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

  복면가왕의 출연 가수에 대한 내용은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Κλεοπάτρα (그리스어)

Cleopatra (영어)

1. 고대 그리스식 이름
2.1. 생애
2.2. 기타
2.3. 매체에서
3. 체코 뮤지컬
4. 감자칩
5. GnuPG의 Gpg4Win 내에 포함된 인증서 관리 소프트웨어

1. 고대 그리스식 이름

고대 그리스어로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을 가진 여성 인명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네우스의 첫 번째 아내[1]칼리돈의 영웅 멜레아그로스의 아내 이름으로 쓰인 것이 처음이다.[2], 그 뒤 신화 시대부터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클레오파트라들이 있었는데, 특히 헬레니즘 시대 마케도니아인 왕조들과 그 영향을 받은 주변 국가들의 공주, 여왕 이름으로 많이 쓰였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아래 항목의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7세)"이다.

아래 항목에서 설명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클레오파트라 7세가 죽고 헬레니즘 시대가 끝난 이후에는 인명으로 거의 쓰이지 않았는데, 20세기 후반 들어 전통적인 이름들 대신 특이한 이름을 짓는 일이 많아지면서 드물게 클레오파트라를 이름으로 쓰는 사람들이 생겼다.

2. 이집트 여왕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역대 파라오

16대 프톨레마이오스 12세

16대 프톨레마이오스 12세
17대 클레오파트라 7세
프톨레마이오스 13세
프톨레마이오스 14세
프톨레마이오스 15세

18대 프톨레마이오스 15세

출처: 대영박물관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재위 51 - 30 BC)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지구의 모든 표면은 변했을 것이다. - 블레즈 파스칼

이집트의 마케도니아 혈통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울레테스의 딸.

또한 고대 이집트에서 공식적으로 '파라오'로 즉위한 마지막 인물이다. 이 인물을 끝으로 '독립국가 이집트의 군주'로서의 파라오는 완전히 명맥이 끊긴다. 이집트를 지배하는 로마의 황제가 이집트에선 파라오의 칭호를 사용하고 이집트의 파라오식 즉위 행사를 행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의미였다. 또한 로마제국 이후 이집트를 다스린 군주들은 파라오 칭호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2.1. 생애

기원전 51년, 부왕이 세상을 떠나자 이집트의 당시 전통인 근친 결혼에 따라 18세 나이에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여 공동 통치자가 되었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이미 멸망의 징조가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으며, 어린 남동생을 배제하고 전권을 차지하려는 클레오파트라 7세의 정치적 움직임은 큰 반발을 샀다. 그 결과 권력 투쟁에서 패하여 지방으로 쫓겨났고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전권을 차지했다.

하지만 기원전 47년, 이집트를 방문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와의 만남으로 클레오파트라 7세는 재기의 발판을 얻었다. 마침 카이사르는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로마 내의 내전으로 인해 알렉산드리아에 피난 왔던 자신의 정적 폼페이우스를 암살한 것이 "비겁한 행동"이라며 분노하여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였는데, 클레오파트라 7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만나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때 카이사르의 나이는 50대 초반, 클레오파트라 7세는 20대 초반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카이사르가 융단을 선물 받았는데 그 융단을 풀어보니 안에 클레오파트라가 있었다고 한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 측의 눈을 속이기 위해 클레오파트라가 잠입한 것이다.[3] 그리고 카이사르는 시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실의 분쟁에서 클레오파트라 7세를 지원했다. 이를 알렉산드리아 전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졌기 때문에, 즉 사적 감정의 발로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부왕인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죽기 전에 '남매의 공동 통치'를 유언으로 남기고, 로마인들에게 유언의 집행을 맡겼다. 그리고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의 현직 집정관으로써 부왕의 유언대로 공동통치로 되돌아갈 것을 결정한 것이다. 이게 결과적으로 정쟁에서 패배했던 클레오파트라를 지원한 것은 사실이지만. 게다가 폼페이우스는 패장이었다고는 하나 로마의 전직 집정관이었고, 전직 집정관(프로콘술)은 공화정 로마에서 최고의 존경을 받는 지도층 인사였다. 이런 사람을 살해한 왕을 동맹국(사실상 속국)의 단독 국왕에 앉혀놓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문제가 되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카이사르의 집행에 앙심을 품은 프톨레마이오스 13세 측은 카이사르가 소수 병력만 이끌고 있는 것을 노려 그를 공격했으나, 로마에서의 원군 도착으로 패배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살해당했고, 클레오파트라 7세는 막내 남동생과 재혼하여 그를 명목상의 공동 통치자 프톨레마이오스 14세로 세운 뒤 실권을 장악하였다.

카이사르와의 사이에서 카이사리온[4]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이후 카이사르를 따라 귀빈으로써 로마에 가기도 했으나,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이집트로 급히 돌아왔다. 이집트에서 공동 통치자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자 자기 아들 카이사리온을 공동 통치자 프톨레마이오스 15세로 세웠다. 또한 로마내의 카이사르 파와 반 카이사르 파의 내전에도 관여하여 카이사르 파를 지원하려 했지만 폭풍으로 실패하였다.

기원전 41년에는 킬리키아의 타르소스에서 제2차 삼두정의 선두였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만났으며, 그 역시 클레오파트라 7세와 사랑에 빠졌다. 당시에 안토니우스는 파르티아 원정에 쓰일 자금을 얻기 위해 만남을 요청했으나, 곧바로 클레오 파트라와 사랑에 빠진다. 이후, 둘 사이에서 아들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와 딸 클레오파트라 셀레네 2세가 태어났다. 옥타비아누스와 관계가 틀어진 안토니우스는 기원전 37년, 파르티아 원정을 위해 동방을 다시 방문했고, 아예 클레오파트라 7세와 결혼하여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포스를 낳았다. 기원전 34년,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동방 원정을 지원한 공으로 "알렉산드리아의 기증"을 통해 클레오파트라 7세와 그 자녀들에게 로마 제국의 동방 속주들을 전부 나눠주었는데, 클레오파트라를 왕 중의 여왕으로 선언하고 카이사리온과 함께 이집트를 공동통치하도록 했으며, 쌍둥이 중 남자인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에게 아르메니아, 메디아, 파르티아를 주었고 쌍둥이 중 여자인 클레오파트라 셀레네 2세에게 크레타와 키레나이카, 막내아들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푸스에게는 시리아와 실리시아를 주었다.

하지만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달렸고, 결국 옥타비아누스는 이집트 침공을 선포한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안토니우스와 함께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에게 맞섰으나 패배하여 도주한 뒤 알렉산드리아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최후는 코브라가 자신을 물게 하여 자살했다는 설이 가장 유명한데, 이집트 코브라를 과일 바구니에 숨겨 가져왔다 한다. 다만 이는 후대에 붙인 이야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집트 코브라가 2m나 되어 숨기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물린다고 해서 즉사하는 것도 아니고, 독사한다고 해도 2시간 뒤에나 사망하기에 말이 되지 않는다고. 그외에 음독자살이라는 설, 안토니우스와 동반자살했다는 설, 옥타비아누스가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했다는 설 등 다양한 설이 난무하지만 대표적인 떡밥거리다. 사실 옥타비아누스가 개선식 때 꼭 클레오파트라를 내세워야만 했느냐면, 실제로 선전 때 로마를 멸망시키려 한 요부로 포장했으니 엄청난 효과를 낳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이복 여동생이 끌려왔을 때는 동정받은 바가 있다. 즉, 로마에서는 여자를 이겼다거나 여자를 앞세워서 영광을 얻으려 한다고 여론이 좋지 않게 조성될 수도 있었기에 죽는 것도 나름대로 유리했다는 것이다.

흔히 엄청난 미인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빼어난 미모와 매혹적인 목소리, 재치와 지성을 갖추어 남자를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그 요사스러울 정도의 미모로 로마를 좌지우지하다가 아우구스투스에게 패하여 독사로 자살했다는 이미지,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이 어우러져 마녀, 색기 넘치는 요부, 팜므파탈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한 세기의 연애에 대해 율리우스 카이사르 쪽은 클레오파트라와 연애는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클레오파트라와의 관계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유언장에서도 클레오파트라나 클레오파트라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로마에서 단지 구설수에 오르는 정도 이상의 문제는 겪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 쪽은 이집트에서의 정치적 입지가 로마에서의 카이사르와는 달라서 아들 이름을 대놓고 카이사르라고 짓고 카이사르와의 관계를 정치적으로 열심히 이용했지만, 카이사르 입장에서도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에서의 지위를 안정시키는 것이 유리했으므로 이 관계는 양쪽 모두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는 것이었으며, 카이사르는 언제나 그랬듯이 바람둥이 노릇과 정치가로서의 입장을 잘 조화시킨 것에 불과했지 클레오파트라에 홀렸다고 볼 이유는 전혀 없다. 클레오파트라가 나중에 로마로 카이사르를 찾아와서 카이사르가 암살당할 때까지 로마에 머물렀던 것을 보면 오히려 클레오파트라 쪽이 카이사르에게 반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반면 안토니우스의 경우는 정말로 홀렸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사실 안토니우스도 여색에 빠져 모든 것을 맡기는 한량은 아니었다. 안토니우스가 추진했던 파르티아 정벌을 위해 군자금이 필요했고,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풍부한 경제력을 지원하는 대신 안토니우스의 군사력을 원했던 것이다. 즉, 서로 정치적인 계산 하에 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런 정치적인 계산만으로 보기에는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의 관계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로마에서만 하게 되어 있는 개선식을 알렉산드리아에서 열었고, 클레오파트라의 세 아들[5]이 로마를 분할하여 공동 통치하게 하려는 계획까지 세워서 로마에서 정치적으로 강한 비난을 받게 된다. 게다가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기 위해 아내였던 옥타비아누스의 누이와도 이혼했고, 유언장에서는 로마가 아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묻어달라고 하는 등의 행동으로 인해 개인적 인망 역시 크게 잃었다. 더구나 사실상의 마지막 전투가 된 악티움 해전에서의 전개를 보더라도 자신이 전투를 주도하지 못하고, 전쟁 지휘 경험이 없다시피 한 클레오파트라에게 끌려다녔다. 따라서 안토니우스가 처음에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클레오파트라에게 접근했을지 몰라도 정말로 클레오파트라에게 홀렸다고 할 만하다. 반론으로는 안토니우스가 정치적으로 너무 무능해서 단지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카이사르 생전에 군사적으로만 훌륭했을 뿐 정치적인 면에서는 낮은 평가를 받았으므로 무리는 아니지만, 클레오파트라에게 홀딱 빠지지 않고서야 그 정도로 무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큰 야심을 가진 정치가였다. 위에도 나오다시피 권력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하기도 했지만, 그녀 자신의 능력도 출중했다. 이전까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들이 이집트어 배우기를 거부하고 그리스어만 사용했던 반면, 토착 이집트어를 배운 최초이자 최후의 마케도니아인 파라오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여러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여 통역이 필요없을 정도였으며, 정치 수완도 뛰어나 로마의 최고 권력자들을 휘어잡는 한편 이시스의 현신을 자처하며 토착 이집트 백성들로부터도 인기를 모은 엄친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다 망해 가는 막장 나라를 구할 수는 없었다. 고립된 소수 그리스-마케도니아인 지배층의 인적자원이 완전히 고갈되고 부정부패와 권력 암투에 빠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는 나라를 건사하기 위한 기본적인 군사력조차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외세를 이용해 생명연장의 꿈을 노릴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가장 중요한 악티움 해전에서 군사적 무능을 드러내기도 했다. 막대한 돈을 쟁여놓고 돈과 정치적 술수를 주 무기로 삼으며 혈육도 가차없이 제거하는 냉정한 모습은 전형적인 고대 서아시아 전제 군주들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당시 그녀가 처한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모습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당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인물들을 살펴보면 정말 클레오파트라 말고는 답이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무능한 인간들 투성이었다. 클레오파트라의 부왕인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내정과 외치 모두를 말아먹다가 반란이 터져 왕위에서 물러나 로마로 망명을 간 적이 있을 만큼 막장이었고, 뒤를 이은 클레오파트라의 언니 베레니케 4세는 한 술 더 떠 지나친 사치를 부리고 내정을 말아먹다가 로마의 지원을 받고 돌아온 아버지에게 패해 처형당한 막장 군주였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도 정치적인 능력을 보여준 게 없다는 걸 감안하면 당시 이집트로서는 클레오파트라가 마지막 희망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사치스러움을 과시하기 위해 진주식초에 녹여먹음으로 주위를 놀라게한 일화가 있다. 안토니우스와 하루에 20만 파운드 상당의 돈을 다 써버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내기를 걸어서 진주를 식초에 녹인 다음 원샷!으로 승리했다는 일화다. 황산이나 염산을 쌩으로 들이켰다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역사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고상한 표현으로 클레오파트라는 사실 진주를 식초에 녹인 척 하고 그냥 삼켜버렸을 것이며 그 진주는 나중에 자연스러운 배출 과정을 통해 회수되었을 것이라 한다.

양귀비여지를 좋아한 만큼 클레오파트라무화과를 좋아했는데 굉장한 대식가여서 하루에 먹어 치우는 무화과나 식사량이 엄청났었다. 그녀가 시원시원하게 먹는 모습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반했다고 한다.

2.2. 기타

상기한 이미지와 이집트 벽화, 혹은 서구인들의 "동양 미인"(그러나 몽골리안은 아니다)에 대한 환상 때문인지 근현대 창작물에 등장하는 클레오파트라들은 대개 "이국적인 동방 섹시녀"라는 컨셉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특징으로 까무잡잡한 피부에 샤프한 이목구비, 짙은 눈화장이 깔린 길고 째진 눈, 윤기흐르는 직모 흑발, 늘씬한 몸매에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노출도 높은 패션 등이 있다. 하지만 누차 언급했다시피 그녀는 마케도니아인이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이집트 파라오의 전통을 따라 철저한 근친혼을 유지했으므로 토착 이집트인의 피가 섞였을 확률은 거의 없다. 그 외에도 일부 꼴통 흑인 우월주의자들은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의 여왕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흑인이라는 주장을 하지만 이는 이집트가 아랍인들이 주를 이룬다는 것을 무시하는 주장이며[6] 그 논리대로라면 남아프리카의 보어인[7] 역시 흑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상단에 링크되어 있는 주화 사진이나 당대의 두상 따위에서 묘사된 모습을 보면 뽀글뽀글 곱슬머리에 우뚝 솟은 우람한 매부리코, 푹 들어간 눈두덩이 등 유감없는 그리스적 외모를 뽐내고 있다. 물론 그런 물건들에서 군주를 묘사할 때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기법이 사용되거나, 당대 미의식에 입각한 보정이 들어가게 마련이니 그걸 또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이집트 방식으로 묘사된 클레오파트라 유물을 보면 생김새가 또 딴판이지만, 고대 이집트의 인물 묘사는 정형화의 극치를 보여주기로 유명하니 별 의미는 없다. 어쨌든 현대 대중문화에서 그려지는 클레오파트라의 모습들은 실물과는 완전히 딴판일 가능성이 높다.

상당한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는데 클레오파트라는 남녀 태아의 발육에 속도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는 이유로 여자 노예 여럿을 임신시킨 뒤 산 채로 배를 갈라 아이의 발육 정도를 확인했다.의학적 진보의 제물이 된 27세 청년의 뇌-네이버 뉴스

여담으로, 이미지로만 본다면 고대 이집트 문명 출신처럼 생각되고 묘사되지만, 기원전 51년 출신으로 시대적으로 대피라미드가 지어졌던 기원전 2560년보다 오히려 현대에 더 가까운 인물이다.

2.3. 매체에서

클레오파트라하면 떠오르는 미인, 이국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마케팅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당장 '클레오파트라가 먹은', '클레오파트라 화장품' 키워드로 검색하면 클레오파트라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음식과 화장품 재료가 나온다. 물론 까마득한 먼 옛날 유명 사람이 사용한 재료라고 해서 그것이 그 재료가 좋다고 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그렇게 따지면 납도 얼굴에 발라야 한다[8] 연예인이 광고하는 물건이라고 그 물건의 품질을 연예인이 보증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

아스테릭스에서도 등장했다. 실사판 영화인 미션 클레오파트라에서는 모니카 벨루치가 맡았다.

헨델의 오페라 줄리오 체자레에서도 나온다. 음역은 소프라노. 허나 여기서는 실제 역사의 인물과는 거의 별개에 가까우며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데즈카 오사무아니메라마 3부작클레오파트라라는 성인애니가 있다. 여기서는 처음엔 못생긴 얼굴로 나오다가 갑자기 미인이 된다. 하지만 애니 자체는 개그와 진지함의 조화가 되어있지 않아 흥행성적이 썩 좋지 않아서 개봉 후 곧바로 잊혀졌다.

단테스 인페르노에서는 2층 육욕의 원에서 안토니우스와 함께 보스로 등장. 육욕의 원에 도달할 때부터 열심히 단테를 도발하다가 최상층에서 안토니우스와 함께 단테와 싸운다.[9] 안토니우스가 쓰러진 뒤에는 단테를 유혹(버튼 액션이다)하지만 결국 낫에 찔려 사망한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에서는 문명 3까지 이집트 문명 여군주였으나 문명 4에서 하트셉수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문명 온라인에서도 하트셉수트가 이집트 지도자로 등장하면서 계속해서 밀려났지만 문명 6에서 간만에 이집트의 지도자로 등장했다.

진 여신전생 4 FINAL의 DLC에서 시리즈 최초로 등장한다. 타 창작물의 이집트인 바탕의 디자인으로 그려진 클레오파트라와는 달리 유럽계 인종이라는 설을 반영했는지 금발벽안의 여신 종족으로 등장한다. 독사에 물려 죽었다는 설에 따라 한쪽 팔이 뱀으로 되어 있는 것은 덤. 퀘스트 만안의 역피라미드에선 부활하기 위해 1456개의 신체에 자신의 영혼을 깃들게 하려했으나[10] 마지막 제물이었던 아사히를 제물로 바치려던 찰나 나나시가 방해하는 바람에 차선책으로 일단 불완전한 모습으로 부활해 훼방꾼인 나나시를 제거하려 들었지만 결국 패배할 상황까지 치닫자 자결하게 된다.

태고의 달인 - 동과 카츠의 시공대모험 (태고의 달인 - 쿵딱쿵딱 시공대모험) 의 등장인물 클레오파트라

미스터 피바디와 셔먼 쇼에도 등장. 근데 예상과 달리 첫 등장은 상당히 거칠고 경박스럽고 예의없게 등장한다. 피바디의 교육에 의해 우리가 알고 있는 클레오파트라로 변하나 시저의 취향이 과격한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본래의 성격으로 돌아온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이 염종한테 "여자가 왕이 된 경우가 있냐"라고 물어보자 염종이 "서현국(이집트)에 하나 있긴 했다던데 그 대에서 나라 망했다"라고 간접적으로 까인다...

타임보칸 24에서는 날씬한 남편 클레오와 뚱뚱한 아내 파트라가 나오는 흑역사가 나온다.

메탈슬러그 어택에서는 PHARAOH REBIRTH 엑옵 사전구매 유닛으로 등장했다.

2017년도에 공개된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에서 카이사르와 함께 주요 등장인물로 나왔는데 처음에는 바예크와 아야와 협력하는 야심가로 나왔지만 정작 파라오가 되고나니 로마를 등에 업고 권력을 공고히하고자 축출하려던 결사단 수뇌부와 손을 잡았고 측근들을 배신한 형국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에는 경고만 받고 암살되지 않았지만 이후에 결국 타락하여 암살된 모양.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는 템플기사단으로 묘사되고 암살단에게 독사로 암살된 인물.

Fate/Grand Order에서는 어새신으로 나온다. 클레오파트라(Fate 시리즈)문서 참고.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미국에서만 4편을 찍었다. 그중에서 유명한 것은 세실 B. 데밀클레오파트라(1934년작). 클로데르 콜베르(Claudette Colbert)가 클레오파트라를 연기했다. 조셉 맨키비츠( Joseph L. Mankiewicz)가 제작한 1963년작 클레오파트라도 유명한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를 연기했다. 다만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3. 체코 뮤지컬

해당 항목 참조.

4. 감자칩

농심그룹에서 국내 최초로 생산했던 감자칩. 이 당시 인기 스타였던 코미디언 이주일이 출연하는 광고도 있다.

포테토칩의 전신이며 1980년대 후반에 한 번 단종되었다가 1990년대 중반에 뜬금없이 라디오 광고로 등장, 그 후로도 알음알음 생산되었다.

술 게임인 안녕 클레오파트라의 유래가 이것이다.

5. GnuPG의 Gpg4Win 내에 포함된 인증서 관리 소프트웨어

자세한 내용은 GnuPGPGP 항목 참고.

소프트웨어 이용 방법은 문서(영문)를 참고.


  1. [1] 북풍의 신 보레아스오레이티아의 딸이다. 어머니 오레이티아는 아테네에레크테우스의 딸로서 보레아스에게 납치되어 강제로 결혼하였다. 날개 달린 쌍둥이 형제 칼라이스제테스가 오빠이고, 포세이돈과의 사이에서 에우몰포스를 낳은 키오네가 자매다.
  2. [2] 메세네 왕 아파레우스 또는 포세이돈의 아들인 이다스와 에베노스의 딸 마르페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멧돼지 잡다가 외삼촌들을 죽여서 어머니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3. [3] 참고로 이는 전설일 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집트의 더운 날씨에 오랜 시간동안 융단 안에 들어가 있었으면 열사병으로 죽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융단 안에서 클레오파트라가 나타났다고 해도 거의 기절하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부하들이 의심 안 했을 수도 있다. 설마 미쳤다고 저 안에 들어가 있겠냐는 생각에....
  4. [4] 작은 카이사르라는 뜻. 풀네임은 프톨레마이오스 카이사르였다.
  5. [5] 1명은 카이사르의, 2명은 안토니우스의 아들이었다.
  6. [6] 세계지리 시간에 배웠겠지만 아프리카는 사하라 사막을 기준으로 북아프리카와 중남부 아프리카로 나뉘는데 전자를 화이트 아프리카, 후자를 블랙 아프리카로 부른다. 그 이유는 북아프리카는 백인들이 주류이고 중남부 아프리카는 흑인들이 주류이기 때문이다. 이집트인들 가운데서 흑인이 아주 없는 건 아니고 남부지역에서 흑인혼혈주민들이 많이 살고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백인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7. [7] 남아프리카로 이주한 네덜란드인의 후손들.
  8. [8] 알다시피 중금속인 납을 얼굴에 바르면 건강에 매우 해롭다. 옛날에 했던 일들을 현대에 그대로 따라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9. [9] ...사실 단테와 피터지게 싸우는 건 안토니우스뿐이다. 클레오파트라 본인은 간간히 나타나서 안토니우스를 회복시켜주는 게 전부. 그나마도 손을 열심히 때려주면 추락해서 한동안 회복시켜주지 못한다.
  10. [10] 이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유혹해 미라로 만들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스크린샷에서 장미들에 뒤덮인 것들이 클레오파트라의 부활을 위해 제물로 바쳐진 희생자들이다.) 퀘스트 자체의 내용은 실종된 아사히의 친구를 찾아달라는 건데 클레오파트라와 대면하고 나면 친구 역시 제물로 바쳐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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