치티틀란이 스페인인들에게 밀려 위기에 처하자 텍스코코는 아예 콩키스타도르 측에 가담할 정도로 결속력이 형편없었다. 게다가 복속된 나머지 부족들은 무력으로 제압된데다 인신공양에 막대한 공물까지 착취당하는지라 아즈텍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한 상태였다.

아즈텍이 하나의 통합된 정치 체계가 되어 맞섰다면야 콩키스타도르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즈텍에게 틈만 나면 공격당해서 잡아먹히거나 잉카에게 강제로 복속당한 부족들은 노예 취급 당하며 그들의 압제에 시달려서[14] 증오하고 있었기에 함께 힘을 합쳐 맞설 리가 없었다. 게다가 아즈텍과 잉카 내부도 황위 다툼으로 자신들끼리 내전을 벌이다보니 단합이 더욱 되지 않았다. 콩키스타도르들이 원주민들을 있는 대로 학살하고 약탈하고 다녔다면야 남미 원주민들이 모두 뭉쳤겠지만 아즈텍과 잉카에게는 불행하게도 콩키스타도르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자신들이 살아남을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지역 간의 갈등 관계를 훌륭하게 이용할 줄 알았기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즈텍에 반기를 든 원주민들은, 콩키스타도르가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이 어떤 무서운 도구들을 보유하고 있었는지는, 비록 그 자신들은 사용방법은 모르지만 그들이 그 무기를 사용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으며 그 무서움을 믿고 콩키스타도르에게 협력했다.

물론 그렇다고 콩키스타도르들도 항상 신사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서 경우에 따라 협박을 쓰기도 했다. 특히 원주민 마을을 침략해서 여성과 아이들을 전부 인질로 잡고는 원주민 남성들에게 '우리 말 안 듣거나 길 안내 안 해주면 얘네들 다 죽일 거야'라고 협박하는 방식을 많이 썼다. 물론 원주민들은 가만 있지 않아 거짓말로 속여서 엉뚱한 곳을 소개해 그들을 지치게 하거나 돈낭비를 하도록 만들었다. 정말 몰라서 헤맨 경우도 있었지만.[15] 더 심하게는 매복하여 콩키스타도르들에게 큰 피해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콩키스타도르들은 바보가 아니라서 눈치를 많이 챘고 속일 때마다 본보기로 속인 원주민들을 공개처형하거나 군견밥으로 던져주어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매복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면 나중엔 군대를 조직하여 해당 마을을 철저하게 아작냈다.[16]

2.5. 세균병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천연두일 것이다.[17]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지 천연두는 남미에서 구대륙흑사병을 방불케하는 수준의 재앙을 불러왔다. 조금 과장된 면이 있지만 스페인 사제 라스 카사스에 의하면 히스파니올라 섬의 인구 중 3백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오늘날 연구자들은 이 수치를 과장되었다고 말하지만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다.

그에 비해 유럽인들은 애초에 온 인원들이 비위생적인 환경과 전염병에서 구르디 구른[18] 사람들이라 전염병에 대한 면역력이 강력했다. 애초에 이들은 그 유명한 흑사병 사태를 겪어내고 살아남은 인종들이다. 물론 이들도 병에 걸리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구대륙인들은 수만년간 반복된 전염병 대유행과 떼죽음으로 인한 빠른 세대교체로 전염병 대응에 특화된 진화를 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유전적으로 타고난 면역력이 아메리카 원주민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원주민들은 반대로 구대륙 주민들은 감염되었어도 증상도 일으키지 않는 각종 병원체에도 극심한 증상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거기다 신대륙은 전염병이 적은 편이었는데, 전염병을 크게 일으킬 만한 가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19]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도 문제지만 그로 인한 사회혼란은 안 그래도 흔들리고 있던 남미를 더욱 나락으로 몰았다.[20]

하지만 Marco Ferro의 식민주의 흑서에서 지적하듯 이 모든 것을 면역력의 차이로만 설명할 순 없다. 중노동과 난데없는 침략자라는 스트레스에 시달린 원주민들이니 면역력이 처음엔 비슷했더라도 확 떨어졌을 것이다. 착취와 전쟁은 엄청난 사망률을 불러 온다. 게다가 정복자들은 원주민 노동력을 관리하게 쉽게 마을에 모으려 들기까지 했으니 면역력은 둘째치고 전염병을 피해 도망가기도 어렵게 한 조치였다. 당장 임진왜란 시기 조선만 생각해 봐도 일본인과 면역력 차이가 크게 날 리가 없는데도 겨우 7년 사이에 200만명 정도가 사망했고, 대부분은 기아와 질병에 따른 것이라 하지 않는가. 19세기에 정복당한 마푸체만 해도 정복 이후 인구 20%가 전염병으로 죽었다. 마푸체인은 3세기 넘게 스페인인과 접촉해서 면역력에 큰 차이가 있었을 리가 없고, 의학도 더 발달한 시대였는데도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2.6. 항해술

콩키스타도르는 선박(캐러밸)을 갖고 있었으며 배의 종류는 당시 제작되어 널리 이용되었던 갤리온[21]이다. 이 배를 이용해서 여러가지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 원주민들을 게릴라 전술로 공략하면서 배로 도주한 뒤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까지 도망치는 전술을 쓰기도 했고 조선술과 항해술이 뛰어났던 콩키스타도르들은 현지에서 직접 배를 건조해서 굴리기도 했다. 특히 아즈텍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은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섬이었는데 그걸 콩키스타도르들은 배로 주파하기도 했다. 반면 원주민들의 항해술은 콩키스타도르의 항해술에 비하면 넘사벽으로 조잡해서 기껏해야 카누를 만드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다.

3. 창작물

온라인 게임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유저 가문이 모험을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이쪽은 실제 역사처럼 원주민들을 썰고 다니는게 아니라 각종 몹들을 썰고 다닌다.

게임 문명 5에서는 테르시오와 함께 고유 유닛으로 등장, 바다 건너 대륙에서 도시를 세울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에 등장하는 종족인 쿠나리가 여러모로 콩키스타도르와 유사하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의 2와 3에서 유닛으로 등장한다. 각각 스페인의 고유유닛, 원주민 건물인 예수회와 동맹맺으면 생산이 가능한 고유유닛으로 등장.

만화 블리치에 등장하는 아란칼의 모티브는 콩키스타도르로 보인다. 스페인어 용어가 쓰이고, 만화판 22권의 부제가 정복자들이란 것부터...

대체역사물 작가인 해리 터틀도브의 초기 단편 가지 않은 길에서는 콩키스타도르 수준의 무기체계와 문명을 가진 테디 베어형 외계인들이 초광속 항행 기술과 중력 조작 기술을 익혔고[22], 이후 원시적 범선형 함선을 만들어서 열등한 행성을 정복해나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작중 묘사를 보면 다른 발전한 외계 문명들도 그런 기술이 있다는 뉘앙스. 그런데 그들이 도착한 열등한 야만인으로 가득차 보이는[23] 행성은 바로 2039년의 지구. 실제 결말도 각국에 투입된 화승총 부대가 인류의 현대 무기에 쳐발리고 우주 항해 기술과 중력 제어 기술이 인류에게 털려서 외계인들에게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이다.

Hand of Fate에서는 분명 게임 배경이 칼과 마법이 판치는 전형적인 판타지 세계인데 유독 스켈레톤 진영만 시대를 앞서간 콩키스타도르 무장과 무기를 쓰는 문명을 가지고 있다. 모리용을 쓰고 화승총을 발사하는 스켈레톤 화승총병들과 레이피어로 무장한 스켈레톤 퀸은...

페그오에서 레지스탕스의 라이더의 스킬로 나왔다.

베르너 헤어조크의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가 이들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대항해시대 시리즈가 콩키스타도르를 모티브로 만든 게임이다.

메칸더 V에서 적 세력의 명칭 콘키스타도르는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토탈 워: 워해머 2에서는 마르쿠스 불프하르트가 콩키스타도르 기믹을 장착했다. 문제는 이게 마르쿠스는 올드월드에서 활약한 인물이라 콩키스타도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

4. 이에 해당하는 사람

  • 콩키스타도라
    • 마리아 데 에스트라다
    • 세르라나 누녜스 만체노
    • 이네스 데 후아네스


  1. [1]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표기는 콘키스타도르. 그러나 스페인어도 영어처럼 n으로 끝나는 음절 뒤에 /k/ 발음이 오면 n이 /n/이 아니라 /ŋ/ 발음이 난다.
  2. [2]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이들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3. [3] 영어로는 conqueror(컨쿼러)이다.
  4. [4] 실제로 레콘키스타가 그라나다의 함락으로 끝난 게 1492년. 그리고 그 해에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나서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콩키스타도르의 시대가 도래했다.
  5. [5] 다만 틀락스칼텍 같이 스페인 콩키스타도르의 식민지 세력 확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적대 부족 세력들을 제거하는 데 동참하던 아메리카 원주민 집단들도 있었다.
  6. [6]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를 해방한 시몬 볼리바르와 호세 파에스, 칠레를 해방한 베르나르도 오이긴스, 아르헨티나를 해방한 호세 데 산 마르틴과 마누엘 벨그라노 등 남미의 식민지 독립운동 지도자들마저도 남미 원주민을 극심하게 차별하거나 적대시했었다. 물론 이들이 백인 출신들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7. [7] 원주민들은 구대륙의 전염병에 면역이 없었고 이 때문에 많이 죽어나갔다.
  8. [8] 코르테스 원정대의 기록을 담당하던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Bernal Díaz del Castillo)'의 기록 중 '뛰어난 기수인 페드로 데 모론은 다른 기병 3명과 함께 인디언의 대열로 돌진하다가 기병창을 적에게 붙잡혔고 그가 창을 빼내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인디언이 그들이 사용하는 날이 넓은 칼로 페드로에게 중상을 입혔으며, 기수가 타고 있던 암말을 내리 베어서 몸에서 머리가 잘려나가 가죽만 붙어 매달린 상태에서 말은 곧 쓰러져 죽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사실 이건 아즈텍이 아닌 틀락스칼텍과의 전투에서 있었던 일이다. 흑요석 무기 문서 참고.
  9. [9] 마푸체19세기칠레아르헨티나에 정복당했다.
  10. [10]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네이티브 아메리칸 박물관도 철제 무기가 정복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하면서 당시 무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11. [11] 은 지각 질량의 5%나 차지한다. 철광석이 없는 대륙은 없다.
  12. [12] 코르테스는 애인 관계였던 말린체에게도 화약 제조법을 알리지 않았다.
  13. [13] 이 당시 본국인 에스파냐의 인구 수가 700만에 불과했으며, 특히 원정군은 수백 명, 많아봐야 1~2천 명이었다. 반면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숫자는 수천만이나 되었으며, 전투 시 최소 수천 명, 많으면 20만으로 숫적으로 최소 수십대 1이었다.
  14. [14] 인신공양이나 전쟁 안할 때는 막대한 양의 공물을 바치게 하는 착취를 했다.
  15. [15] 일례로 코르테스가 크리스토발 데 올리드(Cristobal de Olid)가 멕시코 남부 온두라스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토벌하기 위해 3천의 원정대를 조직했으나, 원주민 안내자들이 길을 모르는 바람에 코르테스의 원정대는 6개월 동안 밀림지역을 헤메고 말라리아와 풍토병을 앓아야 하는 생고생을 했다. 그러다 겨우 길을 찾아 도착했을 때 반란을 일으킨 올리드는 이미 살해당해 있었고 반란군도 항복하는 바람에, 코르테스는 결국 엄청난 재산만 탕진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혈진압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16. [16] 일례로 에르난도 데 소토(Hernando de Soto)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아타하치 부족에게 속아서 그들의 매복으로 피해를 입자 나중엔 군대를 이끌고 와서 아타하치 부족민 11,000명을 전부 학살하고 그들의 거주지 모빌라를 콩가루로 만들어버려 아타하치 부족 자체를 멸망시켜 버렸다.
  17. [17] 원주민을 노예로 부리자면 어느 정도는 필요했는데 거의 절멸당하다시피 해서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노예로 사서 강제로 데려가야만 했다.
  18. [18] 당시 사회 전반이 딱히 위생적이지는 않았지만 특히 선원이나 용병은 소모품이나 다름없어서 더욱 비위생적으로 살았다.
  19. [19] 천연두도 그렇고 스페인 독감도 그렇고 가축쪽에서 오는 전염병이 많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보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주로 비위생적이기로 악명이 높은 생쥐가 전염병의 최고 매개체였는데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는 생쥐가 없었다.
  20. [20] 한편으로는 아즈텍, 잉카 권력 교체기와 맞물렸다는 말도 있다.
  21. [21] 그런데 사진은 캐러벨(맨 앞, 맨 뒤)과 카락(중간)이다. 산타마리아, 니나, 핀타인 듯.
  22. [22] 연구원들에 의하면 이 기술은 인류사 동안 누구든지 알아낼 수 있었을 정도로 간단한 기술이라고 한다.
  23. [23] 중력 조작 기술이 없어서. 하지만...
  24. [24]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이복형제.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에 잠깐 등장한다.
  25. [25] 영화 <인디아나 존스 4: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이 이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다.
  26. [26]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4: 낯선 조류>가 이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다.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144.70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