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

C. S. Lewis'''

본명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

국적

영국

출생

1898년 11월 29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사망

1963년 11월 22일 (64세), 잉글랜드 옥스포드

학력

옥스퍼드 대학교 유니버시티 칼리지

경력

옥스퍼드 대학 개별지도교수 및 평의원
케임브리지 대학 중세르네상스 문학 교수

직업

소설가, 시인, 학자, 문학 비평가, 수필가, 평신도 신학자, 방송인, 기독교 변증론자

배우자

조이 데이빗

종교

없음 (무신론) → 성공회

1. 개요
2. 생애
3. 그의 기독교관
4. 작품
4.2. 기독교 관련
4.3. 그 외
4.4. 전기물
5. 트리비아
5.1. 아일랜드와의 관계
6. 한국에서의 입지

1. 개요

영국소설가이자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의 평신도(layman)[1]였다. 또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철학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다.

2. 생애

북아일랜드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까운 친구에게는 잭(Jack)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부모의 사망을 계기로 15세부터 무신론자가 되기도 했지만[2], 가톨릭 신자인 톨킨과 다른 친구들의 영향으로 30세 때인 1929년 성공회 신앙을 받아들여 성공회 성삼위(holy trinity) 교회에서 평생 신앙생활을 하였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 동아리인 잉클링스의 멤버였으며, 《반지의 제왕》의 저자인 톨킨과 우정을 유지했다. 그는 개신교, 가톨릭 등 기독교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한 기독교 변증[3]과 소설, 특히 후에 영화화 된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하다.[4]

언론으로부터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론자>라는 찬사를 받았고, 뛰어난 필력으로 인간의 본성과 기독교 신앙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다.

3. 그의 기독교관

"기독교인간이라는 기계의 전체 설계도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설계도에서 이탈했고, 원래 설계도를 변경한 자신의 설계도야말로 진짜라고 믿고 싶어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적인 것에는 이런 반응이 거듭 나타날 것입니다. 즉 누구나 거기(기독교)에서 끌리는 부분을 발견하지만, 오직 그 부분만을 골라낸 뒤 나머지는 버리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정반대의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자신이야말로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해 싸운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5]

요즘에 어떤 이들은 자선이 필요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기보다는 그런 가난한 자들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가난한 자에게 주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모든 기독교의 도덕과 결별하는 것과 같습니다.[6]

처음에 그는 기독교를 믿지 않으려고 애썼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뒤에도 한동안 성찬식만 참여할 정도로 기독교 예식 전반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말년에는 싫어하던 찬송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고.

루이스의 핵심적인 기독교관은 기독교의 범주를 엄격하게 구분해야겠지만, 그 안에 속하는 여러 교파들간의 차이는 기독교와 비기독교 사이의 차이에 비하면 미미하다 정도. 덕분에 루이스는 기독교로 회심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갈등과 고뇌를 느껴야 했는데, 엄격주의적인 그의 성격으로는 기독교에 투신한다는 것은 삶의 양식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성공회 내의 저교회파/고교회파간 차이, 여러 개신교 종파간의 차이, 가톨릭과 동방정교, 신교 계열의 차이 같은 것들은 비교적 사소한 것으로 여겼다. 어차피 자세한 교리에 있어서 의견이 다른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한다'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받아들이냐 마느냐가 진짜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본인은 만년까지 친구 톨킨의 영업에도 불구하고가톨릭 신도가 아니었지만,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 교리에 대한 비판을 들었을 때 일면 기사도적인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도로 유한 언급을 하기도 했다. 루이스의 입장에서는 결국 기독교 내 여러 분파들은 기독교라는 같은 건물에 입주한 여러 세대의 다른 가정들 정도였기 때문.

<순전한 기독교>는 이러한 루이스의 기독교관을 잘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예수가 잘난 인간이라면 모를까 초월적인 구세주라고 하기는 그렇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선을 긋고 반대하고 있다.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든지, 미친 놈 취급하든지 자유지만 그 중간은 없다'는 단호한 입장.

. "유대인 가운데 한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하느님으로 자처하며 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줄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전부터 항상 존재해 왔다고 했습니다. 또 마지막 날 다시 와서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힌두교인 같은 범신론자라면 얼마든지 자기가 신의 일부라고 말하거나 신과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한테는 이 말이 하등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수 있지요. 그러나 이 사람은 유대인이었고, 따라서 그가 말하는 하느님은 그런 범신론적인 신이 아니었습니다. (중략) 이 점을 생각한다면, 이 사람의 말이야말로 인간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충격적인 말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주장 중에 이제는 우리 귀에 너무 익은 나머지 무심코 흘려듣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를 용서해 준다는 말, 그 어떤 죄라도 용서해 준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이 하느님이 아니라면, 이것이야말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황당무계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용서라는 것은 해를 입은 사람이 해를 끼친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제 발을 밟았을 때, 제 돈을 훔쳤을 때 제가 여러분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발을 밟히지도 않았고 자기 돈을 도난당하지도 않았으면서 다른 사람의 발을 밟고 돈을 훔친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것은 아무리 부드럽게 표현한다 해도 얼간이 짓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바로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선언했으며, 그들의 죄에 피해를 입은 이들의 의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 양 행동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정말 하느님일 경우에만 이해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모든 죄는 하느님의 법을 깨뜨리며 그의 사랑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아닌 존재가 이런 말을 했다면, 역사에 등장했던 그 어떤 인물보다 우스꽝스럽고 자만에 찬 짓을 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이것은 이상하고도 의미심장한 사실인데)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복음서를 읽을 때 그에게서 우스꽝스럽거나 자만심에 차 있다는 인상은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편견 없이 복음서를 읽는 사람들은 두말 할 나위가 없지요. 예수는 스스로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했고(마태오 복음서 11장 29절), 우리는 그의 말을 믿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인간에 불과할 경우, 온유나 겸손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고 해야 할 말들을 자주 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하지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적 스승으로는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주장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을 그 누구도 못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 불과한 사람이 예수와 같은 주장을 했다면, 그는 결코 위대한 도덕적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정신병자-자신을 삶은 계란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수준이 똑같은 정신병자-거나, 아니면 지옥의 악마일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었고, 지금도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미치광이거나 그보다 못한 인간입니다. 당신은 그를 바보로 여겨 입을 틀어 막을 수 있고, 악마로 여겨 침을 뱉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의 발 앞에 엎드려 하나님이요 주님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니 어쩌니 하는 선심성 헛소리에는 편승하지 맙시다. 그는 우리에게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그럴 여지를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이 논리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성경, 그 중에서도 예수의 언행을 다룬 복음서가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으며 신뢰할 만한 사실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을 전제할 때 유효성을 얻는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들의 종교 서적을 바탕으로 그 서적의 신뢰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미친놈인지 구세주인지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부당한 흑백논리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리처드 도킨스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유명 무신론 인사들에게 대차게 이 부분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7]

사실 저러한 주장은 기독교 대 외부세계가 아니라 기독교 내적으로 보다 유의미한데, 논리적으로 볼 때 복음서의 내용을 취사 선택해서 받아들이는 신앙관에 대한 직격탄이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내용에 따라 예수를 뛰어난 인간으로 인정하지만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자 인류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건 좀 후대의 오바가 아닌가, 하는 식의 기독교 내적인 절충주의에 대해 루이스가 가하는 비판이 바로 저것인 셈. 해당 구절이 등장하는 저서 <순전한 기독교>의 목표는 무수한 종파로 나뉘어진 기독교의 공통적 본질을 제시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론을 부정하는 절충주의를 기독교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통찰을 주장의 형태로 제시한 것이 바로 위 제시문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주장의 전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좌우지간 루이스의 저서에서 인간성에 대한 흥미 있는 통찰이나 근본주의 기독교와 운동화된 기독교 등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성공회의 오랜 대립 문제인 고교회파와 저교회파에 대해서도 어느 한편에 서지 않았다. 말년에 상당히 가톨릭에 호의적인 태도로 있었다는 평가도 많고, 실제로 가톨릭계 서적들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인물.

교만의 반대편에 선 미덕은 겸손이다. 겸손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교만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겸손의 첫 단계라 말해주고 싶다. 적어도 이 단계를 밟기 전에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일 자신이 교만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큰 교만이다.

순전한 기독교[8]

그의 소설인 나니아 연대기는 큰 인기를 끌었으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비판도 많다.# (듀나의 평가) 황금 나침반의 저자 필립 풀먼은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종교 프로파간다"라고 대차게 깠다[9]. 성차별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10] 사막의 칼로르멘은 이슬람권에 대응되며 제국주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은 쉽게 벗어나기 어려워보인다. 또한 그의 (아동용) 소설이 그의 기독교 변증론에 비해 훨씬 일방적인 선전성이 강하다는 것도 분명 의미있는 비판이다.

사실 루이스와 친구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J.R.R. 톨킨도 너무 기독교 알레고리를 대놓고 묘사한다면서 나니아 연대기를 깠다. 다음은 듀나의 비판.

'예민한 성인 독자들이라면 나니아와 아슬란이 모두 꿈에 불과하다고 주인공들을 설득하는 마녀, 이교신인 타슈와 아슬란을 합쳐 하나라고 속이는 칼로르멘인들, 가짜 아슬란에게 속은 뒤 진짜 아슬란마저도 부정하는 난쟁이들한테서, 루이스가 생애 후반 동안 맹렬히 대항했던 사상적 조류를 읽을 수 있을 거예요. 심지어 마지막 편의 악당인 원숭이 시프트의 존재가 진화론자들의 캐리커처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루이스의 의도가 아니라고 해도 수많은 창조론자들은 그냥 그렇게 믿어버릴 걸요.' (듀나)

그런데 여기서 듀나가 황당한 추측을 한 게 있는데, 사실 루이스는 창조설자가 아니라 오히려 유신론적 진화론자에 더 가까웠다. 애초에 듀나는 이거 말고도 조사 안하고 의견 표명하는걸로 많이 까인다 그는 심지어 창세기 1장을 일종의 설화 내지 신화로 간주하면서, 이것을 원시 인류의 진화 과정 속에 대입하려고 시도하였다. 이해가 안 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개신교인들이 무신론 내지 반신론자들에게 공격받을 때마다 전가의 보도마냥 휘두르는 "그렇기는 하지만 씨 에스 루이스가 말하기를..." 이 어째서 창조설 관련 주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까? 루이스가 창조설자들의 입장과는 백만광년쯤은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진화론을 자신의 신앙과 융합시키려고 시도했던 그의 어록을 여기 잠깐 인용해 보자.

"...신은 동물의 형상을 완성했고, 그것은 장차 인간의 매개체가 되고 신의 형상이 될 것이었다. (중략) 그러나 그것은 동물일 뿐이었다. 모든 물리적, 정신적 과정이 물질적이고 자연적인 것들만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신은 이 유기체의 심리와 생리에 '나' 라고 하는 새로운 의식을 심어주었는데, 그 의식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며, 신을 알고, 진실과 아름다움과 선을 판단할 수 있으며, 시간 너머에 존재하면서 흘러가는 시간을 감지할 수 있는 인식이었다... (중략)

 

...우리는 신이 이런 창조물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 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천국 같은 상태를 지속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머잖아 끝이 났다. 누군가는 또는 무언가는 자기들이 신이 될 수 있다고 속삭이기도 했다. (중략) 이들은 신을 향해 "이건 우리 일이지 당신의 일이 아니오" 라고 말할 우주 어딘가의 후미진 곳을 원했다. 그러나 그런 후미진 곳은 없다. 이들은 명사가 되고 싶었지만 단지 형용사에 머물렀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그 자기모순의 불가능한 소망이 어떤 행위에서 또는 일련의 행위들에서 표출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소망은 아마도 열매를 말 그대로 먹는 행위와 관련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ㅡ C.S.Lewis (F.Collins, pp.210~211에서 재인용)

루이스는 '기독교'의 범주를 정하는 데 있어서는 완강한 편이었고 스스로 신앙을 가질지 판단하는 여부에서도 엄격했지만, 기독교 안으로 들어온 뒤로는 기독교 바깥의 사상이나 과학적 연구 등에는 상당히 열린 자세를 유지했다. 가령 외우주에 인류와 별도의 문명이 존재한다면 그들에게는 그들을 위한 그리스도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건 우리가 아직 모르는 일이다라는 정도의 주장을 하기도. 작가다운 상상력 무분별하게 그의 발언을 인용하여 어거지를 쓰는 일부 기독교인들에 비하면 대인배적인 면에서 한참 윗길에 있다고 하겠다.

4. 작품

4.1. 나니아 연대기

4.2. 기독교 관련

  •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11]
  •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
  •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
  • 천국과 지옥의 이혼(The Great Divorce, 픽션)
  • 영광의 무게(The Weight of Glory)
  • 예기치 못한 기쁨(Surprised by Joy)
  • 시편 사색
  • 네 가지 사랑(The Four Loves)
  • 헤아려 본 슬픔(A Grief Observed)
  • 기적 (Miracles)
  • 피고석의 하나님 (God in the Dock)
  • 기독교적 숙고

4.3. 그 외

  • 순례자의 귀환[12]
  •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 까지 (Till We Have Faces)
  • 우주(Space) 3부작[13] - 침묵의 행성 밖에서(Out of the Silent Planet), 페렐란드라(Perelandra)[14], 그 가공할 힘(That Hideous Strength)
  • 인간 폐지
  • 세상의 마지막 밤
  • 당신의 벗, 루이스 (Yours, Jack)
  • 루이스가 나니아의 아이들에게 (Letters to Children)
  • 루이스가 메리에게 (Letters to an American Lady)
  • 오독 (An Experiment in Criticism)
  • 실낙원 서문

4.4. 전기물

이 책들은 C.S.루이스가 직접 쓴 책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손으로 루이스에 관해 작성된 전기들이다.

  • 루이스와 잭(Jack : A Life of C.S.Lewis) -George Sayer 저
  • 루이스 VS 프로이트 (C.S. Lewis and S. Freud) -Armand M. Nicholi, Jr. 저
  • 루이스와 쉐퍼의 대화 (C. S. Lewis and Francis Schaeffer) -Scott R. Burson 저
  • 루이스와 톨킨 (Tolkien and C. S. Lewis) -Colin Duriez 저
  • C. S. 루이스 (C. S. LEWIS) -Alister E. McGrath
  • C. S. 루이스와 점심을 먹는다면 (If I Had Lunch with C. S. Lewis) -Alister E. McGrath
  • C. S. 루이스 그의 삶 그의 세계 -더글라스 길버트, 클라이드 S. 킬비 편저
  • C. S. 루이스의 순전한 교육 (Mere Education) -마크 파이크 저
  • C. S. 루이스와 함께한 하루 (Conversations with C. S. Lewis) -Robert Velarde 저
  • C. S. 루이스의 생애 -Devin Brown 저
  • C.S.루이스가 말하는 천국과 지옥 (Beyond the Shadowlands) -Wayne Martindale 저
  • C.S 루이스를 통해 본 일곱가지 치명적인 죄악과 도덕 (C.S Lewis Vice & Morality) -Gerard Reed 저
  • 순결한 영혼의 순례자 C.S. 루이스 -캐서린 스위프트 저
  • C.S. 루이스 삶과 사랑 -샘 웰만 저
  • C.S.루이스가 일생을 통해 씨름했던 것들 -Louis A. Markos 저
  • C.S. 루이스를 통해 본 거룩한 삶 -제럴드 리드 저
  • C.S. 루이스의 기독교 세계 -클라이드 S. 킬비 저
  • C.S.루이스와 나니아 나라 이야기 (Into the wardrobe C.S. Lewis and the Narnia) -David C. Downing 저
  • 반항적인 회심자 C.S.루이스 (C.S. Lewis's Journey to Faith The Most Reluctant Convert) -David C. Downing 저
  • 작은 그리스도 C.S.루이스 (C.S.Lewis Life at the Center) -페리 브램릿 저
  • C. S. 루이스와 기독교 세계로 -캐스린 린즈쿡 저

5. 트리비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바 있다. 참호전의 와중에 부상을 입어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이런 경험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등에도 반영되어 있다. '전쟁은 되려 인간이 신에 가까워 질 수 있는 곳'이기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좋아할 필요가 없다는 고참 악마의 논리가 대표적이다.

톨킨은 그의 종교관을 설득시키는데 가장 많은 공로(?)가 있었으나 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은 것을 무척 아쉬워 했다고 한다.

결혼은 상당히 늦은 예순(만 58세 6개월)의 나이에 했는데, 상대 조이 데이빗먼은 미국의 소설가인 빌 그레셤(Bill Gresham)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로[15], 무신론자에 마르크스 주의자(미국 공산당원)유태인계였다. 그녀는 또 결혼 직전에 골수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루이스는 그녀를 기독교인으로 변화시켰고, 이민 비자를 위해 1957년 결혼했으며, 3년만에 그를 떠나 보냈다. 이런 상황을 그는 '죽음의 신(사신)이 연적인 팔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3년 후 그 역시 사망한다. 이 결혼 이야기는 1993년에 영화 섀도우랜드로 영화화되었는데, 루이스 역을 맡은 사람이 다름 아닌 한니발 박사님...

연옥 교리에 대해서는 그가 대죄까지도 연옥에서 씻겨진다고 보았다는 평가가 있다. 즉, 이 평가에 따르면 지옥행으로 가는 인간이 훨씬 적었다고 보았다는 이야기.근데 루이스가 믿었던 성공회에서는 연옥교리를 인정하지 않는데(...)[16]

그리고 한국교회에서 가장 많이 왜곡된 인물이다[17]. 그는 그는 신앙적인 이유로 금주, 금연한 적이 없다. 다른 기독교계 인물이라면 술, 담배를 안하고 살다 간 사람으로 오해 하겠지만, CS루이스는 죽을때 까지 술담배 다 하고 산 사람이다.[18] 이 사실에 충격받을 기독교인들이 많을 텐데... CS 루이스는 이 사실을 숨긴 적이 없다. 한국 교회가 숨겼을 뿐...[19] 그 외에도 이 사람이 유신론적 진화론자라는 사실마저 숨기고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럽다. 괜히 이어령선생이 한국교회에다가 유신론적 진화론 받아들여라고 경고한게 아니다[20]

5.1. 아일랜드와의 관계

벨파스트에 있는 C.S. 루이스의 동상

그는 무신론자 시절에 아일랜드 신화켈트 전통, 북유럽 신화 등에 관심이 많았고, 게일어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예이츠를 젊은 시절 두 번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 이런 그의 관심은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비록 북아일랜드 독립을 지지한 건 아니었지만, 조상을 웨일즈에 둔 성공회교도 집안에서 자란 그가 가진 종파적 비 배타주의 관점과,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려고 한 점은 예나 지금이나 종교갈등이 심각한 북아일랜드의 상황을 감안하면 나름 대인배급이라 평가할 수 있다.

6. 한국에서의 입지

C. S. 루이스는 한국의 기독교 출판계에서도 인기 있는 작가이다. 《순전한 기독교》(영어: The Mere Christianity)등의 일부 저작들이 영국 C. S. 루이스 협회와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은 홍성사에서 출판하고 있는데, 이는 전 홍성사 편집장 옥명호 씨가 대학생 시절 우연히 성 바오로서원 출판사에서 읽은 C. S. 루이스의 작품에 심취했기 때문이다. 또한 2006년 4월호 《기독교사상》에 《순전한 기독교》를 번역한 이종태 목사(장로교)와 C. S. 루이스 팬인 옥명호 전 홍성사 편집장 등이 C. S. 루이스의 신학과 삶에 대해서 쓴 글이 실리기도 하였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의 후속편 서문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대해 다루고 있자 이를 소개하고 차기 번역을 약속할 정도.

옥명호 씨가 루이스를 접하게 된 성바오로서원이란 이름에서 짐작 갔을지 모르지만, 가톨릭에서도 매우 호의적으로 인용하는 인사다. 루이스가 기독교 교파간의 차이를 같은 건물 다른 세대 정도로 비유할 만큼 교파간의 차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인 사람이었기에 가톨릭 측에서도 루이스의 작품을 거부감 없이 출판해 왔다. 개신교 신앙도서는 믿고 거르는 가톨릭 신자들도 이 사람의 신앙도서는 안심해도 된다고 말할 정도. 성바오로서원 자체가 성바오로 수도회가 운영하는 것으로, 루이스의 책 대부분을 취급했던 것은 물론 나니아 연대기 역시 일찌감치 번역했다. 저자는 전경자. '나르니아' 등 실제 발음과 고유명사가 차이를 보이는 일이 많았지만 특유의 착 달라붙는 문체는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21] 가톨릭 청년 교리서인 유캣에서도 루이스의 발언을 인용하고 있다.

성공회 교인이면서 가톨릭에 우호적이었던 C. S. 루이스가, 성공회의 영향력이 미미하고 가톨릭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한국의 개신교계에서 무척 인기가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22] 그러나 국내의 보수적인 경향이 강한 복음주의 개신교인 중에는 C.S.루이스가 인문학적으로 지나치게 인텔릭하고, 말년으로 갈수록 가톨릭에 호의적이 되었다고 탐탁치 않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23] 그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끝까지 개신교 성공회 신앙을 지켰다.[24]

요약하자면, 국내에서 칼뱅주의[25]를 철저하게 고수하는 일부 교인들을 제외하면, 신·구교를 막론하고 기독교계에서 매우 인기있는 작가이다. 또한 한국의 기독교인(천주교인과 개신교인 모두)들에게 성공회라는 교파를 강하게 각인시킨 인물임에 틀림 없다.

앞서 언급되었지만, 창조과학을 강하게 밀어 붙이고, 금주 금연을 병적으로 강요하는 한국교회의 특성 때문에 심각하게 왜곡된 인물이다. 그렇다고 그의 인생 전반에 대한 평가가 바뀌는건 없지만 쇼핑하듯이 취사선택하는 신앙을 비판하는 한국기독교계가 CS 루이스를 다루는 방식이라고 보기엔 너무 형편없는 처사다. [26]


  1. [1] C.S.루이스가 주옥과 같은 기독교 변증서를 다수 저술했기 때문에 성직자였을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하는데, 전혀 서품을 받은 적 없는 평신도였다. 기독교 신학에 어느 수준 이상으로 깊이 접근하는 것은 목사나 (적어도 전도사는) 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국내 개신교의 분위기와는 약간 다르다. 성공회에서는 평신도의 신학에 대한 이해가 성직자보다 뛰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이해가 더불어져서 충분히 탁월한 식견이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C.S.루이스의 전공도 엄밀히 말하자면 영문학이었다. 그의 수많은 저작들이 문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었다면 탄생하기 어려운 것들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단 영국 개신교의 전설인 존 번연또한 신학대 출신이 아니다.
  2. [2] 그는 “하느님에게 그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매우 화가 나 있었다”고 한다.
  3. [3] 대표적인 것으로 고통의 문제, 순전한 기독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있다. 작품 목록 참조.
  4. [4] 뭐 나니아 연대기는 사실 1편의 흥행(7억달러)을 제외하고는 2편, 3편은 반타작만 하면서 제작비 건지기에 실패했지만, 그래도 황금나침반의 흥행 패망보다는 사정이 좀 나으니... 사실 2,3편의 흥행 실패는 동화와 전쟁물 사이에서 오락가락한 탓도 크다. 항목 참조.
  5. [5] 《순전한 기독교》, 141쪽.
  6. [6] 《순전한 기독교》, 143쪽.
  7. [7] 참고로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기독교 신학계의 최고봉 중 하나인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미 대차게 깐 적이 있다(...).
  8. [8] 라디오 방송 편집본이다.
  9. [9] 실제로 황금나침반의 세계관은 '정통'교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정확히 반대의 세계관을 지향한다.
  10. [10] 사실 여성차별 문제도 인종차별만큼까지는 아니더라도 많다. 수잔 페벤시가 맞이한 결말부터 은의자에 나오는 진보적인 학교와 여성 교장에 대한 묘사까지 문제시 되는 부분도 수두룩할 정도. 여성 작가인 조앤 롤링 역시 나니아 연대기 팬이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실드 없이 신랄한 비판을 가했을 정도다.
  11. [11] 인간을 신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악마의 태도로 쓴 풍자적 작품이다. 그는 악마 집단을 일종의 기만적 관료집단으로 묘사했다. 자신도 쓰는거 자체는 나름 흥미롭고 쉬운 일이었지만 그 일 자체가 오래하기에는 감정적으로는 대단히 지치고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원래 위악이란게 좀 어렵습니다 1942년 작.
  12. [12] 첫 소설, 1933년 작.
  13. [13] 루이스의 SF 소설.
  14. [14] 톨킨과의 내기 결과로 쓰여진 작품이다. 한 사람은 우주여행에 관해, 한 사람은 시간여행에 관해 쓰기로 했는데 루이스가 우주여행을, 톨킨이 시간여행을 쓰게 된 것. 참고로 톨킨은 현대인들이 과거의 아틀란티스를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썼고, 이후 그 이야기를 다듬어 누메노르의 이야기로 자신의 세계관에 넣는다.만약 내기 결과가 반대로 나왔어도 볼 만 했을 것이다
  15. [15] 루이스를 만나는 시점(1952년)에는 별거 중. 1954년에 제대로 이혼했다.
  16. [16] 그런데 성공회는 보수적 개신교 교단처럼 연옥교리를 완강히 배척하는 정도는 아니고, 연옥에 대한 불가지론적 입장까지 수용하긴 한다. 연옥 교리를 믿건 안믿건 그건 성공회 신자 개개인의 자유로, 교회 차원에서는 터치하지 않는다.
  17. [17] 거품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은 CS루이스의 업적과 가치에 거품이 낀게 아니라, 한국교회가 밀어붙이고 있는 몇가지와 안 맞는다고 몇가지 사실들을 의도적으로 숨겼기 때문이다. 당장에 순전한 기독교 저자가 진화론 믿고 있고, 술담배 다하고 살았다고 한다면 한국교회 목사들 설교에서 순전한 기독교가 언급된 모든 설교에 문제가 발생한다
  18. [18] 영국 Oxford시에는 루이스와 톨킨이 술먹던 자리가 현재도 보존되어 있으며, CS루이스가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사진 및 그의 파이프 담배가 아주 잘 보존되어 있다.
  19. [19] 일단 해외에서는 루이스와 톨킨이 술,담배 친구인건 유명하다. 한국교회가 유난히 술 담배를 죄악시 하는 문화가 강하다 보니 자연스레 숨겨진 것. 그러다보니 요즘 목사들도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 많다. 술담배 하지말라고 설교 하면서도 위대한 기독교 변증론자 CS루이스가 이런 말씀을 했죠라며 인용하는 모순 이는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진화론 관련 서적이 번역되지 않던 이유와 일맥 상통하다.
  20. [20] 창조과학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일단 과학자에 눈에 전혀 과학적이지 않을 뿐더러 창조과학에서 믿는 것들의 기저가 신앙의 근거가 성서가 아닌 과학이기 때문이다. 창조론을 과학으로 끌어들인다는 것 자체가 과학적으로 틀리면 파기해야 하기 때문. 즉, 창조과학이 틀렸다고 증명되면 신앙도 버리겠다는 소리
  21. [21] 현재는 판권 문제로 홍성사에서만 출판 중. 참고로 성바오로서원에서는 '꼬마 호비트의 모험' '마술반지'라는 타이틀로 호빗과 반지의 제왕도 출판했던 역사가 있다.은근히 국내 판타지 고전의 산실
  22. [22] 국내의 성공회 교인들 중에는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이 C. S. 루이스, 존 스토트, 알리스터 맥그래스 등이 지은 기독교 서적을 읽고 좋게 평해주는 것을 보고 자기 교파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대한성공회가 워낙 작다 보니 국내의 성공회 교인들은 성공회가 세계적으로는 주류 교단임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23. [23] 처음에는 루이스의 작품에 감동을 받았으나, 가톨릭에 호의적인 면이 있음을 알고나서 거리를 두게 되었다는 어느 보수 개신교도의 비평도 존재한다.
  24. [24] 일부 사람들은 루이스가 죽기 전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고 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25. [25] 칼뱅주의/개혁주의 교회들은 가톨릭과의 차별성이 이들의 정체성이다. 이들이 말하는 개혁주의가 무엇으로부터의 개혁인지 생각해보자.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에 포용적인 면이 있는 성공회를 대할 때 아무리 같은 개신교라 하더라도 경계를 완전히 풀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보수적인 개혁주의 신자들 중에는 성공회 저교회파와 교리나 제도 상에 큰 차이가 없는 감리교 마저도 곱지 않게 보는 사람도 있다.
  26. [26] 최일도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그 유명한 칼 바르트가 내한 했을때 수 많은 목사들이 알현하러 갔다가 그 칼 바르트께서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무는 순간 목사들이 혼비백산 도망간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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