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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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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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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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

쿠웨이트국
دولة الكويت
State of Kuwait

국기

국장

면적

17,820km²

인구

4,169,687명[1](2018년 통계)

수도

쿠웨이트(Kuwait City, مدينة الكويت)

공용어

아랍어

종교

이슬람

정치체제

반입헌군주제(사실상 전제군주제[2])

국왕(에미르)

사바 알 아흐마드 알 자비르 알 사바

임기

2006년 1월 29일 ~

총리

자비르 알 무바라크 알 하마드 알 사바

1인당 GDP

명목 26,146$(2016), PPP 71,264$(2016)

통화

쿠웨이트 디나르

시간대

UTC +3

인터넷 도메인

.kw

1. 소개
2. 기후
3. 정치
5. 역사
5.1. 고대 ~ 쿠웨이트의 성립까지
5.2. 쿠웨이트의 독립 ~ 현대
6. 국제관계
6.1. 이라크와의 관계
6.2. 영국과의 관계
6.3. 대한민국과의 관계
6.4. 이스라엘과의 관계
6.5. 필리핀과의 관계
7. 스포츠
8. 어학연수
9. 기타

1. 소개

중동에 위치한 아랍의 소국. 정식국명은 '쿠웨이트국(دولة الكويت, Dawlat al-Kuwayt)'이다. 영어 발음인 쿠웨이트(Kuwait)로 알려져 있지만 아랍어로는 الكويت(알-쿠와이트)인데, 이는 근처에 세워진 요새라는 의미다. 수도는 쿠웨이트(Kuwait City, مدينة الكويت)로 싱가포르, 과테말라 등 몇몇 나라와 더불어 수도와 국명이 일치하는 나라 중 하나다. 국토면적은 18,000㎢, 인구는 약 290만 명이다. 사실상 에미르가 통치하는 전제군주제이지만 일단 입헌군주제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다.[3] 공용어는 아랍어이지만, 영어도 널리 쓰이고 있다.

작은 크기와 달리 세계적 석유 부국이며, 걸프전과 월드컵 축구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라크 전쟁 이후로 막대한 군비를 여기서도 부담하면서 수백억 달러를 날렸다고 한다. 하지만 수백억 달러를 부담해도 경제적으로 아무런 타격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부자 나라다. 인구 백만의 나라에 외국인 노동자가 삼백만에 이르고, 대부분의 성인 남성은 별로 하는 일 없이 월급만 많이 받는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4] 물론 모든 교육도 공짜이며 그러면서도 교육에 대한 투자도는 상당한 편이다. 다만 공교육의 수준이 영 좋지 않다고 평가하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에 사교육에 의존하는 비율도 상당한 편이고[5], 아예 사립학교에 입학하는 경우도 상당한 편이다. 돈은 많이 들기는 하지만.

20세기 초 영국이 이 땅을 점유하면서 운명이 엇갈리게 되었다. 영국이 강제로 침탈한 땅이 아니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보호해달라며 부족들이 자진하여 영국 휘하에 든 것이다. 1961년에 독립하였으며, 막대한 오일 머니로 엄청난 국부를 획득하였다.

옆나라인 이라크, 바다 건너 있지만 꽤 가까운 이란 등 주변국들이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어 그 여파로 은근히 언론 보도에서는 묻혀버린 나라. 과거 한국 공군 소속 제58항공수송단 일명 '다이만' 부대가 이 국가에 자리한 미국, 영국 그리고 쿠웨이트가 합동으로 사용하던 알리 알 살렘 공군기지에 배치되어 있었으나 이미 철군한 상태.

2. 기후

중동 국가답게 굉장히 덥다. 더위는 보통 3월 무렵부터 시작되는데 8월이 가장 절정이며 이 시기 한낮 최고기온은 무려 45~48도로 치솟는다. 특히 4~5월부터는 라마단 기간이라 음식은 물론 물 한잔도 마시지 못해 사람들의 불쾌지수도 굉장히 높다. 사우디아라비아보다 훨씬 개방적이긴 하나 쿠웨이트 역시 이슬람 국가이며 라마단 때 공공장소에서 취식, 흡연을 하면 바로 경찰 단속에 걸린다. 공권력이 상당히 강한 나라에서 경찰들 역시 라마단 때는 꽤나 민감하기에 현지 문화를 무시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말자.[6]

그러나 이렇게 더운 나라가 겨울인 12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는 도리어 한국의 늦가을 날씨로 돌변한다. 기온이 뚝 떨어지며 밤에는 꽤 쌀쌀한 편. 강우량은 적지만 비도 자주 오는 편이며 때때로 낙뢰가 내리치기도 한다. 비가 내릴 땐 보통 사막에서 부는 모래 폭풍도 함께 동반하는데 말 그대로 흙비가 내린다. 한번 비가 오고 나면 야외 벤치나 화단이 흙탕물로 범벅이 되며, 입고 있던 옷도 비를 맞으면 엉망진창이 된다. 몇 방울 내리지도 않는다고 밖에서 비맞고 걷다간 큰일나니 주의할 것.

따라서 쿠웨이트에 장기간 체류하기 위해선 여름의 햇빛을 견디기 위한 면티, 팔토시, 썬크림[7]을 필수적으로 챙겨야 하며 겨울을 나기 위한 가을 점퍼, 트레이닝 복, 우산 등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3. 정치

헌법이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나 국왕이 의회 해산권을 가지는 등 실질적으로 전제군주제 국가이다. 물론 쿠웨이트에서도 야당이 선거에서 선전해서 개혁적인 입법안을 내놓거나 할 정도는 되기 때문에 사우디 같은 국가들보다는 크게 나은 수준이기는 하거나 하지만 야당인사가 국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거나 국왕에 의해서 게리맨더링이 시행되는 등 여러모로 제약받는 경우가 많은데다가, 여성참정권 또한 21세기에 와서야 도입되는 등 민주주의 수준은 전반적으로 높지않다고 평가된다.

세속주의를 추구하여 중동에서는 바레인처럼 상당히 개방적이다. 특히 왕실에서 세속주의를 추구하여 광신을 금지하다보니 여성에게 이슬람 복식인 히잡과 니캅을 강요하지 않으며 강요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론 여성에게 여전히 이슬람 복식을 강요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특히 보수적인 색채가 짙은 국공립 학교에선 선생이나 교수가 대놓고 여학생들의 복장 지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일단 왕실은 세속주의를 고수하고 있고 법적으로도 여성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기에, 공주들을 비롯해 매스컴에 나오는 여성 인사들은 서구적인 복장을 하고 나오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 심지어 외출을 나온 외국인 남성이 길에서 만난 쿠웨이트 여성과 몇 마디 대화라도 나눈다면, 바로 경찰(!)이 달려와 제재를 가하기도 한다. 경찰 딴에는 자국 여성을 보호한다는 것이겠지만 여성이 정말 대화를 원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걸 보면 그냥 여성의 자유 의사를 억압하는 거라고 보는 게 맞다.[8]

여성 인권이 거의 없는 사우디아라비아 보다야 훨씬 개방적이며 여성의 사회 진출도 활발하지만, 그건 중동의 기준에서 그런 것이며 우리를 비롯한 서구적인 관점에서 볼 땐 이 나라도 여성 인권이 마냥 좋은 나라라고 할 수는 없는 셈.

쿠웨이트 역시 이슬람 근본주의에서 자유롭지가 않다. 특히 쿠웨이트에서 이슬람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금지되어 있고 신성모독죄로 처벌한다. 개종과 배교 역시 금지되어 있다. 2003년에 이슬람을 비판한 쿠웨이트인 야세르 알 하베브는 3개월의 징역을 살아야했고 영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특히 영국으로 망명해서 이슬람을 비판했을 때 쿠웨이트에서 궐석 재판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그의 발언을 규탄하는 시위까지 일어났을 정도였다. # 2012년에는 쿠웨이트 의회에서 교회 건축을 금지하고 이슬람 비판에 대한 신성모독죄를 사형에 처하는 법률까지 통과되었으나 다행히 국왕이 거부하면서 무산되었다. #

쿠웨이트는 70년대 ~ 80년대까지 중동의 출판 중심지였지만, 걸프전이후 보수화되면서 2004년부터는 금서목록이 늘어나고 검열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다 금서에는 조지 오웰의 '1984', 인어공주까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현지의 작가들과 활동가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인어공주, 다비드상의 사진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검열대상목록에 올라가자 쿠웨이트의 독자들도 반발했다.#

4. 경제

  자세한 내용은 쿠웨이트/경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역사

서아시아의 역사

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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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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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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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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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고대 ~ 쿠웨이트의 성립까지

쿠웨이트는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꼽히는 수메르부터 시작해서 고대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신 바빌로니아를 거쳐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였다.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 이후 셀레우코스 제국, 파르티아, 사산 왕조를 거쳐 이슬람 제국시대인 우마이야 왕조압바스 왕조를 맞이한다. 따라서 현대의 국가들 중 쿠웨이트 지역을 지배했던 가장 오래된 국가를 굳이 꼽자면 페르시아 제국의 후손인 이란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는 엄청나게 많은 나라들을 거쳤다고 여겨지지만 별 의미가 없는게, 쿠웨이트는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곳이라 정주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쿠웨이트는 전국토가 거의 사막이나 다름없어 농사를 짓는게 거의 불가능해 정주민이 거의 없었다. 의외로 비슷한 사막지대라 생각하기 쉬운 이라크 같은 경우는 경작 가능 면적이 800만 헥타르가 넘으며[9], 지금도 500만 헥타르에서 농사가 지어지고 있어 충분한 인구를 지탱해온 것과 비교된다. 다만 쿠웨이트에서도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긴 한지라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던 곳은 아니었던듯 하다.

아무튼 쿠웨이트가 과거에 바그다드의 압바스 왕조의 지배를 받은 건 맞긴 하지만, 8세기에서 13세기까지에 불과하고 이후 몽골,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된다. 하지만 당시 역사가 명확하지 않은 점을 볼 때 정식으로 이라크의 영토라고 할 수는 없고, 느슨한 종속관계 정도였던 듯하다. 어차피 이 당시 쿠웨이트에 살던 사람들은 제대로 된 정착민이 아니라 사막의 유목민들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쿠웨이트 민족은 17세기 이후에 이주해온 아니자족(عنزة, `Anizzah)[10] 이 중심으로 사실상 주인없는 땅에 정착한 것과 같다(당시 이 지방의 지배자였던 오스만 제국이 이들의 정착을 인정했다). 원래 이들은 고대 로마 제국 시절부터 향신료 등을 거래하며 동서교역에 종사하는걸로 먹고살았는데, 아시다시피 17세기에 이르면 대항해시대가 열려 아시아-유럽간에 직거래가 이루어지게 되자 중간상인이었던 이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유목만으로 먹고살자니 아라비아 반도가 몽골같은 초원지대도 아니었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착하려하니 이미 좋은 땅은 다른 민족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고, 이들에게 남은건 쓸모없는 사막지대 뿐이었다. 다만 쿠웨이트 지역은 물고기는 좀 잡혔는지라 여기에 정착했고 그래서 초기 정착된 쿠웨이트 마을은 가난한 어촌이었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중반 영국 동인도 회사가 인도를 사실상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중동-인도간에 교역량이 크게 늘었는데 이 때 쿠웨이트인들도 원래 장기를 살려 교역에 적극 나섰고 그래서 18세기 쿠웨이트는 중동의 교역 중심지로 변화하였다.[11]

지금의 정착된 쿠웨이트 지방은 이 아니자족이 발전시킨 것으로 그 전까지는 떠돌이 유목민들이 돌아다니던 지역에 불과했다. 때문에 이라크와는 민족구성이 완전히 다르다. 이후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애당초 쿠웨이트인은 이라크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 어차피 이라크도 이 때는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였으니까. 그래서 쿠웨이트인은 이라크인과는 전혀 민족적, 문화적 동질감을 갖지 않는다. 현재 쿠웨이트의 사바흐 왕조(آل صباح)는 이 아니자족의 지도자 가문 출신이다. 1752년 쿠웨이트시의 지도자 였던 사바흐 1세가 바스라를 다스리던 오스만 제국의 총독에게 찾아가 오스만 제국 술탄에 충성을 바치는 대가로 정당한 지배자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현재 쿠웨이트 정부에서는 이 때부터 독립국이었다고 주장하나 물론 오스만 제국에서는(그리고 현대 학자들도) 자치령 중 하나로 보았다.

5.2. 쿠웨이트의 독립 ~ 현대

이렇게 쿠웨이트는 오스만 제국의 자치령이 되었는데 19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이 행정구역을 현대적으로 정비하면서 행정구획을 에얄레트(Eyalet)에서 빌라예트(Vilayet)로 바꾸면서 쿠웨이트도 바스라 빌라예트에 속하게 된다. 빌라예트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오스만 제국 문서 참고. 다만, 이것도 행정구획 상으로만 설정된 것뿐 실제로는 여전히 자치령으로 오스만 제국의 관리는 쿠웨이트에 한 명도 없었다.

(쿠웨이트의 대왕 무바라크 알 사바흐)

그런데 비록 속령이었지만 자기네들끼리 살아온 쿠웨이트인들이 바스라령에 속하게 되니 당연히 불만이 없을리 없었는데, 이 때 등장한 것이 오늘날 쿠웨이트 사람들로부터 대왕이자 국부로 불리는 무바라크 알 사바흐(الشيخ مبارك بن صباح الصباح)였다. 무바라크는 쿠웨이트의 지배가문인 사바흐 가문 출신으로 통치자가 되기 전에는 오스만 제국의 기병장교로 공도 세워 작위도 받고 훈장도 받았다. 그러다가 1896년 계승 과정에서 이복형을 죽이고 쿠웨이트의 통치자가 된다.

무바라크는 1899년 이란에 주재하던 영국 대령에게 찾아가 영국의 보호령이 될 테니 독립을 보장해 달라고 했다.[12] 구체적으로는 영국 정부의 승인 없이 외국의 대표자를 받아들이거나 영토를 매도하지 않겠다고 했다. 영국은 원래 쿠웨이트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13] 제 발로 보호령이 되겠다는데,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는지라 콜.

이 협정은 원래 비밀 협정이었으나 쿠웨이트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높아지자 오스만 제국에서도 이 사실을 알아차렸고 괘씸해 했지만, 20세기 초의 오스만 제국에는 골치아픈 문제거리가 한 두가지가 아니라 그깟 변방 속령 따위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1913년 오스만 제국 - 영국 - 무바라크 3자간에 회담이 이루어졌는데 무바라크를 오스만 제국의 총독(kaymakam)으로 인정하고 쿠웨이트를 명목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보나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지역으로 인정해주고 1899년 협정도 인정해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협정으로 오스만 제국과 쿠웨이트의 영역이 획정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이라크-쿠웨이트간의 국경이 된다.

1914년 오스만 제국독일의 동맹국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영국은 아랍인들에게 "오스만 제국과 싸워라! 그럼 독립시켜줄께."하고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아랍인들의 반란을 유도했다. 무바라크도 여기에 적극 참여해 먼저 쿠웨이트의 국기부터 갈아치우고는[14]바스라 속주를 점령하고 오스만 제국을 쫓아냈다. 이 공로로 영국으로부터 '영국 보호하의 독립국'(Independent government under British protection)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게 중요한건 쿠웨이트는 영국의 우호국 대접을 받아서 영국 보호령이면서도 간섭을 거의 받지 않고 오히려 무기등을 지원 받는다. 영국이 전쟁때 이라크의 독립을 약속했으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질질끌다가 1932년 독립시켜주고 나서도, 이것저것 간섭하다 이라크인들의 반감이 높아져서 2차 세계대전 때 이라크가 추축국으로 참전한 것과 비교된다.

이후 1961년 영국이 쿠웨이트를 완전히 독립시켜 주면서 현대의 쿠웨이트가 탄생한다. 다음해, 쿠웨이트의 독립은 아랍연맹과 UN의 인정을 받아 국제법적으로도 합법적으로 독립했다. 한편 쿠웨이트가 독립하자 이라크에서는 쿠웨이트가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며 군대를 보내려 했다. 이에 쿠웨이트는 영국에 도움을 요청해 영국이 항공모함까지 보내자 결국 이라크도 물러났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 이라크는 쿠웨이트가 자기네 영토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걸프 전쟁이 발생하게 된다.

1990년에 이라크이란-이라크 전쟁의 실패로 막대한 국가 부채가 쌓여 있었다. 사담 후세인은 풍부한 석유자원을 갖춘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병합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걸프 전쟁을 일으킨다. 소국인 쿠웨이트는 그 간의 전쟁으로 실전경험이 풍부하게 쌓인 이라크 군에 순식간에 점령되어 이라크에 강점되어 "쿠웨이트 주"로 편입되었으며, 당시 국왕이었던 자베르 3세와 쿠웨이트 왕가는 사우디로 도피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미국이 주도한 UN 다국적 군대에 의해 해방되었다. 이후 미국의 對이라크 전진기지로 사랑받았다.

2007년에는 주중, 주말 제도를 변경해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를 주중으로, 토요일을 주말로 하는 체제를 정착시켰다.

2014년 이후 석유값 폭락으로 복지축소를 강행하려 하자 반발이 생기는 통에 2016년 11월 26일에 총선에서 무슬림형제단살라피스트계열의 야권이 승리하면서 과반에 가까운 24석을 차지했지만, 여성후보는 1명만 당선되었다. # #

6. 국제관계

6.1. 이라크와의 관계

쿠웨이트의 독립이 영국의 식민통치로 인한 분쟁이라는 것은 쿠웨이트인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다. 왜냐하면 위에서 보다시피 쿠웨이트인 스스로가 이라크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라크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쿠웨이트인은 이라크 내의 소수민족이 되기 때문에 민족분쟁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15] 이 같은 사실은 이웃 중동국가들도 잘 알고 있었고 때문에 식민지배에 우호적인 시각을 지니지 않은 아랍연맹조차 쿠웨이트의 독립을 공인해 주었다.

때문에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영토라는 주장은 국제법이고 민족적, 역사적 동질성이고 상관없이 800년 전에 우리땅이었으니, 무조건 내놓으라는 말과 같다. 이런 논리라면 몽골터키도 쿠웨이트를 자기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다. 이들도 이 땅을 지배한 적이 있으니까.

이라크란 나라는 현대에 탄생한 국가로 고유영토란 게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라크 민족이 역사없는 민족이란 것은 아니라 수 많은 고대 제국들의 일원이었고, 이슬람 도래 이후에는 이슬람 제국의 일원으로 그 중엔 압바스 왕조처럼 이라크 민족이 주도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한민족 영역, 일본 열도는 일본인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이라크라는 나라의 고유영토는 없었다. 이라크는 1932년 영국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시켜 주면서 오스만 제국의 모술령, 바그다드령, 바스라령을 하나로 묶어서 만들어진 국가다. 이라크가 쿠웨이트의 영토로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쿠웨이트가 19세기 바스라 빌라예트에 속했다는 것인데, 이는 그저 오스만 제국이 편의상 나눠둔 행정구역중 하나일뿐, 그것도 1800년대 중반이후 부터이지 이라크 민족의 고유영토가 아니다. 게다가 영국은 제맘대로 쿠웨이트의 국경선을 책정해 독립시켜준게 아니라 오스만과의 회담을 통해 결정된 구획선을 기준으로 국경선을 삼았다. 이라크는 오스만 제국이 설정해준 행정구역에 쿠웨이트가 있었다는걸 이유로 이라크땅이라고 주장했는데, 오스만 제국이 합의해준 쿠웨이트의 국경선은 잘못이라는 것은 이중잣대에 가깝다.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 대전에 패함에 따라 1920년 연합국과 오스만 제국 간에는 '세브르 조약'이 체결된다. 이 조약에 의해서 오스만 제국은 연합국의 위임통치를 받게 되었으며, 아랍 지역의 영토 대부분을 상실하였고 아랍은 영국과 프랑스의 통치하에 놓여진다. 이 때 레바논과 시리아는 프랑스가, 이라크와 쿠웨이트, 팔레스타인 등의 지역은 영국이 통치하게 되었고 영국이 통치한 이라크 지역을 '영국 위임통치령 메소포타미아(The British Mandate of Mesopotamia)'라 불렀다. 참고로 이 조약에 반발해 무스타파 케말이 이끄는 터키군이 터키 독립 전쟁을 벌여 그리스를 물리쳤고, 연합국에 세브르 조약의 개정을 요구해 1923년 새로 '로잔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이 조약에서 터키의 독립성을 인정받고, 현재 터키의 영토를 확립하게 되었지만 오스만 제국의 아랍 지역 상실에 관한 조약은 개정되지 않았으므로 세브르 조약과 변함없다.

즉, 1920년 시점에 이미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에서 벗어났다.[16]쿠웨이트는 원래도 영국에 우호적이었는데다가 1914년부터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웠으므로 영국에서 쿠웨이트 정부의 독립성을 인정해 주었다. 여기에 이라크는 1932년 영국령에서 독립했으므로 이라크가 오스만 제국을 바로 승계했다고 볼 수도 없고, 쿠웨이트는 오스만 제국의 조차지(Leased Territories)[17]가 아니었으므로 이라크는 바스라 빌라예트를 승계했다는 것을 이유로 쿠웨이트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때문에 어떤 국제법 학자도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조차지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당연히 쿠웨이트 사람에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 때문에 쿠웨이트인의 이라크에 대한 국민 감정은 대단히 좋지 못하며 침략자로 보고 있다. 오죽 걸프전 당시 이라크에게 당한게 심했으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시리아, 이집트, 모로코, 요르단, 사우디, 튀니지 등 다른 아랍국가들이 미국,영국의 이라크 전쟁을 비난할때 쿠웨이트만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을 정도다.

미국을 지지하는 친미 아랍어 방송인 알 후드가 미국과 합작으로 세워진 곳도 바로 쿠웨이트였다. 알 자지라와 맞서기위하여 만들어졌지만 뭐 아랍권에선 알 자지라는커녕 아랍 각 방송국 상대도 되지못하고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 결국 문 닫았다. 쿠웨이트에서조차 철저하게 외면당했으니 말 다했다.

그뿐만 아니라 걸프전으로 인한 배상금을 더 내놓으라고 이라크를 압박하는 한편, 2013년에도 쿠웨이트 국경에서 이라크와 총격전이 벌어지는 등 거의 원수로 보는 수준. 이제는 쿠웨이트인들이 이라크 민족을 거지라고 멸시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런 것과 다르게 사담 후세인이 몰락하면서 적어도 외교적으로 예전과 달리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이미 2004년에 이라크와 수교했으며 침공 당시 사죄 및 피해 보상금도 두둑히 받았다. 2014년 1월까지 450억 달러가 넘는 피해 보상금을 이라크에서 내줬으며 총보상금은 525억 달러로 매해 석유를 팔면서 그 수익을 이자와 같이 이라크에서 내주고 있다. 사실 쿠웨이트와 이라크가 사이가 나빠진 계기인 걸프 전쟁은 사담 후세인의 명백한 잘못이고, 현 이라크 정권은 아무튼 후세인 정권을 부정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후세인 정권 시절의 앙금은 털어버리고 쿠웨이트와 관계 개선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솔직히 이라크인들도 걸프 전쟁에 대하여 잘했다느니 잘났다는 반응은 그리 없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 기자가 이라크인들을 만나 취재할때, 오죽하면 같은 이슬람 나라, 그것도 약자를 먼저 쳐들어가 뭉갰으니 개망신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6.2. 영국과의 관계

대단히 좋다. 쿠웨이트가 영국의 보호국사실상 식민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믿기지 않을 만큼 좋다.[18]

쿠웨이트 신문인 쿠웨이트 타임즈는 2012년 이후 영국과의 관계가 더욱더 좋아졌다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 # 이 기사에서는 1899년 이후 영국은 여러 방면에서 쿠웨이트를 도와주었고 특히 이라크의 위협에서 보호해준 점을 강조하는등 매우 우호적으로 기재하고 있다. 아랍 타임즈에서도 영국과 쿠웨이트는 정치적 친구, 가치있는 동맹, 믿을맏한 파트너이자 뿌리깊은 사이라고 기사를 낸 바 있다. #

이같은 이유는 우선 영국이 쿠웨이트를 점령해 식민지로 삼은게 아니라 오스만 제국이 약화되자 쿠웨이트가 스스로 영국에 보호를 요청했다는 점. 영국은 쿠웨이트를 독립시켜주었다는 점. 1960년대이후 이라크의 위협으로부터 쿠웨이트를 보호해 주었다는 점. 걸프전 당시 다국적군에 참여해 쿠웨이트를 해방시켰다는 점등이 이유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영국은 쿠웨이트의 보호령 시절에도 내정간섭을 거의 안하고 오히려 무기만 지원해줬다. 물론 영국이 다른 아랍국가들에게도 이랬던 건 아니다.

물론 영국이 천사들이라 쿠웨이트를 도와준 건 당연히 아니고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의 속셈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쿠웨이트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독립된 국가를 안겨주었으며, 타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주고, 국가를 해방시켜주었기 때문에 쿠웨이트 인으로서는 영국에 대해 호감을 갖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이래서 석유가 있어야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국도 쿠웨이트를 엄청 우호적으로 보고 있다. #

6.3. 대한민국과의 관계

1979년 6월에 국교를 수립하였다. 걸프전 당시 다국적군에도 한국군이 참전했었고, 한국의 막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당시 건설 노동자들이 주로 파견되던 국가이기도 하다. 당시 쿠웨이트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카타르, 아랍 에미리트, 이라크, 오만 등 대다수의 중동 산유국들이 소득수준에 비해 사회 간접자본이 부족한 편이었고 이 때문에 외국의 건설사들을 불러 건물을 많이 지었는데 이 때 한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파견되어 일을 했다.

북한과는 2001년에 수교하였다. 한 때 고려항공의 항공기가 쿠웨이트의 쿠웨이트 국제공항에 취항하기도 했지만 고강도 대북제재 이후에는 취항하지 않는다.

6.4. 이스라엘과의 관계

말이 필요 없다. 2015년 11월 1일 쿠웨이트시티에서 개막, 12일까지 열리는 아시아사격선수권에 국제사격연맹(ISSF) 기술 감독관인 야이르 다비도비치가 이스라엘 국적이라는 이유로 쿠웨이트 당국에 의해 입국이 거부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결국 이 대회 우승 및 상위 3위권에게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참가권을 부여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올림픽 출전 선수의 기본 조건인 최소기준점수(MQS)도 주어지지 않는다. 덕분에 대회 참가하려던 아시아 여러 나라 선수들이 참가를 포기하는 일까지 벌어졌고 대회를 앞두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하여 IOC에 쏟아지는 비난도 거세져서 부랴부랴 다른 국제 사격대회 참가비용을 부담하겠다고 IOC도 진화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여하튼 이 논란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쿠웨이트의 부정적인 인식을 알 수 있다.

6.5. 필리핀과의 관계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쿠웨이트에도 가정부로 일하러 온 필리핀인들이 많지만, 최근(2018년)에 쿠웨이트에서 일어난 필리핀 가정부가 살해당한 뒤 시신이 유기된 사건이 일어나자 필리핀과 갈등이 생겨났다.# 그리고 쿠웨이트측과 필리핀측은 가사도우미문제로 인해 외교적인 갈등이 생겼지만, 이후 가사도우미의 인권을 보호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2018년 7월 23일(현지시간)에 쿠웨이트의 SNS스타가 필리핀 가사노동자들의 권익을 무시하는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받았다.#

7. 스포츠

2010년, 쿠웨이트의 올림픽 위원회가 정치적 독립성을 상실했다는 이유2010년 이후 하계 올림픽, 동계 올림픽 등 IOC에서 주최하는 모든 경기의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이로 인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 등에서도 모두 개인 자격들로만 출전했으며, 이 징계 조치가 계속된다면 당장 2012 런던 올림픽도 개인 자격으로 출전할 수밖에 없다. 기사. 그런데 문제는 아시안 게임을 주관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수도 쿠웨이트시티에 있다는 것... 다행히 런던 올림픽까지는 쿠웨이트 팀으로 출전했으나, 이후 징계가 확정되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쿠웨이트 선수들은 모두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우 올림픽 사격에서 쿠웨이트 선수가 역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사실상 쿠웨이트 첫 금메달이나,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였기에 공식 기록은 쿠웨이트의 메달로 인정되지 않는다.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축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이며, 실력도 상당했다. 국대에 대해 자세한 것은 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고. 클럽 축구로는 쿠웨이트 프리미어 리그 팀인 카디시야 SC가 AFC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여 2006년 준결승 진출, 2008년 8강 진출의 성과를 올린 바가 있으나, 2009년 AFC 챔피언스 리그의 전면 개편으로 출전 요건이 강화되면서 쿠웨이트 리그 팀은 AFC가 지정한 축구 개발도상국 회원 대상의 AFC컵에 출전하고 있다.[19] 축구 수준이 맞지 않는지 개편 이래 쿠웨이트 클럽이 전대회 결승 진출을 하는 초강세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2015년, 쿠웨이트 정부의 축구협회 개입으로 오랫동안 쿠웨이트의 국제 대회 참가는 FIFA로부터 모두 박탈된 상태로, 2019년 AFC 아시안컵도 실격 탈락한 상태이다.

핸드볼에 관심이 있긴 한데, 아시아 핸드볼 연맹회장인 자국 왕자 덕에 아시아 최강 대한민국을 아주 비열하게 이기곤 한다. 뭐 세계 대회 나가면 그 힘도 못 미치는 지라, 강호들에게 줄줄이 동네북이 되면서 대한민국 핸드볼과 하늘과 땅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은 많아서인지 사막성 기후임에도 빙판 경기장 시설을 만들기도 한 탓에 동계 아시안 게임 아이스하키에도 나온 바 있다. 물론 약체라서 1999 강원 동계 아시안 게임에선 대한민국에게 2-14로 완패했다.

8. 어학연수

쿠웨이트에서 아랍어 연수를 할 수 있는 장학생 선발제도가 있다. 쿠웨이트 교육부의 허가 절차가 꽤나 까다로롭기 때문에 외국 유학생들의 어학 연수는 드문 편인데 쿠웨이트 정부가 직접 초청하는 정부초청장학생의 경우 이러한 복잡한 절차들이 많이 줄어드는 편. 이 장학생에 선발되면 여러 혜택들이 제공되는데 대학 기숙사에서 숙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왕복 항공비와 소정의 장학금까지 지급한다(!)[20]

2018년 기준으로 한국 학생들의 티오는 10명이며 [21] 시기상 5~6월 중 국립국제교육원이 선발 공지를 한다. 해외 아랍어 연수 시간이나 대학에서의 아랍어 전공 학점을 기준으로 하기에 보통은 아랍어 전공생들이 많이간다. 아랍어 연수 및 학점이수 증명서 외에도 많은 서류들이 필요하다. 대학교 재학 및 성적증명서, 고등학교 성적증명서, 교수 추천서[22], 자기소개서, 수학계획서 등등 다양하다. 물론 영문본이어야 한다.[23]

일단 선발되면 국립국제교육원에서 안내를 하는데 우선 쿠웨이트 방문 비자 발급을 위한 범죄경력조회회보서, 신체검사서 영문본을 준비해야한다. 범죄경력조회회보서는 경찰서에서 그냥 떼올 수 있고 신체검사도 지정병원은 없기 때문에 그냥 종합병원에서 비자발급 목적으로 검사를 받으면 된다. 이 서류들을 서울 종로에 있는 외교부 영사과에서 영사 확인까지 받아야 대사관에 비자 신청을 할 수 있다. 국립국제교육원에서 받은 NOC[24]와 기타 서류들을 챙겨가면 된다. 2018년 현재 비자신청은 오전에만 받으므로[25] 업무시간 전에 미리 대사관 앞에서 기다리는 게 좋다. 늦게가면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내 순번이 오기도 전에 오전업무가 끝날 수도 있기 때문.[26]

8~9월 중 쿠웨이트로 출국해 이듬해 7월까지 약 1년 동안 쿠웨이트 정부에서 지급하는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다. 쿠웨이트 대학교 산하 어학원에서 공부하는데, 기숙사에서 숙식을 제공하며 생활비로 매달 100디나르[27]를 지급하고 항공비[28]까지 주는 만큼 아랍어를 공부하길 원하는 대학생들에게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29]

장학금이나 항공비는 오자마자 바로 받지는 못하고 후지급 형식으로 받는다. 쿠웨이트로 넘어가면 거주허가를 받기 위한 신체검사지문 등록 절차를 밟는데 현지 행정절차가 워낙 느리기에 보통 2~3개월 정도가 소요되며 현지 계좌 개설도 그 이후에나 가능하기 때문.[30] 이 절차들을 모두 밟고 거주 허가증인 Civil ID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현지 은행계좌를 개설하고 장학금을 지급 받을 수 있다.[31] 9월 달에 들어왔다면 보통 11~12월은 되어야 항공비와 장학금을 일시불로 지급받기에 그 전까지 버티기 위한 여윳돈이 필요하다.[32] 이후엔 매달 장학금을 계좌로 받을 수 있다.

또다른 단점으로 쿠웨이트 대학교 어학원의 커리큘럼이 워낙 부실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33] 아랍어를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선 돈만 있다면 차라리 요르단의 마르카즈나 튀니지의 부르기바, 이집트의 사설 어학원이 낫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일단 장학금을 받기 시작한다면 귀국 때까지 땡전 한푼 쓰지 않고 공부할 수 있다는 건 확실한 장점이다.[34]

9. 기타

원래 주말은 목요일금요일이었으나 21세기 들어 서방과의 교류를 위해 목요일을 주말에서 빼는 대신 토요일을 주말에 넣었다. 본래 주말이었던 금요일의 경우 법적으로 아예 근로가 금지되어 있어 주말에 업무를 할 필요가 있을 땐 보통 토요일에 한다.

쿠웨이트의 놀이공원에는 롯데월드에서 팔려 온 놀이기구들이 있다. 로마전차, 고공전투기, 어린이특급 3가지 놀이기구가 그 주인공.

한국 원화를 현지에서 환전할 수도 있다. 쿠웨이트 시티에 있는 전통시장인 수끄 무바라키야에선 웬만한 환전소들이 원화를 취급한다.[35] 보통은 5만원권 위주로 거래되는 편. 달러유로에 비해 수수료가 다소 비싼게 흠이지만 가지고 있는 원화를 달러나 유로로 환전해 다시 쿠웨이트 디나르로 환전해야함을 생각하면 그게 그거다.[36]

택시들의 바가지 요금이 굉장히 심하다. 쿠웨이트 택시는 보통 이집트,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출신의 외노자들이 운행하는데[37] 이들에게 한 번 바가지를 당하면 본래 요금의 1.5배에서 심하면 3배까지 독박 쓸 수가 있다. 특히 외국인이 주요 표적이다. 고액권의 지폐를 주면 잔돈이 없다면서 거스름돈을 안 주는 경우도 있고[38], 일행이 많으면 두당으로 요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차내에 미터기가 설치되어 있지만 조작이 가능해 신뢰하기 어렵다. 따라서 쿠웨이트에서 택시를 이용할 때는 타기 전에 미리 기사와 요금을 흥정하는 것이 좋다. 경우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기사가 요구하는 금액의 60~70% 수준이 적정선이다.[39]

국민들의 대다수가 자가용을 가지고 있기에 한국과 달리 대중교통이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다. 지하철은 아예 없고 버스[40] 도 배차간격이나 운행시간이 제멋대로다. 그래서 현지에선 보통 외노자들이 버스를 타며 쿠웨이트인들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소녀시대의 멤버 써니가 아기였을 때 부모님이 미국에서 쿠웨이트로 가 있었는데, 걸프 전쟁이 터지면서 황급히 대한민국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아기 때 엄청난 폭탄 소리를 들은 나머지, 그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무언가 터지는것, 특히 폭죽 소리에 심하게 놀란다. 무대에서 폭죽이 터질 때 다른 멤버들이 써니의 귀를 막아 주는 건 이 때문이다.

카타르아랍 에미리트에 비하면 아직 인프라가 많이 부실한 상태이며 마천루도 생각만큼 많은 축은 아니다. 그렇지만 산유국답게 지금 많이 지어대고 있는데, 아예 1001m짜리 부르즈 무바라크 알카비르를 계획 중이다. 하지만 때문에 세계 최고층 마천루는 못 된다 그리고 전반적인 교육수준이 높은 것을 반영해서인지 인구당 신문발행량은 아랍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며 세계적으로 봐도 10위안에 들 정도가 된다.

쿠웨이트는 상기한 이라크이스라엘을 비롯해서 시리아,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예멘, 에티오피아 국적의 방문객들은 아예 입국을 거부하고 있다. 단 쿠웨이트인이 고용한 외노자의 경우 쿠웨이트 대사관이 발급한 방문비자만 있으면 입국이 가능하다. 상기에 서술된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외노자도 꽤 많이 들어와 있다. 이들은 보통 방문 비자로 입국 후 고용주의 주선으로 취업비자를 새로 발급받는다.

비만이 심각한 나라로, 비만율 42.8%로 전 세계 비만 국가 1위를 찍기도 했다. 유목민족이었던 관계로 전통음식의 대부분이 육류이며 미국식 식생활과 패스트푸드도 널리 퍼져있다. 더욱이 여름엔 한낮 최고기온이 50도 가까이 올라가며, 겨울엔 갑작스런 강우[41]나 모래폭풍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아 애초에 야외활동을 잘 하지 않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인구 대비 위 축소술이 가장 많이 시행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중동 자체가 여름 기온이 높은 편이지만 쿠웨이트는 유독 이웃나라 중에서도 고온이 자주 측정되는 곳이다. 2018년도 현재 여름도 대낮에는 평균 46 ~ 48도에 육박하는 더위이다.


  1. [1] 외국인 인구까지 포함한 숫자다. 순수 쿠웨이트 인은 290만이다.
  2. [2] 국왕이 국회해산권을 가짐
  3. [3] 걸프 전쟁 전에는 걸프 아랍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주적인 의회를 가진 나라였다. 당시 국왕이 이 의회를 해산하는 바람에 걸프 전쟁 때 쿠웨이트 국민 가운데 일부가 이라크에 협력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4. [4] 대부분의 석유 부국 아랍인들은 아무런 전문성을 요하지 않는 도장 찍어주는 공무원을 하고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직업은 대부분 외국인이 일한다. 대학 교육도 현지인은 거의 종교 교육이어서 타민족과 아랍인 혹은 이슬람교도가 경쟁을 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 상황도 발생한다. 학문적 전통이 남아 있는 이슬람권 국가는 이란 정도. 이란 같은 경우에는 인구가 8000만에 달하는 데다가 청년 실업률도 높기 때문에 종교 과목 위주로만 수업을 받을 경우에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얄짤없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거나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 조금이라도 부유하게 살려면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데 반해, 걸프만 부유국들은 시민권자가 별로 많지 않기 때문에 공무원이나 사무직만으로도 일자리 충당이 가능해서 저렇게 여유(?)를 부리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걸프만 부유국 주민들이라고 해서 교육에 신경을 안 쓰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얘기다.
  5. [5] 이 점은 한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의 공교육보다는 수준이 훨씬 낮다. 교과서를 보면 수준 차이가 상당하다.
  6. [6] 대신 공공장소가 아닌 개인 숙소에서 비무슬림이 식사를 하는 건 문제되지 않는다. 무슬림들 앞에서 음식 냄새를 풍기거나 대놓고 먹지만 않으면 될 뿐.
  7. [7]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햇빛이 따갑다. 특히 건설업 등 야외에서 일할 분들이라면 썬크림은 무조건 가져가야 한다.
  8. [8] 그래서 그런지 길거리에서 만난 쿠웨이트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얘기를 하는 와중에서도 주변의 시선을 꽤 의식하는 편이다.
  9. [9] 바그다드 북부 쿠르디스탄 지역에 거대한 경작지가 있다. 비교를 위해 한국의 총 경작지는 약 200만 헥타르가 좀 넘었으나 계속 감소추세라 21세기에는 170만 헥타르 이하. 참고로 이라크 북부가 바로 세계적인 곡창지로 유명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이다. 이 막대한 농업 생산량을 바탕으로 인류 초기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전하게 된다. 즉, 이라크 민족은 원래부터가 농경민족이었다.
  10. [10] 일종의 유목부족 연합체로 크게 시리아를 중심으로 살던 아니자족과 사우디 아라비아 반도 중앙 나지드(نجد)라 불리는 곳에 살던 아니자족이 있다. 이들이 18세기 쯤 동쪽으로 이주하면서 다시 갈라져 하나는 쿠웨이트에 정착한 바니 칼리드(بني خالد)족이고, 다른 하나는 바레인에 정착한 바니 우트비(بني عتبة, 우툽이라고도 한다)족이다. 현 바레인의 왕조인 할리파 왕가도 여기 지도자 가문 출신이다. 반면에 이라크 민족은 고대 바빌론, 크테시폰부터 이슬람 이후 바그다드바스라를 중심으로 정착해 살던 정주민들로 문화도 관습도 많이 다르다.
  11. [11] 인천이 서울의 교역항으로 발전한 것처럼, 바그다드, 바스라, 알레포로 들어가는 인도산 물품이 대부분 쿠웨이트를 거쳐 지나가게 된다.
  12. [12] 지금은 석유로 먹고 사는걸로 유명하지만 쿠웨이트인들은 원래 유목민족이라 쿠웨이트에 정착하기 전부터 동서 교역로를 잇는 상업의 전통이 있어서, 18세기부터 이미 아라비아 반도의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영국의 동인도회사와도 거래를 많이해 동인도회사의 인도-동아프리카-쿠웨이트의 삼각 무역거점이 되었다. 물론, 사막인 쿠웨이트에 뭐 털어먹을게 없었는지라 동인도회사도 나쁜짓 안하고 순수하게 교역만했다. 이렇게 쿠웨이트인에게 영국은 아주 먼나라는 아니었기 때문에 찾아갔을 것이다.
  13. [13] 쿠웨이트에서 석유가 발견된건 1937년의 일이다.
  14. [14] 이때까지 쿠웨이트의 국기에는 커다랗게 터키 상징이 있고 옆에 아랍어로 조그많게 쿠웨이트라 적혀있었는데, 1915년부터 터키 상징을 지우고 아랍어로 크게 쿠웨이트라고만 써놨다. 이걸 계속 쓰다가 너무 밋밋했던 모양인지 1961년 완전 독립하면서 지금의 국기로 바꾼다.
  15. [15] 이를테면 베트남 전쟁의 경우, 남베트남 사람들은 같은 북베트남인과 동질감을 느꼈고, 그 결과 북베트남군의 침공을 환영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쿠웨이트인들은 걸프전에서 이라크의 침공을 환영하기는 커녕 침략자로 보았다.
  16. [16] 이스라엘도 이 때 영국 통치를 받게 되었으므로 이스라엘은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게 아니라 영국에게서 독립했다. 이 때문에 중동전쟁 등 수 많은 문제가 생겨나지만 그 책임은 원칙적으로 영국에게 있지, 터키와는 무관하다. 이라크와 쿠웨이트도 마찬가지다.
  17. [17] 양국간의 조약에 의하여 타국으로부터 빌린 영토. 홍콩마카오가 대표적인 예이다. 참고로 1913년 영국과 오스만 제국과의 조약만을 보았을때는 영국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쿠웨이트를 조차했다고 볼 여지도 있으나 1920년 세브르 조약에 의해 위 조약이 파기되고 쿠웨이트는 영국령이 되었으므로 오스만 제국의 조차지로 볼 수 없다.
  18. [18] 홍콩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영국의 식민지 정책은 이게 같은 나라가 취한 정책이 맞나 궁금해질 정도로 각 피지배국마다 다르게 대우하는 경향이 있었다.
  19. [19] 단, 전부 탈락하긴 했지만 AFC 챔피언스 리그 예선이 점차 확대 되면서 간헐적으로 참가를 해왔다.
  20. [20] 단 이런저런 문제들로 장학생으로 선발되도 바로 받을 수 있는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21. [21] 쿠웨이트의 주요 무역 파트너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이기 때문에 타국보다 장학생 티오를 많이 할당하는 편. 당장 2018년을 기준으로 볼 때 유럽이나 아프리카권 국가는 1~4명, 일본은 5명, 중국은 8명인데 한국은 10명으로 가장 많다.
  22. [22] 조교수 이상이어야 하며 총 2명에게 받아야 한다
  23. [23] 일부 서류는 아랍어로도 번역본이 필요하다
  24. [24] No Objection Certificate의 준말로 이것은 외국인을 부르는 쿠웨이트 쪽에서 보내줘야하는 서류다. 말 그대로 초청장이라 생각하면 되며, 장학생 선발 건으로 국립국제교육원으로 찾아가면 쿠웨이트 정부가 보낸 NOC를 받을 수 있다. 중요한 서류이므로 절대 잃어버리지 말 것.
  25. [25] 오후엔 수령 업무만 한다.
  26. [26] 거기다 어느 대사관이나 다 그렇듯 쿠웨이트 대사관도 한국과 자국 공휴일 모두 쉰다. 이슬람 관련 휴일이 많기 때문에 미리 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확인해보는게 좋다.
  27. [27] 우리돈으로 약 35~40만원 선
  28. [28] 2018년 기준으로 한국-쿠웨이트 직항 노선이 없기 때문에 보통 태국 방콕을 경유한 다음 쿠웨이트 항공으로 갈아 타야한다. 자국 항공사를 이용해야만 쿠웨이트 정부가 항공비를 지급하기에 방콕-쿠웨이트 시티 노선은 무조건 쿠웨이트 항공을 타야하기 때문. 방콕-인천 노선은 코드쉐어를 하고 있는 타이항공이나 대한항공을 탄다
  29. [29] 쿠웨이트로 가는 항공비는 일단 학생 본인이 사비로 지불한 후 현지에서 후지급을 받는다. 귀국할 때는 항공권 예매 후 쿠웨이트 대학교에서 몇 가지 절차를 밟으면 해결되기에 따로 사비를 쓸 필요는 없다
  30. [30] 그 전까지는 서울의 쿠웨이트 대사관에서 발급한 방문 비자로 생활한다. 유학생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일을 하고자 하는 외노자들도 같은 절차를 밟기 때문에 병원경찰서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외노자 특유의 새치기는 덤이며 특히 쿠웨이트인 고용주와 대동한 외노자의 경우 합법적으로 새치기가 가능하다(!). 때문에 관계자를 붙잡고 쿠웨이트 정부에서 초청을 한 유학생이라고 미리 언질을 해주면 약간은 수월하게 절차를 밟을 수 있다.
  31. [31] 계좌 개설 시 무조건 Civil ID가 필요하기에 그 전엔 개설이 불가능하다
  32. [32] 심한 경우 이듬해 3월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공공행정이 얼마나 유능하고 빠른지를 현지에서 깨달을 수 있다.
  33. [33] 제대로 된 교재도 부족하고 교수들도 일부를 제외하곤 딱히 수업에 열정적이지 않다.
  34. [34] 물론 이건 케바케라고 할 수 있다. 쿠웨이트 대학교 남자 기숙사가 있는 슈웨이트 캠퍼스와 여자 기숙사가 있는 케이판 캠퍼스는 도심에서 은근히 멀리 떨어져 있기에 대외활동이나 쇼핑을 위해선 무조건 택시를 타야한다.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자가용을 끌고 다니기에 대중교통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 그래서 필요한 물건 등을 구매하기 위해선 꽤 비싼 택시비와 높은 수준의 쿠웨이트 물가를 감내해야한다. 매달 들어오는 장학금이 100디나르, 우리돈으로 35~40만원 수준인데 누군가에겐 여유로운 돈이겠지만 쇼핑이나 외부활동을 즐기는 학생들에겐 꽤나 빠듯한 돈이다.
  35. [35] 대부분의 중동 외화들이 거래되는데 외노자들이 많은 관계로 인도나 파키스탄 루피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36. [36] 보통 100만원을 기준으로 2~3만원 대의 환전 수수료가 붙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원화를 주면 묻지도 않고 바로 환전해주는 경우도 있으니 미리 수수료를 물어보는게 좋다. 공항 환전소는 아시는 분이 추가바람.
  37. [37] 쿠웨이트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일부 택시들을 제외하곤 거의 90% 이상이 외노자다.
  38. [38] 그럼 나도 잔돈 없다고 돈 안내고 내리면 그제 서야 잔돈을 주섬주섬 꺼낸다. 택시 뿐만 아니라 배달부들 중에서도 이런 수법을 쓰는 자들이 있다. 쿠웨이트 디나르가 워낙 고액권이 많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
  39. [39] 사실 50%까지 깎는 게 맞지만 그럴 경우 대부분의 택시 기사들이 승차거부를 한다. 그냥 몇 푼 더 준다는 식으로 타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40. [40] 요금은 1/4디나르로 우리돈으로 800~1000원 수준이다. 현지 대학교 학생증이 있으면 무료로 탈 수 있다.
  41. [41] 12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우리나라의 가을비 비슷하게 온다. 그러나 드문드문 오는 편이며 강우량도 많지는 않은 편. 보통 모래폭풍과 동반해서 오는데 말 그대로 흙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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